유전학은 새로운 생명과학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 저자 : 조너선 레이섬(Jonathan Latham)
- 원문 : “Genetics Is Giving Way to a New Science of Life“(2017.2.6)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민서
유전학은 새로운 생명과학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많은 유기체들은 DNA(디옥시리보핵산)를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통상적인 생물학 교육에서 DNA는 전부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살아있는 기능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생명체의 모태분자(master molecule)로 제시된다. 이 글의 저자인 조너선 레이섬은 DNA 모태분자론이 널리 알려져 있고 모든 대학과 고등학교에서도 가르치지만 정작 그 개념은 틀렸다고 말한다. DNA는 주(主)제어기(master controller)가 아니며 생물학의 중심에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과학은 생명이 자기조직적임을 압도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생물학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기다리고 있는 분야이다.
1. DNA를 신화화하기
매우 존경받는 과학자들이 DNA의 능력을 아주 강력하게 주장한다. 노벨상 수상자인 캐리 멀러스(Kary Mullis)는 자서전에서 DNA를 “분자들의 왕”이자 “큰 것”(the big one)이라고 불렀다. DNA구조의 공동 발견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제임스 왓슨(James Watson)은 『DNA: 생명의 비밀』(DNA: The Secret of Life)에서 “생명체의 바로 그 본질을 밝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분자를 DNA라고 부른다. 미국 국립보건원 웹사이트에서는 “유전자는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모든 것의 중심에 있다”라고 주장한다.
현대 인간유전학 배후에 있는 유명한 학자이자 MIT의 <브로드 연구소>(Broad Institute)의 소장인 에릭 랜더(Eric Lander)는 『DNA: 생명의 비밀』의 추천사에서 “생명의 비밀”이라는 비유를 격찬한다. 유전학 교수인 메리-클레어 킹(Mary-Claire King)도 이 책의 추천사에서 “이 책은 DNA의 이야기이자 생명•역사•성•돈•마약 그리고 여전히 밝혀져야 할 비밀에 관한 이야기이다”라고 쓰고 있다.
레이섬은 DNA 능력에 대한 강한 주장들뿐만 아니라 유전학에 대한 왓슨의 견해가 교육도 지배한다고 말한다. 미국 고등학교 생물학 교과서로 널리 쓰이는 『생명』(Life)은 DNA를 중심으로 생물학 전체를 구성함으로써 DNA에게 생명의 중심요소라는 생화학적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한편, 미국 국립보건원을 오랫동안 맡아 온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가 출판한 『생명의 언어』(The Language of Life), 『신의 언어』(Language of God) 같은 제목을 붙인 DNA에 관한 책들이 그 당시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DNA가 모태분자라는 생각은 지배적이었다.
레이섬은 일부 생물학자들이 말하듯이 이러한 견해들은 전형적이지 않고 극단적일 수 있다고 보고 왜 DNA에 관한 극단적인 견해들이 대중담론을 지배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이 논문의 일부를 할애하지만, 논문의 주요 목적은 거의 모든 생물학자들이 DNA를 과장하여 설명하면서도 다른 생물학적인 분자들에 대해서는 협소한 과학적 논의만을 행하는 부조화를 짚어내는 것이라고 밝힌다. 뒤이어 그는 우리의 존재가 DNA 이외에 단백질∙지방∙탄수화물∙RNA(리보핵산)에 의존한다고 해서 아무도 ‘나의 단백질이 본질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데, 유독 DNA에 대해서만 ‘나의 DNA가 본질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합리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레이섬은 이 글의 목적이 ① DNA가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또는 ② DNA가 생물체의 중심에 있는가?라는 물음을 철저하게 살펴보는 것이라고 재차 밝히고 있다.
먼저 레이섬은 DNA가 왓슨, 랜더 및 콜린스가 주장하는 것들 중 어느 것도 아니며 통상적인 생물학자의 생명체에 대한 비교적 균형 잡힌 견해조차도 틀렸다고 말한다. 이는 여러 가지로 입증될 수 있는데, 특히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생명과학에 의해 입증이 가능하다고 레이섬은 주장한다. 이 새로운 과학은 DNA 중심적이고 유전자 결정론적인 생물학이 하지 못했고 할 수도 없는 새로운 생산적인 방식들로 살아있는 존재의 특징들을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DNA는 신의 언어도, 심지어 생물학의 언어도 아니다.
2. 유기체는 체계(systems)이다.
DNA는 생물학적 제어기가 아니다. 생물학적 유기체가 복잡계(complex systems)라는 사실이 그 증거이다. 가령 기후나 컴퓨터와 같은 복잡계를 살펴볼 때 우리는 한 부분이 다른 부분에 비해 우위를 가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복잡계에서는 하위체계들 모두가 모여서 더 큰 전체를 구성한다. 각 하위체계는 특수한 위치를 가지고 있지만 원인으로서 특권적 수준의 작용을 야기하는 하위체계는 없다.
개별 유기체의 생리기능에서도 우리는 전적이거나 특별한 원인으로서의 역할을 그 어떤 기관—심장, 간장, 피부 혹은 뇌—에도 부여하지 않는다. 신체는 모든 부분을 필요로 하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규모가 더 작은 기관(器官)들의 수준에서도 서로 구분되는 세포 형태들은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유지하고 작동하고 복원한다. 마찬가지로 세포 수준에서도 세포 소기관과 기타 분자구조들이 독립적이면서도 상호작용하는, 전체를 구성하는 하위부분들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고분자 수준에 이르면 생물학자들이 체계론적 사유를 완전히 포기하는 일이 발생한다. 생물학자들은 체계론적 사유를 포기하고는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 RNA을 DNA가 만든다(Crick, 1970)는, 생물학의 유명한 중심 학설을 활용한다. 레이섬은 이런 정식화를 기점으로 DNA에서 시작하는 기원 설화가 만들어진다고 보고 있다.
그는 중심 학설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오류를 지적한다.
① 첫 번째 오류는 DNA를 ‘중심적’이라고 부른 것이다. 만약 유기체가 하나의 체계라면 중심은 없다.
② 두 번째 오류는 DNA가 설명되는 경로가 사실상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DNA가 무에서 생겨나는 것은 아니므로 그 경로는 고리형태일 것으로 추정된다. 즉 모든 DNA 분자를 만드는 데에 단백질∙RNA∙DNA가 다 필요하다. 더 넓게 보면, RNA나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서 온전한 세포가 필요한 것처럼 DNA 합성도 온전한 세포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한층 더 정확성을 기하고자 한다면 이들 각각의 구성요소를 만드는 데 하나의 온전한 유기체가, 아니 하나의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을 구성하는 각각의 구성요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생태계에는 내장 미생물들과 양분 공급도 포함된다. 따라서 생물학의 중심 학설을 제대로 온전하게 정식화한다면, 그것은 상호관계들의 그물망에 함입된 고리형태가 될 것이라고 레이섬은 말한다. 하지만 해마다 수만 명의 학생들에게 가르쳐지는 중심 학설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다시 말해 생물학의 중심 학설은 첫째, 고리를 닫지 않음으로써 둘째, 고리 맨 앞에 DNA를 위치시킴으로써 자의적으로 DNA에게 특별한 위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생물학의 중심 학설은 생물학적 현실이 아니며, 자의적으로 구축된 재현물에 지나지 않는다.
유전학자들 및 다른 분야의 생물학자들은 DNA와 관련하여 극히 능동적인 동사를 많이 사용함으로써 이런 해석을 그럴듯해 보이게 만든다. 그들에 따르면 DNA는 세포과정들을 ‘통제하고’, ‘지배하고’, ‘조절한다.’ ‘발현’(expression) 같은 명사들 또한 DNA에 여러 기능을 부여하기 위해 흔히 사용된다. 이처럼 생물학자들은 언어를 통해 DNA에 극강의 힘을 부여한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유전자들이 스스로를 발현하기 때문에 DNA가 배아 발달이나 유기체 건강을 통제한다는 순환논증을 불러일으키는 빌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DNA가 이들 단어들이 암시하는 지배적인 역할을 한다고 딱히 주장하는 과학은 없는 실정이다. 오히려 정반대되는 상황들이 생겨나고 있다. 예를 들어, 『네이처』지에 최근 게재된 한 논문은 “세포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단백질은 전사변이(transcriptional variation)로부터 보호된다”는, 즉 유전자의 직접적인 양적 영향력으로부터 차단된다는 “새로 출현하는 합의”(Chick et al., 2016)를 도출했다. 많은 실험들이 이런 완충 역할을 훌륭하게 입증하고 있다. 가령 한 실험은 박테리아들의 24시간 주기리듬(the circadian rhythm)이 DNA가 없어도 시험관에서 세 가지 단백질을 함께 섞는 것만으로 재생산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 리듬은 심지어 온도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흘 동안 유지되었다(Nakajima et al., 2005).
DNA와 관련하여 사용하는 언어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지배하다’와 ‘통제하다’와 같은 단어가 말 그대로 DNA의 속성을 발명해낸다(Nobel, 2003)는 것이다. 레이섬은 세포들이 DNA를 주로 정보의 저장소로 사용하므로, DNA를 국회 도서관에 비유하는 것이 DNA에 대한 훨씬 더 정확한 은유라고 말한다. 아울러 그는 DNA와 관련하여 ‘지배하다’와 ‘통제하다’와 같은 동사를 사용할 것이 아니라, “세포들은 단백질을 만들어 내기 위해 DNA를 이용한다” 같은 문장에서처럼 ‘이용하다’라는 보다 중립적인 동사를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생물학자들이 신중하지 못한 은유와 중심 학설을 포기할 경우 한층 더 정확한 사고의 방법이 나올 수 있다. 즉 모든 분자와 모든 하위체계가 규모와 상관없이 다른 부분들을 제약하고 강화한다면 중심 제어기를 추론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럴 경우 ‘DNA 중심 모델’을 피드백 시스템 및 창발성(emergent properties)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관계 모델’(a relational model)로 바꿀 수 있다. 이 ‘관계 모델’에서 RNA는 단백질을 만드는 데 필요한 투입물(input) 중 하나일 뿐이고 DNA도 RNA와 기타 등등을 만드는 데 필요한 투입물 중 하나이다. 이것은 생물학의 알려진 사실들과 일치한다.
따라서 중심 학설과 생물학 교과서에 의해 요약된 정식화는 일종의 환상이다. 이것은 미생물학자인 카알 워즈(Carl Woese)가 ‘환원주의적 근본주의’라 불렀던 것의 전형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환원주의적 근본주의는 단순한 환원주의와 다르다. 단순한 환원주의는 타당한 과학적 방법이다. 하지만 환원주의적 근본주의는 전체론적인 설명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도로 단순화된 설명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선호한다. 옥스퍼드 대학 생리학자인 데니스 노블(Denis Noble)은 이 오류가 특권을 가진 원인으로서의 위치를 DNA에 부여하고 있다고 본다.
3. DNA가 ‘생체분자’가 아니라면 ‘생체분자’는 어디에?
식물을 감염시키는 많은 바이러스들에는 DNA가 없다. 그 바이러스들은 생명 주기의 기반을 단백질에 두고 있으며 RNA를 유전물질로 사용한다. 비로이드(viroid)라 불리는 식물 병원체들은 DNA와 단백질 둘 다 결여하고 있고 유일하게 비코드화 RNA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DNA나 단백질이 없어도 생물 형태는 존재할 수 있지만 RNA가 결여된 생명체는 하나도 없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레이섬은 RNA가 여러 면에서 DNA보다 보편적인 생체분자로 더 합당하다고 여긴다.
DNA와 RNA의 구조적 차이를 살펴보면, 우선 RNA와 DNA는 화학적으로 매우 비슷해서 과학자들조차도 RNA와 DNA를 혼동한다. 하지만 그 둘 간의 약간의 화학적인 차이는 매우 다른 속성을 낳는다.
① RNA는 구조적으로 매우 유연성이 있는(휘는 성질이 있는) 반면에 DNA는 구부러지지 않는 성질이 매우 강하다.
② RNA는 불안정하고 화학적으로 반응하는 반면에 DNA는 매우 비활성적이다.
③ 세포들이 네 개의 염기에 만들 수 있는 화학적 변형(modification)의 개수가 다르다. (뉴클레오티드 A, C, G, T를 염기로 가지고 있는) DNA의 경우에는 메틸화 및 아세틸화라는 두 가지 변형만이 대부분 세포에서 가능하다. DNA 염기의 속성을 바꾸는 이 두 가지 변형은 최신 과학인 후성유전학(epigenetics)의 주요한 기본원리이기도 하다. RNA도 네 가지 염기(A, C, G, U)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세포는 염기에 비견할만한 화학적 변형을 백 개 이상 만든다. 이 변형들이 하는 역할은 본질적으로 수수께끼이지만 아마도 그 변형들은 RNA가 세포 내의 많은 일을 수행하도록 도울 것이다.
④ RNA는 DNA와 단백질 사이의 중간 생성물일 뿐이라고 잘못 이해되고 있다. 전형적인 인간 세포에서 1% 미만의 세포가 단백질을 만든다. 나머지 99%는 엄청나게 다양한 구조적 기능, 조절기능 및 효소기능을 한다. 최근에 들어서야 RNA는 훨씬 더 흥미로운 분자로서 DNA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⑤ RNA가 DNA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했다. 이 사실은 둘 사이의 차이를 심층적으로 설명한다. RNA는 엄청나게 오랫동안 생체에 깊이 구조적으로 함입되어 있어서 연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우리가 RNA에 관하여 많이 알지 못하는 역설적인 이유는 RNA가 중요하지 않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DNA와 다르게 RNA가 세포기능에 너무 중요해서 마음대로 선택하여 제거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레이섬은 이러한 현재의 진화론적인 이해에 발맞추기 위한 적절한 방식은 DNA를 중심으로 한 일반 교육을 뒤엎고 RNA의 분화된 형태가 DNA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DNA는 유전자 정보를 안전하게 저장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보다 안정적인 사서(司書)로 만드는 구조적 견고함과 화학적 비활성을 점진적으로 발달시켰다. 진화가 진행되는 동안에 DNA는 보다 훌륭한 사서로 선택되었고 단백질은 화학반응의 우수한 촉매제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그는 생명체가 실제로 만들어지는 데 기반이 되었던 생체분자는 RNA였을 가능성이 더 높긴 하지만 DNA와 마찬가지로 RNA도 제어기는 아니라고 말한다.
4. DNA는 진화의 중심도 아니다
DNA를 중심으로 생물학을 구성한 이유에 대해 흔히 하는 설명, 즉 생물학 교과서 『생명』의 저자들이 제시한 설명은 이른바 진화에서 DNA가 하리라고 생각되는 역할에 기반을 둔 것이다. 하지만 레이섬은 이 설명이 매우 의심스러운 이유를 두 가지로 제시한다. 두 가지 이유 모두 진화 이론에 대한 만연한 오해의 사례들이다.
이유 1. 다윈 이론의 중요성을 과장하고 있다.
이유 2. 받을 자격이 없는 명성을 다시 한 번 DNA에게 부여하고 있다.
첫 번째 오해는 진화 이론이 생명에 대한 설명이라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은 다윈이 말하는 진화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고 생명의 기본적인 패턴들 가운데 일부(세포, 단백질, 에너지 대사)는 DNA가 유전 분자가 되기 훨씬 오래 전에 등장했다(Carter, 2016). 이 구분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생명’에 관한 교과서라면 다윈 이론이 설명하는 것을 쓸데없이 과장하지 (즉 혼동하지) 않기 위해 생명의 기원과 생명의 유지를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교과서『생명』은 양자를 섞어버림으로써 대부분 생물학자들이 하는 오해를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둘째, 다윈이 말한 진화 이전의, 세포와 물질대사를 중심으로 하는 생명은, 복잡계가 창발성과 자기조직화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발생했다(e.g. Kauffman, 1993; Carter, 2016). 이 체계에 DNA가 출현함으로써 진화는 빨라질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화가 창발적이고 자기조직화하는 속성을 없앤 것은 아니다. 오히려 DNA가 창발적이고 자기조직화하는 속성들과 공조했고 새로운 속성들을 창출하도록 도왔다. 다시 말해 창발성과 자기조직화가 광범위한 생물학 영역을 가장 진실에 가깝게 설명한다. 배튼(Batten)과 그의 동료들이 유전자 결정론으로 거의 굳어져 버린 통상적인 진화 이론에 대한 대안을 “자기조직화는 자연 선택이 배제한 것을 채택한다”(“Self-organization proposes what natural selection disposes”)라는 말로 색다르게 요약하고 있는 것(Batten et al., 2008)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단백질 접힘은 고전적인 창발성에 속한다. DNA는 단백질을 구성하고 있는 아미노산의 선형순차를 코드화하지만 모든 단백질은 매우 복잡한 3차원 형태 하나 혹은 일반적으로 둘 이상을 취한다(Munson et al., 1996). 대부분 이 형태들(+전하charge 및 용해도) 때문에 단백질 속성이 생겨난다. DNA가 단백질 형성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명시한다고들 하지만 레이섬은 이것은 사실무근이라고 말한다. 모든 단백질 형태는 DNA 외에도 다수의 정보 출처들을 통합하기 때문이다. ① 온도, ② 물과 무기질 이온 같은 다른 세포분자들, ③ 수소이온농도(PH), ④ 아데노신3인산(APT) 같은 에너지 분자, ⑤ 샤프론(chaperones)이라 불리는 단백질 접힘 조력자 등등이 이 출처에 포함된다. 많은 단백질들은 이 이외에 분자 채널(molecular channels) 및 펌프가 되는 것과 같은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 기능들은 상위 구조 수준에서만, 예를 들어 다른 단백질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기능이다.
이렇듯 DNA는 매우 제한된 정도로만 단백질과 그 기능들을 명시한다. 레이섬은 모든 유전자 이외의 기여들을 무시하고 DNA에 단백질이나 과정(또는 온전한 유기체)의 모든 속성들이 있다고 보는 입장을 초결정론적(ultra-determinist) 입장이라고 부른다. 이 입장은 단백질 접힘 같은 창발성을 생명기능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으로 기록할 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지 않은 극강의 힘을 DNA에게 부여한다.
창발성은 왜 DNA와 진화의 관계가 미약한지를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레이섬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패트릭 베이트슨(Patrick Bateson)—그는 창발성의 관점이 아니라 동물 행동의 관점을 채택한다—이 “온전한 유기체는 차별적으로 살아남아 재생산하고 승자들은 유기체에 있는 유전자형(genotypes)을 끌어낸다. 이것이 다윈 진화의 원동력이다”라고 쓴 글을 인용해서 베이트슨이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진화를 더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레이섬은 DNA가 진화와 관련해서조차 ‘큰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찰스 다윈이 DNA가 존재하는지도 모른 채 진화 이론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도 생물학자들은 유기체의 구성요소들 중에서 DNA가 진화에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5. 유전자중심 생물학을 설명하기
대부분의 세포분자들은 반응도가 높고 일시적인 화학물질들이다. 이것은 세포분자들을 추출하는 것도 어렵고 연구하는 것도 힘들다는 말이며 RNA 및 단백질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하지만 DNA는 생물학에서 실제로 개입하기가 훨씬 더 용이한 대상이다. DNA는 추출되어 정확하게 복제되기에 충분할 정도로 안정적이며 튼튼하고 단순하다. 고등학생들도 한 시간 동안 훈련을 받으면 DNA를 추출•복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금 더 훈련을 할 경우 DNA를 변화시킬 수 있고 어떤 종(種)에서는 DNA를 대체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아무 데서나 DNA를 해킹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다.
레이섬은 우리가 유전자조절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정도가 다른 생물학 분야를 이해하는 정도를 능가하는 것은 DNA가 추출•복제를 통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생물학의 낙과(落果)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6. DNA를 둘러싼 과학 내부의 이견
수리생물학자인 로버트 로젠(Robert Rosen)은 “인간의 몸은 물질대사∙복제∙복구를 통해 대략 8주마다 구성하고 있는 물질을 완전히 바꾼다. 그런데도 당신은 여전히—당신의 모든 기억, 성격을 지니고 있는—당신이다···. 과학이 계속 입자들을 뒤쫓기를 고집한다고 하더라도 유기체를 도외시하고 뒤쫓을 것이고 따라서 유기체를 완전히 놓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어떤 다세포 생물이라도 조사해보라. 그러면 비교적 고요한 표피 밑에 숨어 있는 순환계들, 소화 활동 중인 위장들, 림프 배수계들, 전기 자극들, 생체분자 기제들 등등을 발견할 것이다.
유기체의 모든 부분들이 계속해서 움직이고, 수축하고, 얽히고, 진동하고, 긴장하고, 성장하는 것은 이런 체계들 때문이다. 결국 살아있는 유기체들을 규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유기체들의 역동적이고 살아있는 본성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기체가 법적으로 죽었는지 어떤지를 알고 싶을 때 DNA를 조사하지 않고 심장박동이나 뇌기능을 측정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속성은 RNA와 단백질처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구성요소들을 필요로 한다.
생물학자들은 주로 DNA를 중심으로 생명을 이해함에 따라 (메리 클레어 킹의 주장인 ‘DNA는 생명이다’를 떠올려보라) 생명이 가지고 있는 역동적인 본질을 가장 낮게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구성요소인 DNA를 선택해왔다.
생물학 분야 안에 반대자들이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들 모두는 DNA를 기반으로 하는 현재의 틀이 가능하게 하는 것보다 생물학이 훨씬 더 복잡하고 흥미롭지 않은가 하는 물음을 던졌다(e.g. Kaufman, 1993; Strohman, 1997; Rose, 1999; Woese 2004; Annila and Baverstock 2014; Friston et al., 2015). 이들 반대자들은 가령 인간 게놈의 순서배열 작업과 인간 DNA의 아주 작은 조각들에 대한 보다 세밀한 분석 작업에 뒤따르는 의학-과학적으로 획기적인 성과가 대체적으로 없다는 데 주목한다(Ioannidis, 2007; Dermitzakis and Clark, 2009; Manolio et al., 2009).
비판의 수위가 좀 더 높은 사람들도 있다. 파스퇴르(Pasteur) 이후로 아마도 가장 유명한 세균학자인 카알 워즈(Carl Woese)는 유전자 결정론은 막다른 길이고 생물학의 상상력은 “소진되었”다고 주장했다.
조직공학 분야는 카알 워즈가 주장한 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조직공학자들은 이식 등 의료적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체외에서 인간의 온전한 인체기관을 만드는 데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진전을 이루어왔다고 주장하지만, 아직 이 기관들은 기능하지 못한다(Badylak, 2016). 그 인체기관에는 혈관•면역체계•신경망이 없다. 그 기관은 귀 모양을 한 골격이나 손 모양을 한 골격 위에 붙어있는 인간 세포일 뿐이고 그 결과 재생성적인 속성이 없기 때문에 수명이 짧다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많은 생물학자들이 최소한 이 패러다임이 안고 있는 문제의 일부를 알아채고는 있지만 좀처럼 행동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유기체들이 대단히 복잡한 체계라는 분명한 사실에 대해 ‘체계생물학’ 방면으로 얼마 안 되는 재원을 모아준 것이 유일하게 눈에 띄는 공식적인 반응이다.
이 체계생물학조차도 체계의 연구인 경우가 드물다. 생물학자들이 복잡계 이해를 발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환원주의를 확대하고 기계화하기 위해 체계생물학의 재원을 사용해왔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기체를 유전자조절 네트워크의 집합들로 간주하는 뿌리깊은 결점을 분명하게 표명하거나, 유전자조절 네트워크를 대체하기 위한 대안 패러다임(들)을 만드는 쪽으로 나아간 과학 전공분야나 연구소는 없는 실정이다.(Strohman, 1997)
레이섬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지적인 공백은 대부분 주변부에 있는 개별 과학자들에 의해, 유전학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생물학적 현상을 설명하는 장래성이 있고 심지어 혁명적이며 이론적인 개발과 실험 결과들로 꾸준히 채워지고 있다.
7. 대안적인 생명 패러다임으로의 간단한 안내
헬름홀츠 기계(Helmholtz machine)는 현실에 관한 예측을 하고 예측한 바를 그 현실에 비추어 재차 확인하는 감지장치이다. 이 기계장치는 예측과 현실 사이의 차이를 추정한다. 베이즈의 통계학은 이와 동일한 일을 하는, 즉 예측(기대값)과 현실 사이의 차이를 어림짐작하는 수학적 방법이다.
일명 베이즈의 뇌 이론이라 불리는 새로운 신경생물학 이론은 뇌를 생명체에서 차이를 추정하는 일을 담당하는 부분으로 제시한다(reviewed in Clark, 2013). 뇌는 예측을 하고 예측치와의 불일치를 측정하며 이 불일치를 상위의 신경회로로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이 상위의 신경회로들이 그 과정을 반복하고 만약 불일치가 계속된다면 그때 이 불일치들은 한층 더 상위의 수준으로 전해진다.
베이즈의 뇌 가설은 ① 뇌 구조와 뇌 기능의 수많은 양상들을—예를 들어 어떻게 뇌가 서로 매우 다른 자극들(시각∙감각∙미각∙청각의 자극 등등)을 본질적으로 같은 신경메커니즘과 구조를 가지고 처리할 수 있는지를—설명하고 ② 어떻게 뇌가 행동과 지각을 통합할 수 있는지를 나타낸다. 뇌 이론은 또한 학습에 대한 실질적인 설명을 제공한다. 즉 학습을 예측하는 모델의 갱신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레이섬은 이러한 베이즈의 뇌 가설이, 뇌가 진화하는 동안 예측 층위를 추가함으로써 고등한 의식 수준을 발전시켰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베이즈 뇌 이론이 가진 특별한 장점은 그것이 영장류 피질 안에 있는 뉴런들의 실제적인 공간 조직에 상응한다는 것이다. 이 공간 조직에서 “예측하는” 뉴런들과 “감각” 뉴런들이 서로 반대방향에서 신호를 보내고 이로 인해 신호들이 (불일치인 경우는 제외하고) 서로 상쇄된다.
베이즈 뇌 가설이 제기한 구조기반 예측 학습체계도 흥미롭다. 이 체계가 의식을 포함한 많은 현상들에 대한 상세한 유전적 설명들을 주변부로 밀어내기 때문이다(Friston, 2010). 유전자와 단백질이 세부적인 부분들을 채울지는 모르지만 뇌 기능의 많은 핵심 요소들, 이를테면 학습∙행동∙지각은 주로 구조에서만 나온다. 단백질 접힘처럼 그 핵심요소들도 조직화의 창발적 속성들이다.
창발성은 다른 생물학 분야에서도 중요하다.
① 식물의 관 체계(the vascular system).
나무는 포화되지 않은 수원에서 수백 피트 허공으로 물을 운반할 수 있다. 이른바 증산작용은 에너지 투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증산작용은 물을 잘 흡수하는 물관부 조직들—관들—의 순수하게 물리적인 속성과 물 자체의 속성을 이용한다. 비록 아주 약하게나마 흙속에서 이미 작용하고 있는 증산작용이 없다면 식물의 키는 2인치를 초과할 수 없으며 건조 상태도 견뎌낼 수 없다(Wheeler and Stroock, 2008). 이처럼 식물이 물의 간단한 물리적 속성을 영리하게 이용하는 것은 광합성과 함께 식물을 규정하는 특징들 중 하나이다.
② 인간 발바닥에 있는 오목한 부분들(장심掌心).
이 오목한 부분들은 세로로 된 뼈들이 연결조직에 의해 가로로 이어져서 구성한 격막 구조물로서, 그 창발적 속성은 충돌에서 생겨난 힘을 분산시키고 충돌에서 생겨난 에너지를 전진 운동으로 바꾸기 위해 용수철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장심은 걷거나 뛰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줄인다.
③ 다효소복합체(metabolon)들.
생화학 분야에서 최근에 제기된 다효소복합체(metabolon)들의 존재도 창발성과 관련이 있다. 다효소복합체들은 효소의 3차원적 공간배열이다. 다효소복합체는 표면적으로는 중요하지 않은 대사 경로(metabolic pathway)의 생산물이지만 어떻게 그 생산물이 묘목 무게의 30%를 구성하고 그 결과 해충들을 쫓아버릴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Laursen et al., 2017).
④ 생체항상성(homeostasis)의 피드백 고리.
생체항상성의 피드백 고리는 생물학에서 발견되는 자기조직화하는 속성들 중에서 보다 전통적인 부류에 속한다. 생체 항상성의 피드백 고리 역시 유전자 기능과는 대체로 무관하지만 살아있는 유기체의 활동과 속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현상이다. 박테리아의 24시간 주기리듬을 재창조할 수 있는 세 가지 단백질이 그 한 가지 예이다.
⑤ 세포와 물질대사에 대한 통합적 이론들.
이 이론들 대다수가 생명을 기본적인 물리력의 작용에 결부시킨다. ⓐ 1972년에 사망한 니콜라스 라세프스키(Nicolas Rashevsky)는 이와 같은 모든 이론의 아버지이며, 그의 제자로 로버트 로센(Robert Rosen)과 AH 루이(AH Louie)가 있다. 그 밖의 학자들로는 ⓑ 물리학자이자 『생명이란 무엇인가?』(What is life?)의 저자인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 ⓒ 『질서의 기원들』(The Origins of Order, 1933)의 저자인 스튜어트 카우프만(Stuart Kauffman), ⓓ 『생명선: 결정론을 넘어선 생물학』(Lifelines: Biology beyond determinism, 1997)의 저자인 스티븐 로즈(Steven Rose), ⓔ 『유전자의 예술』(The Art of Genes, 1999)의 저자인 엔리코 코엔(Enrico Coen), ⓕ 『생명의 음악』(The Music of Life, 2003)과 『생명의 멜로디에 맞춰 춤을: 생물학적 상대성』(Dance to the Tune of Life: Biological Relativity, 2017)의 저자인 데니스 노블(Denis Noble), ⓖ 그리고 생명은 열역학 제2 법칙의 필연적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애닐라(Annila)와 베이버스톡(Baverstock)이 있다.(Annila and Baverstock, 2014; see also Friston et al., 2015). 이들과 미처 거론하지 못한 사상가들은 과학 혁명을 위한 잠재성을 지닌 원료—유전자조절 네트워크의 틀을 훨씬 벗어나는 원료—를 모으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이론들 중에서도 유전자 결정론이 생명 개념으로서 잘못된 것임을 확실하게 입증하는 데 가장 근접한 이론은 ‘RNA 세계’이다.
‘RNA 세계’라는 개념은 이른바 ‘현대의 DNA 세계’라고 여겨지는 것에 선행했던 것으로 이론화된다. 하지만 레이섬은 존재한 증거가 거의 없는 ‘RNA 세계’보다 새로운 이론인 ‘펩티드-RNA 세계’가 한층 설득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펩티드-RNA 기원 명제(Carter, 2016)에 대한 핵심 증거는 오늘날 RNA와 단백질을 연결하는 효소가 (모든 유기체에서) 두 가지 기본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1종 효소와 2종 효소라 불리는) 이 두 가지 형태의 진화론적인 기원은 이상하게도 모순된다. 1종 분자와 2종 분자는 (서로 다른 아미노산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거의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구조적으로는 한 가지를 제외하고 공통점이 없다. 이 분자들의 활발한 촉매작용의 중심에 있는 아미노산들은 똑같은 작은 RNA 분자의 반대쪽 가닥에서 나올 수 있다(Carter 2016). 다시 말해 RNA로 하여금 모든 현대의 단백질을 만들게 하는 두 개의 단백질은 그것들을 공히 암호화했던 단일한 아주 원시적인 작은 RNA 분자가 가진 두 가닥에서 나온다.
이 말은 생명 기원의 아주 초기단계에서는 물질대사와 복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다. RNA의 역할은 원시 단백질들을 모으는 것이었다. 이 원시 단백질의 목적은 촉매작용, 즉 물질대사를 이끌고 향상시키는 작용이었다. 따라서 펩티드-RNA 기원 명제가 제안하는 것은, RNA가 이미 선행했던 물질대사를 향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복제 우선 이론(a replication-first theory)인 RNA 세계를 물질대사 우선 이론(a metabolism-first theory)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8. DNA와 정치(학)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생물학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실제로 훨씬 더 복잡하다. 모든 사람들은 이런 저런 형질 때문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유전자들은 삶(life)의 결과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생물학은 유전자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며 수십만 개의 독립된 요소들을 다룬다. 유전자는 절대로 우리의 운명이 아니다. 유전자가 질병의 위험이 증가하는 것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우리에게 줄 수는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유전자가 질병의 실제 원인, 또는 병에 걸린 누군가의 실제 발병을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 생명 현상은 유전자 암호에 의해 직접적으로 조종되는 게 아니라, 환경적인 요인들과 함께 작용하는 모든 단백질과 세포의 복잡한 상호작용에서 생겨날 것이다.”(Anand et al., 2008)
전설적인 게놈 순서 배열자인 크레이그 벤터(Craig Venter)의 이 인용문은 많은 유전학자들이 대안적인 패러다임의 명백한 필요성을 남몰래 인정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와 동시에 벤터의 이 인용문은 우리로 하여금 다음의 두 가지 물음을 던지게 한다.
① 유기체가 생물학 연구의 주요 대상이라면, 그리고 유기체의 기원과 작용에 대한 통상적인 설명이 과학적으로 너무 취약해서 그 결함들을 은폐하기 위해 DNA에 ‘발현’과 ‘통제’라는 극상의 능력을 부여해야 한다면, 어째서 과학자들은 이런 식으로 DNA에 매달렸던 것인가?
② 생물학에 필요한, 잠재적으로 생산적이고 통합적인 패러다임의 선구자들인 라세프스키, 카우프만, 노블 등을 칭송하고 이들에게 투자하기는커녕 왜 이들 연구자들이 주류 생물학으로부터 무시를 당해왔던 것인가?
레이섬은 마지막으로 유전자 결정론의 큰 매력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물음에 대한 답은 이 글에서 제시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생물학의 편집증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존재한다며 그것은 두 번째이자 곧 나오는 논문, 「생명의 의미」(“The Meaning of Life”) 속에 정리되어 있다고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이 설명은 과학의 눈속임의 배후를 파헤치고 현대 정치 시스템 안에서 과학이 권력과 맺는 적극적이며 공생적인 관계를 검토함으로써 제시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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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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