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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LGBT들은 ‘백인 구원자’가 자신들을 구하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다

 

  • 저자 : 루 페레이라(Lou Ferreira). 루는 ‘2020~2021 백래시 추적(2020-2021 Tracking the Backlash)’의 국제 조사 연구원이다.
  • 원문 : LGBT people globally are not waiting for ‘white saviours’ to rescue them (2021. 6. 8) https://www.opendemocracy.net/en/5050/lgbt-people-globally-are-not-waiting-for-white-saviours-to-rescue-them/(This article is published under a Creative Commons Attribution-NonCommercial 4.0 International licence.)
  • 분류 :  번역
  • 옮긴이 : 채희숙
  • 설명 : 이 글은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피터 태철: 세상이 미워한 남자Hating Peter Tatchell>(크리스토퍼 에이모스Christopher Amos, 호주, 2021)에 관한 짧은 비평글을 번역한 것이다.

전 세계 LGBT들은 피터 태철 덕분에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니지만, 넷플릭스의 신규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렇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엘튼 존(Elton John)의 후원으로 지난달에 개봉된 <피터 태철: 세상이 미워한 남자>는 유명하고 논란이 많은 영국의 LGBT 인권 활동가와 그의 반세기 넘는 캠페인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양한 목소리와 결정적인 맥락을 제외함으로써 이 시기의 더 넓은 이야기를 반영하는 데 실패한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태철을 모든 곳에서 퀴어를 구하는 ‘백인 구원자’와 같은 인물로 보여준다.

이것은 훨씬 더 풍부하고 힘있는 작품일 수 있었다. 그러나 도리어 이 영화를 보면서 세 가지 주요한 이유로 나는 좌절했다.

1. 사라진 목소리들

유명한 게이 배우들인 스티븐 프라이(Stephen Fry)와 이안 맥켈런(Ian McKellen)을 포함에서 거의 전부 백인 남성 영국인인 인터뷰 출연자들은 영국 안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태철의 LGBT 권리를 위한 50년 넘는 캠페인과 시민불복종 활동을 돌아본다.

우리는 태철이 10개국 넘는 곳에서 벌인 시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그가 2018년 축구 월드컵을 앞두고 푸틴의 반LGBT 정책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러시아 여행을 준비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옹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한다. 풀뿌리의 승리들은 당사자가 아닌 영국 유명인들의 이야기들에 가려진다.  

누가 푸틴의 러시아에서 성적 권리에 반대하는 백래시에 따르는 인적 희생을 설명하는가? 스티븐 프라이다. 러시아 LGBT는 체포와 동성애혐오 폭행을 담은 푸티지에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태철 이야기의 소품에 불과한 것처럼 배경에 있다. 우리에게 직접 이야기를 하는 유일한 러시아 활동가에게서 우리가 듣는 것은 태철의 도움에 감사하는 말뿐이다.

2. 사라진 맥락

태철은 영국의 LGBT에게 1980년대는 “악몽과도 같은 시기”[인용은 영화 자막을 따름-옮긴이]였다고 회상한다. 대처의 보수당 정부가 학교에서 동성애를 소위 ‘조장’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 28절을 내놓은 한편 에이즈바이러스(HIV,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의 확산은 반동성애 차별을 악화시켰다. 태철은 동성애자 및 양성애자 체포의 급증을 언급하면서 “경찰은 우릴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박해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사라진 것은 당시의 반인종주의 투쟁을 어떻게든 반영하는 것이다. 1980년대에 경찰의 보호를 기대하는 것은 모두가 누리지는 못하는 특권이었다. 흑인 시민권 운동은 태철이 그 운동에서 자신이 영감을 받았고 “그들의 이상, 가치, 방법을 [배워서] 나의 인권 운동에 적용했습니다”라고 말할 때 잠시 거론된다. 

반LGBT 차별이 어떻게 인종 또는 젠더에 기반을 둔 억압과 교차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는데, 이는 특히 흑인 트랜스 여성을 폭력의 위험에 처하도록 계속 내버려둔다. 또 스크린에서 밀려나있는 것은 바로, 장애인의 권리에서 광부들의 노동쟁의에 이르기까지 1980년대에 떠오른 영국의 다른 시민권 투쟁들이다.

3. 백인 구원주의?

2001년 태철은 호텔로비에 매복했다가 짐바브웨의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Robert Mugabe)에 대해 고문‘죄’를 근거로 한 시민체포를 극적으로 시도했다. 그는 영화에서 “짐바브웨의 인권 운동가는 제가 국제적으로 무가베 정권의 만행을 알릴 행동을 취해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해왔습니다”라고 설명한다.

러시아에서 태철에 관해 보도된 바처럼 이 다큐멘터리는 짐바브웨 활동가들에게서 직접적으로 듣는 장면을 오직 하나만 제공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것은 지역 운동원들이 백인 영국인에게 감사하고 있는 클립이다. 그들이 수년 동안 자국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온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장면에서 우리는 태철이 런던의 이슬람사원 바깥에서 캠페인하는 것을 본다. “[우리는] 무슬림 공동체와의 결속력을 다지고자 합니다”라고 그는 설명한다. 런던에는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서 그런 연대를 형성하고 있는, 유색인종이 이끄는 수많은 단체들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점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피터 태철: 세상이 미워한 남자>은 LGBT 권리운동의 전체 역사를 제시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이들의 목소리와 역할을 무시하고, 태철이 세계의 퀴어를 구하는 1인 시위 기계인 것처럼 그를 위치지은 것에 변명이 되지는 않는다.

전 세계 LGBT는 백인 영국 남성이 나서서 자신들을 구해주는 것을 기다리고 있지 않다. LGBT가 그러한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암시하는 것은 그릇된 이해를 낳으며 모욕적이다.  




지역화폐, 사회적 자본 및 기본소득에 관한 토론

 


  • 저자  : Valentin Seehausen, Julio Linares, Inte Gloerich
  • 원문 :  Discussion on Community Currencies, Social Capital & Basic Income https://networkcultures.org/moneylab/2021/04/16/moneylab-11-discussion-on-community-currencies-social-capital-basic-income/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루케아
  • 설명 :  대선의 열기가 서서히 오르는 모양이다. 대의민주주의가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흡수하는 시즌이 오고 있는 것이다. 대의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삶의 문제가 아닌 권력의 문제로서, 삶의 외부에서 삶을 제한하는 것으로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배어들도록 만드는 무대이다. 이 무대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 ‘할 일’은 시야가 이 무대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시야는 민주주의가 다시 삶 전체로 돌아온 세상을 향해있다. 우리가 보기에 민주주의의 문제는 단지 좁은 의미의 정치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삶을 구성하는 영역들 전체와 관련된다. 화폐의 영역도 여기에 포함된다. 화폐는 인간의 사회적 관계의 표현일 뿐인데, 이것이 사회적 삶에 외부에 존재하며 사회적 삶을 제한하는 것이 됨으로써 곧 권력이 되었고 더 나아가 물신(物神)이 되었다. 대안근대를 지향하는 우리로서는 화폐를 권력이 아니라 다시 삶의 힘으로 되돌려놓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바로 이것이 화폐의 민주화의 핵심이다. 이번 글에서는 다른 곳에서 이 화폐의 민주화를 어떻게 고민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기본소득이나 지역화폐는 이미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것이기에 내용이 새롭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실제적 노력의 사례들을 들어보는 것도 우리에게 좋은 경험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소개하려는 텍스트는 2021년 3월 27일 있었던, 머니랩(MoneyLab)의 11차 워크숍 ‘지역화폐, 사회 자본 및 기본소득에 관한 토론’(Discussion on Community Currencies, Social Capital & Basic Income)을 녹취한 것이다. 실제 토론의 동영상은 이곳에 가면 볼 수 있다. 토론자인 훌리오는 <써클즈> 소속이고 발렌틴은 <쏘셜코인> 소속이며 진행을 본 인테는 <머니랩> 소속이다. 내용정리이지만 대화체를 유지했으며, 녹취록에서 발견한 몇 개의 오류는 동영상을 보고 수정했다. [정백수]

인테
우리가 왜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까요? 지역화폐(공동체화폐)와 기본소득은 초창기부터 <머니랩>(Moneylab)의 주제였습니다. 지금 시기(팬데믹 기간)에 적절한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여러분 둘 다의 프로젝트에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동체에의 헌신입니다.

홀리오
저는 과테말라 출신 경제인류학자이며 사회활동으로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본소득을 어떻게 실현할지, 그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에 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저를 인류학으로 이끌었습니다. 화폐를 다시 생각하는 방식으로서 화폐의 인류학, 가치의 인류학으로 말이죠.

<써클즈>가 가지고 있는 주요 아이디어들 중 하나가, 국가가 기본소득을 제공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기본소득의 창출과 관련된 패러다임 전환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민주적 화폐 이론’(DMT)이라 부릅니다. 이에 따르면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약속의 징표를 발행하여 은행 또는 국가와의 관계와 무관하게 상호적으로 빚을 지고 빚에서 벗어납니다.

제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힘의 느낌, 돈을 창출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것이고, 돈을 창출하는 힘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화폐 취득자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을 화폐발행자로서 느끼게 만들고 경제가 어떻게 조직되는지에 대한 통제력과 발언권을 갖도록 만드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발렌틴
당신의 말이 이해가 됩니다. 저에게는 지역화폐(공동체화폐)가 사회/경제 이론에서 실천성을 얻는 한 가지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화폐시스템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시작했고 정치에 입문할까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름의 소규모 대안적인 금융시스템을 시작하는 것은 어떤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종종 지역화폐를 추동하고 우리로 하여금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하는 요인입니다. 우리, 즉 민중을 위한 세상이죠. 물론 이것은 제 주관적인 견해이지만요.

우리는 지역화폐를 아래로부터 창출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 지역화폐들이 있고 그 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만약 우리가 화폐시스템(monetary system)을 아래로부터 창출한다면 어떻게 될까를 보여주는 본보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써클즈>(Circles)와 <쏘셜코인>(Social Coin)은 블록체인 테크놀로지로 실험을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지역화폐들이 화폐를 실험하는 작은 실험실인지도 모르죠.

인테
우리는 야심찬 생각들에서 출발하지만 지역화폐가 그 생각들을 실천에 옮기는 한 가지 방식입니다. 그런데 또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가령 제가 ‘쏘셜 코인’을 사용하기 위해 <써클즈> 커뮤니티에 참여할 기회가 있다면 그 동기는 무엇일까요? 제가 무엇을 살 수 있을까요?

발렌틴
이것이 지역화폐가 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 모두 호모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이론(집안 살림의 효용을 극대화하기)을 알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이 이론은 전적으로 결함이 있지만 여전히 그 안에 진실이 좀 들어있습니다. 공동체에 기여하는 사람들에게 이익이 돌아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이익이 공동체에 기여한다는 느낌을 가지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경제적 이익이 무엇이냐’를 묻는 것이 공정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근(Siegen)에서 경제적 이익은 전기차나 전기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홀리오
저는 거시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 화폐, 테크놀로지는 다 하나라고 항상 말합니다. 화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회기반시설, 즉 다른 모든 생산자들, 다른 모든 물류 제공자들, 서비스 제공자들, 돌봄 노동 제공자들, 경제의 일부인 모든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사회구조입니다. 경제는 집안 살림, 즉 오이코스(Oikos)입니다만 우리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집만이 아니라 지역입니다. 그래서 이곳 베를린에서 우리는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맥주 제조업자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농부와 함께할 수도 있고 자전거 공유 협동조합과 함께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그들을 서로 연결시키고 잉여를, 그리고 코로나/위기시기에 충분히 이용되지 않은 자원을 추가적인 유동성(liquidity)으로 변형시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술집들이 문을 닫았기에 팔 수 없는 50리터 맥주통을 가지고 있는 맥주회사 소유주와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써클즈>에 그것을 팔아서 행복한 상태이며, 맥주를 더 많이 팔기 위해 지역 라디오에 홍보를 하는 데 그 돈을 사용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발렌틴이 말하고 있는 바입니다. 당신은 사람들이 서로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그들을 연결시키는 방식을 생각해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당신 자신만이 아니라 더 큰 어떤 것을 실제로 부양하고 있는 셈입니다. 잉여가 더 큰 지역사회로 갈수 있도록 하는 방법론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자원들의 흐름을 창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테
지역공동체 건설이 핵심 작업이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지역공동체의 신뢰와 네트워크가 없다면 그것은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진공상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국가의 맥락에서 법정화폐 시스템 및 세금 시스템과 함께 존재합니다. 당신의 프로젝트는 더 광범위한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존재합니까? 이 프로젝트는 고립된 지역들로서 존재하나요? 아니면 전체시스템이 바뀌는 것을 보고 싶은 건가요?

홀리오
독일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은 화폐란 사회에 대한 일정한 요구의 표현이라는 점에 관해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사회에서 사용하는 화폐의 유형들이 다양한 차원들―상상력, 무급노동, 유급노동―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요소들이 화폐형태로 반영됩니다. 그래서 저에게 중요한 것은, 화폐를 다루고 정치적인 싸움에 뛰어듦으로써 우리는 바로 화폐시스템 전체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발렌틴과 함께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시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할 수 있는 시장(市長)들의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창출하려는 노력입니다. 우리는 일군의 다양한 시스템들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써클즈>는 그것들 중 하나일 뿐이고 우리는 지역의 조건과 욕구가 무엇인지를 보고 사용될 수 있는 일단의 도구들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존재하는 일국의 국가시스템과 함께 공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미국의 사례가 항상 적절한데, 미국에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통제를 받는 국가시스템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광범위한 수준에서 공존하는, 국가보다 하위의 시스템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가령 지자체들이 폭넓은 스펙트럼의 이익을 보완하고 조율하는 방식으로서 지역의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발행하여 잠재적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지급할 수 있습니다.

저로 말하자면, 저는 아나키스트입니다. 국민국가를 믿지 않고 자본주의를 믿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폐지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순간 어떤 상황에 있는지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이 구조들이 몰락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며, 제가 하고 있는 것은 그것들이 더 잘 몰락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좌중의 웃음]

발렌틴
토론이 시작된지 20분이 지나서 당신이 스스로 아나키스트임을 이렇게 폭로하는 것이 정말 좋군요. 저는 동조하는 편입니다. 시스템을 바꾸는 방식이고 힘을 지방자치제 수준으로 되돌려주는 방식이니까요. 국가들이 있고 국제적인 기구들이 있습니다. 아나키스트가 아닌 저는 그것들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또한 저는 금융시스템이 사회의 소수에게 복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0%나 1%의 사람들은 실질적인 혜택을 많이 받지만, 50%의 사람들은  실질적인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전 세계에서 극빈 상태에 있는 사람이 (잘은 모르지만) 아마 50%일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충분한 식량이 없고 그것이 제 관점에서는 재앙입니다.

신자유주의자로 유명한 하이에크는 탈국가화된 화폐라는 생각을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해 하는 것은, 화폐가 탈국가화되어 모든 사람이 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봐요, 이것이 발렌틴-코인입니다, 사용해보세요’라고 말할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요? 무슨 일로 그러시죠?’라고 말할 거구요. 그러나 예를 들어 베를린 시장이 베를린-코인을 발행한다면 사람들은 실제로 그것을 사용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베를린 시에 힘이 있음을 의미할 것이고 화폐 주조로 얻는 이익은 실제로 베를린으로, 지방자치단체로, 작은 마을들과 가난한 시골로 돌아갈 것입니다. 지역의 화폐로 실험하기 시작할 경우 이것은 그 지역사회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 멋진 프로젝트가 더 광범위한 맥락에 가져올 수 있는 전환과 관련하여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입니다. 지역화폐들이 수백 년 동안은 아니더라도 수십 년 동안 존재했지만 그것은 지금까지도 대부분 불법이었는데, 그러다가 블록체인이 등장했습니다. 블록체인은 효력을 정지시키기 불가능한 화폐를 발행했는데, 이는 블록체인이 매우 탈중심화되어 있어서 어떤 정부나 권력도 거기에 실제로 개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가들이 바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암호화폐를 합법화하고 규제하는 것입니다. 국가들은 이것이 없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아차렸고 그래서 그것을 시험하고 통제하는 규칙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암호화폐는 합법적이 되고 우리가 실제로 그것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이것이 올해 들어와서 제가 흥미롭다고 느낀 점입니다. 규제자들과 국가들이 지역화폐가 실제로 존재하기 위한 법적 틀을 만들고 있다니 말입니다. 저는 지역화폐를 관철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로비스트입니다. 지역화폐의 관철이 제가 이곳에 있는 이유이고, 제가 보고 싶은 정책 변화입니다.

인테
하지만 지근에서 <쏘셜코인>은 블록체인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제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당신은 자신의 고유한 목적을 위한 특수한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발렌틴
공동체는 그때그때 사용가능한 테크놀로지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가령 뵈어글(Wörgl)—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유명한 사례죠—의 기술은 ‘우리가 지폐를 발행하고 그 다음에 우리가 스탬프를 찍는다’였습니다.[정리자―1932년 오스트리아의 도시 뵈어글에서 대공황에 대응하여 지역화폐(지폐)를 발행했다. 이 지폐는 화폐소지자들이 빨리 사용하도록 자극하기 위해 매달 1%의 가치가 상실되도록 고안되었다. 이 지역화폐는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오스트리아의 다른 도시들도 유사한 실험들을 계획했다. 이 지역화폐는 1933년 말 행정법원에 의해 금지되었다. 텍스트에서 “스탬프”는 지폐에 찍는 도장을 가리킨다. (첨부한 사진 참조) 첨부한 사진은 자유이용저작물이며 그 출처는 https://en.wikipedia.org/wiki/W%C3%B6rgl#/media/File:Freigeld1.jpg이다.] 그때 서비스 제공은 중앙집권화되어 있었고 그 핵심은 당신이 서비스 제공자에게 가서 지폐를 원장에서 삭제하면 화폐의 효력이 정지된다는 것입니다. 블록체인은 추적하기가 불가능하고 효력을 정지시키기 불가능하게 만든 테크놀로지일 뿐입니다. 탈중심화된 화폐가 이렇듯 기술로 작동하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저는 블록체인 자체의 힘을 믿지 않습니다. 많은 지역화폐들과 다양한 토큰들이 있는 세상이 오면 우리는 열광하겠지만, 여기에 블록체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역화폐를 금지해온 규칙을 깨기 위해서는 블록체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우리를 신뢰하고 우리의 파트너들을 신뢰하며 얼굴을 아는 사람들을 신뢰하고 인간을 신뢰한다면, 블록체인이 필요 없습니다.

인테
그러면 당신은 블록체인의 유무와 무관하게 열린 공간이 창출된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우리는 지금까지 실질적인 혜택을, 사회적인 맥락을 다루었는데요, 이제는 당신들의 가장 유토피아적인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워크숍에서 당신들은 당신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무엇이 당신들을 걱정스럽게 만드는지에 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미래에 무엇이 가능할지,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원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미래의 지평 위에 있는 이 지점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어떤 것이겠죠.

발렌틴
유토피아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문제에 아주 많은 측면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좋아합니다. 일국적 수준에서 저는 부유세와 보편적 기본소득의 광팬입니다. 국제적인 수준에서 세계정부가 있다면, 그리고 보편적 기본소득으로서 재분배되는 전지구적인 부유세가 생긴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 될 것입니다.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 금융 시스템의 추세가 부유세와 보편적 기본소득 덕분에 평등 쪽으로 역전될 수 있습니다. 인간 사회가 그것으로부터 전적으로 혜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화폐 로비스트의 관점에서 저는 안전한 법적 환경을 갖고 싶습니다. 저는 법 문제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만, 이 문제는 여전히 매우 복잡하군요. 우리는 테크놀로지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제 생각에 법적 문제가 지역화폐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크게 미흡한 사안입니다. ‘당신에게 지역화폐가 있고 그것이 백만 파운드 미만이면 우리는 그것을 규제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넘으면 우리가 규제할 것이다’와 같은 구조가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정치로부터 요구하는 어떤 것입니다.

인테
홀리오는 미래 정부에 관해 이와는 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겠죠?

홀리오
어려운 문제죠. 이것은 정치경제와 많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블록체인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고 법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테크놀로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의 실제적인 핵심은 힘, 즉 경제적 힘과 정치적 힘(권력)과 관련된 문제들입니다.  법 문제는 매우 재미있는데, 이는 오늘날 법적으로는 국가들 말고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체가 민간은행들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은행 면허를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데, 이는 당신이 그들의 자산을 처리할 권리가, 그들의 노동을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그럼으로써 이 불평등한 권력구조들을 창출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저는 국제적인 수준에서 부유세와 보편적 기본소득은 놀라운 것이라는 발렌틴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제가 민주주의적인 관점에서, 직접 민주주의적인 관점에서 실천적으로 생각할 때 그곳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은 화폐를 민주화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화폐를 영토로 본다면, 우리가 화폐를 민주화한다고 할 때 우리가 하는 일은, 지역적으로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다양한 생산자들 사이에서 경제적 관계, 정치적 관계, 생태적 관계를 재(再)지역화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해서 당신은 권력의 실제적인 탈중심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 즉 권력의 탈중심화가 우리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써클즈>에서 우리는 다음의 네 가지 원칙에 관해 이야기 합니다. 로컬리즘(전지구적 문제의 지역적 해결), 권력의 탈중심화, 지속가능성(관계들을 더 지역적으로 묶고 더 상호의존적인 방식으로 서로 관계를 맺는 방법들을 찾는 것) 그리고 민주적인 연합주의가 그것입니다. 민주적인 의회들이 서로 연합할 수 있지만 정치적 힘은 항상 국민들에게 있습니다. 이것은 그 규모를 확대해야 할 매우 실천적인 메커니즘이며, 이렇게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실천적인 유토피아일 것입니다.  화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관련됩니다. 화폐를 넘어서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삶의 민주화입니다. 이것은 권력의 문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권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가 권력으로 변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부를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 많은 재앙을 일으킨 사람들이 많은 권력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치적 힘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조직화된 대중들을 통해서이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구축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인테
제가 채팅을 읽어봤는데 여기에 사회적 재생산에 관한 질문이 있습니다. 지역화폐와 보편적 기본소득이 어떻게 우리가 창출하고자 하는 사회에서 자리를 잡나요? 어떤 가치들이 시스템에서 작동하는 토큰 형태로 재현됩니까? 그 기획은 어떻게 공동체와 공존합니까? 그것이 어때야 할지에 관한 생각들이 달라서 서로 경쟁한다면 어떻게 되죠? 그 과정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그리고 토큰 같은 아주 실질적이고 코드에 기반을 둔 어떤 것과 창출하고자 하는 사회와 같은 추상적인 문제를 어떻게 연결시키는지요?

홀리오
사회적 재생산의 측면에서 우리는 가족, 특히 여성들에게 많은 돌봄의 부담이 부과됨으로써 지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폭력이 또한 증가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기본소득은 많은 착취적인 관계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길입니다. 혹은 사람들이 자신을 돌보고 다른 사람을 돌보며 그들을 둘러싼 사회의 환경을 돌볼 수 있는 소득 기반을 갖게 해주는 것입니다. ‘온전한’ 기본소득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시간을 팔지 않고, 임금을 위해 자신을 임대하지 않고 삶을 살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어떤 것입니다.

오늘날 화폐 시스템은 생산영역에서 비롯합니다. 고용주가 노동자를 고용하고 그들은 일하러 갑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재생산할 수 있기 위해 그리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임금을 가정으로 가져갑니다. 커먼즈에는 화폐가 없습니다. 사회적 재생산이 번성할 수 있게 해주는 화폐-커먼즈, 바로 이것이 우리가 구축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커먼즈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페미니즘적 맑스주의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우리의 돌봄 실천들, 사회적 재생산의 실천들이 번성할 수 있는 가치체계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마존>과 대규모 식품기업들 같은 거대 기업들에의 의존을 통해 더욱더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에서부터 우리의 땅까지, 우리가 서로에게 하는 약속까지 우리가 지켜야 할 영토를 창출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인테
발렌틴 씨, <쏘셜코인>은 어떻습니까?

발렌틴
사회가 어떻게 실제로 작동하는지 그리고 화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핵심인, 홀리오가 내 마음에 그려준 큰 그림에 대해 생각하는 중입니다. 그러나 가치들의 문제로 한정하자면··· 저는 우리가 지근에서 사용하는 이 화폐—‘쏘셜 코인’—에 붙일 명칭을 찾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공통 화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전기차(앞으로 세 대를 구비할 예정입니다)와 전기자전거라는 공통재(커먼즈)가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단체는 이 공통재를, 이 전기 차량들을 지역민들에게 보급하길 원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급할 도구로서 화폐를 사용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실험중입니다. 첫 번째 아이디어는 자원봉사를 한 사람들에게 전기차에 사용할 수 있는 코인을 나눠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시행할 계획인데 이는 모든 인간이 이 공유자원을 소비할 권리를 동등하게 가짐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런데 커먼즈와 연관된 가치들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재산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유재산과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커먼즈의 가치를 어떻게 정의할 것입니까? 이것은 정말로 재미있는 질문입니다.

인테
커먼즈로서의 화폐라는 생각, 저는 이것을 좀 더 설명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홀리오, 몇 분이면 설명할 수 있겠죠? 돈은 보통 개인의 소유이기 때문인데···

홀리오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노동•토지•화폐라는 세 가지 가짜 상품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가짜 상품들로 생각하는 점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이는 이 세 가지가 항상 상품으로 존재한 것이 아님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시간, 노동, 몸이 항상 상품으로 존재한 것은 아닙니다. 토지가 항상 개인소유의 상품으로 존재한 것은 아닙니다. 가령 텃밭이 언제나 상품으로 존재한 것은 아닙니다. 화폐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폐는 부채이며 신용관계이고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입니다. 서로에게 하는 약속과 같은 유형의 사회적 관계입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과정을 통해 상품화되었고 개인 소유의 상품이 되었습니다. 맑스의 정의를 따른다면, 자본주의를 M-C-M′으로 정의할 것입니다. 화폐가 더 많은 화폐를 만드는 것, 화폐를 팔아 상품을 사서 그것으로 화폐를 더 많이 버는 것이죠.

가치를 나타내는 징표(토큰)의 사물화 또는 물신화가 발생합니다. 우리는 오늘날 이것을 화폐라고 부르는데, 화폐는 이자를 낳는 부채 등의 과정을 통해서 확장하고 우리는 이것을 성장 등등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것이 실제로 지구를 망치는 것입니다. 커먼즈를 희생하면서, 토지를 희생하면서, 우리의 몸을 희생하면서, 지구의 가치를 희생하면서 일어나는 이 물신의 증가, 화폐라는 신의 증가가 지구를 망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화폐의 상품화가 아니라 공통화(commonification)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민주주의의 문제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전부 공동소유자인 곳에서 어떻게 화폐를 창출할까요? 사유재산이 없는 곳에서, 화폐가 민간은행에 의해 소유되지 않는 곳에서, 화폐가 국가에 의해 소유되지 않는 곳에서, 화폐가 우리가 발행할 수 있고 주장할 수 있는, 실제로 공유자원인 곳에서, 자원의 유형을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곳에서, 우리는 어떻게 화폐를 창출할까요?

오늘날 우리는 이런 힘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기다리면서 우리의 실상이 무엇인지를, 지대(자산소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현재로서는 이것을 어떻게 할 힘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화폐의 공통화가 기본소득으로 주어질 때 우리 몸은 임금노동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고 상품으로서의 화폐 또한 해방시킬 수 있으며, 이 과정을 통해 토지를 탈상품화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화폐를 개인소유의 상품으로부터 공통재로 변형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현 자본주의적인 위기에 대안을 제공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오고 있는 주된 이론적 핵심입니다. 우리는 근원으로 가야 합니다. 화폐는 수메르의 지구라트[정리자―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전] 이후로 줄곧 지난 5천년 이상 동안 문제가 있었습니다. 모든 성직자들이 사람들을 채무자로 만들어서 속박상태에 묶어두었던 것입니다. 그 기나긴 역사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군산복합체로 죽 이어집니다. 미국 군대는 세계에서 오염을 제일 많이 발생시키며 미국 달러로 자금을 마련합니다. 민중이 화폐를 창출하는 힘을 되찾지 못하면 우리는 문제의 근원으로 가지 못할 것입니다.

인테
마무리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만 사람들이 녹화된 토론을 보고자 할 경우에 대비해서 앞으로 워크숍에서 여러분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발언할 시간을 각각 드리고 싶습니다.

발렌틴
워크숍의 제목은 ‘비정부기구(NGO)로서 지역화폐를 시작하는 법’입니다. 우리가 NGO로서 이 화폐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직접해보는 워크숍이 될 것입니다. 워크숍에서 저는 제가 지역화폐를 시작하면서 겪었던 모든 경험을 공유할 것입니다. 그리고 미리 알려드리는 바이지만 우리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멉니다. ‘이 발걸음을 뒤따르시면 지역화폐를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가 아닙니다. 저는 다만 제 경험을 공유할 것입니다. 저는 실천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워크숍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과 실제로 토론을 하고 싶고 배우고 싶습니다. 그들이 어떤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지, 그들의 프로젝트가 어떤 것인지 토론을 통해 알고 싶습니다.

홀리오
우선 저는 정치적 힘(권력)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고 <써클즈>가 교환과 상호의무의 측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감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화폐의 두 가지 측면에 대해 이야기 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저는 최근에 출판된 안내서를 죽 훑어볼 것입니다. 이 안내서는 <써클즈>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고 또한 오늘 제가 말한 몇 가지 원칙들을 설명하며 기본적으로 지역에서의 조직방법론을 제시합니다. 조직화는 생산자들과 상인들의 회로에서 시작해서 그들이 고용하는 노동자들로, 거기서 다시 공동체 전체로 나아갑니다. 이것은 매우 실천적인 작업이며 우리가 매달 마지막 일요일에 가지는 회의에서 하는 것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든 이 토론을 듣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함께하는 것을 환영합니다. 시작하는 법에 대한 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커머닝을 위한 다섯 가지 자율주의 원리

 


  • 저자  : Guido Ruivenkamp, Andy Hilton
  • 원문 :  Introduction to Perspectives on Commoning : Autonomist Principles and Practices
  • 분류 : 일부 내용 번역
  • 번역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커머닝’에 관한 여러 저자들의 글 모음집인 Perspectives on Commoning : Autonomist Principles and Practices(2017)의 “Introduction”(책 편집자인 Guido Ruivenkamp, Andy Hilton 집필) 가운데 한 절(‘Five autonomist principles for commoning’)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책에는 저작자표시비영리 4.0 국제(CC BY-NC 4.0)이 적용된다.

    키워드 : 커머닝(commoning), 커먼즈(commons), 커머니즘(commonism), 공통적인 것(the common), 자율주의(autonomism), 관점주의(perspectivism), 다중(multitude), 일반지성(general intellect), 대중지성(mass intellectuality)


우리는, 이 책에 모아 놓은 글들이 때로는 명시적으로 또 때로는 행간에서 제기하는 공동의 관심사들로서 다섯 개의 이슈 혹은 테마들을 뽑아볼 수 있다. 이 다섯은 자율주의적 관점에서 커먼즈(commons)에 접근하는 데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 다섯으로 충분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 목록은 커머닝(commoning)을 위한 다섯 가지 자율주의 원리를 짚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저자들은 일반적으로 현재의 거시적 사회경제의 광범한 맥락을 부각시킨다. 이들 가운데 몇 명은 인지자본주의와 비물질노동으로 특징지어지는 현 시기에 구체적으로 상응하는 이론들과 실천들에 주목한다(Boutang, 2002; Hardt & Negri, 2004: 109; Gorz, 2010). 각 저자들은 비록 상이한 이론적·실제적 수준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주제들에 상이하게 접근하지만 모두 자본의 작동을 나름으로 일정하게 비판하며 지배적인 신자유주의적 패러다임을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거부한다. 저자들은 현 시대의 종획 현상들이 보이는 개인주의적인 삶의 양태와 그에 수반되는 일반화된 상품화를 넘어서는 생각들과 기획들을 짚어내고 설명한다. 아주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에 실린 다양한 글들은 모두 내재적 접근법을 따르는데 이 접근법에서는 커머닝의 이론과 실천이 내부로부터 그리고 현 시기의 투쟁과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 탐구된다.

둘째, 일반적으로 저자들은 공유된 자원으로서의 커먼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피한다. 저자들은 오히려 커먼즈를 사회성의 새로운 형태의 창출로 인식한다. 커먼즈를 살기·일하기·사유하기·느끼기·상상하기의 새로운 집단적 실천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 실천은 현재의 자본주의가 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다양하게 종획하는) 형태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저자들은 일반적으로 커먼즈를 사적 혹은 공적 통치체제에 의한 규제와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물(재화)로 간주하지 않으려 한다. 실로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라는 현재의 고전적인 대립이 가지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이분법은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심지어 참조되지도 않는다. 커먼즈는 오히려 사회변형으로서 그리고 심지어는 사회변형의 지렛대로서, 인지자본주의의 협동적이고 소통적인 생산형태들 내에 서로 연결되어 있는 기회들로서 인식 된다. 이것들은 다시 실제적 사회적 관계들의 파열을 (균열을)(Holloway, 2010) 통해 드러나거나 가능하게 되며 자본주의적 생산 및 소비의 관행들에 대한 대안들의 발전을 통해 실현된다.

셋째, 커머닝의 실천을 통한 사회변형을 이렇게 탐색하는 것은 커머닝에 대한 이론적 개념화가 객관주의적 접근법이 아니라 관점주의적 접근법을 통해 정식화되는 비전과 제시 방식을 함축한다. 관점주의적 접근법이란 지식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정치적인 것이 구축되는 사회적 맥락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들과 기획들의 탐색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접근법이다. 실제적인 것을 넘어서 가능한 것을 찾기에 집중한다는 이러한 생각은 관점주의적 지식의 탐색자들로 하여금 실제적 효력을 가진 진실들을 추구하도록 이끈다(Negri, 1991; Virno, 2004). 말하자면 가능한 사회변형을 위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실천들에 대한 통찰을 발전시키도록 이끈다. 따라서 경험적 서술은 추상적으로 분리된 것(객관적 추상으로 관념화된 것)으로 상상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관점에 의해 결정되는 의도와 직결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특히 다중의 주체적 관점에서 사회변형의 실천과 커머닝의 투쟁 및 실천을 본다. 다중은 서로 상호작용하며 행동능력을 발휘하는 개인들(특이성들)의 집단적 주체성으로서 인식된다. 다중은 특히, 확장하는 인지자본주의가 행하는 종획과 강탈에 맞서며 실질적인 대안들을 구축할 기회를 추구하는 집단적 주체성으로서 인식된다. 이 다중 개념이 자율주의적 관점주의의 준거로서 사용된다. 이 관점주의에서 공통적인 것은 자본에 대한 대안으로서 발전된다. 정말이지 우리는 이 책에 제시된 여러 생각들이 우리의 일상적 생활 조건에서 커머니즘적 실천이 이루어지는 사회로의 이행을 실현할 가능성들을 성찰하고 일궈내는 일을 촉발할 수 있었으면 한다.

더 커머니즘적인 미래를 위해 사회를 변형하는 다중의 힘을 이렇게 추구하는 것과 연관되어 이 책에 실린 글들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넷째 테마는 삶정치적 생산으로 특징지어지는 현 시기에 대안적인 삶의 상황과 일하기의 상황을 창출하고 자율과 저항을 유지할 수 있는가?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이해하려는, 저자들 전체에 걸쳐서 보이는 노력이다. 그러한 변형을 실현하는 다중의 구성적 힘에 관하여 두 가지 대립되는 입장을 짚어낼 수 있다. 물론 그 중간에 해당하는 많은 입장들이 출현하고 있지만 말이다.

하트와 네그리가 표명했고 이 책에 글을 실은 다양한 기고자들이 참조하는 더 낙관적인 첫째 비전에 따르면, 지식 생산의 증가된 공통성과 자율적 노동의 내재성으로 인하여 비물질노동과 다중이 자본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조건들이 출현한다. 우리가 자동화·정보·소통(이는 삶정치적 생산의 토대로서 점점 더 네트워크들 안에서 네트워크들을 통하여 협동적으로 발전하고 비물질노동에 의하여 형성되고 관리되며, 그 내에서 노동자 자신들이 생산수단의 담지자가 되었다)으로 특징지어지는 새 시기에 진입함에 따라 이 네트워크들 및 그에 따른 생산 수단들은 더 이상 자본에 의해 제공되지 않고 노동 내에 머물러 있게 된다. 이 비전에서는 이제 바로 산 노동과 그 속성들이 가장 중요한 발전의 힘이 된다. 이 힘은  일반지성이 아니라 포스트포디즘 시기 노동자들의 대중지성을 나타낸다. 이는 실제적으로 지식·아이디어·소통의 생산이 노동의 내부에 있고 자본의 외부에 있는 협동 형태들을 통해 일어남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종획을 조직화하고 노동이 생산한 부를 전유하려는 시도들을 내적으로 붕괴시킨다. 따라서 커머니즘적 미래가 노동의 자율성과 협동성의 내재성을 통해서 천천히 실현되고 있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이는 더 이상 자본의 통제기술과 전략에 귀속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다중의 해방을 위한 조건을 제공하기도 하는 것이다.

둘째 비전은, 인지노동이 점점 더 자율적이 되어 더 이상 자본의 지배를 돕지도 않고 자본의 지배 아래 놓이지도 않게 되는 해방의 궤적이 임박해 있다는 이러한 생각을 거부한다. 생산이 점점 더 협동적이고 소통적인 형태를 띠기 때문에 인지노동의 자율성이 점점 증가한다는 이런 생각 대신에 이 둘째 비전은 반대되는 궤적에 주목한다. 즉 특히 인지노동의 정신과 욕망을 통제하는, 그 영혼을 통제하는 새로운 정보 및 소통 테크놀로지 덕분에 자본측이 인지노동 시대의 삶, 일, 사회적 심리를 통제하는 힘이 증가한다고 보는 것이다(Berardi, 2009). 따라서 자본이 인지노동에서 가치를 추출하는 것은 포디즘적 생산에서처럼 특정의 착취 영역에 더 이상 국한되지 않으며 천천히 우리의 삶 전체를 포괄하고 채우고 이끌고 식민화한다. 기술-사회적 지배의 대상이 된 것은 인간자본으로서의 노동만이 아니라 욕망으로서의 인간 전체라는 것이다. 포획된 것은 바로 이것, 즉 사회적 리비도 그 자체와 그것이 표현되는 모든 방식(지성·상상·사회성 등)이다. 이 비전에서 자본이 인간의 욕망을 형성하는 정보 및 소통 테크놀로지를 통해 인지노동에 발휘하는 힘은 불가역적으로 보이며, 제국의 권력망을 돌파하는 다중에 기반을 둔 낙관적 비전의 실현을 막는다(지금은 간헐적인 승리만이 가능하며 이 승리들은 안전밸브 메커니즘처럼 작동할 수 있을 뿐이다).

비록 명백하게도 훨씬 더 황량하지만 이 둘째 비전이 모든 행동을 부정하거나 인간활동의 자율성과 창조력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필요는 없고 그렇게 해석되어서도 안 된다. 이 둘째 비전은 오히려, 욕망의 맥락을 더 잘 짚어내고 그럼으로써 정동·아이디어·상상의 영역들과 같은 다양한 심리 영역들을 지배하는 타율적인 기술 권역들(정보·소통·바이오테크놀로지의 영역들)이라는 실제적 맥락 속에서 이 자율성이 형성되는 방식들을 더 잘 구분할 수 있도록 적절한 깊이를 가진 반응을 끌어내고자 하는, 힘이 좀 많이 들어간 호소로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다중의 저항 및 자율성과 이에 대한 분석을 재혁신할 수 있는 의식을 최소한 가지자는 호소이다. 따라서 이 둘째 비전은 새로운 대중지성이 다시 발전하여 (현금의 지식 경제의 하이테크 영역들의 일반지성과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재창출 할 수 있는 길들을 찾아보자는 호소로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비전들과 해석들 그리고 적극적인 결과들을 낳을 잠재력을 이렇게 선택하는 것은 몇몇 기본적인 문제들을 함축한다. 다중은 새로운 공통성들이 수립될 사회적 공간들을 생성할 수 있는가? 인지자본은 그러한 기획들을 어느 정도로 흡수할 수 있고 대중지성을 자신의 구조들 안에 어느 정도로 봉쇄해 놓을 수 있는가? 이 책에 실린 글들 전체에 걸쳐서 보이는 것은 비결정론적 테제일 것이다. (인지노동의 힘의 내재적인 강화와 함께, 그러나 또한 자본에 의한 그리고 자본을 위한 전복 및 조작과 함께) 자본에 기반을 두지 않은 대안적인 발전의 기회들이 생겨나리라는 것이다. 이 기회들을 잡을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다. 사실 이는 자율을 정치적 힘으로 구현하는 것에 발맞추어 선택과 가능성 즉 미래의 다수성을 강조한다. 이른바 후기 자본주의 시기에 인지노동이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해보는 두 입장인 유토피아론과 디스토피아론은 이렇듯 현재의 그리고 앞을 내다보는 참조점들의 두 극단을 제공할 수 있다.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우리는 커머닝을 위한 가능성들을 탐색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다섯째 테마로 이어진다. 자본(인지자본의 모순)과 (이후에는 변이될) 국가 내에서 혹은 상품의 세계 외부(커먼즈 내에 실현될 것)에서 혹은 양쪽 모두 다(안과 밖)에서 전개되는, 다중에 의한 다양한 커머닝 실천과 사회적 공간의 창출에 대한 관심이 그것이다. 다중의 커머닝 실천의 관점에서 이 세 위치들을 주목하고 전략적으로 고찰할 때 그 전체적 효과는 공통적인 것의 결합된 비전의 출현(또한 개방된 다원성의 출현)이며 여기서 그 축적된 효과는 그저 전적인 파열이나 탈출이 아니라 파열을 포괄하면서 자유로운 공간들을 확대하는 지속적인 전개과정으로 나타난다.

이는 점진적으로 세상을 바꿔나가면서도 혁명적 계기를 요구하는, 특정의 단기적 성공을 가치화하면서도 거기에 의존하지는 않는 그러한 과정이다. 이는 과정으로서의 진보이며, 자본에 적대적이고 자본과 양립 불가능하지만 또한 자본 안에서 발전하고 그래서 자본에 의해 조건지어진다. 여기서 커머닝은, 특수한 맥락에서 설계되고 사람들이 커먼즈를 드나들고 자본주의/국가주의의 맥락들(환경, 회로)을 드나들면서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새로운 실천으로서 나타난다. 이러한 실천이 이 책의 글들이 고찰하는 커머닝 활동과 분석들의 범위를 나타낸다.

 

References [위에 번역된 부분에 해당하는 것만 발췌함—정리자]

Berardi, F. (Bifo) (2009). The Soul at Work: from Aleination to Autonomy. Los Angeles, CA: Semiotext(e).
Boutang, Y. M. (2002). L’eta del Capitalism Cognitive. Innovazione, proprieta e Cooperazione delle Moltitudine. Verona: Ombre Corte.
Gorz, A. (2010). The Immaterial. Knowledge, Value and Capital. Calcutta: Seagull Books.
Hardt, M. and Negri, A. (2004). Multitude. War and Democracy in the Age of Empire. New York: Penguin Press.
Holloway, J. (2010). Crack Capitalism. London: Pluto Press.
Negri, A. (1991). Marx beyond Marx. Lessons on the Grundrisse. Brooklyn, NY: Autonomedia/Pluto.
Virno, P. (2004). A Grammar of the Multitude. Los Angeles/New York: Semiotext(e).

 

[참고]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Introduction 
Guido Ruivenkamp and Andy Hilton

1 The Prefigurative Power of the Common(s)
  Mathijs van de Sande
2 Realising the Common: The Assembly as an Organising Structure
  Elise Thorburn
3 Instituting the Common: The Perspective of the Multitude
  Sonja Lavaert
4 Insolvency/Autonomy: What is the Meaning of Autonomy in the Semiocapitalist Age?
  Franco Bifo Berardi
5 The Conditions of the Common: A Stieglerian Critique of Hardt and Negri’s Thesis on Cognitive Capitalism as a Prefiguration of Communism
  Pieter Lemmens
6 Grounding Social Revolution: Elements for a Systems Theory of Commoning
  Massimo De Angelis
7 Commodification and the Social Commons: Smallholder Autonomy and ‘Rurban’ Relations in Turkey
  Murat Ozturk, Joost Jongerden, Andy Hilton
8 The Square as the Place of the Commons
  Ruud Kaulingfreks and Femke Kaulingfreks
9 Transition towards a Food Commons Regime: Re-commoning Food to Crowd-feed the World
  Jose Luis Vivero-Pol
10 Seeds: From Commodities towards Commons
  Guido Ruivenkamp
11 Peer-commonist Produced Livelihoods
  Stefan Meret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