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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의 전쟁범죄들

 


  • 저자  : Noam Chomsky
  • 원문 : Noam Chomsky – The Crimes of U.S. Presidents https://www.youtube.com/watch?v=5BXtgq0Nhsc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2003년 미국의 언어학자이자 정치평론가인 촘스키가 한 대담에서 2차 대전 후 미국 대통령들의 저지른,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들을 죽 열거하는 부분(유튜브 동영상)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질문자가 누군지는 동영상의 정보에 들어있지 않다. 처음에 ‘뉘른베르크 원칙’을 언급하면서 시작하는데, 뉘른베르크 원칙은 전쟁범죄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결정하는 일단의 가이드라인들이다. 이 원칙들은 2차 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정의궁에서 진행된 나치당원들의 재판의 기저에 깔려있는 법적 원칙들을 법제화하기 위해 유엔의 국제법위원회에 의해 작성되었다. ‘뉘른베르크 원칙’의 제6원칙은 다음과 같다. 

    제6원칙 : 아래의 범죄는 국제법상의 범죄로 처벌된다.

    (a) 평화에 반한 범죄
    (1) 침략전쟁(a war of aggression) 또는 국제조약, 합의 또는 확약에 위반되는 전쟁을 계획, 준비, 개시, 수해하는 행위
    (2) 앞의 (1)에 언급된 행위의 완성을 위하여 공동의 계획 또는 음모에 가담하는 행위
    (b) 전쟁 범죄
    목적을 불문하고 점령지의 민간인에 대한 살인, 학대 또는 노예노동을 위한 강제이주, 전쟁포로의 살인 또는 학대, 공해상에서의 민간인의 살인 또는 학대, 인질의 살해, 공공 재산 또는 사유재산의 약탈, 도시 또는 촌락의 무분별한 파괴 또는 군사적으로 불필요한 초토화 행위를 포함하여 전쟁법과 전쟁 관습을 위반하는 여타 행위
    (c) 인도에 반한 범죄
    평화에 반한 범죄 또는 여타 전쟁범죄의 일환으로 또는 그와 연결되어 민간인에게 저질러진 살인, 절멸, 노예화, 강제이주 및 여타 비인도적 행위 또는 정치적, 인종적, 종교적 이유에 기인한 박해
    이상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udfks7&logNo=220136045897&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참조.

 


문: 진행자) 
뉘른베르크 원칙에 따르면 2차 대전 후의 대통령들이 범죄자일 수 있다고 말하셨는데요?
답: 촘스키)
십중팔구 맞습니다.

문)
어떤 죄를 지었는지 빨리 살펴볼까요?
답)
아이젠하워는 이란의 보수적인 민족주의 정부를 군사쿠데타로 전복시켰습니다. 그는 과테말라의 처음이자 마지막 민주정부를 군사쿠테타와 침공으로 전복시켰습니다. 이란에서는 그 결과로 25년 동안의 잔인한 독재가 들어섰고 79년에 결국 전복되었습니다. 과테말라에서는 그 결과로 대대적인 악행이 저질러졌으며 거의 5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알려진 일입니다만, 인도네시아에서 그는 쿠바와 니카라과 때까지 전후 시기의 주요 비밀테러공작을 실행했습니다. 이는 인도네시아를 분열시키고 대부분의 자원이 몰려있는 외곽의 섬들을 탈취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당시에 위협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인도네시아가 민주화될 가능성을 붕괴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매우 자유롭고 개방되어 있어서 빈자의 정당이 참여하는 것이 허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입지를 확보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아이젠하워는 외곽의 섬들에서 군사반란을 지원하고 부추겼습니다. 이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은 기소되어야 할 범법들입니다.

문)
케네디는 어떤가요?
답)
케네디는 최악의 대통령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장 먼저 거론할 것은 월남 침공입니다. 그 이전에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1954년에 정치적 화해를 봉쇄하고 라틴아메리카 스타일의 테러 국가를 수립한 바 있는데, 이 테러 국가가 아이젠하워 임기 말에 6만 혹은 7만 명쯤 되는 사람들을 살해했습니다. 이에 대한 반응이 일었는데 케네디가 이해하기로 이 반응은 내적으로 통제될 수 없는 것이었고 그래서 침공했던 것입니다. 1962년에 남부에서 수행된 폭격의 3분의 1이 미공군에 의한 것이었습니다.[정리자―공식 역사에서는 미군이 1964년 8월부터 개입한 것으로 되어 있다.] 월남 휘장을 단 미국 비행기들이고, 미국 조종사들이죠. 케네디는 네이팜탄을 승인했습니다. 그는 농작물을 파괴하는 데 화학무기들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강제수용소나 다름없는 곳에 몰아넣는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정당한 이유 없는 침략이죠. 쿠바의 경우 그것은 대대적인 국제테러리즘 작전이었습니다. 이는 세계의 파멸을 가져올 뻔했고, 미사일 위기를 낳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열거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기소되어야 할 범법들입니다.

문) 
존슨은요?
답)
존슨은 인도차이나에서의 전쟁을 확대하여 결국 3백만 혹은 4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도미니카 공화국을 침략하여 그곳에서 잠재적인 민주적 혁명으로 보였던 것을 봉쇄했으며 초기 단계에 있던 이스라엘의 중동지역 점령을 지지했습니다. 이 경우에도 우리는 전 세계를 돌며 사례들을 열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카터를 보세요.

문)
닉슨이 다음 순서입니다.
답)
닉슨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조차 없네요. 건너뛰어도 되겠어요.

문)
좋습니다. 그러면 포드는요?
답) 
포드는 대통령 자리에 얼마 안 있었지만,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침략을 승인할 만큼 오래 머물러 있기는 했습니다. 동티모르는 현대 시기에 그 어떤 것 못지않게 대량학살에 근접한 것이 되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동티모르 침략에 반대하는 척하면서도 비밀리에 지원했으며, 사실 그렇게 비밀스럽게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침략 직후에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유엔 안보리에서 이 침략을 규탄하는 대열에 끼었지만, 모이니핸(Moynihan) 주 유엔 미국대사가 친절하게도 우리에게 설명해주기로는, 그가 받은 지시는 유엔이 침략에 반대하여 취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완전히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 일을 상당히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으며 그 다음 문장에서는 “그 다음 몇 달 동안 약 6만 명의 사람들이 살해되었다”고 말하고는 그 다음 주제로 넘어갔습니다. 그가 말한 “몇 달”이란 처음 몇 달을 말합니다. 살해당한 사람은 나중에 필시 수십만 명에 이르렀을 겁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무기의 보이콧을 선언했지만 비밀리에 무기공급을 증가시켰으며 여기에는 대(對)반란용 장비가 포함됩니다. 이로써 인도네시아의 침략이 정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으로 재직한 짧은 시기에 이런 일이 있어났으며 이는 사실 중대하게 기소되어야 할 큰 전쟁범죄입니다.

문)
카터는요?
답)
인도네시아의 악행들이 증가하면서(1978년에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카터는 인도네시아로 흘러들어가는 무기의 양을 증가시켰습니다. 의회에서 인권 관련 제한을 부과하여―그 당시 의회에 인권운동이 있었습니다― 고급 무기가 인도네시아로 유입되는 것을 봉쇄했을 때 카터는 부통령 먼데일을 통해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미국의 스카이호크를 인도네시아에 보내서 대량학살에 가까운 사건으로 드러난 것(대략 인구의 4분의 1이 살해되었을 겁니다)을 완성하도록 했습니다.

중동에서 카터는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최고의 성과는 캠프데이비드 협정(Camp David agreements)[1978년 9월 17일]입니다. 이 협정은 미국의 외교적 승리로서 제시됩니다만 사실 이 협정은 외교적 재난입니다. 캠프데이비드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1971년에 이집트가 한 제안을 마침내 받아들입니다. 이 제안은 1971년 당시에는 미국이 거부했는데 이제 이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포함했기에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점에서는 더 나쁜 것이었습니다. 큰 전쟁들, 악행들 등이 벌어진 후에 이스라엘로 하여금 1971년의 이집트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 카터는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세계 전체에 대한 원조의 50% 이상으로 올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즉시 그 원조를 정신이 제대로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을 바로 그 방식으로, 즉 북쪽의 이웃을 공격하고(처음에는 1978년, 그 다음에는 1982년) 점령 지역의 통합성을 증가시키는 데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며, 우리는 계속 열거할 수 있습니다.

문)
레이건은요?
답)
이 사람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레이건은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에 의해서 무력의 불법적 사용(니카라과와의 전쟁에서 보인 국제테러리즘을 말합니다)으로 규탄을 받은 최초의 대통령입니다. 이것도 시작일 뿐입니다. 유엔 안보리도 두 개의 결의안에서 국제범죄의 규탄을 승인했는데, 둘 다에 대해 미국은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문)
부시 1세는요?
답)
파나마 침공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파마나인들에 따르면 파나마 침공으로 약 3천 명의 사람들이 살해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조사된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수치가 맞는지 아닌지 누가 알까요. 미국이 파나마를 침공한 것은 그 최악의 악행들에 걸쳐서까지 미국이 지원해준 바 있는, 말 안 듣는 폭력배 노리에가를 납치하기 위해서입니다. (노리에가는 플로리다로 데려와져서 대부분 CIA의 돈을 받고 저지른 범죄들에 대해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 일은 이유 없는 침략에 해당됩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 상세하게 말할 수도 있는데, 현실화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분명히 외교적 타결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부시 행정부는 외교적 타결을 고려하기를 거부했으며 언론도 단 하나의 예외인 롱 아일랜드의 <뉴스데이>(Newsday) 말고는 보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뉴스데이>는 전체를 속속들이 정확하게 보도했으며 미국에서 그렇게 한 유일한 신문입니다.

그래서 부시 행정부는 공격했으며 이 공격은 전시법 상으로 범죄에 해당하는 방식으로 수행되었습니다. 그들은 기반시설을 공격했습니다. 가령 누가 뉴욕시를 공격하면서 전력시스템, 하수시스템 등을 파괴한다면, 이는 생물학전이나 다름없습니다. 바로 이런 공격을 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경제제재 체제가 옵니다. 이는 대부분 클린턴 때의 일이지만, 부시 때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적게 잡아도 수십만 명을 살해했습니다. 한편으로 사담 후세인을 강화시키면서 말입니다. 여기서 클린턴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시작이지 결코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렇게 죽 열거할 수 있는데, 그 한 사례로 충분합니다. 다른 사례들이 많습니다만.

문)
부시 2세는요?
답)
클린턴 이야기를 더 합시다. 클린턴의 사소한, 아주 사소한 탈선 가운데 하나는 크루즈 미사일 두세 개를 수단에 보내서 의약공장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을 파괴한 일입니다. 첩보상의 실패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접한 유일한 것인, 독일 대사와 수단에서 현장연구를 하는 근동재단(Near East Foundation)의 지역 책임자의 추산에 따르면, 한 방의 미사일 공격으로 수만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는 매우 심각합니다. 만일 누군가 우리에게 그런 일을 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나쁜 짓으로 간주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열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동에서 클린턴은 지난 유엔 결의안들이 (그의 행정부의 말로는) “낡고 시대착오적인” 것임을 선언함으로써 시작했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더 이상 국제법은 없는 것이죠. 그런 다음에 평화프로세스라고 불리는 시기가 옵니다만 이 평화프로세스 동안 이스라엘인들의 정착―이는 미국의 납세자들이 돈을 지불하고 미국의 군사적 원조와 외교가 돕는 정착입니다―이 계속 증가했습니다. 극에 달한 때는 클린턴의 임기 마지막 해였습니다. 정착이 1992년 이래 최고 수준에 이르죠. 그러는 동안 점령 지역은 기반시설 프로젝트와 새로운 정착민을 갖춘 작은 지역들로 구획되었습니다. 이것을 뭐라고 부르는지를 모르겠는데, 여하튼 군사점령 아래 놓여있죠. 만일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전쟁범죄라고 부를 겁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는 싶은데··· [정리자―맨 마지막 말이 거의 들리지 않는데 자막 파일에는 ‘I don’t think we have to discuss.’(논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부록>

[가장 극적으로 미국 민중의 뒤통수를 오바마가 빠진 것이 아쉬웠던 차에(2003년의 대담이라서 2009년에 대통령이 된 오바마는 빠질 수밖에 없다), 비록 국제범죄의 맥락은 아니고 다른 맥락에서지만 촘스키가 오바마를 거론한 짧은 동영상 Noam Chomsky on Why ‘Obama Sold Out Working People Within Two Years’을 발견했기에 여기 그 내용을 정리해서 부록으로 달아본다.]

===

[촘스키]
시기마다 다릅니다. 많이들 언급하는 60년대를 예로 들어봅시다. 시민권 운동 이후 이슈들은 많지만 당시 큰 이슈는 인도차이나 전쟁이었습니다. 당시에 인도차이나 전쟁에 항의하는 대중운동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60년대 말 2-3년 동안에는 있었습니다. 내가 살던 (자유주의적 언론이 존재하는, 필시 미국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인 도시일) 보스턴에서는 1966년에도 공개적 시위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보다도 학생들에 의해서 과격하게 해산되었기 때문입니다. 굉장하죠. 뭐라도 움직임을 일으키는 것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1967에 돌파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다음에 엄청 커졌습니다. 불행히도 이 움직임은 70년대 초에 너무 일찍 사그라졌습니다. 물러나자마자 곧 반동이 잔뜩 몰려듭니다.

오바마의 경우에도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좌파에 속한 사람들 가운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좌파에 속해있다는 것을 잊고는 ‘좋아, 여기 언변이 뛰어나고 놀라운 마케팅 기술을 가진 멋진 친구가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이 필시 기억하겠지만, 첫 선거에서 그는 ‘베스트 마케팅 캠프’ 상을 받았습니다. 어떻든 좌파는 자신들이 그의 멋진 말에 귀를 기울이고는 ’좋아, 우리는 그를 믿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2년 내에 오바마가 노동자들을 너무나도 완전하게 배반하여 좌파는 오바마를 포기해버렸습니다. 이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 2년 동안에 일이 잘 될 수도 있었습니다. 의회는 오바마 편이었는데, 빠진 것 하나가 좌파의 행동이었습니다. 만일 좌파가 행동했더라면 오바마와 민주당으로 하여금 멋진 말들의 일부라도 실현하도록 압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압박을 거둬들이는 순간, 끝입니다. 이전의 상태로 바로 돌아갑니다. 이는 결코 해서는 안될 실수입니다.




‘트럼프 대 바이든’?

 


  • 저자  : Chris Hedges
  • 원문 :  The Politics of Cultural Despair (October 16, 2020)

    https://www.youtube.com/watch?v=GxSN4ip_F6M&list=TLPQMTcxMTIwMjDZLmYzc8ZbYQ&index=2

  • 분류 :  일부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크리스 헤지스가 올해 10월 16일(대선 18일 전)에 The Sanctuary for Independent Media (in Troy, NY)에서 한 강연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주류미디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미국의 현실이 강연 내용에 많이 담겨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공유하고자 소개한다. 강연이 제법 길고 질의응답도 있어서 내용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몇 번으로 나누어서 소개하기로 한다. 오늘 올리는 것은 ‘트럼프 대 바이든’이라는 대립구도의 허구성이 제시되는 부분이다. 강연의 원고는 https://scheerpost.com/2020/10/19/chris-hedges-the-politics-of-cultural-despair/에서 볼 수 있다.

[유튜브 동영상 19:35 지점]

트럼프가 바이든보다 더 위험한가요? 네. 트럼프가 바이든보다 더 무능하고 더 부정직한가요? 네. 트럼프가 열린 사회에 더 위협이 되는가요? 네. 그러면 바이든이 해결책인가요? 아닙니다!

바이든은 변화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그는 현재와 동일한 상태를 좀더 제공할 수 있을 뿐이며,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냉담과 혐오로 투표를 하지 않는 최대의 유권자층인 1억 명 이상의 시민들이 다시 한 번 투표장에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3일 실시된 미국 선거에서 전체 투표자가 1억 6천만 2천 명 정도라고 하니 전체 등록유권자 2억 3천 900만 명에서 이 수를 제하면 등록유권자 가운데 대략 7900만 명이 투표하지 않은 것이 된다. 헤지스가 예상한 것보다는 투표율이 높다.)) 이러한 유권자들의 사기저하는 의도된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증오의 대상의 반대쪽에 투표하는 것만이 허용됩니다. 지지하는 정당이 있는 미디어들은 한 집단을 다른 집단에 대립시키는데, 이는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2분 증오’(the Two Minutes Hate)의 소비자 버전입니다. 미디어들은 우리의 선호와 습성에 관한 상세한 디지털 분석의 도움으로 우리의 견해들과 편견들의 구미에 능숙하게 맞추고 이것들을 강화하며, 다시 우리에게 되팝니다. 그 결과로 우리에게 ‘맞춤 분노 패키지’가 주어지게 됩니다. 대중은 조작된 분열을 가로질러 말할 수 없게 됩니다. 정치는 조작된 정치 인물들을 중심으로 하는 싸구려 리얼리티 쇼가 됩니다. 시민들의 담론은 악담과 거짓으로 물듭니다. 그러는 사이에 권력은 문제 삼아지지 않고 도전받지 않은 채 그대로 놔두어집니다.

정치관련 보도는 스포츠 보도를 모델로 합니다. 세트는 일요일 미식축구 경기의 세트처럼 해놓았습니다. 앵커는 어느 한쪽 편이고, 각 팀에서 두 명씩, 4명의 해설자들이 나옵니다. 모니터에서는 득점이 계속 업데이트됩니다. 정치적 정체성들은 쉽게 소화될 수 있는 상투형들로 환원됩니다. 전술, 전략, 이미지, 선거기부금의 월별 누적기록, 여론조사가 끝없이 검토됩니다. 진정한 정치적 이슈들은 무시됩니다. 이는 전쟁의 언어, 전쟁의 이미지입니다.

이런 종류의 보도는 두 정당이 거의 모든 주된 이슈들에 대해서 완전히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립니다. 주요 이슈들은, 금융기업의 규제완화, 무역협상, 경찰의 군사화(1990년 이래 국방부는 74억 달러 이상을 8천 개에 달하는 연방 및 국가 법집행기관들에 이전하여 군사장비와 병기를 갖추도록 했습니다), 교도소 재소자들의 폭증, 탈산업화, 긴축, 프래킹(fracking) 및 화석연료 산업 지원, 중동에서의 중단 없는 전쟁, 부풀려진 군비예산, 기업들에 의한 선거 및 매스미디어 통제, 정부에 의한 대대적인 국민감시(정부가 하루 24시간 당신을 감시하면 당신은 자유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으며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등입니다. 이 이슈들은 모두 양당 모두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거의 논의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인구의 일부분을 다른 일부분과 대립시키는 것입니다. 적대를 부추기는 것이 뉴스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저널리즘 정신에 의해서 추동되지 않고) 시청률을 높이고 기업의 후원을 증가시키기 위한 마케팅 전략에 의해서 추동되는 엔터테인먼트입니다. 뉴스가 구현하는 분할구도는 기업수입의 흐름들이 서로 경쟁하는 구도입니다. 뉴스에 사용되는 틀은 프로레슬링에서 사용되는 단순화된 도덕극입니다. 미국에는 트럼프를 좋아하느냐 증오하느냐라는 두 개의 실질적 정치적 입장만이 존재합니다. 이것이 프로레슬링의 각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이든과 민주당에게 표를 던지는 것은 [트럼프가 싫어서 바이든에게 표를 던졌더라도] 무언가를 지지하며 던지는 셈이 됩니다. 바이든에게 표를 던진다면 당신은

  • 자신을 학대한 자들에게 맞섰던 애니타 힐(Anita Hill) 같은 용기 있는 여성들의 굴욕을 승인하는 셈이 됩니다.
  • 중동에서 중단 없는 전쟁을 기획한 자들을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인종분리적인 이스라엘 국가를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정부의 정보기관에 의한 대중의 대대적 감시를 그리고 적정절차(due process) 및 인신보호영장(habeas corpus)의 폐지를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복지의 파괴와 사회안전의 삭감을 포함한 긴축 프로그램들을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나프타, 탈산업화, 임금의 실질적 감소, 제조업 분야 일자리들 수십만 개의 상실, 멕시코, 중국, 월남 등 낮은 보수를 받으며 착취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로의 일자리 이전을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교사들 및 공공교육에 대한 공격과 연방기금의 영리적인 기독교 차터스쿨들(charter schools)로의 이전을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교도소 재소자의 수가 두 배로 늘고 형의 선고가 세배, 네 배로 증가하는 데, 그리고 사형에 처해질 범죄들이 크게 확대하는 데 표를 던지는 셈이 됩니다.
  • 유색인이 대부분인 가난한 사람들을 총으로 쏴 죽이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 군대화된 경찰을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그린뉴딜과 이민법개혁에 반대하는 셈이 됩니다.
  • 프래킹[수압파쇄법] 산업을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낙태와 재생산권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을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부유층이 교육의 기회를 받고 가난한 유색인들은 기회를 거부당하는, 차별적인 공립학교시스템을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기혹한 수준의 학자금대출금과 파산을 하더라도 그 부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은행업의 규제완화와 글래스-스티칼(Glass-Steagall)법의 폐지를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정리자―글래스-스티갈 법은 1933년 제정된 미국의 은행법 중에서 4개 항목을 가리키는 것으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은행업과 증권업의 분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 영리적인 보험업과 제약기업들을 찬성하고 보편적 건강보장을 반대하는 셈이 됩니다.
  • 모든 재량지출(discretionary spending)[정리자―행정부와 의회가 재량권을 가지고 예산을 편성․심사할 수 있는 지출]의 반 이상을 잡아먹는 국방예산을 찬성하는 셈이 됩니다.
  • 과두세력과 기업이 돈으로 우리의 선거를 사는 것을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상원의원으로 활동할 때, 세계에서 가장 큰 독립 신용카드회사이며 바이든의 아들 헌터(Hunter)를 고용한 MBNA의 이익에 비열하게 복무했던 정치가에게 표를 던지는 것입니다.

바이든은 중동에서의 전쟁들을 기획한 주요 인물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 전쟁에서 우리는 7조 달러 이상을 낭비했으며 수백만 명의 삶의 파괴하거나 멸절시켰습니다. 바이든은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트럼프의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고통과 죽음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제대로 기능하는 사법 및 입법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면 바이든은 제국전쟁과 기업에 의한 나라의 약탈을 기획하고 미국 노동계급을 배반한 죄목으로 (다른 공범자들과 함께) 법정에 세워졌을 것이지 이렇게 정치적·경제적 붕괴의 해결자로서 내세워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민주당과 이 당을 옹호하는 지유주의자들은 인종, 종교, 이민, 여성의 권리, 성정체성과 관련된 이슈들에 대해 관용적인 입장을 취하며, 이것이 그들의 정치인 척합니다. 그런데 이 이슈들은 집단들 사이의 관계와 관련된 윤리적인 이슈들입니다. 이것들은 중요하지만, 사회 전체적이거나 정치적인 이슈들이 아닙니다. 빌 클린턴과 민주당이 가령 예전의 복지제도를 파괴했을 때 전지구적 투기자들과 기업들로 구성된 계급이 경제의 통제권을 장악하여 민주당이 응원하는 척하는 바로 그 집단들의 삶을 파멸시켰습니다. 그 복지제도의 수혜자의 70%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오른쪽에 있는 자들은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을 악마화하여 희생시킵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민주당은 그 입장대로라면 유럽에서는 극우당의 되리라는 점입니다.) 문화전쟁이 현실을 가립니다. 두 당은 우리의 민주적 제도들을 파괴하는 데서 완전히 한패입니다. 두 당은 미국 사회를 마피아 국가로 재편성했습니다.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민주당, 2019년부터 연방 하원의장), 척 슈머(Chuck Schumer, 2016년부터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Mitch McConnell, 2007년부터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같은 정치가들의 힘은 기업의 돈을 선발된 후보자들에게 지원할 수 있는 데서 나옵니다. 제대로 기능하는 정치체제, 즉 기업의 돈이 퍼부어지지 않는 체제에서라면 이들은 권력을 잡지 못할 것입니다. 이들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가 ‘공통체’(commonwealth), ‘공공적인 것’(res publica)라고 부른 것, 혹은 민중의 재산을 전지구적 기업 과두세력을 위한 약탈과 억압의 도구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미국의 부를 약탈하고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으며 사법부, 미디어, 입법부를 왜곡시킨, 그리하여 시민의 자유를 박탈하고 금융 사기와 절도에 가담할 자유를 확보한, 부유하고 전능한 주인들에 의해 지배되는 노예들입니다.

팬데믹의 와중에서 우리의 도둑정치가들이 한 짓은 무엇일까요?

이들은 오바마와 바이든이 주관한 2008년 구제금융 이래 유례없는 규모인 4조 달러를 약탈했습니다. 이들은 우리를 희생시켜 실컷 먹고 배를 불리고는, 남은 부스러기들을 개인용 제트기, 요트, 고급아파트, 궁전 같은 저택의 창문 바깥으로 고통 받고 경멸 받는 대중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경기부양법안은 지원금이나 세금삭감의 형태로 석유회사들, 항공산업체들(이들만 500억 달러를 경기부양금으로 받았습니다), 유람선업체들에게 수조 달러를 건네주었으며, 부동산업체들에게 1700억 달러를 안겨주었습니다. 경기부양법안은 사모펀드, 로비그룹들(이들은 지난 20년 동안 정치가들에게 선거기부금으로 1억9100만 달러를 주었습니다), 정육업체들 그리고 미국에서 세금을 나내지 않기 위해서 해외로 이전한 기업들에게도 지원금을 주었습니다. 경기부양법안은 소기업들을 노동자들의 임금을 지불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시켜는 데 쓰여야 할 돈을 가장 큰 기업들이 집어삼키도록 허용했습니다. 이 법안은 경기부양 패키지 하에서 백만장자들에게 80%의 세금삭감 혜택을 주었으며 가장 부유한 자들이 평균 170만 달러에 해당하는 경기부양금을 받도록 허용했습니다. 경기부양법안은 또한 4540억 달러가 재무부의 환율안정기금에 할당했는데, 이는 트럼프 패거리들이 기업들에게 나누어준 막대한 비자금으로서 10대 1의 비율로 차입을 한다면 4조5천억 달러의 자산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이 법안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월가에 1조5천억 달러의 대출을 하는 것을 승인했습니다. 이 돈이 상환될 것이라고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억만장자들은 팬데믹 이후 4340억 달러만큼 더 부유해졌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부자인 제프 베조스(그의 기업인 아마존은 지난해에 연방소득세를 하나도 내지 않았습니다) 혼자만 팬데믹 이후 자신의 부에 거의 720억 달러를 추가했습니다. 동일한 기간에 5500만 명의 미국인들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정리자―강연 원고가 실린 사이트에 가보면 이 단락의 주요 항목마다 해당 자료로 가는 링크가 걸려있다.]

[34:00]




미국은 이제 시체다

 


  • 저자  : Chris Hedges
  • 원문 : America Is Now a Corpse (2020년 11월 5일)  https://www.commondreams.org/views/2020/11/05/america-now-corpse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크리스 헤지스가 Common Dreams에 실은 2020년 11월 5일자 글 “America Is Now a Corpse”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어조를 살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 첫 단락만 번역이다.) 여기서도 헤지스는 미국이든 한국이든 주류 혹은 준주류 미디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그는 ‘미국 제국 몰락의 예언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미국 현실의 어두운 측면을 지적하는 데 집중한다. 그 이유는 미국의 제도화된 체제 그 어디에도 희망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희망이 어디에도 없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사회운동에 희망이 있다고 본다. (Chris Hedges: Revolutions Only Happen Through Movements 참조) 다만 미국이 새로운 주체성을 구성하는 시민들의 운동의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후진국이라는 점―달리 말하자면 그 동안 신자유주의가 사회에 파고든 정도가 미국에서 매우 높았다는 점―이 그로 하여금 부정적 현실(제도화된 기성 체제)의 비판에 치중하게 만든 듯하다. 긍정적인 움직임이 왕성한 곳에서라면 부정적인 측면의 비판에 과도하게 집중할 필요가 없을 테니 말이다. 분단 상황에서 수십 년 동안 어둠 속을 기고 기어서 비로소 수많은 촛불들이 삶을 밝히는 곳에 도달한 우리로서는 헤지스가 대변하는, 미국 민중이 처한 상황이 잘 이해되고 또 그렇기에 안타깝다. 그러나 혹시 모른다. 이번 선거를 통해 제도 영역에서 일어날 변화를 짚어보느라고 바쁠 일반 미디어들로서는 도저히 보지 못하고 보려고도 않는 저 아래의 영역에서 이번 선거 기간 동안 미국 민중의 주체성 형성의 새로운 큰 흐름이, 그 큰 흐름의 맹아가 형성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항상 그렇듯이 아래로부터 보는 것이 중요하며 길게 보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이제 시체다

 

“끝났다. 선거가 끝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민주주의(capitalist democracy)가 끝났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비록 부유층의 이익을 위하는 쪽으로 치우쳐 있고 빈자와 소수자에게 적대적이지만, 적어도 점진적이고 점증적인 개혁의 가능성을 제공하기는 했다. 이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시체가 되었다. 상징과 수사(修辭)는 동일하다. 그러나 그 실체는 소수의 과두세력이 자금을 지원하는 공들인, 그러나 공허한 ‘리얼리티 쇼’이다. (바이든은 선거운동에 15억1천만 달러를 들였고 트럼프는 15억7천만 달러를 들였다.) 그 목적은 미국인들에게 마치 선택지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선택지는 없다. 장광설을 늘어놓는 트럼프와 언어 능력에 손상을 입은 바이든 사이의 공허한 대결은 진실을 가리도록 계획된 것이다. 과두세력이 항상 이긴다. 민중은 항상 진다. 백악관에 누가 앉아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메리카는 실패한 국가이다.”

미국의 ‘열린사회’를 살해한 세력들은 다음과 같다.
① 선거과정, 법원, 미디어를 사들인 기업과두집단(corporate oligarchs). 이들은 로비스트들을 통해 입법을 하여 미국 민중을 빈곤하게 만들고 자신들은 부와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을 얻고 있다.
② 쓸모없는 부단한 전쟁을 위해 국고를 탕진한 군사주의자들과 전쟁산업체들. 이들은 약 7조 달러를 탕진했으며 미국인들을 국제적 천민으로 만들었다.
③ 상여금과 보상 패키지를 수억 달러씩 받으며 일자리들을 해외로 보내고 우리의 도시를 폐허로 만들며 노동자들을 (지속적인 소득과 희망이 없는) 비참과 절망의 상태에 빠뜨려 놓은 CEO들.
④ 과학과 전쟁을 벌이며 인류가 멸종하든 말든 이윤을 추구하는 화석연료 산업체들.
⑤ 뉴스를 생각 없는 오락과 우리 당 응원하기로 바꾼 언론.
⑥ 대학으로 물러나서 정체성 정치와 다문화주의의 도덕적 절대성을 설교하지만, 다른 한편 노동계급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경제전쟁과 시민들의 자유에 가해지는 무자비한 공격에는 등을 돌린 지식인들.
⑦ 아무 것도 안 하고 말, 말, 말만 해대는 무기력하고 위선적인 자유주의 계층(liberal class).

가장 큰 경멸의 대상은 자유주의 엘리트들이다. 이들은 사회의 도덕적 중재자를 자처하지만 자신들이 수호한다는 가치를 그것이 불편해지는 순간 저버린다. 또한 자유주의 계층은 유럽에서라면 극우로 간주될 후보자와 정당의 치어리더들이며 검열자 기능을 한다. 자유주의자들은 바이든에 의해서 그리고 민주당 고위층에 의해서 조롱당하고 무시당하면서도, 바이든과 민주당을 비판한 글렌 그린월드(Glenn Greenwald) 같은 저널리스트들을 소외시키느라고 바빴다. 『인터셉트』(The Intercept)든 『뉴욕타임즈』든 자유주의자들은 민주당을 해칠 수 있는 정보를 무시하거나 그 신빙성을 떨어뜨렸다.

민주당과 그 자유주의적 지지자들은 미국을 휩쓸고 있는 절망을 염두에도 두지 않고 있다. 이들은 아무 것도 대표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 어느 것을 위해서도 싸우지 않는다. 법치의 복원, 보편적 건강보장, 프랙킹 금지, 그린뉴딜, 시민의 자유의 보호, 노조의 구축, 사회적 복지 프로그램의 보존 및 확장, 철거와 가압류의 금지, 학자금대출금의 탕감, 엄격한 환경통제, 정부일자리창출 프로그램 및 기본소득, 금융규제, 부단한 전쟁과 군사적 모험주의에의 반대―이 모든 것들이 다시 한 번 망각되었다. 이런 이슈들을 옹호했다면 민주당은 산사태를 겪었을 것이다. 민주당은 정치자금을 공급하는 기업들에게 전적으로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공동선을 키우고 기업의 이윤을 감소시키며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것은 민주당으로서는 불가능하다. 바이든은 아이디어들과 정책 이슈들을 전적으로 결여하고 있다. 마치 그와 민주당이 아메리카의 영혼을 구한다는 약속으로 선거를 휩쓸 수 있다는 듯이. 적어도 신파시스트들은 자신들의 정신착란적 확신들을 표현하는 용기라도 있다.

전통적 민주주의에서 자유주의 계층은 점진적 개혁을 가능하게 하고 자본주의의 최악의 과잉을 개선함으로써 안전밸브 역할을 한다. 그러나 또한 급진적 사회운동을 불신의 대상으로 만드는 공격견 역할도 한다. 자유주의 계층은 ‘파워 엘리트’의 강력한 구성요소이다. 변화의 희망과 가능성을 아니면 적어도 변화의 환상을 제공한다.

자유주의 엘리트들의 독재에의 투항이 권력 공백을 창출했고 그 공백을 투기자들, 전쟁으로 이익을 얻어내는 자들, 갱스터들, 킬러들이 채웠다. 이로 인해 파시스트 운동을 위한 문이 열렸고 이 운동은 자유주의 계층과 그들의 가치들의 불합리함을 조롱하면서 부각되었다. 파시스트들이 약속하는 바는 허황되고 비현실적이지만, 자유주의 계층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진실에 근거를 둔다. 자유주의 계층이 일단 기능하기를 그치면 억제하기 어려운 악들이 들어있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

트럼프주의의 질병은 트럼프가 있든 없든 정치체 안에 깊이 함입되어 있다. 트럼프주의는 자유주의자들이 ‘개탄스러운 자들’(deplorables)이라고 조롱하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가진 소외감과 분노의 표현이다. 이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획책한 것인데 이들은 이제 이 문제를 다루기를 거부하고 있다. 트럼프주의는 또한 백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백인들의 트럼프 지지는 실제로 감소하였다.

19세기 말 도스또옙스끼는 러시아의 쓸모없는 자유주의 계층의 행위가 피와 테러의 시기를 예고한다고 보았다. 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이 지지한 이상들을 지키지 못하자 불가피하게 도덕적 허무주의의 시대가 왔다. 『지하 생활자의 수기』의 주인공은 파산한 자유주의 이념들을 그 논리적 극단까지 몰고 간다. 그는 열정과 도덕적 목적을 피한다. 그는 합리적이다. 그는 자유주의적 이념들의 이름으로 부패하고 죽어가는 권력구조를 수용한다. 지하생활자의 위선이 러시아로 하여금 파멸을 맞게 했다면, 이제 그 위선이 미국을 멸망케 한다. 신념과 행동 사이의 치명적 분리가 핵심이다.

자유주의 계층은 기업이 권력을 시민들의 손에서 탈취했음을, 헌법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보장이 법의 명령에 의해 철회되었음을, 선거는 엘리트 지배집단이 연출하는 공허한 스펙터클에 불과함을, 미국 민중이 계급전쟁에서 지고 있음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기에 더는 현실에 상응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한다.

대중은 지배자가 효과적으로 권력을 관리하고 발휘하는 한에서는 정치적 억압을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역사가 풍부한 사례로써 보여준 것은, 일단 권력자들이 잉여적이 되고 무능력한데도 권력의 치장물들과 특권들을 틀어쥐고 있다면 무자비하게 폐기된다는 사실이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도 그랬다. 내[헤지스]가 『뉴욕타임스』에서 취재한, 이전의 유고슬라비아의 갈등에서도 그랬다.

독일 역사가 슈테른(Fritz Stern)은 그의 책 『문화적 절망의 정치』(The Politics of Cultural Despair)에서 독일에서의 파시즘의 상승은 자유주의의 붕괴의 결과라고 썼다. 사회에서 주변화된 사람들이 폭력, 문화적 증오, 개인적 원한에 중심을 둔 정치에 동원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노의 많은 부분은 정당하게도 자유주의적 엘리트들을 향해 있다.

그들은 자유주의가 근대 사회―부르주아적 삶, 맨체스터주의[맨체스터에서 일어난,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사회정치적·경제적 운동=자유방임주의], 물질주의, 의회, 당. 정치적 지도력의 부재—의 주요 전제라고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공격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자유주의에서 그들의 모든 내적 고통의 원천을 본다. 그들은 자유주의가 그들을 상상적인 과거로부터, 그들의 신앙으로부터 뿌리뽑았기 때문에 자유주의를 증오했다.

미국이 지금 그런 상태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건강관리제도는 국가적 보건위기를 다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건강관리 기업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종합병원들을 합병하고 폐쇄했으며 지역 공동체들에서 건강관리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했다. 일선 노동자들의 거의 반이 병가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고 약 4천3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고용주 제공 건강보험을 잃었다. 바이든과 민주당이 확립할 의도가 전혀 없는 ‘보편적 건강보장’이 없이는 팬데믹이 극성을 부릴 것이다. 12월까지 30만 명이 사망할 것이며 1월까지는 40만 명이 사망할 것이다. 팬데믹이 소진되거나 백신이 확보될 때쯤이면 어쩌면 수백만 명이 사망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팬데믹의 경제적 낙진인, 만성적 불완전고용과 실업—현재 직업을 구하기를 멈춘 사람, 일시해고되었으나 재고용될 전망이 없는 사람, 시간제로 일하지만 빈곤선 아래인 사람이 공식적 통계에 포함되면 20%에 가깝다—은 1930년대 이래 최악의 불황을 낳을 것이다. 기아자의 수는 지난 해 이후 이미 세 배로 증가했다. 충분히 먹지 못하는 아이들의  수는 지난해보다 14배 늘었다. 푸드뱅크들의 식사 제공 능력은 수요를 쫓아가지 못했으며 압류와 철거의 일시적 정지가 취소되어 3천만 명의 미국인들이 거리에 쫓겨나게 생겼다.

기업권력을 견제할 힘은 어디에도 없다. 불가피한 사회적 소요로 인해 국가는 그 주된 사회적 통제도구들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① 대대적 감시 ② 감옥 ③ 군대화된 경찰이 그 도구들이며 이것을 법체계가 지탱하고 있다. 법체계는 비판세력을 잔인하게 짓밟기 위해 인신보호영장과 적정 절차를 취소하기 일쑤다. 유색인들, 이주자들, 무슬림들은 토박이 파시스트들에 의해서 비난받고 공격의 표적이 될 것이다. 민주당에 대항하여 기업국가(corporate state)와 제국의 범죄들을 비판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침묵을 강요받을 것이다. 자신들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민주당의 이익에 복무하는 자유주의 계층의 무기력함은 널리 퍼진 배반감―바로 이 배반감으로 인해 투표자들의 거의 반수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저속하고 인종주의적이며 무능하고 부패한 대통령 가운데 하나를 지지하는 것이다ㅡ 에 땔감을 공급할 것이다. 기독교화된 파시즘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치장하고 있는 미국식 전제정치가 한 시기의 획을 긋는 미국 제국의 쇠퇴를 규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리 후기]

‘시체’의 이미지는 이미 로런스(D. H. Lawrence)가 『미국 고전문학 연구』(Studies in Classic American Literature, 1923)에서 사용한 바 있다. 로런스는 『모비 딕』(Moby Dick, 1851)의 피쿼드호가 침몰한 이후의 미국을 가설적으로 ‘사후효과’(post-mortem effect)로 본다. 피쿼드는 미국의 영혼의 배이므로 피쿼드호의 침몰은 영혼의 죽음을 상징한다고 보면 된다. 로런스에게서 사후효과란 사람들이 영혼이 없이도 에고(ego)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로런스는 ‘에고’를 ‘자아’(self)와는 달리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종획당한 자아, 즉 담이 둘러쳐진 자아라고 이해하면 된다. ‘종획된 자아’의 이미지는 소유적 개인주의의 본국인 미국에 매우 적절하다. 그러나 로런스는 미국의 부정적 측면만 보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가령 휘트먼에게서 ‘열린 길’(open road)이 제시되고 있음을 짚어낸다. ‘열린 길’은 미지(未知)로 향해있다. 영혼들이 미지로 향하는 이 ‘열린 길’을 함께 걸어가는 것이 삶이다. 삶에는 미리 정해진 성취될 목적이 따로 없고 여정(旅程)만이 있다. ‘열린 길’에서는 남녀관계든 동료관계든 사회적 관계든 오직 영혼의 인정에 기반을 둔다. 영혼들이 유일한 부(富)이다. 이러한 측면이 앞으로 미국에서 현실적으로 구현될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제도만을 보면 아니다. 일반적으로 제도란 끊임없이 개선되지 않는 한 사후효과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도의 바깥을 보고 제도의 아래를 봐야 한다. ‘열린 길’이라는 형태의 커먼즈가 어렴풋게나마 미국에서 형성되고 있는지를 포착하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