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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마음챙김 혁명–새로운 자본주의적 영성



우리는 현재 ‘마음챙김 혁명’(mindfulness revolution)의 한가운데 있다고 이 혁명의 지지자들은 말한다. 최근 ‘마음챙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존 카밧-진(Jon Kabat-Zinn)은 우리가 글로벌 르네상스의 직전에 있으며, 그래서 마음챙김은 “인종과 지구가 다음 몇 백 년을 견딜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른다”라고 까지 선언한다.

정말일까? 혁명이라고? 글로벌 르네상스? 그러한 찬란한 시기를 얻기 위해 정확히 무엇이 뒤집히거나 무엇이 급격하게 바뀌었는가?

내가 지난번 뉴스를 보았을 때 월가(Wall Street)와 대기업들은 여전히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사업을 했고, 특수 이익집단과 정치권의 부패는 여전히 저지되지 못했으며, 공립학교들은 극심한 재원 부족과 무관심으로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었다. 현재 부의 집중과 불평등은 기록적인 수준에 있다. 대량 투옥과 교도소 과밀수용은 새로운 사회적 질병이 되었고, 한편 흑인들을 향한 경찰의 무분별한 총격과 가난한 사람들을 악마로 만드는 일은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미국의 군사 제국주의는 계속 확산하고 있고 임박한 지구 온난화의 재앙들은 이미 그 끔찍한 머리를 들어 올리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마음챙김 ‘혁명’ 지지자들의 오만함과 정치적 순진함은 꽤 충격적이다. 선행을 베풀고 세상을 구하는 것에 너무 현혹되어 버린 이 진짜 추종자들에게는, 그 마음이 얼마나 진심이든지 간에, 엄청난 맹점이 있다. 그들은 너무나도 자주 마음챙김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자유주의의 명령을 강화하는 상품화된 도구적인 자조(自助) 기술로 환원되어왔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카밧-진과 그의 지지자들에 따르면, 사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은 정해진 틀 속에서 사람들을 행동하게 하는 그러한 정치·경제적 구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잘 알지 못하고 상황에 잘못 적응하는 개인들에게 있다. 행복하게 사는 것(복지)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고 스트레스를 개인적이고 병적인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명령11억 달러의 마음챙김 산업에 요긴한 것이 되어왔다.

이에 대응하여, 마음챙김은 대중들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새로운 개별적 자아의 종교로 떠올랐다. 이 종교가 주장하는 혁명은 거리에서나 집단 투쟁과 정치적 항의 또는 비폭력 시위를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고립된 개인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난다. 한 가지 반복되는 메시지는 ‘현재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정신적 반추에 빠지거나 정신이 산란해지는 것―이 우리의 불만족과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카밧-진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사회 전체가 최고 수준의 주의력 장애를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분명히 스트레스와 사회적 고통은 엄청난 불평등, 불법적인 대기업의 사업 관행 또는 정치적 부패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의 머릿속 위기의 결과라는 것이다. 카밧-진은 이것을 ‘생각병’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 그 자체가 본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경제 속에서 마음을 챙기지 못하고 회복하지 못하는 개인들이 오히려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챙김 상인들이 우리가 스스로 만족해하며 생각있는 자본주의자가 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상품을 가지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마음챙김, 긍정적 심리 그리고 행복 산업은 스트레스의 비정치화의 측면에서 공통적인 핵심을 공유한다. 스트레스는 당연한 것이라는 문화적 메시지를 바탕으로 깔고 있는, 스트레스는 개인적이라는 수사(修辭)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의심하게 할 만하다. 마크 피셔(Mark Fisher)가 『자본주의 리얼리즘』(Capitalist Realism)에서 지적한 것처럼, 스트레스의 사유화는 “공공 개념의 거의 완전한 파괴”를 이끌었다.

마음챙김 옹호자들은 스트레스는 우리의 마음과 몸을 황폐하게 만드는 해로운 영향이며 ‘마인드풀 업’하는 것(마음챙김을 향상시키는 것)은 각자에게 달려있다고 말한다. 이는 강력한 진실효과를 가지는 유혹적인 제안이다. 먼저, 우리는 스트레스 전염병이 존재하고, 그래서 그 병을 현대 시대에 단순히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길들어졌다. 두 번째로, 스트레스는 아마도 어디에나 있어서 스트레스를 해결하고 제어하며 신경 써서 조심스럽게 자본주의 경제의 노예 상태에 적응하는 것은 스트레스로 지친 주체인 우리의 책임인 것이다. 마음챙김은 이러한 취약성을 목표로 삼고, 그리고,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자기 스스로에게 힘을 부여하기 위한 선의의 기술로 보인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한 나라: 이념으로서의 스트레스의 문제』(One Nation Under Stress: The Trouble with Stress as an Idea)에서 다나 베커(Dana Becker)는 스트레스 개념이 “적어도 현상유지로부터 얻는 것이 가장 적은 사람들을 불리하게 하는 방식으로 사회적인 문제들을 개인적인 문제들로 환원하여 흐리거나 숨긴다고 지적한다. 사실 베커는 “현대인들의 삶에서 보이는 긴장이 사회적인 강요와 연결되어 있고 주로 사회·정치적 수단을 통해 해결될 필요가 있다는 믿음과는 대조적으로, 이런 긴장들은 주로 스트레스를 해소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개개인의 삶의 방식의 문제라고 여기는 현행의 믿음”을 설명하기 위해 ‘스트레시즘’(stressism)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스트레시즘’의 문화적인 전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마음챙김 운동은 하나의 과학적인 치료방법으로 열렬히 홍보되었다. 그러나 초점은 여전히 이른바 현대 문명의 ‘생각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기대되는 개인에게 정면으로 맞춰있다. 마음챙김을 훈련함으로써 우리는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흘러가는 법을 배우면서 숙련되게 우리의 광적인 ‘실행모드’를 더욱 조화로운 ‘존재모드’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챙김은 새로운 면역력이다. 즉 아마 우리가 현대 삶의 스트레스를 받는 중에도 잘 살도록 도와줄 수 있는 마음의 백신인 것이다. 팀 뉴튼(Tim Newton)이 만들어 낸 “스트레스 핏”한(스트레스를 잘 견디는) 개인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마음챙김은 종종 기량을 다지는 방법으로 광고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더욱더 생산적인 노동자가 되고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행위자가 되도록 정신 건강을 향상시키는 유용한 기술로써 알려져 있다. 가장 성공한 마음챙김 명상 앱인 <헤드스페이스>(Headspace)의 유명한 구절이 “마음을 위한 헬스클럽 회원”인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 운동의 핵심 격언은 ‘현재 순간에 존재해라’이다. 마음챙김의 열성적인 추종자들에게 사회·정치적 변화는 주의가 산만해진 대중들로 하여금 이 격언을 따르고 ‘마음을 챙기며’ 살도록 만드는 환상에 달려있다. 이 운동의 ‘현재 순간’이라는 물신(物神)은 역사적인 기억의 집단 망각을 촉진하는 동시에 유토피아적 상상을 효과적으로 미리 차단하는, 사회적 기억 상실을 촉진하는 관행이다.

이러한 ‘현재 순간’주의는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우리의 현재 순간을 더 견딜 수 있게 만들면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하나의 치료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현상유지를 견디는 능력은 현재의 마음의 방공호로의 영구적인 피난에 해당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대안에 대한 희망을 잃은 신자유주의적 주체들을 위한 살균된 완화제 역할을 하는, 일종의 ‘눈 가리고 아웅하기’ 식의 마음챙김인 것이다.

마음챙김 운동은 에릭 카즈딘(Eric Cazdyn)의 책 『이미 죽은 자들: 정치, 문화 그리고 질병의 새 시대』(The Already Dead: The New Time of Politics, Culture and Illness)에서 “새로운 만성질환”이라고 부른 것과 공명하며 작동한다. 카즈딘은 새로운 만성질환은 “현재를 미래로 확대하는데, 그 과정에서 종말의 힘을 감추고 마치 현재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그저 현재 순간에 있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다. 우리는 마음을 챙기며 삶으로써, 계속 진행 중인 그 어떠한 위기들도 연기하고, 피하고, 은폐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허위적인 마음챙김 혁명은 현재 순간의 취약함으로 도피함으로써 끊임없이 자본주의의 문제들에 대처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이 새로운 만성질환은 우리가 마음을 챙기며 현재 상태를 유지하도록 만든다. 이는 체념하는 정치적 수동성에 만족하도록 부추기는 잔인한 낙관론이다. 그렇게 해서 마음챙김은 개인적인 변화를 사회적 고통에 책임이 있는 역사·문화·정치적 상태에 대한 비판적 질문을 하는 것으로 향하게 하는 것 대신에, 유독한 구조를 관리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고 견디도록 하는 한 방법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마음챙김이 금지되어야 하고, 또 마음챙김이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속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속임수를 피하는 사회적이고 시민적인 마음챙김의 형태들이 출현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들은 분별없는 이탈 보다는 비판적인 사고를 촉진하면서 사회적 정의 활동과 관조적 탐색을 통합시킴으로써 생의학이 개인의 병리학에 초점을 맞추는 데서 벗어나고 있다.

이 분야의 혁신가들은 억압에 저항하는 비판적인 교육을 도입함으로써 마음챙김 교육 과정을 다시 쓰고 있다. 예를 들어, 베쓰 버릴라(Beth Berila)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특권을 해체하고 버리는 방법뿐만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마음속으로 억압을 받아왔는지를 드러내도록 돕는 마음챙김 방법도 발전시켜왔다. <이스트베이 명상 센터>(East Bay Meditation Center)의 선생님들과 함께 무심 패트리시아 이키다(Mushim Patricia Ikeda)는 유대와 마음챙김에 관련된 행동주의를 육성하기 위해 사회적 정의 문제들을 상호의존에 관한 부처의 가르침에 연결하는 많은 프로그램들을 개발했다. 그리고 영국의 <마음챙김과 사회 변화를 위한 네트워크>(Mindfulness and Social Change Network)는 사회·정치·환경적 문제들을 다루는 마음챙김 수련을 실험하고 있다.

불만족, 걱정, 스트레스가 단지 우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원인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 마음챙김은 저항에 불을 붙이는 연료가 된다.




축의 전환―트럼프의 쇠퇴, 녹색당의 부상 및 사회적 변화의 새로운 좌표

 


  • 저자  :  Otto Scharmer
  • 원문 : Axial Shift: The Decline of Trump, the Rise of the Greens, and the New Coordinates of Societal Change (2018년 9월 8일)
  • 분류 : 내용 정리
  • 옮긴이 : 민서

2018년 9월 7일에 있었던 미국 중간 선거가 미국이 좌파와 우파라는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라는 평가가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다. 하지만 오토 샤르머(Otto Scharmer)는 이 평가가 20세기 렌즈(즉 좌파냐 우파냐)로 21세기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와는 다른 시각으로 근본적인 축의 전환(axial shift)을 다루면서 정치적•경제적•문화적 공간의 좌표를 재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축의 전환은 지적 담론을 형성하는 좌표의 새로운 체계이다. 그에 설명에 따르면 미국의 중간선거는 물론 브라질•독일•이탈리아에서의 최근 선거 결과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갈등의 축은 더 이상 좌파와 우파 사이가 아니라 열린 쪽과 닫힌 쪽 사이에 있다. 그런데 이러한 축의 환은 정치에 국한해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며 경제 및 교육 체계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샤르머는 정치•경제•교육체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축의 전환—① 정치적 전환 ② 경제적 전환 ③ 교육의 전환—이 20세기의 전통적인 공적담론을 새로운 담론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적 전환>


그림 1 새로운 정치의 축

 

그림 1에서 가로축 방향은 20세기의 낡은 갈등선을, 세로축 방향은 부상하는 21세기의 양극성을 나타낸다. 가로축의 기초가 되는 차이는, 예를 들어 ‘좌파’는 정부 서비스를 늘림으로써 문제에 대응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우파’는 개인들의 주도권을 촉진함으로써 같은 쟁점에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세로축의 기초가 되는 차이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가 열림(개방) 대 닫힘(폐쇄)라고 부른 것으로, 도널드 트럼프와 새로이 선출된 브라질 대통령 자이르 볼소나루(Jair Bolsonaro)를 통해 이 ‘닫힘’(Closed)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 있다. 닫힘은 두려움•혐오•무지라는 세 요소를 증폭시키고 다섯 가지 행동 형태―① 맹목적임blinding(현실을 보지 않음) ② 감지하지 못함de-sensing(다른 사람들과 공감하지 못함) ③ 결여됨absencing(자신의 최고의 미래와의 관련성을 상실함) ④ 다른 사람들을 비난함blaming others(반성할 능력이 없음) ⑤ 파괴함destroying(자연파괴, 관계 파괴 및 자기파괴)―로 나타나는 심리상태를 의미한다. 샤르머는 이 다섯 가지 행동 형태들이 각본이 되어 지난 2년에 걸쳐 정치를 다시 만들었으며, 이는 이 행동 형태들이 마이크로 타기팅(micro-targeting)과 다크 포스트(dark post) 같은 소셜미디어 메커니즘들로 무기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이 메커니즘들이 디지털 공명실(digital echo chamber)에서처럼 우리의 고립을 증가시키고 전례없는 수준에서 이런 치명적인 행동들을 증폭시킨 것인데 ① 미 연방 대법원에서의 브렛 캐버노(Brett Kavanaugh)의 인준 ② 학교, 종교기관 및 공공장소에서의 대량 총기 발사 ③ 기후변화가 이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최근 사례들에 해당한다. 한 가지 사례(기후변화)만 예를 들어보자.

 

과학적인 증거를 수용하지 않음(맹목적임). 특히 지구상의 후진 지역에서 희생자들의 수가 증가하는 것에 공감하지 못함(감지하지 못함). 환경보호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을 해체함(결여됨). 기후과학과 기후 과학자들의 신뢰성을 적극적으로 약화시킴(다른 사람들을 비난함). 그리고 파리협약(Paris Agreement)에서 탈퇴함(문명을 자기파괴로 향하는 길로 몰아넣음).

 

그리고 샤르머는 이 사례들이 트럼프주의(Trumpism)의 각본이기도 해서 브라질의 트럼프로 평가되는 볼소나루가 선거운동에서 이 각본의 대부분을 따라할 만큼 정치적으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그에게 투표했는가? 샤르머는 이 물음에 낡은 체제가 유권자인 그들을 실망시켰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현 체제를 파열시키고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약속하는 후보자에게 표를 던진 것이라고 답한다.

그림2: 두 개의 사회적 장: 함께 창조하기(현재화)의 주기 및 파괴하기(결여됨)의 주기

 

샤르머는 실제적인 정치적•경제적•문화적 대안의 부재가 오히려 세로축의 위쪽 부분(그림 1, 2)에 있는 엄청난 잠재성을 활성화시킬 징후로 본다. 예를 들어 그는 그림1과 그림2에서 좌우 축의 바깥쪽과 위쪽에 위치한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2/3 가량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투표했고, 독일에서 최근에 치러진 두 번의 선거에서도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SPD)과 중도보수당(CDU)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데 실패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한편 선거에서 부상한 두 주요 당선자는 세로축의 끝에 놓이는데 아래쪽 끝에는 난민에 반대하는 <독일을 위한 대안> 소속의 당선자가 놓이고 위쪽 끝에는 녹색당 소속의 당선자가 놓인다. 샤르머는 극보수주의적인 성향의 남부 바이에른에서의 독일 녹색당의 부상과 텍사스에서의 미국 민주당의 부상—민주당 소속의 베토 오르크(Beto O’Rourke)는 텍사스에서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테드 크루즈(Ted Cruz)와의 대결에서 선전했다—은 세로축의 위쪽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총체적인 잠재성이 오늘날 드러나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샤르머는 정치부문에서의 축의 전환과 관련한 몇 가지 핵심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 자이르 볼소나루(Jair Bolsonaro, 브라질), 빅토르 오반(Viktor Orban, 헝가리), 야로슬라브 카친스키(Jaroslaw Kaczynski, 폴란드), 마테오 솔비니(Matteo Salvini, 이탈리아), 레제프 에르도간(Recep Erdogan, 터키), 블라지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그리고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Duterte, 필리핀)의 부상은 (a) 세로축에서 아래쪽 끝에 위치하는 것으로 정의된 트럼프주의가 미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과 (b) 트럼프주의가 두려움•증오•무지의 확대를 가능케 한 소셜미디어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음을 나타낸다(그림 2).

 

– 독일에서의 녹색당의 부상, 미의회에서 새로운 세대의 다양한 여성 대표자들의 부상뿐만 아니라 동성혼 합법화를 주장한 코스타리카의 대통령 알바라도(Alvarado)와 다수 일반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당선된 인도네시아의 대통령 조코위(Jokowi)의 승리도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무지•증오•두려움을 통해 호기심•연민•용기를 폐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호기심•연민•용기를 통해 정신•마음•의지를 열어젖힘으로써 현 정치 체제에 대한 그들의 불만을 드러낼 수 있음을 입증한다(그림 2).

 

– 역사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세로축 주변에서 일어나는 열림과 닫힘 사이의 갈등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오늘날 새로운 것은 다음의 3가지 조건들이다. ① 열림이냐 닫힘이냐라는 쟁점이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 ② 우리에게는 지구가 가진 지속가능한 발전의 한계에 맞추어 우리의 경제와 사회를 변형시키기 위한 시간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 ③ 소셜미디어가 전례 없는 수준에서 치명적인 행동들(결여됨의 순환)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 트럼프하에서 미공화당(GOP)이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의 중심부에서 세로 스펙트럼의 아래쪽 끝에 있는 신민족주의적인 포퓰리즘(그리고 백인우월주의)적 견해를 충분히 수용하는 으로 움직였는데도 민주당은 더 좌파로 움직일 건지, 더 중도로 갈 건지, 더 포퓰리즘적이 될 건지 아니면 세로 스펙트럼에서 더 위쪽으로 움직일 건지를 논쟁하면서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다. 대부분의 선거운동은 미국 문명을 위한 더 대담한 새로운 내러티브(세로축의 위쪽 끝)를 제안할 기회를 놓치면서 전통적으로 진보적인 주제(가령 헬스케어 서비스)에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민주당의 선거 전략은 낡은 렌즈를 통해 새로운 상황을 바라봄으로써 역사적 기회를 놓친 명확한 사례에 해당한다.

 

<경제적 전환>

 

경제적 좌표의 전환은 경제를 운영하는 방법에 관한 담론—어떻게 경제성장의 주기에 불을 가장 잘 점화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에 초점을 맞추는 담론—을 재형성하고 있다. 한 학파가 시장 메커니즘(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을 찬성했고 다른 학파는 정부 개입과 더 적극적인 거시경제적 운영(케인즈학파와 신케인즈학파)을 찬성했지만, 금세기 새로운 담론은 문제가 있는 성장패러다임이 모두를 위한 웰빙에 초점을 맞추는 탈성장 패러다임으로 대체될 것인지의 여부를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림3: 새로운 경제의 축

 

샤르머는 그림 3에서처럼 낡은 담론과 낡은 패러다임은 그냥 사라지지 않고 현재의 공적인 경제 담론의 새로운 좌표에서도 그대로 등장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가로축은 경제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정부중심적인 방식이냐 시장중심적인 방식이냐에 기초하지만 세로축은 더 많은 국내총생산이 더 많은 복지로 옮아가는 경향이 없다는 선진 경제의 경험적 발견에 기초한다. 그는 이것이야 말로 국내총생산이 경제적 발전의 유익한 지표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므로 바로 이곳에서 새로운 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논의되는 대안 지표들로는 ⑴ 부탄의 국민총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 GNH) ⑵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HDI) ⑶ 2015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한 17대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가 있다.

 

샤르머는 이러한 새로운 경제 좌표의 특징들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① 대부분의 낡은 패러다임들이 2008년도에 완전히 실패를 했지만 그 사고방식은 자본과 제도 속에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에 주류경제 담론은 여전히 20세기 경제사상인 가로축에 지배를 받고 있다.

② 세로축과 관련해서는 세로축의 아래쪽(즉 경제 민족주의)에서 그 사상이 더 역설되고 표현되는 반면에 세로축의 위쪽에서는 표현되더라도 규칙이 아닌 예외로 남는다(사례: 부탄, 코스타리카(([옮긴이] 코스타리카는 동성 결혼 합법화를 지지하는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부탄은 국민행복지수가 1위인 나라이다.))).

③ 세로축의 윗부분의 특성은 많은 지역공동체들에서 발견되며 도시나 일국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지역 규모의 다부문 기획에서도 종종 드러난다.

④ 2030년까지 17개 지속가능한발전목표(SDGs)를 실제로 실행할 유일한 가능성은 공동작업과 민주적 참여를 위한 새로운 기반시설들을 지역 수준에서부터 창출하는 데 있으며, 그 목적은 모두를 위한 웰빙을 창출하기 위하여 즉 에고체계(ego-system) 인식에서 생태계(eco-system) 인식으로 (세로축의 아래쪽에서 세로축의 위쪽까지) 우리 경제의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것이다.

 

<교육의 전환>

 

교육의 새로운 좌표는 정보격차의 의미가 바뀌었음을 깨닫는 것을 통해서 포착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네이오미 셰이퍼 라일리(Naomi Schaefer Riley)에 따르면 실제 정보격차는 “스크린 타임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부모를 둔 아이들과 더 많은 스크린이 성공의 열쇠라고 말하는 학교와 정치가들에게 속은 부모를 둔 아이들 사이에” 존재한다. 잡지『와이어드』(Wired)의 전 편집인인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도 “과거 정보격차의 핵심은 테크놀로지에의 접근이었지만 이제 모든 사람이 테크놀로지에 접근하므로 테크놀로지에의 접근을 제한하는 것이 새로운 정보격차의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교육부문에서 대부분의 낡은 담론이 ‘공교육 대 사교육’—즉 좌파와 우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반면에 새로운 담론은 학습 유형에 더 중점을 둔다. 그림 4에서 보듯이 교육의 전환은 숫자•공식•사실을 외우기냐 아니면 전인교육의 관점에서 학습과 창의성에 접근하느냐(후자의 접근법은 생성적인 사회적 장들을 중심으로 하면서 머리•가슴•손을 통합한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샤르머는 이러한 새로운 교육 좌표(그림 4)의 렌즈를 통해 드러나는 현 교육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그림 4 새로운 교육의 축

 

① 현재 활동과 담론의 대부분은 낡은 사고방식의 축(공교육이냐 사교육이냐 등)의 손아귀에 아직 꽉 잡혀있다.

② 인공지능 혁명은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을 재형성하면서 우리가 스펙트럼의 아래쪽(숫자•공식•사실 기억하기)에서 익히는 숙련도에 토대를 둔 일자리들을 대체할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는 인간 활동과 가치창출이 스펙트럼의 위쪽(인간적인 연민, 공감하는 인적서비스, 집단 창의성, 깊이 경청하기, 생성적인 대화, 집단적 공존, 공간 확보해주기, 내려놓기, 맞이하기(([옮긴이] 여기서 ‘공간을 확보해주기’(‘holding the space’)는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부과하지 않으면서 타인을 돕는 것이다. ‘내려놓기’(letting-go)는 기존의 자아를 내려놓는 것이고 ‘맞이하기’(letting-come)는 미래의 잠재적 자아를 맞이하는 것이다. 샤르머는 기존의 자아를 ‘내려놓기’와 미래의 잠재적 자아를 맞는 ‘맞이하기’의 공존을 ‘presencing’(현재화)이라고 표현한다.)))을 향하도록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할 것이다.

③ 좋은 사립학교들이 학습 스펙트럼의 위쪽으로 도전을 해보기도 하지만 핀란드와 북유럽 국가의 교육 체계들을 제외하고 그런 시도를 해온 더 큰 학교 시스템의 사례들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맹점>

 

샤르머는 시스템 변화에 기반을 둔 인식방법과 인식 도구를 제공하는 기반시설 및 현 세대의 변화 메이커들이 여러 시스템들·부문들·지형들에 걸쳐 있는 그들의 동료들과 연결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힘을 주고 뒷받침을 하는 기반시설의 부족이야말로 우리시대의 가장 중요한 맹점이라고 진단한다,

 

정치와 경제에서의 축의 전환은 교육과 학습에서의 전환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는 이 물음에 모든 것이 관계되어 있다고 답한다. 20세기 담론에서는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핵심이었지만 2018년에는 이데올로기는 없고 나-나-나···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세로축에서의 차이—열림이냐 닫힘이냐—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샤르머에 따르면 세로축에서의 차이는 의식, 다시 말해 우리가 연결되는 방식의 질의 차이이다. 이렇게 본다면 아래쪽 두 개의 사분면에서 위쪽 두 개의 사분면으로의 전환은 자아체계 인식에서 생태계 인식으로의, 즉 나에서 우리로의 의식상의 전환인 것이다.

 

트럼프, 포퓰리즘 및 에고체계 인식에서 좋은 점은 현실화되고 있는 에너지와 주도권이며 나쁜 점(또는 그 한계)은 편협성이다. 이러한 ‘자잘한’ 자아는 상호의존으로 이루어진 우리 시대의 실질적인 복잡함을 감당하지 못한다. 복잡함과 상호의존은 정신의 개방, 마음의 개방, 의지의 개방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우리가 계속 이런 개방과정에 참여할 때—심판의 소리, 냉소의 소리, 두려움의 소리에 둘러싸인 그 모든 것에 도전할 때—우리는 근본적으로 에고에서 생태로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우리는 우리 자신의 관점에서부터 뿐만 아니라 생태계에 속한 다른 모든 존재들의 관점에서부터 상황들을 바라보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샤르머는 셀 수 없이 많은 개인들, 집단들 및 조직체들이 에고체계 운영방식에서 생태계 운영 방식으로 옮겨가도록, 즉 세로축의 위쪽으로 옮겨가도록 요구하는 과제들과 직면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이 여정에서 그들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고 종종 혼자라고 느끼고 있는 이 시점이야말로 우리가 열림(개방)과정을 이야기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이 열림(개방)과정—그리고 이 과정을 규모있게 촉진하기 위한 새로운 인식에 바탕을 둔 방법들과 도구들—은 아마도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하지만 지원을 잘 받지 못하는 과정이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소음들 때문에 종종 놓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최고로 집중할 만한, 형성중인 운동을 포함하고 있는 과정인 것이다.

 

<당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것: 사회변형랩>

 

실제로 샤르머는 동료들과 <프레즌싱 인스티튜드>(Presencing Institute)를 운영하며 세로축의 위쪽 부분을 규모있게 활성화하기 위해 일하고 있고, 부문들을 가로지르고 있는 다수 글로벌 네트워크들 및 조직체들과 협력하고 있다. 그는 <사회변형랩>(Societal Transformation Lab)이라 불리는 새로운 기획과 기반시설을 2019년 초에 출범시켰으며, 이 랩은 각자가 속한 조직체 및 생태계에서 지대한 혁신을 위해 일하는 팀들과 조직체들에게 필요한 다지역 혁신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 글을 올라간 2018년 9월 8일은 이 기획의 파트너들을 모집하기 위해 새로운 웹사이트를 시작하는 날이기도 해서 샤르머는 랩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다. 랩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으며 이 랩을 통해 세계 전역에서 변화 메이커들이 모일 수 있다. 팀들과 조직체들은 s.lab의 온라인 플랫폼에 접근할 수 있으며 이 플랫폼은 부문들, 시스템들 및 지형들에 걸쳐 있는 변화 메이커들이 서로의 학습, 리더십 및 프로토타이핑(prototyping)을 지원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경제위기와 중앙은행들


  • 저자  :  Eric Toussaint
  • 원문 : The Economic Crisis and the Central Banks (2019. 3. 25) Attribution-NonCommercial-NoDerivatives 4.0 International (CC BY-NC-ND 4.0)
  • 분류 : 내용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제3세계 부당부채폐지위원회>(CADTM, Comité pour l’annulation de la dette du Tiers Monde, Committee for the Cancellation of the Third World Debt)의 웹사이트에 올라있는 에릭 뚜생(Eric Toussaint)의 글 “The Economic Crisis and the Central Banks”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뚜생은 역사가이자 정치학자로서 CADTM의 대변인이자 <프랑스 아탁>(ATTAC France)의 과학자문위원회의 위원이다. 또한 2015년 4월 4일부터 <공공부채에 관한 그리스 진실위원회>의 과학분야 조정자이다. 학술저서로는 Bankocracy (2015), The Life and Crimes of an Exemplary Man (2014), Glance in the Rear View Mirror. Neoliberal Ideology From its Origins to the Present (2012)가 있다.

새 국제 금융위기가 일어날 조건이 다 마련되어 있다. 언제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일어나게 되어 있고 그 영향은 지구 전체에 미칠 것이다.

이 위기 상황을 야기할 주된 요인들은 ① 기업 부채, ② 증가하는 투기거품―금용도구들(증권, 부채, 증권시장)과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나라들에서는 부동산 부문―이다. 이 두 요인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엄청난 양의 현금을 보유한 애플 같은 회사도 빚을 진다. 낮은 이자율을 이용해서 빌린 돈을 다시 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을 비롯한 다수 회사들은 생산에 투자하기 위해서보다는 빌려주기 위해서 빌린다. 또한 주식을 사기 위해서도 빌린다.((이에 대해서는 “The mountain of corporate debt will be the seed of the next financial crisis”(「산 같이 쌓인 기업부채가 다음 금융위기의 씨앗이 될 것이다」 (http://www.cadtm.org/The-mountain-of-corporate-debt, published 14 November 2017) 참조.))

투기거품은 거대 중앙은행들(지난 10년 동안은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유럽중앙은행, 영국은행, 1990년대 부동산거품 폭발 이후의 일본은행)이 시행하는 정책의 결과이다. 이 은행들이 수조의 달러, 유로, 파운드, 옌화를 민간은행들에 쏟아 부어 둥둥 떠다니게 하고 있다. 이런 정책은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라고 불렸다. 중앙은행들이 이렇게 풍부하게 배포한 금융자원들은 은행들 및 다른 부문의 주요 기업들에 의해서 생산적인 투자에 사용되지 않고 금융자산들(주식, 회사채, 정부 및 공공채권, 구조화 금융상품 및 파생상품들 등)을 획득하는 데 쓰였으며 이것이 주식시장, 증권시장, 부동산 부문 등에서 투기적 거품을 창출했다. 모든 주요 기업들은 과도한 빚을 지고 있다.

중앙은행 측의 이러한 정책은 그 경영자들의 의사결정이 주요 민간은행들 및 다른 부문의 거대 자본주의 기업들의 단기적 이익에 의해 전적으로 규정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즉 연쇄반응으로 이어지는 실패들과 그로부터 나오는 상당한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이 정책은 또한 현재의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한 특징―창출되는 새로운 가치의 점점 더 작은 부분이 생산에 재투자된다―에서 나온다.((François Chesnais, “De nouveau sur l’impasse économique historique du capitalisme mondial” [“More on world capitalism’s historic economic dead end”]), http://alencontre.org/economie/de-nouveau-sur-limpasse-economique-historique-du-capitalisme-mondial.html, read 17 March 2019 [프랑스어 논문] 참조.)) 새로 창출되는 가치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이 주주의 배당금, 자사주 매입, 특히 구조화 상품과 파생상품에의 투기적 투자에 지출된다.

중앙은행들이 2007-2008년 위기에 취한 정책으로 돌아가 보자. 중앙은행들이 개입했다고 해서 체계가 말끔하게 청소된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가장 취약한 요소들이 유지되거나 증가되었는데 회사가 진 부채에 비한 자기자본의 비율이 너무 낮았던 것이다. 이 비율은 회사(은행이든 애플이나 제너럴일렉트릭 같은 회사든)가 보유한 주식, 증권 및 기타 금융자산들의 가격 하락에 의해 야기될 가치손실을 감당하기에 중분하지 않았다. 모든 회사들은 빚을 잔뜩 지고 있는데, 이는 이자율이 매우 낮아서(유로존 0%, 일본 –0.1%, 영국 0.75%, 미국 2.5%) 돈을 빌리는 비용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대한 양의 자본이 금융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비록 그것이 금융문제를 안고 있는 회사들이 발행한 정크 회사채를 사는 것을 의미할지라도 그렇다. 그래서 금융건전성의 측면에서는 좋은 평판을 가진 애플 같은 회사들은 자금을 빌려서 그것으로 수익률이 높은 정크 증권들을 구입한다. 이 고수익률 정크증권[수익률은 높지만 원금상환이 극히 불확실한 회사채]을 발행하는 망해가는 회사들은 계속 빚을 지는 정책을 실행한다. 이전에 대부받은 돈을 갚기 위해 돈을 빌리는 것이다.

2018년 12월 말, 큰 증권시장 붕괴가 미국에서 일어날 뻔했으며, 그 전염효과[한 국가에서 발생한 금융위기가 다른 국가에 파급되는 현상]는 즉각적이었다. 거대한 붕괴가 임박해 있다는 또 하나의 표시였다.

미국의 부동산 시장은 또 다시 취약해졌다. 부동산 가격은 2012년 이래 50% 올랐으며 이는 2005-2006년에 시작되어 2008-2009년의 거대한 국제적 위기를 야기한 위기 직전보다 높은 수준이다. 우리가 새로운 부동산 위기를 눈 앞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주택판매가 감소하고 있고 거래가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의 지속적인 양적 완화와 미국에서의 양적 완화의 종료가 모두 위기의 요인들이다.

‘시스템 수준’(systemic)이라고 지칭되는 거대 민간은행들은 극히 취약하며 그 주식의 가치는 미국과 유럽에서 2018년 하반기에 급락했고 이 하락세는 2019년 1사분기에 계속되었다. 이 거대 민간은행들은 해당 국가의 중앙은행들의 지원으로 연명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는 해로운 민간 회사채(저 유명한 주택저당증권Mortgage Backed Securities, MBS)를 팔아버리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연준은 2008-2009년에 구제금융을 위해 거대 은행들로부터 획득한 엄청난 양의 MBS(1조6천억 달러)를 2019년 3월에도 보유하고 있었다.((https://www.federalreserve.gov/releases/h41/current/h41.pdf, read 17 March 2019 참조.)) 이 MBS를 약속한 대로 대량으로 팔면 그 가격이 수직으로 하락하고 미국의 증권시장이 그와 함께 곤두박질 칠 것임을 연준은 매우 잘 알고 있다. 또한 연준은 이자율을 2.5% 이상으로 올리면 많은 부채를 진 회사들이 재융자를 통해 부채를 상환하기에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2020년까지 이자율 0%를 고수할 생각이다.((Martine Orange, “La BCE face à ses limites” (“The ECB up against its limitations” [in French]), https://www.mediapart.fr/journal/international/080319/la-bce-face-ses-limites?page_article=1, published 8 March 2019 and Delphine Cuny (La Tribune), “La BCE choque les marchés en repoussant la hausse des taux” (“The ECB shocks the markets by postponing rate increase” [in French]), https://www.latribune.fr/entreprises-finance/banques-finance/la-bce-choque-les-marches-en-repoussant-la-hausse-des-taux-809976.html#xtor=EPR-2-[l-actu-du-jour]-20190308, published 7 March 2019 참조.)) 또한 유럽중앙은행은 민간은행들에 TLTRO(장기대출프로그램, Targeted Longer-Term Refinancing Operation)라고 불리는 중장기 대부를 할 예정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은행들이 이것을 가장 원한다. (JP모건에 따르면 이 은행들이 지난 번 TLTRO 때의 총 대출액의 55%를 가져간다.) 그러나 모든 은행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은행들이 직·간접적으로 TLTRO에 의존한다. 여기에 추가할 것은, 유럽 은행들은 자신들이 0% 이자율로 빌린 돈을 일반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간주되는 국채(가능하면 자국의 국채)를 구입하는 데 대대적으로 지출한다는 점이다.

 

은행들이나 기타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공공채권을 선호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유로존의 모든 국가들은 2018년에 그랬던 것처럼 2019년의 첫 3개월 동안에도 큰 액수의 돈을 빌리는 데 성공했다. 새로운 채권발행이 고지될 때마다 구입오퍼가 홍수처럼 밀려왔다. 일반적으로 어떤 국가가 10억 유로를 빌리고 싶으면 은행들은 40억 유로를 제안한다. 대체로 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앙은행들에서 오는 현금이 이렇게나 많은 것이다. 그래서 은행들은 수익성이 좋고 안전한 공채를 구입하는 데 열심이다. 더 나아가 정부채권을 사면 리스크에 의해 자산을 조작하는 것을 허용하는 시스템의 도움으로 은행들이 부채비율(debt-to-equity ratio)을 인위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Dancing on the Volcano” http://www.cadtm.org/Dancing-on-the-Volcano and Bankocracy, Chapter 12 참조.)) 그러나 위기가 재앙급이 되자마자 주류 미디어와 은행업자들은 과도한 공공지출을 하고 너무 많은 채권을 발행했다는 이유로 유로국가를 또다시 비난한다.

 

전체적으로는 매우 미약한 성장, 몇몇 경우에는 침체 혹은 심한 후퇴

산업화의 정도가 가장 높은 나라들에서의 경제성장은 계속 미약하며 몇몇 주요 나라들에서는 후퇴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 후퇴가 보이는데, 이곳에서는 2017년의 경미한 성장 이후 2018년은 침체로 끝맺었다. 독일의 경우 2018년 4사분기와 2019년 1사분기에 산업성장이 하락했다.((Financial Times, “German industrial production drops unexpectedly,” 11 March 2019, https://www.ft.com/content/2e93cb1a-43ca-11e9-a965-23d669740bfb.)) 독일 당국은 2019년 성장예측을 1%로 하향조정했다. (2016-2017년의 연간성장률은 2% 이상이었다.) 12년 동안 유렵연합에 투자한 결과 위기 발발 이전인 2007년의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저자의 글 “The Challenges for the European Left regarding Debt and the Banks,” 23 January 2019, http://www.cadtm.org/The-Challenges-for-the-European-Left-regarding-Debt-and-the-Banks) 참조.))

유로존의 경우 2018년 3사분기의 성장은 겨우 0.2%로서 4년 사이에 최저치이다. 이탈리아는 경기후퇴 상태이다. 프랑스는 소비의 경미한 증가 덕분에 경미하게 상승했다. 이는 황색조끼(Gilets Jaunes, Yellow Vests) 운동의 결과인데, 이 운동은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을 재정규율(fiscal discipline, 정부지출이 세입을 초과하지 않는 것)과 단절하게 만들었다.

 

일본의 경우 2018년 3월에서 2019년 3월까지의 기간 동안 성장은 대략 0.9%로서 역시 2017년에 비해 하락했다. 미국 경제 또한 후퇴하는 국면에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2018년의 2.9%에 비해 2019년에는 2.5% 성장을 예측하고 있다. (다른 전문가들은 더 낮게 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2016년부터 취해오던 이자율 인상을 일시적으로 중지했다.

중국이 세계의 기관차 역할을 계속적으로 하고 있지만 중국의 성장도 느려서 5% 정도 될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는 25년 만에 가장 낮은 것이다. 중국에서는 금융위기가 언제라도 발발하여 중국 및 전 세계의 성장이 급격히 하락하게 만들고 수억의 중국인들의 생활조건을 악화시킬 수 있다.

BRICS 나라들―브라질(Brazil), 러시아(Russia), 인도(India), 중국(China), 남아프리카공화국(South Africa)―의 경제 또한 둔화되고 있다. 다만 인도가 예외로서 7%를 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러시아의 성장률은 2018년에 1.2%였고 2019년에 1.3%로 예측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2018년 전반기 동안 후퇴했고 현재 약간 상승하고 있다. 2015-2016년에 크게 후퇴했던 브라질 경제는 성장세로 돌아왔으나 2018년에 겨우 1%를 간신히 넘는 낮은 성장률을 보였다.

심각한 위기들이 ‘신생’ 국가들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인 터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인도네시아 등에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나라들은 통화 평가절하를 겪고 있고, 대외 공공부채 및 민간부채의 상환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모잠비크 같은 가장 가난한 국가들 몇몇은 심대한 부채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나라들의 수는 계속 늘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특히 환경을 크게 오염시키는 주요 산업국가들에서 경제성장의 수준이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는 데 기여하는 요인들은 약화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들은 단지 말로만 서비스를 하는 데 그치고 있다. 다행히도 일반 대중, 특히 청년들이 이에 강하게 반응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의 업무 평가

2007-2008 위기가 시작된 이래 유럽중앙은행은 대형 민간은행들과 그 소유주들 및 경영자들을 구하는 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오면서 그들의 특권들의 연속성을 보장했다. 유럽중앙은행이 없었다면 대형 은행들은 분명 망했을 것이며 당국은 이들에게 엄격한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이 이외에 유럽중앙은행의 업무는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20개 정도의 주요 은행들의 이익을 위해 은행 부문들의 중앙집중성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유럽중앙은행은 너무 커서 망할 수 없는 괴물 은행들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해왔다. 유럽중앙은행은 이 주요 은행들의 대주주들을 구제하는 데 덧붙여서 인플레이션율을 2% 정도로 유지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유럽중앙은행은 실패했다.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율은 2018년에 1.6%였고 2019년의 1사분기에는 하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에는 이 외에 다음의 세 가지 목표가 더 있다.

  • 취약한 유럽 경제와 모든 유럽인들에게 구속복인 유로를 방어하는 것. 유로는 대형 민간기업들과 유럽 엘리트들(부유한 1%)에게 봉사하는 도구이다. 유로존에 속한 나라들은 유로를 택했기 때문에 자국의 통화를 평가절하할 수 없다. 그런데 유로존에 있는 가장 약한 나라들은 독일, 프랑스, 베네룩스3국, 오스트리아 같은 경제대국들과 맞서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평가절하를 해야 한다.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같은 나라들은 유로존 회원이 됨으로써 제한을 받는다. 그래서 유럽의 당국과 정부들은 ‘내적 평가절하’(internal devaluation)를 실행하는데, 이는 실상 노동자들의 임금삭감을 의미한다.
  • 유럽의 가장 강한 경제들(베네룩스3국, 프랑스 독일)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것. 유럽의 거대 기업들이 여기에 토대를 두며, 따라서 유럽에서 강한 경제와 약한 경제의 차이를 유지하려 한다.
  • 사업 수익성을 높이고 유럽의 거대 기업들을 세계시장에서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등과의 경쟁에서) 더 경쟁력 있게 만들기 위해서 노동에 대한 자본의 공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 유럽중앙은행이 이 목표를 위해 이탈리아, 그리스, 사이프러스, 아일랜드, 스페인 등에 개입한 사례들이 많다.

박탈당한 사람들에 대한 계속적인 공격에 기여하겠다는 유럽중앙은행의 단호한 태도는 또다시 분명하게 표명되었다. 2019년 3월 유럽중앙은행과 유로체제 은행들은 그리스 민중을 희생하고 얻은 수익의 일부를 치프라스(Alexis Tsipras) 정부가 반(反)개혁(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충분히 이행하지 않았다는 구실로 그리스에 되돌려주기를 거부했다. 유럽중앙은행이 밀어붙인 이러한 개혁 가운데 하나가 주택 모기지 부채를 상환할 수 없는 그리스인들을 쫓아내는 데 걸리적거리는 기존의 장애물 가운데 마지막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유럽중앙은행의 입장에서는 그리스 민중에게 아무리 큰 희생이라도 요구할 수 있다. 이들은 유럽중앙은행이 핵심적 역할을 하는 트로이카―국제구제금융(IMF), 유럽중앙은행(ECB) 그리고 유럽연합(EU) 세 기구로 구성된 삼두체제―의 제물들인 것이다.

근본적 해결책의 필요

다가오는 새로운 금융위기는 이전보다 훨씬 광범위한,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시스템 차원의 위기가 될 것이며 경제·환경·사회·정치·도덕·제도에 영향을 미치는 다면적인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의 지도자들의 사고방식과 철저하게 단절하고 긴급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재난을 초래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기는커녕 황금 악수를 해주는 현재의 체제와는 반대로 은행 붕괴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구제를 위한 돈을 지불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현재 은행을 규제한다고 고지된 조치들은 피상적이다. 유로존 은행들의 중앙집중화된 감시, 유럽저축보증계획의 수립, 전지구적 은행업의 2%만 관련되는 특정 업무들의 금지, 보너스에 상한선 두기, 투명한 은행업무, 그리고 심지어 새로운 은행규칙들마저도 단지 추천사항이거나 약속일 뿐이며 기껏해야 해결해야 할 문제에 완전히 부적절한 조치들이다. 이제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엄격한 규칙들이 부과되어야 한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금융세계와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조치들이 실행되어야 한다.

은행업은 민간 부문에 맡겨두기에는 너무 중요하므로 사회화되어야 한다. 즉 민중(은행직원, 고객들, 연관 단체들, 지역의 공공기관들의 대표자들)의 통제 아래 두어야 한다. 공공서비스로서 운영되어야 하고 그 업무 수익은 공동선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을 구하기 위해 진 공공부채는 분명 정당하지 못하기에 거부되어야 한다. 민중에 의한 감사가 이루어져 다른 정당하지 못한, 불법적인, 가증스럽거나 지속 불가능한 부채를 적발하고 신뢰할 만한 반(反)자본주의적 대안이 출현할 수 있는 부의 결집을 창출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

이 두 조치는 다른 곳에서 제시한 더 광범한 프로그램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Gilets Jaunes (Yellow Vests): Learning from history and acting now” (http://www.cadtm.org/Gilets-jaunes-yellow-vests-learning-from-history-and-acting-now) 참조.)) 중앙은행은 근본적으로 개혁되어야 하며, 그 임무가 재정의되어야 한다. 중앙은행은 화폐를 인쇄하는 역할을 다시 맡아야 하며 환경의 개선과 사회적 불의에 대한 투쟁에 재정을 대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시민들의 결집과 사회적 자치(자기관리)는 다양한 해결책 제안들을 실천에 옮기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다.




토지를 커먼즈로 다루기



토지소유권(land ownership)이라는 특권은 너무 크고 광범위해서 보통은 그 특권을 불변하는 삶의 사실─정치는 도저히 다룰 수 없는 어떤 것─로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가디언』(The Guardian)지의 뛰어난 칼럼니스트인 조지 몬비오(George Monbiot)와 여섯 명의 전문가로 이루어진 팀이 발행한 멋진 새 연구보고서에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인사를 할 만하다. (로빈 그레이Robin Grey, 톰 케니Tom Kenny, 로리 맥팔레인Laurie Macfarlane, 아나 파월-스미스Anna Powell-Smith, 가이 슈럽솔Guy Shrubsole 그리고 베스 스트랫퍼드Beth Stratford가 연구보고서의 여섯 공동저자들이다.) 연구보고서인 『다수를 위한 토지: 우리의 근본 자산이 사용, 소유, 통치되는 방식을 바꾸기』(Land for the Many: Changing the Way our Fundamental Asset is Used, Owned and Governed)는 토지에의 접근과 토지 사용을 민주화하는 철저하고도 포괄적인 안을 마련하고 있다.

몬비오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 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 속으로 충분히 깊이 파고들면 바로 토지에 닿을 것이다. 급증하는 불평등과 배제, 제대로 된 집을 빌리거나 구입하는 데 드는 엄청난 비용, 주택자산 거품으로 촉발되는 반복되는 금융위기, 야생생물과 생태계의 붕괴, 공공 편의시설 부족─이 모든 것들의 바탕에 토지가 소유되고 관리되는 방식이 깔려있다. 그러나 이 점은 정치 논의에서는 거의 부각되지 않는다.

연구보고서에는 영국노동당이 다음 총선에 대비하여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참조할 만한 권고사항들이 담겨있다. 토지가 투기자산으로 다루어지는 것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보고서는 세계 전역에서 유사한 개혁들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템플릿으로 평가될 수 있다. (보고서를 요약한 몬비오의 칼럼은 여기서 볼 수 있다.)

토지가 어떻게 커먼즈로 발전•활용•보호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일련의 철저하고도 포괄적인 제안들이 담겨 있는 이 보고서가 나에게 꽤 인상적이었다.

몇몇 간결하고 강력한 절에서는 토지소유권 데이터를 더 개방하여 이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공동체가 주도하는 토지 개발 및 소유를 촉진하는 방식(예를 들어 “공동체의 구입권”), 그리고 시민사회적 목적과 문화적 목적을 위해 시민이 토지에서 ‘만행(漫行)권’(right to roam)을 성문화하는 것을 다루고 있다. 투기개발을 제한하고 농업과 임업을 부활시키는 한 가지 효과적인 방식은 공동체 토지신탁(community land trusts)을 창출하고 세제 특혜와 보조금을 제한하는 것이다.

토지와 관련된 노골적인 금융 현실은 꽤 염려스럽다. 영국에서 “땅값은 1995년 이후로 544%가 상승했으며 이것은 실질소득에서의 성장을 훨씬 앞지른다”라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주택은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비싸다. “20년 전에 노동에 종사하는 평균적인 가족은 주택 보증금을 지불하기 위해 3년 동안 저축을 해야 했다. 오늘날에는 19년 동안 저축을 해야 한다”라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집을 금융자산으로 여기도록 조장하는 조세법들 및 기타 정책들이 대부분 비난을 살 수 있다. 이것이 주택에 대한 극심한 투기를 부채질해서 가격을 상승시키며 부자들(토지소유자들)에게 이익을 주고 세입자들을 빈곤하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투기와 조세혜택 때문에 부유한 토지 소유자들이 소유 토지를 늘리는 반면에 소규모 농부들은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적어도 영국 농장의 1/5이 지난 10년에 걸쳐 문을 닫았다.

정치가들은 일반적으로 너무 몸을 사려서 이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안을 발의하지 못한다. 그들의 생각에 이 일은 주요한 핵심 유권자인 부자들을 격분하게 만들 뿐이고 부에 이르는 길로서 집으로 돈을 벌고자 열망하는 중산층의 일부를 떨어져나가게 할 뿐이다. 그러나 토지와 연관된 투기 광풍을 잠재우고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어떤 것을 만들기 위해 토지의 취득과 관리를 공동으로 하는 방식들은 사실상 많이 있다.

『다수를 위한 토지』(Land for the Many)는 ‘거시건전성 도구들’(macroprudential tools)─체계 수준의 위험(systemic risk)의 금융평가─의 변화를 권고하는데, 이는 은행이 부동산 구입용 대출은 횟수를 더 줄이고 경제의 생산부문들을 촉진하는 대출은 횟수를 더 많이 늘리도록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보고서는 또한 부동산을 임대할 의도가 있는 구입자들에게 대출을 해주는 것에 규제를 둘 것을 힘주어 권고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토지에 더 접근할 수 있고 구입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건강한 다른 방식들로는, 예를 들어 토지 누진 재산세 매기기, 토지소유주들을 대상으로 한 조세감면의 축소 그리고 허용될 수 있는 임대료 증가의 상한선을 임금 인상률이나 소비자 물가지수 가운데 더 낮은 쪽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로 정하는 것이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개발은 생태계, 야생생물 및 미래 세대들에게 장기적으로 대재앙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보고서는 <공공개발기업들>(Public Development Corporations)의 창출을 요구한다. 이 기업들은 공익을 위해 토지를 구입하고 개발하는 권한을 가질 것이다.

나는 앞으로 집을 살 사람들이 집을 구입하도록 돕는 비영리기관인 <공동토지신탁>(Common Ground Trust)을 창출하자는 아이디어가 특히 마음에 든다. <공동토지신탁>은 구입자의 요청에 따라 주택 부지를 구입해서 그 토지를 커먼즈를 위한 신탁형태로 보유할 것이다. 평균적으로 토지는 주택가격의 70%에 해당하므로 <공동토지신탁>에서 주택 부지를 취득할 경우에 주택 구입자들이 선불로 내는 금액은 크게 줄 것이다. 몬비오를 위시한 공동저자들은 “그 대신에 구입자들은 토지 임대료를 <공동토지신탁>에 지불한다”라고 쓰고 있다. 집 구입자들은 주택의 가격 상승분을 수익으로 거둘 수는 있지만 토지는 사실상 시장에서 빠져나갈 것이고 그 가치를 커먼즈에서 보유하게 될 것이다.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토지를 공동소유로 끌어들임으로써 토지 임대료가 개인 토지소유주들 및 은행으로 유입되지 않고 사회화될 수 있다. 부채에 의한 수요 및 투기수요는 통제되지 못하거나 불안정하게 가치가 하락할 위험 없이 억제될 수 있다.”

『다수를 위한 토지』는 주요한 성취이다. 『다수를 위한 토지』는 토지개혁을 위한 진보적인 사례를 공고히 하고 법과 정책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직설적인 언어로 설명한다. 물론 정치 영역에서 토지를 커먼즈로 다루도록 만드는 일은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불합리한 불평등들, 생태학적 해악들, 농업의 쇠퇴 그리고 토지소유의 현 체제와 연관된 너무 비싼 주택가격을 생각하면 이런 대화는 벌써 이루어졌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