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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 주권에서 기능적 주권으로의 전환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권력이 바뀌고 있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과정에서 경제가 금융화되고 난 후 우리에게는 플랫폼 경제에서 출현하는 새로운 기업권력 층이 생겼다. 프랭크 패스콸레(Frank Pascuale)는 우리가 추천하는 아래 발췌한 글에서 이 과정을 ‘기능적 거버넌스’(Functional Governance) 개념에 입각하여 아주 잘 설명하고 있다. 녹화된 발표뿐만 아니라 전문(全文)을 꼼꼼히 읽어보길 바란다. 패스콸레가 설명하듯이, 넷지배 플랫폼(netarchical platform)들 즉 P2P 교환에서 가치를 추출하는 개인 소유 플랫폼들은 우리의 데이터를 소유하고 우리의 행동을 부추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공공부문이 이전에 제공했던 여러 기능들을 제공할 수 있음으로 인하여 커먼즈에 기초한 공동생산•공동거버넌스•공동소유권의 민주적인 책무와 가능성들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무력하다는 의미는 아니며 다음 편에서 우리는 플랫폼 자본주의의 혁신에서 무언가를 배워서 수립되는 전략을 제안할 것이다. 아래 발췌는 Open Democracy에서 가져왔다.

(미셸 바우엔스)

디지털 기업들이 방 임대에서 수송(운송) 및 상거래에 이르기까지 그 동안 정부가 하던 역할들을 더 많이 대체하게 되면서 시민들은 민주적인 통제보다는 점점 더 기업의 통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경제학자들은 규제범위를 국가권력을 확장하거나 축소하는 단순한 문제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는 사회적 관계가 권력 공백을 싫어한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국가 권한이 축소될 경우 민간 주체들이 그 공백을 메웁니다. 이들의 권력도 행정기관에 의한 흔해 빠진 민법 집행만큼이나 억압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며 곳곳에 스며드는 효과를 가집니다. 로버트 리 헤일(Robert Lee Hale)이 “한 사람이나 한 집단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게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며 그들이 언제 복종하거나 벌을 받아야 하는지를 말할 때는 언제나 통치가 존재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죠.

우리는 고용관계에서 그리고 대규모 회사가 공급자들로부터 양보를 얻어낼 때 작동하는 이 권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이 분쟁의 당사자로서가 아니라 그 분쟁을 결정하는 당국으로서 감히 사법 권력을 행사할 경우는 어떤가요? 대규모 디지털 플랫폼들이 상거래와 관련된 우리의 삶에 더 많은 권력을 휘두르게 되면서 이러한 시나리오들이 훨씬 더 일반화될까 염려스럽습니다.

주요 디지털 기업의 정체성과 야망에 대해 말해보죠. 그들은 더 이상 시장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의 분야에서 시장을 만드는 주체들로서 다른 사람들이 재화와 서비스를 팔 수 있는 조건에 대해서 규제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그 동안 정부가 하던 역할들을 더 많이 대체하길 열망하며 영토 주권의 논리를 기능적 주권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방 임대에서부터 운송(수송) 및 상거래에 이르는 기능적 장(場)들에서 사람들은 민주적인 통제보다는 기업의 통제를 점점 더 받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죠. 에어비앤비가 방 임대, 그 다음에 주택 임대, 최종적으로는 도시계획 일반을 효과적으로 규제하기 위해 데이터에 기반을 둔 방법들을 사용할 수 있을 때, 누가 도시 주택 규제기관을 필요로 할까요? 아마존이 그 자체의 관할구역이나 차터시티(charter city, 특별자치도시)를 갖도록, 또는 폭스콘(Foxconn)을 위한 특별 사법 절차를 제정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어떤가요? 기능적 주권의 선봉에 선 일부 사람들은 온라인 등급제 평가가 국가의 직업관련 면허제도를 대신할 수 있고, 가령 정부 위원회에서 노동자들에게 자격증을 주도록 하기 보다는 링크트인(LinkedIn) 같은 플랫폼이 그들에 대한 별점을 수집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영토 주권에서 기능적 주권으로의 바로 이 전환이 새로운 디지털 정치경제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앞날을 내다보는 법률 사상가들이 우리가 이 동학을 포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로리 밴 루(Rory van Loo)는 아마존 같은 플랫폼들이 구매자와 판매자들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분쟁해결절차를 실행할 때 그 지위를 ‘법원으로서 기업’(corporation as courthouse)이라고 불렀습니다. 밴 루는 아마존의 분쟁 해결 과정이 소액사건 법원에 비해서 얻을 수 있는 효율상의 이득과 소비자들이 놓일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들(예를 들어 불투명한 판결기준들 같은)을 모두 설명합니다. 저는 우리가 그와 같은 경제적인 고려사항들에 덧붙여 전자상거래 봉건주의의 정치경제학적 기원도 고려하고 싶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소비자 권리가 위축되면서 구매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역설하기 위해 (과도한 업무에 짓눌려있는 소액사건 법원보다는) 아마존에 맡기는 게 합리적입니다. 집단소송이 실질적 효력을 잃고, 중재(조정)와 표준문안계약(boilerplate contract)이 증가하는 등, 이 모든 것이 소비자 분쟁에서 사법제도를 점점 더 흔적기관으로 만듭니다. 자유의지론적인 법적 교리가 국가로부터 질서를 부과하는 힘을 박탈했기에 개인들로서는 온라인 거인들에게서 이 힘을 찾는 것이 합리적인 일입니다. 그리고 이럴 때 이 거인들은 애초에 국가의 쇠퇴를 낳았던 바로 그 동학을 강화합니다.

이 약점은 최근에 아마존이 제2본사의 입찰 경쟁을 조장하기로 결정한 데서 농담과 같은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시장들은 자신들의 시에 일자리가 생기도록 해달라고 비굴하게 간청했습니다. 리처드 세일러(Richard Thaler)의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의 독자라면 예측했듯이 경쟁으로 결정되는 동학은 너무 많은 사람들을 인센티브로서 너무 많이 제안하도록 부추겼습니다. 저널리스트 대니 웨스트니트(Danny Westneat)가 최근에 다음과 같은 것을 입증했습니다.

∙시카고 시에서는 아마존에게 노동자들이 내는 소득세에서 13억 2천만 달러를 벌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프레즈노 시는 아마존에게 아마존이 내는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한 특별 권한을 줄 새로운 계획을 갖고 있다.

∙보스턴 시에서는 시 공무원들로 ‘아마존 태스크포스’를 구성하여 아마존을 위해 일하도록 하겠다고 제안했다.

∙조지아주의 스톤크레스트(Stonecrest) 시에서는 심지어 땅의 일부를 떼 내어서 베조스에게 ‘조지아주 아마존’으로 알려지게 될 345에이커의 부지의 시장이 될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아마존의 예

아마존이 부상한 것은 교훈적입니다. 리나 칸(Lina Khan)이 “아마존이 전자상거래 중심에 자리를 잡았고 지금은 아마존에 의존하는 다수의 다른 기업들에게 꼭 필요한 기반시설로서 역할을 한다”라고 설명했듯이 말이죠. ‘모든 것을 파는 상점’(everything store)은 경제에서 그저 또 하나의 서비스처럼 보일 것입니다. 즉 가상 쇼핑몰이죠. 하지만 한 회사가 수천만 명의 고객들과 ‘마케팅 플랫폼, 배달 및 물류 네트워크, 지불 서비스, 신용 대출 기관, 경매 회사…하드웨어 제조업자, 그리고 클라우드 서버 공간을 제공하는 선도적인 호스트’를 결합시킬 때 이것은 칸이 말하듯이 단지 또 하나의 쇼핑 선택권이 아닙니다.

디지털 정치경제학은 플랫폼들이 어떻게 권력을 축적하는지를 우리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온라인 플랫폼의 경우에는 ‘최상의 서비스가 이긴다’라는 단순한 이야기가 통하지 않습니다.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s)는 20여 년 동안 사이버법(및 디지털 경제학)의 의제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아마존의 지배는 네트워크 효과가 어떻게 자기강화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죠. 상인들이 아마존에서 (또는 아마존에게) 팔고 있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쇼핑객들은 가능한 모든 판매자들을 검색하고 있다고 그만큼 더 잘 확신할 수 있습니다. 쇼핑객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판매자들이 아마존을 ‘꼭 필요한’ 장소로 여깁니다. 플랫폼 양쪽에 사람이 늘게 되면 가운데 있는 중개자가 점점 더 필수 불가결해집니다. 물론 새 플랫폼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만, 그 플랫폼이 아마존처럼 4억 8천만 개 품목을 (종종 대폭할인으로) 판매하는 데 도달할 때까지는 일반 소비자가 새 플랫폼으로 갈 이유가 없습니다. 쓰레기봉투가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실제로 Target.com으로 옮겨가서 신용카드 정보를 다시 입력하여 새로운 계정을 만들고 쇼핑에 관한 세부 약관을 읽고 이 유통업체가 글래드(Glad)와 더 나은 거래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등, 이런 과정을 거치고 싶어 할까요? 또는 제가 썬스타인(Cass Sunstein) 식으로 제 과거 구매 습관을 상세하게 알아서 한번 클릭으로 만족하게 해주는 예측전문 조달업자를 원할까요?

인공지능이 향상되면서 아마존에서 습관화된 쇼핑 이력을 추적하는 것은 구매자들에게나 판매자들에게나 합리적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을 것입니다. 밟아서 점점 뚜렷해지는 숲속의 오솔길처럼 그것은 자연스럽게 디폴트가 됩니다. 온라인 거대기업 속으로 돈, 데이터 및 상거래를 빨아들이는 여러 구심력들 가운데 하나를 살펴보려면 온라인 분쟁이 일어날 경우 그것이 어떻게 아마존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지를 게임이론의 방식으로 생각해보세요. 온라인에서 한 상인과 문제가 있다면 당신은 일회성 구매자로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수십 또는 수백 번이 넘는 거래를 통해 평판이 선 누군가로서, 또한 아마존에게 매년 수백 또는 수천 달러의 수익을 주지 않겠다고 확실히 위협할 수 있는 누군가로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십니까? 상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그들이 아마존에게 바치는 것이 많을수록 분쟁이 발생할 때 검색결과와 주목(그리고 어쩌면 선호도)에서 가시성을 획득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브루스 슈나이어(Bruce Schneier)가 보안에 대해 말한 것이 온라인 상거래에도 점차적으로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당신은 무법의 영역에 질서를 가져오는 신봉건적인 한 거인들 가운데 하나에게 은총을 얻기를 원하는 것이죠.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디지털 영주들이 외관상으로는 보호하는 것으로 되어있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가진 데이터상의 이점들을 불리하게 사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금세 할 것입니다.




플랫폼 협동조합 설립을 위해 점검해야 할 다섯 가지 일들



공유경제 기업들이 착취적인 노동 관행들, 데이터 프라이버시 문제들 등으로 빈축을 사면서 이 플랫폼들의 몇몇 부정적인 영향에 대항하기 위해 준비되고 있는 또 하나의 운동이 있다. ‘플랫폼 협동조합’(platform cooperatives)이라고 불리는 이 디지털 기업들은 전통적인 협동조합들이 사용한 토대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국에서 지속가능하고 민주적인 긱노동에 새로운 경로를 제공하고 있는 플랫폼 협동조합의 예로는 <그린 택시>(Green Taxi), <스톡시유나이티드>(Stocksy United)[셰어러블의 후원자] 및 <Up&Go>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플랫폼 협동조합들이 빠질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적인 플랫폼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것은 시장에서의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노력과 자원 투자를 필요로 한다. 다섯 가지 중요한 고려 사항들이 아래에 있다.

  1. 시장

플랫폼들은 네트워크 효과 때문에 성공한다. 사람들이 더 많이 참여하면 할수록 플랫폼은 더 잘 기능한다. 대안적 플랫폼으로 전환하도록 모든 사람을 설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미 존재하는 네트워크 효과를 깨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이 서로 물리적으로 밀접한 지역 사업들인 경우에 이 일은 약간 더 쉬운 과제이다. 플랫폼 협동조합을 창출하기 전에 제공할 서비스가 지역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 플랫폼 협동조합이 국경을 가로질러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더 큰 시장과 연결되는 데는 시간, 노력 및 자원이 더 많이 든다.

 

  1. 테크놀로지

플랫폼 협동조합에는 테크놀로지를 다루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1. 자체 테크놀로지를 개발하기

 

  1. 필요한 지원과 테크놀로지를 제공하는 협동조합에 가입하기

 

  1. 해당 산업에 있는 기존의 테크놀로지를 활용하기

 

어떤 방식을 당신의 플랫폼 협동조합이 선택하느냐는 당신이 그 방식에 할당할 수 있는 자원과 전문적 기술에 달려 있다. 다양한 플랫폼 협동조합들이 서로 기술 투자를 공유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이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주목해야 할 중요한 것은 플랫폼 협동조합에서 사용하는 테크놀로지도 그 혜택을 최대화하기 위해 협동조합 원칙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는 지역의 자전거 배달 부문에 세 개의 ‘메타’ 플랫폼 협동조합들—<쿱사이클>(CoopCycle), <아피꼴리스>(Applicolis), <블록푸드>(Blockfood)—이 있으며, 이 협동조합들은 정보통신기술•마케팅•판매를 촉진한다. 배달원으로 이루어진 노동자 협동조합을 모든 도시에 만들고, 모든 노동자 협동조합들이 다 같이 메타 협동조합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다. 이것이 그들의 안전과 미래의 연속성을 보장할 것이다. 연합함으로써 그들은 더 많은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공동 구매를 활용할 수 있다.

 

  1. 정부

지역 및 중앙 정부는 보다 민주적인 활동의 장을 제공하기 위하여 새로운 플랫폼 협동조합을 대상으로 진입 문턱을 낮추기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부들은 ‘좋은 기업 인증서’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거나 그런 플랫폼에 세금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이것 말고도 정부는 거대 기업들의 데이터 독점을 방지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 플랫폼 협동조합 창출을 지원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역법 및 국가법과 정책들을 주시하라.

 

  1. 지원

플랫폼의 힘은 플랫폼 사용자의 호의에 달려있다. 수요 집단이나 공급 집단이 연합할 경우 당장에 힘을 발할 수 있다. 기존 연합들, 부문 조직들 내지 노동조합들이 플랫폼 협동조합을 지원하거나 설립하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플랫폼 협동조합은 그런 조직들과 파트너가 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지원을 찾으라. 그리고 또한 당신의 기업이 그 보답으로 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을 찾으라. 그 조직들은 금융, 로비활동 및 다른 지원과 관련하여 도움이 될 수 있다.

 

  1. 품질

지역 노동자 집단들이 기업을 소유하고 운영할 때 앱, 서비스의 품질과 편리성을 낮추거나 심지어는 가격 수준에 문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 플랫폼 협동조합을 시작하기 전에 당신의 플랫폼 협동조합이 더 큰 벤처자본의 후원을 받는 플랫폼들에 대한 솔직한 대안을 실제로 제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깊이 숙고해서 판단하라.

 

플랫폼 협동조합을 만들 많은 기회가 있더라도 그 모형을 실현하는 것이 처음에 제시된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하지만 더 까다롭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렵채취인들은 어떻게 평등주의 문화를 유지했는가


  • 저자  :  Peter Gray PhD ((Peter Gray, Ph.D. : 보스턴 컬리지의 연구교수이며 『자유롭게 배우기』(Freed to Learn, Basic Books, 2013)와 『심리학』(Psychology, Worth Publishers)의 저자이다.))
  • 원문 : How Hunter-Gatherers Maintained Their Egalitarian Ways (2011. 5. 19)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그레이 박사는 이 글에서 수렵채취인들이 평등주의적 문화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세 가지 이론을 소개한다. 그는 이 셋 모두가 모두 옳다고 한다. 서로 경쟁하는 이론들이 아니라 보완적인 이론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는 유전자가 핵심이 아니고 문화가 핵심이라고 한다.

[수렵채취사회의 특징들]

그레이 박사는 세 이론을 소개하기 전에 ‘수렵채취인들이 평화적인 평등주의자들이었는가?’하고 묻고는 ‘그렇다’라고 간결하게 답하고 그 근거를 설명한다.

20세기에 인류학자들이 근대의 영향이 거의 미치지 않은, 멀리 떨어진 여러 지역에서 수렵채취사회들을 연구했는데, 이 사회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 혹은 다른 어디든, 정글에서든 사막에서든 여러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20~50명(아이들 포함)의 작은 무리를 지어 살았고 상대적으로 제한된 지역에서 사냥감과 식용 식물을 쫓아 이 캠프에서 저 캠프로 이동했다. 이웃 무리들에는 친구들과 친척들이 있었고 무리들 사이에 평화로운 관계가 유지되었다. 이들 사회의 대부분은 전쟁을 몰랐으며, 전쟁이 있는 경우 이는 수렵채취인들이 아닌 다른 호전적인 집단들과의 상호작용의 결과였다. 이들의 사회의 주된 문화는, 개인의 자율, 비지시적(non-directive) 육아법, 비폭력, 공유, 협동,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을 강조하는 문화였다. 그 핵심 가치는 개인들의 평등이었다.

근대인들의 평등관은 수렵채취인들의 평등관에 미치지 못한다. 수렵채취인들에게 평등은 각 개인이 식량을 발견하거나 포획하는 능력과 무관하게 식량에 대한 권리를 동등하게 가지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래서 식량이 공유되었다. 모든 물질적 재화가 공유되었기에 개인들이 가진 부의 차이가 있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무얼 할지를 말할 권리가 없었고 각자 자신의 결정을 했다. 이에 따라 부모도 아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할 권리가 없었다. 그래서 비지시적으로 아이를 키운다. 집단의 결정도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상사, 윗사람, 우두머리가 없었다.

이러한 특징은 정치적 색깔이 서로 다른 많은 인류학자들에 의해 보고된 것이다. 물론 문화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다. 모든 문화가 똑같이 평화적이고 똑같이 평등주의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일반적 측면들은 같다. 만일 당신이 ‘호전적인 원시부족들’에 대해서 읽거나 노예를 둔 토착민들에 대해서 읽거나 남녀 사이의 조악한 불평등이 존재하는 부족 문화에 대해서 읽게 된다면, 이는 수렵채취인들의 무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원시농경 사회와 수렵채취 사회를 혼동하여 수렵채취인들이 폭력적이고 호전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샤농(Napoleon Chagnon)이 『사나운 사람들』이라는 부제를 가진 자신의 책에서 농경사회 이전의 선조들을 대표하는 것으로 제시하려고 해서 유명해지는 바람에 이런 잘못된 식으로 자주 거론되는 남아메리카의 야노마미(Yanomami) 족은 당시 수렵채취인들이 아니었고 또 그 이전 수 세기 동안 아니었다. (그레이 박사는 샤농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야노마미 족은 수렵과 채취를 좀 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들이 심고 경작하고 수확하는 바나나와 플랜턴(plantain, 열대의 파초 속 식물)에서 칼로리를 섭취한다. 더욱이 이들은 근대 문명과 접촉이 없기는커녕 정말로 사악한 스페인들, 네덜란드인들,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계속적으로 침략당하고 학살당해서((Salamone, F. A. (1997). The Yanomami and their interpreters: Fierce people or fierce interpreters? Lanham, Maryland: University Press of America.))  좀 ‘사나워’ 진 것이 놀랄 일이 아니다.

수렵채취인들의 삶의 방식은 그 뒤를 이은 농경사회의 삶의 방식과 달리 강렬한 협동과 공유에 의존했으며 강한 평등주의적 정신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따라서 수렵채취인들은 어디서나 강한 평등주의적 정신을 유지했다.

그럼 수렵채취인들은 어떻게 이런 삶의 방식을 유지했을까?

[첫째 이론]

이론 1: 수렵채취인들은 권력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방지하는 ‘거꾸로 된 지배’(reverse dominance) 제도를 실행했다.

인류학자들은 수렵채취인들이 수동적으로 평등주의적인 것인 아니라 능동적으로 평등주의적이었음을 분명히 한다. 인류학자 리처드 리(Richard Lee)에 따르면 그들은 맹렬하게 평등주의적이었다.((Lee, R. B. (1988). “Reflections on primitive communism”. In T. Ingold, D. Riches, & J. Woodburn (Eds), Hunters and gatherers 1, 252-268 Oxford: Berg. )) 그들은 누가 허풍을 떨거나 잘난 체 하거나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을 참지 않으려 했다. 그들의 첫 방어선은 조롱이었다. 누가 (특히 젊은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행동을 하려고 시도하거나 일상생활에서 적절한 겸손을 보이지 못하면, 집단의 나머지 사람들(특히 어른들)이 그 사람을 적절한 겸손을 보일 때까지 조롱했다.

리가 연구한, 수렵채취인 집단의 규칙적인 관행은 ‘사냥한 고기 모욕하기’이다. 사냥꾼은 자신이 잡아온 고기를 공유하면서, 살도 없고 변변치 않다고 말함으로써 적절한 겸손을 표현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대신 그렇게 말한 다음 사냥한 사람을 조롱한다. 리가 집단의 연장자 가운데 한 사람에게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젊은이가 사냥감을 많이 잡으면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나머지 사람들을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랑을 하는 사람을 거부합니다. 언젠가 그의 오만이 그로 하여금 누군가를 죽이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의 고기가 변변치 않다고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그의 심장을 식히고 그를 부드럽게 만듭니다.”

크리스토퍼 보엄(Christopher Boehm)은 이런 관찰에 기반을 두고 수렵채취인들이 그가 ‘거꾸로 된 지배’라고 부른 관행을 통해 평등을 유지한다는 명제를 제시했다. 유인원의 모든 친척들에게서 보이는 표준적인 지배 위계에서는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지만, ‘거꾸로 된 지배’에서는 다수가 힘을 합하여 그들을 지배하려는 자의 에고를 수축시킨다.

보엄에 따르면 수렵채취인들은 평등주의적 정신을 어기는 행위들을 부단히 경계한다. 자랑을 하거나 공유하지 않거나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남보다 낫다고 여기는 사람은 공격적 행동을 멈출 때까지 성가심을 당하며, 성가심이 효과가 없으면 그 다음 단계로 따돌림을 당한다. 무리는 마치 평등 정신을 어긴 자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는 대부분 효과가 있다. 다른 사람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평등 정신을 어긴 자는 정상 상태로 돌아오거나 다른 무리를 찾아야 한다. 그는 새로 찾은 무리에서 정신을 차릴 수도 있고, 같은 일을 반복할 수도 있다. 보엄은 자신의 1999년 책 『숲 위계질서』(Hierarchy in the Forest)에서 이 ‘거꾸로 된 지배’ 이론에 대한 매우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한다.

[둘째 이론]

이론 2: 수렵채취인들은 인간 본성에서 놀이를 좋아하는 측면을 양성함으로써 평등을 유지했으며, 놀이가 평등을 증진한다.

이는 이 글의 저자인 그레이 박사의 이론이다. 2년 전에 그가 American Journal of Play에 게재한 논문(( Gray, P. (2009). “Play as a foundation for hunter-gatherer social existence”. American Journal of Play, 1, 476-522.))에서 이 이론을 처음 소개했다고 한다.

사회적 놀이(두 명 이상이 참여하는 놀이)는 반드시 평등주의적이다. 공격과 지배의 정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한 참여자가 다른 참여자보다 더 잘 한다는 것을 인식할 수는 있지만, 이 인식으로 인해 더 나은 사람이 상대방 위에 군림하게 되지는 않는다.

사람들만이 아니라 동물들의 경우에도 그렇다. 두 원숭이가 장난으로 싸움을 하는 경우에 강한 쪽이 일부러 접어주고 싸우며 상대를 다치게 할 공격을 피한다. 진짜 싸움과는다르다. 만일 강한 쪽이 이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약한 쪽은 도망갈 것이고 놀이는 끝난다. 따라서 놀이의 충동은 지배하려는 충동의 억제를 필요로 한다.

수렵채취인들은 그 사회적 활동의 모두에서 놀이의 태도를 일부러 양성함으로써 지배하려는 경향을 억제하고 평등주의적 공유와 협동을 촉진했다. 포유류 조상으로부터 인간이 물려받은 놀이 능력이 역시 포유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지배하는 능력을 가장 잘 상쇄하는 자연스러운 능력으로 진화한 것이다.

그레이 박사의 놀이 이론은 대체로 인류학 문헌들의 분석에서 거둔, 놀이가 수렵채취인들의 사회적 삶에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에 대체로 기반을 둔다. 그들의 사냥과 채취는 놀이로서의 성격을 띠었으며 종교적 믿음과 관행들도 그랬고 무리 내부에서나 외부에서 고기를 나누고 재화를 공유하는 관행도 그랬다. 심지어는 집단 내에서 규칙을 어긴 자들을 해학과 조롱을 통해 처벌하는 가장 공통적인 방법에서도 그랬다.

[셋째 이론]

이론 3: 수렵채취인들은 새로운 세대에 신뢰와 수용의 감정을 생성하는 육아 관행을 통해 평등 정신을 유지했다.

수렵채취인들은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놔두는 육아 스타일을 택했다. 그들은 유아들/아동들의 본능을 신뢰했으며 그래서 언제 돌봐줘야 하는지를 아이들 스스로 결정하게 했고 스스로 놀고 탐구하면서 학습하도록 허용했다. 아이들에게 체벌을 가하지 않았으며 꾸짖는 경우도 드물었다. 수렵채취인들의 도덕적 성격이 이 육아법에서 온다고 제안한 연구자는 엘리자베스 마샬 토머스(Elizabeth Marshall Thomas)이다. 그녀는 자신이 관찰한 육아법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친절하게 다루어진 아이들은 응석받이가 된다는 말을 때때로 듣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그런 방법이 얼마나 성공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다. 좌절이나 염려로부터 자유롭고, 즐겁고 협동적인 아이들은 모든 부모들의 꿈이다. 그 어떤 문화도 이보다 더 나은, 더 똑똑하고 더 호감이 가며 더 자신 있는 아이들을 키운 적이 없다.”((Thomas, E. M. (2006). The old way. New York: Farrar, Straus & Giroux. p 198-199))

이 육아 이론을 경험적 증거를 가지고 입증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이론은 직관적으로 말이 된다. 처음부터 부모들이 신뢰하고 잘 대해준 유아들과 아동들이 자라서 남을 신뢰하고 잘 대해줄 것이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할 필요가 하나도 혹은 거의 없으리라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이다.

육아 이론은 나의 놀이 이론과 겹친다. 수렵채취인들은 아이들이 하루 종일 놀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라서 삶이 놀이라고 믿게 되고 어른으로서 맡게 되는 과제들 모두를 놀이의 분위기에서 수행하게 된다. 이 분위기가 지배하려는 충동을 상쇄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제시하는 그레이 박사의 주장의 핵심은 유전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에 있다. 인류는 분명 한편으로는 평화롭고 평등주의적이 될 유전자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호전적이고 전제적이 될 유전자적 잠재력도 가지고 있다. (혹은 그 사이의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 만일 위 세 이론이 옳다면 그리고 우리가 평등과 평화의 가치를 진정으로 믿는다면, 이 세 이론이 제시하는 바를 실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레이 박사의 생각이다. 즉 ① 에고의 바람을 빼는 방법을 찾을 것. ② 삶의 방식을 놀이에 더 가깝게 만들 것. ③ 아이들을 신뢰하는 방식으로 키울 것.




고조되는 협동조합 운동 – 슈나이더와의 인터뷰

 


  • 저자  :  Nathan Schneider, Amy Goodman, Juan Gonzalez
  • 원문 :  Interview: Nathan Schneider with Amy Goodman and Juan Gonzalez, Democracy Now (2018.09.18)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Noncommercial-No Derivative Works 3.0 United States License

  • 분류 : 번역

  • 옮긴이 : 민서
  • 설명 : 아래는 Democracy Now!의 2018년 9월 18일 자 뉴스에서 네이선 슈나이더(Nathan Schneider)를 인터뷰한 것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번 주는 ‘월가를 점거하라’ 운동 7주년이자 미국 투자 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여 세계 금융위기가 촉발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이 위기는 ‘월가를 점령하라’, 스페인의 M-15 운동 및 그리스의 긴축재정 반대운동을 포함해서 전 세계에서 대대적으로 반자본주의 운동들을 촉발했다. 저자이자 활동가인 네이선 슈나이더(Nathan Schneider)는 “우리가 이 날들, 특히 경제가 붕괴된 날을 거의 추념하지 않는 ··· 이유는, 붕괴의 원인···을 다루기 위해 우리가 정말로 어떤 진지한 일을 해 본적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슈나이더는 자신의 신간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활한 협동적 소유권에 기반을 둔 대안적 경제 모형의 윤곽을 그린다. 이 신간의 제목은 『모두를 위한 모든 것—앞으로의 경제를 형성하는 급진적인 전통』(Everything for Everyone: The Radical Tradition That Is Shaping the Next Economy)이다.

 

후안 곤살레스

이번 주는 ‘월가를 점거하라’ 운동 7주년이자 미국 투자 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여 세계 금융위기가 촉발된 지 10년이 되는 날입니다. 미국 정부가 월 스트리트의 최대 부실 은행 몇 곳에는 공적자금을 지원했지만, 미국과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집과 평생 모은 재산을 날렸습니다. 유럽의 활동가들은 주말 내내 10주년을 추념하기 위해 프랑스와 독일 은행 밖에서 항의했습니다.

 

에이미 굿맨

금융위기는 이곳 미국에서의 점거운동과 스페인의 15-M 운동 및 그리스의 긴축재정 반대운동을 포함해서 전 세계 반자본주의 운동들을 대대적으로 촉발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금융위기의 영향에 관해 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네이선 슈나이더씨와 함께 합니다. 네이선 슈나이더씨는 협동적 소유권에 기반을 둔 대안적 경제 모형의 윤곽을 그리는 신간의 저자이시며, 협동조합 운동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다시 고조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슈나이더씨의 책이 막 발간되었습니다. 책 제목이 『모두를 위한 모든 것—앞으로의 경제를 형성하는 급진적인 전통』(Everything for Everyone: The Radical Tradition That Is Shaping the Next Economy)입니다. 최근에는 「부자들이 미국을 망가뜨리고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Rich People Broke America and Never Paid the Price”)라는 헤드라인이 달린 그의 이 <바이스>(Vice)지에 실렸습니다. 또한 『고마워, 아나키—오큐파이 아포칼립스로부터의 소식』(Thank You, Anarchy: Notes from the Occupy Apocalypse)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네이선 슈나이더 씨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이며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캠퍼스의 미디어학 교수입니다.

<디마크러시 나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막 볼더에서 오셨군요. 자, 경제 붕괴라고 불리는 것의 10주년과 당신이 아주 큰 부분을 차지했던 오큐파이운동 7주년, 이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네이선 슈나이더

우리가 이 날들, 특히 경제가 붕괴된 날을 거의 추념하지 않는 게 놀랍습니다. 경제 붕괴가 지난 10년을 규정했고 제 세대를 규정했으며 아주 많은 사람들의 삶을 규정했는데도 말입니다. 우리가 그날을 추념하지 않는 이유는, 붕괴의 원인과 붕괴에 대한 끔찍한 반응을 다루기 위해 우리가 정말로 어떤 진지한 일을 해 본적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붕괴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집과 일자리를 잃어야 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상상력이 바닥나 있는 동안에도, 풀뿌리 수준에서 그리고 점점 더 정책 수준에서 운동이 조용하게 성장하여 이런 협동조합 기업 전통을 통해 세상을 바꿀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곤살레스

그 몇 가지 예를 들어 주시겠습니까? 아시다시피 경제 위기 이전에도 수십 년 동안 미국에 협동조합 운동이 있었죠. 붕괴 이후에 일어난 변화를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말씀해주세요.

 

슈나이더

물론, 오랜 전통이 있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것은 농부들에게 힘을 실어준 전통이자 소기업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해준 전통이지만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저의 조부가 소규모 철물점들이 살아남고 번창할 수 있도록 하는, 전국적인 철물점 구매협동조합을 만드는 데 기여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저는 그것이 협동조합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배운 어떤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붕괴 이후 몇 년 동안 예를 들어, 2011년 점거 운동을 하는 동안 ‘예금 옮기기’(Move Your Money) 날이 있었는데 이날 수십만 개의 계좌가 대형 은행에서 신용협동조합(은행에서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들이 소유한 은행)으로 이동했습니다. 전국적으로 특히 도시에서 노동자 소유권에 대한 관심, 즉 노동자들이 그들이 고용된 사업체의 소유주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점점 더 연방정부의 전략으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놀라울 정도로 초당파적인 기회입니다. 10년 전 있었던 우리 경제 시스템의 실패를 실질적으로 벌충할 조용한 기회죠.

 

곤살레스

하지만 일부 약탈적인 자본가들도 사업가들 간의 협동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거나 발전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다소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에어비앤비, 우버 같은 공유 경제 전체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일종의 협동 아이디어를 채택하고 있고 이것으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슈나이더

맞는 말씀입니다. 아시겠지만 협동조합 만들기가 사실상 원조 크라우드펀딩이었으며 원조 공유경제였습니다. 대부분 우리는 이제 우버와 에어비앤비의 경제가 진정한 공유경제가 아니라 추출경제라는 사실을 알 만큼 똑똑해졌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제가 관심을 가지고 주로 추적해 온 것은 세계 전역에서 일군의 사람들이 진정한 공유경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입니다. 디지털 도구들을 사용해서 맨 아랫사람까지 소유권과 거버넌스를 모두 공유하고 최전방 노동자들—청소하는 사람들과 운전자들 등등—이 자신들의 노동 기준을 직접 결정하는 긱경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죠.

 

에이미 굿맨

이것은 당신이 ‘월가를 점거하라’에서 당신이 말하는 장면입니다. 일곱 번째 기념일이 어제 9월 17일 월요일이었는데요, 이것은 저기 주코티 공원에서 당신이 말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집회입니다. 제 생각에 현재의 핵심요구 사항은 조직할 권리, 공공장소에서 정치적인 대화를 나눌 권리, 말하자면 월 스트리트에 민주주의가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 줄 권리인 것 같습니다.”

슈나이더씨, 저것은 7년 전 당신의 영상이에요. 이제 당신은 이 책을 쓰셨군요. 당신이 말하고 있는 이 급진적 전통과 전 세계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협동조합, 구체적으로 이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당신이 기대를 가장 많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슈나이더

놀랍게도 저 광장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일상적인 삶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한다는 생각은 우리가 잃어버린 일종의 희망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1930년대와 40년대에도 미국 정부가 촉진하고 있던 그런 것이었죠. 그것은 잊혀진 가능성, 뭐 그런 것이었습니다.

개개의 기획들과 관련해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플랫폼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방법을 습득하는 긱경제가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지금껏 우리가 보아온 것과는 사뭇 다른 기회가 놓여있는데, 현재 실버 쓰나미(silver tsunami)(([옮긴이] 실버 쓰나미(Silver Tsunami)는 급격한 인구 고령화를 빗댄 말로 주로 베이비부머들의 은퇴시기를 나타낸다.))로 알려진 현상으로 기업 소유주들 전부가 은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전국의 고용주들인 중소기업들이 사적 지분에 잡아먹히고 있습니다. 바로 이 상황이야말로 직원 소유권으로 전환할 기회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정책도구와 제대로 된 쓸모 있는 금융도구를 가지고 있다면 말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기회는 엄청난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사회운동들과도 연결됩니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위한 강령은 그 정책제안들에서 ‘협동’과 유사한 단어들을 40번 이상 언급했습니다. 이것은 사회운동이 협동조합 기업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곤살레스

그렇다면 정치권력 구조에 어떠한 종류의 변화도 없다면 입법자들이 협동조합 운동들을 억제할 방법과 사회에서 특혜 받는 위치에 있는 독점자본이나 대자본을 유지할 방법을 항상 내놓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슈나이더

이상한 것은 사실상 이것이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로지르며 일어나고 있는 어떤 것이라는 것입니다. 조용하게 일어나고 있긴 하지만요. 아시다시피 실제로 민주당과 공화당의 2016년 강령은 노동자 소유권이 늘어나는 것을 지지합니다. 지난 2년 동안 민주당은 이것이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기를 원하는 쟁점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 왔죠. 불과 2주전에 기업의 노동자 소유권과 기업의 전환을 촉진하는 메인스트리트 고용인소유권 법안(Main Street Employee Ownership Act)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래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양극화된 이 순간에 우리에게 흥미로운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미 형성되기 시작한 정치적 토대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토대를 강화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10년 전 붕괴를 만들어 낸 바로 그 시스템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는 요구사항을 훨씬 큰 소리로 키워서 저들이 경청하도록 만들기만 하면 됩니다.

 

굿맨

긱경제와 조작된 경제(rigged economy)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슈나이더

조작된 경제—맞습니까?—는 책임이 위로 향하는 경제로서, 이 경제에서 기업은 궁극적으로 소수의 주주들과 대규모 투자자들에게만 책임을 지게 됩니다. 기업이 모진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기업의 책임은 위로 향하고, 담보대출금 때문에 위태로운 사람들은 책임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입니다.

긱경제는 어떤 의미에서 기회이자 위험입니다. 긱경제는 그것이 노동자들이 수십 년 동안, 수백 년 동안 쟁취해온 것을 포기함을 의미한다는 점에서는, 종종 그런 의미였다는 점에서는 위험입니다. 하지만 긱경제가 보다 유연한 노동의 기회를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노동자들이 실제로 통제권을 쥐고 있는 노동의 미래를 창출할 기회가 됩니다.

 

굿맨

마지막으로, 일어난 일에 대해 누가 책임을 졌는가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10년 전에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가 하는 사실이 있죠?

 

슈나이더

제 생각에 우리는 사실상 아무에게도 충분할 정도로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가지 않은 사람 등에 대한 이야기도 한동안 많이, 혹은 상당히 있었습니다.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도구세트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가 준거할 수 있는, 입증된, 사실상 초당적인 전통도 있습니다.

 

굿맨

네이선 슈나이더씨는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캠퍼스의 미디어학 교수입니다. 그의 신간은 『모두를 위한 모든 것—앞으로의 경제를 형성하는 급진적인 전통』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후안 곤살레스와 함께 하고 있는 에이미 굿맨입니다. 함께 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