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즈로서의 도시에 대한 새로운 작업의 물결



 

커먼즈로서의 도시에 대한 새로운 작업의 물결

최근에 커먼즈로서의 도시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물결이 일었다. 새로운 책들이 출판되고 공개행사들과 현장 활동들이 있었다. 각각의 노력은 다소 상이하지만, 모두가 도시 거버넌스의 우선권과 논리를 커머닝의 원리를 향하는 방향으로 다시 정의하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통한다.

나는 특히 『예일 법과 정책 평론』(Yale Law and Policy Review)에 실린 새 학술논문 「커먼즈로서의 도시」(“The City as a Commons”)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포드햄 로스쿨(Fordham Law School) 교수 포스터(Sheila R. Foster)와 이탈리아의 법학자 이아이오네(Christian Iaione)가 공동으로 쓴 이 논문은 탐구와 행동주의라는 새로 출현하는 분야에서 획기적인 종합을 이룬 글이다. 68쪽에 해당하는 이 논문은 도시를 커먼즈로서 개념화하는 데서 맞닥뜨리는 주된 철학적·정치적 과제들을 배열하고 271개의 각주에서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포스터와 이아이오네는 “커먼즈가 더 포괄적이고 공정한 형태의 ‘도시 만들기’의 가능성을 여는 프레임이자 일단의 도구들로서의 역할을 할 잠재성”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도시들이 시민들이 공통재로서 요구할 수 있는 자원을 사유화하거나 독점적 공적 규제로써 통제하지 않으면서 그 자원을 다스리거나 관리하는 문제를 부각시킬 잠재력을 커먼즈는 가지고 있다.”

저자들은 도시에 있는 커먼즈 자원의 역사와 현재 상태를, 그리고 공원보존위원회(park conservancies)(([옮긴이] 공원의 보존을 담당하는 공적 기구이다.)), 공동체 토지 신탁(community land trusts), 지분제한형 조합주택(limited equity cooperative housing)과 같은 거버넌스의 대안적 양태들의 부상을 탐구하는 데로 나아간다. 포스터와 이아이오네는 “도시 커먼즈의 비극”에 대해서 (더 정확하게는 커먼즈를 자원으로만 보는 데서 발생하는 유한한 자원의 과도한 착취에 대해서) 쓰면서도, 도시 환경에서의 “커먼즈의 산출”에 대해 말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장을 연다. 이들은 핵심 문제가 단지 재산의 소유만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적극적 협동과 관계를 양성하는 것임을 이해하고 있다.

“집단적으로 생산되는 자원의 가치는 인간의 활동의 결과이며 사람들이 자원에 접근하고 그 자원을 사용하는 능력에 달려있다”고 이들은 쓴다. “많을수록 즐겁다”는 원리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이해된 커먼즈는 도시를 위한 가치의 풍요로운 발생처로 간주될 수 있다. 만일 사람들이 이 사실을 인식하기고 적절한 정책과 지원책을 만들어내기만 한다면 말이다.

최근에 출판된 또 하나의 중요한 저작은 라모스(Jose Ramos)가 편집한 선집 『커먼즈로서의 도시: 정책모음집』(The City as Commons: A Policy Reader)이다. pdf 파일로 무상으로 다운받을 수 있는 이 책은 도시를 커먼즈로서 창출하기 위한 정책 옵션들과 전략들에 초점을 맞춘 34개의 기고문들을 담고 있다. 다루는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 도시계획, 공공도서관, 공동체 통화, 시간은행, 플랫폼 협동조합, “코즈모-로컬리즘”(cosmo-localism)(([옮긴이]전지구적으로 분산된 지식 및 디자인 커먼즈들과 지역화된 가치생산의 결합이 가진 잠재력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http://actionforesight.net/cosmo-localism-and-the-futures-of-material-production 참조)), “시민조합토지”(civic union land), 오픈 데이터, 도시 커먼즈 보호 갱생을 위한 볼로냐 조례, 커머닝, ‘조세체납 사유재산'(([옮긴이] 재산을 소유한 시민이 세금을 내지 못한 경우 그 부채를 이윤을 노리는 민간투기업자에게 조세선취특권(tax lien)의 형태로 팔지 않고 시의 관리 아래 두어 공공재로서 사용하는 등 도시 커먼즈를 보호하는 것과 연관되는 주제이다)) 등이다.

바로 지난주에 커먼즈에 대한 책이 또 한 권 나왔다. 브리턴(Tessy Britton)이 쓰고 앤더슨(Amber Anderson)이 삽화를 넣은 『그림이 있는 참여도시 가이드』(The Illustrated Guide to Participatory City)이다. 접근하기 쉽고 재미있는 이 책은 ‘참여 문화’가 어떻게 도시를 되살리고 더 탄력 있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 책은 소규모 참여 기획들의 가치를 부각시키며, 이 기획들이 다 합쳐지면 많은 더 크고 서로 얽힌 사회 문제들을 다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낸 영국의 프로젝트인 <참여 도시>(Participatory City)는, 실질적인 참여의 규모를 (연구가 가리키는 대로) 변형에 유익함을 가져오는 데 필요한 수준으로 확대하기 위해서 현재 큰 “시범 지구”(demonstration neighborhood)를 개발하는 중이라고 설명한다. <참여 도시>는 현재 5년 동안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20만 내지 30만의 시민들로 이루어진 도시를 찾고 있다.

최근에는 나 자신도 커먼즈로서의 도시 전선에서 활동해왔다. 9월 1일에는 암스테르담의 문화시민센터인 빠크회스 데 즈베이헤르(Pakhuis de Zwijger)에서 이 주제로 강연을 했다. 강연 이후에 이 분야의 전문가들 네 명―랩겁(LabGov)의 이아이오네(Chris Iaione), 커먼즈 네트워크의 해머스틴(David Hammerstein), 바흐 쏘사이어티(Waag Society)의 스티커(Marleen Stikker), HvA의 마요어(Stan Majoor) ―으로 이루어진 토론단이 활발한 토론을 했다. 2시간 15분짜리 비디오를 여기서 볼 수 있다.

도시를 다르게 보는 방법론적 도구들을 제공하는 <도시 르네상스 연습>이라고 불리는 프로젝트는 커먼즈로서의 도시를 다음과 같이 멋지게 정의한다.

도시는 공통체(commonwealth)(([옮긴이] ‘commonwealth’는 ‘common’과 ‘wealth’가 조합된 단어로서, 말 그대로 직역하면 ‘같이 잘 살고 있음’의 의미인데, 실제로는 ‘공공복지’(public welfare)라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국가’(state)라는 의미로도 사용되며 ‘공동체’(community)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이 이외에도 여러 의미가 있으나 현재의 맥락에서는 논외로 해도 무방하다.) 옥스퍼드영어사전의 다음 예문에서 로크는 자신이 ‘commonwealth’를 ‘공동체 일반’이라는 의미로 사용함을 말하고 있다.

1690 J. Locke Two Treat. Govt. ii. x. §133 By Commonwealth, I..mean, not a Democracy, or any Form of Government, but any independent Community which the Latins signified by the word Civitas.

다음 예문에서는 더 구체화된 의미의 공동체, 즉 민주적 원리에 의해 구성된 공동체라는 의미가 제시된다.

1583 Sir T. Smith’s De Republica Anglorum i. x. 10 A common wealth is called a society..of a multitude of free men collected together and vnited by common accord & couenauntes among themselues. (* ‘u’와 ‘v’를 바꾸어 읽으면 된다.)

네그리와 하트의 저서 Commonwealth 에서 ‘commonwealth’는 그저 일반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공통적인 것’(the common)에 확연하게 기반을 둔 공동체로서 ‘커먼즈’(commons)와 거의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공통적인 것’은 ‘사적인 것’(the private)과는 당연히 다르고 ‘공적인 것’(the public)과도 다르다. 그래서 이 Commonwealth의 한국어 역자들은 이 점을 감안하여 ‘공통체’라는 번역어를 사용했다. 여기서도 이 번역어를 사용했다.)) 이며 공유된 자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지식과 집단적 실천에 기반을 둔 협동적 환경이다. ‘커머닝’은 도시 조직화의 구성적 과정으로서, 공동체들을 수립하고 재생산하며 경계들·프로토콜들·분배원칙들을 확정한다. 도시 커먼즈는 소진되고 노후화되고 강탈될 수 있는 물질자원과 관계자원(relational resources)을 공히 관리하는 잡종제도(hybrid institutions)이다. 커먼즈는 언제나 보호되고 되찾아지고 갱생되어야 한다.

나는 이 주제가 다음번에는 어떻게 달라질지 정말로 보고 싶다. 나는 11월 17일에 내가 기조연설을 하는 바르셀로나의 ‘스마트 시티 엑스포’(Smart City Expo)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기를 희망한다.

[정리자 주석] 




반란적 상상력의 부상

* 아래는 지난 글 「’도시를 구축하라’―예술, 문화, 커머닝의 중대한 역할」(http://minamjah.tistory.com/111)에서 소개한 글모음집 『도시를 구축하라―커먼즈와 문화를 보는 관점들』(Build the City: Perspectives on Commons and Culture)에서 이자벨 프레모(Isabelle Fremeaux)와 존 조던(John Jordan)의 롭 홉킨스(Rob Hopkins)와의 대담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대담은 원래 https://www.transitionnetwork.org/blogs/rob-hopkins/2015-04/isabelle-fr-meaux-john-jordan-and-rise-insurrectionary-imagination에 올려져있다. 이 웹사이트의 텍스트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이 글은 이 ‘일부’에 속하지 않는다)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 Alike 2.0 UK: England & Wales License의 적용을 받는다. (Terms and Conditions 참조.) 롭 홉킨스는 활동가이자 작가이며 트랜지션 타운즈 네트워크의 창립자이다. 이자벨 프레모와 존 조단은 반란적 상상력 실험실의 공동창립자이다. 이 실험실은 이자벨에 따르면 “현실적 혹은 잠재적 공간들을 열고 예술가들과 활동가들을 한데 모아 작업하여 더 창조적인 형태의 저항과 시민불복종을 창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다.

 

 

반란적 상상력의 부상

 

 

 

 

이자벨 프레모

우리가 하는 일은 여러 차원으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많은 실험을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실험기획들 혹은 실험꼭지들이라고 즐겨 부릅니다. 집단적으로 실험한다는 생각, 때로 실패할 수도 있고 실패의 능력을 수용함으로써 더 창조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생각을 우리는 좋아합니다. 나는 학자(an academic)로, 훈련가로 훈련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하는 일이 가진 훈련의 차원으로 더 들어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술가들 및 활동가들과 하루에서 2주일까지 많은 워크숍들과 훈련을 가집니다. 그리하여 예술과 행동주의 그리고 종종은 퍼머컬처(permaculture) 원칙 사이의 상승효과를 보고자하며 이 세 도메인이 융합할 때 우리가 어떻게 더 창조적이고 더 효과적이며 더 생산적이고 더 탄력 있는 기획들을 창출할 수 있는지를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 기획들을 저항과 시민불복종의 형식들을 향한 것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존 조던

우리가 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예술’입니다. 우리는 정치적 예술이라는 생각을 매우 비판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정치적 예술은 정치적 문제들을 다루는 예술을 말합니다. 우리는 때로 영화도 만들고 책도 냅니다만, 이를 우리는 ‘재현으로의 휴가’(holidays in representation)라고 부릅니다. 우리 작업의 대부분은 영화나 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재현―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기후 변화에 대해서 공연을 하고 생물다양성의 상실에 대해 조각상을 설치하거나 기후 정의에 관한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생각―을 진정으로 비판하는 실험들을 실제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우 명확하게 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것 그리고 우리 생각에 매우 중요한 것은 실제로 예술가들과 활동가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며, 세상에 무언가를 보여주기보다 세상을 직접 변형시키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치의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예술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두 세계와 함께 작업을 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예술가들은 풍부한 창조성, 고정된 틀 외부에서 사유를 하는 많은 능력, 사물을 시학으로 변형시키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종종 에고가 강하고 사회참여에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

 

반면에 활동가들은―물론 이는 일반화입니다―사회비판을 많이 하고 집단적으로 작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상상력에서 실패하는 일이 잦습니다. 똑같은 행사를 치르고, 똑같은 종류의 시위를 하며, 똑같은 사회변형 도구를 사용하는 일이 흔합니다. 이 두 세계를 한데 모음으로써 우리는 무언가 다른 것을 실제로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는 항상 사회운동 내에 몰입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기후캠프>(the Climate Camp) 내에서 조직가로서 5년을 보냈으며 그 캠프를 조직하는 동시에 예술가들과 활동가들을 모으는 워크숍들과 행동들을 조직했습니다. 예를 들어, ‘대반란 뗏목경주’(the Great Rebel Raft Regatta)라고 불린 것을 만들어내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우리는 <기후캠프>가 켄트의 킹스노스(Kingsnorth)에서 열리기 일주일 전에 한 숲에 보트들을 잔뜩 숨겨놓았습니다.

 

<기후캠프>는 기후재난에 대한 교육과 대안을 창출하기 위해 구성된, 자주관리되는 캠프였습니다. 그런데 캠프의 마지막에는 늘 행동을 했습니다. 킹스노스에서의 이 캠프[각주:1]는 실제로 이미 존재하는 발전소에 추가될 새 화력발전소의 건설을 중지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우리가 한 프로젝트인 ‘대반란 뗏목경주’는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친연그룹들로 모았습니다. 숲에 배를 숨겨놓으면서 럼 주 한 병도 숨겨놓았으며, 보물지도도 함께 놓았습니다.

 

사람들을 친연그룹별로 보물지도가 있는 숨겨놓은 보트를 찾으러 보냈습니다. 사람들은 보트를 찾아내고 숲에서 하룻밤을 자고는 오전 7시에 숲을 빠져나와 보트를 강에 띄우고 발전소를 찾아 봉쇄하러 갑니다. 우리는 모두 약 150명인데 보트 하나가 어찌어찌해서 발전소의 3분의 1을 봉쇄하고 약 3분의 1을 폐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각주:2] 우리에게 그것은 정말이지 실제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면서 재미있고 모험적인 행동 형태들을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보물지도와 럼주 병, 그리고 해적처럼 차려입은 사람들의 미학 전체가 행동주의에 유희의 요소를 도입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절대적으로 근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롭 홉킨스

당신들은 ‘반란적 상상력’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조금 더 말해주실 수 있나요?

 

프레모

상상력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반란의 근본적 성분입니다. 우리는 예술에 종종 결여된 공격과 저항의 요소를 되찾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실험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상력이라는 단어에 대한 매우 부드러운 이해와 그 단어의 부드러운 함축과 무관하게 상상력을 생각하기를 요구하는 것이 됩니다. 상상력은 매우 예쁘고 창조적이고 아이 같은 어떤 것으로 간주되는 일이 매우 잦잖아요. 우리의 요구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 바인 저항의 실존을 실질적으로 되찾음으로써 이루어집니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반란적’이라는 단어를 우리 단체의 이름 안에 넣은 것입니다.

 

조던

우리의 웹사이트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반란적 상상력 실험실>(ii랩)은 예술과 삶, 창조성과 저항, 제안과 반대를 융합합니다. 우리는 광대반란군(a rebel clown army)을 모집하며 영국을 돌아다니고 탈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강좌들을 운영하며 은행가들에게 눈뭉치를 던지고 수백 개의 버려진 자전거들을 불복종의 기계들로 바꾸며 석탄을 사용하는 발전소를 폐쇄시키기 위해서 반란 뗏목경주를 주최한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우리는 반란을 예술로 보며, 예술을 다가오는 반란을 위한 준비의 수단으로 봅니다. <ii랩>은 지금 브리트니(Brittany)에 있는 퍼머컬처 농장에 국제적인 유토피아적 예술/삶 학교를 세우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는 예술가들과 활동가들의 분리를 믿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두 용어를 믿지도 않습니다. 우리 생각에 예술을 일상생활에서 분리된 행동으로 보는 것은 서양 전통에서 매우 최근의 현상입니다. 대부분의 문화들에는 예술과 일상생활의 분리가 없습니다.

 

우리 생각에 행동주의, 즉 활동가들이 사회 변화를 독점한다는 생각은 예술이 창조를 독점한다는 생각과 똑같습니다. 사실은 모두가 능력을 가지고 있고 세상을 언제나 나름의 방식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변증법적 관계입니다. 우리는 두 생각을 모두 제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반란을 창조하거나 아니면 특정 종류의 혁명적 변화를 창조하려면 (이는 우리 생각에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자본주의와 기후재난에 대안을 제시하고 일어나고 있는 문제에 저항해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이 둘은 분리될 없습니다.

 

우리는 사회변형의 DNA가 두 가닥인 것을 압니다. <트랜지션 타운즈>처럼 대안들의 창조라는 가닥이 있고, 저항, 즉 화석연료 산업과 거기에 돈을 대는 은행들 등에의 저항이라는 가닥이 있습니다. 둘 가운데 하나만 있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저항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적이 누구인지를 잊을 것이고 우리의 기획들이 그저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인 녹색 자본주의를 위한 실험들이 되는 데 그치는 위험이 생길 것입니다. 한편 대안들을 창출하지 않는다면 저항의 문화만이, 그리고 항상 ‘아니오’라고 말하는 문화만이 존재할 것입니다. 이런 문화는 정신적 건강과 개인적 지속 가능성의 관점에서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타서 없어지듯이 소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두 운동들의 분리가 확연한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1970년대가 고전적 사례입니다. 우리의 모든 기획들에서 우리는 대안적인 삶형태의 모델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비행기를 타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행기에서 인생을 보내는 국제적 예술계의 이력을 우리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생태적으로 삽니다. 우리는 우리가 세운 유기농 농장의 이동식 원형 텐트에서 삽니다. 그 농장에서 우리는 땅을 생산에 투입합니다. 우리에게 그것은 반드시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통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저항 작업은 항상 위계 없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기획들의 초기에 합의를 가르치며 일이 성사되게 만들기 위해서 퍼머컬처 원칙들을 사용합니다.

 

한 사례를 예로 들죠. 이 사례는 우리의 가장 최근의 기획이 이산화탄소 방출과 기후변화에의 적응 등에 개한 보편적 동의를 이루기 위해서 2015년 12월에 파리에서 열린 ‘COP 21’ 컨퍼런스(유엔 기후 정상회담)에 맞추어진 것이기 때문에 적절합니다. 2009년에 우리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COP 15’ 무렵 두 미술관으로부터 프로젝트들을 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브리스틀의 <아놀피니 화랑>(the Arnolfini Gallery)과 코펜하겐의 <현대예술센터>(the Centre for Contemporary Art)입니다.

 

우리는 이미 코펜하겐에서 얼마 동안을 보낸 후였습니다. 우리는 대안들에 관해 쓴『유토피아를 통과하는 경로들』(Paths Through Utopias)이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은 불행하게도 프랑스어, 한국어, 독일어로 말고는 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코펜하겐의 자주관리 공동체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에서 얼마 동안을 보냈습니다. 그때 우리는 코펜하겐 전역에 버려진 수천 개의 자전거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저걸 재료로 쓰자고요. ‘쓰레기를 만들지 말라’라는 퍼머컬처 원칙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자전거들을 이용하여 코펜하겐의 쓰레기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들을 시민 불복종의 도구들로 바꿔놓자고요,

 

전통적으로 간디, 소로우(Thoreau)의 전통에서 시민 불복종은 몸을 통한 것이며, 우리는 몸과 자전거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두 미술관에 제안했고, 둘 다 동의 했습니다. 그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기후캠프>와 함께 작업을 했으며, <아놀피니 화랑>에서 모형을 만들자는 것이 우리 생각이었습니다. 이 화랑에서 우리는 50명의 사람들을 자유롭게 개방된 워크숍으로 모아서 퍼머컬처 원칙들의 기초 등을 가르치곤 했는데, 모형을 거기서 디자인한 다음에 코펜하겐으로 가져와 크기를 키우자는 것이었죠.

 

두 미술관 모두가 “미술관에서 용접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을 때가 재미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아, 바깥에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그 안에 모형을 넣을 수 있으며 그곳이 어쨌든 더 공적일 테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제가 바로 해결책인 것이었죠, 그런 후 코펜하겐의 큐레이터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이 큐레이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컨테이너가 있는데, 다만 작은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덴마크의 경찰하고 이야기를 막 했는데, 자전거의 정의에 관해서 일정한 규칙들이 있다고 합니다.”

 

자전거는 바퀴를 세 개 이상 가질 수 없다, 3미터를 넘으면 안 된다 등등. 만일 이 규칙에서 벗어나면 경찰에 알려야 하고, 디자인을 보여주어야 하며, 경찰이 다시 와서 도로에 나갈 권리가 있다고 말할 때까지 3주일이 걸릴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했습니다. “그거 매우 흥미롭군요. 그런데 우리는 시민 불복종을 실행합니다. 우리는 자전거들이 합법적이든 아니든 별로 개의치 않아요.” 여기서 잠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 큐레이터는 마치 “그래서 당신들은 정말로 그 일을 하려는 거군요······”라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우리는 예술 세계에서 이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예술 세계의 많은 부분이 정치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매우 급진적인 텍스트들과 급진적인 제안들을 합니다. 아마 그 큐레이터는 우리가 이런 물건들을 만들어서 미술관에 세우고 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것이 요점이 아닙니다. 요점은 실제로 행동을 취하는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그 다음에 미술관은 몸을 뺐지만, 우리는 코펜하겐에서 예전 스퀏 점유지였던 곳을 찾았습니다. 캔디 공장(the Candy Factory)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예술 및 문화 센터로서 우리는 거기서 프로젝트를 진행시켰습니다. 마지막에는 약 200명의 사람들이 동참하여 유엔 기후회담을 기업이 좌우하는 데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우리가 이른바 지금 유행을 크게 타고 있는 정치적 예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정치적’, ‘급진적’, ‘사회참여적인’ 등의 단어를 사용하는 수많은 2년 주기의 행사들, 미술관 전시회들, 극장 축제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생각에는 이 가운데 많은 부분이 “정치를 재현한 그림들”(pictures of politics)라고 우리가 부르는 것입니다.

 

홉킨스

당신들은 “좌파는 욕망과 신체를 사용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고 자본주의와 우파는 그것을 매우 잘 한다”라고 썼습니다. 이 말이 함축하는 것을, ‘트랜지션’(이행)에 대해 함축하는 바를 포함하여, 이야기해 주실 수 있죠?

 

프레모

좌파에는 어떤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이는 크게 일반화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태를 모르는 것이 문제이고 따라서 더 많은 사실들, 숫자들, 정보, 보고서들을 산출하여 사람들이 무엇이 진행되는지를 알게 하면 된다고 느끼는 경향입니다. 수치를 보여줄 수 있으면, 멸종되고 있는 몇몇 종에 대한, 혹은 영향을 받고 있는 몇몇 사람들에 대한 더 좋은 그림을 보여줄 수 있으면, 실업률 등의 수치를 보여줄 수 있으면, 그러면 사람들이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그런 생각입니다.

 

이와 달리 우리 생각에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바가 매우 자주 문제가 됩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들의 삶의 구조였던 사물들과 가치들을 고수하는 거죠.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합리적인 생각이 아니라 욕망과 있을 수 있는 일에 대한 환상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이 우리 생각입니다.

 

미국 작가인 스티븐 던컨(Stephen Duncan)의 멋진 말이 있습니다. “있을 수 있는 것에 대한 꿈”에 관해 아주 아름답게 한 말이지요. 있을 수 있는 것에 대한 꿈은 좌뇌에 있다기보다 정서에, 신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양자를 결합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목욕물과 함께 아이를 내다버리는 식으로 “모든 보고서를 멈추어라, 모든 연구를 멈추어라, 모든 과학을 멈추어라”라고 말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자는 것이지요.

 

숫자는 뒷받침으로서, 목발로서 사용되어야 하며, 우리들 대부분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더 정의롭고 건강하고 편하며 즐거운 삶을 정서와 신체를 통해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순전히 합리적이기만 한 어떤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풀기에 매우 복잡한 매듭들 가운데 하나와 관련이 있습니다. 더 많으면 반드시 더 좋은 삶이 온다는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큰 거짓말이 바로 이 매듭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진실이 아님을 압니다. 그러나 이는 풀기가 어려운 어떤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가치를 말하고 그것에 호소해서 그 매듭을 풀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트랜지션 타운즈’ 같은 프로젝트에 새로운 가르침이 될 수 있는 생각 가운데 하나는 이 정서들은 있을 수 있는 것에 대한 긍정적 정서들이지만, 또한 우리가 알기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의 잘못된 점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들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균형을 찾는 것, 그리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먹이면서도 그 다른 사람을 압도하지는 않는 것이 관건입니다. 때로 불의와 파괴가 낳는 분노와 좌절을 부정하고 가리고 싶은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정서들은 인정되어야 하며 저항의 연료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한편 있을 수 있는 것과 관련된 정서들은 대안을 향해 움직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이 두 정서들의 결합이 바로 사회운동들을 매혹적이고 파괴될 수 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매우 종종 운동들은 이 정서들 가운데 하나에 호소할 때에만 파괴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해서 앞에서 말한 ‘네’와 ‘아니오’의 DNA 이야기로 되돌아갑니다만, 내 생각에 이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호소하는 종류의 정서와 관련하여 매우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홉킨스

퍼머컬처가 당신들의 작업의 큰 부분입니다. 이것에 대해 좀 이야기해주실 수 없나요? 왜 퍼머컬처는 당신들이 하는 일에 왜 중요한가요?

 

프레모

퍼머컬처는 매우 고무적이고 안정적인 틀을, 매우 안정된 가치틀을 제공해줍니다.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할 수 있기 위해 우리가 생각한 것은, 퍼머컬처의 세 주된 기둥이 사정이 실제로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하게 만드는 매우 효과적인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그 원칙들은 그 시스템을 향하여 작업해나아가는 정말로 좋은 로드맵이며 생산적이고 탄력적이며 자연을 존중하는 디자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자연을 선생으로 삼는다는 생각, 그럴수록 자연을 외부에 있는 사물로 덜 보게 된다는 생각에 매우 감동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퍼머컬처를, 우리가 줄곧 사물로 보도록 배웠던 자연에 우리 자신을 통합하는 도구로 점점 더 보게 됩니다······ 우리가 환경에 대해서 매우 자주 말한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명백하게도 우리는 우리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이 환경의 일부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퍼머컬처는 우리의 유일하게 실질적으로 일관적인 존재인 자연에 우리 자신을 다시 통합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원칙들을 우리의 실험들의 틀로서 사용하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퍼머컬처의 정신이 우리의 영감(靈感)입니다.

 

조던

우리에게는 ‘숲처럼 생각하라’라고 불리는 10일 훈련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지난 수년 동안 네다섯 번 했습니다. 이는 매우 영감에 찬 훈련입니다. 이는 예술, 행동주의, 퍼머컬처의 훈련입니다. 예술이 행동주의에 무엇을 가져오는지, 행동주의가 예술에 무엇을 가져오는지, 예술이 퍼머컬처에 무엇을 가져오는지, 퍼머컬처가 예술과 행동주의에 무엇을 가져오는지 등등을 보는 훈련, 세 세계로 이루어진 하나의 시스템을 보는 훈련입니다. 이 훈련은 실제로 아나코-페미니스트 마녀인 스타호크(Starhawk)가 행한 훈련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80년대에 평화운동과 대안지구화 운동에 깊게 관여했으며 우리 모두가 거친 ‘땅 활동가 훈련 코스’(Earth Activist Training Course)라 불리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오래 전에 있었던 이 일이 우리에게 큰 영감을 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퍼머컬처 요소가 있다는 점에서 그 코스를 우리의 훈련코스의 모델로 삼았다고 할 수 있지만, 마법의 요소는 예술로 대체했습니다. 스타호크의 것이 땅에 기반을 둔 정신성, 행동주의, 그리고 퍼머컬처였다면, 우리 것은 예술, 행동주의, 그리고 퍼머컬처입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예술은 마법입니다. 마법의 한 형태입니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믿을 때 그 믿는 것이 실현된다는 것, 그것이 그 힘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술은 우리가 이 순간 필요로 하는 마법을 엮어내는 일을 매우 잘 합니다. ♣

  1. 조직명으로서 <기후캠프>(대문자로 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조직이 모이는 모임으로서의 캠프(소문자로 씀)를 말함. 단체 가운데 ‘회의’자가 들어간 단체가 가령 운영을 위한 정규적인 ‘회의’를 가지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됨.
  2. ‘봉쇄’와 ‘폐쇄’가 정확하게 무엇이고 서로 어떻게 다른지는 현재 번역자로서 알 수 없다. 전자에는 ‘block’이라는 단어를 후자에는 ‘shut dow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데이빗 볼리어와의 인터뷰

  • 다음은 데이빗 볼리어가 최근에 나온 책 『커머닝의 패턴들』(Patterns of Commoning)에 관하여 웹진 ≪셰어러블≫(Sharable)의 캣 존슨(Cat Johnson)과 인터뷰한 기사를 옮긴 것이다. 다소 모호한 부분들이 있어서 세부의 정확성보다는 내용전달의 손쉬움에 초점을 두었다. 정확하고 세밀한 이해를 원하는 사람은 아래 원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셰어러블≫의 기사에는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Unported 라이선스가 적용된다. 데이빗 볼리어의 블로그(www.bollier.org)에도 일부가 올려져있다.

 

 

(문) 셰어러블 : 이 책에서 당신과 질케(Silke)는 커머너로서 생각하고 배우고 행동하는 것을 커먼즈 운동의 핵심으로 보고 그것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요?

 

(답) 볼리어 : 그것은 우리가 당연시해왔던 몇몇 이분법들을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집단과 개인, 합리와 비합리 등등의 이분법들이죠. 커먼즈에서는 이것들의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유기적 온전체로서의 커먼즈에 대해 말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커먼즈를 부품들로 해체하거나 해부할 수 있는 기계인 것처럼 보면 안 됩니다. 커먼즈는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바로 이것, 즉 그 살아있음이 우리가 연구할 바인 것입니다.

 

전통적인 근대 과학은 살아있음을 탐구하기를 거부합니다. 근대 과학은 살아있는 인간이 되는 것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대지에서 살아있는 인간이 되는 것의 본질에 도달하지 못하는 많은 환원론적 범주들을 만들어 냅니다. 내 생각에 커먼즈는 살아있는 종류의 관심사들에 응하고 싶어하며, 특히 진부한 학술계 사람들이 사용하고 싶어하는 많은 전통적인 지식의 상자들에는 부합하지 않습니다.

 

(문) 이 책에서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되는 점 하나는 하향식으로 움직이는 정책입안자들과 전문가들은 커먼즈를 디자인하고 구축하지 못하며 커먼즈가 번성하리라고 기대하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유기적 커먼즈는 하향식으로 제조된 커먼즈와 어떻게 구분되나요?

 

(답) 기성 제도의 후원을 받는 커먼즈들에서는 아래로부터의 헌신·공유·공동창조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 만큼 이런 커먼즈들은 외부에서 연출되는 다른 누군가의 드라마에 출연할 뿐이며, 사람들 스스로에게서 나오며 사람들의 이익, 욕구, 내적 삶에 복무하는 창조적 분출의 표현과는 반대됩니다.

 

제도들은 민중의 내적 욕구와 열망에 응하지도 못하고 그것을 표현하지도 못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지만, 커먼즈는 그럴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말한 살아있음의 본질입니다. 커먼즈는 스스로를 복제하는 고유한 에너지와 열망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섬광처럼 매력을 발휘합니다. 이는 매우 특별합니다. 이는 커먼즈가 민중의 실질적 욕구를 표현하는 그 순간에 살아있는 특유한 사회적·역사적·문화적 현상이라는 사실에 담겨 있습니다.

 

이는 몇몇 사람들이 커먼즈를 이해하기 위해서 행하는 자원할당 유형의 분석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자원분석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것이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문) 이  책에는, 삶 혹은 생산에서 커먼즈로서 작동하도록 구축될 수 없는 부분은 거의 없다는 흥미로운 생각이 들어있습니다. 당신은 지난 두 책1을 통해 커먼즈 기획의 놀라운 스펙트럼을 제시해왔습니다. 커먼즈 기반의 경제 혹은 세계는 당신이 보기에 어떤 것입니까?

 

(답) 이건 어떤 면에서는 3살짜리 아이가 50살이나 80살이 되면 어떻게 보일지를 묻는 것과 같군요.

 

삶의 경험 가운데에는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우발적인 것들이 많습니다. 이런 것을 예측하려면 긴 전개과정이 펼쳐져야 합니다.

 

 

일단 이 말을 해두고요. 내 생각에 이것은 어떤 중앙의 권위가 그것을 디자인하고 그런 다음에 예산을 얻고, 그 다음에 구축하기 시작하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내 생각에 이는 생물학적인, 혹은 진화적인 전개과정에 더 가깝습니다. 많은 소규모의 원칙들과 동학이 이 과정을 활성화할 것입니다.

 

이 과정은 거대한 펼쳐짐이자 드라마입니다. 혹자는 커먼즈의 규모를 키워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규모’라는 단어는 실제로 위계구조를 표현하는 용어임이 지적된 바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복제하고 연합하는 것이 더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전과는 다른 구조인데,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지역에 헌신하면서도 더 넓은 유대와 지원을 천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상이한 디지털 부족들이 있는 인터넷에서 이런 것을 봅니다. 거기에는 중앙 권위가 없습니다. 비록 때로는 다음 수준으로 가는 것을 돕는 기반시설을 필요로 하지만 말입니다.

 

많은 부분을 한데 묶어줄 것은 새로 출현하여 서로를 발견하기 시작한 특정의 윤리와 문화일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많은 활동가들, 커머너들의 모임에 참가하면 서로를 발견하고 서로를 아는 데서 오는 쾌활함과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상이한 영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윤리적 원칙들과 문화적 관심사들을 공유합니다.

 

(문) 패턴의 관점에서 커먼즈를 보는 접근법은, 커먼즈들이 복합적이고 살아있는 시스템들임을 인정하며, 커먼즈들이 생겨나고 성장한다는 사실을 존중합니다. 이 접근법은 또한 이 패턴들이 우리의 문화적 유산이라는 사실을 수용합니다. 이런 각도에서 커먼즈를 연구하는 것이 주는 이익은 무엇일까요?

 

(답) 이 접근법은 커먼즈의 실질적인 인간적 복합성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에 도달하지 못하는 환원론적인 범주들이나 모델들로 분해하지 않고 포착하게 해줍니다. 나는 양자택일적 태도를 취하고 싶지 않습니다. 커먼즈에 관한 많은 학술적 연구가 필요하긴 합니다. 하지만 모델구축이 포착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풍부한 실재가 존재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원래 그대로의 일화(逸話)와 과도하게 추상적인 모델들 사이에 스윗스팟이 있습니다. 패터닝(patterning)은 이 반복되는 형식들 가운에 일부를 포착하는 한 방식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적 작업의 결과를 위에서 아래로 실재에 부과하는 것과 정반대의 것으로서, 아래로부터 위로 작동합니다.

 

(문) 이 책은 커머닝과 커먼즈의 더 풍요로운 패턴 언어의 발전이 개시되기를 바라면서, 커머닝의 패턴들을 서술하는 첫 걸음으로서 짜여 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며, 커먼즈의 패턴 언어는 과연 어떤 것인가요?

 

(답) 질케는 이 책에서 자신이 집필한 부분에서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에서 툭 튀어나와서 반복될 수 있는 특정 테마들을 얻는 것이라는 식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떻게 커먼즈를 보호하는가?’, ‘커먼즈를 보호하기 위해서 어떻게 특정의 법적 혹은 사회적 시스템들을 창조할 것인가?’와 같은 테마들이 있죠.

 

또 다른 패턴으로는 ‘당신은 어떻게 그야말로 커먼즈를 스스로 깨닫게 되는가?’, ‘비가시적인 커머닝의 차원들을 어떻게 가시화하는가?’가 있습니다. 질케는 우리 책의 많은 이야기들을 관통하며 반복해서 튀어나오는 황금의 실들과 같은 테마 패턴들 가운데 일부를 포착하려고 시도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기존의 경제적 분석틀의 일부인 경합과 배제2

에 갇히지 말고 이 패턴들을 보고 커먼즈의 내적 기능을 더 세련되고 더 리얼리스틱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훈련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문) 이 책은 계획된 3부작 가운데 둘째 권입니다. 셋째 권은 어떤 책이 될까요?

 

(답) 아직 극히 초기 단계에 있는 다음 책은, 거시적 차원에서의 커먼즈가 가지는 의미, 즉 정책, 경제, 국가에 대해서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게 될 것입니다.

 

이번 책은 커머닝의 내적 차원과 몸으로 겪는 실재에 소규모로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다음에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거시적인 차원에서 함축되는 것들을 보고자 합니다. 법이 어떻게 변하여 커먼즈를 포용하게 될 것인가? 국가가 커먼즈 중심의 사회를 허용하려면 그 역할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이것은 국제관계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것들이 우리의 셋째 권의 내용이 될 것입니다. ♣

  1. The Wealth of the Commons와 Patterns of Commons를 가리킨다. [본문으로]
  2. 경합과 배제 : 이는 이른바 전통적 경제학의 근본적 원칙인 ‘희소성’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희소성을 전제하면 한 사람이 어떤 재화를 차지할 때 다른 사람은 그 재화를 차지할 수 없게 된다. 이 희소성의 원칙은 무한히 복제할 수 있는 디지털 생산물이 등장하면서 근본적인 위기에 봉착하는데, 자본은 지적 재산권으로 재화에의 접근을 막음으로써 (‘제2의 종획’) 가상의 희소성을 창출하는 식으로 위기를 넘겨가고 있다. [본문으로]

출처: http://minamjah.tistory.com/108?category=452913 [百手의 블로그]




운동의 새로운 정렬?

* 아래 글은 데이빗 볼리어의 블로그에 게시된 2015년 2월 19일자의 게시글 “A New Alignment of Movements?”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세부에 정확성을 기하진 못했다. 

운동의 새로운 정렬?

2014년 9월 <커먼즈전략그룹>(the Commons Strategies Group)은 독일 마이센(Meissen)에서 그룹의 정책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여러 경제 및 사회운동들에 참여하는 활동가들 25명을 놓고 3일 동안 워크숍을 열었다. 주제는 ‘심층 잠수’(Deep Dive)이며 이는 다음의 물음들로 이루어졌다. 주도적인 대안적 경제·사회 운동들이 더 긴밀하게 함께 작업하는 길들을 찾을 수 있는가? 신자유주의의 병리적 현상들과 싸우는 데서 더 큰 합류와 협동을 할 수 있는가?

 사회연대경제(the 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탈성장, 협동조합, 이행도시(Transition Towns), 공유 및 협동 경제, 수평적 네트워크 생산, 환경정의, 커먼즈 등을 지향하는 운동들로부터 활동가들이 왔다. 대부분 유럽에서 왔지만, 캐나다, 미국, 브라질, 아일랜드, 영국에서 온 참가자도 있었다. 워크숍은 <커먼즈전략그룹>이 조직했는데, 그룹은 독일 하인리히 뵐 재단과 프랑스 및 스위스의 샤를 레오폴드  메이에르 재단의 의 긴요한 지원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이 워크숍 이전에 대략 12명의 참여자들이 며칠 전에 미리 베를린에서 별도의 모임을 갖고 ‘개방된 협동조합주의’라는 주제에 대해서 토론했다. 이 토론에 대한 종합보고서인 「개방된 협동조합주의를 위하여」(Toward an Open Co-operativism”)가 세 주전에 발표되었으며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아래는 보고서 「운동의 새로운 연대?」(A New Alignment of Movements?”)의 서론으로서, 마이센 워크숍의 두드러진 논점들을 종합하고 있다. 데이빗 볼리어(David Bollier)와 팻 코너티(Pat Conaty)가 쓴 39쪽짜리 보고서는 여기서 pdf 파일로 다운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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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신자유주의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운동들의 단결된 반응 혹은 새로운 합류를 촉진시킬 명료한 대안적 비판이나 철학적 접근법들이 출현하지 못했다. 실로 전통적 좌파는 진행되는 위기로부터 정치적으로 이익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중의 지지도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 그리스의 두드러진 예외를 제외하면, 최근 유럽의 선거들은 유럽 선거구의 주요 부분들에서 과격한 우익화의 움직임을 보여줘 왔다. 

그러나 저항의 고전적인 정치적 표현들이 결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긍정적인 발전들이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발전들 가운데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탈성장 운동 및 다른 환경/지속 가능성 지향적 운동들의 ‘성장’.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에서의 정치그룹들 사이에 커먼즈 지향성의 출현, 그리스와 스페인에서 이루어진 수천 개의 대안적 유대 메커니즘들의 창출, 경제적·사회적 대안으로서의 협동조합의 부활, ‘사회연대경제 운동’에 의한 계속적인 작업, 이행도시들에서 ‘공유 가능한 도시들’(“shareable cities”)을 거쳐 향토 음식에 이르는 운동들.

 흥미로운 정치적 표현들에는 스페인의 15M ‘실질적 민주주의’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젊은이들의 대대적인 움직임, 그리스의 시리자와 스페인의 포데모스(Podemos)와 같은, 사회변형 과제를 가진 좌파 정당들의 성공, (24개국 이상에서의) 해적당과 같은 디지털 문화를 표현하는 당들의 출현, 스페인의 X당(the Partido X)처럼 직접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플랫폼 정당들이 포함된다. 이러한 노력들은 불안정 고용된 젊은이들이 그들의 생계를 위한 대안들을 창출하려는 많은 건설적인 노력들― 이는 ‘공유 경제’의 출현에서도 표현된다―과 병행되었다.

 

건설적인 사회적·정치적 운동들을 혼합하여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라는 생각을 진전시키는 방식으로 운동의 실천과 목표들이 한데 모이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가능한가? 지역, 일국, 유럽 수준에서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다수들의 재건을 상상하는 것이 가능한가?

 ‘심층잠수’ 워크숍은 사회 운동들 사이의 강렬한 형태의 탐구적 대화와 협동을 뒷받침하려는 시도이다. 참여자들은 협동조합, 탈성장 경제, 사회연대경제, 피어 생산, 트랜지션타운, 생태 지속가능성, 커먼즈에 헌신하는 운동들과 연관되어 있다. 참여자들은 각 운동에서 두드러진 발전들을 공유하면서 그들의 운동의 변별적인 강점와 약점에 대해서, 체제 변화에 기여한다는 광범한 과제에 대해서, 그리고 협동적 합류를 촉진하는 전략들에 대해서 성찰했다.

 

제기된 핵심 물음은, ‘커먼즈 패러다임이 다양한 운동들을 변화라는 공유된 과제 주위에 모으는 것을 도울 수 공유된 담론, 비판, 윤리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였다. 유럽에서 산업노동계급의 상대적인 정치적 영향력이 꾸준하게 감소함에 따라 애초에 복지국가 모델을 뒷받침했던 정치적 세력균형 및 타협들이 상실되고 있다는 견해가 가능하다. 우리가 새로이 출현하는 불안정 지식 노동자들의 노동문화를 다른 대중화된 부문들과 함께 놓고 보면, ‘커먼즈 지향적 정치변형’―이는 그리스에서 생생하게 긍정되고 있는 제안이다―을 중심으로 하는 잠재적인 사회적·정치적 연합의 출현이 시야에 들어올 수 있다.

 이 전략적 물음은 워크숍의 둘째 목표로 이어진다. 운동 간 협동 및 활동을 배치하고 조정하는 것을 도울 커먼즈 패러다임의 특수한 잠재력을 탐구하는 것이 그것이다. 공동의 목표를 중심으로 사회·정치적 운동들의 합류를 촉진할 다른 공통적인 틀이 있는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미래에 협동적 행동을 탐구하고 활용할 수단들을 탐구하는 것이 모임의 셋째 목표였다. 어떤 특수한 종류의 수단들. 기획들, 사회적 혹은 경제적 이슈들, 제도적 파트너들 등이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더욱이, 이 일이 어떻게 조직되고 긴 시간 동안 지탱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위의 문제들에 대해 동의가 이루어졌다고 보고, 워크숍은 운동의 합류를 성취할 다음 단계들에 관해서 일정한 합의에 이르고자 했다. 지속 가능성 지향의 사회변화를 위한 정치적·사회적 다수를 재창출할 어떤 방법이 있는가? 우리의 운동들 각각의 능력을 어떻게 확대할 수 있고, 어떻게 새로운 상승효과를 낳을 수 있으며, 인류가 직면한 생태·기후·사회·경제의 위기에 대한 새롭고 더 통합적인 해결책들을 어떻게 제공할 수 있는가?

 

* 보고서 목차는 번역 생략함.

Contents of the Report

 

Introduction

I. The General Challenge

   A. The Co-operative Movement

   B. The Social Solidarity Economy

   C. The Degrowth Movement

   D. Peer Production

   E. The Sharing and Collaborative Economy

   F. The Commons Movement

 

II. Strategies for a Convergence of Movements

 

Do These Movements Overlap – or Not?

 

Notable Exploratory Projects

 

Strategies for Alliance Building

 

Suggested Action points for Moving Forward

 

Conclusion

 

Appendix A: Workshop Participants

 

Appendix B: Roadmap – 2015 Events that Offer Opportunities for Convergence

* 데이빗 볼리어의 블로그의 글들은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가 적용됩니다. 

 

출처: http://minamjah.tistory.com/89?category=452913 [百手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