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P 커먼즈는 급진과학 역사에서 ‘세 번째 운동’인가?

 



 

P2P 커먼즈는 급진과학 역사에서 ‘세 번째 운동’인가?

 

4년 전 처음 게리 워스키(Gary Werskey)의 ‘세 운동’(three movements)을 다룬 2007년 논문을 읽었을 때 나는 회의적이었다. 게리는 1930-40년대와 1970-80년대에 과학을 둘러싸고 일어난 두 개의 영국 급진주의자들의 운동을 다루었고 환경적인 파급력을 가질 수 있을 세 번째 운동의 가능성을 예측했다.

나는 그것이 다른 두 운동과 마찬가지로 맑스주의적 운동일 가능성에 대해 별로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2018년인 지금 나는 진정 P2P 커먼즈 운동이 실로 세 번째 운동의 자리에 서있다고 본다. 적어도 그러리라고 전제하고 나아가는 건 가치 있을 것이다. 활동가들에게는 부차적이더라도 과학기술연구(STS)((STS :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분야에선 중대한 함의를 가지니 말이다. 나는 P2P 커먼즈가 내 활동가 삶에서 봐온 가장 중요한 것임을, 그리고 지식과 기술의 정치를 지향하는 자유의지론적 사회주의자로서 내가 지난 50년 간 공들여온 걸 가동시키는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루시 가오(Lucy Gao)와 나는 막 STS 학문연구분야의 연차 모임인 <4S 시드니 2018>((4S : Society for Social Studies of Science))에서 이루어질 발표를 연구하고 짜는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학회세션의 주제 ‘일련의 실패한 정치적 실험으로서의 STS 안에서의 삶’은 게리가 했던 언급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었고 루시와 나는 그가 말하는 ‘세 운동’을 두 ‘STS 안에서의 삶’ -그녀의 10년의 삶과 나의 45년의 삶- 에서 이루어진 실험과 실패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를 진술하기 위한 틀로 삼았다. 학회발표는 유튜브에 게시되고 (훅튜브(hooktube)에는 사본이 게시된다) 급진과학 및 급진적 전문직주의(professionalism)와 관련된 일단의 자료가 이제 웹사이트 ‘STS 안에서의 삶’(Lives in STS)의 ‘4 역사’(4 History) 범주에 게시되어있다. 이 자료에는 두 가지 이야기에 관한 한 쪽짜리 요강과 몇 시간짜리 인터뷰 녹취가 포함되어 있다. 길이를 맞추기 위해 그 발표의 일부가 생략돼야 했다. 생략된 건 포디즘/포스트포디즘이라는 분석틀, 차세대 생산양식으로서의 P2P, STS 학계와 급진과학 액티비즘, 전문관리계층(PMC)((PMC : Professional-Managerial Class)) 안에 있는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유기적 지식인’ 액티비즘이었다. 나는 학회 이후에 ‘감독판’을 만드는 걸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다른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현재의 이 블로그 게시물을 부재하는 긴 영상의 개요로 생각해 달라.

내게는 세 가지가 이 ‘STS 안에서의 삶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그리고 내가 루시와 함께 그 작업을 하면서 도달한 장소와 관련하여 중요하다. 루시는 중국 과학원의 STS 부교수이다. 그녀는 나보다 40년 후에 태어났고 1980년대 후반 중국문화계에서 만개한 학문분야에서 일하는데, 거기에는 분명히 정치적인 (두 운동의) 역사가 서구주의, 관리주의, 전문직화의 번쩍번쩍한 표면 아래 묻혀 부글거리고 있었다.

첫 번째 것은 내 생각엔 1970년대의 ‘급진과학’에서는 본질적으로 과학이 핵심이 아니었으며 내가 급진과학으로 도달한 것도 본질적으로 ‘과학’을 핵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급진적 전문연구가들의 넓고 깊은 여러 세대에 걸친 운동 속에서 여러 문화적 형성물을 보았으며 지금도 본다. 이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한때 (40년 전에!) ‘후기 자본주의’라 불린 틀 안에서 PMC의 역사로 이론화되었다. 지난 세대에 심오하고 역사적으로 새로운 정치가, 지식을 거대하며 전지구적으로 분산된 규모로 생산하고 동원하는 체제가 출현했는데, 나는 이를 자본과 자본에 대항하는 힘이 포스트포디즘적으로 재편성되는 과정의 한 측면이라고 말하고 싶다. 1950년대에는 ‘거대과학’이, ‘군산복합체’를 뒷받침하는 일이 핵심 이슈였다. 1960년대에는 ‘과학정책’ 및 연구생산물의 공적 성격 혹은 사유화 가능성에 관한 논의들이 우세했다. 컴퓨터화가 진행된 1980년대에는 ‘지식경제’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으며 1990년대에는 ‘지식집약사업서비스’, ‘혁신서비스’ 가 ’국가혁신시스템‘ 안에서의 연구주제였다. 1990년대에는 STS 연구자인 나도 그 일부였다. (적절한 시기에 더 많은 게시글을 올리겠다.)

하지만 내 생각엔 그러는 내내 저류를 이루었던 건 ‘유기적 지식인’적 생산(1920년대와 1930년대 이탈리아 맑스주의자 그람시의 용어이다), 그리고 지식생산을 대규모로, 계급규모로 조직할 수 있는 점점 더 분명한 가능성과 그래야할 필요였는데, 이는 매우 상이한 생산양식, 삶형태 그리고 전문연구가들과 일반인들 사이의 관계를 촉진하기 위함이었다. ‘유기적 지식인’적 실천에 관한 이러한 지속되는 이야기는 여기 FopRop의 ‘4 역사’ 범주의 관심사이다. 그것은 또한 ‘2 커머닝’(2 Commoning) 범주의 패턴언어를 위한 분석틀이 왜 ‘앎의 춤’의 안무를 핵심으로 하는지 또 왜 역사적으로 변화된 노동력의 생산에 관한 문제를 핵심으로 하는지를 말해준다. FopRop에서 나는 이를 P2P 커먼즈 생산양식과 일상적 삶의 역사적 진화에 관한 그리고 그 생산양식과 삶의 계속적인 활동가적 생산에 관한 문화유물론적 ‘접근법’을 구성할 수 있는 리터러시(literacy)의 세 영역 중 하나로서 제안하고 있다. (여기를 보라)

내가 주목하는 두 번째 것문화유물론 안에서 나 자신이 40년간 탐구를 해왔다고 내가 생각함에도 다른 어떤 종류의 공인된 맑스주의보다 더 커먼즈 운동이 의미심장하게도 ‘문화적’이며 심오하게 ‘유물론적’이라는 점인데, 이는 내가 FoP RoP에서 특히 ‘2 커머닝’ 범주에서 또렷이 말하려 하는 종류의 (탈맑스적인 아닌) 신맑스적인, 세심하게 혼종화된 틀에 의해 촉진될 수 있고 명확히 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러하다. P2P 커먼즈 운동의 유물론적 성격은 명백하게도 앱의 개방형 구조, 프리코드의 P2P 생산, 분산된 웹 인프라, 공개 데이터, 링크드 데이터/데이터 소유권/문서 소유권, 라이선싱 그리고 분산된 행위의 장을 조정하는 인프라 기술들에 주된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에 존재하는데, 이 분산된 행위의 장에는 암호화폐, 신용회계 메커니즘, 해시체인, 공개가치 공급체인 회계시스템, 공개원장 알고리즘과 구조가 포함된다. 

문화적 역사적 지향성은 조금 덜 눈에 띈다. 하지만 그 지향성은 예컨대 미셸 바우엔스로 하여금 커먼즈의 역사-진화적, 탈/반(反)자본주의적 중요성을 알아보게끔 하고 P2P 재단을 발족시키는 데로 이끈 인간학적 관점 안에 명백히 존재한다. 또한 그 지향성은 바우엔스 및 그의 파트너들(데이빗 볼리어, 질케 헬프리히)로 구성된 커먼즈전략그룹의, 과거와 현재의 커머닝에 대한 문화적·역사적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한 학술적·활동가적 연구와 개발 활동의 저변을 이루는데, 이 이야기들은 그들의 에세이 모음집 『커먼즈의 부』와 『커머닝의 패턴들』에 제시되어 있고, 현재 진행 중인 『커머닝의 패턴언어』에서 분석되고 있다. 이 분석과 여기 FoPRoP에서의 나의 패턴언어 작업 사이의 관계에 대한 주석은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내가 인식한 세 번째 것은 내 생각에 P2P 커먼즈 운동이 1970년대의 ‘두 번째 급진과학 운동’ 안에서 분명해지기 시작한 ‘유기적 지식인’적 동력을 추진시키고 확장시키는 방식이다. 이 둘째 운동의 주체는 베이비부머들이었다. 이들이 여전히 현장에 있기는 해도 지금은 다른 세대가 ‘유기적 지식인’적 양태를 다르게 발견하고 실행하고 있다. 나는 기껏해야 18개월 전에 그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유기적 지식인’적, ‘자유의지론적 사회주의’적 액티비즘의 지속적 실천을 이론화하면서 나는 베이비부머와 20대 활동가들이 (그리고 그 중간의 사람들이) 세대를 가로지르는 ‘유산’에 관한 대화에 참여할 수 있을 어떤 종류의 ‘대학’을 창조한다는 생각을 다듬어오고 있었다. 나는 『겸손한 기원들 3 – 활동가들과 집으로 가는 행진』(Humble Origins 3– Activists and the long march home)에서 그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대학’을 위한 공간을 구성하는) 일종의 온라인 플랫폼을 요구하는 기획을 하기로 결심했고 이를 신중히 검토하기 위해 루미오 플랫폼(www.loomio.org)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내 귀가 쫑긋했던 건 여기서 루미오가 나라와 문화를 가로지르는 폭넓고 확장적인 자발적 부문을 활용하는 잘 짜인 소프트웨어였다는 점 때문만이 아니라 또한 내가 그 설계의 기저에 놓인 그룹 프로세스의 촉진(facilitation)이 강조된다는 점을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1970년대에 내 세대가 가진 공동체지향적인 액티비즘이 발견한 것들과 그 헌신성으로 거슬러가는 분명한 역사적 선이 존재했다. (4 역사’ 범주의 ‘급진적 문화적 연구개발’과 『로케이션』(Location)의 서언과 서문을 보라.)

플랫폼 앱 루미오로부터 개발자들로 이루어진 노동자협동조합 루미오를 거쳐 나는 오큐파이 운동 이후 활동가이자 해커인 개발자들과 협동조합 기업가들의 연합(가족?)인 엔스피럴(Enspiral)에 도달했는데, 이 개발자들과 기업가들에게는 촉진은 활동가 문화의 당연한 측면이었다. 그 이후 나는 쎈소리카(Sensorica)(([옮긴이] 쎈소리카는 IT 장비들 및 특수한 거버넌스를 사용하여 그들의 작업들을 함께 조정하고 운영하는 프리랜서들의 개방형 네트워크이다.))에 그리고 팽창하는 아나키즘적-해커적 정치 세계에, 스커틀벗(Scuttlebutt)(([옮긴이] 탈중심화된 소셜 플랫폼인 스커틀벗은 유저들이 그들의 데이터들을 통제하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이다.)) 인프라에, 코드 페디버스(fediverse)(([옮긴이] 페디버스는 소셜 네트워킹, 블로깅, 웹사이트 같은 웹 출판 및 파일 호스팅에 사용되는 서버들의 집합이다.))에 (그리고 P2P 방식으로 코드와 프로토콜을 만들어내는 생산자들에) 도달했다. 또 나는 오큐파이 이후의 반(反)과두적·직접민주주의적 연구와 개발, ‘오픈 밸류’ 가치연쇄 회계, ‘신속한’ 포스트포디즘적 문화형태들로 이루어진 더 폭넓은 형성체에 도달했다. 이는 (일본과 이탈리아의 유연생산시스템이라는 포스트포디즘적 발견을 도둑질하는 것이 자본주의 공급체인 개혁에서 내 동료들의 양식이었던) 1990년대의 나의 경영대학원 경험과 그 모든 종류의 기묘하고 모순적인 공명을 이루었다. 분명 역사들은 너무도 뒤섞이고 혼합되고 파문을 일으키고 파두(波頭)들이 서로 간섭하고 있었다. 분명 기업가 정신과 공동체 사이, 연대와 효율 사이, 액티비즘과 테크놀로지 사이, 정치와 돌봄 사이에 동일한 종류의 선을 긋지 않은 소수의 젊은 급진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는 더 기업적이기도 하고 전문성이 더 뚜렷이 구획되어 있기도 하며 경력을 중시하고 해결책을 ‘해킹’하기보다는 ‘설계’하는 데 더 경도돼 있는 환경에서 자란 이전 세대에게는 문제적이었을 수 있다. 그 당시에는 ‘처음 할 때 제대로’라는 기업적·경쟁적인 문화가 우세했고, 지금은 ‘일찍 실패하고 계속 고치고 계속 갈라지고 모인다’라는 문화가 우세하다.

P2P 커먼즈는 ‘급진과학’보다 훨씬 더 크다. (포스트포디즘이 급진과학보다 훨씬 더 나아가 있다.) 가장 직접적으로 P2P 커먼즈는 에너지 독립형의 아나키즘적인 도시-장인의 삶에 전념하는 대안에너지 공동체로부터 ‘인간중심적’·참여적 노동운동을 지향하는 기업적·산업적 환경에서의 디자인운동까지 이르는 저 모든 운동의 급진적 테크놀로지 무기의 계승자이다. 다른 것들―‘4 역사’ 범주의 ‘급진과학’사, ‘3 플랫포밍’(3 Platforming) 범주의 ‘플랫폼 협동주의적’ 액티비즘 세계에서의 조직화―에 관한 작업이 내가 ‘2 커머닝’ 범주에서 커머닝의 패턴언어를 파악하는 데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1970년대 『급진과학저널』(Radical Science Journal)에서의 신맑스적 노동과정 이론화가 1970년대 급진적 전문직주의와 밀접히 연관됐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론화하는 모험이 (동일한 문화유물론적 기초 위에서) 오늘날의 P2P 커먼즈 운동과 밀접히 관련된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치 않는다. 다만 이제는 활동의 장이 더 크고 걸려있는 것이 더 커졌으며 다양한 문화적 도전이 더 분명하고 결정적으로 드러나 있다. 1970년대 말에 베이비부머들이 대면했던 ‘단편들을 넘어서’라는 과제가 많은 새로운 형태들을 출현시켰다. 상황은 변하고 있다. ‘세 번째 운동’이 중국에서 어떨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국에서 나의 STS 동료인 루시 가오는 40년 후에야 ‘두 번째 운동’ 없이 체제화된 무익한 첫째 운동만이 존재하며 1980년대 후반의 ‘위대한 계몽’의 여파로 모든 포디즘의 파도들이 역사와 경제의 쓰나미로 붕괴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태를 맞이하고 있다.

여하튼 그렇다, 게리. 맑스주의를 계승하는 세 번째 급진과학 운동이 있다! 그건 더 나은 것일 수밖에 없다.




위기에 맞서 일어서는 공동체

 



2017년 9월 20일 허리케인 마리아(Maria)가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를 강타했을 때 주디스 로드리게스(Judith Rodriguez)는 자택에서 자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잠을 자려고 하였으나 무시무시한 폭풍이 섬을 덮치는 소리가 그녀를 깨웠다.

 

로드리게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 소리는 제가 살면서 들어 본 것 중 가장 끔찍한 것이었어요. 그 소리는 결코 조용해지지 않았어요. 그건 끝이 없었죠. ··· 저는 제 집이 좋은 상태라고 생각했어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새벽 2시 반에 일어났을 때 저는 덜컥 겁이 났어요. 가장 처음 겁이 난 건 뒷문이 날아가 버렸을 때에요. 부엌에 달린 금속으로 된 문이 말이에요.”

 

그 섬의 많은 부분처럼 로드리게스가 사는 카예이(Cayey) 읍도 시속 175마일로 불어오는 폭풍에 송전선이 망가졌고 지붕이 날아가 버려서 몇 달간 어둠 속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미 심한 부채 위기로 허덕이고 있고, 즉각적인 구호가 언제 이루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카예이와 같은 지역 공동체들은 그들이 가진 얼마 안 되는 자원으로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우리 집에는 접시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집구석에 널려 있는 접시들을 기부하면 어떨까요?”라고 로드리게스가 말했다.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카예이에서 카구아스(Caguas)와 우마카오(Humacao)를 거쳐 라스 마리아스(Las Marias)까지, 소도시나 대도시 할 것 없이 섬 전역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접시 기부는 ‘공동체 주방’(community kitchens)으로 성장했고 이것은 ‘공동체 센터’(community centers)로 성장했으며, 이 공동체 센터가 성장하여 하나의 운동이 되었다. 맹렬한 소리를 내며 불어온 허리케인 마리아가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에게서 무언가를 일깨웠다. 이 무언가는 폭풍우, 불, 지진 등 모든 종류의 재해와 참사가 전 세계의 지역 공동체들에게서 일깨웠던 바로 그것이다.

 

로드리게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중국에 있든지, 푸에르토리코에 있든지, 또는 일본에 있든지 간에,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이곳 푸에르토리코에서 서로를 도와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배에 비유합니다. 만약 이 배가 가라앉는다면, 우리 모두가 가라앉습니다. 저 혼자 가라앉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가라앉는 거죠.”

 

2007년, 네이오미 클라인(Naomi Klein)은 그녀의 획기적인 책 『쇼크 독트린』(The Shock Doctrine)에서 재해자본주의라는 명제를 세상에 밝혔다. 클라인의 생각은 전 지구에서 일어났던 일, 그리고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완벽하게 설명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재해자본주의의 기본 생각은 매우 간단하다. ‘재해로부터 시장 기회를 창조하라’는 것이다. 클라인은 강력한 기업들이 어떻게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이용하여 공공 영역을 약화시키고, 그리하여 민간 자본의 이익을 강화시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재앙 이후 나타나는 ‘쇼크’는 강력한 기득권 세력이 이익을 얻기 위해 혼란에 빠진 공동체를 이용할 완벽한 기회를 제공한다.

 

클라인의 명제는, 허리케인 카트리나(Katrina) 이후 뉴올리언스(New Orleans)의 공립학교 시스템의 해체부터 허리케인 마리아 이후 푸에르토리코의 기반시설 민영화까지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많은 부분을 서로 연관짓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해 자본가’(disaster capitalist)가 위기 상황에서 나타나는 유일한 캐릭터는 아니다.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재해자본주의가 전체 이야기의 일부일 뿐임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 또 다른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바로 이타주의, 연대주의,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기초로 한 이야기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다른 이야기가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바로 ‘재해공동체주의‘라는 이야기다.

 

폭풍으로 인해 상호부조의 홍수도 밀려들어왔고 산불이 결속력의 씨앗을 뿌렸고 지진이 공동체적 가치를 강화하고 지역 공동체를 더 가까이 결속시킨 사례들은 셀 수가 없이 많다. 우리는 관대함이 이렇게 폭발적으로 표현되는 모습을 매우 자주 본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덮친 이후,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는 케이준 해군(Cajun Navy)(([옮긴이] 루이지애나와 그 인근 지역의 구조·조사 활동을 돕기 위한 개인 보트 소유자들의 비공식적 임시 자원봉사 모임―『영어위키피디아』))의 여러 대의 보트들이 좌초된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 침수된 동네들로 내려왔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났다. 2017년 11월 남부 맨해튼에서도 작은 규모지만 이런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았다. 비계 구조가 무너져 내렸을 때 그 속에 갇힌 생존자들을 파내기 위해 수십 명의 뉴욕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달려가서 도왔던 것이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하는 걸까? 왜 우리는 자기희생적이고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지도 모르는 영웅적 행동들을 그렇게 자주 보는 걸까? 이것은 분명히 많은 주류 서사들을 지배하는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와 일치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이야기는 인간을 이기심과 경쟁심으로 특징지어지는 종류인 호모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로 묘사한다.

 

뉴욕시의 존제이대학(John Jay College)의 경제학과 부교수 크리스천 파렌티(Chritian Parenti)는 이렇게 말했다. “예를 들면, [허리케인 하비(Harvey) 이후] 휴스턴(Houston)에 홍수가 일어난 것처럼 재해가 닥쳤을 때, 당신은 사람들이 매일 이 모든 너그러움과 결속력을 쏟아 내는 것을 보았을 겁니다. 모든 것에는 가격이 붙어있다는 생각, 그리고 이기심과 경쟁심은 좋은 것이라는 생각, 이 모든 생각들이 갑자기 멈추게 됩니다. 갑자기, 모두가 협력·결속력·용기·희생·관대함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작가 레베카 솔닛(Rebecca Solnit)의 저명한 책에서 강화되었다. 『지옥에 지어진 낙원』(A Paradise Built in Hell)에서 그녀는 설명한다. “지진, 폭격, 또는 심각한 폭풍이 일어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타적이 되고 자신들과 주위의 사람들(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뿐만 아니라 낯선 이들과 이웃들)을 돌보는 일에 즉시 관여하게 됩니다.”

 

우리는 최근 6월에 일어난 과테말라에서의 푸에고(Fuego) 화산 폭발 이후에 전개된 일에서 이것을 목격했다. 정부의 대응이 부적절한 가운데, 사람들은 매일 서로를 돕기 위해 모였다.

 

당시 위기 상황에 그 곳에 연구차 나와 있던 뉴욕주립대학 알바니 캠퍼스(University at Albany at the State University of New York)의 인류학자 월터 리틀(Walter Little)은, 화산이 폭발한 저녁, 마을 근처의 한 교회가 “지역 사람들에게 교회로 오라고 알리는 종을 즉각 울리기 시작했고, 교회에서 그들은 물자, 음식, 의류 및 기타 다양한 것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이 울리는 것을 들었을 때 두 번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폭격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일어난 홍수·토네이도·지진·폭풍우 등 재해가 일어날 때의 행동에 대한 수십 년 간의 꼼꼼한 사회학적 연구가 이것을 입증했습니다”라고 솔닛은 말했다.

 

 

폭풍이 지나간 후

 

그러나 어떻게 재해가 특별히 그러한 이타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걸까? 여기 이 질문을 둘러싸고 솔닛, 파렌티 등과 같은 작가들에 의해 제시된 명제가 있다. 명제는 대략 다음과 같다. ‘우리는 호모에코노미쿠스를 사실로 인정하기에 이르렀고, 항상 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꿈을, 그리고 상상을 따라 다닌다. 그것은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제한하고 생태계와 지역 공동체를 여러 국민국가들로 분할하는 임의의 경계를 만들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아 왔듯이, 인공적인 경계들은 동물, 식물 그리고 인간의 관대함의 흐름을 봉쇄할 수 없다.’

 

2017년 산타로사(Santa Rosa)의 북부 캘리포니아 도시에 거센 불이 타올랐을 때, 공동체는 특히 불법체류자들을 위해 고안된 펀드를 조성하기 위해 모였다. ‘언도큐펀드’(Undocufund)는, 나중에 알려진 대로, 현대 정치 풍토의 주요 품목이었던 분할정복이라는 수사(修辭)와 정 반대 위치에 서 있다.

 

언도큐펀드의 이사 오마르 메디나(Omar Medina)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처음에 우리는 5만 달러 또는 10만 달러를 모을 수 있을지 몰랐어요. 지금까지 600만 달러를 모을 거라곤 정말로 예상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재해가 일어나고 불이 계속 타오르자 사람들의 관대함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리에 대해 알게 되[면서] 우리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습니다. 최근 전국적으로 우리가 경험했던 모든 것에 기초하여 시민증이 없는 불법 주민들에게도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한 것이죠.”

 

이런 종류의 인간의 친절은 주류 제도에 의해 영속화된 호모에코노미쿠스라는 신화에 의해 종종 갇혀 있지만, 출현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틈이 생기면 그 틈으로 폭발한다. 재해 중 또는 그 후에 발생하는 정상적인 상태의 붕괴가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의 무언가를 깨운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러한 순간들이 새로운 형태의 시민 참여와 공공의 삶을 위한 공간을 (그것이 아무리 짧게 지속되더라도) 열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역으로 이루어진 일상생활에서는 그러한 기회들은 거의 없거나 아주 드물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연결하고자 하는 깊은 욕구가 있다. 학술지 『미국 사회학 평론』(American Sociological Review)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25퍼센트의 미국인들이 가까운 친구 또는 터놓고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혼자 사는 개인의 수도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일상 속에서 우리가 점점 더 고립되어지고 원자화되면서, 관계에 대한 갈망이 증가할 뿐이다. “인간은 집단 종(種)입니다. 우리 안에는 종(種)으로서 뭉치려고 하는 깊고 매우 본능적인 무언가가 있습니다”라고 파렌티는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연결을 향한 본능적인 욕구가 발생하는 것을, 2012년 10월 29일 뉴욕시를 강타하여 53명의 사상자를 내고 도시 전역에 320억 달러의 피해를 입힌 허리케인 샌디(Hurricane Sandy) 이후 복구과정에서 보았다. 롱아일랜드의 퀸스(Queens) 자치구에 돌출된 반도인 로커웨이스(Rockaways)와 같은 장소들은 특히 심한 타격을 받았다. 뉴욕은 종종 유독 사람들과 단절되고 이웃과 잘 지내지도 않을 것처럼 보이는 대도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해 공동체주의가 온전히 나타났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에 의해 발전된 네트워크와 전략에서 파생된 풀뿌리 구호 네트워크인 ‘샌디를 점령하라’(Occupy Sandy)가 발휘한 노력은 이러한 종류의 공동체적 접근을 보여주는 한 주요한 사례이다. 당국의 대응 이후 남겨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샌디를 점령하라’ 자원봉사자들은 지역사회 단체들 및 활동가 네트워크와 협력했다. 그들의 노력은 지역의 가난한 주민들과 노동자들에게 힘을 주는 것에 중점을 두었고 자선보다는 상호부조에 기초했다. 가장 많을 때에는 6만 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과 아마존 구호 등록소, 법무팀, 의료팀, 처방약 배달, 일일 식사 배달을 통해, 재해가 일어난 후 몇 날, 몇 주 동안 주목할 만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뉴욕시에 오래 거주한 살 로피조(Sal Lopizzo)는 일군의 자원봉사자들이 그의 침수된 비영리 직업훈련원에 나타나 그 장소를 복구 허브로 전환할 수 있을지 물었을 때, ‘샌디를 점령하라’ 복구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로피조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그냥 나타나서, 사무실을 치우고, 모든 것을 거리로 가지고 나갔어요. 우리는 탁자를 설치하기 시작했고, 물품들을 실은 트럭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생각할 수 있는 물품들은 죄다요. 홈디포(Home Depot)나 타겟(Target)점에 가면 볼 수 있는 것들 말이에요.”

 

로피조의 건물은 초강력폭풍(Superstorm)이 타격을 가한 이후 몇 날, 몇 주 동안 발생했던 많은 허브들 중 하나이다. 로피조의 건물은 심한 타격을 받지 않은 지역에 위치한 12개 남짓한 배급허브들에 의해 식량을 공급받았다.

 

로피조는 이렇게 말했다. “브루클린(Brooklyn)에 있는 교회들이 물품들을 모아 트럭과 밴에 실어서 이곳으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한번은 어떤 그리스 정교회의 신부님이 여러 명의 아이들을 태운 미니 밴으로 백 개 정도의 피자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 신부님은 그저 불쑥 등장하신 거예요. 저는 ‘어머나’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죠. 정말 대단했습니다.”

 

폭풍 샌디가 지나간 후 발생한 큰 규모의 풀뿌리 구호 활동에 참여한 로커웨이스 주민인 로레나 히론(Lorena Giron)도 그녀가 목격한 것에 비슷한 감동을 받았다.

 

히론은 이렇게 말했다. “이웃들이 옆집에 사는 이웃들을 걱정하는 것을 보는 즉시 저는 정말 감동 받았습니다. 또한 교회가 신속히 움직여 기꺼이 사람들을 부르고 구호품들을 나누어 주는 모습도 감동적이었어요. 그 어떠한 종류의 도움도 다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느낀 것이죠.”

 

로피조의 개조된 직업훈련원이 위치한 곳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져있는 도시 곳곳에, 아번순례교회(Arverne Pilgrim Church)를 포함한 여러 복구 허브들이 생겨났다. 교회 소유자인 데니스 론크(Dennis Loncke) 목사는 어떻게 허리케인 샌디가 전례 없는 방식으로 지역 공동체가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는지 설명했다.

 

론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말이지 폭풍이 장벽을 없애는 데 협력한 셈이죠. 우리 대부분은 개인의 의견 속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제 떡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은 나의 도움이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폭풍이 닥쳤을 때 모든 사람들의 그러한 의견은 곧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폭풍이 지나간 후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적·재산적 손실뿐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문제들이 생긴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마을사람들에게 그들의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바로 이웃으로서 우리가 가진 마음을 일깨워 준 것이죠.”

 

한 번 다른 세상으로의 문이 열리면, 그 문을 닫는 것은 종종 어렵다. 재해가 일어난 직후 형성된 유대감과 공동체적 비전이 일시적인 재해 구호를 넘어 더 광범위한 프로젝트로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 많다.

 

예를 들어, ‘샌디를 점령하라’ 구호 활동에 의해 그리고 마찬가지로 뉴욕에 기반을 둔 ‘일하는 세상’(The Working World)과 같은 단체들에 의해 장려된, 공동체 강화에 중점을 둔 노력은 히론과 같은 사람들이 현재 ‘노동자 협동조합 육성 프로그램’을 편성하도록 고무했다. 이 프로그램은 뉴욕 시에 4개의 협동조합을 도왔다.

 

히론은 이렇게 말했다. “폭풍이 오기 전에도 로커웨이스와 파로커웨이스(Far Rockaways)는 매우 가난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 일은 매우 중요하고 흥분되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식으로 일을 장려하고 고용을 촉진한다는 생각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제 삶이 바뀐 것 같습니다. 제게 중요한 건 제가 우리 공동체를 돕고,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풀뿌리 재해 구호가 더 큰 계획을 낳을 수 있는지를 분명히 설명해주는 또 다른 사례는 푸에르토리코의 허리케인 마리아 이후에서도 볼 수 있다. 카구아스 마을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는 ‘공동체 주방’으로 시작한 것이 곧 섬 전체 공동체 센터들의 네트워크인 ‘상호부조센터’(Mutual Aid Centers)로 바뀌었던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센터들은 간단한 식사뿐 아니라 예술, 교육, 치료와 관련한 여러 종류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카구아스의 ‘상호부조센터’의 창립 회원 중 한 명인 히오반니 로베르토(Giovanni Roberto)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주말 침술 클리닉을 조직하는 것을 돕는다.

“클리닉은 매주 화요일마다 열립니다. 우리는 귀침술을 합니다. 스트레스와 외상 후 증후군, 중독 등 건강과 관련된 문제들을 다룹니다.” 로베르토는 이 모든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된다고 덧붙였다.

 

허리케인 마리아에 의해 초래된 혼란은 사망, 부상, 재산 파괴를 훨씬 푸에르토리코 사람의 정신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영향은 지속적이고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섬에는 소리 없이 퍼지는 정신 건강 위기에 대한 보고들이 점점 많아졌다. 특히 푸에르토리코의 이미 망가진 보건관리 시스템이 폭풍 이후 더욱 약화되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적절한 보건 관리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는 그 자체가 하나의 재앙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호부조센터’에서 일하는 로베르토의 일이 알려지자, 공동체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이 병을 해결하기 위해 모이고 있다. 로베르토는 우울증과 재해 후 트라우마를 치료하고 있던 센터의 정규 자원봉사자들 중 한 명의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이곳에 처음 온 날, 그녀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거의 울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녀는 하루도 자원봉사 일을 빼먹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변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울지 않았습니다. 잠도 더 잘 자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이곳에 왔을 때 그녀는 낙원에 온 기분이었다고 오늘 제게 말하더군요.”

 

라스마리아스(Las Marias)에서 떨어진 마을에 있는 또 다른 상호부조센터의 창립자인 오마르 레예스(Omar Reyes)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센터를 공동체 주방으로 시작했습니다. 급박한 순간에 일이 그렇게 진행되더라고요. 사람들은 먹을 게 필요했죠. 그런데 문제가 바뀌니, 도구도 바뀌었습니다. 변형된 것이죠. 그리고 지금은 교육, 오락, 문화기술, 기회들의 발전을 위한 센터가 되었습니다.”

 

우투아도(Utuado) 마을에 있는 상호부조센터 창립자인 아스트리드 크루즈 네곤(Astrid Cruz Negón)도 같은 소감을 표현했다. “우리 상호부조센터는 허리케인 마리아에서 살아남는다는, 긴급상황에서 형성된 태도에 머물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이 새로운 세상, 더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기를 원합니다.”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공동체가 빛을 유지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표는 광범한 운동을 형성하기 시작하는 힘, 대체로 요구를 거절해 온 정부에 대해 진지한 요구를 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공동체에 있음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그때까지 공동체들은 사태를 자신들의 손으로 장악해야 한다.

 

여기에서 나타난 재해 공동체주의의 사례들은 진공 상태에서 일어난 일들이 아니다. 이 사례들은 재해자본주의 세력과의 지속적인 긴장 속에서 종종 발생한다. 뉴욕시는 샌디가 몰아친 이후 수년간 지역 공동체들과 권력 대리인들이 서로 매우 다른 종류의 복구를 두고 싸운 전쟁터이었다. 즉, 서로 반대되는 힘들의 전투장이었던 것이다. 푸에르토리코의 상호부조센터들은 일단의 세력들(미국 정부, 푸에르토리코 정부 그리고 기업들)과 대립하고 있고, 그들의 힘은 상호부조센터 프로젝트의 미래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재해 공동체주의가 구호와 복구 과정에 필수적인, 지역·주·전국 수준의 정부의 작고 큰 규모의 지원을 받아 형성되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책을 추동하는 결정권이 점점 소수의 권력자들의 수중에 쥐어지게 되면서, 당국의 재해 대처는 사회·정치적 개입 없이는 인종과 계급에 따라 형성된 기존의 계층화를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재난의 시기에 공동체 사람들이 서로를 보살피고 종종 정치적 참여를 낳을 수도 있는 새로운 연대를 만들기도 한다고 기록한 역사의 방대한 저장소는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복구 허브들은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다. 종교 단체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즉석 주방들이 출현하여 단지 식사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삶의 새로운 비전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이 혼란스럽고 분열적인 시대에, 그리고 사회가 심각하고 만성적인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우리는 가물거리는 희망의 빛을 본다. 그것은 바로 공동체 내의 가장 상처 입기 쉬운 것을 돌보기 위해 우리가 모일 수 있는 가능성이다.

 

‘언도큐펀드’ 창립자인 데빈 카드내스(Davin Cardenas)는 이렇게 말한다. “혼란 속에서도 유대를 창출하려고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목적과도 같은 것을 창출하려고 하는 것이죠.” 캘리포니아에 난 산불 이후, “‘아,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어떻게 내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와 같은 느낌을 모든 사람들이 받았습니다. 우린 이런 말들을 수도 없이 계속 들었습니다. [‘언도큐펀드’가] 사람들에게 목적의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목적의식은 혼란 속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사랑을 보여주려고 하고 보살핌을 입증하려고 하고 연대감을 보이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본능인 것이죠.”

 

깊어지는 분열과 기후 변화로 특징지어지는 불확실한 미래이지만, 공동체 구호 및 복원 활동의 많은 사례들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고 근본적인 복원력을 가지고 재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청사진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사례들은 또한 더 많은 연결, 목적의식, 의미로 채워진 힘을 가진 공동체를 특징으로 하는 ‘다른 세계’를 힐긋이나마 보여줄 수 있다.




고조되는 협동조합 운동 – 슈나이더와의 인터뷰

 


  • 저자  :  Nathan Schneider, Amy Goodman, Juan Gonzalez
  • 원문 :  Interview: Nathan Schneider with Amy Goodman and Juan Gonzalez, Democracy Now (2018.09.18)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Noncommercial-No Derivative Works 3.0 United States License

  • 분류 : 번역

  • 옮긴이 : 민서
  • 설명 : 아래는 Democracy Now!의 2018년 9월 18일 자 뉴스에서 네이선 슈나이더(Nathan Schneider)를 인터뷰한 것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번 주는 ‘월가를 점거하라’ 운동 7주년이자 미국 투자 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여 세계 금융위기가 촉발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이 위기는 ‘월가를 점령하라’, 스페인의 M-15 운동 및 그리스의 긴축재정 반대운동을 포함해서 전 세계에서 대대적으로 반자본주의 운동들을 촉발했다. 저자이자 활동가인 네이선 슈나이더(Nathan Schneider)는 “우리가 이 날들, 특히 경제가 붕괴된 날을 거의 추념하지 않는 ··· 이유는, 붕괴의 원인···을 다루기 위해 우리가 정말로 어떤 진지한 일을 해 본적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슈나이더는 자신의 신간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활한 협동적 소유권에 기반을 둔 대안적 경제 모형의 윤곽을 그린다. 이 신간의 제목은 『모두를 위한 모든 것—앞으로의 경제를 형성하는 급진적인 전통』(Everything for Everyone: The Radical Tradition That Is Shaping the Next Economy)이다.

 

후안 곤살레스

이번 주는 ‘월가를 점거하라’ 운동 7주년이자 미국 투자 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여 세계 금융위기가 촉발된 지 10년이 되는 날입니다. 미국 정부가 월 스트리트의 최대 부실 은행 몇 곳에는 공적자금을 지원했지만, 미국과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집과 평생 모은 재산을 날렸습니다. 유럽의 활동가들은 주말 내내 10주년을 추념하기 위해 프랑스와 독일 은행 밖에서 항의했습니다.

 

에이미 굿맨

금융위기는 이곳 미국에서의 점거운동과 스페인의 15-M 운동 및 그리스의 긴축재정 반대운동을 포함해서 전 세계 반자본주의 운동들을 대대적으로 촉발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금융위기의 영향에 관해 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네이선 슈나이더씨와 함께 합니다. 네이선 슈나이더씨는 협동적 소유권에 기반을 둔 대안적 경제 모형의 윤곽을 그리는 신간의 저자이시며, 협동조합 운동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다시 고조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슈나이더씨의 책이 막 발간되었습니다. 책 제목이 『모두를 위한 모든 것—앞으로의 경제를 형성하는 급진적인 전통』(Everything for Everyone: The Radical Tradition That Is Shaping the Next Economy)입니다. 최근에는 「부자들이 미국을 망가뜨리고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Rich People Broke America and Never Paid the Price”)라는 헤드라인이 달린 그의 이 <바이스>(Vice)지에 실렸습니다. 또한 『고마워, 아나키—오큐파이 아포칼립스로부터의 소식』(Thank You, Anarchy: Notes from the Occupy Apocalypse)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네이선 슈나이더 씨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이며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캠퍼스의 미디어학 교수입니다.

<디마크러시 나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막 볼더에서 오셨군요. 자, 경제 붕괴라고 불리는 것의 10주년과 당신이 아주 큰 부분을 차지했던 오큐파이운동 7주년, 이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네이선 슈나이더

우리가 이 날들, 특히 경제가 붕괴된 날을 거의 추념하지 않는 게 놀랍습니다. 경제 붕괴가 지난 10년을 규정했고 제 세대를 규정했으며 아주 많은 사람들의 삶을 규정했는데도 말입니다. 우리가 그날을 추념하지 않는 이유는, 붕괴의 원인과 붕괴에 대한 끔찍한 반응을 다루기 위해 우리가 정말로 어떤 진지한 일을 해 본적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붕괴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집과 일자리를 잃어야 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상상력이 바닥나 있는 동안에도, 풀뿌리 수준에서 그리고 점점 더 정책 수준에서 운동이 조용하게 성장하여 이런 협동조합 기업 전통을 통해 세상을 바꿀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곤살레스

그 몇 가지 예를 들어 주시겠습니까? 아시다시피 경제 위기 이전에도 수십 년 동안 미국에 협동조합 운동이 있었죠. 붕괴 이후에 일어난 변화를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말씀해주세요.

 

슈나이더

물론, 오랜 전통이 있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것은 농부들에게 힘을 실어준 전통이자 소기업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해준 전통이지만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저의 조부가 소규모 철물점들이 살아남고 번창할 수 있도록 하는, 전국적인 철물점 구매협동조합을 만드는 데 기여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저는 그것이 협동조합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배운 어떤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붕괴 이후 몇 년 동안 예를 들어, 2011년 점거 운동을 하는 동안 ‘예금 옮기기’(Move Your Money) 날이 있었는데 이날 수십만 개의 계좌가 대형 은행에서 신용협동조합(은행에서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들이 소유한 은행)으로 이동했습니다. 전국적으로 특히 도시에서 노동자 소유권에 대한 관심, 즉 노동자들이 그들이 고용된 사업체의 소유주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점점 더 연방정부의 전략으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놀라울 정도로 초당파적인 기회입니다. 10년 전 있었던 우리 경제 시스템의 실패를 실질적으로 벌충할 조용한 기회죠.

 

곤살레스

하지만 일부 약탈적인 자본가들도 사업가들 간의 협동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거나 발전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다소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에어비앤비, 우버 같은 공유 경제 전체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일종의 협동 아이디어를 채택하고 있고 이것으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슈나이더

맞는 말씀입니다. 아시겠지만 협동조합 만들기가 사실상 원조 크라우드펀딩이었으며 원조 공유경제였습니다. 대부분 우리는 이제 우버와 에어비앤비의 경제가 진정한 공유경제가 아니라 추출경제라는 사실을 알 만큼 똑똑해졌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제가 관심을 가지고 주로 추적해 온 것은 세계 전역에서 일군의 사람들이 진정한 공유경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입니다. 디지털 도구들을 사용해서 맨 아랫사람까지 소유권과 거버넌스를 모두 공유하고 최전방 노동자들—청소하는 사람들과 운전자들 등등—이 자신들의 노동 기준을 직접 결정하는 긱경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죠.

 

에이미 굿맨

이것은 당신이 ‘월가를 점거하라’에서 당신이 말하는 장면입니다. 일곱 번째 기념일이 어제 9월 17일 월요일이었는데요, 이것은 저기 주코티 공원에서 당신이 말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집회입니다. 제 생각에 현재의 핵심요구 사항은 조직할 권리, 공공장소에서 정치적인 대화를 나눌 권리, 말하자면 월 스트리트에 민주주의가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 줄 권리인 것 같습니다.”

슈나이더씨, 저것은 7년 전 당신의 영상이에요. 이제 당신은 이 책을 쓰셨군요. 당신이 말하고 있는 이 급진적 전통과 전 세계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협동조합, 구체적으로 이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당신이 기대를 가장 많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슈나이더

놀랍게도 저 광장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일상적인 삶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한다는 생각은 우리가 잃어버린 일종의 희망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1930년대와 40년대에도 미국 정부가 촉진하고 있던 그런 것이었죠. 그것은 잊혀진 가능성, 뭐 그런 것이었습니다.

개개의 기획들과 관련해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플랫폼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방법을 습득하는 긱경제가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지금껏 우리가 보아온 것과는 사뭇 다른 기회가 놓여있는데, 현재 실버 쓰나미(silver tsunami)(([옮긴이] 실버 쓰나미(Silver Tsunami)는 급격한 인구 고령화를 빗댄 말로 주로 베이비부머들의 은퇴시기를 나타낸다.))로 알려진 현상으로 기업 소유주들 전부가 은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전국의 고용주들인 중소기업들이 사적 지분에 잡아먹히고 있습니다. 바로 이 상황이야말로 직원 소유권으로 전환할 기회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정책도구와 제대로 된 쓸모 있는 금융도구를 가지고 있다면 말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기회는 엄청난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사회운동들과도 연결됩니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위한 강령은 그 정책제안들에서 ‘협동’과 유사한 단어들을 40번 이상 언급했습니다. 이것은 사회운동이 협동조합 기업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곤살레스

그렇다면 정치권력 구조에 어떠한 종류의 변화도 없다면 입법자들이 협동조합 운동들을 억제할 방법과 사회에서 특혜 받는 위치에 있는 독점자본이나 대자본을 유지할 방법을 항상 내놓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슈나이더

이상한 것은 사실상 이것이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로지르며 일어나고 있는 어떤 것이라는 것입니다. 조용하게 일어나고 있긴 하지만요. 아시다시피 실제로 민주당과 공화당의 2016년 강령은 노동자 소유권이 늘어나는 것을 지지합니다. 지난 2년 동안 민주당은 이것이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기를 원하는 쟁점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 왔죠. 불과 2주전에 기업의 노동자 소유권과 기업의 전환을 촉진하는 메인스트리트 고용인소유권 법안(Main Street Employee Ownership Act)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래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양극화된 이 순간에 우리에게 흥미로운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미 형성되기 시작한 정치적 토대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토대를 강화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10년 전 붕괴를 만들어 낸 바로 그 시스템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는 요구사항을 훨씬 큰 소리로 키워서 저들이 경청하도록 만들기만 하면 됩니다.

 

굿맨

긱경제와 조작된 경제(rigged economy)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슈나이더

조작된 경제—맞습니까?—는 책임이 위로 향하는 경제로서, 이 경제에서 기업은 궁극적으로 소수의 주주들과 대규모 투자자들에게만 책임을 지게 됩니다. 기업이 모진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기업의 책임은 위로 향하고, 담보대출금 때문에 위태로운 사람들은 책임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입니다.

긱경제는 어떤 의미에서 기회이자 위험입니다. 긱경제는 그것이 노동자들이 수십 년 동안, 수백 년 동안 쟁취해온 것을 포기함을 의미한다는 점에서는, 종종 그런 의미였다는 점에서는 위험입니다. 하지만 긱경제가 보다 유연한 노동의 기회를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노동자들이 실제로 통제권을 쥐고 있는 노동의 미래를 창출할 기회가 됩니다.

 

굿맨

마지막으로, 일어난 일에 대해 누가 책임을 졌는가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10년 전에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가 하는 사실이 있죠?

 

슈나이더

제 생각에 우리는 사실상 아무에게도 충분할 정도로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가지 않은 사람 등에 대한 이야기도 한동안 많이, 혹은 상당히 있었습니다.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도구세트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가 준거할 수 있는, 입증된, 사실상 초당적인 전통도 있습니다.

 

굿맨

네이선 슈나이더씨는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캠퍼스의 미디어학 교수입니다. 그의 신간은 『모두를 위한 모든 것—앞으로의 경제를 형성하는 급진적인 전통』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후안 곤살레스와 함께 하고 있는 에이미 굿맨입니다. 함께 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활동가 네트워크에서 연결된 다중까지


  • 저자  :  Amador Fernández-Savater, Guiomar Rovira
  • 원문 : “No Future: From Punk to Zapatismo and Connected Multitudes (2018.08.07)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
  • 스페인어 원문 : https://www.eldiario.es/interferencias/punk-zapatismo-multitudes_conectadas-red-accion_colectiva_6_748285172.html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이 텍스트는 기오마르 로비라(Guiomar Rovira)의 책 『네트워크화된 행동주의와 연결된 다중들 ―인터넷 시대의 소통과 행동』(Activismo en red y multitudes conectadas: Comunicación y acción en la era de Internet)(([정리자] 영어로 ‘Networked Activism and Connected Multitudes’라고 옮겨져 있지만, 영어본은 아직 없는 듯하다.))의 출판기념회에서 있었던, 아마도르 페르난데스-싸바떼르(Amador Fernández-Savater)와 로비라의 인터뷰(2017년 9월 19일 UAM-Xochimilco에서 행해짐)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원래 스페인어로 된 인터뷰를 후아레스(Gerardo Juárez)가 영어로 옮겼고 페르난데스-싸바떼르가 편집했다. 영어본을 옮기다보니 의미가 잘 안 통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스페인어 원본을 보고 영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의미의 손실이 다소 생긴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고 스페인어본만으로 옮기자니 능력도 시간도 부족해서 결국 영어본을 우선으로 하고 스페인어본으로 확인하는 방식을 취하다보니 분류상 ‘번역’보다는 ‘정리’의 형태로 귀착되게 되었다. 물론 정리로서는 매우 상세한 것에 해당한다.

 

[스페인어 편집자의 설명]

90년대 일어난 소련의 몰락 이후 ‘단일한 사유’(([영역자주1] ‘단일한 사유’(Pensée unique)는 프랑스 저널리스트 칸(Jean-François Kahn)이 만들어낸 말로서 헤게모니적 이데올로기에의 순응을 가리킨다.))에 대한 말이 많이 돌았다. 이는 시장 민주주의를 공통적 삶의 상상 가능하고 식별 가능한 유일한 틀로 제시하는 담론이다. 촘스키(Noam Chomsky)가 말했듯이, 이 내러티브가 침투하는 유일한 방식은 정보와 미디어의 집중, 즉 발언권과 가능한 것의 상상의 집중이었다. 이는 바로 신자유주의의 번성기였다.

로비라는 『네트워크화된 행동주의와 연결된 다중들 ―인터넷 시대의 소통과 행동』에서 어떻게 이 신자유주의라는 독백에 물음을 던지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힐지에 대해서 말한다. 책은 인터넷의 개방적이고 탈중심화된 구조를 활용한 활동가 네트워크들의 출현에서 시작한다. 이 네트워크들은 공식적 내러티브와 구분되는 이미지·단어·감정을 보급할 새로운 테크놀로지 도구들을 창출했다. 이는 사빠띠스모와 반지구화운동의 시기였다. 나중에 웹2.0과 함께 네트워크들의 정치화된 활용이 사회화되어 누구에게나 접근이 가능해진다. 이는 연결된 다중의 시대이며 여기에는 15-M을 비롯한 운동들이 포함된다.

기오마르의 서술은 일반적인 학술적 글들과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 우선 이 책은 비판적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긍정적이다. 일단 사람들이 전유했을 경우의 테크놀로지가 가진 정치적 활력이 긍정된다. 저자는 권력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지 않는다. 우리의 활력부재에 대해서 말하지도 않고 우리가 지배당하고 조작당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으며 우리가 희생당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행해진 것, 행해지고 있는 것, 행해질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한다. 그녀는 세상을 활력의 관점에서 본다.

둘째, 이 책에는 몸으로 겪은 체험이 담겨 있다. 저자의 개인적 경험 ―펑크, 사빠띠스모(Zapatismo) 혹은 멕시코의 ‘나는 132번째다’(#Yosoy132) 운동을 거쳐간다― 이 성찰의 바탕을 이룬다. 로비라는 까딸루냐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서 1994년 이래 멕시코에 와서 살고 있다. 그녀는 여러 글들의 저자이며 멕시코시티의 우암-호치밀꼬 대학(UAM-Xochimilco University)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아마도르

당신의 책에서 말하는 최초의 역사적 시기는 ‘활동가 네트워크들’의 시기입니다. 그 근본적인 구성요소들 가운데 하나가 당신이 80년대에 바르셀로나에 살면서 개인적으로 경험한 펑크(punk)입니다. 펑크는 어떻게 이 네트워크들의 창출에 영향을 미쳤나요?

 

기오마르

거기서 출발하시니 좋군요. 펑크가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들 가운데 하나는 ‘미래는 없다’입니다. ‘미래는 없다’에 집중하는 것은 새로운 정치를, 훨씬 더 예시적인 정치를 열어젖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토피아를 기다리며 꿈꾸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을 하는 것, 그것을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원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시작하기 위해서 지시나 승인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음악과 공간을 전유했습니다. 펑크에서는 누구나 기타 등을 들고 노래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무엇이든 가까이 놓인 것을 가지고 하는 DIY 정신을 발견합니다. 문화적인 것이 정치적이 됩니다.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약속을 위해 늘 지체시키고 희생시키는 체제의 정해진 경계를 떠나는 하나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팬진(fanzine)(([정리자] ‘팬진’(fanzine = fan a+ magazine/-zine)은 특정의 문화현상(문학 장르나 음악 장르)의 열광자들이 관심을 공유하는 다른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비전문적이고 비공식적으로 발행하는 잡지이다. 이 용어는 1940년 10월에 쇼브네(Russ Chauvenet)가 발행한 과학소설 팬진에서 처음 사용되어 과학소설 열광자들 사이에 널리 퍼졌으며 다른 공동체들이 이를 채택했다. (영어위키피디아)))에서 건물점거(squatting)까지 펑크는 매우 풍요롭습니다. 미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살아야 합니다. 집이 없기 때문에 건물을 점거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이 운동은 초국적이 되었습니다. 국가적이거나 국민적인 것이 아니라 도시의 공간들에, 네트워크들의 창출에 각인되었습니다. 확장된 의미의 공동체인 것이죠. 지역을 전유하는 전지구적 운동이며, 누구나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정치이고, 문화 및 소통형태를 허가를 구할 것도 없이 구축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펑크는 해커 정신을 미리 구현합니다. 그 당시 저는 레트라 아(Lletra A)라고 불리는 잡지에서 활동했는데, 우리는 전부 손으로 자르고 붙여서 이 잡지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또 바르셀로나에 점거활동을 위한 매우 중요한 공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수수한 자기조직된 사회센터 엘 안티(el Anti)를 열었는데, ‘미래가 없으니 우리의 삶을 지금 구축하자’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의 활동은 대항정보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변부에 생태계를 창출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사빠띠스모와 ‘희망 인터내셔널’(the Hope International)

 

아마도르

활동가 네트워크들을 창출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는 둘째 계기가 있는데요, 바로 사빠띠스모(Zapatismo)입니다. 사빠띠스모는 펑크와 달리 ‘어두운’ 운동이 아닐 것입니다. 사빠띠스모는 메트로폴리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희망의 지평을 엽니다. 사빠띠스모와 테크놀로지 그리고 소통의 관계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해주실 수 있나요?

 

기오마르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우리는 ‘역사의 종언’을 특징으로 하는 일극 세계에서 살았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가장 놀랍고 뜻밖의 장소에서 반란이, 희망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운동이 일었고 저는 이 운동에 완전히 빨려들었습니다.

사빠띠스모의 의의는 전지구적인 공통의 틀을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당시는 투쟁 전체에 의기소침의 분위기가 팽배할 때입니다. 전지구적으로 좌파가 기가 꺾이고 남미의 게릴라들이 침체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고립된 저항의 과정들로부터 우리를 구하는, 물음을 던지는 틀이 탄생한 것입니다. 많은 상이한 투쟁들로 하여금 공유된 하나됨의 감각과 공동의 적을 두고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능동적 기동의 틀입니다. ‘인류 대 신자유주의’가 바로 그 틀이라고 사빠띠스따는 말했습니다. 누가 이 틀을 제안했나요? 토착민 공동체나 저항이 혹은 투쟁의 가능성이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하는 세상의 저 구석 치아파스에 있는 가장 망각되어 있고 가장 규모가 작은 토착민들입니다.

이 일은 전지구적으로 미디어의 관심을 받은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전통적인 매스미디어(신문, 라디오, 텔레비전)들이 보도를 했지요. (월드와이드웹은 태어난 지 갓 1년 되어서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신문과 라디오는 이 기사를 더 이상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반란을 세상을 위한 희망의 장소로 지지하면서 치아파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함께하고 그것에 개입하는 방법들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아마도르

이때 인터넷의 활용이 일어났지요? 당시 인터넷은 새로운 소통 수단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가요?

 

기오마르

인터넷의 활용은 거의 자연스럽고 자연발생적인 일이죠. 전통적인 미디어로부터의 정보가 없기 때문에 대안 미디어가 그 공백을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주류 미디어에, 주도적인 신문들에 참여하면서 기사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대안적 라디오 방송국들, 대안 미디어, 팬진들에도 많은 정보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이 미국인들이 (미국인들도 때로는 좋은 일을 합니다!) 우리에게 ‘인터넷을 사용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이들은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돌아다니면서 컴퓨터에 모뎀과 이상한 장치들을 설치하는 최초의 해커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매니아들이 뭐 때문에 야단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3개월이 안 되어서 우리 모두 인터넷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모두’라고 말했을 때 이는 저널리스트들, NGO들, 활동가들을 지칭합니다. 치아파스에서 일어난 혁명을 다루는 최초의 웹사이트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등장했습니다. 몇몇 미국 학생들은 상황을 좇으면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의 성명서들을 알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성명서들은 팩스에 의해서 보내졌으며 그 다음에 ‘Ya Basta’라고 불리는 웹사이트에 공표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해서 성명서들을 영어로, 프랑스어로 그리고 또 다른 언어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렇게 정보가 공유되기 시작하고 정보의 비계가 치아파스의 상황을 중심으로 구축되었습니다. 이는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멕시코 정부는 국제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밀어붙이는 데 열중했는데 이제 상황이 달라진 거죠. 그런데 정보만이 유통되는 유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치아파스로 갔고 공동체들을 방문했으며 더 많은 정보를 생성했습니다. 주고받기가 이루어졌습니다. 정보를 받은 사람들이 토착민 반란을 지지했고 토착민 반란은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제안했습니다. 이는 세계의 많은 곳에서 반향을 찾고 차이들을 넘어 공통의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호소였습니다.

 

발터 벤야민 : 무엇보다도 활력

 

아마도르

활동가 네트워크에서 연결된 다중으로 넘어가기 전에 고전적인 저자 벤야민에게서 당신이 발견한 것에 대해서 잠깐 질문을 하고 싶군요. 벤야민의 어떤 점이 그를 일종의 우군으로 보게 만들었나요?

 

기오마르

제가 벤야민에게서 발견한 것은 매우 은유적이고 시적이며 정치적 영감입니다. 그는 암흑과도 같은 자신의 시대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그 어떤 사람보다 뛰어나게 빛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벤야민은 저로 하여금 매 순간, 매 장소에서 활력을 발견하고자 하는 저의 욕구를 이해하게 해주었습니다.

기술은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기술은 자연과 우리의 관계가 적대적이지 않은, 더 충만한 세계에서 살 가능성을 나타냅니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생사를 가르는 폭력에 처하도록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기술의 활력을 왜곡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창출된 고통과 희소성에 기반을 둔 약탈적 자본주의입니다. 삶을 축출하고 강탈을 통해 축적을 한다는 비난은 인터넷에 가해질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류에 복무하지 않고 희소성을 약탈적으로 산출하는 자본주의에 복무하는 전지구적 체제에 가해져야 합니다. 벤야민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다른 가능한 근대를 구상하라고 우리에게 권유합니다.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벤야민은, 우리 모두가 기술을 전유해서 능동적 주체가 되어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더 충만한 삶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민주화 가능성이 생성되는 것을 봅니다. 「역사철학에 관한 테제」에 나오는 ‘지금 시간’(jetztzeit)―모든 것이 열리는 일종의 현현이 ‘지금 이곳’에 성좌처럼 빛나는 순간―이라는 생각도 주목할 만합니다. 성좌라는 생각은 제 책에서 계속 나옵니다. 우리보다 앞서간 사람들은 정의가 이루어지도록 하라고 우리에게 청합니다. 그런데 운동에 단일한 하나의 계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운동이 제각각 고유한 역사를 구축하고 그 빛나는 순간들을 창출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의 운명을 구체화합니다. 이는 정치적인 것의 바탕에는 과거에의 열림도 존재한다는 점을 매우 창조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됩니다.

벤야민은 영감의 원천입니다. 그는 나의 할아버지의 고향인 뽀르보우(Portbou)에서 죽었습니다. 올해 여름 나는 그의 무덤을 보러갔습니다. 그는 끔찍한 삶을 살았고 그가 응당 받아야 하는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러면서도 당대의 가장 낙관적인, 가장 창조적인 지식인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고통을 겪는 사람이 열림을, 가능성을, 활력을 가장 잘 볼 수 있습니다.

 

연결된 다중 : 모든 사람의 손에 쥐어진 테크놀로지

 

아마도르

처음에는 활동가들의 네트워크가 있었고요 활동가들이 테크놀로지를 전유했습니다(펑크, 사빠띠스모, 반지구화 운동). 그 다음 운동은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킨 것으로서 ‘연결된 다중들’(connected multitudes)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이행에 대해서 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오마르

활동가들의 네트워크의 소통 환경은 주로 전투적 활동가들, 즉 정치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채워져 있습니다. 연결된 다중들로의 이동은 주된 목소리가 더 이상 활동가들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로 크게 특징지어집니다. 사회적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정치화를 거치거나 어떤 특정한 활동가 공간에 속하지 않고 발언권을 가집니다. 이는 이윤을 추출하는 네트워크들인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처럼 ‘정치적 올바름’에서 벗어난 공간들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멕시코의 ‘나는 132번째다’(#Yosoy132) 운동을 예로 들어봅시다. 시위를 시작했던 모든 이베로아메리카 대학의 학생들이 이전에 이미 정치화되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느꼈고 뻬냐 니에또(Peña Nieto) 대통령의 대학 방문에 대한 말이 나온 후에 불만을 표현해서 미디어에서 들리게 할 도구들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이 유튜브에 업로드한 비디오가 인상적인 영향을 미쳐서 사람들의 분노를 고조시켰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공감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중요한 운동이 UNAM(([영역자주2] 멕시코 자율대학(Universidad Nacional Autónoma de México or National Autonomous University of Mexico)은 연구개발에서 세계 최고의 대학 가운데 하나이다. 더 자세한 것은 위키피디아 참조.))에서 혹은 오랫동안 부당한 상황을 비판하며 이를 갈던 사람들에게서 나오지 않고 전혀 뜻밖의 예측할 수 없던 집단에서 나올 수 있었는지, 모든 사람들이 의아해 합니다.

그 투쟁에서 마누엘 까스뗄스(Manuel Castells)가 ‘대량자주소통’(Mass Self Communication)이라고 부른 현상이 산출됩니다. 누구나가 정보 생산자, 리믹스하는 사람, 리트윗하는 사람이 되고, 누구나가 대화에 참여하고 가령 그래픽 아트 같은 자신의 능력으로 운동을 강화합니다. 내보내는 과정과 받아들이는 과정의 구분이 흐려지며, 기원, 권위, 원(原)저자 같은 오래된 관념들의 견고성이 감쇠됩니다.

 

아마도르

당신의 책은 대안적 소통의 단계들에서 일어난 이 이행의 긍정적 성격을 부각시킵니다. 이는 민주화 과정입니다. 만일 이전에 네트워크들이 활동가들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면, 이제 테크놀로지의 정치적 사용은 모든 사람의 손에 쥐어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우리는 그 사이에 해커 정신에서 결정적인 요소들인 테크놀로지 기반시설과 테크놀로지 주권의 중요성을 시야에서 놓치고, 시스템을 우리가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네트워크들 덕분에 얻게 되는 내용의 보급에서의 ‘편의’만을 보는 것은 아닐까요?

 

기오마르

당신이 언급한 것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우리가 놓치는 것에 대해 당신이 말한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군요. 내 생각에 스노우든과 위키리크스의 폭로 덕분에 우리는 네트워크를 별 의식없이 자동적으로 사용하는 데서 더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데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 우리는 사회적 네트워크에서의 감시, 통제 및 데이터 전유에 대해 훨씬 더 잘 알고 있는 새로운 운동의 출현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높은 의식은 이전에는 없던 것이며 우리가 이에 도달한 것은 일부 해커들의 활동 덕분입니다. 나는 스노우든, 첼시 매닝, 줄리언 어산지를 해커들로 봅니다. 그들은 왜 우리가 조심해야 하고 토르(Thor)를 사용하고 프리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왜 우리가 안전한 비밀번호를 가질 필요가 있는지를, 그리고 웹을 책임감 있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습니다. 결과가 어떨지 보기로 하죠.

 

함께 하기

 

아마도르

지식인들이 손가락을 올리면서 우리에게 ‘잘못 되고 있으니 조심하세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테크놀로지의 더 많은 사회적 전유, 더 많은 학습, 더 많은 테크놀로지 리터러시(technology literacy), 더 많은 핵랩들(hacklabs)입니다. 내 생각에 이는 당신의 책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당신은 인터넷 외부에서는 해결책이 발견되지 않으리라고 주장하면서도 인터넷이 안 좋아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기오마르

테크놀로지에 대한 담론 차원의 비판은 결코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 합니다. 우리는 공간들을 전유하고 협동형태들을 구축하며 우리가 아는 것을 공유함으로써,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우리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하고 전과는 다른 방식들을 생성함으로써 네트워크에서의 사회성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내 책에서 ‘해커 되기’라고 불렀습니다. 해킹은 단순히 테크놀로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에게 해킹은 테크놀로지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해커는 무언가를 해체하고 그 다음에 새로운 것을 구축합니다. 블랙박스처럼 주어진 것을 해체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이죠. 이는 테크놀로지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어디에서든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든 인간관계에서든,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잠재력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해커페미니즘 전문가인 브리오네스(Fernanda Briones)는 ‘함께 해요’라고 말합니다.(([영역자주3] 원어로는 “Hagámoslo juntas”이다. 스페인어 어휘에는 성(젠더)에 따른 변화가 있다. “juntas”는 “함께”(together)의 여성형[복수]이다. 15M운동 이후에 기본형인 남성형(‘juntos’)보다 여성형이 더 자주 사용되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젠더의 사람이든 젠더가 혼합된 집단을 서술하는 경우에는 여성형을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아마도르

테크놀로지와 신체들의 관계, 즉 바이트의 세계와 원자의 세계의 관계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오마르

온라인 세계와 오프라인 세계의 구분을 넘어서 모든 것이 온-라이프(on-life)로, 즉 삶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이런 식으로 보면, 조우라는 신체적 경험이 열쇠입니다. 나가서 서로 바라보고 신체와 신체의 연결을 경험하는 것, 신체적 조우, 나타남의 공간들을 열고 신체의 민감함을 실험하는 것―이것이 내가 보기에 열쇠입니다. 이렇게 네트워크를 이루게 되면 수탈적인 자본주의와 접하고 있는 조건에서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두가 공통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신체들의 조우가 탁월한 정치적 계기인 거죠.

내 생각에 신체의 민감성과 연관된 이 차원이 주의주의적 행동주의를 무언가 더 살아있고 덜 계획된 것으로 변형시켰습니다. 신체는 가시화되고 상호작용하며, 공락·정동·돌봄의 공간들을 창출하는 동시에 사적인 것을 정치화합니다. 현재 내 생각으로는 연결된 다중의 페미니즘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의, 불가피해지는 페미니즘의 자유로운 전유와도 같은 것이죠. 그 어떤 해방운동도 여성들의, 페미니스트들의 오랜 투쟁에서 나오는 폭넓게 다양한 제안들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신체를 통해 일어납니다.

나는 거리에서 조우하는 신체들과 네트워크를 통한 소통을 서로 분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종의 사이보그입니다. 우리는 테크놀로지로 된 우리 자신의 연장부분을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정치와 연관해서 말하자면, 테크놀로지는 집단적 행동의 일부가 됩니다. 부가적이거나 상이한 어떤 것이 아닙니다. 잘 생각해보면, 가장 중요한 사이버공간 및 네트워크 행동은 항상 거리에서의 집회라는 맥락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행동하기는 소통하기이며 소통하기는 행동하기입니다. 모든 것이 라이프 차원에서 일어납니다. 우리의 두뇌들이 궁극적인 플랫폼입니다. 신체적인 것의 외부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네트워크들이 신체적인 것의 외부에 있다는 생각이 매우 강한데요, 나는 이와 반대로 생각하고자 합니다.

 




페미니즘과 혁명: 과거를 되돌아보고, 앞날을 내다보며


  • 저자  :  Julie Matthaei(([옮긴이] 줄리 매사이(Julie Matthaei) : 웰즐리 대학(Wellesley College) 경제학 교수. 페미니즘 경제학과 젠더•인종•계급에 관련된 정치경제학을 가르친다. 그녀는 <미국연대경제네트워크>(U.S. Solidarity Economy Network)의 공동 설립자이자 이사이며, 근간 도서 『불평등에서 연대로: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경제를 공동으로 창출하기』(From Inequality to Solidarity: Co-Creating a New Economics for the Twenty-First Century)의 저자이다.))
  • 원문 : “Feminism and Revolution: Looking Back, Looking Ahead (2018.06) / CC BY-NC_ND 4.0
  • 분류 : 번역
  • 옮긴이 : 민서

 

반세기 전에 ‘제2물결’ 페미니즘이 퍼지고 난 후 페미니즘 운동은 점차 더 포괄적이고 조직적으로 되었다. 초기에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진정한 여성해방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것이 필요하며 따라서 한때 페미니스트와 반계급주의자의 입장에서 정치는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곧 그들 역시 인종•민족성•성적 지향성 및 여타 정체성과 사회적 위치의 원천들에서 발생하는 억압을 인정하는 이론과 실천을 확장하라는 도전에 직면했다. 이 도전에 응하는 것이,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에 뿌리를 두고 있고 페미니즘 운동 내부에서 그리고 여타 운동들과의 관계에서 발현되는 연대정치를 낳았다. 중요하게도 이 새로운 정치는 연대경제에서 새로운 실천과 사회제도를 창출함으로써 개인들이 급진적인 사회변화에 참여하는 방식을 제공한다. 확고하고 포괄적인 페미니즘은 모든 종류의 억압을 없애는 ‘거대한 이행’에 필요한 더 큰 연대정치와 연대경제를 구축하는데 여전히 필수적이다.

 

1. 서론

누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싸움을 이끌 것인가? <거대한 이행 기획>(The Great Transition Initiative, GTI)은 세상을 공정하고 지속가능하게 바꿀 수 있는 “전지구적 시민운동”의 출현을 10년이 넘도록 확인했다. 이 운동이 하나의 온전한 운동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인데, 과거 50년에 걸친 페미니즘의 진화가 귀중한 교훈을 제공한다.

미국 맑스주의-페미니스트이자, 반인종차별주의자 및 생태경제학자로서 나는 이론과 실천 측면에서 이 진화의 일부분이었다. 1970년대 초 제2물결 페미니즘에 꼭 필요한 부분으로서 우리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억압적인 시스템과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할 것을, 다시 말해 이 두 가지를 극복하지 않고는 해방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단지 여성다움이라는 정체성에 기반을 둔 정치나 노동계급 혁명을 중심으로 하는 맑스주의적 계급정치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었다.

곧 우리와 여타 페미니스트들은 우리의 렌즈를 더 확장해야 할 필요성에 맞닥뜨렸다. 젠더•계급•인종•섹슈얼리티•민족성 등등의 정체성들은 상호간에 결정하고 있다는 통찰력이 새로운 개념인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낳았다. 일부 사람들은 정체성과 억압의 형태들이 상호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분열을 초래하는 것으로 판명되리라고 우려했지만 분열에서 시작한 것이 새로운 형태의 정치 즉 연대정치를 낳았다. 연대정치는 운동들을 가로질러 그리고 운동들 내부에서 사람들을 결속시킬 수 있고 어떤 성공적인 전지구적 시민운동에라도 기본적인 틀을 제공한다. 사실 이 동학은 현장의 다양한 사회 운동들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고 연대경제에 기반을 둔 새로운 실천과 제도의 발전에 영감을 주고 있다.

 

2. 페미니즘, 맑스주의와 만나다

1970년대 초에 제2물결 페미니즘(참정권 획득에 초점을 맞춘 제1물결과 대조해서 이름 붙여진 것)이 미국과 그외 지역에서 폭발적으로 일었다. 의식을 고양하는 집단에서 만난 여성들은 풀뿌리 조직들을 형성하여 사무직 조직화에서부터 미디어 개혁에 이르는 광범위한 페미니즘 투쟁에 참여했다. 주류 페미니즘 조직들은 재생산권을 보장하는 데, 그리고 유급노동자로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 및 기회를 획득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제2물결 페미니즘 운동에는 또한 활동적인 좌파인 맑스주의/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포함되었으며 그들은 자본주의와 혁명에 대한 맑스주의 이론을 발판으로 삼으면서도 이를 비판했다. 맑스주의/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맑스주의의 이론적 틀이 자본가들이 여성을 노동자로서 억압하는 것을 분석하지만 가정과 일터에서 남성들이 여성을 억압하는 문제를 간과하고 있는 것에 주목했다. 이상적으로는 노동계급 운동을 혁명적으로 표현하는 노동조합이 여성들의 평등과 관련하여 복잡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19세기에 노동조합들은 여성을 고임금직에서 배제하고 가정에 묶어두는 것을 옹호했다. 전통적인 남성들처럼 전통적인 맑스주의자들은 페미니스트들이 맑스주의와 연결될 때에는—전통적인 아내들처럼—그들의 정체성을 잃는다고 생각했다.((원주1. 미국에서 나온 두 주목할 만한 선집들로는 Zillah Eisenstein, Capitalist Patriarchy and the Case for Socialist Feminism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79)와 Lydia Sargent, Women and Revolution: A Discussion of the Unhappy Marriage of Marxism and Feminism (Boston: South End Press, 1981) 참조. 영국에서는 Annette Kuhn and AnnMarie Wolpe, Feminism and Materialism: Women and Modes of Production (London: Routledge, 1978)가 유사한 주제들을 탐구했다.))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또한 맑스주의의 혁명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맑스주의 이론은 노동자들을 혁명적인 사회 변화의 주체로 보고, 계급투쟁을 그 발동기로 보았으며, 사회주의 계획 경제를 목표로 여겼다. 이 변화의 비전이 너무 강력해서 소련에서 민주주의의 개탄스러운 부재가 분명해진 이후에도 초기의 맑스주의/사회주의-페미니스트들은 억압에 저항하는 여성들과 함께 조직화하는 것을 계급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자 주도의 혁명을 쟁취한 이후로 연기하라는 말을 들었다. 남성 좌파들에 따르면 페미니스트들의 조직화는 노동계급을 갈라놓을 것이고 그로 인해 자본주의를 영속시킬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혁명 이후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으며 맑스주의나 더 나은 사회주의 미래와 연결되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는 페미니즘이 고조되자 근본적인 변화를 느꼈고 사회주의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로 작정했다. 우리는 두 가지 진실을 보았다. 다시 말해 여성해방은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우리의 해방을 위한 싸움을 사회주의 혁명 이후로 미룰 수도 없었다. 가정주부들은 유급노동자로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결혼에서 겪던 젠더 억압에서 풀려나와 고용주에 의한 계급 및 젠더 억압을 겪게 되었다. 젠더 불평등과 지배구조가 페미니즘 운동으로 어떻게든 없어지더라도 여성들은 계속해서 노동자로서 억압받게 될 것이다.

동시에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적어도 지금까지 실행된 바의 사회주의 혁명으로는 여성의 억압이 없어지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소련과 유고슬라비아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여성들의 경험에 기초해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겪은 경험은 미국의 좌파남성들도 마찬가지로 성차별주의자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사회주의-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페미니즘적·반(反)계급주의적 조직화에 몰두했고 탈자본주의적, 사회주의-페미니즘적 체제라는 한층 폭넓은 비전 쪽으로 나아가는 데 몰두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버클리•시카고•뉴헤이븐에서의 사회주의-페미니즘적 여성들의 연합을 창출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가했는데 학자들과 활동가들은 자본주의를 페미니즘적•반계급주의적 입장에서 체계적으로 변형시키는 것을 지지하기 위해 그곳에 한데 모였다.((원주2.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여성을 다룬 것으로는 Hilda Scott, Does Socialism Liberate Women?: Experiences from Eastern Europe (Boston: Beacon Press, 1974) 참조. 사회주의-페미니즘 조합의 발생에 대해서는 “The Berkeley-Oakland Women’s Union Statement,” in Capitalist Patriarchy and the Case for Socialist Feminism , ed. Zillah Eisenstein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79) 참조.))

우리는 맑스주의 이론을 좀 고쳐서 여성의 경제적 위치를 분석하고 해명하는 데 더 잘 사용될 수 있도록 했다. ‘가사노동 논쟁’에서 우리는 집안일이 생산적 노동이 되어 자본가를 위해 잉여가치를 만들어내는지 아닌지를 검토했다(논쟁에 대한 명확한 결론은 내리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맑스의 유물론 분석—‘생산과 재생산의 양식’을 구체화하는 분석—을 사용하여 가정관리와 육아라는 여성의 무급 노동을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의 일부로서, 따라서 혁명적인 조직화에 핵심이 되는 것으로서 분석했다. 이 논의들은 ‘가사노동에 임금’을 요구하는 운동을 활성화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 논쟁이 하나의 이론적 틀을 중심으로 한 합의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을지라도 여성의 무급 돌봄 노동을 경제적·사회적 삶의 핵심적인, 그러나 저평가된 측면으로서 부각시키고 확증했다.((원주3. Julie Matthaei, “Marxist-Feminist Contributions to Radical Economics,” in Radical Economics , eds. Susan Feiner and Bruce Roberts (Norwell, MA: Kluwer-Nijhoff, 1992), 117–144. 이 생각들은 가령 Nancy Folbre, The Invisible Heart: Economics and Family Values (New York: New Press, 2001)에서 더 발전된다.))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사회 전반적인 계급 억압 및 젠더 억압이 현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떤 때는 두 가지가 일제히 작동하고 다른 때에는 자본주의 발전이 결혼한 여성들을 유급노동자로 끌어들일 때처럼 그 둘이 서로를 침식한다.((원주4. Heidi Hartmann, “The Unhappy Marriage of Marxism and Feminism: Towards a More Progressive Union,” in Women and Revolution , 1–42와 Ann Ferguson and Nancy Folbre, “The Unhappy Marriage of Patriarchy and Capitalism,” Women and Revolution , 313–338 참조.)) 두 억압 모두 맑스주의와 페미니즘이라는 두 갈래 운동에 의해 분석되고 극복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남성지배에 저항하는 여성을 조직화하고 계급지배에 저항하는 노동자를 조직화함으로써 서로 엮여있는 두 가지 경제 시스템인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대항하는 이중의 투쟁을 주장했다. 이런 유형의 분석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둘 다를 공존하면서 서로 얽혀있고 억압적인 시스템으로 인정하는 분석—이 ‘이중체계이론’(dual systems theory)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중체계이론을 채택하면서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혁명이나 체계 변화에 대한 맑스의 기본적인 분석을 받아들여 확장했다. 우리는 경제적 변형을 억압받는 집단에 의한 투쟁으로 추동되는 혁명 과정으로 바라보는 맑스의 견해에 찬성했다.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이 혁명의 주체인 노동자를 여성으로 대체했지만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계급투쟁을 혁명의 핵심적 측면으로 받아들였고 여성을 두 번째 피억압 집단으로 노동자에 포함시켰다. 우리는 여성들이 해방되기 위해 급진적인 변형을 필요로 하는 두 개의 억압 시스템—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을 개념화했다.

 

3. 상호교차성과 정체성에 기반을 둔 혁명적 정치의 붕괴

이중체계이론이 맑스주의와 페미니즘 사이의 ‘하이픈을 녹여버리는’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그리고 모든 페미니스트들)은 곧 유색인 반(反)인종주의 여성들의 분명한 도전에 직면했다. 유색인 페미니스트들은 ‘자매애’ 내지 여성에 기반을 둔 정체성 정치라는 백인 페미니스트들의 개념들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들은 페미니즘 운동 내에서의 인종주의를, 특히 백인 여성들이 지도자 지위를 독점하는 것과 백인 여성들의 관점에서 ‘여성의 문제들’을 정의하는 것을 지적했다.((원주5. 선구적인 책들에는 Cherie Moraga and Gloria Anzaldua, This Bridge Called My Back (London: Persephone Press, 1981)과 bel hooks, Feminist Theory: From Margin to Center (Cambridge, MA: South End Press, 1984)가 포함된다.))

설상가상으로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도 페미니즘 운동에서 동성애 공포증에 항의하고 있었다. 두 집단은 백인과 이성애 페미니스트들에게 인종차별주의와 동성애 혐오에 반대한다고 솔직하게 자기입장을 밝힐 것과 그들의 실천, 강령 및 이론에 이러한 입장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여성의 억압을 자연에 대한 지배와 연결시키는 에코페미니즘은 맑스주의-페미니즘적 담론에 또 다른 차원의 복잡성을 추가했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여성되기의 확장으로서 생태운동에 참가할 것을 여성들에게 호소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요청에 따랐다. 풍부한 내용의 좌파 에코페미니즘적 분석이 발전했다. 캐롤린 머천트(Carolyn Merchant)는 『자연의 죽음』(The Death of Nature)에서 자연의 지배는 서구 과학이 출현할 때 여성의 대상화 및 여성에 대한 지배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7 뛰어난 저서인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에서 마리아 미스(Maria Mies)와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는 기본적인 생활필수품들을 공급하는 것을 중심으로 운동들의 연합을 제안하면서 계급, 젠더, 남/북, 흑인/백인 그리고 인간/자연 사이에 일어나는 지배와 폭력을 상호연결된 현 세계체제의 부분들로서 종합적으로 분석해냈다.((원주7. Maria Mies and Vandana Shiva, Ecofeminism (London: Zed Books, 1993).))

지구상의 선진지역(Global North)과 지구상의 후진지역(Global South) 사이의 분할 또한 대두되었다. 유엔이 정한 ‘여성을 위한 10년’(United Nations Decade for Women, 1975–1985) 동안 전 세계 페미니스트들이 세 번의 전 세계 회의에서 함께 모였다. 우선사항에서의 엄청난 차이들이, 특히 노동력과 재생산권에서의 평등권에 중점을 두는 선진지역 여성들과 신식민주의와 가난을 우려하는 후진지역 여성들 사이의 차이가 표면화되었다. 이런 차이들로 인해 페미니스트들은 초국적 페미니즘 네트워크를 구축하려고 노력할 때 여성 문제에 관한 그들의 관점을 확장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계급지배(남북 문제)를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다.((원주8. Valentine Moghadem, Globalizing Women: Transnational Feminist Networks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05).))

관점을 넓히는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중요한 페미니즘 개념인 상호교차성이, 즉 인종•젠더•계급•민족 및 우리의 ‘자연’관조차 상호적으로 결정된다는 생각이 생겨났던 것이다. 페미니즘 및 반인종주의 활동가이자 법학자인 킴벌리 크렌쇼(Kimberlee Crenshaw)가 이 용어와 가장 관련이 있지만, 이 개념의 배후에 있는 사고는 인종•계급•민족•섹슈얼리티 등의 차이를 가로질러 함께 페미니즘을 조직하고자 하는 다양한 여성 집단들의 경험에서 나왔다. 그들은 여성다움에 대한 공통의 경험― 가시적으로 명백하거나 조직화의 중심 원리가 될 수 있거나 요구 창출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그러한 공통적 경험―이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다시 말해 여성이 된다는 것의 의미가 인종•계급•섹슈얼리티•국가 등을 가로지르면서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흑인이나 노동계급이 겪는 경험에 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각 경험은 독특한 차원의 억압에서 나오지만 다른 차원들과 별개로 이해될 수 없다. 엘리자베스 스펠먼(Elizabeth Spelman)이 언급하듯이 젠더•인종•계급은 정체성이라는 목걸이의 ‘팝비즈’(([옮긴이] pop beads : 각기 다른 모양을 한 장난감용의 구슬들로서 자유롭게 꿰었다 분리했다 할 수 있다.))가 아니다.((원주9. Elizabeth Spelman, Inessential Woman: Problems of Exclusion in Feminist Thought (Boston: Beacon Press, 1988).))

상호교차성의 인식은 맑스주의-페미니즘과 페미니즘적 조직화 일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주류 페미니즘 및 맑스주의-페미니즘의 기반이었던 정체성 정치—여성은 남성에 의해 그리고 남성과 비교해서 억압받고 있다는 사고—는 여성의 경험을 분할하고 계층화하는 다른 형태의 억압들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했었다. 하지만 이 기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억압 체계들을 간과하는 것은, 백인이며 이성애자이고 선진지역에 사는 중산층의 전문직 여성의 경험과 욕구에 특권을 부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페미니즘 운동이 계급, 인종-민족, 남-북 및 여타 형태의 불평등을 어떻게 재생산하고 있었는지를 보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젠더뿐만 아니라 인종•민족•계급•성정체성이 그리고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사고방식이 여성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페미니스트로서 함께 만날 때에 이 차이들이 드러나고 여성들을 계층화하고 분열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들에게 재계에서 성공하는 법을 조언하는 페이스북 최고 경영자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의 책 『린 인』(Lean In)에 관한 페미니즘 논쟁을 생각해 보라. 이 책은 많은 교육을 받고 경제적 지위가 향상된 여성들에게 두려움을 떨쳐내고 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유리 천장을 깨는’ 법에 대해 알려주지만 이 성공 공식은 피부색과 무관하게 노동계급과 가난한 여성들에게는 애초에 가능성이 없는 공식이다. 한 좌파 페미니스트 블로거가 말했듯이, 페미니즘적 노력에서 우선해야 할 것은 유리 천장(([옮긴이] 유리 천장(琉璃 天障, glass ceiling)은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직장 내 성 차별이나 인종 차별등의 이유로 고위직을 맡지 못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경제학 용어이다. [한국어 위키피디아]))을 깨는 것이 아니라 ‘집의 지하실이 물에 잠기고 있는’ 가난한 여성들을 옹호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원주10. Laurie Penny, “Don’t Worry about the Glass Ceiling—the Basement is Flooding,” New Statesman , July 27, 2011, https://www.newstatesman.com/blogs/laurie-penny/2011/07/women-business-finance-power.))

상호교차성을 인식하는 것으로 단순한 정체성 정치에 종지부를 찍었다. 여성다움에 대한 보편적인 경험이 없다면 (이는 분명히 사실이다) 여성들은 조직화를 통해 가부장제를 전복시킬 수 있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동질적 계급을 구성할 수 없다. 노동자들이 조직화를 통해 자본주의를 전복시킬 수 있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젠더와 인종을 가로지르는) 동질적 계급을 구성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으로, 젠더 억압의 경험은 변화를 위한 투쟁에서 다른 차이의 선들을 가로질러 여성들을 한데 모으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여성들은 다른 불평등들이 존재하는 정반대되는 양극단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정체성 정치는 다양하게 억압받고 있는 여성들을 정체성에 기반을 둔 별개의 집단으로 분열시킨다. 이 집단들 각각의 내부에서 갈등이 더 일면서 더 심화된 분열을 조장한다. 페미니즘의 갈래들 사이에서 일어난 이와 같은 정체성에 기반을 둔 분열이 바로 페미니즘의 새로운 ‘제3물결’을 정의하는 특징이 되었다. 백인남성 좌파들의 악몽—페미니즘이 사회주의 운동을 갈라놓고 파괴할 것이라는 생각—이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다.

사회운동과 혁명적인 체계 변화에 대한 비전의 토대인 정체성 정치가 와해된 것은 사회주의 혁명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다른 역사적 변화들과 동시에 일어났다. 마가렛 새처(Margaret Thatcher)와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은 1979년과 1980년에 각각 반혁명을 시작했다. 노동계급과 환경을 파괴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새처가 보인 반응은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였다. 레이건이 대통령으로서 한 첫 행동은, 오늘날에도 미국 노동역사에서 그 파문들이 계속되는 악명 높은 사건인 항공 교통 관제사 조합의 파업을 중지시킨 것이었다. 1990년대가 되면 찰스 코크(Charles Koch)와 다른 우파 기부자들—이들은 케인스 학설과 정부규제를 거부했고 ‘자유시장’을 수용했다—이 자금 지원을 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힘을 얻어 자본이 의기양양하게 지배하게 되었다.((원주11. Nancy MacLean, Democracy in Chains: The Deep History of the Radical Right’s Stealth Plan for America (New York: Viking, 2017).))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혁명의 불꽃은 사그라들었다. 노조조직률은 조립라인의 해외 이전과 하향경쟁에 굴복하여 급속하게 하락했다. 소련의 민주주의 실패 및 해체 그리고 가차 없는 정치적 공격에 직면한 노동운동의 쇠퇴와 함께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널리 인용되는 자신의 책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 1992)에서 공산주의와 맑스주의가 죽었다고 선언했다. 맑스주의, 사회주의 및 맑스주의(사회주의)-페미니즘이 모두 구식이 된 것이었다.

 

4. 연대정치의 부상

제3물결을 특징짓는 페미니즘의 분열로 많은 사람들은 페미니즘이 죽어가고 있거나 죽었다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정체성에 기반을 둔 다른 사회 운동과의 연계를 통해 좀 더 복잡한 새로운 형태의 정치, 즉 정체성 정치를 기반으로 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연대정치’가 부상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페미니스트들, 특히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에게 상호교차성이 제기하는 과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페미니즘의 실천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페미니스트들인 우리는, 우리의 운동 내부와 사회에서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다른 형태의 억압들 또한 인정하지 않거나 뿌리 뽑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여성들을 한데 모아 여성해방을 위해 싸우는 데 나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페미니즘을 남성들의 억압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투쟁으로 바라보는 정치를 넘어서, 우리의 운동들로부터 그리고 우리의 경제와 사회로부터 모든 억압의 형태들—가부장제, 인종주의, 계급 차별주의, 동성애 혐오증, 장애자차별, 신식민주의, 종(種)차별주의 등—을 끝내고자 하는 연대정치를 향할 필요가 있다. 이 부상하는 연대정치는 모든 불평등의 형태를 해체하고자 하는 공유된 목적을 갖고 모든 불평등을 가로질러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연대정치는 페미니즘 운동만이 아니라 일차원적 견해의 부적절성에 부딪혀 상호교차성의 문제와 씨름하는 다른 사회운동들 안에서도 발전해왔다.

페미니즘 내부에서의 이 핵심적 전환은 또 다른 형태의 연대정치가 각 사회운동 내부가 아니라 사회운동들 사이에 유대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바로 그 때에 발생했다. 전 세계 사회운동과 NGO 단체들은 노동자•여성•환경 그리고 지구상의 후진지역을 사정없이 파괴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싸우기 위해 ‘운동들의 운동’(movement of movements)에서 한데 모이기 시작했다. 이 ‘운동들의 운동’은 1999년 세계무역기구(WTO)에 반대하는 ‘시애틀 전투’에서 전지구적으로 이목을 모았고 세계무역기구,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의 다른 회의들에 대한 항의로 계속 이어졌다. 2001년에 여성운동, 노동자운동, 환경운동, LGBTQ 운동, 평화운동, 농민운동, 토착민운동 및 여타 사회운동들이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모토 아래 제1차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에서 모여서,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전지구적이고 지역적인 조직화의 물결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세계사회포럼 운동의 핵심 원리는 모든 형태의 착취와 억압을 거부하는 것, 다시 말해 연대정치였다.((원주12. “World Social Forum Charter of Principles” 2002, http://www.universidadepopular.org/site/media/documentos/WSF_-_charter_of_Principles.pdf의 제10 원칙 참조.))

이런 식으로 연대정치는 페미니즘 (그리고 다른 사회 운동) 내부에서 그리고 이 운동들을 한데 모으는 ‘운동들의 운동’ 내부에서 발전해오고 있다. 개인과 조직들이 계속해서 구체적인 초점—특정 억압 유형(젠더, 인종, 계급 등) 내지 특정 쟁점(식량, 의료서비스, 재생산의 자유, 기후변화)—을 가지면서도 점점 더 이 초점을 모든 억압형태에 저항하는 공통의 투쟁 양상들 가운데 하나로 이해한다. 따라서 맑스가 사회주의의 건설자로서 마음에 그렸던 동질적인 산업 노동계급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포괄적인 혁명의 주체, 즉 서로 연결되고 상호적으로 결정하는 일단의 사회 운동들이 등장했다. 이 변혁 주체는 어떤 쟁점을—그저 특권계급에 속하는 소집단이 아니라—억압받는 모든 사람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그 쟁점을 현재의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를 특징짓는 다수의, 상호의존적인 불평등 및 억압형태들을 해체하고 변형하는 과제에 부합시킨다.

여기서 연대정치의 세 가지 양상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연대정치는 여성 운동 같은 정체성 정치에 기반을 둔 운동들로 하여금 그 리더십과 정책형성에서 억압받는 하위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손을 뻗쳐 그들을 끌어들이도록 만든다. 이것이 체면치레처럼 보일지라도 성심으로 실천한다면 그것은 다양한 형태의 억압을 받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들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지배적인 소집단(예를 들어, 이성애자인 전문직 백인 여성들) 사이에서 그리고 조직의 이론들 및 강령에서 특권 때문에 발생하는 편견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

둘째, 목표대상이 지배집단—즉 “남성들(혹은 1% 혹은 백인들)은 적이다”—에서 특정한 구조적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영속시키는 사회적 개념들, 관행들 및 제도들로 바뀐다. 이것은 정체성 정치 집단들이 상호교차성과 씨름할 때 이 집단들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예를 들어, 동성애 혐오증과 인종차별주의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페미니스트 집단에서 레즈비언들은 동성애 혐오증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이성애적 여성들을 보게 되고 유색인 여성들은 인종차별주의를 반대하는 백인여성들을 목격한다. 미국에서 경찰의 만행에 대응하여 등장했고 인종의 정체성 정치에 기초를 두고 있는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운동(([옮긴이] BLM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향한 폭력과 제도적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이다. BLM은 경찰에 의한 흑인의 죽음, 인종 프로파일링, 경찰의 가혹행위, 미국의 형사 사법제도 안의 인종간 불평등 같은 광범위한 사안들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항의집회를 연다. [위키피디아] ))은 구성원들의 상당 부분이 백인 ‘동지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과정의 훌륭한 예에 해당한다.

셋째, 연대정치는 서로 다른 운동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한 운동 내부의 서로 다른 갈래들 사이에서도 연합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억압들의 상호교차성은 불가피하게 정체성 정치 집단, 예를 들어 ‘여성들’ 내부에서 불평등한 관계를 되풀이한다. 억압받는 소집단들이 내부에서 세계와 자신들에 관한 해방적인 인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들, 위원회들 및 조직들을 스스로 창출하고, 그 다음에 여타의 섞여 있지만 대부분 백인/중산층/이성애적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집단과 함께 연합하여 공유된 페미니즘적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은 정상적이고 건강한 일이다.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에는, 그 문제가 풀리려면 전체론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다양한 층의 시민들에 의해 접근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구조적인 뿌리가 있다는 것을 주요 사회운동들이 점차 알게 되면서 이 사회운동들 사이에서의 연합 또한 발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취임한 다음 날 열린 <여성 행진>(The Women’s March)은 정체성 정치와 연대정치 사이의 이런 관계를 보여주는 완벽한 예였다. ‘여성들의’ 행진으로서 그것은 명백히 정체성 정치에 뿌리를 두고 있었지만 또한 연대정치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여성 행진’의 조직화를 시작한 것은 백인여성들이지만 그들은 ‘전국 공동 의장들’(National Co-Chairs) 및 ‘조직가들’(Organizers)로 이루어진 다양한 집단을 구성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사이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우리 모두를 지키는 것임을 알기에 우리는 함께 서 있다”라고 주장한 ‘여성 행진’의 선언문에서 상호교차성에 기반을 둔 페미니즘이 가장 주목 받는 위치를 차지했다. 그 통합원리는 “젠더정의는 인종정의이자 경제정의이다”였고, 이민자의 권리, 시민권, LGBTQ의 권리, 장애자 및 노동자들의 권리뿐만 아니라 여성의 권리와 환경정의에의 헌신이 전면에 부각되었다. 시민권, 노동, 기후행동 조직들을 포함하여 300명이 넘는 ‘여성 행진’의 후원자들은 페미니즘을 서로 연결되고 상호간에 힘을 주는 ‘운동들의 운동’의 일부로서, 즉 연대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그러한 종류의 운동으로서 자리매김했다.((원주13. “Women’s March 2017,” accessed August 30, 2017, https://www.womensmarch.com.))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딛은 <여성 행진>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영감을 고취하며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전 대륙에 있는 60개국에서 이루어진 600개가 넘는 후속 여성 행진들에서 행진한 여성들의 수는 총 500만 명으로 추산되었다.((원주14.Together We Rise: The Women’s March: Behind the Scenes at the Protest Heard Around the World (New York: Dey Street Books, 2018), 215 –216.))

 

5. 연대정치에서 연대경제로

상호교차성과 씨름함으로써 페미니즘과 여타 진보적인 사회 운동들은 사회 전반에 걸친 모든 불평등과 억압에 저항하는 정치에 이르게 되었다. 연대정치가 경제적•사회적 변형을 위한 강력한 도구인 것은 모든 사회적 실천과 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모든 유형의 불평등을 인지•거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적 시선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상호교차성의 관점에 기반을 두고 특정 사회문제를 중심으로 모일 수 있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은 페미니즘 연대정치의 훌륭한 한 예로, 세 명의 흑인여성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흑인들에게 가해지는 국가 폭력을 끝내려는 데 집중하면서도 우머니즘적,(([옮긴이] ‘우머니즘’(womanism)은 제2물결 페미니즘 운동이 흑인여성들 및 여타 주변화된 집단의 여성들의 역사와 경험에 관해서 보여준 한계의 발견에 기반을 둔 사회이론이다. 앨리스 워커(Alice Walker)가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In Search of our Mother’s Gardens: Womanist Prose)에서 ‘womanist’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 퀴어/트랜스적 관점 또한 긍정했다.((원주15. www.Blacklivesmatter.com/about/ 참조.))

연대정치는 자연스럽게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억압이 한 사람의 경험에서 또는 어떤 특정한 사회적 관행 내지 제도에서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에 대한 인식은, 억압적인 관습과 제도가 경제적•사회적 총체 내부에서 결합하고 상호작용하는 체계적인 방식에 대한 이해로 진화한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의 경우, 경찰의 만행에 대한 비판적 저항이 학교 시스템과 감옥산업복합체(the prison industrial complex)에 대한 비판으로 진화했다.

페미니즘(과 여타) 연대정치의 발전에서 다음 단계로 취해야 할 중요한 행동은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비전과 그곳에 도달하는 방식을 중심으로 단결하는 것이다. 그런 비전에는 연대정치를 실천하는 페미니스트들 및 여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지금 여기서 구체적으로 사회구조의 변화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포괄적인 사회체계 변형의 비전이 없던 미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지배적인 시스템 내부에서 동등한 기회요구― 가령 남성들이 독점한 경제적 위계의 상부에 여성들이 진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 그로 인해 페미니즘은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적인 규칙을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는 운동으로 축소되고, 노동력에서의 차별과 재생산권의 결여로만 여성의 억압을 규정한다. 최악의 경우에 이 접근법은 페미니즘을 ‘유리 천장을 깨는 것’, 즉 소수의 여성들이 남성들이 하는 대로 일을 함으로써, 거의 항상 이런 방식으로 최고의 자리에 접근하는 것으로 축소시킨다. 여성의 상호교차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성차별에 인종 및 계급차별을 추가해서, 가령 유색인 여성이 높은 급여를 받는 기술직에 진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때조차 우리는 아직도 경제의 기본적인 구조를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구조는 여성과 그 가족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긴 하지만 ① 경제 위계의 밑바닥에서 여성이 받는 부족한 임금 ② 가족을 돌보는 무보수 노동의 착취와 예속 ③ 소수의 소유자들의 이익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인 생산 시스템 조직화 ④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생태계 파괴라는 여러 중요한 면에서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회의 균등’을 비판하고 뛰어넘으며 체계 차원의 경제적 변형을 추구하는 페미니즘적 변형의 다른 비전, 즉 연대경제 운동이 출현했으며 현재 탄력을 받고 있다. 성장세를 타고 있는 이 운동은 1990년대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출현했고 특히 ‘새로운 경제’(New Economy) 운동, ‘쑤막 까우쎄이’/‘부엔 비비르’(Sumak Kawsay/Buen Vivir)(([옮긴이] ‘쑤막 까우세이’(Sumak Kawsay)는 스페인어 ‘buen vivir’에 해당하는 케추아어이다. 영어로는 ‘good living’, ‘well living’의 의미이다.)) 및 ‘공동체 경제’ (Community Economy) 운동과 겹쳐지는 세계사회포럼 운동을 통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원주16. 연대경제에 대한 개관들로는 Allard, Jenna, Carl Davidson, and Julie Matthaei, Solidarity Economy: Building Alternatives for People and Planet (Chicago: Changemaker, 2008), Emily Kawano, Thomas Neal Masterson, and Jonathan Teller-Elsberg, Solidarity Economy I: Building Alternatives for People and Planet (Amherst, MA: Center for Popular Economics, 2010) 그리고 Peter Utting’s edited collection, 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Beyond the Fringe (London: Zed Books/UNRISD, 2015) 참조. <사회적 연대경제 증진을 위한 대륙간 네트워크>(the Transcontinental Network for the Promotion of the Social Solidarity Economy, RIPESS, www.ripess.org)와 <미국 연대경제 네트워크>(the US Solidarity Economy Network, www.ussen.org)도 훌륭한 참조처이다.))

연대경제의 틀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시장경제 내부에 이미 현존하는 해방적인 경제활동과 제도들을 포착하고 그것을 통합적인 신흥 ‘연대경제’의 일부분으로 간주한다. 연대경제에서 기본적인 통합 기준은 경제적 실천이나 제도에 의해 구체화된 가치들이다. 연대적 가치의 목록에는 협력, 모든 차원에서의 공평, 정치적•경제적 참여 민주주의, 지속 가능성 및 다양성/다원주의가 포함된다. 이 틀은 어떤 특정한 관습이나 제도가 모든 가치 혹은 어떤 특정한 가치에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을 것임을 인정한다. 연대경제에 기반을 둔 이 차원들 각각은 스펙트럼 상의 특정한 위치에 놓여 있다. 체계변형을 위한 투쟁에는 우리의 경제활동과 제도들이 이 스펙트럼 위에서 불평등에서 연대의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포함된다.

모든 부류의 협동조합들(노동자•소비자•생산자 협동조합)이 연대경제의 핵심적 구성요소를 포괄하듯이,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소비패턴을 촉진하도록 노력한다면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목표 쪽으로 투자가 이동할 것이며 기업도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방향으로 재설계될 것이다. 공동체 텃밭에서부터 버려진 공장이나 땅의 인수 및 공동체 통화 창출에 이르기까지 많은 대표적 실천들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적인 경제제도의 실패에 대응하여 한데 모이면서 생긴 것이다. 본질적으로 연대경제는 경제에서의 연대정치를 표현한다.

전통적인 맑스주의의 혁명관과는 대조적으로 연대경제의 틀은 자본주의의 혁명적인 전복을 기다리기보다 지금 당장에 사회 전반에 걸친 경제적 변형에 참여하도록 사람들을 북돋운다. 연대경제는 자본주의적인 제도와 나란히 시장 내부에서 심지어 그 제도 내부에서도 번성하고 있다. 긍정적인 체계적 변화에 참여하여 그런 변화를 만들어내는 방식들은 넘치도록 많다. 이런 유형의 변화에 적절한 용어가 혁명/진화(r/evolution)인데, 체계 수준에서 작동한다는 면에서 혁명적이지만 점진적으로 일어날 필요가 있다는 의미에서 진화적이다. 이 변화가 다차원적이고, 다부문적이며 다층적(미시적이고 거시적)이기 때문이다.

 

6. 페미니즘과 연대경제

연대경제의 틀은 심층적으로 페미니즘적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백인 남성이 지배하는 영역으로 구축되어 있으며 전통적으로 남성적인 특성을 가지는 경쟁―이기기 위한, 다시 말해 다른 남자들을 ‘능가하’거나 지배하기 위한 투쟁―에 의해 규정된다. 남성은 기업가•농부•노동자로서 돈을 추구하는 경제에서 서로 경쟁함으로써 가족을 부양했다.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는 (백인) 남성의 이상형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부와 권력을 가진 꼭대기의 경제적 계층이 되는 데 성공한 사람이었다. 기업은 노동자, 소비자 및 생태계의 요구를 냉담하게 무시하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생산의 형태로 이 편협한 물질주의적인 이기심이라는 에토스/정신을 구현했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여성의 무급노동과 평가 절하된 노동으로, 또는 여성들이 주를 이루는 저임금 서비스 일로 한정되었다.

연대경제는 남성이 지배하는 경제의 핵심구조에 전통적으로 다른 사람을 돌보는 여성의 일을 투입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자본주의적 시스템에서 경제활동은 자본가의 부를 증가시키도록 구조화된다. 기업의 소유주와 경영자들은 그들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에 사실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해고되어 생계를 빼앗기고, 소비자들은 조종당하고 잘못된 정보에 휘둘리게 되며 환경은 파괴된다. 이 모두가 사업의 정상적인 일부분인 것처럼 이루어진다. 많은 페미니즘 경제학자들이 공언한 것처럼 경제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또한 경제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사람과 비인간 생물 사이에서 상호간에 배려하는 유익한 관계를 촉진해야 한다. 연대라는 용어를 부각시키는 연대경제의 틀은 연대정치가 향하고 있는 새로운 시스템의 이런 핵심적인 측면을 긍정한다.

이와 연관하여 경제의 주체가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검토하는 것이 연대경제를 페미니즘 프로젝트로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본주의는 중상류층 백인들 가운데 남편/가장으로서 남성 경제인과 아내/어머니/주부로서 여성 경제인으로 경제의 주체를 양극화한 것에 기반을 두었다. 전형적인 남성 경제인의 노동은 생계비를 버는 일이었다. 즉 적어도 가족 임금을 벌고 경제적 지위가 높아지며 경쟁력 있는 소비에 지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장’에서의 유급노동이었다. 전형적인 여성 경제인의 노동은 육아를 포함해서 가정에서 무급 노동을 직접 하거나 감독함으로써 남편과 가족을 돌보고 그들에게 봉사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연대경제의 주체에게는 남성 주체와 여성 주체의 최고의 측면들이 혼합되어 있다. 일과 사업활동은 생계 수단, 자기표현 및 자기 개발(초개인주의와 경쟁으로 구성되는 자본주의적인 남성성을 뛰어넘는 긍정적인 형태의 남성성)의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사회 및 세상에 봉사하고 도움이 되는(자기 예속을 수반하지 않는 긍정적인 형태의 여성성) 길이 된다.

결과적으로 돌봄 노동 자체의 관행을 변형시키는 것은 연대경제와 ‘거대한 이행’을 깨닫는 데 필수적이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전통적으로 권위적인 자녀양육을 통해 지배와 종속의 두 역할이 산출되며 이는 다시 전통적인 학교 교육을 통해서, 그 다음에는 자본주의적이고 권위적인 회사에서 재생산된다. 불평등한 지배와 복종 관계는 아내 위에 남편 그리고 아이들 위에 부모로 이루어진 가족에서 시작된다. 아이들은 교사가 지도하고 평가하는 학교에 다니고 그 후에는 상관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직장에 다닌다. 우리가 경제를 상호적으로 유익하고 평등한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으로 바꾸려면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남을 지배하라거나 종속되라고 가르치기보다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긍정하는 법, 자립하는 법 및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돌보는 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부모들은 위세를 부리는 존재(전통적인 아버지)이거나 굴종적인 존재(전통적인 어머니)이기보다 그들 자신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긍정적인 상호관계를 모형화함으로써 가르칠 필요가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의 전통적인 돌봄 노동과 저임금의 돌봄 일에 재정적 지원을 해 줄 것을 주장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보살피기•양육•돌봄을 사회를 변형시키는 페미니즘의 렌즈 밑에 둘 필요가 있으며 체계 차원의 변화를 꾀하는 우리 일의 일부로서 우리 모두가 그 일을 더 잘하도록 도와줄 혁신적인 방식을 찾을 필요가 있다.

 

7. 결론

진정한 페미니즘—모든 여성을 해방하고자 하는 페미니즘—은 연대정치, 연대경제 및 혁명/진화로, <거대한 이행 기획>에서 설명된 것처럼 전지구적 시민운동으로 거침없이 이어진다. 여성과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계속해서 이것을 긍정하고 연대정치를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페미니즘이 온전히 페미니즘적이고자 한다면 혁명적/진화적이어야 한다. 더군다나 모든 진보적인 운동은 반드시 눈을 크게 뜨고 상호교차성의 문제와 씨름해야 하며 조직 내부에서 그리고 조직화과정에서 마주치는 모든 형태의 불평등—남성 지배 및 젠더 억압을 포함해서—을 뿌리 뽑는데 전념해야 한다.

‘운동들의 운동’은 새로운 세계 극장에서 주연배우이지만 아직 대다수 사람들은 이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저항에서 구성으로, 우리가 반대하고 있는 것에서 우리가 찬성하는 것으로 렌즈를 계속해서 바꾸어야 하며 전 세계 많은 연대경제의 사례들로 우리 스스로를 격려해야 한다. 역사상 이 시기의 페미니스트들과 모든 진보주의자들에게 중요한 임무는, 진보적인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시너지 효과를 가진 연계된 대열에 동참하도록 고무하기 위해서 혁명적/진화적인 전진방식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

 




프랑스 커먼즈 의회들의 출현과 그 미래


  • 저자  :  마이아 데레바(Maïa Dereva)
  • 원문 : “100 women who are co-creating the P2P society: Maïa Dereva” (2016.5.30)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
  • 분류 : 번역
  • 옮긴이 : 민서
  • 설명 : 아래는 P2P재단의 블로그에 올라있는 마이아 데레바(Maïa Dereva)와의 인터뷰인 100 women who are co-creating the P2P society: Maïa Dereva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옮긴이는 민서이다. 마이아 데레바는 생물학•인류학•심리학•커뮤니케이션(학)을 공부하고 커뮤니티 매니저, 웹 기획 매니저로서 일한 바 있다. 그녀는 “공통선(共通善)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자신의 소망에 따라 협력적이고 구성적인 실천들의 관측소인 웹사이트 semeoz.info를 만들었고 P2P 재단 같은 많은 프로젝트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P2P 사회를 함께 창출하고 있는 100인의 여성들

 

P2P 여성들에 관한 시리즈를 계속 이어가고 있는 바우엔스(Michel Bauwens)와 라모스(José M. Ramos)는 프랑스에서의 커먼즈 의회들의 출현과 그 미래에 대하여 마이아 데레바(Maïa Dereva)와 인터뷰한다.

 

프랑스 커먼즈 의회들의 출현

 

프랑스에서 가능한 하나의 사회구조로서의 ‘커먼즈’라는 주제는 1990년대 후반 이후로 점진적으로 재등장했고 이 주제에 대한 프랑스어 책들이 2000년대 이후부터 출판되고 있습니다.

 

이 주제는 오랫동안 디지털 커먼즈 분야에 국한되어 있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공동체 정원들이나 푸드 협동조합 같은 영역으로 점점 더 확대되었습니다.

 

커먼즈와의 관련성이 명확한 행사들이 2009년에 조직되기 시작했고(<브레스트 인 커먼즈, Brest in commons>) 2013년에 30개 지역으로 퍼집니다. 같은 해 미셸 바우엔스는 ‘커먼즈 회의소’(Chamber of Commons)—그 이전 해인 2012년에 데이비드 론펠트(David Ronfeldt)가 이 개념을 제안했죠—라는 개념을 대중화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부상하는 P2P와 커먼즈 네트워크를 위한 다음 단계를 제안하며」(Proposed Next Steps for the emerging P2P and Commons networks)에서 ‘커먼즈 의회’(Assembly of Commons)라는 개념으로 ‘커먼즈 회의소’ 개념을 재빨리 보완했고요.

 

2014년의 <협동적 사용 포럼>(Forum of Cooperative uses, Forum des Usages Coopératifs)과 (<VECAM> 연합의 물자지원으로 344개의 행사를 원조했던 자기조직화된 페스티벌인) <커먼즈의 시간>(The Commons’ time, Le temps des communs, 2015년 10월 개최)에서 이 주제가 다시 부각되고 난 후에 커먼즈를 영속적인 의회로 연합하는 아이디어가 무르익었습니다.

 

이 페스티발 이후로 몇몇 커먼즈 의회들이 릴(Lille), 툴루즈(Toulouse), 브레스트(Brest)와 몇몇 다른 프랑스 대도시에 명시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의회들이 모두 ‘인큐베이션’ 단계에 있다는 것과 각각 비공식적인 조직으로서 스스로 운영해나가는 법을 터득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대체로 그들은 한두 번 정도만 만났습니다.

 

이 의회들은 실천사항들을 기록하고 주고받는 프랑스어로 된 <위키> 및 외부와 소통하기 위한 웹사이트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의회들의 주요 목적은 경험을 나누고 커머너들을 한데 모으는 포럼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의회들은 또한 커먼즈를 중심으로 생계를 창출할 수 있는 윤리적 경제를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이 의회들은 매핑(mapping)과 만남들을 통해 커먼즈를 포착하고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지리적 경계를 가로질러 연결하기

 

우리가 처음부터 웹상에서 <위키> 같은 소통 도구를 창출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 말해주듯이, 프랑스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도 유사한 기획들이 존재했고, 실제로 다른 프랑스어권 커먼즈 의회들(툴루즈, 브레스트, 렌 의회뿐만 아니라 벨기에의 리에주 의회 등등)이 여기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젝트들은 <위키>와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 접속되고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현재로서 우리는 그 밖의 다른 의회들과 연결 관계가 없지만 이는 그 의회들에 대해서 우리가 아직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프랑스어권 의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수 년 동안 이미 커먼즈에 헌신했던 지역연합들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릴 의회

 

가장 활동적인 의회들 중 하나가 2015년 10월 이후로 한 달에 한번 씩 모임을 개최하는 릴(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시)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참석자들이 조직한 자영 워크숍 형태로 그 지역의 다양한 커먼즈에서 온 소식들뿐만 아니라 역량들, 아이디어들 및 지식/정보가 공유됩니다. 의회의 구성원들 전체에게 워크숍을 제안할 기회가 있고 여타 회원들은 그들이 원하는 워크숍에 참여합니다.

 

릴의 커먼즈 의회는 디지털 통합과 디지털 권리에 중점을 둔 행사인 ‘루믹스’(Roumics)의 공동 조직자들이자 참여자들이었던 일단의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루믹스’는 2015년 10월에 <커먼즈의 시간>과 같이 시작되었는데, <커먼즈의 시간>은 프랑스 사회와 프랑스어권 사회에서 연계된 행사들이 며칠 동안 동시에 진행되는 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의회는 ‘커먼즈를 포착하고 커먼즈로의 합류를 촉진하자’는 주제의 워크숍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워크숍은 <인터파즈>(Interphaz) 연합의 회원들을 포함해서 그 주제에 관심이 있는 최초의 그룹을 모았습니다. <인터파즈>는 대중교육 조직으로서 그 목적은 매개점이 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시민들을 모으는 것입니다.

‘루믹스’ 이후에 비공식적인 두 개의 모임이 커먼즈 의회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페이스북에 공지된 ‘행동하며 커먼즈 의회를 구축하기’라는 제목의 셋째 모임을 중심으로 아이디어가 구성되었고 그 모임에서 워크숍의 첫 조직화 능력이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제가 세계 전역에서 일어나는 협력적이고 구성적인 행동을 관찰하기 위해 2015년 9월에 www.semeoz.info 만들었을 때 저는 곧 커먼즈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릴 지역에서의 셋째 모임에 참석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참석하는 것이 몇 달 전 툴루즈 지역에서 온 저에게는 제 윤리적 가치에 따라 새로운 소셜 네트워크를 창출할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의회에는 모든 시민들이 참석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배경의 시민들이 오시는 데 예를 들어 단체에서 오신 분들, 선출된 지역 공무원들, 커머너들 등입니다. 결속력을 창출하는 순서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이거나 기타 자신들이 참여하고 있는 조직들을 소개하고 설명합니다. 그 누구도 조직을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개인으로서 의회에 참석하죠.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종종 말합니다.)

 

광범위한 차이가 다양한 집단들 사이에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몇 년 동안 커먼즈 개념을 알고 있었고 다른 어떤 사람들은 그 개념을 막 발견하고는 입문 워크숍에 참석하고자 한 것이죠. 워크숍은 모임이 있는 날 현장에서 열릴 수도 있고 원격 방식으로 열릴 수도 있습니다. 각 워크숍은 기록됩니다.

 

현재 채택한 운영 형태는 P2P 방식이고 탈중심적입니다. 하지만 의회 구성원들은 그들이 한 작업을 서면 흔적으로 (주로 <위키>에) 많이 남기고자 합니다. 간접적 연계의 메커니즘인 스티그머지 전략(stigmergic strategy, 흔적 전략)(([옮긴이] 이 전략의 원리는, 어떤 행동에 의해서 환경에 남겨진 흔적이 동일한 혹은 다른 행위자가 다음 행동을 수행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행동들은 서로를 강화하고 구축하는 경향이 있으며,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활동으로 이어진다. [영어 위키피디아에서]))을 따르기 때문이죠. 이는 일부 사람들을 두렵게 할 수도 있고, 그 일이 비공식적이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워크숍은 차례차례 진행되었고 표결이 필요하지도 않고 모임이 무한정 계속될 필요도 없이 집단의 목표가 이루어졌습니다.

 

운영은 일반적으로 합의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타당한 반대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한 모임의 진행상황은 기록됩니다. 일곱 개의 의회를 6개월간 운영한 후에도 큰 반대들은 제기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모임은 표결보다 대화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기여하려는 충동에서 나온 것이라면 반갑게 맞이하고 모든 것의 출발점인 사람을 신뢰하는 것에 강조를 두는 것이죠. 의회 구성원들은 ‘맞서 싸우는 것’보다 함께 구축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지금까지 의회는 회의실 임대료를 지불하는 지역 단체에게 재정적으로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의회를 지원하는 일을 앞으로 맡게 될 <커먼즈 회의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몇 사람이 (역시 릴에서) 관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커먼즈 회의소>는 아직은 하나의 개념입니다. 지역의 정치적·행정적 제도에 종종 의존하는 기성의 조직을 연합하는 것이 개인을 연합하는 것보다 더 어렵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웹사이트에서 이 제안을 보다 잘 홍보하는 설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과 툴루즈에서는 ‘사회헌장’을 작성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헌장은 의회의 기본적인 목표(윤리, 공유가치, 지역 ‘생태계’에의 통합), 운영, 도구들, 방식들, 구성원들 등을 규정할 것입니다.

 

의회를 설립하기 위한 기본 전략들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우리가 커먼즈 의회를 설립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커머너들을 위해 몇 가지 조언을 드릴 수 있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씀드리겠습니다.

 

– 몇 가지 간단한 목표를 설정하고, 일을 해나가며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상세히 기록하지 말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서술하라.

 

– 사람들을 개인으로서 자유롭게 해주어라. 그러면 그들의 창의성이 당신을 놀라게 할 것이다.

 

– 운영방식이 탈중심화되어 있다고 해도 집단의 동학을 창출하기 위해 친분을 쌓고 교류할 시간을 계획하는 것은 중요하다.

 

– 사회적 삶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놓기 시작하기 위해서 커먼즈를 알지 못하는 선출된 지역 공무원들과 단체 대표자들을 초대하는 것을 고려하라. (대개의 경우 그들은 새로운 실천을 발견해서 매우 기뻐할 것이다).

 

– 당신이 속한 의회 내부에서 그리고 의회들 사이에서 에뮬레이션(emulation)을 창출하기 위해서 디지털 도구를 처음부터 사용하라.

 

의회의 앞날

 

의회의 앞날은 알 수가 없습니다. 저에게는 커먼즈 운동의 전망에 관하여 어떤 예측도 할 능력이 없습니다. P2P 동학이 사회에 우세해지는 때가 온다면 커먼즈 운동이 당연히 부상할 것입니다. 제 관점에서 보면 이 부상은 개인들의 한 사람으로서의 발전에 주로 의존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스스로 깨닫는 것이 평등과 균등주의(egalitarianism)를 구별하는 최선의 방식이면서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전체주의 형태의 체제에서 무의식적으로 일하는 것을 피하는 최선의 방식입니다.

 

따라서 저는, ‘피어’(peer)는 ‘나와 동일한’ 것(동질성으로서의 정체성)의 동의어가 아니라 오히려 근본적 타자성/다름(이질성으로서의 P2P)을 연결시키고 사랑하는 것과 관련된다는 것을 개인들이 깊이 이해하는 조건에서만 커먼즈가 조화롭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찾는 것은 우리의 특이성을 지우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공통으로 어떤 것을 창출하기 위해 특이성들로서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이루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사실, 평생의 작업이죠!).

 

커먼즈 의회들이 이런 방향으로 발전해간다면 네트워크 모임들이 기존의 커먼즈 네트워크에 기반을 두어 그 영역을 더욱더 넓혀나가리라고 예상됩니다. 원칙적으로 의회는 너무 큰 지리적 영역을 합쳐서는 안 되며 소규모 공동체들이 서로서로 연결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세 얼굴의 디오니소스와 공통적인 것의 화폐


  • 저자  :  Antonio Negri, Michael Hardt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Antonio Negri, Michael Hardt, Assmebly의 15장 2절, 3절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A three-faced Dionysus to govern the common

 

군주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삶의 조직화에 대한 결정을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새로운 군주는 왕좌 위에 앉아있는 존재일 수 없다. 우리가 할 일은 지배의 구조를 변형하고 완전히 뿌리를 뽑은 후 새로운 사회조직 형태들을 개발하는 것이다. 다중은 새로운 군주를 민주적 구조로서 구성해야 한다.

 

각자 가능성과 함정을 지닌, 세 개의 경로가 새로운 거버넌스로 향한다.

 

① 엑서더스 : 기존의 제도들로부터 빠져나와 작은 규모로 새로운 민주적인 사회적 관계를 수립한다.

② 적대적 개혁주의 : 기존의 제도를 그 내부로부터 변형.

③ 헤게모니 전략 : 사회 전체에 대한 통제력을 획득하여(“taking power, but differently”) 새로운 사회의 제도들을 창출하는 것. 전체를 직접 변형시키는 것.

 

이 가운데 어느 것이 옳으냐를 놓고 논쟁할 것이 아니라 이 경로들을 교직하는 방식을 발견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것을 ‘세 얼굴을 가진 디오니소스’(“three-faced Dionysus”)라고 부른다.

 

[① 엑서더스]

이 전략은 유토피아 공동체 전략의 계승자이다. 기존의 사회관계의 외부에 새로운 행동방식, 새로운 삶형태, 새로운 주체성을 창출하는 것이다. 유토피아적 공동체들과 푸리에에서 과학소설 작가들에 이르는 이론적 탐구들의 풍요로운 역사가 대안적 외부를 창출하는 힘을 입증한다.

 

오늘날 가장 영감을 주는 엑서더스 실천은 예시적 정치(prefigurative politics)—지배적 사회구조의 내부에 새로운 외부를 창출하는 정치—의 형태를 띤다. 비민주적 조직형태를 통해서 민주적 사회를 향해 노력하는 것은 위선적이고 자기패배적이라는 논리. 활동가들 자체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 사회운동 내부에 창출된 축소된 사회는 미래의 더 나은 사회를 미리 구현하는 것으로 의도되었을 뿐 아니라 그 현실적 가능성과 바람직함의 입증으로서 의도된 것이기도 하다.

 

예시적 정치가 특히 번성한 곳은 신좌파 여러 부문들, 특히 페미니즘과 학생운동에서이다. 여기서 참여민주주의는 운동 자체의 내적 조직화의 으뜸가는 기준으로 제시되었다. 1970년대부터 유럽 전역에서, 특히 이탈리아에서 발전된 점령된 사회센터들에서는 자율적 거버넌스 구조와 지배적 사회 내부에서 그 사회에 반하는 공동체를 창출하는 실험이 행해졌다. 예시정치는 최근에 들어와서 확장되었다. 2011-2013년에 타흐리르 광장, 뿌에르타 델 쏠 광장에서 주코티 공원 및 게지 공원에 이르는 다양한 점령 캠프들은 무상 도서관, 음식, 의료서비스의 체계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대규모로 민주적 의사결정의 실험을 한 감격적인 사례들이다. 예시적 정치의 가장 위대한 성취 가운데 하나는 민주주의와 평등에 관한 광범한 사회적 논쟁을 개시하는 능력이었다.

 

 

예시적 정치의 단점은 그 내적 동학과 사회적 효과에서 명백하다. 지배적인 사회의 일부이면서 예시적 공동체에서 사는 것은 힘들다. 자본주의에 포위된 사회주의 사회와 같다. 공동체에서 남과 다르게 살라는 것은 대체로 도덕의 수준에서 작동하며 지배적인 사회에서 주체성을 생산하는 것을 거스르기도 한다. 그 결과 도덕주의와 내적 치안이 그런 활동가적 공동체에서의 삶의 경험을 망치는 경우가 잦다.

 

더 중요한 것은 예시적 경험이 외부에 영향을 미치는 힘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욕망을 생성하고 그 하나의 사례를 제시하는 것은 큰 성취이이지만, 예시적 경험은 그 자체로는 지배적 제도들에 관여할 수단을 결여하고 있으며 지배적 질서를 전복하고 새로운 사회적 대안을 생성하는 것에 크게 못 미침은 말할 것도 없다.

 

[② 적대적 개혁주의]

기존의 제도들에 관여하여 안으로부터 개혁하기. 적대적 개혁주의는 단지 현 체제의 병폐를 보정하고 그 피해를 개선하는 데 복무하는 협조적 개혁주의와는 다르다. 적대적 개혁주의는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조준한다.

 

두치케(Rudi Dutschke)의 어구 “제도들을 거쳐 가는 대장정” (Der lange Marsch durch die Institutionen, long march through the institutions)은 마오의 항일 유격전 이미지를 지배 질서에 대한 내부 투쟁으로 전환시킨다. 기존의 제도 내부에서의 유격전이다. 또한 두치케의 어구는 그람시의 진지전의 핵심— 문화, 사상의 영역 그리고 현재의 권력구조의 영역에서의 정치투쟁 수행—을 표현한다. 두치케에게 목표는 운동의 자율을, 그 전략적 힘을 긍정하고 운동이 대항권력의 구축을 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똘리아띠(Palmiro Togliatti)도 그람시를 해석하여 “long march through the institutions”를 제안하지만 반대경로를 생각한다. 운동을 당의 명령에 종속시킨다.

 

적대적 개혁주의와 사민주의적 개혁주의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강한 개혁주의와 약한 개혁주의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자율성의 정도를 가늠해야 한다. 두치케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최고이고 똘리아띠의 경우에는 최소이다.

 

선거과정이 적대적 개혁주의의 장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뽑아준 사람이 권력구조를 실질적으로, 심지어는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이다. 최근에 오바마, 꼴라우(Ada Colau) 등 여러 진보적 정치가들이 실질적 변화를 약속하며 선출되었고 이들의 성공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공직의 타성이 변화를 위한 정치적 기획보다 더 강력했던 경우도 있고 반면에 실질적인 변화들이 성취된 경우도 있다.

 

적대적 개혁주의의 또 다른 장은, 소유의 틀 내에서 자본주의적 위계의 힘을 상쇄시키고 가난과 배제를 완화시키는 법 기획들이다. 빈자를 위한 주택 기획, 노동자의 권리 등.

 

이 이외에도 적대적 개혁주의가 발휘될 수 있는 다른 법적·제도적 장들이 있다 — 환경 문제, 성폭력 방지, 노동자권리 긍정, 이주민 돕기 등등. 적대적 개혁주의를 가늠하는 기준은 실행되는 개혁이 기존의 체제를 뒷받침하는가 아니면 권력구조의 실질적 변형을 가동시키는가이다.

 

적대적 개혁주의의 일부 기획들이 중요한 기여를 한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단기적으로는 실패로 끝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길게 보면 의미심장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대장정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 한계도 명백하다. 대장정은 종종 기존의 제도들 속에서 길을 잃으며 바라는 사회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제도를 바꾸겠다고 제도 속에 들어가지만, 제도가 당신을 바꾸는 경우가 잦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적대적 개혁주의의 기획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 한계를 부각할 뿐이다.

 

[③ 헤게모니 잡기]

예시적 전략과 달리 이 전략은 지배적 사회로부터 상대적으로 분리된 소규모 공동체들의 구축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 목표는 사회 전체를 직접 변형하는 것이다. 이제 기존의 제도들은 행동의 장이 아니라 ‘해체적’(destituent) 사업의 대상이다. 기존의 제도를 전복하고 새로운 제도를 창출하는 것이 주된 과제이다.

 

이 세 경로들 각각은 상이한 시간성을 함축한다.

①은 사회변형을 미래—소규모가 대규모로 달성되는 날— 로 미룬다.

②는 점진적 변화라는 느린 시간성을 산다. “한 번에 벽돌 하나씩”

③은 ‘사건의 시간성’(the temporality of event)에서 살며 사회적 수준에서의 신속한 변형을 가져온다.

 

③에도 분명 많은 함정들이 있다.

1) 새 체제는 낡은 체제의 주된 특징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③이 현재 그대로의 권력을 잡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③은 권력을 변형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맑스의 말을 빌자면, “국가를 분쇄하는 것”(smashing the state)이 필요하다. 우리는 비국가적인 공적 힘을 창출해야 한다.

2) ③은 (가령 일국 수준에서는) 환경에 의해 극히 제한된다. 전지구적 자본의 압박, 주도적 국민국가들의 반응, 다양한 비국가적 외부세력들이 가하는 제한 등. 그리스 시리자 정부의 경험, 지난 20년 동안 라틴아메리카의 진보적 정부들의 경험이 이 제한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권력을 잡는 데 성공해도 결국 이루는 것은 거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1) 첫 응답 (부분적이지만 중요하다)

이 세 전략들을 (잠재적으로) 보완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관점만 달리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변형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를 통해서든 다른 수단을 통해서든 권력을 잡는 것은 자율적이고 예시적인 실천들이 더 큰 규모로 이루어질 공간을 여는 데 복무하고, 장기적으로 계속될 제도들의 변형을 천천히 양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 이와 유사하게 엑서더스의 실천들도 다른 두 기획들을 보완하고 촉진하는 방식들을 발견해야 한다. 세 얼굴의 디오니소스는 연계를 통해 대항권력을 형성하며 기존의 지배체제 내에서 그 체제에 거슬러 권력의 이원주의(a dualism of power, 두 정치적 힘의 공존)를 실질적으로 창조한다. 이것이 마키아벨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리얼리즘(현실주의)이다.

 

2) 둘째 응답 (더 심층적이다)

시야를 정치에서 사회적 지형으로 확대한다. 우리[네그리·하트]는 이 책에서 줄곧 정치를 자율적인 지형으로 보는 것은 재난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민주적 거버넌스의 퍼즐은 사회적 관계의 변형을 통해서만 풀릴 수 있다. 사회적 불평등을 유지하고 사회적 삶에의 평등한 참여를 방지하는 주된 메커니즘은 바로 사적 소유의 지배이다. 공통적인 것의 수립은 사적 소유의 장벽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자유와 평등에 입각한 새로운 민주적인 사회적 관계를 창출·제도화한다. 사회적 지형으로 초점을 확대하면 사회적 협력을 조직하는 광범하게 퍼진 능력을 포착하게 된다. 다중의 기업가 정신/활동이 이 확대된 능력의 한 얼굴이다. 생산하는 삶을 조직하고 협동의 미래 형태들을 계획하고 실현하는 민중의 능력이 바로 필요한 정치적 능력이다. 그리고 삶정치적 맥락에서 사회적 조직화는 항상 흘러넘쳐서 정치적 조직화로 확대된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이 여기서 우리가 서술하는 경로와 같은 것을 규정한다. 그람시의 헤게모니는 순전한 정치적 범주(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번역)도 아니고 순전한 사회학적 범주(헤겔의 ‘시민 사회’)도 아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는 당 측면(더 정확하게는 주체성의 생산과 그것에 살을 부여하는 구성적 힘)과 사회를 변형하는 사회 투쟁의 측면을 다 포함한다. 그람시가 그의 글 「미국주의와 포디즘」(“Americanism and Fordism”)에서 합리화가 새로운 유형의 노동과 새로운 생산과정에 상응하여 새로운 인간 유형을 창출할 필요를 낳았다고 썼을 때, 우리는 이로부터 이 새로운 유형 즉 포디즘 노동자는 경제적 위기와 기술의 변형에서 그가 배운 것을 되돌려 위기에 배치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저항과 투쟁의 존재론적 축적은 그것이 공통적인 것의 사회적 형상에 접근하여 ‘일반지성’의 패러다임을 해석하게 될수록 혁명적 실천에 더 본질적인 것이 된다.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이 중첩, 적대적 개혁과 헤게모니 잡기의 이 중첩에서 우리는 어떻게 오늘날 공통적인 것에 기반을 둔 다중적 민주주의의 구축이 이해될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상을 얻는다.

 

여기서 우리는 (2장에서 옹호한) 전략과 전술의 전도—예전과는 다르게 지금은 다중이 전략을 담당하고 운동의 지도부가 전술을 담당한다—가능성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 결정적인 것은 다중의 전략능력의 수립이다. 전략능력이란 억압의 구조들을 샅샅이 해석하고 효과적인 대항권력을 형성하며, 신중하게 미래를 위해 계획하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조직화하는 능력이다. 다중은 정치적 기업가가 될 능력을 획득하고 있다. 지도부의 행동의 유용성과 필요성은 특히 긴급한 상황에서는 분명하다. 수립되어야 할 것은 지도부가 자신들이 환영받는 시간 이상을 남아있지 않게 할 방비책이다. 다중의 전략적 힘이 유일한 보증자이다.

 

 

A Hermes to forge the coin of the common

 

금융의 지배 하에서 화폐가 발휘하는 힘과 폭력의 비판자들 다수는 화폐의 힘을 제한하는 것을 주된 과제라고 주장한다. 선거에서 돈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하고 부유층의 금융권력을 제한하고 은행의 권력을 감소시키고 심지어는 화폐를 더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이 모든 것은 물론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첫 걸음일 뿐이다.

 

화폐를 폐지하자는 더 발본적인 주장은 자본주의적 화폐를 화폐 자체와 혼동하고 있다. 화폐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11장에서 말했듯이, 화폐는 사회적 관계를 제도화한다. 화폐는 강력한 사회적 테크놀로지이다. 다른 테크놀로지의 경우처럼 문제는 화폐가 아니라 그것이 지탱하는 사회적 관계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통적인 것에서의 평등과 자유에 기반을 둔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다. 그 사회적 관계를 공고히 하고 제도화하기 위해 새로운 화폐가 창출될 수 있다. 지역 화폐가 분명 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오늘날의 자본주의적인 사회적 관계만큼이나 일반적이고 강력한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원한다. 어떻게 우리는 소유관계에 기반을 두지 않고 공통적인 것에 기반을 둔 화폐를 상상할 수 있는가? 이 화폐는 재산에 대한 익명화된 권리증서(자본주의적 화폐)가 되지 않고, 공통적인 것에서의 다원적이고 특이한 사회적 유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화폐의 창출은 사유재산에서 공통적인 것으로의 이행과 병행되어야 한다.

 

화폐정책 및 사회정책의 구체적 전환을 통해 공통적인 것의 화폐(a money of the common)를 상상하기 시작할 수 있다.

 

1) 온건한 제안은 ‘민중을 위한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for the people”)이다.((이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의 글 http://commonstrans.net/?p=889 참조)) 전통적으로 양적 완화란 중앙은행이 여러 수단을 써서 화폐공급을 증가시켜서 소비와 생산을 자극하고자 하는 화폐정책이다. 프리드먼이 ‘헬리콥터가 뿌리는 돈’이라고 부른 이 돈은 소비의 욕구에 따라 분배되지만 결국 재계로 돌아간다. 마라치(Christian Marazzi)나 바루파키스(Yanis Varoufakis) 같은 몇몇 급진적 경제학자들은 새로운 목적으로 화폐를 공급하는 것을 제안하였는데 이것이 민중을 위한 양적 완화이다. 화폐를 찍어내되 민중에게 공급하자는 것이다. 가장 급진적인 경우에는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의 자율적 기획들과 실험들(규모가 작든 크든)에 제공하자는 것이다. 이 제안은 진정한 대항권력의 구축을 정치적으로 훈련하고 운영하는 유용한 플랫폼을 창출하지만, 작은 걸음일 뿐이다.

 

2) 보장된 기본소득에 대한 제안이 우리를 공통적인 것의 화폐에 더 가까이 데려간다. 베르첼로네(Carlo Vercellone)는 보장된 기본소득을 소득의 일차적 원천으로 만든다면 소득을 임금노동으로부터 분리하고 공유된 부를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의 협력적 회로들과 연결시킴으로써 공통적인 것의 화폐를 주조하는 데 초석이 될 것이라고 한다. 베르첼로네는 자본주의적 명령으로부터의 (일정한) 자율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이것을 공통적인 것의 화폐라고 부른다. 기본소득이 사회적 삶을 생산·재생산할 수 있는 자유와 시간을 주는 것이다. 노동과 소득의 연결을 약화시키면 부와 사유재산의 관계가 무너지고 공유된 부를 위한 공간이 열린다. 더 나아가 기본소득은 임금체제 외부에 사회적 협동의 새로운 형태들을 열며 자본을 넘어선 사회적 삶을 상상하기를 촉진한다.

위크스(Kathi Weeks)는 기본소득의 반(反)금욕적 효과를 강조한다. 검소, 저축, 양보, 희생의 윤리를 설교하기보다 욕구와 욕망의 확장을 촉진하고 노동에 더 이상 종속되지 않은 삶을 지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기본소득도 그 자체로는 자본주의적 화폐를 변형하고 사유재산을 제거하며 공통적인 것에 기반을 둔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수립하는 데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그것은 그 방향을 향한 강한 몸짓이다.

 

이런 정책 제안들을 공통적인 것의 화폐 쪽으로 끌고 가려면 11장에서 이루어진 화폐의 성격에 대한 연구를 더 업데이트해야 한다. 이는 생산과 재생산의 새로운 관계들을 역동적으로 포착하고, 그것을 관통하는 욕구를 해석하고(스피노자라면 이를 윤리학이라고 부를 것이다) 자본주의적 발전의 경향에 대한 분석을 그것을 가로지르고 변조시키는 힘들에 대한 인식과 결합시키는 화폐의 정치를 구축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포착해 낼 것은 ① 금융 자본과 사회적 생산의 체제에서 일어나는, 생산자들 및 재생산자들 사이의 관계의 화폐적 형태 ② 이 생산양식의 발전에 상응하는 (상응해야 하는) 소득의 다양한 형태들 ③ 각 화폐적 형태에 상응하는 “미덕의 체제”이다. 우리의 문제틀은 산업자본의 명령에서 금융자본의 명령으로의 이행을 포착하면서 사유재산을 공통적인 것으로 변형하는 것이다.

 

현재 자본주의적 생산과 그 추출 양태들은 사회적 협동에 의존한다. 잉여 가치는 사회적 가치의 추출을 조직하는 금융 테크놀로지를 통해 전유된다. 어떤 면에서는 “총자본”(collective capital) 자신이 역설적이게도 사유재산의 해체와 공통적인 것의 인정을 현재의 생산양식의 토대로 인식한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적 투쟁의 직접적 목표는 불평등을 줄이고 긴축의 체제와 단절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는 특히 극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자본의 권력에 저항하는 다중에게는 낡은 것과 새로운 것―해체중인 정치적 구성과 새로이 출현하는 기술적 구성―이 일종의 공위상태를 이루며 공존하기 때문이다. 노조 운동과 사회운동의 전통들을 결합하는 사회 파업(Social strike)이 이 지형에서 투쟁의 특권적 형태이다. 궁극적으로 긴축과 불평등의 거부는 협동의 화폐(a money of cooperation)에 대한 요구를 표현해야 하며 따라서 사회적 협동의 생산성에 상응하는 소득―임금의 요소와 복지의 요소를 모두 가진 소득―의 형태들에 대한 요구를 표현해야 한다. 협동의 화폐는 보장된 기본소득을 넘어서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의 새로운 연합이 ‘정치적 소득’―자본주의적 발전 및 계급관계들과 양립 불가능하게 되는 소득―을 부과할 수 있는 지형을 창출해야 한다. 여기서 긍정되는 미덕은 사회적 생산자들 및 재생산자들의 투쟁의 관점에서는 평등이다. ‘모두에게는 그 욕구에 따라서’(맑스의 슬로건)는 모두가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에 관여하고 배치된다는 사실에 상응한다.

 

공통의 생산은 또한 다중적이기 때문에 즉 일단의 특이성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력의 재생산은 대중화(massification)의 형태로는 성취될 수 없다. 사회적 차이들과 그 혁신의 힘이 사회적 생산 및 재생산에 필수적이 되었다. 따라서 협동의 화폐에 특이화의 화폐(a money of singularization) 및 특이화의 소득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는 차이에 대한 권리를 지원하며 아래로부터의 다원적 표현을 뒷받침한다. ‘모두로부터는 그 능력에 따라’(From all according to their abilities)는 따라서 특이성의 덕을 긍정하는 ‘모두로부터는 그 차이에 따라’(from all according to their differences)로 옮길 수 있다. 특이화의 소득은 사회적 생산자들과 재생산자들의 자기자치화를 증진해야 할 것이다.

 

신케인즈적 거버넌스 구조와 ‘위로부터의’ 유효수요 창출을 다시 제안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파열을 향하는 사회적 힘들을 주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지형에서 우리는 스트라(Pascal Nicolas-Le Strat)가 ‘공통적인 것의 노동’(le travaille du commun)이라고 부르는 것의 전선(front)을 창출할 수 있다. 이는 생산과 서비스의 협동적·민주적 플랫폼들을 가리킨다. 또한 지역 공동체들을 위한 실험적 통화들을 창출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출현하는 다중이 가진, 사회적 관계를 자율적으로 창조하는 능력은 그 자체가 바로 정치적 능력이다. 자기가치화는 정치적 자율과 자치의 능력을 함축한다.

 

근대 부르주아 체제는 사적 소유의 관계에 토대를 두고 그 관계를 보장하는 반면에 자율적인 사회적 생산의 체제는 공통적인 것에 토대를 두며 공통적인 것을 보장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6장에서 말한 심연 너머로의 도약, 사적 소유의 지배 너머로의 도약이다.

 

화폐의 첫 두 형상(협동의 화폐와 특이화의 화폐)은 사회적 생산과 일반 지성의 시대에 (새로 출현하는) 기업가적 다중이 가진 자질과 능력을 해석한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또한 사회 및 지구에의 투자의 화폐(a money of social and planetary investment)를 필요로 한다. 점증하는 자율의 과정에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교육·연구·수송·건강·통신을 통해 사회의 확대를 보장할 화폐와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와 모든 생명체들 및 생태계들에 대한 돌봄의 관계들을 통해 삶을 보존할 화폐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 문제는 소득이 아니라 사회 자원을 미래를 위한 민주적 계획에 바치는 것이다. 자본은 지구에서의 사회적 삶의 번영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생존을 위한 계획을 짤 능력이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국가도 더 나은 점이 없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은 실패했다. 사려의 미덕을 표현하는 공통적인 것이 지속 가능한 미래로 가는 유일한 경로이다.

 

11장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적 화폐가 제도화하는 사회적 관계의 특징들 가운데 일부를 세 개의 국면―① 시초 축적 ② 매뉴팩처와 대규모 산업 ③ 사회적 생산―으로 나누어 스케치했다.((이 블로그의 글 http://commonstrans.net/?p=1081의 맨 뒤에 달린 부록 참조)) 공통적인 것의 화폐가 산출할 잠재적 사회적 관계에 살을 붙이기 위해서 우리의 표에 넷째 단을 추가하여 공통적인 것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사회에서 시간성, 가치형태들, 거버넌스 구조 등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서술하는 것이 논리적일 듯하다. 공통적인 것의 화폐는 비자본주의적 화폐이기 때문에, 또한 그 사회적 관계가 비소유적 관계이기 때문에, 그 표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두는 한에서는 이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공통적인 것의 화폐에 실질적 역사적 파열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며 따라서 그것을 이해하려면 새로운 분석틀이 필요할 것이다.

 

평등, 차이, 사려를 증진하는 공통적인 것의 화폐를 제안하는 것이 유토피아적인가? 협동, 특이화, 사회 및 지구에의 투자의 화폐를?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적 리얼리즘은 현대 사회의 운동들에 의해 활성화되는 성향을 인식하는 데, 그 안에 담겨있는 욕망을 조명하는 데, 그런 다음에는 미래를 현재로 가지고 오는 데 있다. 결국 공통적인 것의 화폐는 공통적인 것의 사회적 관계―공통적인 것의 화폐는 이 관계를 수립하는 데 복무한다―가 실제로 온전하게 구현될 때에만 대세가 될 것이다.




지도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 저자  :  Antonio Negri, Michael Hardt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Assmebly의 1장 3절 “Leaderless movements as symptoms of a historical shift”(‘역사적 전환의 징후로서의 지도자 없는 운동’)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오늘날 운동에 지도자들이 부족하다는 것은 우연한 일도 아니고 산발적인 일도 아니다. 대의제의 위기와 민주주의에의 열망으로 인해서 사회운동 내에서 위계적인 구조들이 전복되고 해체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지도 문제는 심오한 역사적 변형의 징후이다. 근대적 조직형태들이 파괴되었지만 적절한 대체물들이 아직 발명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를 온전하게 보기 위해서는 분석을 정치 영역 너머 경제와 사회에서 일어나는 변화로 확대해야 한다. 이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은 정치영역에 초점을 맞추어보자.

지도자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에 철창에 갇혀 있거나 묻혀 있다고 대답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다. 공권력에 의해 (때로는 제도권 좌파 정당과의 협력 아래) 투옥되거나 사살당한 것이다. 각 나라에는 쓰러진 영웅들과 순교자들의 고유한 목록이 있다. 로자 룩셈부르크, 안또니오 그람시, 체 게바라, 넬슨 만델라, 프레드 햄턴(Fred Hampton), 이브라힘 카이파카야(Ibrahim Kaypakkaya) 등등. 이와 다르게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살해와 투옥이라는 가장 스펙터클한 것들 말고도 다른 억압 무기들이 많다. 전문화된 법을 통한 박해, 비밀공작, 검열, 지배적인 대중매체를 통해 거짓 정보를 흘리거나 이데올로기적 혼란을 창출하거나 아니면 사건을 왜곡하기, 지도자들을 유명인으로 만들어서 포섭하기. 모든 반란 집압 매뉴얼은 혁명적 지도자의 제거가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머리를 자르면 몸이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도층이 왜 쇠퇴하는지를 드러내주지는 않는다. 늘 있던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외적 원인에 초점을 두는 것은 운동의 진화에 대한 빈약한 이해를 가져온다. 변화의 진정한 동력은 내적이다. 운동 내부에서 반권위주의와 민주주의가 중심적인 토대가 된 것이 내적 이유이다.

이 맥락에서 하나의 강력한 계기는 1960~70년대 페미니즘 조직들이 운동 내에서 민주주의를 증진시키는 도구들을 개발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의식고양과 모임에서 모든 사람의 발언을 보장한 것은 정치적 과정에 모두가 참여하는 것을 양성하고 모두가 관여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만다는 수단이었다. 페미니즘 조직들은 또한 예를 들어 전체의 허가 없이는 미디어에 아무도 발언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구성원들이 대표자나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했다. 한 개인이 지도자나 대표자로 지명되면 힘들게 얻은 민주주의, 평등, 조직의 활력강화의 성취를 무너뜨릴 것이었다. 누군가가 지도자나 대변인으로 자청하거나 그렇게 지목되는 것을 받아들이면 그녀는 “trashing”이라 불리는 공격을 받았는데, 이는 때로는 비판과 고립의 몰인정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반권위주의적인 정신이 있었으며 더 중요하게는 민주주의를 창출하려는 욕망이 있었다. 1960~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은 민주적 실천을 생성하고 발전시키는 이례적인 인큐베이터였다. 이 실천은 현재의 사회운동에 일반화되게 된다.

실천에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대의제를 비판하는 이러한 경향은 1960~70년대의 다른 운동들에서도 번성했다. 이 운동들은 남성 입법자들이 여성의 이익을 대변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백인의 권력구조가 흑인을 대변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운동의 지도자들이 조직을 대표하겠다고 주장하는 것도 거부했다. 운동의 많은 부문들에서 대의제의 해독제로서 참여가 장려되었고 참여 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가 중앙집중화된 지도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오늘날 리더십의 쇠퇴를 탄식하는 사람들은 종종 그 미국 흑인정치의 역사를 반대사례로 지적한다. 1950~60년대의 시민권운동의 성공은 대부분 (Southern Christian Leadership Conference 소속의) 흑인 남성 설교자들인 (마틴 루터 킹 2세를 필두로 한) 지도자들의 지혜와 실력 덕분으로 돌려진다. 맬컴 엑스, 휴이 뉴턴(Huey Newton), 스토클리 카마이클(Stokely Carmichael) 등과 연관된 <블랙 파워> 운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가장 명확한 것으로 흑인 페미니즘 담론에서 발전되었으며 지도자를 미화하는 전통적인 경향에 반대하는 소수 노선도 있다.

에리카 에드워즈(Erica Edwards) : “카리스마적인 지도층을 정치적 소망으로서 그리고 서사 및 설명의 메커니즘으로서 기본적으로 활용하는 것(전자는 ‘우리에겐 지도자가 없어’라고 탄식하는 것, 후자는 흑인 정치의 이야기를 흑인 지도층의 이야기로서 말하는 것)은 ··· 역사적으로 부정확한 만큼이나 ··· 정치적으로 위험하다.”(([원주9] Erica Edwards, Charisma,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2, p. 12. For her explanation of the three types of violence, see pp. 20–21.))

에드워즈가 분석하는 ‘카리스마적 지도층의 폭력’의 세 양태

① 과거를 허위적으로 제시함 (다른 역사적 주체들을 가림)

② 운동 자체의 왜곡 (민주주의를 불가능하게 하는 권위구조 창출)

③ 이성애규범적인 남성성(heteronormative masculinity) (카리스마적 지도에 함축된, 젠더와 성애에 대한 규제적 이상)

마르시아 채털린(Marcia Chatelain) : “소독처리가 되고 지나치게 단순화된 시민권 이야기의 가장 해로운 영향은 카리스마적 남성 지도자 개인들이 사회운동에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에게 불어넣은 것이다. 이는 정말로 잘못된 것이다.”(([원주10] Marcia Chatelain, “Women and Black Lives Matter: An Interview with Marcia Chatelain,” Dissent, Summer 2015, pp. 54–61, quote on p. 60.))

일단 주류 역사들 너머를 보면 미국 흑인 운동을 포함한 근대 해방 운동 전체에 걸쳐서 민주적 참여의 여러 형태들이 제안되고 실험되었고 오늘날 규범이 되었음을 볼 수 있다.

2014년 이후 반복되는 경찰의 폭력에 대응하여 미국 전역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난 강력한 항의 운동들의 연합인 <흑인들의 생명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BLM)는 지도에 대한 운동들의 면역체계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BLM은 전옹적인 흑인 정치제도의 지도 구조와 기율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종종 비판받는다. 그러나 해리스(Frederick C. Harris)의 설명대로 “그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흑인 정치를 지배해온 카리스마적 지도 모델을 거부하고 있었으며 그럴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원주11] Frederick C. Harris, “The Next Civil Rights Movement?,” Dissent, Summer 2015, pp. 34–40, quote on p. 36.)) 이전 세대들이 가르친 중앙집중화된 지도는 이들의 생각으로는 비민주적일 뿐 아니라 비효율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BLM에는 지도자도 대변인도 없다. 맥케슨(DeRay Mckesson)이나 컬러스(Patrisse Cullors) 같은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촉진자들(facilitators)의 넓은 네트워크가 거리에서 그리고 소셜미디어에서 연결을 구축하고 때로 집단행동의 ‘안무’—Paolo Gerbaudo의 용어를 쓰자면—를 한다. 물론 네트워크내에 차이들이 존재한다. 일부 활동가들은 중앙집중화된 지도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명시적인 정책목표와 ‘흑인의 점잖음’도 거부하고 저항과 분노의 격렬한 표현으로 나아가는 한편, 다른 일부 활동가들은 수평적 조직구조를 정책적 요구들과 결합하려고 노력한다. 2016년의 <흑인 생명 운동>(Movement for Black Lives) 플랫폼이 후자의 사례이다. 달리 말해서 BLM 안팎의 활동가들은 민주적 조직을 정치적 효율성과 결합하는 새로운 방식들을 시험하고 있다.

BLM 활동가들이 보여주는, 전통적 지도구조에 대한 비판은 젠더 및 성애 위계에 대한 거부와 강하게 중첩된다. 과거에는 시스젠더 흑인들이 운동의 전면에 부각되고 퀴어, 트랜스를 비롯한 소수자들은 뒷전에 있거나 아니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반면 BLM에서는 여성들이 중심적인 조직화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세 명의 여성들— Garza, Cullors, and Opal Tometi—이 #BlackLivesMatter라는 해시태그를 만들어 낸 것이 종종 그 예로 들어진다.)

지도자의 젠더와 성애에 대한 전통적인 사고방식은 운동에서 발전된 조직형태들을 흐리는 경향이 있다. “해방을 위해 흑인 여성들—그 가운데 다수가 퀴어이다—의 재능을 한데 모으는 운동이 지도자가 없는 운동으로 간주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흑인 여성들은 매우 종종 보이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었기 때문이다.”(([원주 16] Chatelain, “Women and Black Lives Matter,” p. 60)) BLM 운동은 과거로부터 (때로는 지하에 잠복했던) 민주적 경향들을 한데 모으는 새로운 조직형태들을 실험하는 장이다. 오늘날의 많은 운동들처럼 그것도 새로운 조직모델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전환의 징후를 보여준다.

오늘날 지도자들의 결핍을 탄식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종종 ‘사회적 지식인들’(public intellectuals)의 부족을 한탄한다. 때로 정치조직에서의 지도의 거부가 학자나 지식인에게 운동을 대변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과 상응하기도 한다. 1968년 혁명 시에 새로운 사회적 주체들이 ‘말을 잡고’ 발화를 했다. 이러한 ‘말을 잡기’(prise de parole, taking the word) 자체가 혁명을 구성했다. 그러나 발화를 하는 행동만으로는 무엇을 말할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따라서 인정을 받는 지식인에게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지식인이 되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프랑스 등지에서는 싸르트르가 주된 모델이다.

그런데 지식인들의 이러한 대변 행동이 다른 목소리들을 익사시킬 수 있다는 것이 1960년대 후반에 인식되었다. 하버마스(Jurgen Habermas)의 사례가 있다. 그는 운동을 지지했고 운동에 대한 아도르노의 무근거한 비판을 공격했지만, 그 또한 운동을 개인주의 윤리와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한 존중에 묶어놓음으로써 운동을 붕괴시켰던 것이다.(([원주 18]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 연합>(the Students for a Democratic Society)과의 갈등에 대한 하버마스 관점에서의 설명으로는 Matthew Specter, Habermas: An Intellectual Biograph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0, pp. 101–116 참조.)) 활동가들 자신들은 개인주의에 대항해서 집단적 기획을 표현하려 했고 (정당과 국가 관료제로 구성된) 순전히 형식적인 민주주의에 대항해서 피착취자의 진실과 혁명의 필연성을 표현하려 했다.

가장 총명한 지식인들은 이 교훈을 가슴에 새겼다. 운동을 지지할 때에는 대변인으로 행세하기보다 운동으로부터 배우려고 하거나 운동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고자 했다. 들뢰즈, 푸꼬, 싸이드(Edward Said), 스피박(Gayatry Spivak), 버틀러(Judith Butler), 홀(Stuart Hall)이 그 좋은 사례들이다. 최고의 지식인들이 배운 근본적 교훈은 “결코 다른 사람들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이다. 이제 운동이 지식인들에게 가이드가 되어 정치적 방향을 표시해주어야 한다. 이미 1960년대 초에 트론띠(Mario Tronti)가 ‘당 지식인’의 역할이 끝났음을 이해했다. 이제 모든 이론적 지식은 실천 활동에 함입되는 경향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사회적 지식인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자!(So, let’s be done with public intellectuals!) 학자들이 상아탑에 갇혀 있어야 한다거나 잘 모르는 소리로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재능과 의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공동연구 과정에 협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운동으로부터 나오는 이론적 지식과 정치적 의사결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지도 문제’를 이해하는 첫 걸음은 그 정치적 계보를 구축하는 것이다. 지도자들은 국가와 우익세력들로부터 공격을 받아왔지만 더 중요하게는 운동 자체 내에서 방지되어왔다. 운동에서 권위와 수직성에 대한 비판은 매우 일반화되어서 이제 지도는 운동의 목표를 거스르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해방 운동은 더 이상 지도자를 산출할 수 없다. 아니, 지도가 운동과 양립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운동이 권위, 비민주적 구조들, 중앙집중화된 의사결정, 대의메커니즘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운동이 머리 없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 아래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베어냈다. 지도에 대한 내적 비판은 이제 곧바로 조직화의 문제로 이어진다.

하나의 예외가 있다. 오늘날 해방운동의 지도자들이 등장할 때에는 가면을 써야 한다. 가면을 쓴 부사령관 마르꼬스는 상징적이다. 그의 가면은 경찰과 군대가 알아보는 것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사빠띠스따 공동체들의 민주주의와 애매한 관계를 유지했다. 가면은 사령관(subcommandante)으로서의 그의 지위를 표시했으며 ‘마르꼬스’가 개인이 아니라 모든 종속된 민중의 자리를 나타냄을 강조할 수 있게 했다. “마르꼬스는 샌 프란시스코의 게이이며 남아프리카의 흑인이고 유럽의 아시아인이며 산이시드로(San Isidro)의 치카노이고 스페인의 아나키스트이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이고 산크리스토발(San Cristobal) 거리의 토착민이다.”(([원주 21] Subcomandante Marcos, Ejercito Zapatista de Liberacion Nacional (EZLN) communique of May 28, 1994, reprinted in Zapatistas! Documents of the New Mexican Revolution, Autonomedia, 1995, pp. 310–311.))

그러나 가면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2014년 5월 25일 마르꼬스는 자신의 모습은 항상 운동을 위한 홀로그램일 뿐이었으며 이제 그만 존재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지도자의 가면조차도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문제

① 어떻게 위계 없는 조직을 구축할 것인가?

② 어떻게 중앙집중화 없는 제도들을 창출할 것인가?

여기에는 지속적인 정치적 틀에는 초월적 힘이 필요하지 않다는 유물론적 직관이 담겨 있다. 즉 정치 조직과 제도에는 주권이 필요하지 않다.

이는 근대의 정치적 논리와의 심오한 단절을 나타낸다. ‘근대의 황혼기’의 빛이 근대 여명기의 빛을 닮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6, 17세기에 스피노자, 알투지우스(Johannes Althusius) 등은 주권 및 절대주의국가의 이론가들인 홉스, 보댕 등에 맞서 싸우며 대안적인 정치적 비전을 제시했다. 수 세기 동안 군주들과 그들이 지배하는 계급들이 각자의 힘을 시험하며 충돌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는 하나의 중심을 가진 원이 아니라 두 개의 중심을 가진 타원을 형성했다. “역사적으로 피지배 사회계급들이 군주들에게 압박을 가해서 자유권들과 면제를 인정하는 법들과 문서들을 작성하게 만든 계급들이었다. 반대로 군주들이 그 사회계급들의 도전을 관리하고 다른 방식으로는 어쩔 수 없는 저항을 다스리려고 하면서 그 계급들에게 가하는 자극이 타원의 윤곽을 그리는 것을 돕는 것이다.”(([원주 24] Sandro Chignola, “Che cos’e un governo?,” http://www.euronomade.info/?p=4417. Chignola borrows the image of the ellipse from Werner Naf. [정리자] 근대 이전의 정치적 구도에서 근대의 정치적 구조로의 이동과 그 차이에 대해서는 맑스가 그의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여러 번 언급한다. “정치적 계급들을 사회계급들로 변형시킨 것은 역사의 발전을 통해서이다. 기독교도들이 천국에서는 평등하지만 땅 위에서는 불평등하듯이 한 민족의 개인들은 그 정치세계의 천국에서는 평등하지만 사회의 속세적 실존에서는 불평등하다. 정치적 계급들의 사회적 계급(civil classes)으로의 실질적 변형은 절대 왕정 하에서 일어났다. 관료제가 국가 내의 다양한 신분들에 맞서 통합의 이념을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왕정의 관료제와 병행하여 계급들의 사회적 차이가 정치적 차이로 남아있었다. 절대왕정의 관료제 내에서의, 그것과 병행하는 정치적인 요소였다. 프랑스 혁명이 비로소 정치적 계급들의 사회적 계급으로의 변형을 완성했다. 다시 말해서 시민사회의 계급 구분을 단순한 사회적 구분―사적 삶에 속하며 정치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구분―으로 만들었다. 이로써 정치적 삶과 시민사회의 분리가 완성되었다.” “중세는 실제적 이분법의 시기이다. 근대는 추상적 이분법의 시기이다.”))

우리에게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근대 시기 유럽에서 벌어진 투쟁의 진실의 일부는 지금도 우리에게 유용하다. 우리는 근대적 주권을 반복하는 모든 지도형태에 저항해야 한다. 맞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오래 전에 알았던 것을 재발견해야 한다. 주권이 정치의 전체 영역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며 비주권적 형태의 조직 및 제도들이 강력하고 지속적일 수 있다는 것을. ♣

 




Assembly(2017)의 맨 마지막 절


  • 저자  :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네그리와 하트의 책 Assembly(2017)의 맨 마지막 절 “Exhortatio”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아직 정리해서 올리고 싶은 부분들이 남아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맨 마지막 절의 정리를 먼저 올리기로 한다. 

 

오늘날 집회의 자유(모일 자유)는 거의 모든 국가들의 헌법에 나와 있고 세계인권선언에도 나와 있는 권리보다 더 실질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

오늘날 집회는 새로운 민주적 방식의 참여와 의사결정에 대한 점증하는 정치적 욕망의 징후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정치적 권리의 전통적인 틀을 흘러넘친다. 오늘날 사회운동들은 모일 권리를 선언하고 이 권리를 새로운 사회적 내용으로 채운다. 이 운동들은 결사의 자유를 풍요롭게 하는 것으로 이해할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작업장에서의 파업이라는 전통으로부터 생산의 점증하는 사회적 성격에 기반을 둔 사회파업 형태들이 출현하고 있다. 더 민주적인 모일 권리는 정치적으로만 이해되면 주권적 권력 앞에서 약하게 보일 수 있지만, 모임이 사회적 지형 위에 놓일 때에는 힘의 관계가 바뀐다. 여기서 집회의 자유는 사회적 협동에의 권리, 새로운 결합과 새로운 생산적 배치를 형성할 권리를 의미한다. 협동의 회로들이 점점 더 사회적 생산의 주된 발동기가 되고 있기 때문에,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 전체의 주된 발동기가 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회로들에 기반을 둔 집회의 권리는 쉽게 부정되지 않는다.

오늘날 널리 보급된 일부 구체적 요구들이 확대된 집회의 권리를 이미 가리키고 있다. 가령 무조건적 기본소득에 대한 요구는 더 이상 급진 좌파에만 한정되지 않으며 세계 전역의 여러 나라들에서 주류 논의의 주제이다. 기본소득은 사회적 생산의 결과들을 더 정당하게 분배하는 것을 제도화할 뿐만 아니라 극단적인 형태의 가난과 혹사하는 노동으로부터 보호해줄 것이다. 정치적으로 참여하고 사회적으로 창조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부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그 어떤 모일 권리도 불가피하게 공허한 것으로 남는다. 또한 기본소득은 우리가 앞에서 말한 공통적인 것의 화폐와 새로운 민주적인 사회적 관계들의 더 실질적인 제도화를 이미 암시하고 있다.

오픈액세스와 공통적인 것의 민주적 관리에 대한 요구 또한 널리 퍼져 있다. 오늘날 사적 소유는 지구와 그 생태계를 보호하기는커녕 그 파괴를 촉진하고 있다. 사적 소유는 지식, 문화적 생산물과 같은, 우리가 공유하는 사회적 형태의 부를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촉진하지도 못한다. 신자유주의적인 추출 경제는 소수를 위해서는 이윤을 성공적으로 창출할지 모르지만 진정한 사회발전에는 족쇄가 되었다. 모이고 협동하고 사회적 삶을 같이 산출할 자유에는 모든 형태의 공통적인 것을 지속 가능하게 돌보고 사용할 수 있는 관계들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통적인 것에의 접근은 사회적 생산에 필수조건이며 그 미래는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에 의해서만 보장된다. 일단 우리가 생산을 삶형태의 창출로 이해한다면 공통적인 것에의 권리는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 수단을 재전유할 권리와 중첩된다. 모일 자유가 없이는 사회적으로 생산할 수가 없는 상황이 점점 더 되어가고 있다.

집회의 자유는 또한 주체성을 생산하는 대안적 방식을 나타낸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측면과 국가정책의 측면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주체의 생산, 즉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의 생산도 포함한다. 이 주체성이 경제와 국가정책을 뒷받침한다.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사회도 그 사회를 담당할 대안적인 주체성이 창출되기 전에는 출현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주체성은 점점 더 배치(([정리자] 여기서 ‘배치’(프랑스어로는 ‘agencement’)는 들뢰즈·가따리의 개념이다.))의 논리에 따라 작동한다. 재산이 아니라 연결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협동이 사회적 생산에서 지배적으로 되었다는 사실은 생산적 주체성들이 관계들의 확대된 망으로 구성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망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배치의 논리는 물질적·비물질적 기계들만이 아니라 자연 및 다른 비인간적 존재들을 모두 협동적 주체성들 안에 통합한다. 풍요로워진 집회의 자유(모일 자유)가 협동적 네트워크들과 사회적 생산으로 구성된 새로운 세계를 활성화하는 주체성 배치를 생성한다.

따라서 집회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의 옹호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 정부의 학정에 대한 보호이기만 한 것도 아니며 심지어는 국가권력에 대한 균형추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지고의 주권자(왕)나 대표자들이 양도하는 권리가 아니라 정치체제의 구성자들 스스로가 성취하는 것이다. 집회는 구성적 권리가 되어가고 있다. 즉 사회적 대안을 구성하는, 정치적 힘을 잡되 사회적 생산에서의 협동을 통해 잡는 메커니즘이 되고 있다. 모이라는 요청은 마키아벨리라면 ‘덕에의 요청’이라고 부를 그러한 요청이다. 이 덕은 규범적 명령이 아니라 능동적 윤리이다. 우리의 사회적 부에 기반을 두고 지속적인 제도들과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구성적 과정이다. 다중이 모이면 무엇이 가능할지 우리는 아직 보지 못했다.

 




대담 : 정치의 새로운 중심으로서의 도시



발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유럽 전역의 도시들에서 시민들이 (플랫폼들, 운동들, 국제적 네트워크들을 통해) 정치에 직접 참여하여 영향을 미치는 경로들을 창출하고 있다. 바르셀로나의 자치도시 플랫폼인 바르셀로나 엔 꼬무(Barcelona en Comú)의 창립자인 쑤비라츠(Joan Subirats)는 도시들이 어떻게 불확실성을 다루고 새로운 유형의 보호를 제공하며 첨단 거대기업들이 우리의 모든 데이터를 소유하는 추세를 역전시키고 심지어는 난민 같은 문제에 대하여 국민국가들에 도전할 수 있는지를 논의한다.

이 글은 ‘어번 커먼즈’에 대한 일련의 글들 가운데 하나로서 『그린유러피안저널』(Green European Journal) 16호 「장안의 화제 : 유럽 도시 탐구」(“Talk of the Town: Exploring the City in Europe”)가 그 출처이다. 이 글에서 DIEM25의 마르씰리(Lorenzo Marsili)가 바르셀로나 자율대학의 통치 및 공공정책 연구원의 창립자이자 원장인 쑤비라츠를 인터뷰한다.

— 트론코소(Stacco Troncoso)

마르씰리: 유령이 유럽에 출몰하는 것 같습니다. 도시라는 유령이지요. 당신은 당신이 바르셀로나에서 하는 일이 왜 그토록 상징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쑤비라츠: 분명 다양한 요인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하나의 요인은 플랫폼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독점적인 디지털 자본주의로의 변형인데요, 국가는 여기에 대응할 능력을 잃었습니다. 빅 플레이어들(big players)이 투자펀드들, 구글,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부채와 긴축정책의 논리에 갇혀 있습니다. 동시에 인구는 점증하는 어려움에 처하며, 불확실성, 공포를 느끼는데, 이는 미래에 무슨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데서 온 감정입니다. 나의 생활수준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내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여러 해 전에 철학자 폴라니(Karl Polanyi)는 상품화를 향한 운동과 그에 맞서는 보호의 운동에 대해 말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 보호를 받으려면 어디에 호소해야 할까요?

마르씰리: 많은 사람들이 국가에 호소합니다.

쑤비라츠: 네, 국가가 보호를 요청할 고전적인 장소입니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며 외국인혐오적인 논리를 따르는 국가가 여전히 보호를 요청할 공간이며, 국가는 많은 경우 국경을 폐쇄하고 사회를 폐쇄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하지만 도시는 본래 다릅니다. 도시는 개방될 목적으로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속담에도 있듯이, ‘우리는 도시의 공기에서 자유로움을 느낍니다.’(([원주] ‘도시의 공기가 당신을 자유롭게 한다’(Stadtluft macht frei)는 ‘일 년 하고도 하루’ 이상 도시 주거지에서 산 정착자들에게 자유와 땅을 제공한다는 법의 원리를 설명하는 독일 중세 속담이다.)) 도시는 기회와 가능성들이 모이는 공간이죠. 도시 당국이 국민국가보다 정책권한과 권력을 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도시 당국과 정치적 당사자들 사이의 근접성으로 인해 시민들에게 훨씬 더 밀착되고 구체적인 종류의 보호가 제공됩니다. 몇몇 일들—모든 일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이 달라지고 호전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도시라는 말입니다.

마르씰리: 폴라니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철학 교수 프레이저(Nancy Fraser)는 두 번째 운동인 보호 운동은 주로 여성, 소수자, 지구상의 후진 지역에 반해서 서구의 남성, 백인 생계가장들을 역사적으로 보호했던 운동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세 번째 운동, 즉 자율과 해방의 운동의 필요성을 도입합니다. 도시의 ‘보호’는 전통적인 국가의 보호와 어느 정도까지 다를 수 있을까요?

쑤비라츠: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그 질문이 아다 꼴라우(Ada Colau) 요인, 바르셀로나 요인, PHA[주택담보 대출에 영향을 받을 사람들의 플랫폼] 요인 및 반(反)퇴거 운동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PHA와 관련하여 특별한 유형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변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PHA로 가서 자신들에게 문제가 있어서 주택담보 대출금을 갚을 수 없으며 그래서 쫓겨날 것이라고 말할 때 그들은 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는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거예요, 활동가가 되셔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이것은 당신이 PAH의 고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상황을 함께 바꿀 수 있기 위하여 당신이 PAH의 활동가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리고 이것은 서비스 제공의 과정이 아니라 해방의 과정입니다. PHA는 노동조합이나 정당의 아웃소싱 논리—“와서 당신의 쟁점을 우리에게 위임하라, 그러면 우리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의 생각을 옹호해줄 것이다”—를 따르지 않습니다. 이런 위임하는 접근법은 PAH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PAH는 사람들을 보다 활동적으로 만듭니다.

마르씰리: 어떻게 이것이 제도화됩니까? 이런 정치화 과정들, 활성화 과정들—이 과정은 공동 소유권 및 공동 관리와 더불어 결국 커먼즈 담론의 바탕을 이루죠—은 어느 정도까지 시의 정책들이 됩니까?

쑤비라츠: 이것[PHA]은 2015년 5월에 시작한 중요한 기획입니다. 선거 당시 <바르셀로나 엔 꼬무> 성명서에는 4가지 기본 사항들이 있었습니다.(([옮긴이] <바르셀로나 엔 꼬무>에 대해서는 <커먼즈로서의 도시>, <괴물 시대의 커먼즈(2)>, <커먼즈 이행과 P2P(5)>, <장벽에 맞선 도시들> 등을 참조할 수 있다.)) 그리고 스페인의 다른 곳에서 다른 유사한 플랫폼들이 이 사항들을 채택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사회제도의 지배권을 시민들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제도는 포획되어서 우리의 이익에 복무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사람들이 경제적•사회적으로 점차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평등이 증가 추세이고 기본적인 사회적 보호메커니즘들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보호제공 능력을 회복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대응을 요구하는 사회적 긴급사태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우리는 위임하지 않는, 보다 참여적인 민주주의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쉽지는 않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더 많이 참여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바로 그런 식으로 정책의 공동생산, 결정의 공동창조 등등이 논의되기 시작합니다. 네 번째 사항은 우리가 정치부패와 정실인사를 끝내야 한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이를 특권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급여는 삭감될 필요가 있고, 업무는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권한은 제한되어야 합니다. 요컨대 정치가 한층 더 윤리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마르씰리: 그러면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쑤비라츠: 첫째로 가장 중요한 발전은 두 번째 사항과 관련하여 확실히 이루어졌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사회적 긴급사태에 응답하기 위한 보다 면밀한 정책들을 만드는 것이죠. 어떤 점에서 이것은 첫 번째 사항—다른 유형의 정치에 필요한 사회제도를 회복하는 것—과 관련한 정당성을 복원해 주었습니다. 둘째로는, ‘혁신의 도시들’ 어느 곳에서도 부패 스캔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여전히 어려운 점은 사회제도를 보다 참여적으로 만들고 정책의 공동생산을 발전시키는 일입니다. 이것은 기존 제도들의 전통, 일상 업무, 작업방식들이 우리의 접근법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매우 19세기적이고 20세기적인 접근법이 기존 제도에 존재합니다. 그 제도는 디지털 방식 이전의 것인데, 여기서 집단지성을 포함하는 방법이 관여되는 ‘공동생산’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르씰리: 실리콘 밸리의 거인들이 모든 데이터와 모든 사회적 상호작용을 화폐화하는 시스템 뿐만 아니라 그 너머의 기술 주권을 거론하는 국제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논쟁이 있습니다. 당신은 디지털 커먼즈와 관련하여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쑤비라츠: 우리는 자치도시 의회가 사용하는 사유화된 소프트웨어 기반을 바꾸는 일과 그 의회와 소프트웨어 공급자들 간에 이루어진 계약을 통해 이런 서비스에 사용된 데이터가 기업에 이전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또한 <스마트 시티>(Smart Cities)와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obile World Congress)의 중심지인 도시에서 기술혁신이 도시의 접근법을 반드시 바꾸도록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이 포럼에 못 미치는 사고방식을 바꾸면서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혁신과 기술주권을 담당하는 위원을 임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기차•버스•지하철 모두에 사용될 수 있는 교통카드에 대한 새로운 계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카드는 공급자가 제조할 것입니다. 계약서에는 공공 당국이 바르셀로나 전 주민들의 지역 대중교통 데이터를 관리할 것이라고 명시됩니다. 여기서 주권은 국가주권 같은 것이 아니라 에너지•물•식량•디지털 주권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논의해야 할 공적인 우선사항들이자 필요한 것들입니다.

마르씰리: 주권이 너무 자주 국가주권과 동일시되어서 저는 ‘근접성의 주권’(sovereignty of proximity) 내지 ‘주권(체)들’(sovereignties)이라는 개념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헌법처럼 많은 헌법들이 “주권은 국민에게 속한다”라고 공표하고 있습니다. 국민국가가 아니라 말이죠! 그런데 헌법에서도 도시의 역할은 여전히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도시의 실제적 법적 권한은 그 범위가 좁습니다. 새로워진 거버넌스의 중심에 도시를 두고자 하는 시도라면 권한의 배분을 바꾸기 위한, 일국 수준의 정치적 싸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까?

쑤비라츠: 저는 자치도시들의 ‘책임 수준’의 문제에 관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치도시들은 시민들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폭넓은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책임 수준이 높습니다. 하지만 자치도시들의 ‘권한의 수준’—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훨씬 더 낮습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이 지역 내에서 해결될 수는 없다는 것이죠. 바로 이 이유로 <바르셀로나 엔 꼬무>가 카탈로니아를 가로지르는 운동을 조직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카탈로니아 엔 꼬무>라고 부르는데 <카탈로니아 엔 꼬무>는 뽀데모스와의 연합이라는 논리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카탈로니아 수준—여기서 교육과 의료 정책들이 결정됩니다—에서나 국가 수준에서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면 행동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역 수준에서는 우리의 권한이 나타내는 것 이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우리의 정치적 동원력이 우리의 권한보다 한층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대립은 법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카탈로니아에서 주택과 관련하여 권한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바르셀로나에서 이런 권한은 자율적인 카탈로니아 자치주 정부(Generalitat) 내지 국가의 수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정치적 동원을 통해 주택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고 그곳에서 베를린•암스테르담•뉴욕과 함께 <에어비앤비>에 반대하는 동맹을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정치적 동학 때문에 <에어비앤비>는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비록 스페인•미국•네덜란드 국가는 그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을지라도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법적인 권한이 없다는 생각에 구속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르씰리: 도시와 국가의 대립이 흥미롭군요. 아시겠지만 우리는 유럽 전역의 많은 도시들—바르셀로나는 그중 한 도시죠—이 난민들을 맞아들이기를 바라지만 그 도시가 속한 국가들은 종종 이것을 방해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스페인 정부도 예외가 아닙니다. 도시가 단독으로 일정수의 난민을 받아들이는 그런 불복종 행동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흥미롭게도, 당신은 국가정부에 불복종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역설적이게도 당신은 ‘난민재배치에 관한 유럽 시책’을 따르고 있고 정작 국가정부가 그것을 따르지 않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쑤비라츠네, 좋은 실례군요. 저도 그 일은 실행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이 난민이라는 큰 문제는 풀지 못하겠지만, 확실히 실질적인 영향력보다 정치적인 영향력은 더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도시 수준에서 그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고 사람들이 그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 일이 말 뿐인 것은 아닐 것이라는 매우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다른 경우에도 유사한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민간투자기금이 건물을 구입하는 능력에 대해 조치가 취해진 바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자치시의회는 합법적으로 법을 어길 수 없지만 여러 방식으로 투자 펀드가 이런 거래를 하는 것을 한층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몇몇 경우에 자치시의회는 건물이 투기대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건물 자체를 구입함으로써 이러한 매입을 좌절시키기도 했습니다.

마르씰리: 독일 정치가 슈반(Gesine Schwan)은 본질적으로 국민국가를 우회함으로써 유럽수준의 난민 재배치와 자치도시들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한 가지 제안을 내 놓고 있습니다. 지금 유럽연합을 지배하는 여러 수준의 기관들은 ‘국민국가에서 유럽연합으로’ 구조에 따라서 대부분 조직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이와 달리 ‘자치도시에서 유럽연합으로’라는 구조를 생각하면서 이 기관들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쑤비라츠: 네, 저는 이 영역에서 우리의 경험들을 연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시들 사이에서 서로 벤치마킹하고 서로 배우려고 만든 <유로시티>(EuroCities) 같은 조직들이 있습니다. 이동성/유동성, 사회정책 등등을 다루는 워킹그룹들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는 지역수준에서 조직화하는 이런 접근법을 더 추진해야 하며, 국가를 제치고 유럽연합과 직접 대화할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국민국가들이 유럽의 의사결정 구조를 장악했기 때문에 그 일은 전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도시들이 유럽연합에서 동맹을 맺더라도 그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루어질 수는 있습니다. 저는 유럽연합이 그런 조치를 취하기를 꺼려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하나의 방법은 지역 당국들이 모여서 유럽 포럼을 창출하여 힘을 키우고 이 영역에서 도약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르씰리: 당신은 국민국가들에게나 유럽연합에게나 약간은 대항권력으로 작용하는, 혁신 도시들의 유럽 네트워크를 상상할 수 있으십니까?

쑤비라츠: 저는 그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바르셀로나 자치도시 당국이 이미 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바르셀로나는 사라예보를 11번째 행정지구로 삼았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Gaza Strip)에서 일하는 자치도시의 기술 담당자들과의 매우 밀접한 관계를 포함해서 바르셀로나와 가자지구 사이에 강한 협동관계도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자치도시의 국제협력 전통이 자리를 확실히 잡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기반으로 한 작업은 새로운 것이 아닐 것입니다.

마르씰리: 유럽에는 특성이 있는 같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우연히 거주하는 공간들을 지배하는 초국가적인 정치구조가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 이론가인 바버(Benjamin Barber)는 시장(市長)들로 구성된 전지구적 의회를 제안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전지구적 수준에서 매우 흥미로운 지적인 제안입니다. 전지구적 정부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유럽에는 적어도 유럽 정부의 시뮬라크럼인 유럽의회가 있습니다. 당신은 도시들이 모여서 유럽의회 같이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공간을 창출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쑤비라츠: 그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구성적이고 강력한 힘을 갖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애초에 기존의 기관들, 관료들, 조직들에 의해 형성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공간은 오히려 아래에서의 마주침(상호작용)을 기반으로 그리고 (나폴리,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지에서) 영향을 끼쳤던 시장들의 합법성을 바탕으로 해서 작동해야 합니다. 그 공간은 위로부터 정치적 자산을 빨리 만들려는 어떠한 욕망도 없이 밑바닥에서부터 위로 작용하는 과정으로서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훨씬 더 복원력이 있을 것이고 결국 강력해질 것입니다.

마르씰리: 유럽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도시들이 할 역할을 구축하는 것은 매우 품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제가 다니면서 도시행정과 관련한 이런 아이디어의 옹호자 역할을 할 때 종종 제가 깨닫는 것은 자치도시에 보다 정치적이거나 외교적인 이런 사안을 다룰 직원과 사무실이 부족한 경우가 매우 잦다는 것입니다. 도시들이 전지구적으로 그리고 유럽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는다면 도시들은 관련 업무를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기구에 투자할 필요가 있습니다.

쑤비라츠: 분명히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메트로폴리스 접근법을 더 강화한다면, 당신이 단점으로 언급한 것들을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자치도시라는 용어가 항상 같은 것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마드리드는 넓이가 600제곱킬로미터이고, 바르셀로나는 100제곱킬로입니다. 파리는 파리 시(the City of Paris)와 교외를 포함한 파리(Greater Paris)로 나뉩니다. 우리가 바르셀로나시보다 ‘교외를 포함한 바르셀로나’라는 개념을 구축하고자 한다면 이것은 150만 명의 거주자에서 350만 명의 거주자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메트로폴리스권을 형성하는 25개 타운위원회는 국제적 과정을 육성하는 데 자원을 투자하기로 틀림없이 동의할 것입니다. 파리는 이미 이 일을 시작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요, 파리에는 메트로폴리스적 차원이 있어서 그것을 더 강화할 수 있거든요. 직원과 선례가 부족한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도시가 국제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항상 국가를 거쳐야 한다고 기계적으로 생각합니다. 이 상황은 메트로폴리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르씰리: 본격적으로 전지구적인 차원을 거론하며 마무리를 해보겠습니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 지역에 살고 있으며, 상위 100대 도시들이 전 세계 GDP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양을 생산합니다. 2017년 6월에 바르셀로나는, 국가지도자는 점점 더 다룰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전지구적 과제들을 다룰 공동기획을 수립하기 위해 전 세계 시장들을 한데 모아 전지구적 정상회담인 <대담한 도시들>(Fearless Cities)을 주최했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요? 어떤 구체적인 조치들이 취해질 수 있을까요?

쑤비라츠: 제 생각에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구체적인 어젠다를 가지고 작업하는 것이고, 도시들을 아주 쉽게 끌어들여 연결시킬 수 있는 이슈들을 찾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재분배 문제, (런던•시애틀•뉴욕에서 논쟁을 촉발시켰던) 최저임금 문제 및 주택•초등교육•에너지•물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 문제들은 분명히 경계들을 가로질러 세계 어디에서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우리는 이런 이슈들로 시작할 수 있으며 유럽 전역에서 과제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정치권과 기관들에게 자극을 줄 것이고 우리는 좀 더 빨리 도약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정책 분야의 결점들을 보지만, 이것은 정치체의 결점들을 부각시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