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와 중앙은행들


  • 저자  :  Eric Toussaint
  • 원문 : The Economic Crisis and the Central Banks (2019. 3. 25) Attribution-NonCommercial-NoDerivatives 4.0 International (CC BY-NC-ND 4.0)
  • 분류 : 내용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제3세계 부당부채폐지위원회>(CADTM, Comité pour l’annulation de la dette du Tiers Monde, Committee for the Cancellation of the Third World Debt)의 웹사이트에 올라있는 에릭 뚜생(Eric Toussaint)의 글 “The Economic Crisis and the Central Banks”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뚜생은 역사가이자 정치학자로서 CADTM의 대변인이자 <프랑스 아탁>(ATTAC France)의 과학자문위원회의 위원이다. 또한 2015년 4월 4일부터 <공공부채에 관한 그리스 진실위원회>의 과학분야 조정자이다. 학술저서로는 Bankocracy (2015), The Life and Crimes of an Exemplary Man (2014), Glance in the Rear View Mirror. Neoliberal Ideology From its Origins to the Present (2012)가 있다.

새 국제 금융위기가 일어날 조건이 다 마련되어 있다. 언제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일어나게 되어 있고 그 영향은 지구 전체에 미칠 것이다.

이 위기 상황을 야기할 주된 요인들은 ① 기업 부채, ② 증가하는 투기거품―금용도구들(증권, 부채, 증권시장)과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나라들에서는 부동산 부문―이다. 이 두 요인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엄청난 양의 현금을 보유한 애플 같은 회사도 빚을 진다. 낮은 이자율을 이용해서 빌린 돈을 다시 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을 비롯한 다수 회사들은 생산에 투자하기 위해서보다는 빌려주기 위해서 빌린다. 또한 주식을 사기 위해서도 빌린다.((이에 대해서는 “The mountain of corporate debt will be the seed of the next financial crisis”(「산 같이 쌓인 기업부채가 다음 금융위기의 씨앗이 될 것이다」 (http://www.cadtm.org/The-mountain-of-corporate-debt, published 14 November 2017) 참조.))

투기거품은 거대 중앙은행들(지난 10년 동안은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유럽중앙은행, 영국은행, 1990년대 부동산거품 폭발 이후의 일본은행)이 시행하는 정책의 결과이다. 이 은행들이 수조의 달러, 유로, 파운드, 옌화를 민간은행들에 쏟아 부어 둥둥 떠다니게 하고 있다. 이런 정책은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라고 불렸다. 중앙은행들이 이렇게 풍부하게 배포한 금융자원들은 은행들 및 다른 부문의 주요 기업들에 의해서 생산적인 투자에 사용되지 않고 금융자산들(주식, 회사채, 정부 및 공공채권, 구조화 금융상품 및 파생상품들 등)을 획득하는 데 쓰였으며 이것이 주식시장, 증권시장, 부동산 부문 등에서 투기적 거품을 창출했다. 모든 주요 기업들은 과도한 빚을 지고 있다.

중앙은행 측의 이러한 정책은 그 경영자들의 의사결정이 주요 민간은행들 및 다른 부문의 거대 자본주의 기업들의 단기적 이익에 의해 전적으로 규정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즉 연쇄반응으로 이어지는 실패들과 그로부터 나오는 상당한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이 정책은 또한 현재의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한 특징―창출되는 새로운 가치의 점점 더 작은 부분이 생산에 재투자된다―에서 나온다.((François Chesnais, “De nouveau sur l’impasse économique historique du capitalisme mondial” [“More on world capitalism’s historic economic dead end”]), http://alencontre.org/economie/de-nouveau-sur-limpasse-economique-historique-du-capitalisme-mondial.html, read 17 March 2019 [프랑스어 논문] 참조.)) 새로 창출되는 가치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이 주주의 배당금, 자사주 매입, 특히 구조화 상품과 파생상품에의 투기적 투자에 지출된다.

중앙은행들이 2007-2008년 위기에 취한 정책으로 돌아가 보자. 중앙은행들이 개입했다고 해서 체계가 말끔하게 청소된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가장 취약한 요소들이 유지되거나 증가되었는데 회사가 진 부채에 비한 자기자본의 비율이 너무 낮았던 것이다. 이 비율은 회사(은행이든 애플이나 제너럴일렉트릭 같은 회사든)가 보유한 주식, 증권 및 기타 금융자산들의 가격 하락에 의해 야기될 가치손실을 감당하기에 중분하지 않았다. 모든 회사들은 빚을 잔뜩 지고 있는데, 이는 이자율이 매우 낮아서(유로존 0%, 일본 –0.1%, 영국 0.75%, 미국 2.5%) 돈을 빌리는 비용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대한 양의 자본이 금융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비록 그것이 금융문제를 안고 있는 회사들이 발행한 정크 회사채를 사는 것을 의미할지라도 그렇다. 그래서 금융건전성의 측면에서는 좋은 평판을 가진 애플 같은 회사들은 자금을 빌려서 그것으로 수익률이 높은 정크 증권들을 구입한다. 이 고수익률 정크증권[수익률은 높지만 원금상환이 극히 불확실한 회사채]을 발행하는 망해가는 회사들은 계속 빚을 지는 정책을 실행한다. 이전에 대부받은 돈을 갚기 위해 돈을 빌리는 것이다.

2018년 12월 말, 큰 증권시장 붕괴가 미국에서 일어날 뻔했으며, 그 전염효과[한 국가에서 발생한 금융위기가 다른 국가에 파급되는 현상]는 즉각적이었다. 거대한 붕괴가 임박해 있다는 또 하나의 표시였다.

미국의 부동산 시장은 또 다시 취약해졌다. 부동산 가격은 2012년 이래 50% 올랐으며 이는 2005-2006년에 시작되어 2008-2009년의 거대한 국제적 위기를 야기한 위기 직전보다 높은 수준이다. 우리가 새로운 부동산 위기를 눈 앞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주택판매가 감소하고 있고 거래가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의 지속적인 양적 완화와 미국에서의 양적 완화의 종료가 모두 위기의 요인들이다.

‘시스템 수준’(systemic)이라고 지칭되는 거대 민간은행들은 극히 취약하며 그 주식의 가치는 미국과 유럽에서 2018년 하반기에 급락했고 이 하락세는 2019년 1사분기에 계속되었다. 이 거대 민간은행들은 해당 국가의 중앙은행들의 지원으로 연명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는 해로운 민간 회사채(저 유명한 주택저당증권Mortgage Backed Securities, MBS)를 팔아버리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연준은 2008-2009년에 구제금융을 위해 거대 은행들로부터 획득한 엄청난 양의 MBS(1조6천억 달러)를 2019년 3월에도 보유하고 있었다.((https://www.federalreserve.gov/releases/h41/current/h41.pdf, read 17 March 2019 참조.)) 이 MBS를 약속한 대로 대량으로 팔면 그 가격이 수직으로 하락하고 미국의 증권시장이 그와 함께 곤두박질 칠 것임을 연준은 매우 잘 알고 있다. 또한 연준은 이자율을 2.5% 이상으로 올리면 많은 부채를 진 회사들이 재융자를 통해 부채를 상환하기에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2020년까지 이자율 0%를 고수할 생각이다.((Martine Orange, “La BCE face à ses limites” (“The ECB up against its limitations” [in French]), https://www.mediapart.fr/journal/international/080319/la-bce-face-ses-limites?page_article=1, published 8 March 2019 and Delphine Cuny (La Tribune), “La BCE choque les marchés en repoussant la hausse des taux” (“The ECB shocks the markets by postponing rate increase” [in French]), https://www.latribune.fr/entreprises-finance/banques-finance/la-bce-choque-les-marches-en-repoussant-la-hausse-des-taux-809976.html#xtor=EPR-2-[l-actu-du-jour]-20190308, published 7 March 2019 참조.)) 또한 유럽중앙은행은 민간은행들에 TLTRO(장기대출프로그램, Targeted Longer-Term Refinancing Operation)라고 불리는 중장기 대부를 할 예정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은행들이 이것을 가장 원한다. (JP모건에 따르면 이 은행들이 지난 번 TLTRO 때의 총 대출액의 55%를 가져간다.) 그러나 모든 은행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은행들이 직·간접적으로 TLTRO에 의존한다. 여기에 추가할 것은, 유럽 은행들은 자신들이 0% 이자율로 빌린 돈을 일반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간주되는 국채(가능하면 자국의 국채)를 구입하는 데 대대적으로 지출한다는 점이다.

 

은행들이나 기타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공공채권을 선호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유로존의 모든 국가들은 2018년에 그랬던 것처럼 2019년의 첫 3개월 동안에도 큰 액수의 돈을 빌리는 데 성공했다. 새로운 채권발행이 고지될 때마다 구입오퍼가 홍수처럼 밀려왔다. 일반적으로 어떤 국가가 10억 유로를 빌리고 싶으면 은행들은 40억 유로를 제안한다. 대체로 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앙은행들에서 오는 현금이 이렇게나 많은 것이다. 그래서 은행들은 수익성이 좋고 안전한 공채를 구입하는 데 열심이다. 더 나아가 정부채권을 사면 리스크에 의해 자산을 조작하는 것을 허용하는 시스템의 도움으로 은행들이 부채비율(debt-to-equity ratio)을 인위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Dancing on the Volcano” http://www.cadtm.org/Dancing-on-the-Volcano and Bankocracy, Chapter 12 참조.)) 그러나 위기가 재앙급이 되자마자 주류 미디어와 은행업자들은 과도한 공공지출을 하고 너무 많은 채권을 발행했다는 이유로 유로국가를 또다시 비난한다.

 

전체적으로는 매우 미약한 성장, 몇몇 경우에는 침체 혹은 심한 후퇴

산업화의 정도가 가장 높은 나라들에서의 경제성장은 계속 미약하며 몇몇 주요 나라들에서는 후퇴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 후퇴가 보이는데, 이곳에서는 2017년의 경미한 성장 이후 2018년은 침체로 끝맺었다. 독일의 경우 2018년 4사분기와 2019년 1사분기에 산업성장이 하락했다.((Financial Times, “German industrial production drops unexpectedly,” 11 March 2019, https://www.ft.com/content/2e93cb1a-43ca-11e9-a965-23d669740bfb.)) 독일 당국은 2019년 성장예측을 1%로 하향조정했다. (2016-2017년의 연간성장률은 2% 이상이었다.) 12년 동안 유렵연합에 투자한 결과 위기 발발 이전인 2007년의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저자의 글 “The Challenges for the European Left regarding Debt and the Banks,” 23 January 2019, http://www.cadtm.org/The-Challenges-for-the-European-Left-regarding-Debt-and-the-Banks) 참조.))

유로존의 경우 2018년 3사분기의 성장은 겨우 0.2%로서 4년 사이에 최저치이다. 이탈리아는 경기후퇴 상태이다. 프랑스는 소비의 경미한 증가 덕분에 경미하게 상승했다. 이는 황색조끼(Gilets Jaunes, Yellow Vests) 운동의 결과인데, 이 운동은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을 재정규율(fiscal discipline, 정부지출이 세입을 초과하지 않는 것)과 단절하게 만들었다.

 

일본의 경우 2018년 3월에서 2019년 3월까지의 기간 동안 성장은 대략 0.9%로서 역시 2017년에 비해 하락했다. 미국 경제 또한 후퇴하는 국면에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2018년의 2.9%에 비해 2019년에는 2.5% 성장을 예측하고 있다. (다른 전문가들은 더 낮게 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2016년부터 취해오던 이자율 인상을 일시적으로 중지했다.

중국이 세계의 기관차 역할을 계속적으로 하고 있지만 중국의 성장도 느려서 5% 정도 될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는 25년 만에 가장 낮은 것이다. 중국에서는 금융위기가 언제라도 발발하여 중국 및 전 세계의 성장이 급격히 하락하게 만들고 수억의 중국인들의 생활조건을 악화시킬 수 있다.

BRICS 나라들―브라질(Brazil), 러시아(Russia), 인도(India), 중국(China), 남아프리카공화국(South Africa)―의 경제 또한 둔화되고 있다. 다만 인도가 예외로서 7%를 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러시아의 성장률은 2018년에 1.2%였고 2019년에 1.3%로 예측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2018년 전반기 동안 후퇴했고 현재 약간 상승하고 있다. 2015-2016년에 크게 후퇴했던 브라질 경제는 성장세로 돌아왔으나 2018년에 겨우 1%를 간신히 넘는 낮은 성장률을 보였다.

심각한 위기들이 ‘신생’ 국가들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인 터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인도네시아 등에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나라들은 통화 평가절하를 겪고 있고, 대외 공공부채 및 민간부채의 상환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모잠비크 같은 가장 가난한 국가들 몇몇은 심대한 부채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나라들의 수는 계속 늘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특히 환경을 크게 오염시키는 주요 산업국가들에서 경제성장의 수준이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는 데 기여하는 요인들은 약화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들은 단지 말로만 서비스를 하는 데 그치고 있다. 다행히도 일반 대중, 특히 청년들이 이에 강하게 반응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의 업무 평가

2007-2008 위기가 시작된 이래 유럽중앙은행은 대형 민간은행들과 그 소유주들 및 경영자들을 구하는 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오면서 그들의 특권들의 연속성을 보장했다. 유럽중앙은행이 없었다면 대형 은행들은 분명 망했을 것이며 당국은 이들에게 엄격한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이 이외에 유럽중앙은행의 업무는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20개 정도의 주요 은행들의 이익을 위해 은행 부문들의 중앙집중성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유럽중앙은행은 너무 커서 망할 수 없는 괴물 은행들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해왔다. 유럽중앙은행은 이 주요 은행들의 대주주들을 구제하는 데 덧붙여서 인플레이션율을 2% 정도로 유지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유럽중앙은행은 실패했다.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율은 2018년에 1.6%였고 2019년의 1사분기에는 하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에는 이 외에 다음의 세 가지 목표가 더 있다.

  • 취약한 유럽 경제와 모든 유럽인들에게 구속복인 유로를 방어하는 것. 유로는 대형 민간기업들과 유럽 엘리트들(부유한 1%)에게 봉사하는 도구이다. 유로존에 속한 나라들은 유로를 택했기 때문에 자국의 통화를 평가절하할 수 없다. 그런데 유로존에 있는 가장 약한 나라들은 독일, 프랑스, 베네룩스3국, 오스트리아 같은 경제대국들과 맞서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평가절하를 해야 한다.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같은 나라들은 유로존 회원이 됨으로써 제한을 받는다. 그래서 유럽의 당국과 정부들은 ‘내적 평가절하’(internal devaluation)를 실행하는데, 이는 실상 노동자들의 임금삭감을 의미한다.
  • 유럽의 가장 강한 경제들(베네룩스3국, 프랑스 독일)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것. 유럽의 거대 기업들이 여기에 토대를 두며, 따라서 유럽에서 강한 경제와 약한 경제의 차이를 유지하려 한다.
  • 사업 수익성을 높이고 유럽의 거대 기업들을 세계시장에서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등과의 경쟁에서) 더 경쟁력 있게 만들기 위해서 노동에 대한 자본의 공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 유럽중앙은행이 이 목표를 위해 이탈리아, 그리스, 사이프러스, 아일랜드, 스페인 등에 개입한 사례들이 많다.

박탈당한 사람들에 대한 계속적인 공격에 기여하겠다는 유럽중앙은행의 단호한 태도는 또다시 분명하게 표명되었다. 2019년 3월 유럽중앙은행과 유로체제 은행들은 그리스 민중을 희생하고 얻은 수익의 일부를 치프라스(Alexis Tsipras) 정부가 반(反)개혁(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충분히 이행하지 않았다는 구실로 그리스에 되돌려주기를 거부했다. 유럽중앙은행이 밀어붙인 이러한 개혁 가운데 하나가 주택 모기지 부채를 상환할 수 없는 그리스인들을 쫓아내는 데 걸리적거리는 기존의 장애물 가운데 마지막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유럽중앙은행의 입장에서는 그리스 민중에게 아무리 큰 희생이라도 요구할 수 있다. 이들은 유럽중앙은행이 핵심적 역할을 하는 트로이카―국제구제금융(IMF), 유럽중앙은행(ECB) 그리고 유럽연합(EU) 세 기구로 구성된 삼두체제―의 제물들인 것이다.

근본적 해결책의 필요

다가오는 새로운 금융위기는 이전보다 훨씬 광범위한,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시스템 차원의 위기가 될 것이며 경제·환경·사회·정치·도덕·제도에 영향을 미치는 다면적인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의 지도자들의 사고방식과 철저하게 단절하고 긴급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재난을 초래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기는커녕 황금 악수를 해주는 현재의 체제와는 반대로 은행 붕괴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구제를 위한 돈을 지불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현재 은행을 규제한다고 고지된 조치들은 피상적이다. 유로존 은행들의 중앙집중화된 감시, 유럽저축보증계획의 수립, 전지구적 은행업의 2%만 관련되는 특정 업무들의 금지, 보너스에 상한선 두기, 투명한 은행업무, 그리고 심지어 새로운 은행규칙들마저도 단지 추천사항이거나 약속일 뿐이며 기껏해야 해결해야 할 문제에 완전히 부적절한 조치들이다. 이제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엄격한 규칙들이 부과되어야 한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금융세계와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조치들이 실행되어야 한다.

은행업은 민간 부문에 맡겨두기에는 너무 중요하므로 사회화되어야 한다. 즉 민중(은행직원, 고객들, 연관 단체들, 지역의 공공기관들의 대표자들)의 통제 아래 두어야 한다. 공공서비스로서 운영되어야 하고 그 업무 수익은 공동선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을 구하기 위해 진 공공부채는 분명 정당하지 못하기에 거부되어야 한다. 민중에 의한 감사가 이루어져 다른 정당하지 못한, 불법적인, 가증스럽거나 지속 불가능한 부채를 적발하고 신뢰할 만한 반(反)자본주의적 대안이 출현할 수 있는 부의 결집을 창출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

이 두 조치는 다른 곳에서 제시한 더 광범한 프로그램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Gilets Jaunes (Yellow Vests): Learning from history and acting now” (http://www.cadtm.org/Gilets-jaunes-yellow-vests-learning-from-history-and-acting-now) 참조.)) 중앙은행은 근본적으로 개혁되어야 하며, 그 임무가 재정의되어야 한다. 중앙은행은 화폐를 인쇄하는 역할을 다시 맡아야 하며 환경의 개선과 사회적 불의에 대한 투쟁에 재정을 대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시민들의 결집과 사회적 자치(자기관리)는 다양한 해결책 제안들을 실천에 옮기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다.




토지를 커먼즈로 다루기



토지소유권(land ownership)이라는 특권은 너무 크고 광범위해서 보통은 그 특권을 불변하는 삶의 사실─정치는 도저히 다룰 수 없는 어떤 것─로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가디언』(The Guardian)지의 뛰어난 칼럼니스트인 조지 몬비오(George Monbiot)와 여섯 명의 전문가로 이루어진 팀이 발행한 멋진 새 연구보고서에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인사를 할 만하다. (로빈 그레이Robin Grey, 톰 케니Tom Kenny, 로리 맥팔레인Laurie Macfarlane, 아나 파월-스미스Anna Powell-Smith, 가이 슈럽솔Guy Shrubsole 그리고 베스 스트랫퍼드Beth Stratford가 연구보고서의 여섯 공동저자들이다.) 연구보고서인 『다수를 위한 토지: 우리의 근본 자산이 사용, 소유, 통치되는 방식을 바꾸기』(Land for the Many: Changing the Way our Fundamental Asset is Used, Owned and Governed)는 토지에의 접근과 토지 사용을 민주화하는 철저하고도 포괄적인 안을 마련하고 있다.

몬비오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 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 속으로 충분히 깊이 파고들면 바로 토지에 닿을 것이다. 급증하는 불평등과 배제, 제대로 된 집을 빌리거나 구입하는 데 드는 엄청난 비용, 주택자산 거품으로 촉발되는 반복되는 금융위기, 야생생물과 생태계의 붕괴, 공공 편의시설 부족─이 모든 것들의 바탕에 토지가 소유되고 관리되는 방식이 깔려있다. 그러나 이 점은 정치 논의에서는 거의 부각되지 않는다.

연구보고서에는 영국노동당이 다음 총선에 대비하여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참조할 만한 권고사항들이 담겨있다. 토지가 투기자산으로 다루어지는 것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보고서는 세계 전역에서 유사한 개혁들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템플릿으로 평가될 수 있다. (보고서를 요약한 몬비오의 칼럼은 여기서 볼 수 있다.)

토지가 어떻게 커먼즈로 발전•활용•보호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일련의 철저하고도 포괄적인 제안들이 담겨 있는 이 보고서가 나에게 꽤 인상적이었다.

몇몇 간결하고 강력한 절에서는 토지소유권 데이터를 더 개방하여 이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공동체가 주도하는 토지 개발 및 소유를 촉진하는 방식(예를 들어 “공동체의 구입권”), 그리고 시민사회적 목적과 문화적 목적을 위해 시민이 토지에서 ‘만행(漫行)권’(right to roam)을 성문화하는 것을 다루고 있다. 투기개발을 제한하고 농업과 임업을 부활시키는 한 가지 효과적인 방식은 공동체 토지신탁(community land trusts)을 창출하고 세제 특혜와 보조금을 제한하는 것이다.

토지와 관련된 노골적인 금융 현실은 꽤 염려스럽다. 영국에서 “땅값은 1995년 이후로 544%가 상승했으며 이것은 실질소득에서의 성장을 훨씬 앞지른다”라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주택은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비싸다. “20년 전에 노동에 종사하는 평균적인 가족은 주택 보증금을 지불하기 위해 3년 동안 저축을 해야 했다. 오늘날에는 19년 동안 저축을 해야 한다”라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집을 금융자산으로 여기도록 조장하는 조세법들 및 기타 정책들이 대부분 비난을 살 수 있다. 이것이 주택에 대한 극심한 투기를 부채질해서 가격을 상승시키며 부자들(토지소유자들)에게 이익을 주고 세입자들을 빈곤하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투기와 조세혜택 때문에 부유한 토지 소유자들이 소유 토지를 늘리는 반면에 소규모 농부들은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적어도 영국 농장의 1/5이 지난 10년에 걸쳐 문을 닫았다.

정치가들은 일반적으로 너무 몸을 사려서 이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안을 발의하지 못한다. 그들의 생각에 이 일은 주요한 핵심 유권자인 부자들을 격분하게 만들 뿐이고 부에 이르는 길로서 집으로 돈을 벌고자 열망하는 중산층의 일부를 떨어져나가게 할 뿐이다. 그러나 토지와 연관된 투기 광풍을 잠재우고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어떤 것을 만들기 위해 토지의 취득과 관리를 공동으로 하는 방식들은 사실상 많이 있다.

『다수를 위한 토지』(Land for the Many)는 ‘거시건전성 도구들’(macroprudential tools)─체계 수준의 위험(systemic risk)의 금융평가─의 변화를 권고하는데, 이는 은행이 부동산 구입용 대출은 횟수를 더 줄이고 경제의 생산부문들을 촉진하는 대출은 횟수를 더 많이 늘리도록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보고서는 또한 부동산을 임대할 의도가 있는 구입자들에게 대출을 해주는 것에 규제를 둘 것을 힘주어 권고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토지에 더 접근할 수 있고 구입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건강한 다른 방식들로는, 예를 들어 토지 누진 재산세 매기기, 토지소유주들을 대상으로 한 조세감면의 축소 그리고 허용될 수 있는 임대료 증가의 상한선을 임금 인상률이나 소비자 물가지수 가운데 더 낮은 쪽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로 정하는 것이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개발은 생태계, 야생생물 및 미래 세대들에게 장기적으로 대재앙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보고서는 <공공개발기업들>(Public Development Corporations)의 창출을 요구한다. 이 기업들은 공익을 위해 토지를 구입하고 개발하는 권한을 가질 것이다.

나는 앞으로 집을 살 사람들이 집을 구입하도록 돕는 비영리기관인 <공동토지신탁>(Common Ground Trust)을 창출하자는 아이디어가 특히 마음에 든다. <공동토지신탁>은 구입자의 요청에 따라 주택 부지를 구입해서 그 토지를 커먼즈를 위한 신탁형태로 보유할 것이다. 평균적으로 토지는 주택가격의 70%에 해당하므로 <공동토지신탁>에서 주택 부지를 취득할 경우에 주택 구입자들이 선불로 내는 금액은 크게 줄 것이다. 몬비오를 위시한 공동저자들은 “그 대신에 구입자들은 토지 임대료를 <공동토지신탁>에 지불한다”라고 쓰고 있다. 집 구입자들은 주택의 가격 상승분을 수익으로 거둘 수는 있지만 토지는 사실상 시장에서 빠져나갈 것이고 그 가치를 커먼즈에서 보유하게 될 것이다.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토지를 공동소유로 끌어들임으로써 토지 임대료가 개인 토지소유주들 및 은행으로 유입되지 않고 사회화될 수 있다. 부채에 의한 수요 및 투기수요는 통제되지 못하거나 불안정하게 가치가 하락할 위험 없이 억제될 수 있다.”

『다수를 위한 토지』는 주요한 성취이다. 『다수를 위한 토지』는 토지개혁을 위한 진보적인 사례를 공고히 하고 법과 정책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직설적인 언어로 설명한다. 물론 정치 영역에서 토지를 커먼즈로 다루도록 만드는 일은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불합리한 불평등들, 생태학적 해악들, 농업의 쇠퇴 그리고 토지소유의 현 체제와 연관된 너무 비싼 주택가격을 생각하면 이런 대화는 벌써 이루어졌어야 했다.




트럼프와 냉전 2.0



트럼프 대통령은, 만일 중국이 6월 29-30일에 일본에서 열리는 G20 회의에서 만나서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관세전쟁과 중국의 수출 및 기술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완화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시진핑 주석을 협박했다.

중국 지도자들과 미국 지도자들 사이의 만남이 실제로 일어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질적 협상 같은 것이 될 수는 없다. 그런 만남은 정상적인 경우 미리 계획된다. 전문화된 공무원들이 함께 작업을 해서 국가의 정상들에 의해 발표될 합의안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 준비가 있어본 적도 없고 있을 수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권한을 위임하지 않는다.

그는 협박으로 협상을 개시한다. 여기에는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으며 혹시 그에게 공짜로 생기는 것이 있을지 모른다(적어도 그는 모른다). 미국이 바라는 것을 충실하게 따르기로 동의하지 않는 나라가 있다면 미국은 그 나라를 해칠 수 있다는 것이 트럼프의 협박 내용이다. 그런데 현재의 경우에는 바라는 것이 매우 비현실적이어서 미디어도 그것에 대해 말하기를 곤란해 한다. 미국은 경제적으로 항복하라는, 그 어떤 나라도 받아들일 수 없는 불가능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표면에서는 무역전쟁인 듯이 보이는 것이 본격적인 냉전 2.0이다.

미국이 바라는 것: 다른 나라들의 신자유주의적 굴종

걸려있는 것은, 중국이 과연 러시아가 1990년대에 했던 것―즉 옐친 같은 신자유주의적 계획자 역할을 할 꼭두각시를 세워서 경제에 대한 통제력을 정부로부터 미국의 금융 부문과 그 계획자들에게로 이전시키는 것―을 하는 데 동의할 것인가 아닌가이다. 그래서 실제로 싸움은 중국과 세계의 나머지 나라들이 어떤 종류의 계획을 택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진다. 더 제고된 번영을 가져올 정부들에 의한 계획인가 아니면 수익을 추출하고 긴축을 부과할 금융 부문에 의한 계획인가?

미국은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수출농산물, 미국의 석유(혹은 미국 대기업들과 그 연합세력이 통제하는 나라들의 석유), 정보, 군사기술에 의존하게 만들고자 한다. 이런 무역의존성으로 인해 미국 전략가들은 미국의 요구에 저항하는 나라들에게 제재를 부과하여 기본적인 식량, 에너지, 통신 그리고 교체용 부품들을 그 나라의 경제로부터 박탈할 수 있게 된다.

그 목적은 전지구적 자원에 대한 금융적 통제력을 획득하고, 무역 ‘파트너들’로 하여금 미국이 지적 재산에 대한 독점가격책정‘권’을 향유하는 생산품들에 대해 이자, 사용료 및 높은 가격을 지불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무역전쟁이 노리는 것은 미국이 통제하는 식량, 석유, 은행업 및 금융, 혹은 첨단기술 재화에 다른 나라들이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굴복할 때까지 긴축과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트럼프에게 승리를 기꺼이 양보할 중국

협박 자체에는 비용이 별로 들지 않지만, 만일 트럼프가 이 협박을 밀어붙여서 중국에 부과할 관세로 인해 생활비용과 사업비용이 증가한다면 그는 선거 시에 농업경영자들, 월가, 증권시장, 월마트 그리고 IT 부문의 많은 부분을 자신의 적으로 돌리게 될 것이다. 그의 외교적 협박은 실제로는 만일 중국이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면 미국의 수입업자들과 투자자들에게 제재를 부과함으로써 미국 자신의 경제의 목을 베게 되는 그러한 협박이다.

중국의 응답이 어떨지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은 물러서서 미국이 자멸하도록 놔둘 것이다. 중국의 협상자들은 중국이 어떻든 계획했던 것을 매우 기꺼이 ‘제공할’ 것이며 트럼프가 그것이 자신이 얻은 ‘양보’라고 떠들어대도록 놔둘 것이다.

내 생각에는 시진핑이 제공할 큰 사탕이 중국에게 있다.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명할 수 있다. 우리는 오바마가 가진 것을 그도 원한다는 것을 안다. 그가 더 자격이 있는 것 아닌가? 어떻든 그는 유라시아를 결속시키는 것을 돕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를 이웃 나라들과 연합하도록 밀어붙이고 있으며 유럽에 손을 뻗고 있다.

트럼프는 이 말에 들어있는 아이러니를 깨닫기에는 너무 자기도취적일지도 모른다. 아시아와 유럽이 무역·금융·식량·IT에서 미국의 제재 위협으로부터 독립하는 데 촉매가 되면 미국은 앞으로 출현할 다자주의 세계에서 고립되게 될 것이다.

미국이 중국의 신자유주의적 옐친에게 (그리고 러시아의 또 하나의 옐친에게) 바라는 것

좋은 외교관은 ‘No’가 대답일 수밖에 없는 요구를 하지 않는다. 중국이 그 혼합 경제를 해체하고 자국의 경제를 미국이나 기타 전지구적 투자자들에게 내놓을 가능성은 결코 없다. 미국이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교육·도로·통신 및 기타 기본적인 기반시설에의 집중적 공공 부문 지원을 함으로써 세계 산업에서 우월한 위치를 점하는 데 성공한 것은 비밀이 아니다. 오늘날의 사유화되고 금융화되었으며 ‘새처화’된 경제는 고비용 비효율 경제이다.

그런데 미국의 관리들은 중국의 어떤 신자유주의적 관리나 ‘자유시장’당을 밀어줘서 옐친과 그의 미국 조언자들이 러시아에 끼친 것과 같은 피해를 중국에 끼칠 꿈을 계속해서 꾸고 있다. 미국이 생각하는 ‘서로 이득을 보는’ 합의란, 중국이 독립적인 경쟁자가 아니라 미국의 금융 및 무역 위성국가가 되는 데 동의하는 한 성장을 허용받는 그런 합의이다.

트럼프는, 한때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었으나 지금은 미국과 유럽의 많은 곳에서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파괴된 바로 그 경제전략을 다른 나라들이 쫓는다는 이유로 떼를 쓰고 있다. 미국의 협상자들은 미국이 산업 경쟁에서의 우위를 잃고 고비용의 자산소득자(rentier) 경제가 되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미국의 GDP는 금융·보험·부동산 부문의 자산소득, 이윤 및 자본이득으로 주로 구성되는 ‘텅 빈’ 것이다. 미국의 기반시설은 쇠퇴하고 있고 노동은 시간제 ‘긱’ 경제로 축소되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무역 협박이 발하는 효과는 경제적으로 자립적이 되려는 다른 나라들의 노력을 가속시키는 것이 될 수 있을 뿐이다.




금융 대 경제


  • 저자  :  Michael Hudson
  • 원문 : 유튜브 동영상 Finances vs Economy, Credit vs Money (2012년 3월)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2012년 2월 이탈리아의 리미니(Rimini)에서 ‘현대 화폐 이론’(Modern Money Theory)를 주제로 열린 1회 이탈리아 풀뿌리 경제학 대회(the first Italian grassroots economic summit)에서 마이클 허드슨이 한 발제의 내용을 비교적 상세하게 정리한 것이다. 이 발제의 영어 스크립트는 https://neritam.com/2012/05/19/modern-money-theory/ 에서 볼 수 있다.

[마이클 허드슨]

저는 중앙은행과 상업은행(commercial bank)의 차이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니다.[이에 앞서 Stephanie Kelton이 현대화폐이론의 기초를 설명하는 발제를 했다.―정리자] 중앙은행이 화폐를 창출하고 상업은행(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은행)은 신용을 창출한다고 합니다. 2008년 이후 3년 동안 우리는 미국 역사상 최대의 화폐창출과 신용창출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임금은 지난 30년 동안 하락했고 소비자 물가와 상품가격은 변동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있었습니다. 이자율이 20%에서 오늘날의 4분의 1%로 떨어지면서 역사상 최대의 증권시장 가격 상승이 일어났습니다. 부동산 가격, 증권가격, 주식 가격이 상승했습니다. 그 결과 부의 가치(대부분의 부는 인구의 1%가 소유하고 있습니다)가 임금에 비해 상승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종류의 계급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종래의 고용주(자본가)와 고용인(노동자) 사이의 전쟁이 아닙니다. 금융과 경제 사이의 전쟁입니다.

산업자본주의에서 신용은 노동을 고용하는 자본투자에 들어갑니다.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상업은행들이 신용을 창출할 때 이는 부에 대한 청구권의 창출이고 모기지 부채의 창출이며 기업 부채의 창출이고 개인적인 부채 및 학자금 융자의 창출, 신용카드 부채의 창출입니다. 바로 이점에서 상업은행 신용창출은 중앙은행의 화폐창출과 다릅니다. 중앙은행이 화폐를 창출할 때에는 장기적이고 공적인 목적에서 그렇게 합니다. 정부지출과 공적 기반시설에의 자본투자에 재정을 댑니다. 역사 전체에 걸쳐서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공적 기반시설―도로, 통신 시스템, 철로, 상수 및 하수 시스템 등―에의 자본투자는 모두 제조업에의 자본투자 전체보다 더 컸습니다.

미국에서 뉴욕시의 부동산 가치는 미국 제조업 전체의 설비의 가격보다 높습니다. 미국에서 사용되는 교과서는 이런 차이를 무시합니다. ‘MV = PT’[Money×Velocity = Price×Transaction]라는 공식이 있습니다. 화폐 공급이 증가하면 가격이 오른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교과서에서 말하는 가격 수준은 소비자 물가와 상품가격만을 포함합니다. 교과서 어디에도 신용공급과 자산(부동산, 주식 및 증권)의 가격 사이의 관계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 경제에서 신용의 99%는 이 금융 청구권들에 지출됩니다. 매일 국민총생산 전체와 맞먹는 양이 뉴욕 어음교환소와 시카고 상업거래소를 통과합니다. 지불의 방대한 양이 금융부문에 속합니다. 지난 10년여 동안 늘어난 은행대출 전체가 다른 금융기관에 대출한 것입니다.

교과서는 은행들이 산업에 대부하여 기계를 구입하고 공장을 지어 노동자를 고용하도록 하는 행복한 그림을 보여줍니다. 이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허구입니다. 미국 경제에서 모든 증가된 자본투자는 은행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이익잉여금(retained earnings)에서 옵니다. 은행들은 새로운 자본투자를 낳기 위해 대부하지 않습니다. 모기지, 자본금, 부동산, 이미 존재하는 자산을 담보로 대부하지 새로운 자산의 창출을 위해 대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부화폐를 말할 때 우리는 경제에 박차를 가하는, 경제성장과 새로운 투자를 촉진하는 정부지출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정부투자 및 중앙은행 화폐창출의 기능은 민간은행의 기능과는 매우 다릅니다. 정부의 화폐는 그야말로 부채입니다.[정부가 화폐를 발행하는 것은 정부가 빚을 지는 것과 같다고 본 것이다.―정리자] 당신의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리라[이탈리아의 통화―정리자]는 부채입니다. 지폐도 부채입니다. 그러나 이는 아무도 그 상환을 생각하지 않는 부채입니다. 이를 상환한다는 것은 호주머니에 통화가 남아있지 않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정부에 의한 화폐와 신용의 창출을 이렇게 공익서비스(public utility)로 보는 이론이 현대 화폐 이론(Modern Monetary Theory)이다.―정리자]

상업적 부채[공익이 아니라 사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부채―정리자]는 상환을 전제로 하며 이자를 낳습니다. 이 상업적 부채가 늘어나자―모기지, 기업에의 은행대출, 기업사냥을 위한 부채 등―엄청난 부채 간접비용이 경제에 큰 부담으로 지워집니다. 상업은행들이 더 많이 대부하면 할수록 이 부채의 간접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 더 많은 이자가 지불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부채를 갚는 데 지출되는 화폐는 재화와 서비스에 지출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상업은행들이 부채를 창출할 때에는 재화와 서비스에 지출되던 소득이 부채서비스 비용을 지불하는 데로 돌려집니다. 이것이 바로 부채디플레이션(debt deglation)입니다. 부채디플레이션이 오늘날처럼 오래 진행되면 금융자본주의의 후기 단계인 부채디플레이션 단계, 긴축 단계로 들어서는데, 바로 유럽이 오늘날 이 단계에 와 있습니다.

화폐에 대한 이 모든 전문적인 논의에는 정치적 측면이 있습니다. 정부가 화폐를 창출한다면, 혼합된 경제, 즉 사적 자본투자와 공적 자본투자가 혼합된 경제가 창출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럽의 모든 나라들과 미국을 부유하게 만든 경제입니다. 경제에 비용가격[이윤을 붙이지 않은 가격―정리자]으로 공급될 공적 기반시설에 정부가 투자하여 그 기반시설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화폐를 창출할 수 없게 되면, 경제에 필요한 모든 신용이 상업은행들에 의해 창조되게 되면, 상업은행의 신용창조가 부채 디플레이션을 낳으며, 정부가 이자를 지불하기 위해 재정을 댈 수 없다면, 상업은행들은 ‘좋아, 그러면 파시오’하면서 기반시설을 사유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 아일랜드에서 보고 있고, 아이슬랜드에서 본 것입니다. 이렇게 금융이 기반시설을 가로채는 일은 상업적 은행업자들이 중앙은행이 신용을 창조하지 못하도록 하는 능력에 의해서 일어납니다.

대부분의 기반시설은 은행의 방대한 양의 새로운 대부를 통해 구매됩니다. 그래서 상업은행의 정치적 전략은 맨 먼저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화폐를 창출하지 못하게 하고 그 다음에 정부들이 (이자 없는 부채를 내지[화폐를 발행하는 것을 말한다―정리자]) 말고 상업은행들로부터 빌릴 필요가 있다고, 상업은행들에 이자를 지불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정부들은 이자를 지불하기 위해서 기반시설을 팔아넘겨야 하는데, 그 결과 오늘날 은행업자들이 과거에는 군사침략을 통해 이루었던 재산탈취를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새로운 종류의 전쟁입니다. 금융이 사회 전체에 대해서 벌이는 전쟁입니다. 노동뿐 아니라 산업에 대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부에 대해서 벌이는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도구는, 정부의 화폐창출이 인플레이션을 낳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지난 30년 동안 여기 이탈리아에서 물가가 그다지 오르지 않았고 임금이 그다지 오르지 않았으며 오른 것은 주택가격이고 살 곳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평생 갚을 빚을 져야 함을 보았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학생들은 교육을 받아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십년 갚을 빚을 져야 합니다. 100년 전에는 정부가 교육이 무상으로 이루어지도록 재정을 대는 것이 이상(理想)이었는데 말입니다.

교과서들은 마치 경제가 빚 없이 실질적 교환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제시합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서 논의하고 있는 것을 교과서들이 언급하지 않는 것은 상업은행의 신용창조와 권력 장악에 대한 대안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인 보들레르는 사회가 악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그 지점에서 악마가 승리한다고 말했습니다.[“악마의 가장 교묘한 책략은 당신이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La plus belle des ruses du diable est de vous persuader qu’il n’existe pas.”)는 보들레르의 Spleen de Paris의 “Le Joueur généreux”(「관대한 도박꾼」)에 나온다.―정리자] 금융 부문은, 은행들이 부풀리고 있는 가격이 자산 가격, 부동산 가격, 증권 및 주식 가격임을 당신이 보지 못하고, 상업은행들의 역할은 사회 위에, 노동 위에, 산업 위에 군림하는 부의 권력을 증가시켜 은행업자들로 구성되는 새로운 지배계층―19세기 후반에 비판을 받은 지주들보다 훨씬 더 큰 부담을 사회에 지우는 지배계층―을 창출하는 것이라는 점을 당신이 보지 못하는 지점에서 승리합니다.

200년 동안 고전경제학은 산업자본주의로부터 봉건주의의 잔재를 제거하려고 했는데, 이 잔재란 세습 귀족계급의 사적 토지소유와 상업은행들이었습니다. 상업은행들은 정부로 하여금 빚을 지게 하고 그 다음에 담보권을 행사하여 부채를 독점과 교환했습니다. 영국에서는 바로 이런 식으로 무역회사들이 형성되었습니다. 동인도회사, 독점을 누린 영국은행 등. 미국에서도 철도를 통해 유사하게 독점이 창출되었는데, 철도 건설용 불하 토지의 사유화를 통해 최대의 토지소유자들이 나옵니다. 발자끄는 그의 소설에서 모든 가족 재산 뒤에는 종종은 발견되지 않는 거대한 절도가 존재한다고 쓴 바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 경제학은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모든 절도, 자본 이전(移轉), 이전 지불(transfer payments)을 마치 그것이 생산적인 양, 마치 모든 소득이 근로소득인 양 취급합니다. 세계의 모든 정부는 ‘국민소득 및 생산계정’(NIPA)을 발행하고 있는데, 여기서 지대(임대료)는 토지소유자들(집주인들)의 소득으로 되어있고 이자는 은행업자들의 소득으로 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 금융 부문은 모든 신고된 기업소득의 40%를 차지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설비에 투자되어 노동을 고용하는 산업자본으로부터 경제적 잉여가 빠져나와 금융자본으로 흘러들어가는 일이 일어납니다. 금융자본이 대출되어 이자를 받고 그 이자를 다시 대출하며 이것이 반복되어 미국인들이 복리의 마법이라고 부른 기하급수적인 증가가 이루어집니다. 복리의 증가는 너무 커서 그 어떤 정부의 지불 능력도 훨씬 넘어섭니다. 그 결과는 채무불이행이 될 수밖에 없는데, 오늘날 유럽과 미국은 금융 부문이 자산을 탈취하고 공적 도메인, 공기업, 도로, 방송 시스템, 항구 등을 사유화하는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자산을 사유화할 때에는, 가령 도로를 사유화할 때에는 ‘구매자들’이 이자를 지불해야 하며 배당금을 지불하고 회사 경영진에게 엄청난 액수의 봉급을 주며 증권인수업자에게 금융 수수료를 지불하고 경영진에게 스톡옵션을 제공하며, 그런 다음에는 이 공공서비스의 가격을 가능한 한 최고의 자산소득를 끌어내는 지점까지 올립니다. 경제는 통행료 징수로 전환됩니다. 통행료 징수소를 주택에 접근하는 곳, 도로에 접근하는 곳, 전화 시스템에 접근하는 곳, 신용카드에 의한 지불에 사용될 돈을 위한 신용에 접근하는 곳에 설치합니다. 갑자기 우리는, 경제를 작동시키는 비용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특권에, 금융 부문에, 그리고 자산소득자(rentiers)라고 불리던 층―이들은 단지 얻어낼 것을 청구할 뿐이며 부를 자신들의 수중으로 빨아들입니다―에 지불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미국에서 생산과 소비로 이루어지는 현실 경제는 지난 30년 동안 실제로 쇠퇴했습니다. 지금 경제에서 모든 성장은 자산소득자 부문으로, FIRE 부문(finance, insurance and real estate)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가는 간접비용에서 일어납니다. 지금은 이 부문에 법시스템과 독점시스템이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교과서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는 새에 예전에 산업자본주의로서 분석되던 것이 금융자본주의로 전환되었습니다. 이 금융자본주의는 100년 전에 생각했던 종류의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산업에 자금을 대는 것이 아니고 경제적 기생과 간접비용에 자금을 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마치 부자가 되는 길은 빚을 져서 그 돈으로 가격이 부풀어 오를 자산을 사는 것인 양 제시됩니다. 부동산이나 공기업의 가격이 오를 때, 이는 실제로 가치가 증가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주택이나 재산은 은행이 대출해주는 만큼의 값을 가지며, 대출조건이 느슨해지면 경제의 지불능력을 훌쩍 넘어서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자산 가격에 생기게 됩니다. 마감 기한이 여지없이 옵니다. 금융 자본주의는 거품 경제로 전환됩니다. 은행들이 채무불이행을 그리고 연쇄적 지불의 단절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더 많은 돈을 빌려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은 ‘돈을 빌려서 부채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라고 설명됩니다. 갚을 수 없으면 은행에서 돈을 더 빌리고, 그저 그만큼 이자를 추가한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에 라틴아메리카가 바로 이런 식의 상황이었으며 그러다가 마침내 갚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부채는 삭감되어야 했습니다.

정부의 중앙은행 화폐창출로부터 상업은행 신용창출로의 이러한 전환의 필연적 결말은 파산, 부채의 삭감입니다. 나의 분석의 기저에 있는 기본 전제는 ‘갚을 수 없는 부채는 갚게 되지 않을 것이다’입니다. 내가 아는 월가의 모든 분석가들은 이 점을 알고 있습니다. 정치적 문제는 ‘어떻게 갚지 않는가?’입니다. 은행들로 하여금 담보권을 행사하게 함으로써 갚지 않는가? 오늘날 미국의 모든 부동산의 4분의 1에는 그 가치보다 더 많은 돈이 담보대출로 걸려있습니다. 이는 자택소유자의 4분의 1―거의 1천만 명입니다―이 자신의 재산으로부터 물러나는 것이 이익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도날드 트럼프도 그럴 겁니다. 물론 골드만삭스도 나쁜 투자로부터 물러날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들은 빚을 갚아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부자들의 빚만이 갚을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99%가 부자에게 진 빚만 갚아야 한다는 겁니다. 경제의 작동방식에 대한 이해가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부자가 되는 길은 실제로는 돈을 빌려 가격이 오르기를 희망하는 재산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미국, 스페인, 아일랜드, 영국에서처럼 가격이 붕괴하게 되더라도 부채는 그대로이며 네거티브 에쿼티(negative equity) 상태[집값에서 부채를 제하면 마이너스가 되는 상태―정리자]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여기가 재산이 채무자에게서 채권자에게로 넘어가는 지점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돈을 버는 길은 인구의 99%로 하여금 1%에게 빚을 지게 하는 것입니다. 빚을 지는 것이 돈을 버는 길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한 역사적 시기는 결코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가령 앨런 그린스팬(Alan Greenspan)이 미국의 자택소유자들에게 집의 가치를 담보로 돈을 빌리라고, 빚을 지라고, 집을 돼지저금통이라고 생각하고 임금이 더 이상 받쳐주지 못하는 생활수준을 유지하라고 말했을 때, 이런 쓰레기 경제학에 속아서 그렇게 합니다.

미국 노동자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서 돈을 들여야 하고, 이전에는 공적으로 지원되던 것에 돈을 들여야 하는 사이에, 은행들은 갑자기 교육을 금융화하고 공적 부문을 금융화하며 심지어는 기업 부문과 산업 부문도 금융화했습니다. 교과서에서 증권시장은 산업에 자금을 대고 부채가 아닌 자기자본을 제공하는 수단으로서, 즉 산업투자를 해서 노동을 고용할 수단으로서 제시됩니다.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일어난 일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증권시장은 기업사냥꾼들과 경영권 매수를 위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돈을 빌려 회사를 사고 그 회사가 얼마나 이윤을 만들어낼지 계산하여 그 이윤을 은행업자들에게 지불하는 것, 마치 부동산 투자자들이 건물을 사듯이 회사를 사는 것입니다.

미국의 도날드 트럼프든 이탈리아 혹은 유럽의 투자자든 부동산 투자자들이 상업적 재산을 구매하기를 원할 때, 그들은 얼마나 많은 임대료 수익이 생길지를 계산합니다. 그들은 서로 입찰하여 경합합니다. 담보를 얻기 위해, 그 재산을 구매하기 위해 가장 많은 임대료를 은행에 기꺼이 지불하는 사람이 낙찰을 받습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돈을 사용하기’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의 저축을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은행들이 컴퓨터 키보드로 입력하여 새로 창출한 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은행들은 대출자를 위해 은행계좌에 대출액을 적어 넣음으로써 (대출자는 담보 부채든 아니면 개인 부채든 차용증서에 그 이자를 갚겠다고 서명을 합니다) 자유롭게 화폐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은행들은 이런 화폐창출이 인플레이션을 낳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정부의 화폐창출만이 인플레이션을 낳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상업은행들이 신용을 창출하는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들의 컴퓨터에 가서 전자적으로 화폐를 창출하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문제는, 여러분들이 보았듯이 상업은행들이 인플레이션을 낳는데도 왜 정부의 화폐창출은 인플레이션을 낳는다는 말을 듣고 상업은행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을 듣는가 하는 것입니다. 은행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본이득[capital gain, 사업에 의한 이득이 아니라 자산의 가격이 올라서 거둔 이득을 말한다.―정리자]을 거두기를 바라면서 모든 자산소득(rent)과 모든 기업 이윤을 은행에 내게 함으로써 돈을 법니다.

미국에서 기업사냥꾼들과 부채를 통해 기업을 매수하는 회사들은 비용절감, 임금삭감, 정리해고, 다른 나라로의 아웃소싱을 통해, 그리고 특히 연금기금을 탈취하여 그것으로 은행 빚을 상환하여 부채를 삭감하고 자기자본을 늘림으로써 자본이득을 거둡니다.

몇 년 전에 제가 자란 도시 시카고에서 부동산 투기자인 쌤 젤(Sam Zell)이 돈을 빌려 최대의 신문인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을 샀습니다. 그는 ‘사원 주식소유 플랜’을 약탈했습니다. 그는 그 돈으로 그에게 <시카고 트리뷴>을 살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에게 진 빚을 갚았습니다. 그는 직원들을 해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시카고 트리뷴>이 소유한 야구팀인 <시카고 컵스>를 팔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회사를 매우 잘못 경영하여 회사가 파산했으며 그 바람에 사원 주주들이 쓸려나갔습니다. 사원들은 그가 그들의 돈을 훔쳤다고 주장하면서 그를 사기죄로 고소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에 한 연설에서 ‘사기는 없다, 모두 합법적이다, 그것이 바로 자유시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유시장의 ‘자유’는 금융 세력이 탈취할 자유, 분식회계를 할 자유, 빌 블랙(Bill Black) 교수가 말하는 일[블랙은 회사나 조직을 통제하는 자가 자신이 통제하는 회사나 조직을 사기를 치는 ‘무기’로 사용하는 행태를 가리키는 ‘통제 사기’(control fraud)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정리자]을 할 자유로 재정의되었습니다.

사기가 돈을 버는 데 본질적으로 토대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새로운 경제를 말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비록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부자가 되는 길을 돈을 훔치는 것이라고 말하는 교과서, 부자가 되는 길을 돈을 빌려서 가치가 상승할 재산을 사는 것이고 경제를 위축시키고 공적 도메인으로부터 재산을 탈취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교과서는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발자끄 같은 소설가나 보들레르 같은 시인이 교과서에 나오는 노벨상을 탄 경제학자들보다 경제를 더 잘 이해하는 것인가요? 왜 교과서를 보기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러가야 하는 것인가요?

오늘 우리가 이 모임에서 하려는 것은 실제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상을 제시하고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평행 우주 대신에 현실 경제학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쌔뮤얼슨(Paul Samuelson)은 미국에서 학생들을 세뇌하는 데 사용되는 자신의 교과서의 시작 부분에서 경제 이론의 기준은 그 공리들의 일관성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내가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을 때 들은 말입니다. 소설을 읽을 때에는 불신을 정지시켜야 합니다.[‘willing suspension of disbelief’(불신의 기꺼운 정지)라는 말의 출처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콜리지(S. T. Coleridge)의 Biographia Literaria(1817)로서 시에서 초자연적이고 환상적인 요소를 포용적으로 대하는 태도로서 말한 것이다.―정리자] 공상과학소설을, 작가가 일관적이라고 생각하는 등장인물들을 믿어야 합니다. 스릴러나 미스터리 영화를 보러갔다 나올 때에는, ‘잠깐, 무언가 빠졌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쌔뮤얼슨이 하지 않은 말은 이 전제들이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배우지 않고 다른 행성에서 평행우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듣습니다. 정부도 없고, 사기도 없고, 전체 경제가 실질적 교환에 의해서 작동하고, 부채도 없고, 모든 사람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도우려 하고, 아무도 돈을 상속받지 않으며, 모두가 자신들이 가진 소득과 부를 일해서 버는 그런 평행 우주 말입니다. 실제 현실은 이와 반대인데, 이는 오늘날 소설에서만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현실을 잘못 이해하는 일이 1년, 2년을 가고 10년, 20년을 가며 이제 한 세기가 지난다면, 그리하여 경제에 대한 거짓된 상이 그려진다면, 그 배후에 이익을 보는 특수한 세력이 있다고 확신을 해도 좋을 것입니다. 현실에 대한 거짓된 상은 자연스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는 지원을 받아 일어납니다. 은행업 부문이 대학들에서 가르쳐지고 신문에서 널리 전파되며 은행의 후원을 받는 정치가들이 말하는 쓰레기 경제학을 지원해 왔으며 이를 통해 사람들이 마치 화성에 살고 있는 것처럼, 실제와는 다른 종류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믿게 만들고자 했고 공중에 속하는 것을 탈취하려는 금융 계층은 없는 척 하고자 했습니다.

경제성장과 완전고용을 목적으로 하는 정부에 의한 중앙은행 화폐창출과 경제의 축소, 긴축, 낮은 임금, 낮은 산출량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은행 신용창출 사이의 차이는 이렇게 귀결됩니다. 그리스가 당하는 것을 여러분도 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당신들의 항구와 땅과 관광지역들과 상·하수도 시스템을 주면, 우리는 당신들에게 사용료를 물리고 당신들이 연금으로 받아가기를 기대하는 돈의 규모를 줄여 우리가 쓸 것이다’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죠.

과거에는 이런 일을 하려면 군대가 필요했는데, 오늘날에는 군대 없이 행해집니다. 여러분들이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고, 은행들이 그리는, 세상에 대한 허구적인 상을 믿는 한에서는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재앙을 부르는 한국의 성장제일주의?



한국은 기술 및 상업 성장에 초점을 맞춘 경제전략을 밀어붙일 것인가 아니면 늘어나는 경제적 격차와 닥쳐오는 기후위기에 지구보존을 목표로 하는 포용적 정책들로 맞설 것인가?

이것이 <2019년 한국포럼>에서 한국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많은 외교전문가들, 정당지도자들, 학계인사들, 정부 고위 관리들 및 (노벨상 수상자 한 명을 포함한) 다른 참석자들이 당면하고 있는 핵심 질문이었다. [노벨상 수상자는 뉴욕대 교수 토마스 사전트(Thomas Sargent)로 201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옮긴이]

4월 25일에 열린 행사는《코리아타임즈》(The Korea Times)와 그 자매신문이며 한국 최대 일간지 가운데 하나인《한국일보》(Hankook Ilbo)가 공동주최하는 연례행사 중 가장 최근 것이었으며 이 신문사의 65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이 행사는 또한 한국경제의 현황, 그 과제들 그리고 그 지도자들이 나라를 위해 가지고 있는 포부들에 관한 매우 계몽적인 특강이기도 했다.

둔화되고 있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어떻게 증가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핵심주제였다. 일부 강연자들은 성장의 성과들을 보다 잘 공유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서 한국이 사회적ㆍ환경적 지표에서 처참한 성적을 기록한 것을 문제로 다루는 것은 의제로 상정되지 않았다. 기후변화도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이런 성장 수사(修辭)는 선진국들 사이에서 자주 보이지만 한국전쟁동안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을 때 이미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에서 이 수사가 줄기차게 주목을 받고 있는 근원을 재검토 해보는 것도 가치는 있다. 한국은 잿더미에서 빠르게 일어서서 ‘아시아의 호랑이’(Asian Tiger)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선진경제국들 중 하나가 되었는데, 이는 종종 한강의 기적(한강은 서울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으로 불린다. 이것이 경제성장을 고무적인 국가신화와 결부시킨다.

한국의 미래 비전을 놓고 씨름하기

환영사에서 한국일보 회장 승명호(Seung Myung-ho)는 한국이 경제성장이 둔화된 10년 동안 경쟁력을 잃고 있는 점에 관하여 우려를 표명함으로써 이 분위기를 조성했다. 30년간 연속적으로 일구어 낸, 한국의 믿기 힘든 경제성장은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면서 둔화되기 시작했다. 승명호는 성장을 촉진하고, 유례없는 파열을 약속하는 인공지능·자율주행자동차·양자컴퓨팅(quantum computing)을 포함한 강력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물결인 4차산업혁명(4IR)에 적응하기 위한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회의장인 문희상(Moon Hee-sang)은 반론 같은 것을 제시했으나 성장 내러티브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며 성장경제의 성과를 더 잘 공유할 대통합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성장주의가 포럼에서 내러티브를 장악하긴 했지만, 일부 연사들은 성장이 치를 비용이 다뤄져야 한다고 미온적으로나마 주장했다.

예를 들어 한국은 OECD 행복지수(OECD’s Better Life Index, BLI)와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의 달성에서 거의 하위를 차지한다.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인 윤종원(Yun Jong-won)은 사회적•환경적 비용이 늘어나면서 실질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떨어진다고 언급했고 성장이 공유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는 새로운 가능한 패러다임을 간략하게 제시했다.

게이오 대학교 교수인 이사오 야나기마치(Isao Yanagimachi)는 둘로 나뉜 한국의 노동시장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즉 한편으로 점차 쇠퇴하는 중심부에서는 한국의 대규모 다국적기업들(재벌들이라 불린다)에 소속된 노조가입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옹호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 커지고 있는 주변부에서는 전례 없는 프리랜서들, 소규모 자영업자들, 그리고 플랫폼노동자들이 빈약한 임금, 열악한 노동조건, 형편없는 사회보장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익숙하게 들리는가?). 한국 노동시장의 한 가지 특이사항은 노동조합이 산업별이 아니라 기업별로 조직된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서로 다른 기업에서 일하는 동종의 노동자들 사이에 임금격차가 생긴다.

마지막 3부를 시작하는 두 개의 발제중 하나를 내가 했는데 그 발제에서 나는 한국인들 모두가 격변의 시대를 뚫고 나갈 준비가 되도록, 보다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나라를 구축할 비전과 능력을 갖도록, 그리고 그들 스스로의 생계를 더 잘 창출할 수 있도록 사람에게 투자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이 차량공유(ridesharing)를 허용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어서 나는 또한 한 가지 충고로서 미국에서의 차량공유의 부정적인 영향―주행거리의 증가, 정체의 심화, 더 많은 교통사고 등등―을 이야기했다.

차량공유는 국가 미래를 알아보는 리트머스시험지일 수 있다

차량공유를 둘러싼 갈등은 한국에서보다 더 높을 수는 없다. 택시기사들이 내가 전 세계에서 본 가장 격렬한 반대를 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비극적이게도 최소 세 명의 기사가 항의의 표시로 분신하는 일도 일어났다. 나는 또한 몇 가지 가능성 있는 방향들을 제시했는데 이를테면 노동을 지원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플랫폼 협동조합을, 4차 산업혁명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운영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디지털 권리를 위한 도시 연합을 그리고 보다 지속가능한 공동체들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공유이웃들과 공유도시들을 각각 제시했다. 나는 한국이 한국전쟁으로 폐허된 상태를 극복하는 데 쏟은 바로 그 집중력을 기후변화 같은 세계적으로 가장 큰 문제들과 씨름하는데 쏟을 것을 제안하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카풀•택시 태스크포스 위원장인 전현희(Jeon Hyun-hee)는 나중에 택시회사와 차량공유 세력의 사이의 첨예한 갈등에 대해 내부자로서 설명을 했다. 택시운전사들이 그녀의 발언을 방해했고 물을 뿌렸다고 한다. 그녀는 택시운전사들이 자신들의 입장이 약화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녀와 이야기하는 것조차 거부했다고 말했다.

나 다음의 발제자는 서울대학교 교수인 이재열(Lee Jae-yeol)이었으며 그의 발제는 내 발제와 대조되도록 의도된 것이었다. 열정적인 테크놀로지 전도사인 그는 테크놀로지가 사회전반에 걸쳐서 과도하게 포화된 상태를 특징으로 하는 피할 수 없는 미래상을 그렸으며 한국이 이 움직임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9한국포럼>에서 프로그램을 확인해 보니 3부의 두 번째 발제자는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인 최재붕이었고 이재열은 3부의 사회를 맡았다.―옮긴이] 

이어지는 패널토론에서 이 주제가 강화되었다. 내가 그런 기술결정론(technological determinism)이 한국사회에서 권위적인 요소들을 강화할 수 있음을 경고하자 서로 치고 받는 논의가 활발해졌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인 토론자 최성진(Choi Sung-jin)은 테크놀로지스타트업 문화는 자유행위자들에 의한 문제해결이 핵심이라고 능숙하게 반박했다.

컨퍼런스가 끝날 때 가지게 된 느낌은, 한국의 경제적 과제들이 대체로 다른 선진국들의 상황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유사성은 한국의 성공의 표시이기는커녕 아주 위험하다는 인상을 내게 안겨주었다. 우리시대 특유의 과제들을 인정하지 않는 경제성장 가도에 한 나라가 강하게 집중하는 것은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전 세계적으로 닥쳐오는 생태계 붕괴를 고려할 때 자멸을 초래할 것처럼 보인다.




상황은 삐께띠가 서술한 것보다 더 나쁘다

 



삐께띠의 통계의 문제는 그것이 세상이 얼마나 불평등한가를 매우 낮추어 말하고 있다는 데 있다. 소득에만 시야를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부자들은 소득을 벌지 않는다. 그들은 자본 이득(capital gains)을 거두어들이며, 자본 이득은 소득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보고는 되는데, IRA가 10년 정도마다 자본 이득에 대한 연구를 할 뿐이다. 영국을 비롯한 많은 유럽 나라들은 아예 자본 이득에 대해 세금을 매기지 않으며 그래서 통계에 나타나지 않는다. 삐께띠의 작업의 중요한 결과들 가운데 하나는―이는 그의 책을 잘 읽는다면 알 수 있다―부의 격차가 소득의 격차보다 훨씬 더 크며 이는 부자들의 조세회피 때문이라는 점이다. 이는 기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제일 큰 기업들이 구글과 애플인데, 애플의 소득 전체가 미국이 아니라 아일랜드에서 이루어진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 바로 이런 점이 삐께띠에게는 빠져있다. 소득 통계에서 빠져 있는 또 하나는 재산이 실제로 범죄와 사기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이다. 삐께띠에게 좋은 점은 그가 프랑스 소설가들이나 영국 소설가들이 경제학보다 부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이나 발자끄의 19세기 소설들이 재산을 버는 방법은 결혼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러나 발자끄는 모든 큰 재산의 뒤에는 큰 절도가 있다는 말도 했다. 『포브스』(Forbes)에 그 목록이 나온 러시아, 중국, 우크라이나의 최고 부자들은 장담컨대 소득을 저축해서 이런 부를 만들지 않았다. 더 높은 소득을 번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기와 내부 뇌물수수로 재산을 훔쳤다. 미국에서 큰 재산이 형성되는 방식과 같은 방식이다. 마이어스(Gustavus Myers)가 쓴 『미국의 거대한 재산의 역사』(History of the Great American Fortunes)는 철도건설용으로 불하된 토지에서, 의회 의원에게 뇌물을 줌으로써 그리고 토지를 사유화함으로써 큰 재산이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큰 재산은 자연자원, 토지, 공적 도메인을 사유화함으로써 형성된다. 부와 소득의 집중이 실제로 일어나기 시작한 1980년 이후의 시기, 삐께띠가 보여주는 이 시기는 바로 새처, 레이건, 옐친이 대표하는 사유화의 시기이다.

삐께띠는 격심한 불평등의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토론을 출발시켰다. 이제 필요한 것은 어떻게 이런 불평등이 생겼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나를 설명하는 것이다. 단지 재산 일반에 세금을 매기는 해결책은 (이것은 실행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인데) 치는 면이 너무 넓은 해머와 같다. 특정 종류의 부, 특정 종류의 재산 형성이 약탈적인데, ‘경제적 렌트’(economic rent)―지대(land rent), 자연자원 렌트(natural resources rent), 독점 렌트(monopoly rent), 혹은 금융부문이 벌어들이는 종류의 돈―가 바로 그것이다.[J is for Junk Economics에서의 허드슨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경제적 렌트’는 시장가격이 본래적 경비(가치)를 넘어서는 초과분이다. 비용을 들이지 않고 얻는 불로소득은 모두 경제적 렌트이다.―정리자] 삐께띠의 책은 이것을 논의하지 않고 마지막에 부에 과세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할 뿐이다. 맞지만, 어떻게 과세를 할 것인가, 무엇이 경제를 성장하게 만들기에 최고로 좋은 종류의 세금인가는 미래의 또 하나의 책의 주제로 남아 있다. 삐께띠가 논의하지 않은 것 가운데 하나는, 재산을 형성하는 데서 부채가 하는 역할이다. 1980년 이래 형성되기 시작된 부의 대부분은 1980년 이후 이자율이 낮아지면서 증가된 부채 레버리지 때문에 생겼다. 점점 더 많은 은행신용이 투입되어 부동산 가격, 주식 가격, 증권 가격, 모든 종류의 가격을 올렸다. (미술품 가격 상승도 이와 병행했다.) 소득에 대한 부의 비율의 증가와 함께 소득에 대한 부채의 비율의 증가가 일어났다. 이 부채상태와 순가치(net worth)는 매우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가구들이 가지고 있는 주된 자산은 집인데, 이 집 또한 큰 액수가 대출 담보로 잡혀 있으며, 기본적으로 99%가 1%에게 이자를 지불한다. 내가 보기에 금융 부문에서 가속화되어 온 것은 1%가 99%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빚지게 만드는 능력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보라, 집을 사고, 교육을 받고, 기타 기본적인 생활필수품을 사는 데로 접근하는 지점을 우리가 통제한다. 우리가 빌려주지 않으면 당신들은 집을 사지 못하고 교육을 받지 못하고 심지어 차도 사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들에게 충분한 이자를 매길 것이다. 당신들이 버는 돈을 사실상 다 우리에게 이자로 지불하게 될 것이다. 이와 동일한 논리로 기업사냥꾼들은 기업을 공격하여 더 많은 돈을 배당금으로 지불하라고 말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사실상 실질적 부가 해체되고 가공자본(fictitious capital) 혹은 가공적 부(fictitious wealth)라고 불리던 것―모두 기본적으로 부채 레버리지를 통한 부이다―이 증가한다.

도금시대(Gilded Age)[원래 미국의 1880년대와 1890년대를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그 의미가 일반화되어 사업가들·은행가들(‘강도남작들’robber barons)이 경제를 망치면서 부를 축적하는 시대를 가리킨다.―정리자]가 막 시작되었다는 삐께띠의 결론은 맞지만 그의 논리는 내가 따르는 논리가 아니다. 그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말한 것의 정반대를 말하고 있다. 스미스는 가장 빨리 망해가는 나라에서 이자율이 가장 높은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즉 높은 이자율로 망할 수도 있고 낮은 이자율로 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삐께띠는 수익률(rate of return)을 말하는데,[삐께띠가 말하는 자본수익률(rate of return on capital)은 이윤, 배당금, 이자, 지대 및 기타 자본에서 나오는 소득을 말한다.―정리자] 미국 및 여러 나라들에서 가장 큰 부문은 부동산 부문이다. 1945년부터 지금까지를 보면 부동산 부문은 소득을 올리지 않는다. 억만장자들이 부동산을 개인적 자선으로 운영한다는 식이다. 소득을 올린다면 소득세를 내야 할 것이고 신고를 해야 할 것인데, 그들은 소득을 올리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거두어들이는 렌트(임대료)가 거의 모두 이자로 지불되거나 감가상각 비용으로 책정된다. 그래서 삐께띠가 준거하는 것은 ‘이자, 세금, 감가상각비, 무형자산상각비 차감 전 이익’(Earnings Before Interest, Tax, Depreciation, and Amortization)이 아니라 그 한 부분, 즉 세금 빼고 이자 빼고 감가상각비와 무형자산상각비를 빼고 신고된 수입이다. 부동산 다음으로 부를 많이 축적한 곳은 석유산업이다. 이들도 소득을 신고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세금을 면하게 해주는 감모공제(depletion allowance)가 있거나, 아니면 이들의 모든 소득은 해외에서, ‘편의치적선’(flags of convenience)[상선의 소유주가 자신의 나라와는 다른 나라에 선박을 등록하는 것―정리자] 나라들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자본 이득을 포함한 실질적 총수입은 삐께띠가 보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둘째, 가령 미국의 국민소득계정(National Income and Product Account : NIPA)을 보면 1년 전 미국의 모든 기업이윤의 40%가 은행들, 즉 금융부문에서 거둔 것이다. 이 수익은 기본적으로 ‘이전 지불’(transfer payment)이다. 성장에 실질적으로 보탬이 되지 않는다. 금융서비스는 서비스가 아니다. 노상강도가 현금자동인출기 앞에 있는 당신에게 다가와서 ‘돈을 내놓거나 목숨을 내놓아라’라고 말하는 것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는 실제로 당신의 돈을 빼앗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금융 활동과 부동산 투기가, 월가에, 은행 경영자들 및 기업경영자들에게 지불되는 이 모든 돈이 정말로 성장인지 아니면 가공자본의 형성과 병행하는 일종의 가공적 성장인지의 문제가 있다. 지금 통계는 점점 더 허구적인 성격을 띠어가고 있는데, 자신들의 소득에 세금이 매겨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에 엄청난 액수의 돈을 지불하는 기업 세금담당 회계사들에 의해 통계가 작성되고 있을 정도이다. 호주의 탄광 부문에서는 호주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이 1년에 수십억을 거두어들이면서도 자신이 소득을 한 푼도 벌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만들기 의해 많은 돈을 지불한다.

크루그먼(Paul Krugman)은 신고전주의 경제학자이다. ‘신고전주의’는 ‘반(反)고전주의’를 의미한다. 그는 경제적 렌트 같은 것이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는 또한 은행들이 신용을 창출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은행들이 하는 일은 저축을 대출하는 것이라고 한다. 은행들이 신용을 창출하거나 자산가격을 부풀리는 일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고 한다. 그래서 크루그먼은 대체로 우파 쪽에 의해서 그들이 총애하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찬양된다. 그가 경제를 이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했다면, 그는 노벨상을 타지 못했을 것이다. 노벨상은 경제적 렌트 같은 것이 없고 불로소득 같은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상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크루그먼은 회사의 경영자들이 훨씬 더 많이 받고 훨씬 더 많은 소득을 버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심지어 통계에 대해서도 틀렸다. 그가 전문적인 은행 로비스트임을 기억하라. 그는 은행에서 돈을 받는다. 그는 은행들을 규제하려는 정부에 대항하는 싸움에 은행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아이슬란드로 갔다. 은행들이 그를 좋아하는 것은 물론 그가 은행의 로비스트이기 때문이다. 그가 지적하는 월가의 소득을 보자. 미국의 조세법 아래에서는 월가의 소득은 실질적으로 일을 해서 벌어들인 소득이 아니다. 그들은 스톡옵션과 증권투기로 대부분의 돈을 번다. 이는 자본 이득으로 간주되며 정상적인 소득처럼 과세되지 않고 훨씬 더 낮게 과세된다. 이는 가공적인 관점, 무엇이 소득이고 무엇이 소득이 아닌가를 회계사의 눈으로 보는 관점이다. 세금담당 회계사들은 정부에 엄청난 돈을 먹여 납세(소득세)신고서의 범주들을 왜곡하고 마치 부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금융 형태의 부를 가시적인 부동산과 대조적으로 비가시적 부라고 부른다. 부유한 자들의 생각은 그들의 부를 비가시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만일 눈에 뜨인다면 세금이 매겨질 것이고 사람들의 원망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삐께띠가 한 것은 이 부를 가시화한 것이다. 적어도 그는 부 통계에 의해 ‘보라, 저기 부가 있고 우리는 그것을 측정할 수 있으며 우리가 얼마나 불평등한지를 볼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어떻게 이 부를 획득했는가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이 부에 대응하는 몫이 소득에서 발견되는 정도를 반영하는 소득세 명세서뿐이다. 이는 마치, 열쇠를 떨어뜨렸는데 떨어뜨린 곳을 보지 않고 빛이 있는 곳을 보는 것과 같다. 그가 작업할 통계자료는 소득세 기록뿐이며 그는 기술적으로 엄청난 작업을 해놓았다.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작업이다. 그러나 그 통계를 다시 처리하여 풀어내고 무엇이 그 뒤의 실제 현실인지를 찾아내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 월가와 금융 경영자들로 하여금 소득을 거두는 것을 가능하게 한 자본 이득이 무엇인지를 말해야 한다. 그들의 계약은 매우 분명하다. 기업경영자의 소득은 주식 가격에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보너스를 받거나 아니면 스톡옵션을 받는다. 만일 그들이 주식가격에 기반을 둔 보너스를 받는다면 그들은 기업의 수입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은 기업의 소득을 받고 새로운 장비와 설비에 투자하는 대신에, 새로운 시장을 개발하는 대신에, 더 많이 생산하는 대신에, 자본 투자 대신에 단지 자기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는 데 돈을 사용할 것이다. 주식을 매입하면 주식 가격이 올라가고 그들은 ‘보라, 나의 회사 경영이 어떻게 주식가격을 올렸는지를, 그러니 나에게 더 높은 보수와 스톡옵션과 보너스를 달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자본 이득, 이 공짜 점심(불로소득)에 과세하지 못하는 것은 경제의 왜곡을 낳고, 이것이 삐께띠가 다룬 통계를 산출한다.

▷ [삐께띠의 책이 맑스의 『자본론』을 계승한 것(“a retake of Marx’s Das Kapital”)이라는 견해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홍보상으로는 그렇게 부를 수 있으나 이 책은 맑스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맑스의 『자본론』은 감가상각(depreciation)에 기반을 둔다. 사유화와 사기를 의미하는 ‘시초 축적’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사람이 맑스이다. 삐께띠의 분석은 (그의 부모가 트로츠끼주의자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맑스와는 완전히 다르다.

[① 감가상각은 자본 투자, 건무, 장비 기술에 들어가는 비용을 다시 채우기 위해서 신고되는, 소득에서 공제하는 회계항목이다. 이는 원래 투자된 자본의 양을 다시 회수하는 것으로서 투자된 자본에 추가되는 이윤과는 다르다. 허드슨의 책 J is for Junk Economics의 ‘감가상각’ 항목의 한 대목은 이렇다. “감가상각은 칼 맑스에 의해 처음 가치이론에 추가되었다. 맑스는 께네Quenay의 경제표를 비판하면서 께네가 곡물 가운데 종자로 따로 떼어 자본비축고를 유지하고 다음 해 파종에 쓸 몫을 무시했음을 지적했다.” ② 흥미롭게도 허드슨의 아버지도 트로츠끼주의자이며, 허드슨이 태어난 미니애폴리스는 당시 미국 유일의 트로츠끼주의 도시였다.― 정리자]

▷ [맑스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적 법칙이 이윤율 저하 경향이라는 말에 대해서]

그보다 더 오해된 것은 없다. 맑스가 말한 것은 자본이 생산을 기계화함으로써 노동에 비해 증가할수록 이윤보다는 감가상각의 형태로 회수되는 자본이 양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맑스는 비용회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중농주의자들과 께네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께네의 경제표는 경제에서 소득의 순환, 지주들이 받은 지대의 순환을 말한다. 지주들은 일부는 소비하고 일부는 지출하는데, 여기서 빠진 것은 지대소득에서 새 종자 곡물을 사는 데 지출되어야 하는 양이다. 맑스는, 공장제 생산을 하는 산업자본주의에서는 기계가 있는 공장을 짓는 데 백만 달러를 쓰고 그것으로 이윤을 창출할 것이라면 투자된 백만 달러에 대한 이윤(5%, 즉 1년에 5만이라고 치자)만 얻는 것이 아니라 백만 달러도 회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공장과 장비가 마모되거나 노후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정되는 가격에는 이윤분만이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투자된 자본의 회수분도 포함된다. 그래서 맑스가 이윤율 저하를 설명하는 대목을 직접 읽지 않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잘못된 이해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나의 책 『거품과 그 너머』(Bubble and Beyond, 2012)에서 설명했다. 그런데 맑스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맑스에 대해서, 그리고 이윤율 저하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그냥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할 단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

[여기서 허드슨이 말하는 것은 경제학이라는 전문분야의 틀 내에서의 것이다. 여기에 추가되어야 할 것이 있다. 맑스는 『자본론』 3권 14장 「법칙 그 자체」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반적 이윤율의 점진적인 저하경향은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의 점진적 발달의 표현―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특유한 표현―에 불과하다.” 이윤율 저하 경향이란 생산자의 생산능력이 높아지는 과정의 자본주의적 표현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생산자의 생산능력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서는 소외의 형태로 즉 자본의 힘으로 나타나고, 이것이 자본(화폐자본)의 물신화를 낳는다. 자본주의 너머의 세계에서는 생산자의 생산능력이 높아지는 과정이 이와는 다른 식으로 표현될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아직 자본을 넘어가는 과정이 현실적 과제로서 주어져 있는데, 맑스가 늘 말한 대로 우리로 하여금 자본을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게 할 조건도 생산자의 높아진 생산 능력 이외의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맑스는 ‘사회적 개인’과 ‘일반지성’을 말하는데, 전자는 생산능력이 높아진 주체성(생산자)의 특성을 가리키고 후자는 그 능력이 기계(맑스의 시대에는 컴퓨터가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디지털 장비들이 여기서 말하는 ‘기계’의 주된 구성부분이 될 것이다)를 통해 구현되는 측면을 가리킨다. 이에 관해서는 네그리와 하트가 『다중』, 『공통체』등의 저작에서 이미 충분히 말해놓았다.―정리자]

[감가상각에는 과세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부동산의 경우에는 더 기괴하다. 미국에서는 부동산의 가치가 상승하는 동안에도 건물이 실제로 가치를 상실하는 척할 수 있다. 건물에 수명이 있어서 건물주가 자본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부동산(이는 실제로 토지를 의미한다)이 기계처럼 마모되거나 컴퓨터처럼 노후화되는 양 말이다. 이것은 말이 안 된다. 내가 사는 뉴욕시에는 건물이 오래될수록 더 가치가 있다. 닳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지관리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건물주들은 소득의 약 10%를 건물의 유지보수에 지출한다. 그런데 건물주들은 건물이 닳아 없어지는 양 감가상각을 적용하고 그 때문에 그들은 이윤을 버는 것이 아니라 자본을 회수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건물을 완전히 감가상각한 다음에 그것을 서로 팔거나 자신이 다시 사서 전체 과정을 다시 시작한다. 그래서 같은 건물이 계속해서 닳아 없어지는 양 계속해서 감각상각한다. 계속 교체되는 소유주들은 이에 대해 세금을 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 [허드슨이 이윤율 저하 경향이 부의 격차에 대한 분석으로서 아직도 타당하다고 보는 것 같다는 말에 대해]

맑스는 캐시플로(cash flow) 일부의 구성에 대해서 말했다. (캐시플로는 ‘이자, 세금, 감가상각비, 무형자산상각비 차감 전 이익’이다.) 캐시플로 내에서는 자본이 기계를 사용하여 더 자본 집약적이 되는 정도로 감가상각의 역할이 이윤에 대비하여 상승한다고 맑스는 말했다. 따라서 핵심은 자본의 회수와 노동고용 등에 지출된 것의 수익의 관계이다.[여기서 끊겨서 다소 불명확한데, “자본의 회수”라고 했을 때에는 불변자본의 회수로 이해하고, 노동고용 등에 지출된 것의 수익은 가변자본이 낳은 이익인 이윤을 포함한다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정리자]

 

① return of capital  자본의 회수  투자한 자본양이 회수되는 것. 부채의 경우라면 원금이 회수되는 것에 해당한다.
② return to capital  자본 수익 투자한 자본양보다 증가한 양. 부채의 경우라면 이자에 해당한다.
③ capital gains 자본 이득 ‘자본’(capital)이라는 말이 들어갔으나 사실은 생산에 자본으로서 관여하지 않은 자산의 가격이 오름으로써 얻은 이득을 가리킨다.
* 여기서 ‘자본’의 두 유형/두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생산과정에 투입되는 자본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과정에 개입하지 않고 증식되는 자본이다. 전자의 전형은 산업자본이고 후자의 전형은 대부자본이다. (산업자본도 화폐의 형태로 차입되므로 ‘화폐자본’이라는 말은 너무 넓다.) 흥미롭게도 위의 ‘자본 이득’의 경우처럼 ‘자본화’(capitalization)도 생산과는 무관한 과정을 나타낸다. 이는 이미 맑스의 『자본론』3권에 나온다. “가공자본의 형성은 자본화(capitalization)라고 불린다.(Die Bildung des fiktiven Kapitals nennt man kapitalisieren.) 모든 규칙적인 주기의 수입은, 평균이자율로 대출된 자본이 낳을 수입이라고 간주함으로써, 평균이자율을 기초로 자본화될 수 있다. (···) 이리하여 자본의 현실적인 가치증식 과정과의 모든 연관은 그 최후의 흔적까지 모두 없어지고, 자본은 자신의 힘에 의해 저절로 증식된다는 관념이 확고하게 된다.” 한 달에 2백만 원을 받는 노동자가 있고 당시 이자율이 5%라면 2백만 원을 이자로 계산했을 때 원금은 2백만 원에 20을 곱한 4천만 원이다. 이제 이 노동자는 4천만 원을 가진 자본가로 탈바꿈한다. 모든 개인을 기업가로 만드는 것은 오르도자유주의(독일에서 발생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사상)의 목표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우리 시대가 이런 ‘자본화’에 기반을 둔 사고가 만연되어 있고 ‘자본화’ 세력이 주된 정치적 권력을 가진 사회라면 이 점에 관한 한 우리 시대는 맑스가 본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자본’주의―가치증식(생산과정)으로부터 분리된 것―의 시대일 것이다. 허드슨이 일반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측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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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경제학


  • 저자 : Michael Hudson
  • 원문 : J is for Junk Economics : A Guide to Reality in an Age of Deception (2017)
  • 분류 : 일부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마이클 허드슨의 저서 J is for Junk Economics : A Guide to Reality in an Age of Deception (2017)에서 ‘쓰레기 경제학’(Junk Economics)을 다룬 부분을 몇 개 발취하여 그 내용을 옮기거나 정리한 것이다.

[서언 : 갈림길에 선 경제와 경제이론]

우리는 2008년의 경제 위기 시에 미국과 유럽이 경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들과 증권소유자들을 구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정부들이 구제금융과 ‘양적 완화’에 수조 달러를 지출하여 거대 채권자들과 투기자들을 악성 대출과 도박으로 손해를 입을 처지에서 구해주었지만, 공공 및 민영 기반시설은 붕괴되도록 방치되었고 중위임금(median wage, 근로자 임금 중간값)은 하강하고 있다. 연금 저축은 거덜이 났고 사회보장을 삭감하는 압박이 일고 있다.

‘쓰레기 경제학’(Junk Economics)이 이 모든 것의 커버스토리이다. 이 쓰레기 경제학은 자신이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면서 금융세력의 후원을 받아 소득과 부를 상층부에 몰아주는 식으로 재분배하며 19세기 고전경제학자들과 진보 시대(Progressive Era, 1890-1920)의 개혁가들이 주장한 정책들을 전도시키고 있다. 이 이데올로기는 진보적 과세는커녕 1%가 아니라 99%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옹호한다.

그 효과는 중산층을 부채에 빠뜨리면서 경제로부터 화폐가 빨려나가 1%에 흡수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생기는 긴축 상태가 공공 자산과 자연자원을 사유화하는 데 구실로 사용된다. (고전경제학자들은 이 공공 자산과 자연자원이 정부의 제대로 된 기능들을 운영하기 위한 조세기반을 제공하기를 바랐다.) 부채에 묶인 지방 및 일국 정부들은 채권자들에게 공공 기반시설을 팔아넘길 수밖에 없다.

이런 사유화의 핑계는 이것이 기본 서비스의 경비를 낮추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팔아넘겨진 공공 기반시설은 새로운 소유주들이 독점 가격을 매길 기회를 제공했으며 이는 제공 가능한 기본 서비스의 감소를 낳았다. 미국에서 강제적으로 사유화된 오바마케어(Obamacare)는 가구들의 예산을 쥐어짜내고 있으며, 다른 한편 영국에서는 사유화된 철도와 물이 가장 심한 사례이다.

오늘날 사회는 봉건제의 유산과 귀족들·은행업자들·독점가들의 세습적 특권들로부터 해방되어 약속된 풍요로운 여가 경제로 나아가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늘날의 금융 엘리트들은 사회를 희생시키면서 그들의 유서 깊은 ‘공짜 점심’(불로소득)을 증가시키기 위해 ‘쓰레기 경제학’을 장려하고 있다. 그들이 경제 일반에 창출하는 부채 간접비용은 한 세기 전에는 피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금융 계층은 빚을 지는 것이 마치 자산 가격을 부풀림으로써 경제를 풍요롭게 하는 양 미화했다. 임금, 이윤, 지대(임대료)는 기하학적으로 늘고 있는 이자를 지불하는 데로 들어간다. 한편 국가 통계는 사람들의 주의를, 부채 서비스가 어떻게 가구 및 사업 소득을 빨아들이고 있는지로부터 다른 데로 돌린다.

그 결과 나오는 금융 긴축 상태가 야기하는 고통은 결코 자연법칙의 결과가 아니며, 피해갈 수 있는 것이다. ‘자유 시장’이라는 고전적인 이상의 이러한 전도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이중어(Doublespeak)의 새로운 어휘를 통해 장려된다.[오웰의 『1984년』에서 ‘Newspeak’(신어)는 가상의 초국가 오세아니아Oceania의 공식 언어이다. ‘doublethink’(이중사고)와 합하여 이렇게 표현한 듯하다. ‘이중사고’는 서로 모순되는 것을 동시에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이다. ―정리자] 예를 들어 ‘개혁’이라는 말은 오늘날 사용되는 바로는 미국과 유럽의 부유한 중산층을 창출하는 것을 촉진했던 진보 시대의 개혁과 반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20세기를 위대하게 만들었던 것이 진보적 과세, (기본적인 경제적 서비스 비용을 낮추기 위한) 공공 기반시설 지출, 뉴딜 및 기타 (화폐와 금융을 약탈적 독점이 아니라 공공 유틸리티로 만드는) 입법이라는 점은 잊혀졌다.

더 현실에 기반을 둔 분석과 정책입안을 부활시키기 위해서 이 책은 경제학을 (그 어휘와 기본 개념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나의 온전한 학문분야로서 재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서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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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발췌 정리1]

「사기로서의 경제학」(“Economics as Fraud”)을 쓴 이래 나[허드슨]는 현실을 다루는 경제학과 ‘쓰레기 경제학’ 사이의 차이가 훨씬 광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새로운 글 「경제학 방법론은 이데올로기이며, 정책을 좌우한다」(“Economic Methodology is Ideology, and Dictates Policy”)는 어떻게 방법론이 내용을 결정하는지를 설명한다. 방법론이 오늘날의 주류가 규정하는 범위, 수학, 그리고 심지어는 통계조차도 만들어낸다. 쓰레기 경제학의 본질은 ‘경제’를 ‘시장’의 관점에서만 협소하게 개념화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현상유지를 의미할 뿐이다. 그 결과로 나오는 경제모델들은 오늘날의 자산소득자(rentier) 경제에서 부채가 가져오는 정치적·환경적·법적 파급효과들을 배제한다.

[기타 발췌 정리2]

쓰레기 경제학과 이 경제학이 사용하는 완곡어법 어휘들은 사람들의 주의를 원인으로부터 (따라서 필요한 치유책으로부터) 다른 데로 돌림으로써 사고의 도구들을 제한하는 것이 목적이다. 가령 낙수 이론은 현실을 숨기는 어휘로 짠 외투로 자산소득자의 기생적 존재를 가린다. 많은 채무자들의 삶은 그들의 피를 빨아먹는 드라큘라의 경제적 화신에 의해 장악되는 듯하다. 정치가들은 이주민들 또는 다른 소수민족들이 일자리를 뺏어간다고 비난한다. 그리고 로비스트들은 임금노동자들과 중산층에게 그들이 빚에 구속된 상태에 있는 것은 높은 주택비용, 모기지에 의해 금융을 제공받는 교육 및 생활, 학자금 융자, 신용카드 빚 때문이 아니라고 설득하려고 한다. 1%에게 높은 세금을 징수하고 사업체들을 ‘과도하게 규제한다’(특히 맑은 공기, 건강한 식품, 정직한 회계를 증진하기 위한 규제)는 비난이 정부에게 가해진다.

[기타 발췌 정리3]

기만을 핵심으로 하는 ‘쓰레기 경제학’은 진보 시대의 실질적인 개혁을 전도시켜 신자유주의적 협정을 법, 과제, 무역규칙에 대한 ‘개혁’으로서 내세운다. 이른바 ‘전문가들’(기업의 로비스트들)은 경제를 민주적 정부의 손으로부터 빼내서 세계의 금융 중심들에 안겨주는 것이 유일한 방안이고 그에 대한 합리적 대안은 없는 양 진보를 재정의한다. 이 이데올로기적인 신냉전(New Cold War)은 미국의 통제 아래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에 의해 집행된다. 월가와 그 위성(외곽) 금융기관들을 위하지 않는 정책들을 시행하는 나라들은 비(非)자유로 가는 길을, ‘타자’의 길을 좇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렇게 1세기 전에는 진보로 생각되었던 것을 전도시킨 것은 자유의 희화화이며 저열한 거짓말이다.

[기타 발췌 정리4 : ‘쓰레기 경제학항목의 설명]

‘쓰레기 경제학’이란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의 행위를 착취적인 제로섬 자산소득사냥 행위로서 서술하지 않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서술하기 위해서 증진시키는 홍보활동을 가리킨다. 쓰레기 경제학은 자산소득자들(rentiers)이 영웅으로 등장하는 유토피아적 평행우주에 적절한 전제들을 바탕으로 하는 일종의 공상과학소설이다. 좋은 소설이나 희곡에는 일관되게 행동하는 등장인물들이 나오지만, 이 유사과학의 기준은 단지 그 전제들의 내적 일관성이지 세계의 리얼리즘적 형상화가 아니다. 많은 가장 칭송받는 경제학자들은 가설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세계에 관해 선험적인 공리들로 논리적으로 사고한다. 금융 포퓰리즘의 ‘낙수’ 전략은, 상위 1%에게 유리한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나머지 99%에게 가장 좋다는 것을 대중에게 설득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려면 생산적 활동과 약탈 행동을 구분하는 자산소득(rent, 금리, 임대료, 지대)이라는 고전적 개념을 삭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카고학파의 ‘합리적 시장’ 이론이나 래퍼 곡선(Laffer Curve), 한계효용이론 같은 자유 시장 경제학은 단기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장기적인 것을 무시하고 개인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경제의 큰 그림을 무시한다. 부채는 나중보다는 지금 소비하고 싶어 하는 성급한 소비자들이, 또는 장기적인 자본투자를 위해 차입함으로서 이윤을 만들어내려는 사업가들이 맺는 계약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준거틀에는 하나의 경기 주기에서 다음 주기로 이전되는 부채의 상승하는 총액을 분석할 여지가 없다. 공공 기반시설 지출 또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 한다. 그래서 정부 차입은 단지 경제적 이익 없는 조세로서, 경제에 짐이 될 뿐인 것으로서 나타난다. 정부 지출은 단지 소비자물가를 상승시키는 것으로 간주된다. 고용을 증가시키거나 사업체와 가구들에게 기반시설 서비스의 경비를 낮추어 주는 것으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건전한 화폐’는 정부가 아니라 은행들에 의해서만 창출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전제들의 목표는 화폐 정책과 주류 경제사상을 장악하여 그것을 계급 전쟁(99%와의 싸움)의 무기로 삼는 것이다.

오류가 반복되는데도 성공이 널리 이루어진다면 그 뒤에는 항상 특수한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게 마련이다. 가장 넓게 보면 (맑스가 말했듯이) “과학적인 부르주아 경제학은 ··· 이제 더 이상 이런 혹은 저런 정리(theorem)가 참인가 아닌가를 묻지 않고, 자본에 유리한가 해로운가, 편한가 불편한가, 정치적으로 위험한가 아닌가만을 묻는다···. 사심 없는 탐구자 대신에 고용된 논객들이 들어섰다. 진정한 과학적 연구 대신에 현재의 상태를 옹호하려는 흑심과 사악한 의도가 들어섰다. ”[원주: Marx, “Afterword” to the 2nd German edition of Capital (Vol. I, [1873], London, 1954), p. 25.]




금융·보험·부동산 부문의 공생관계


  • 저자 : Michael Hudson
  • 원문 : The Bubble and Beyond : Fictitious Capital, Debt Deflation and Global Crisis (2012)
  • 분류 : 일부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정리자 설명]

아래는 마이클 허드슨의 책『거품과 그 너머 ― 가공자본, 부채 디플레이션 그리고 전지구적 위기』(The Bubble and Beyond : Fictitious Capital, Debt Deflation and Global Crisis) 3장의 한 절―“The Symbiosis between the Financial, Insurance and Real Estate (FIRE) Sectors”―의 내용을 상세히 정리한 것이다. 『부채 : 첫 5000년』(Debt: The First 5,000 Years)을 쓴 인류학자 그레이버(David Graeber)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추천한다.

살아있는 사람들 가운데 마이클 허드슨보다 나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책을 구성하는 예리하고 훌륭한 에세이들은 정말이지 경제학을 배우는 모든 1학년 학생들에게 과제로서 부여되어야 할 것들이다.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 경제학이 자신의 고결한 전통―허드슨이 여기서 그토록 훌륭하게 구현하는 바의 전통―을 배반하고 권력의 한갓 도구가 되었다는 사실의 궁극적 증거이다.

허드슨은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검색을 해보니 그의 존재를 인지한 두 블로그(, )가 잡힌다. (더 있을 수 있지만 계속 검색할 여유가 없다.) 그의 책은 한국어로 번역된 것이 없고, 신문들에서 그를 다룬 기사도 거의 없는 듯하다. 이는 어쩌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 맑스에서 정점에 이르는 고전경제학에 비탕을 두어 현재의 경제상황을 분석하는 경제학자는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이는 내가 과문한 탓일 수도 있지만,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자 지망생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면 『자본론』 같은 책은 읽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언론은 그 주요 광고주가 오늘 소개할 내용의 표적인 금융·보험·부동산 부문이니 허드슨을 소개하면 주요 광고주들의 ‘적’을 소개하는 셈이 된다. 사실 허드슨은 여러 경제 이론들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방대함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① 맑스에서 정점에 이른 고전경제학의 문제의식(경제 영역에서 봉건적 특권의 완전한 제거를 통한 자유로운 생산의 실현)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② 그러한 관점에서 현대 자본 세력의 가장 주도적인 부분이 어떻게 경제의 핵심인 생산활동에 해로운 짐이 되고 있는가를 폭로하고 ③ 아울러 그 해결책의 주요한 부분으로서 부채의 탕감이 불가피함을 (부채탕감의 역사에 대한 서술과 함께) 역설한다는 점이다. 사실 나는 허드슨이 맑스의 자본 분석에 기반을 둔다는 점이 마음에 들고 이에 덧붙여 그가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현실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에게서 많이 배우려고 하지만, 내가 공통적인 것(the common)에 초점을 두는 것과 달리 그는 공적인 것(the public)에 초점을 두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이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밖에 없지만, 사실 여기에는 여러 중요한 논점들이 포함된다.) 물론 그의 책들을 막 읽기 시작한 상태이기에 이런 생각은 현재로서는 어설픈 가설 상태의 것이고 일정한 양의 독서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조금이라도 확연해질 것이다. 혹 이러한 차이가 있더라도 그에게서 배울 것이 매우 많다는 점에는 변화가 없다. 그래서 (이전 블로그의 글에서도 시사했듯이) 허드슨의 저서, 인터뷰 가운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부 내용들을 틈틈이 소개할 생각이다.


금융·보험·부동산 부문의 공생관계

산업혁명이 동력을 얻자 경제학자들은 은행업과 보험이 산업 시스템에 흡수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경제 이론가들의 시선은 여전히 산업 테크놀로지와 혁신에 맞추어져 있고 인구는 농업에서 도시 산업으로 이동한다. 교과서들(과 로비스트들)은 은행가들이 산업자본가들에게 신용을 제공하여 새로운 공장을 짓고 노동자들을 고용하게 함으로써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한다. 대출은 자본 투자에 의해 생성되는 이윤에서 상환될 수 있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한다. 교과서의 이런 매력적인 이야기가 금융기관들에게 세제 혜택을 줘야 한다는 주장에 사용된다. 금융기관들의 신용창조가 경제적 복지를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이자는 (기업사냥꾼이 약탈적인 신용을 사용할 때조차도) 세금이 감면되어야 할 지출로 간주된다.

그런데 지난 세기에 걸쳐서 주로 금융·보험·부동산 부문 사이에 공생관계가 출현했다. 현대 경제에서는 부동산이 자산의 큰 비중을 차지해왔다. (그래서 대출의 담보물이 된다.) 미국과 영국의 상업은행 대출의 약 70%는 모기지 신용의 형태를 띤다. 미국 전체에서 부동산의 추정되는 시장가치는 모든 공장 및 장비의 감가상각된 가치를 초과한다. 은행의 대출담당 직원들은 그들이 일하는 은행의 대출 포트폴리오 증가치의 대부분이 모기지론으로 구성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런 신용이 급속히 창조되면 될수록 더 많은 기금이 새로운 모기지 금융으로 흘러들어가서 부동산의 가격을 올린다. 그리하여 적어도 단기나 중기적으로는 그러한 대출이 정당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금융화되는 재산 가운데 토지(장소의 가치)가 일반적으로 전체의 반 정도를 차지하며 그 재산이 팔렸을 경우 발생하는 자본 이득의 전체를 차지한다. 산업 기계가 손모될 경우 보통 기술 발전에 보조를 맞추려면 철거되어야 하기 때문에 감가상각액(자본감모충당금, capital consumption allowances)의 대부분은 부동산 부문에서 신고된다. 그런데 건물들은 계속적으로 감가상각될 수 있고, 따라서 그 소유주에게 (특히 이자가 소득에서 공제될 수 있는 만큼) 소득세 부담을 덜어준다. 그 결과 조세제도는 (특히 미국에서) 산업보다 부동산에 훨씬 더 유리하다.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기가 쉬우며 총수익(세후 소득 + 자본 이득)이 더 높다. [자본이득 capital gains : 구매한 자산의 가격이 올라서 얻은 이득. 허드슨의 J is for Junk Economics에 따르면 미국은 정치가들에게 돈을 대어 자본이득에 부과하는 세율을 일반적인 소득세의 반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정리자]

금융업은 세금징수원에게서 해방된 돈이 이자를 지불하는 데 쓰일 수 있음을 알고는 부동산에 대한 특별한 세금우대조치를 지지했다. 부동산 소유주들에 의한 정치후원금과 로비활동의 뒤를 금융 부문의 정치후원금과 로비활동이 이었으며, 이에 비하면 제조업 부문의 정치후원금과 로비활동은 초라했다. 그런데 부동산 부문이나 금융 부문은 (보험 산업의 지원을 받아서) 자본 이득에 부과되는 세금의 감면을 위해 로비를 하면서 이 이득이 혁신의 결과로서 산업에 귀속되는 양, 그리고 이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인 양 제시한다. 현실은 이와 다르다. 대부분의 자본 이득은 부동산에 귀속된다. 미국의 국민대차대조표를 보면 대략 1996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증권시장 수익이 처음으로 부동산 수익 증가분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마찬가지로 해로우며, 이러한 사태전개의 이유는 8장에서 설명된다.

왜 경제학자들은 사실을 말하지 않는가? 부(富)가 제조업의 성장보다 토지가격 이득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부동산은 결코 산업처럼 낭만적이지 않다는 사실에서 그 설명을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혁신가들과 창조자들을 찬양하고 지주들은 원망한다. 또한 은행가들과 보험회사들을 창조적이기보다 기생적이라는 이유로 원망한다. 모기지 대출의 성장으로 토지의 공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며, 토지의 장소 가치는 공공 기반시설 투자와 번영의 일반적 수준에 의해 창출된다는 명백한 사실도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든 재산을 담보로 하는 대출의 대부분은 이미 존재하는 토지와 건물을 담보로 한다. 부동산 대출의 성장분은 이렇듯 대출받는 사람들에게 서로 경쟁하여 가능한 한 많은 재산을 구입할 신용을 제공하는 데 들어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토지가격을 올린다. 그 결과는 산업의 붐이 아니라 거품인 것이다.

금융업의 대변인들은 이런 종류의 자산 기반 대출이 생산적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이 부동산 소유주들에게 이자를 지불할 수 있고 결국에는 자본 이득을 얻게 하는 재산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거대한 신용시장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미국 금융업의 로비스트들은 부동산업의 로비스트들과 손을 맞잡고 부동산에 대한 세제상의 우대조치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은행들은 세금으로 납부되지 않은 돈은 모두 이자를 갚는 데 들어가리라는 것을 안다. 개발자들이 대출자에게 내놓을 모기지의 크기를 놓고, 따라서 그들이 임대료(rent)로부터 은행에 갚을 모기지 부채서비스액[일정 시기 동안 이자 및 원금의 상환에 들어가는 돈의 액수―정리자]의 크기를 놓고 서로 경쟁을 한다. 이 경쟁이 계속되어 크기가 상승하면 모든 순 임대소득이 이자로 지불되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모기지 대출은 보통 재산 구매가격의 80%에서 100%를 (혹은 2008년 9월의 붕괴에 이르는 시기 동안의 거품경제에서 보듯이 이보다 훨씬 더 많이) 제공한다. 이는 자기자본에 비한 부채의 비율로서 매우 높은 것이다. 이러한 식의 모기지 부채의 점차적 증가가 1980년대에 기업사냥꾼들이 사용하는 정크본드 금융에 모델을 제공했으며, 영국, 유럽 대륙, 제3세계에서 공공 자산이 사유화되는 시류에 모델을 제공했다. 이미 존재하는 부동산·기업·공기업들을 그렇게 구매할 경우의 변별적 특징은 새로운 실질적인 투자를 창출하지 않고 새로운 대출이 추가된다는 것이다. 자본의 새로운 실질적 형성이 이루어지는 대신에 일반적으로 정리해고와 기업분할이 일어난다. 수입에서 이자와 분할상환금을 갚는 데 들어가는 액수가 최대일 경우 운영경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탈산업적’ 관행이 낙관론자들이 산업혁명이 시작할 때 그렸던 것과는 사뭇 다른 이러한 동학을 낳은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의 은행시스템은 저축한 돈을 새로운 생산수단의 기금으로 사용하지 않고 경제의 자산에 부채라는 짐을 지우고 있을 뿐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산업화 이전의 대출방식과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산업화 이전의 고리대금업이 개별 가문 대출자들에 의해 지배되었다면, 지금 새로운 산업화 이후의 부채 시스템은 대규모로, 기업 규모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출이 산업과 융합하여 금융 부문이 제조업체들을 지배하게 되었고 제조업체들을 마치 가능한 한 많은 임대소득을 짜내고 그 다음에는 자본 이득을 취하고 팔아버릴 부동산인 양 취급하게 된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과 2016년 미국 대선


  • 저자  :  Michael Hudson, Ross Ashcroft
  • 원문 : (대담)  Prof. Michael Hudson on Hillary Clinton and the US Elections (2016. 10. 27)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2016년 미국 대선을 주제로 한, 미국 경제학자 허드슨(Michael Hudson)과 레니게이든(Renegades Inc.)의 애쉬크로프트(Ross Ashcroft)의 대담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 대담은 선거 약 열흘 전에 있었다.

애쉬크로프트

두 명의 대선 후보 가운데 하나[힐러리 클린턴]는 월가, 특히 골드만삭스와 매우 친하고 다른 하나[트럼프]는 주요한 불로소득사냥꾼(rent-seeker)입니다. 둘 다 근본적으로 월가와 결탁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이것을 알죠?

허드슨

제 생각에 힐러리는 반대율이 79% 반대이고 트럼프는 81%입니다. 그러니 미국에서 가장 인기 없는 두 사람이 대선에서 붙은 것이죠. 미국인들은 ‘yes’, ‘yes, please’, ‘yes, thank you’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트럼프는 월가에 세금을 삭감해주겠다는 말을 하는 대신 자신이 몇 번 파산을 해봐서 은행을 다루는 법은 알므로 자기를 뽑아달라고 했다면 그것이 결정적인 한 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애쉬크로프트

[동의하면서] 선거전략가가 되셨어야 했네요.

허드슨

다만 트럼프를 위해서 일했다면 나에게 친구들이 별로 없을 것이고, 그가 오늘 나에게 동의해도 내일 어떨지는 알 수 없겠죠. 그것이 문제의 일부입니다. 그는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정당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애쉬크로프트

그래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가 더 낫다고 보시는 거죠? 그가 그런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요. 그가 똑똑하거나 영향력이 있는 유형이 아니라서요. 대통령직이 워낙 강력한 것이기 때문에요.

허드슨

힐러리도 트럼프도 선거의 관건은 ‘차악’(the lesser evil)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누가 더 큰 악일까요? 힐러리의 뒤에는 사람들이 떼로 몰려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소련에 군사적으로 적대적인 네오콘들이 있습니다. 트럼프는 누굴 임명해야 할지, 그와 함께 일할 사람들을 충분히 모을 수 있을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만일 미국의 방향이 군사적 적대에 기반을 두고 일극적 세계를 고수하는 것이라면 악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덜한 후보를 뽑아야 할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트럼프가 그런 ‘덜 악한’ 후보입니다. 그는 나르시시스트이고 정말이지 백지상태 같은 후보입니다. 차라리 뭐를 할지 모르는 후보를 뽑는 게 낫지요. 힐러리가 무엇을 할지는 우리가 이미 알잖아요. 그녀는 남편이 한 일을 이어서 할 것인데, 이 부부는 민주당을 타락시켰습니다. 이것이 바로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가 그녀에게 맞선 지점입니다.

애쉬크로프트

버니는 매우 잘 했죠?

허드슨

매우 잘 했죠. 그런데 그는 민주당이 월가와 루빈 패거리―이들은 정말로 마피아 같습니다―에 의해 전적으로 통제되는 한에서는 노동조합이나 소비자들 혹은 99%에 의한 진보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닫지 못 했습니다. 은행가 가운데 한 명도 감옥에 가는 일 없이 수십억 달러의 돈을 과징금으로 냈는데, 그것이 바로 범죄자들이 원하는 바입니다. 범죄자들이 사법체계를 장악하고 경찰력을 장악하여 판사들에게 뇌물을 먹이면 (1930년대에 헐리우드 영화들을 다 그랬죠), 그러면 범죄자들이 통제하는 것이 되고 금융 부문이 범죄화되는 것입니다. 나의 동료 빌 블랙(Bill Black, 캔자스시티 대학)이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거대 은행들(시티뱅크,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의 사업계획은 사기(fraud)라는 것을요. 사람들은 사기가 은행업의 관건이라고 말하기를 두려워합니다. 현실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무례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사람들은 바로 증거가 명백한 것을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죠.

애쉬크로프트

힐러리는 어떤 종류의 대통령이 될까요?

허드슨

독재자요. 네오콘들을 국무부장관에, 국방부에 임명하면서 적을 응징하는 원한에 찬 독재자가 될 겁니다. 월가 사람들을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에 기용할 것이고, 아주 명시적인 계급전쟁이 시작될 것입니다. 버핏(Warren Buffet)이 “계급 전쟁이 존재하며, 우리는 승리하고 있다”고 말한 바와 같아요.

애쉬크로프트

1%가 이기고 있다는 것이죠?

허드슨

그렇습니다. 그녀는 ‘국민 여러분, 여기는 볼 것이 없으니 계속 갑시다’라는 수사를 사용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경제는 계속 망가지고 그녀는 늘 그랬듯이 더욱 많은 이득을 올리고 더욱더 부유해지겠죠. 만일 그녀가 대통령이 된다면 클린턴재단의 범죄적 이해관계충돌(대가성 기부)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클린턴 부부에게 돈을 대준 기업들이 정책에 관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정치가를 살 돈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정책을 통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지금 선거와 정치는 사유화되고 시장경제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의 시민연합(Citizens United) 대 연방선거위원회(FEC) 건의 핵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애쉬크로프트

또 하나의 불로소득사냥 사례이군요?

허드슨

네, 정치 헌금, 그것이 가장 큰 불로소득사냥이지요. 기본적으로 1센트를 내면 1달러 가치를 가진 특권을 얻습니다. ‘rent’[불로소득>금리>지대]는 기본적으로 특권에 대한 지불입니다. 민간부문에서 창출된 특권에 대한 지불입니다. 발자끄(Balzac)가 말했듯이, 모든 거대한 재산은 거대한 절도에서 기원합니다.[발자끄의 『고리오 영감』(Le Père Goriot, 1835)에 나오는 말로서, 정확하게는 “명백한 원인이 없는 모든 거대한 재산의 비밀은 잊혀진 범죄이다”(Le secret des grandes fortunes sans cause apparente est un crime oublié)이다.―정리자] 시장의 일부가 되었기에 더 이상 거대한 절도로 간주되지 않는, 그저 세상 돌아가는 방식인 양 받아들여지는 재산이죠. 그래서 절도가 일어나면 클린턴 부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은 돌아가고, GDP는 성장하고 있어. 당신들 99%가 더 가난해지는 정도를 우리가 더 부자가 되어서 상쇄하고 있기 때문이지.”

애쉬크로프트

세계정치와 관련해서 힐러리가 사용한 몇몇 수사(修辭)에 대해서 말해보죠. 그리고 오랫동안 숙적이었던 미소관계에 대해 말해보죠. 오랫동안 곰을 자극했다는 명백한 사실, 그러한 적대관계,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5년 동안 어떻게 될지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무엇인가요?

허드슨

소련이 붕괴한 1991년 이후 러시아는 실제로 신자유주의적이 되었으며 뿌띤은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자입니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 사이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서 보는 것과 같은 경제 체제의 충돌은 없습니다. 소련에 대해서 미국이 못 마땅해 하는 것은, 미국이 소련의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살 수 없는 점, 소련의 자연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살 수 없는 점, 소련의 공익서비스(전기·가스·수도)에 대한 통제권을 사서 경제적 지대(economic rent)[‘economic rent’는 허드슨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가격에서 가치를 뺀 것(Price minus Value, P – V), 즉 시장가격에서 투입된 경비를 초과하는 부분이다. 땅과 관련된 ‘ground rent’는 ‘rent’의 한 형태일 뿐이므로 ‘rent’를 ‘지대’라고 옮기는 것은 맥락에 따라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불로소득’이라고 옮기기도 하고 또 맥락에 따라서는 ‘임대료’라고 옮기기도 하는데, 전체를 통괄할 수 있는 좋은 번역어가 필요하다.―정리자]를 부과할 수 없는 점, 그리하여 1994년에서 위기가 발생한 1998년까지처럼 계속적으로 러시아를 세계에서 가장 큰 증권시장 붐으로 만들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양국의 갈등은 경제적 체제 사이의 갈등이 아닙니다. 그저 미국이 다른 나라를 통제하고 싶은 것, 다른 나라를 달러의 영향권 내에 두고 싶은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만일 전 세계가 달러로 저축을 한다면, 이는 미국 재무부 채권을 구입함을 의미하고, 이는 다시 소련이나 중국 등이 경상수지 흑자를 미국 재무부에 빌려줌을 의미합니다. 미국은 이 돈을 사용하여 이 나라들을 군사적으로 포위하고 달러 시스템으로부터 빠져나가려고 하는 나라라면 어느 나라에게든 이라크나 리비아나 아프가니스탄에게 했던, 그리고 지금은 시리아에게 하는 행동을 하겠다고 위협할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빠져나가려고 한다면, 미국은 ‘우린 너희를 박살낼 수 있어’라고 말합니다. 군대가 직접 가는 것이 아니라 폭탄을 떨어뜨리고 금융을 사용하여 위협합니다. 핵심은 자연자원, 즉 물, 부동산, 공익서비스에 대한 통제권이지 경제 체제가 아닙니다.

애쉬크로프트

그럼 최종단계는 어떻게 될까요?

허드슨

하나는 세계가 붕괴할 때까지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세상을 붕괴시킬 정도의 가치가 있는 일인가요? 오바마는 비록 월가의 도구이지만 적어도 근동에서 싸우는 것이 세상을 붕괴시킬 정도의 가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힐러리는 근동에서의 싸우는 것이 세상을 붕괴시킬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을 내 마음대로 못 하면 세상을 석기시대로 되돌릴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끔찍하게 생각해야 하고, 세계에 대한 통제를 위해 미국이 나아가는 방향을 끔찍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는 다른 경제 철학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토지, 자연자원, 정부, 화폐시스템에 대한 소유로써 통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주류 언론은 이 맥락을 설명하는 일을 잘 못하고 있습니다.

애쉬크로프트

선생님의 그런 말을 들으면 많은 생각 있고 영민하며 국제주의적인 미국인들이 머리를 감싸 쥐고 이번 선거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또한 힐러리가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이 세계에서 더 인기를 잃을 상황에 대비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

허드슨

그 결과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voting with their backsides’[엉덩이로 투표하다→투표에 참가하지 않고 집에 있다―정리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선거마다 투표참가자수가 줄어왔습니다. 미국에는 제3의 당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투표하지 않는 것을 더 선호할 것입니다.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부동산과 독점에 이익을 둔 월가의 재정 지원을 받습니다. ‘yes’와 ‘yes, please’가 두 당의 이름입니다. 대안이 없는 것, 선택지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통제의 목적이며 ‘자유시장’의 핵심입니다. 정부가 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민중이 선택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1920년대에 비엔나의 노동운동 지도자들과 사회주의자들에 대해서 전쟁을 하고 암살을 행한 오스트리아 학파의 핵심도 이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노동운동 지도자들, 대학 교수들, 지식인들을 대량 학살한 칠레의 자유시장주의자들의 핵심입니다. 지금 미국은 기관총만 없을 뿐 상황은 똑같습니다. 실제적 대안은 없고 사실상 같은 두 차악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가상적 선택만 있기 때문입니다.




오바마는 미국 민중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 저자  :  Michael Hudson
  • 원문 : Junk Economics : A Guide to Reality in an Age of Deception (2018)
  • 분류 : 일부 내용 정리
  • 옮긴이 : 정백수
  • 설명 :아래는 2015년 9월 21일 카운터펀치(CounterPunch) 라디오에서 방송된, 에릭 드레이처(Eric Draitser)와 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의 인터뷰 중에서 오바마(Barack Obama)를 다루는 부분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 인터뷰는 마이클 허드슨의 저서 J is for Junk Economics: A Guide to Reality in an Age of Deception에도 수록되어 있다. 마이클은 ‘맑스주의 경제학자이고 맑스(그리고 맑스가 완성시켰다고 할 수 있는 고전경제학)의 자본 이론에 기반을 두면서도―그는 한 인터뷰에서 중국의 경제정책입안자들에게 맑스의 『자본론』2권과 3권을 읽을 것을 권유하기도 할 정도이다―신자유주의가 미국 경제를 지배하게 되는 과정의 한 가운데를 거쳐 온 경력(체이스맨해튼 은행, 아서앤더슨 회계법인 등)으로 인해서 금융세력(월가)이 지배하는 미국 신자유주의의 실상을 매우 잘 알고 있으며, 금융세력의 지배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그의 가장 핵심적인 현실진단은, 빚이 불어나는 속도가 경제성장의 속도를 능가하는 현재의 상태로는 미국의 경제가 붕괴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부채탕감이 필요하다고 본다. 앞으로 그의 핵심적인 생각들을 기회가 되는 대로 소개할 생각인데, 우선 오바마 부분을 소개하는 것은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오바마는 그의 실제 정체와는 정반대로, 즉 ‘서민에게 잘 한’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 의해 매개되는 대의민주주의라는 환경에서 이러한 기만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다.) 허드슨은 오바마가 자기를 뽑아준 유권자들에게는 부채를 탕감해주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실제로는 이 약속을 어기고 자신에게 돈을 대준 월가를 위해 일한 자임을 폭로한다. 허드슨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유도 (물론 그 이유 가운데 일부겠지만) 이것과 연관짓는다. 힐러리가 ‘나는 오바마의 셋째 임기를 하겠다, 차악(the lesser evil, 덜 나쁜 후보자)인 나를 뽑아달라’라고 유권자들에게 말했는데, 유권자들은 실제 차악인 트럼프를 뽑았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역사”(The History of Neoliberal Economics)라는 제목의 인터뷰의 말미에서 허드슨은 오바마를 이어받겠다는 힐러리가 차악이 아니라 “트럼프가 바로 차악이었음을 기억하세요”(Just remember that Trump was the lesser evil)라고 힘주어 반복한다. 힐러리와 트럼프가 맞붙은 대선에서 허드슨은 두 정당 모두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투표에 참가하지 않았다. 힐러리와 대선을 주제로 한 인터뷰에서 허드슨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정치와 선거는 지금 사유화되어 시장경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트럼프가 힐러리보다는 차악이라지만, 두 당이 근본적으로 똑같이 신자유주의에, 금융세력에게 포섭당한 상황에서 미국 민중은 과연 어디서 새로운 정치를 보아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의 상황은 과연 이것과 얼마나 다를까?

오바마가 루비노믹스 패거리를 위해 월가와 한통속으로서 한 선동가 역할

에릭 드레이처

2009년과 제너럴모터스의 붕괴를 돌이켜보면, 붕괴한 것은 제너럴모터스라는 자동차제조업이 아니었습니다. 그 금융 부문인 GMAC이 신용파산스왑(credit default swaps), 부채 담보부 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기타 이와 유사한 금융파생상품들로 빚을 내었다가 붕괴했던 것이죠. 그래서 오바마가 들어와서 자신이 “제너럴모터스를 구했다”고 주장했을 때, 이는 사실과 달랐습니다. 그는 제너럴모터스의 월가 부문을 위했던 것이죠.

마이클 허드슨

맞습니다. 그는 월가를 위한 대통령 후보였고 클린턴의 재무부장관이었던 루빈(Robert Rubin)이 그를 밀어주었습니다. 미국 경제정책은 기본적으로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와 시티그룹(Citigroup)에 의해 운영되었습니다.

드레이처

이는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후 첫 5일 동안에 입증되었습니다. 그는 골드만삭스와 제이피모건(JP Morgan),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시티(Citi)의 CEO 등속을 초청했습니다. 이 내용은 책들, 『뉴요커』(The New Yorker)지 및 기타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바마는 이들에게 ‘내가 있으니 걱정마시오’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허드슨

써스킨드(Ron Suskind)가 이 일에 대해 썼습니다. 그는 오바마가 “당신들과 쇠스랑들[일반 국민을 건초 등을 집어올리는 쇠스랑에 비유한 것―정리자] 사이에는 나밖에 없습니다. 내가 그들을 속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라고 말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 모임의 흔적은 백악관 웹싸이트에서 재빨리 지워졌지만, 써스킨드의 책에는 있습니다. 오바마가 세기의 대 선동가 가운데 하나로서 출현한 것입니다.

드레이처

그의 정책과 행동이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행동이 필요했던 위기의 순간에 대통령이 되었는데, 올바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월가가 원하는 바를 행했습니다. 그는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과 구제금융 등을 옹호했습니다. 이는 민주당원들이 그들의 대화에서는 피하고자 하는 어떤 것입니다.

허드슨

바로 그 점이 중요합니다. 이는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이중사고’(doublethink)에 기반을 둔 수사(修辭)입니다. 그는 ‘희망과 변화’의 후보로 출마했는데, 그가 실제로 한 역할을 희망을 부수고 변화를 막는 것이었습니다. 약속한 대로 부채를 탕감하지 않고 그대로 놔둠으로써 그는 미국 경제의 파탄을 주관했습니다. 경제를 희생한대가로 은행, 증권소유자들이 구제되었습니다.

오바마는 시카고에서 거대 부동산 세력을 위해 지역 조직가로 일할 때에도 이와 유사한 짓을 해서 가난한 흑인 동네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역할은 그 지역에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이루는 것이었고 고소득 흑인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재산가격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프리츠커(Pritzker) 가는 수십억 달러를 벌었습니다. 그래서 페니 프리츠커(Penny Pritzker)가 그를 루빈에게 소개했던 것입니다. 오바마는 민주당에서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미국의 31대 대통령)보다 왼쪽에 있는 민주당원들을 죄다 당에서 몰아내기 위해 루빈에게 자신의 내각을 임명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것이 분명합니다. 오바마의 내각은 첫 수석보좌관은 사악한 반(反)노동론자 이매뉴얼(Rahm Emanuel, 현재 시카고의 시장입니다)이었습니다. 오바마는 민주당을 오른쪽으로 밀어붙였고, 공화당은 오바마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면서도 여전히 ‘차악’이 될 수 있는 큰 여지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트럼프 같은 사람이 자기는 데니스 쿠시니치(Dennis Kucinich, 민주당에서 버니 쌘더스Bernie Sanders와 함께 가장 진보적으로 알려진 인물)가 찬성하는 것, 즉 단일보험자 건강보험(single payer healthcare program)을 찬성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바마는 이에 맹렬히 반대했고 제약 및 건강보험 부문의 로비스트들을 밀어주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유권자들로 하여금 그가 그들의 편이라고 믿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사실 그는 그의 선거운동에 돈을 댄 월가의 특정 세력을 옹호하고 있는데 말이죠.

드레이처

맞습니다. 말 그대로 오바마가 행동을 취한 모든 곳에서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소위 오바마케어(이는 정말이지 보험업에는 큰 혜택이죠)를 옹호하는 것에서부터 교육의 사유화, 부동산 등에 이르기까지요. 말 그대로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오바마는 금융자본의 하인이지 민중의 하인이 아닙니다. 이것이 유권자들을 월가에 가져다 바치는 민주당의 현재의 실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