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디지털혁명에서의 생존과 번영2

  • 저자  : Neil Gershenfeld, Alan Gershenfeld, Joel Cutcher-Gershenfeld

  • 원문 : Designing Reality: How to Survive and Thrive in the Third Digital Revolution(2018)의 서설(Introduction) 
  • 분류 : 일부 내용정리
  • 정리자 : 민서

3차 디지털혁명에서의 생존과 번영2

 

디지털 제작의 힘과 전망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것은 3차 디지털 혁명에 동력을 공급하는 테크놀로지를 이해하는 것과 테크놀로지와 함께 진화해야 하는 사회체계를 향상시키는 것이다.

 

저자들 가운데 테크놀로지를 이해하도록 해주는 길잡이는 닐 거션펠드이다. 닐은 20년 동안 디지털 제작의 선구자로 일해오고 있으며 코앞에 와있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미래를 들여다보는 일에서 업적을 가지고 있다. 그는 『생각하는 사물』(When Things Start to Think, 1999)에서 사물인터넷으로 알려지게 된 것을 미리 내다보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 기여했으며 『팹』(Fab, 2005)에서는 팹랩들과 메이커 운동들(maker movements)의 출현을 설명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디지털 제작의 힘과 전망을 소개했다.

 

『현실을 설계하기』에서 닐은 이 추세가 어떻게 3차 디지털 혁명으로 이어졌는지를, 이 추세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를, 그리고 진화하는 연구 로드맵의 미래에서 이 추세가 어떻게 보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사물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소재의 짜임새를 디지털화한다면, 『스타트렉』식의 복제기(물질재조합장치) 같은 것도 가능함을 보여준다.

 

닐은 팹랩 운동의 우연한 기원 이야기로 1장을 시작한다. 그런 다음 그는 공동체 팹랩들이 전 지구적 네트워크 전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방식을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오늘날의 디지털 제작 과정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미 힘을 부여하고 있는지를 부각시킨다. 노르웨이 북쪽 끝에서 아프리카 남쪽 끝까지, 시골 마을에서 불규칙하게 확대되는 도시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에 기반을 둔 팹랩들은 혁신을 분출시켰고 디지털 제작의 힘과 잠재력의 초기 징후들을 제시했다.

 

3장에서 닐은 3차 디지털 혁명의 핵심을 이루는 과학적 토대의 역사를 현재의 시점에서 탐구한다. 그는 이 토대가 어떻게 생명이 분자 제작을 위한 기계를 발전시킨 40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지를 설명하고, 그 바탕에 있는 신뢰성, 모듈방식, 지역성 및 가역성이라는 원칙이 어떻게 디지털 통신기술, 컴퓨팅 및 제작을 통합하는 핵심적인 아이디어로 기여하는지를 설명한다. 그는 테크놀로지가 그 최종 형태에 도달하기 훨씬 전에 그것이 함축하는 바를 포착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강조한다.

 

닐은 이 3장에서 라스의 법칙(Lass’ Law)을 소개하는 데 이것은 디지털 제작에 적용되는 무어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칙의 이름은 셰리 라시터(Sherry Lassiter, 일명 ‘Lass’)에게서 온 것이다. 선도적인 <팹 재단>(팹랩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과 함께 라시터는 <비트와 원자를 위한 센터>의 지역사회봉사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팹랩 요청서들의 더미가 커져가는 속도를 보고 팹랩의 수가 1년 반마다 대략 두 배가 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팹』을 쓸 때 닐은 이런 급격한 성장을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 당시 <비트와 원자를 위한 센터>는 몇 개 안되는 최초의 팹랩들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 닐에게 2003년은 팹랩의 시작점이고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 팹랩들이 수는 두 배가 되었다. 이제 라스의 법칙을 적용하면 향후 10년 정도에 걸쳐 100만 개의 팹랩에 해당하는 능력이, 그리고 그 다음 10년에 걸쳐 10억 개의 팹랩에 해당하는 능력이 생성됨을 의미한다. 공간을 채우는 10억 개의 시설이 들어선다는 말이 아니다. 테크놀로지의 융합, 접근성 및 범위에서의 진전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규모가 커지면서 중요해진 것은 오늘날 존재하는 바와 같은 팹랩이 아니라 물리적 형태를 제작하고 그 기능을 프로그램하는 능력이다.

 

닐은 팹랩에서 현재 사용하는 도구들의 목록과 그 도구들에 대한 설명으로 5장을 시작한다. 그런 다음 그는 다음과 같이 뚜렷이 구분되는 4단계를 개관한다. ① 공동체 제작(기계를 통제하는 컴퓨터가 추동함) ② 개인 제작(기계를 만들 수 있는 기계에 바탕을 둠) ③ 보편적 제작(디지털 재료로의 이행을 표시함) ④ 유비쿼터스 제작(재료가 프로그램 가능함).

 

그런데 3차 디지털 혁명의 핵심요소들이 랩에서 등장해서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우리는 이 영향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회 시스템이 3차 디지털 혁명을 가속화하는 기술과 함께 효과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도록 안내하는 길잡이는 조엘과 앨런이다. 조엘과 앨런은 첫 번째 랩을 시작한 이후 팹랩 운동에서 닐과 함께하고 있다. 조엘은 일리노이 주 섐페인 어배너에서 팹랩을 시작하는 것을 도왔고 팹 네트워크를 가로질러 새로운 이해관계자 연대 방법을 적용하는 것을 주도했다. 앨런은 팹랩에 맞는 지속가능한 모형을 연구했고 그가 설립한 <이라인 미디어>는 <팹재단> 및 <비트와 원자를 위한 센터>와 협력해서 미국의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의 자금지원을 받아 디지털 제작의 미래를 탐구하는 비디오 게임을 작업했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할 때 조엘과 앨런은 전 세계 팹랩들을 방문했고 수십 명의 팹 선구자들을 인터뷰했으며 수백 명의 이해관계자들을 조사했다.

 

닐은 테크놀로지 로드맵을 연구하고 테크놀로지를 활용할 만한 도구와 기술들을 제안한다. 조엘과 앨런은 사회적 로드맵을 연구하고 사회 시스템과 기술 시스템이 함께 진화할 수 있게 하는 방법과 사고방식을 제안한다. 2장에서 조엘과 앨런도 현재 구축된 전 지구적인 팹랩의 네트워크를 관찰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그러나 닐과 다르게 그들은 힘을 북돋고 즐거움을 주는 측면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팹랩 네트워크에 스며드는 긴장과 문제들도 부각시킨다. 개별 제작의 전망과 자신이 소비하는 것을 제작하는 개인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제작이 대부분 사람들에게 현실이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팹에의 접근, 팹 리터러시 및 진정으로 민주화된 기술을 보장하는 생태계의 양성을 중심으로 하는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 팹 생태계 도처에 있는 분리현상들을 관찰하는 것은 그 바탕에 함입되어 있는 전제를 그리고 상충하는 가치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을 제공한다. 현재의 작업흐름을 완전히 익히는 데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오늘날 팹랩의 혜택들은 결과보다는 제작과정에서 나온다. 앞으로 디지털 제작이 우리가 소비하는 것을 만드는 데로 나아가려면 결과에 비중을 더 두는 방향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4장에서 앨런과 조엘은 어떻게 무어의 법칙이 기술적 구축물 못지않게 사회적 구축물인지를 강조한다. 무어의 법칙은 결코 물리학 법칙이 아니며 관찰의 기록인데, 이것이 회사를 위한 핵심 사업전략이 되고 산업의 벤치마크가 되며 마지막으로 더 좋고 더 빠르고 더 값싼 디지털 기술을 활성화하는 틀이 된 것이다. 4장은 사회적인 변화와 기술적인 변화의 상호교직이 새롭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런데 사회과학은 테크놀로지에 대한 반응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지배적인 관행은 테크놀로지의 공동창출보다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찰이다. 보다 진취적인 입장 취하기는 개인들·조직들·제도들이 변화의 속도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긍정적인 사회변화를 위해서는 속도 제한장치와 속도 가속장치가 핵심적인 역할들을 할 것이며, 기술적 체계와 사회적 체계를 효과적으로 함께 진화시키기 위해 디지털 플랫폼과 새로 출현하는 생태계가 가진 힘을 이용하는 데 있어서는 1, 2차 디지털 혁명에서 배운 교훈들을 상기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조엘과 앨런은 6장에서 디지털 제작의 미래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작업을 구체적으로 안내한다. 그들은 다섯 대륙의 팹 선구자들과 공동으로 만들어낸 야심적인 여덟 개의 시나리오를 설명한다. 이 시나리오에서 사회적 체계와 기술적 체계는 함께 진화한다. 미래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미래를 위한 심상지도(mental maps, 인지지도)만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심상지도가 필요하다. 이 더 나은 미래를 현실로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기 위해 조엘과 앨런은, 모든 사람이 3차 디지털 혁명에서 의미•목적•존엄성을 찾을 수 있도록 새로운 사고방식을 촉진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적용하는 틀을 제안하고 있다.

 

『현실을 설계하기』의 세 저자들은 3차 디지털 혁명에 과학•테크놀로지•사회과학•인문과학의 관점을 적용한다. 각 저자는 책에 상이한 렌즈를 갖다 댄다. 각 저자의 렌즈를 통해 어떤 것은 명확해지고 다른 어떤 것은 불분명해진다. 이 책을 쓰기 위해 함께 모였을 때 일치한 의견들보다 일치하지 않은 의견들이 훨씬 더 중요했다. 서로 다른 분야들이나 영역들이 집단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복잡하고 급속히 바뀌는 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을 때면 언제나 그렇다.

 

지금 우리는 가능성 높은 궤적들을 예견할 수 있으며, 아직 시기가 일러서 우리가 후회할 방식으로 테크놀로지가 우리를 형성하기 전에 우리가 테크놀로지의 형성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독특한 역사적 순간에 서있다. 3차 디지털 혁명의 임팩트는 1, 2차 디지털 혁명의 임팩트보다 크지는 않더라도 그 만큼은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방식의 심장부로 파고드는 수많은 새로운 기회 및 도전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애리조나 주립 대학의 리터러시 학자 제임스 폴 기(James Paul Gee)는 자신의 논문 「리터러시: 글쓰기에서 패빙까지」(“Literacy: From Writing to Fabbing”)에서 이 기회와 도전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팹은 우리가 현재 겪는 것보다 한층 더 심한 불평등의 세계, 다시 말해 몇 명만이 아이디어를 비트로 바꾸고 다시 비트를 원자로 바꾸거나 그 반대로 원자에서 비트를 거쳐 아이디어로 나아가는 과정을 행하는 연금술에 참여하는 세계를 창출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질료—물건들, 세포들, 재료들—를 단지 몇 명이 소유하고 사용하는 세계에 살게 될 것이다. 팹은 새로운 리터러시이고 우리는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되어 갈지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특별하고 어떤 의미에서 결정적인 것이다.

 

우리 중 몇 명이 호모 파베르가 될 것인가? 인간은 항상 최고의 도구 제작자였다. 곧 모든 사람이 세계를 만드는 도구를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도구의 가격은 저렴해 질 것이다. 우리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고자 한다면 말이다. 우리 중 몇 명 혹은 대부분 혹은 모두가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신과 같은 창조자가 될 때, 우리는 하나의 종으로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더 나쁜 세상을 만들 것인가? 팹과 리터러시의 관계는 불과 인간발전의 관계와 같다. 다시 말해 불은 길을 밝힐 수도 있고 태워 버릴 수 있는 도구이다.

 

불이 길을 밝히는 쪽으로 이용되도록 영향을 미칠 힘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디지털 제작이 민주화되면서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비트를 지렛대로 삼아 원자를 능란하게 다루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비유적으로나 말 그대로나 현실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3차 디지털혁명에서의 생존과 번영1

  • 저자  : Neil Gershenfeld((닐 거션펠드(Neil Gershenfeld) : MIT의 <비트와 원자를 위한 센터>(Center for Bits and Atoms, CBA)의 책임자)), Alan Gershenfeld((앨런 거션펠드(Alan Gershenfeld) : <이라인 미디어>(E-Line Media)의 대표이자 공동 설립자)), and Joel Cutcher-Gershenfeld((조엘 거션펠드(Joel Cutcher-Gershenfeld) : 브랜다이스 대학(Brandeis University)의 사회정책과 경영을 위한 헬러 대학원(Heller School for Social Policy and Management) 교수이며 <노동과 고용 관계 협회>(Labor and Employment Relations Association)의 회장을 역임))

  • 원문 : Designing Reality: How to Survive and Thrive in the Third Digital Revolution(2018)의 서설(Introduction) 
  • 분류 : 일부 내용정리
  • 정리자 : 민서

3차 디지털혁명에서의 생존과 번영

 

지난 반세기에 걸쳐 두 개의 디지털 혁명이 일어났다. 1차 디지털 혁명은 통신 분야에서 일어났으며 아날로그 전화에서 인터넷으로의 이행을 가져왔다. 2차 디지털 혁명은 컴퓨팅 분야에서 일어났으며 우리에게 개인용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가져다주었다. 현재 무어의 법칙(Moore’s Law)으로 알려진 무어의 예측―컴퓨팅 성능이 앞으로 10년 동안 계속해서 두 배로 증가한다―은 그가 처음 예상했던 10년 동안만 지속된 것이 아니라 50년 동안 유지되었다. 그리고 컴퓨터는 이제 1965년의 컴퓨터보다 10억 배가량 강력하고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으며 팔목에 찰 수도 있다.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는 기하급수적인 속도를 따라 잡으려는 노력은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크게 뒤쳐져 있다. 고든 무어의 글이 출판된 지 반세기를 넘긴 오늘날에도 지구의 절반이 넘는 지역에서 아직도 인터넷 접속이 전혀 불가능하며 이에 더하여 수십억의 사람들이 제한되거나 신뢰할 수 없는 접속을 한다. 전 세계 많은 곳에서 (디지털 공명실과 ‘항상 대기중’인 소셜미디어에 추동된) 심화되는 소득•부의 불평등, 기술발전으로 인한 비고용, 그리고 사회적 양극화가 결합되어 사회의 짜임새 자체를 찢어발기고 있다.

 

1, 2차 디지털 혁명의 부정적인 측면은 단순히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이끈 것도 아니었다. 초기에 내려진 (혹은 내려지지 않은) 결정과 정해진 (혹은 정해지지 않은) 우선하는 것들이 테크놀로지가 개발되고 그 테크놀로지가 시장에 도입되면서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새로운 지평을 여는 디지털 통신 능력을 구축했지만 시민담론을 강화할 수 있는 문화적 규범, 피드백 루프 및 알고리즘을 그 안에 구축해 놓지는 못했다. 우리는 엄청나게 효율적인 새로운 전자상거래 모형은 창출했지만 사생활과 안전에 새로운 위협을 도입하기도 했다. 테크놀로지 때문에 사라진 일자리의 충격과 싸우면서도 우리는 디지털 자동화로 가능해진 진전을 중시한다.

 

1, 2차 디지털 혁명의 모든 부정적인 결과를 예견하고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물론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개인들, 조직들, 제도들이 테크놀로지와의 동반 진화를 촉진하는 것을 중요시하게 됨으로써 우리가 적극적으로 가치를 창출하고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면서 생겨나는 피해를 완화시킬 커다란 기회들을 놓쳐 버렸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온다. 이 기회는 3차 디지털 혁명, 즉 제작 영역에서 생긴다.

 

3차 디지털 혁명은 비트를 기반으로 하는 가상세계의 프로그램화 가능성을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세계로 가져옴으로써 1, 2차 혁명을 완성한다. 이 물질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 엄연히 있으므로 3차 디지털 혁명이 미치는 영향은 이전 혁명들보다 훨씬 더 클지도 모른다. 이 혁명은 여전히 근본적으로 디지털 과학 위에 구축된다. 다만 이제 그것은 비트와 원자 모두가 급격한 속도로 처리될 수 있게 해준다. 통신기술과 컴퓨팅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옮겨가고 그 결과 개인용 컴퓨터, 모바일폰 및 인터넷이 생겨나면서, 제작의 디지털화는 수요가 생길 때마다 즉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마다 언제 어디서나 개인과 공동체가 제품을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개별 제작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초기 메인프레임 컴퓨터와 매우 유사하게, 오늘날 대부분의 본격적인 디지털 제작은 선진적인 연구기관과 대기업에서 일하는 고도로 훈련된 조작자들이 가동하는 엄청나게 큰 기계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곧 엄청나게 큰 이 기계 속에 있는 힘에 누구나 접근 가능해질 것이다. 주머니에 넣어 들고 다니는 컴퓨터가 과거의 메인프레임 컴퓨터가 가졌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누구든지 데이터를 사물로, 그리고 사물을 데이터로 바꿀 수 있고 비트와 원자로 이루어진 인터넷을 가로지르며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미래가 코앞에 와 있는 것을 이미 볼 수 있다.

 

이 비전은 이론적으로 가능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미 이것이 급격하게 현실이 되어가는 경로 위에 있다. 팹랩(Fablab)은 개인들이 디지털 제작에 필요한 강력한 도구에 접근할 수 있는 공동체에 기반을 둔 제작실로, 2003년에 첫 제작실이 설립된 이후 1년 반마다 그 수가 두 배로 늘고 있다. 그러나 1, 2차 디지털 혁명의 초기처럼 3차 디지털 혁명의 급격한 진행속도는 평범한 관찰자에게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발명가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자신의 책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에서 “기하급수적인 성장은 기만적이다”라고 지적한다. “이 성장은 감지 못하는 사이에 시작하고 그런 다음 불시에 맹렬하게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다시 말해 이 성장은 그 궤적을 조심해서 따라가지 않는다면 뜻밖일 수밖에 없다.”

 

『현실을 설계하기』(Designing Reality)의 핵심은 디지털 제작이 진행되는 궤적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 책의 목표는 사람들이 3차 디지털 혁명에 대비하는 동시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이 책의 지식을 이용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 혁명에 작거나 크게 기여할 행동능력이 있다. 우리는 앞으로 여러 분야의 지도자들이 팹에의 접근 및 팹 리터러시(Fab literacy)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반세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아직은 3차 디지털 혁명이 초기 단계에 있다. 연구 우선사항들이 정식화되고 있고 핵심기술들이 개발되고 있으며 팹에의 접근 및 팹 리터러시를 보편화하는 데 필수적인 조직과 제도들이 출현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서 우리는 사실상 한계비용을 추가로 들이지 않고 음악•비디오•블로그•뉴스•이메일•문자메시지 및 다른 디지털 자료를 복제•변경•공유하는 우리 능력이 긍정적이면서 부정적으로 경제와 사회에 미친 영향을 보아왔다. 이 능력은 테크놀로지의 성격 그 자체에 내재해 있다.

 

디지털 제작은 디지털 통신기술과 컴퓨팅에 속하는 속성의 일부를 공유한다. 1, 2차 디지털 혁명에서 비트는 원자를 간접적으로 즉 새로운 능력과 행동을 창출함으로써 바꾸었다. 3차 디지털 혁명에서 비트는 사람들이 원자를 직접 바꾸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는 아직 원자 수준에서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 실현에 필요한 것은 물질세계를 변경하기 위하여 디지털 설계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능력이다. 1, 2차 디지털 혁명으로 야기된 엄청난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 물질세계—도로•주택•기기들•교통기관•음식—는 현저하게 예전 그대로이지만, 3차 디지털 혁명에서는 물질세계가 구성되는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다. 전 지구적으로 디자인(설계)을 공급받지만 제작은 지역에서 하는 방식으로 개인과 공동체가 옷•가구•장난감•컴퓨터와 심지어 주택과 자동차도 제작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혁신의 지속적인 흐름이 팹랩의 전지구적 네트워크를 가로질러 이미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3차 디지털 혁명은 인간 깊은 곳에 간직되어 있는 제작 욕망을 끌어내어 활용한다. 지하실 작업장이 있는 집에서 사는 기계 수리공이든 인도의 시골에 위치한 팹랩에서 일하는 농부든 <메이커 페어>(Maker Faire) DIY 모임에서 활동하는 12살 아이든, 제작은 취미생활자들•예술가들•발명가들•엔지니어들 및 광팬들(덕후들)을 깊이 만족시키고 그들에게 영감을 준다.

 

이 책 곳곳에서 우리는 디트로이트의 <인사이트 포커스>(Incite Focus) 팹랩에 소속된 블레어 에반스(Blair Evans)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블레어는 디트로이트의 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30에이커의 땅을 개발했고, 모든 사람이 “적게 일하고 적게 소비하며, 더 많이 창조하고 더 많이 접속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경제적 모형들을 연구하고 있다. 개인과 공동체의 자급자족을 구축하는 것이 새로운 생각은 아니지만, 블레어와 그의 동료들은 디지털 제작 플랫폼들이 식품에서 가구에 이르기까지 실용적인 재화를 협력해서 생산하기 위해 사용될 때 이 플랫폼들이 어떻게 자급자족을 가속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1, 2차 디지털 혁명에서 등장한 큰 문제가 있다. 일자리들이 테크놀로지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로봇공학 및 빠르게 가속화하는 다른 테크놀로지 분야의 진전 때문에 일자리의 무려 절반이 머지않아 자동화될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공장일이나 트럭운전 같은 블루칼라 일자리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 보조원의 일에서 방사선학과 심지어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이르는 화이트칼라 일자리들도 사라진다. 물론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연관된 새로운 일자리가 사라진 일자리를 대신할 것이라는 다른 예측도 있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더라도 (이는 결코 확실하지는 않다) 옛날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과 널리 접근 가능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는 것 사이에는 격차가 있을 것이다. 기술적인 진보로 인한 비고용, 소득과 부의 불평등, 그리고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추동하는 끊임없는 변화의 유독한 조합은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고 화나게 했으며 세계 도처에서 민족주의 운동을 추동했다. 그러나 증가하는 제작 과정의 민주화는 개인과 공동체의 자급자족이 전 지구적 독립과 지식공유—이는 두려움보다 능력에 기반을 둔다—와 결합하는 더 매력적인 미래를 낳을 수 있다. 이것은 지구화와 지역의 자급자족 사이의 잘못된 이분법을 허물어뜨리고 정치적 분열을 넘어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보다 지속가능하고 풍요로운 미래를 위한 토대가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도시와 시골 규모에서도 생겨나고 있다. 우리가 만나게 될 또 한 명의 팹 선구자인 토마스 디에스(Tomas Diez)도 바르셀로나 팹랩 소속으로 세계적인 ‘팹시티’(Fab City) 운동을 이끌고 있다. 토마스는 ‘팹시티’ 운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도시가 추출적이기보다는 생성적이며, 파괴적이기보다는 복원력이 있고 소외시키기보다는 힘을 부여할 수 있기 위하여 생산을 다시 지역화함으로써 우리는 도시를 그리고 도시의 사람 및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발명할 필요가 있다.”

 

알래스카에서 아마존에 이르기까지 토착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팹선구자들도 있다. 이들은 지역의 자급자족과 공동체 건설에 적합한 고대의 관행들을 살아있는 채로 보존하기 위하여 진보된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지역 문제를 협력해서 해결하기 위하여 지역의 재료들을 사용하는 보다 효과적인 도구를 제공하는 것은, 전통적인 동시에 현대적인 사회에 살면서 주변의 자연과 물질세계에 한층 더 연결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깊은 욕망을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녀들을 ‘테크놀로지로부터 벗어난’ 학교에 보내는 실리콘 밸리 임원들에게서, 그리고 디지털로부터 자유로운 휴일이나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날’과 같은 기획들에서 가상 세계로 빨려들어 가는 위험에 관한 불안을 본다. 3차 디지털 혁명은 비트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계와 원자로 이루어진 ‘현실’ 세계 사이에서 우리가 보다 건강하게 균형 잡힌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방향으로 우리를 추동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개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고무하며 필요한 조직을 창출하고 물려받은 제도를 바꾸려는 우리의 열렬한 노력을 통해서만 이 야심에 찬 비전들은 실현될 것이다. 우리가 실로 3차 디지털 혁명으로 넘어가는 변곡점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궤적을 이해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현실을 설계하기』는 3차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지를, 이 혁명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를, 그리고 (결정적인 것으로는) 일어나고 있는 이 혁명에 대비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 당신이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지를 제시할 것이다.

 

대중매체에 의해 강화되는 두 개의 극단적인 비전이 테크놀로지와 관련해서 존재한다. 하나는 테크놀로지가 미쳐 날뛰고 로봇이 우리의 일자리를 훔쳐도 인간은 무기력하기만 한 디스토피아적인 비전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는 뒤로 물러나 앉아 있을 뿐이고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유토피아적인 비전이다. 우리가 1, 2차 디지털 혁명에서 보았듯이 현실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결들로 이루어진다. 급속히 발전하는 테크놀로지가 가지고 있는 혜택과 위험은 매우 실질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지만, 우리에게는 이제 개인적·집단적으로 이 영향력을 좋은 방향으로 유도할 힘이 있다.

 

우리는 한층 자급자족적이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창출하기 위해 3차 디지털 혁명의 궤도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행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대체될 수 없는 노동과 관련해서는 지속적인 고용이 이루어질 것이고, 이와 병행하여 디지털 제작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새로운 일자리들도 생길 것이다. 새로 출현하는 모형들에서는 개인과 공동체들이 자신들이 소비하는 것을 직접 제작하게 될 것이고, 이는 우리의 일(노동) 개념에 도전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의 활동들 사이의 균형을 잡는 데 필요한 새로운 선택지들을 제공할 것이다. 이런 혼합된 사회적 배치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수십 년에 걸쳐 디지털 제작 테크놀로지의 능력 및 범위가 10억 배로 증가한다면, 우리는 더 많이 창출하고 더 많이 연결하면서 더 적게 일하고 더 적게 지출하는 비전을 실현할 수 있다. 우리는 “추출적이기보다는 생성적이며 파괴적이기보다는 복원력이 있고 소외시키기보다는 힘을 부여하는” 사회에 대한 ‘팹시티’ 비전을 디딤돌로 삼을 수 있다.




P2P 시대의 개방형 협동주의


  • 저자  :  Michel Bauwens
  • 원문 : “Open Cooperativism for the P2P Age (2014.06.16) / Attribution-ShareAlike 3.0 Unported
  • 분류 : 번역
  • 옮긴이 : 정백수
  • 설명 : 4년 전의 글이라서 더 정밀해졌을 현재의 바우엔스에는 못 미칠 수 있지만 협동조합이 나아갈 기본적 방향을 P2P 관점에서 잘 제시하고 있다고 판단되어 옮겨서 소개한다.

 

오래 버텨온 협동조합 기업들 가운데 일부가 실패하는 중인데도 협동조합 운동과 협동조합 기업들은 부활을 맞고 있는 중이다. 이 부활은 협동조합의 흥망성쇠의 한 국면인데, 이 흥망성쇠는 주류 자본주의 경제의 흥망성쇠와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 2008년도의 금융위기 같은 체제 차원의 위기 이후에 많은 사람들은 대안들을 찾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옛 모형들을 찾아서 부활시키는 식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시대의 새로운 가능성들과 요건들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디지털 네트워크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어포던스들(affordance)((어포던스란 주체가 특정의 행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객체가 ‘제공’하는 관계를 가리킨다― 옮긴이))을 고려해야 한다.

‘P2P’ 관점에서 몇 가지 생각을 제시해본다. P2P재단의 맥락에서 발전시켜온 것들이다.

첫째, 옛 협동조합 모형들의 비판에서 시작해보자.

협동조합들이 임금에 의존하고 내적인 위계에 기반을 두는 자본주의 기업들보다 더 민주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에서 움직이는 협동조합들은 경쟁적 태도를 점점 더 가지게 되며 그렇지 않더라도 공동선이 아니라 회원들만을 위해서 움직인다.

둘째, 협동조합들은 일반적으로 커먼즈(공통재)를 창출하거나 보호하지 않는다. 영리 기업들처럼 특허와 저작권을 따가지고 커먼즈를 종획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기 일쑤다.

셋째, 협동조합들은 회원 자격을 지역 혹은 일국에 국한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전지구적 무대는 영리를 추구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지배하도록 열어놓는다.

이러한 특징들은 바뀌어야 하고 또 오늘날 바뀔 수 있다.

 

우리의 제안은 다음과 같다.

1. 영리 기업들과 달리 새로운 협동조합들은 공동선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이는 협동조합들의 정관과 거버넌스 문서에 포함되어야 하는 요건이다. 이는 협동조합들이 영리를 추구할 수는 없음을, 사회적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 함을 의미하며, 이것이 그 정관에 기입되어야 한다. 북부 이탈리아나 퀘벡 같은 지역들에서 사회적 돌봄과 관련하여 이미 활동 중인 연대 협동조합들(solidarity cooperatives)은 올바른 방향으로 내딛는 중요한 발걸음에 해당한다. 현재의 자본주의 시장 모형에서 사회적·환경적 외부성(externalities)((여기서 ‘외부성’은 기업이 기업 외부 즉 사회와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가리킨다―옮긴이))은 무시되고 외부에 있는 국가가 가하는 규제에 맡겨진다. 새로운 협동조합 시장 모델에서는 외부성이 정관에 통합되며 법적 의무가 된다.

2. 단일한 계층의 이해관계자들에서 회원을 끌어오는 협동조합들과 달리 새로운 협동조합들은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운영에 포함시켜야 한다. 협동조합들은 다중 이해관계자들(multi-stakeholders)의 거버넌스에 맡겨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현재의 회원제가 다른 유형의 회원제를 포함하도록 확대되어야 하거나 현재의 회원제 모형에 대한 대안― 가령 새로 제안된 페어셰어즈(FairShares) 모형―을 찾아야 함을 의미한다.

3. 사실 우리 시대의 결정적 혁신은, 협동조합이 커먼즈를 (공동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이 커먼즈는 두 유형이 있다.

a. 첫째 유형은 비물질적 커먼즈이다. 열려있고 공유 가능한 라이선스를 사용하여 전지구적 인류 공동체가 협동적 혁신을 구축하고 다시 그것을 풍요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P2P재단에서는 커먼즈 기반 상호성 라이선스(Commons-Based Reciprocity Licenses) 개념을 도입했다. 이 라이선스는 윤리적 기업 및 협동조합 기업이 공동으로 산출하는 커먼즈를 중심으로 윤리적 기업 및 협동조합 기업의 연합을 창출하도록 설계되어있다. 이런 라이선스의 핵심 규칙은 이렇다 : ① 커먼즈를 비상업적 사용에 열어놓는다 ② 커먼즈를 공동선을 추구하는 단체들에 열어놓는다 ③ 커먼즈를 커먼즈에 기여하는 영리 기업들에 열어놓는다. 여기서 예외 조항은, 커먼즈에 기여하지 않는 영리 회사들은 라이선스의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 주된 목적이 소득을 생성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시장 경제에 상호성 개념을 도입하기 위한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윤리적 경제, 비자본주의적 시장 동학을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다.

b. 둘째 유형은 물질적 커먼즈의 창출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예를 들어 장비를 제조하는 데 기금을 댈 커먼즈의 창출이다. 클라이너(Dmytri Kleiner)의 제안을 따라서, 협동조합들이 증권을 발행하고 여기에 모든 조합원들(체계 내에 있는 모든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기여하여 제조를 위한 커먼즈 기금을 창출할 수 있다. 기금을 구하는 협동조합은 조건 없이 기계를 얻을 수 있지만, 협동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소유자가 될 것이며, 이런 식으로 기금에 의해 생성된 소득으로 점차적으로 기본 소득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4. 마지막으로 우리는 전지구적인 사회·경제적 힘의 문제와 씨름해야 한다. 초국적인 인도전자 협동조합(Sociedad Cooperativa de las Indias Electrónicas)의 선도적 사례를 따라서 우리는 전지구적 부족(풀레, phyle)의 창출을 제안한다. 부족이란 커먼즈와 기여자들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전지구적 사업 생태계를 말한다. 부족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움직인다. 개방형 농업기계들(혹은 다른 생산물이나 서비스)을 설계하는 전지구적인 오픈디자인 공동체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 기계들은 욕구가 있는 곳 가까이 존재하는, 일련의 개방되어있고 분산된 미시공장들(microfactories)에서 효율적으로 제조되고 생산된다. 그런데 이 모든 미시적 협동조합들이 고립된 방식으로 존재하면서 ‘비물질적 생산에 초점을 두는’ 전지구적인 오픈디자인 공동체를 통해서만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은 미시공장들을 통합하는 전지구적 협동조합을 통해서도 서로 연결될 것이다. 그런 전지구적 부족들의 결합이 새로운 형태의 전지구적인 사회·정치적 힘― 전지구적인 윤리적 경제를 대표하는 힘―의 씨앗이 될 것이다. 윤리적 기업가 연합과 부족들은 개방형 회계와 열린 공급망 제도를 향해 나아감으로써 자본주의적 시장 이후의 시장(post-market)에서 물리적 생산의 조정에 관여할 수 있다.

요약하면, 전통적인 협동조합들이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진보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그 형태는 네트워크 시대에 맞추어 P2P와 커먼즈 생산의 측면을 도입함으로써 업데이트되어야 한다.

 

새 시대의 개방형 협동주의에 대해 우리가 권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 협동조합들은 정관의 차원에서 (내적으로) 공동선을 지향해야 한다.

2. 협동조합들은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포함하는 거버넌스 모형을 가져야 한다.

3. 협동조합들은 비물질적·물질적 커먼즈를 공동으로 산출해야 한다.

4. 협동조합들은 비록 지역에서 생산활동을 하더라도 그 사회적·정치적 조직화는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멕시코시티 : 변형의 씨앗들



 

2018년 6월 말에 나는 <도시랩>(Laboratorio Para La Ciudad, City Lab)을 통해 미래연구와 관련된 여러 가지 과제로 시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멕시코시티(CDMX)에서 1주일을 보냈다.

가브리엘라 고메즈-몬트(Gabriella Gómez-Mont)가 설립해 지금도 운영하고 있는 <도시랩>은 시장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멕시코시티 정부의 실험적인 부서/창조적인 싱크탱크이다. <도시랩>은 도시개발을 위한 기술과 전략 면에서 매우 혁신적이다.

<도시랩>은 도시의 모든 것에 대해 성찰하고 서반구에 위치한 가장 큰 메갈로폴리스에 어울리는 사회적 대본(social scripts) 및 도시로서의 미래를 연구하는 곳으로 도시의 창조성, 이동성, 거버넌스, 씨빅 테크(civic tech, 시민을 위한 기술), 공적 공간 등과 같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서 연구하고 있다. 또한 <도시랩>은 다학제간 협동을 수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고 있으며, 이 실험을 실행할 때 정치적•공적인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시민사회와 정부 간의 연결고리를 창출하려고 하고 있다.(([옮긴이] http://directorsfellows.media.mit.edu/fellow-profiles/gabriella-gomez-mont/))

나는 1주일 동안 <도시랩>의 <오픈시티> 팀인 란다(Gabriela Rios Landa), 델가도(Valentina Delgado), 무뇨스까노(Bernardo Rivera Muñozcano) 그리고 메이(Nicole Mey)와 함께 작업했다. 그들이 하는 일, 헌신 및 창조성에 굉장히 감동을 받고 돌아왔다. 내가 요청받은 일은 매우 다양했으며 내가 전문으로 하는 다음과 같은 일과 관련되어 있었다.

1. ‘열린 도시로서의 멕시코시티’라는 비전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소 사람들 및 주요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비전만들기 워크숍을 운영하기. 이것은 포괄적이고 참여적인 방식으로 도시개발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2. ‘설계를 민주화하기’에 관하여 강연하기. 이 강연에서 나는 P2P 재단의 관점으로 설계와 코스모지역화(cosmo-localization)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혁명들’을 논의했다.

3. 멕시코시티의 인공지능에 적용하기 위한 예측 거버넌스 전략을 개발하는 설계 세션을 운영하기

4. 또한 나는 커먼즈로서 도시와 공동-거버넌스, 비전 매핑 및 예측실험/브리지 방법에 관하여 <오픈 시티> 팀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대단한 한 주였다!

 

비전만들기

비전만들기 워크숍과 관련해서, 우리는 ‘비전 사이클’(vision cycles)이라 불리는 기술을 사용해서 워크숍을 시작했다. 이 기술은 발전의 토대가 된 이전의 비전들(‘사용된 미래들’로 간주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현재의 비전과 그 효과들 그리고 새로 출현하고 있는, 미래를 위한 모든 아이디어들을 발견하는 방식으로 어떤 쟁점의 역사를 맵핑한다. 비전 사이클을 사용한 이후에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미래도시를 그려보는 데 도움이 되는 짧은 시각화 과정을 진행했다. 다음으로 우리는 소헤일 인나야툴라(Sohail Inayatullah)가 처음 개발한 통합적인 비전만들기 방법을 사용하여 선호되는 미래와 버려진 미래를 보고나서 그 다음에 통합된 미래를 개발했다.

세션에서 도출된 한 가지 통찰은 도시에는 많은 자아들이 있다는 것이며 무엇이 도시의 지배적인 자아들이고 어떤 자아들이 버림받았는지를 따져 물어 볼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자아가 버림을 받고 표현할 길이 없을 때 자아의 행위는 침식적이고 파열적이며 선동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도시의 지배적인 자아와 버림받은 자아 사이의 모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갈등이 뒤따를 수 있다. 통합적인 비전 제시 방법은 도시의 지배적인 자아와 버려진 자아의 통합이 어떻게 더 전체론적이거나 더 현명한 개발을 낳을 수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예측 거버넌스

인공지능 같은 쟁점의 경우,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잠재적인 영향은 크게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이 경계가 확연한 여러 영역들(기계 학습•신경망•알고리즘•로봇•자동화 등)을 가로지르기 때문에 정의상의 모호성이 존재하며, 쟁점의 속도도 가속화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랩>은 이 다면적인 쟁점이 관리되고 통제되는 방법에 대한 일단의 정책들을 개발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와 관련해서 그들은 나에게 인나야툴라의 다층적 요인 분석(Causal Layered Analysis, CLA) 방법을 적용하고 나서 그 다음으로 (인공지능에 적합한 예측 거버넌스 틀을 만들 수 있는 구성요소를 제공하기 위해 내가 개발한) 예측 거버넌스 설계 틀(Anticipatory Governance Design Framework)을 사용해달라고 요청했다. 워크숍은 말할 필요도 없이 풍성했는데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끌어 가는 몇몇 핵심 전제, 세계관 및 태도, 그리고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힘을 부여하는 길을 제공하는 새로운 신화 및 비유를 탐구했다.

 

발표들

이것 말고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주제에 대해 발표했다.

커먼즈로서의 도시와 공동-거버넌스. 이것은 발표라기보다 대화였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내가 훨씬 더 많이 배웠다. 이 대화는 내가 가장 크게 배운 사례들 가운데 하나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도시 커먼즈에 관한 크리스티안 이아이오네(Christian Iaione)와 셰일라 포스터(Sheila Foster) 등의 연구를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특히 그들은 도시 커먼즈 관점을 인정하긴 하지만, 그 관점이 볼로냐/바르셀로나/헨트(유럽에서 정치적으로 힘을 가지고 있는 인구가 사는 중소도시들)의 맥락에서 멕시코시티(부자들/권한을 가진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소외된 사람들로 계층이 크게 나뉜 2천4백만 명의 사람들)의 맥락으로 옮겨질 가능성에는 의문을 가졌다. 그들은 또한 단일한/획일적인 도시 비전을 갖기보다는 오히려 멕시코시티의 정신이 획일적인 방안을 거부한다고 느꼈고 헤테로토피아적 미래들(heterotopic futures), 즉 도시 내부에 있는 복수(複數)의 미래들을 위하여 어떤 기회들이 어디에 존재할지를 궁금해 했다. 무수히 많은 집단들, 콜로니아 지역들(colonias),(([옮긴이] 콜로니아(colonia)는 멕시코-미국 국경 지역을 따라 위치해 있는, 미국에도 멕시코에도 속하지 않은 저소득 주택지역이다. [위키피디아])) 공간들로 이루어진 도시로서 멕시코시티는 공간적 다양성과 함께 시간적 다양성도 나타내는데, 이곳에서 콜롬비아 이전 문명은 콜롬비아 이후의 것 그리고 전지구적/신자유주의적인 것과 중첩되고 맞물려 있다. 그래서 멕시코시티는 선형의 시간에 기반을 둔 단일 문화를 거부한다. 미래는 근대주의적인 용어들로 틀지어질 수 없으며 여러 비전들의 생태계를 필요로 한다.

이 비전들의 생태계와 긴밀히 연결되는 것은 다소 유행에 따르는 스마트/디지털 도시 전략의 개시에 대한 우려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 전략이 도시를 개방적•참여적으로 만들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멕시코시티 같은 장소에서 이미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더해주는 역효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했다. 진정으로 ‘열린 도시’는 핵심적인 불평등이 다루어지는 도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대화에서 분명해졌다. 생존경쟁을 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생활임금보다 적은 돈을 벌기 위해 힘들게 일해야 하는 한 도시를 결코 ‘열린’ 것으로 경험하지 못할 것이며 도시에서 교외는 교외 분리 정책에 의거하여 부유층의 주거지로서 거의 제도화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멕시코시티가 그 정치적 구성에 대한 역사적인 크라우드소싱(CDMX’s historic crowdsourcing of their constitution)을 한 것은 중요한 선례가 되었고 거기서 보편적인 기본소득이 제기되었다(하지만 아무래도 입법과정을 통과할 수는 없을 듯하다).

내재된 커먼즈-거버넌스의 핵심 원리 ―이를 미셸 바우엔스(Michel Bauwens)와 함께 한 논문에서 최근에 발전시킨 바 있다―도 발표했는데 나는 삶의 모든 측면의 민주화에 대해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영향이 이 원리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출판 전의 것은 여기서 볼 수 있다).

‘공통 관심사’라는 이 생각은 커먼즈와 커머너의 범위를 확대하는 데 기여한다. 지구의 생명유지 체계의 경우, 커먼즈로서 이 체계가 가지고 있는 가치는 맥락 전환에 의해 활성화되어야 비로소 이 체계가 공동체에 가치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 함축되어 있다. 기후변화 같은 기본적인 쟁점과 관련해서 개인들이 각성하는 바는, 우리 모두가 관심사의 커먼즈(commons of concern)로서 70억의 다른 인간들(및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들)과 대기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에 일어난 일을 통해 우리 각자는 21세기의 이 공유된 관심사에 관여하게 되었다. 지구의 대기는 함축된 커먼즈에서 명시적인 커먼즈로 바뀌었다. 우리의 대기가 모두에게 생존문제가 되었고 갑자기 사람들은, 행동에 뒤따르는 책임감을 갖고서 자신들이 어떻게 이 공유된 관심사에 얽혀있는지를 보는 만큼은 커머너들이 되었다. 이것은 지구 거버넌스의 근본적인 민주화를 암시한다.

내재된 커먼즈-거버넌스의 이런 원리가 그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우리는 이것을 멕시코시티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장시간 토론했다.

비전 매핑과 예측 실험/브리지 방법. 나는 또한 비전 매핑—오픈스트리트맵(OSM)과 지도 인터페이스에 기반을 두고 있는 온라인상에서 편집 가능한 매핑과 비전만들기 과정을 결합시킨 것—에 관한 나의 연구도 발표했다. 연구소의 어떤 팀은 오픈스트리트맵을 이미 어떤 프로젝트에 사용하고 있었으며, 도시 지리와 상상계를 맵핑하기 위해 참여에 기반을 둔 방법을 활용하는 경우와 상당히 겹쳤다. 또한 나는 예측 실험/브리지 방법에 대해 발표했는데, 이 방법은 연구소에서 이루어지는 전반적인 접근법과 매우 일치했다. 이것은 명시적으로 이 연구소가 멕시코시티의 도시 미래를 위하여 새로운 길을 계획하는 과업을 맡은 시 정부 소속의 실험적인 부서이기 때문이다.

 

코스모지역화

나는 코워킹스페이스(coworking space, 개방형 사무실)인 ‘위워크’(wework)에서 코스모지역화에 대해 발표했다. <펩시티 멕시코시티>(FabCity CDMX)와 <미래학>(Futurologi)이 행사를 주관했으며 나는 이 행사에서 벨라스께스(Oscar Velasquez)와 또바르(Inga Tovar)를 만나게 되었다. 대략 50~60명의 사람들과 어울려 형편없는 내 스페인어와 완벽한 스페인식 영어를 자랑할 기회를 가졌다. 내가 P2P 재단에서 동료들과 함께 발전시켜 오고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코스모지역화를 “지역화된 생산을 할 수 있는 하이텍 및 로우텍 능력을 공히 갖추고 있는, 전지구적으로 분산되어 있는 ‘지식 및 설계’ 커먼즈들을 한데 모으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코스모지역화는 세계시민주의에서 끌어 낸 윤리적 전제–좀 더 효율적으로 생계를 창출하고 지역 환경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인간 지혜의 유산이 사람들과 공동체에 의해 보편적으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지역 생산 및 혁신이 서로 지구 커먼즈의 웰빙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에 기초합니다.

나는 인류세(anthropocene) 맥락에서 심층적인 상호화라는 주제에 대해 말했다. 슬라이드는 여기 참조. 오디오는 여기 참조.

그 주 후반에 나는 또바르와 팟캐스트를 했는데 여기서 우리는 <쎈뜨로 유니>(Centro Uni)와 <미래학> 간의 협업인 코스모지역화 즉 ‘설계는 전지구적으로, 제조는 지역에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해당 주제에 관하여 한층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는 식의 팟캐스트였으며 오로지 스페인식 영어로만 진행했다(나는 청중들을 위해 스페인어로 말하려고 했으나 자꾸 영어로 되돌아가서 또바르에게 통역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오디오는 여기 참조.

 

인상과 회상

전반적으로 말해서 나는 멕시코시티 전체에 매우 깊은 감명을 받고 돌아왔다. 멕시코시티는 많은 사회적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정치적 구성을 크라우드소싱하는 것에서부터 (이런 종류로는 아마 지금까지 최대 규모의 실험일 것이다) LGBT 친화적인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지역이 된 것, 보편적인 기본소득 창출을 시도하는 것, 그리고 물론 <도시랩>의 연구에 이르기까지 지성과 진보적 정치의 오아시스이다. 나는 이 도시가 부활과 잠재적인 변형으로 나아가는 변곡점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생존을 위해 매일매일 투쟁하는 대부분 사람들, 즉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내가 희망하는 것이기도 하다.

멕시코시티의 경우, 커먼즈 거버넌스와 코스모지역화의 전망은 멕시코시티의 가난한 사람들이 여러 수준에서 주변화되지 않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이 사실상 그 관건이다. 공동-거버넌스와 도시 커먼즈의 측면에서 보면, 멕시코시티의 개발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자신들이 사는 도시에 대해 결정을 내릴 능력과 도구를 부여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은 원칙에 해당한다. 코스모지역화의 측면에서 원칙은 사업을 하는 모든 공동체가 자신들의 웰빙과 생계를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을 생산할 수 있도록 그 잠재력을 해방시켜주는 것이다.

내가 멕시코시티와의 작업에 관심을 가진 것은 가족사에서 연원한다. 어머니는 콜로니아 지역인 로마(Roma)에서 태어나서 외할머니와 이모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첫 12년 동안을 그곳에서 보냈다.

나는 멕시코시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다. 모두가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어머니와 그녀의 가족에게 삶은 힘겨웠고 그들은 아주 아주 가난했으며 생존을 위해 밤낮 없이 싸워야 했다. 이것은 내 정체성에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멕시코시티를 위해 외국에서 자문하러 온 미래학자라는 상대적인 특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극심한 빈민층 출신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것을, 그래서 다른 면에서 보면 내가 ‘하층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머니와 그녀의 가족에게 ‘출세’란 멕시코시티 중심부에서 부자들을 위해 하녀로 일하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가 불평등과 가난의 흔적으로부터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도시의 전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어떤 것을 다루어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모두가 번성할 도시의 미래에는 버려진 사람들도 통합되어야 한다.

 




몸바사의 빈민가와 디지털 통화



 

케냐에서 두 번째 큰 도시 몸바사(Mombasa)에는 방글라데시(Bangladesh)라는 빈민가가 있다. 여기 살던 아시아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 아시아인은 기반시설의 대부분을 가지고 떠난 상태라고 한다.) 쓰레기로 가득한 시궁창들이 주름진 쇠로 만든 오두막들 사이를 뱀처럼 구불거리며 지나가는 것이 지금 이 빈민가의 모습이다.

이곳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와의 연관을 뽐낼 곳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이 빈민가는 뜻밖에도 현대 화폐와 관련된 거대한 실험장이 되었다. 현재 일주일 동안 방글라데시의 주민들은 모두가 염소, 토마토, 석탄, 숯을 블록체인 기반의 극히 지역화된 디지털 통화들을 사용해서 교역하고 있다. 기획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운이 좀 좋으면 이 디지털 마이크로경제가 이 공동체와 근처의 다른 공동체들을 가난으로부터 빼내줄 것이라고 말한다.

‘방글라-페사’라고 이름 붙은 디지털 토큰은, 케냐에 기반을 두고 이더리움 기반의 뱅코르 프로토콜(Bancor Protocol)을 사용하는 비영리단체인 그래스루츠 이코노믹스(Grassroots Economics)에 의해 8월 7일에 첫 단계로 도입되었다. 이 플랫폼은 암호통화들의 판매자들과 구매자들을 뱅코르 스마트 토큰(Bancor Smart Token)을 통해 연결시켜 주민들이 현금에 재빨리 접근하는 것을 돕는다.

방글라-페사는 2013년 이래 공동체의 신용체계를 살리기 위한 의도로 사용되어온 종이토큰을 보완한다. 뱅코르의 이사이며 그래스루츠 이코노믹스의 창립자인 러딕(Will Ruddick)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의 지역시장은 매주 붕괴하곤 했으며 주민들은 식탁에 올릴 음식을 거의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러딕에 따르면 문제는 케냐 실링의 유통이 수요와 공급을 반영하지 못한 데 있다. 실제로 공급에 의해서 충족되는 지역의 욕구를 반영하지 못했던 것이다. 케냐 실링이 광범한 경제의 흐름에 종속되어 있어서 방글라데시에 유통될 재화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살 현금이 없었던 것이다. 토큰의 판매 이전에는 “상황을 타개할 화폐가 없었”다고 공동체에 방글라-페사의 사용법을 가르치는 방글라데시 주민 오냥고(Emma Onyango)는 말한다.

그래서 그래스루츠 이코노믹스가 공동체와 접촉해서 각 주민마다 200개의 토큰을 만들어 주었다. 이 토큰들은 이자를 발생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유지하려면 지역의 재화를 사는 데 계속적으로 지출되어야 한다. 이것이 시장의 밀물과 썰물에 맞추어진 마이크로경제를 창출한다. 그리하여 내부 교역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속도로 계속된다. 이것이 케냐 실링에 가해지던 압박을 풀어준다. 주민들은 케냐 실링을 이제 다른 곳에, 심지어는 하찮은 것에 지출한다. ”사람들은 지금 회전목마를 타고 있어요’라고 오냥고는 말한다. 안정된 교환수단이 풍부하니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더 안전하게 느낀다. 오냥고는 이렇게 말한다. “죄를 짓는 소년들이 있었어요. 아침에 물에 빠진 새 시체를 발견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밤에 바깥에 나갈 수 있어요. 공동체 안에서 안전하다고 느낍니다. 이것은 하늘이 주신 선물입니다.”

이제 토큰체계는 디지털화되었다. 뱅코르 프로토콜은 토큰의 공급과 가치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알고리즘들을 수용한다. 그런 다음 각 거래를 이더리움 블록체인 위에 안전하게 각인시킨다. 뱅코르 프로토콜은 방글라-페사 소지자들이 그들의 토큰을 다른 통화와 교환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이웃 공동체들과의 교역을 촉진시키고 더 많은 외부의 재화들에의 접근이 가능하게 해준다. 이 프로토콜은 방글라-페사의 가치가 수요 및 공급과 일치하도록 자동으로 조정하는 일종의 부표이다.

뱅코르의 소통 이사인 하인드먼(Nate Hindman)은 이 복잡한 상호교환의 체계는 프로토콜 없이는 계산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래스루츠 이코노믹스는 이 과정을 디지털화함으로써 건강한 지역경제의 시동을 걸고 그것이 확대될 수 있게 한다.

러딕에 따르면 시범 단계가 잘 진행되고 있다. 일단의 점포주들, 생선을 파는 여성들, 학교 교사들이 지금까지 각각 500개의 디지털 토큰을 받았다. 이 토큰들은 이미 종이 바우처 체계를 사용하는 250개의 지역 사업체들에서 재화와 교환될 수 있다. 러딕은 단기 목표는 토큰 소지자들의 수를 1천 명의 스마트폰 소유자들 이상으로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마트폰은 가난한 케냐인들 사이에 놀랍도록 흔하다. 이들은 엠-페사(m-Pesa)라는 인기 있는 모바일뱅킹 앱을 사용한다.)

토큰으로 지불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행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파는 사람에게 특정의 재화나 서비스를 요구하고 적절한 수의 토큰을 뱅코르 앱을 사용하여 전송한다. 그런 다음 거래가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비용이 지출되지 않는) 사이드체인에 각인된다.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은 전자 토큰을 토마토, 차파티[밀가루를 발효시키지 않고 반죽해서 철판에 굽는 빵―정리자], 학자금, 이발, 숯, 쓰레기수거 등과 교환했다.

머지않아 뱅코르는 문자메시지 서비스를 개시하여 스마트폰이 없는 사용자들도 거래를 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그런데 그 서비스 없이도 현재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는 듯하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테크놀로지를 가지고 시스템의 요구에 잘 적응하고 있다.

극적인 사건들도 있었다. 러딕은 2013년에 일단의 공동체 지도자들과 투옥된 바 있다. 종이 바우처를 배급하는 것이 분리주의적 반란에 해당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6개월 동안의 법정 싸움 끝에 러딕 등은 마침내 석방되었다. “어떤 법도 어긴 바 없어요”라고 러딕은 말한다.

그래스루츠 이코노믹스는 신나게 나아가고 있다. 더 멀리 콩고,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에서 공동체에 의해 추동되는 통화들이 속출하면서 곧 우리 모두 블록체인 토마토들을 먹게 될지 모른다.

* 토마토(농산물) 유통에의 블록체인 활용에 대해서는 https://www.eurofresh-distribution.com/news/carrefour-deploys-blockchain-technology-tomato-channel를 참조. 

 




협동조합과 커먼즈



 

[게시자 설명]

P2P재단은 오큐파이 운동에 대한 그의 보고에서 시작해서 2014년 에콰도르에서 진행한 우리의 FLOK 프로젝트(일국의 국가기관의 초청으로 착수한 최초의 커먼즈 이행 프로젝트)에 그가 방문한 것에 이르기까지 네이선 슈나이더의 작업을 여러 해 동안 뒤쫓았다. [FLOK은 “Free/Libre Open Knowledge”의 약자이다― 정리자] 그 다음 네이선은 트레버 숄츠(Trebor Scholz)와 함께 플랫폼 협동조합 운동을 시작하고 컨퍼런스들을 여는 데서 주된 역할을 했다. 그는 지금 콜로라도의 보울더(Boulder)에서 교사를 하고 있으며 또한 협동조합 운동에 대한 그의 보고를 계속 진행하고 있고 종교 분야에서 진보적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최근 책 『모든 것이 모두를 위해서』(Everything for Everyone)의 한 장은 에콰도르에서의 경험을 서술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아래는 협동조합 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와 이 운동이 커먼즈의 부활과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다룬 이 흥미로운 책에 관한 인터뷰이다.

 

미셸 바우엔스

이게 당신의 첫 책은 아닙니다. 당신이 책을 써온 행로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간단하게 개괄해주실 수 있나요? 책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협동조합 전통의 미래에 대한 새 책을 낳게 된 통찰과 동기에는 어떻게 도달하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네이선 슈나이더

좀 뜻밖의 행로였던 것 같습니다. 먼저, 신에 대한 주장들에 관한 책을 썼고, 그 다음에는 ‘월 가를 점령하라’에 대해 상세하게 썼으며, 지금은 협동조합에 대한 책이군요.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제 머릿속에서는 어떻든 말이 됩니다. 저에게 최우선의 과제는 항상 사람들이 그 최고의 포부를 현실화하는 모습을 포착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모험적 상상력과 함께 그것을 실천하는 대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끌립니다.

이번 책은 ‘오큐파이’를 다룬 책인 『고마워, 아나키』(Thank You, Anarchy)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되었습니다. 2012년과 2013년에 투쟁이 잦아든 이후 제가 관심을 가진 활동가들 가운데 일부가 협동조합 일에 관여하는 모습이 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월 가를 점령하라’ 싸움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게 된 첫 사업은 노동자 협동조합인쇄점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허리케인 샌디가 강타한 뉴욕 지역들에서 협동조합을 창출하는 것을 돕고 있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에게 협동조합을 한다는 생각은 행복감을 주었습니다. 민주적 가치들을 보유하면서 생계를 버는 한 방식인 것이었죠. 저도 이 행복감을 좀 경험했는데, 이는 제가 이 협동조합의 전통이 얼마가 길고 깊은지를 깨달으면서 더 진지한 매료로 전환되었습니다.

 

바우엔스

플랫폼 협동조합에 관여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 말해주시겠어요?

 

슈나이더

이런 활동을 하던 꽤 초기에, 저는 테크놀로지 영역에서 협동조합 활동을 할 기회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프리소프트웨어와 오픈소스에 좀 관여해왔습니다. 그래서 테크놀로지를 일종의 커먼즈로서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실리콘밸리의 이른바 ‘공유경제’― 그 당시 주류였죠―가 실제로는 공유와 그다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던 2014년경에 중대한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파리에 있는 위셰어(OuiShare) 네트워크, 셰어러블(Shareable)의 고렌플로(Neal Gorenflo), 그리고 물론 P2P재단의 인도 아래 저는 몇몇 기업가이자 활동가인 사람들이 진정한 공유경제, 공유가 회사 자체에 내장된 경제를 그려보려고 한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놓치고 있던 해킹이었습니다. 오픈소스 사람들은 지적 재산권 관련법을 해킹했지만 투자자에 의해 통제되는 추출적 기업은 건드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제 자본주의적 회사의 논리를 다시 생각할 때이며, 오랜 협동조합 전통이 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 같았습니다.

2014년 말에 저는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숄츠와 팀을 이루었고 그 다음 해에 뉴욕의 뉴스쿨(New School)에서 최초의 플랫폼 협동조합 컨퍼런스를 조직했습니다. 반응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운동의 씨앗을 품고 있었던 것이지요. 플랫폼 협동조합을 만들려는 새 스타트업들이 저에게 접근하면 할수록 저는 증거 같은 것에 입각하여 조언을 할 수 있기 위해서 역사에 눈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배우고 가져올 것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우엔스

협동조합주의와 커먼즈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보시나요? 양자가 융합될 수 있을까요?

 

슈나이더

저는 협동조합을 일종의 커먼즈로산업 시기의 국가와 시장에게 명료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 커머닝의 한 방식으로 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커먼즈 활동가들의 비전과 비교해 볼 때 협동조합 전통은 꽤 보수적입니다. 나는 이 보수주의를 좋아합니다. 그것이, 마찬가지로 재발명의 필요가 있는 ‘바퀴 개수 줄이기’에 기여합니다. 이야기꾼으로서 저는 더 첨단의 커머너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짊어질 과제가 너무 어렵고 새로워서 이념이 투철하지 못한 사람은 오랫동안 붙어있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협동조합은 사람들을 커먼즈의 급진적인 비전에 입문시키는 한 방식입니다. 여기에는 비자, AP통신 그리고 동네에 있는 신용조합 같은 귀에 익은 것들도 포함되지요. 그런데 저는 협동조합들로 충분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으렵니다. 협동조합은 더 다양하고 광범한 커머닝으로 나아가는 출발점, 관문이지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협동조합들은 모두 구식 재산 및 소유권과 연관됩니다. 저는 ‘재산은 절도다’와 같은 식의 아나키즘에 마음이 갑니다만, 또한 커머너들이 영주들이 소유권을 포기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공유경제의 정신에 따라 소유권을 포기하는 것은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봉건제입니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리눅스 코드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했으며 현재 그것이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기업감시도구인 안드로이드 OS를 가능하게 합니다. 삐께띠가 보여주듯이 자본 소유권이 (임금소득보다 더) 경제적 불평등의 추동력입니다. 협동조합 전통은 소유권을 더 균등하게 분배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재산이 덜 중요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기에 더 좋은 위치에 놓이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커먼즈를 통해서 우리의 욕구를 더 많이 충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커머너들은 강한 힘을 가진 상태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우엔스

당신의 책의 한 장에서 당신은 당신과 대담을 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의 경험과 에콰도르의 ‘FLOK 사회’ 프로젝트를 평하고 있습니다. 그 경험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어떤지요?

 

슈나이더

한 나라 규모의 커먼즈 이행을 만들어보려는 노력이었던 FLOK의 경험은 저에게 매우 유익했습니다. 그것은 커머닝이 단순히 일련의 고립된 실천들로서 제시되기보다 포괄적인 사회적 비전으로서 제시되는 것을 볼 기회였습니다. 협동조합들은 당연히 그 모든 일에서 중대한 요소였습니다. 물론 에콰도르 정부의 후속조치는 매우 제한되었습니다만 그 과정은 커먼즈 이행을 위한 자원을 산출했고 이것이 그 모든 일의 핵심을 포괄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 더없이 소중했습니다. 저에게 그것은 굉장한 교육이었습니다. 모두가 그런 경험을, 세계의 미래를 위한 계획을 짜는 데 참여하는 경험을 때때로 가져야 합니다.

 

바우엔스

당신의 활동은 당신의 신앙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이 시대에 진보적 기독교인이 될 수 있나요? 당신은 기독교 전통의 특정 요소들과 연결되어 있나요?

 

슈나이더

협동적 전통을 더 많이 알수록 그것이 종교적 전통들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더욱더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특히 저의 가톨릭 전통에서 봅니다. 이 전통은 북미 협동조합은행들과 몬드라곤 노동자 협동조합들과 같은 사례를 산출했습니다.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다른 많은 신앙들에서도 발견될 수 있습니다. 협동이 종교로 환원된다거나 종교에 의존한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우리 세계의 다른 많은 주된 세력들의 경우처럼 종교도 삶에 활력을 부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작업을 통해 몇몇 새로운 성인들을 후원자들로서 발견하게 되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중세 프란치스코회의 공동 설립자인 아시시의 클라라(Clare of Assisi)는 수녀들이 자치할 권리를 가져야한다는 것을 강조했으며 모든 목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라이언(John A. Ryan)은 협동조합 일을 통해 이루어지는 덕성 교육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신부인 맥나이트(Albert J. McKnight)는 범아프리카주의적 비전을 남부협동조합연맹(Federation of Southern Cooperatives)의 발전에 적용했습니다. 영어에 갇혀있는 우리에게는 몬드라곤 협동조합들을 창시한 신부인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따(José María Arizmendiarrieta)의 저작을 더 많이 번역할 필요가 절실합니다. 이 분들은 신이 우리에게 우리의 공동체를 같이 다스릴 수 있고 또 그럴 자격이 있는 존엄을 부여했다는 뿌리 깊은 믿음에서 협동적 경제에 몰두했던 것입니다.

 

바우엔스

새로운 세계로의 ‘상전이’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으로 보시나요? 인류가 이 과정을 완수하리라고 어느 정도 낙관하시나요?

 

슈나이더

제 책의 부제[‘다음 경제를 형성하는 급진적 전통’―정리자]가 암시하는 바와 달리 전 예측을 잘 못해요. 그러나 제가 아는 것은, 만일 우리가 현재보다 더 풍요로운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실행하고자 마음먹는다면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를 보면 이것이 분명해집니다. 언제가 미래에 우리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방대한 불평등과 독재적 기업들, 때때로 이루어지는 투표 등으로 구성되는 현재의 현실을 떠올리며 웃는 일이 분명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우리가 더 탁월한 민주주의 형태들을 선택해 나갈 가능성만큼이나 민주주의를 완전히 포기할 가능성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패션을 커먼즈의 생태계로서 다시 상상하기



 

패션계에 글로벌 패션 시장을 개조하길 원하는 디자이너들, 패션하우스들, 학자들, 그리고 활동가들의 꽤 큰 집단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놀랍게도 옷을 디자인하고 생산하고 유통하는 새로운 방식을 발명하려는 상당한 움직임이 진행 중이다. 낮은 급여, 남용되는 노동력, 막대한 양의 폐기물, 혐오스러운 마케팅 전략에 의존하는 글로벌 시스템에 염증을 느낀 많은 패션 활동가들이 실용적인 대안들을 개발하고자 한다.

나는 최근 이 주제에 관해 한 주요 패션 콜로키움에 강연을 요청받았다. 네덜란드의 아른헴에서 열린, 약 500명의 사람들이 참여한 이 행사는 <스테이트 오브 패션>(State of Fashion)이라 불리는 연례 전시회와 아트이지 예술대학교(the ArtEZ University of the Arts)의 후원을 받았다. 이 콜로키움은 그 임무를 이렇게 말했다. “패션 시스템을 철저히 탐구하고 파열시키고 재규정하고 변형시키기 위해서는 디자인에 의해 추동되는 연구뿐만 아니라 가치에 더욱 기반을 둔 비판적인 사고가 절실히 필요하다.” “윤리, 포용력, 그리고 책임 있는 소비자주의를 더욱 적극적인 방식으로 반영하는 패션 현실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을 공동으로 조사하는 것”이 목적이다.

[나는 ‘새로운 럭셔리를 위한 연구’라는 콜로키움 제목에 조금 혼란스러웠다. 이 행사는 사회 혁신을 귀하거나 고급스러운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열망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럭셔리’라는 개념이 패셔니스타들의 열정적 DNA에 너무 각인되어서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패션 산업을 개조하기 위한 접근들의 광범위함에 감명 받았다. 가장 강력한 노력이 <패션 혁명>(Fashion Revolution)이라고 불리는 한 집단에 의해 행해지고 있었다. 전지구적 시민단체인 이 집단은 12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한, 방글라데시에 있는 라나플라자 의류공장 붕괴 참사 이후 활동을 시작했다. <패션 혁명>은 영화 <트루 코스트>(The True Cost)가 보여주는, 실제의 (높은) 의류 비용과 관련된 폐해가 앞으로 일어나는 것을 막고자 패션 공급망을 더욱 투명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패션 혁명>은 또한 2000년부터 2014년까지 세계적으로 의류 생산을 두 배나 증가시키는 데 기여한 패션 산업의 한 부문인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을 비판했다. 패스트 패션 산업은 엄청난 양의 폐기물을 배출했다. 구매한 옷 중 약 40%의 옷들은 거의 혹은 전혀 입지 않는다.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옷을 3.3번 입는다. 그리고 소매 의류의 약 삼분의 일은 팔리지 않아 결국 태워지거나 폐기된다. 매년 약 4000억 제곱미터 규모의 직물 폐기물이 나오고 있다.

‘지속가능한 패션’은 많은 연설자들에 의해, 소중히 간직할 수 있고 오래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된 옷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는 말이다. 옷에 대한 감정적인 애착을 탐색하고 어떻게 지속가능한 디자인과 오래가는 미학을 개선시킬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크리스틴 하퍼(Kristine Harper)는 옷의 ‘심미적인 지속가능성’(aesthetic sustainability)을 언급했다. ‘리커버링 디자이너’(recovering designer)인 오르쏠라 데 까스트로(Orsola de Castro)는 어떻게 “사랑받는 옷들이 오래가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속 가능한 패션의 또 다른 선구자는 오스클렌(Osklen)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브라질의 인스티뚜또-E(Instituto-E)의 설립자인 멧사바트(Oskar Metsavaht)이다. 그는 옷에 쓰일 수 있는 지속가능하고 재활용 가능한 새로운 종류의 소재를 개발하려는 회사의 적극적인 노력을 그린 단편 영화를 보여줬다. 오스클렌은 또한 새로운 종류의 공급망과 ‘의식있는 소비’(conscious consumption)를 창출했다.

네덜란드 아른헴의 아트이지 예술대학교로 옮기기 이전에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학교(Parsons School of Design)에서 패션 분야의 대안적 교과과정을 개발한 가첸(Pascale Gatzen) 교수와 같은 사람들 덕분에 이런 종류의 아이디어들이 오늘날 패션 교육에 스며들고 있다. 가첸은 패션에 대한 그녀의 철학을 이렇게 설명한다. “더 아름답다거나 아니면 우리를 더욱 행복하게 하기 때문에 선택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큰 이윤을 내기 위해 이루어집니다. 당신이 옷을 입는 방식이 곧 당신이 이 세상에서 스스로를 위치시키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패션을 되찾아 사회 변화를 위한 촉매제로 만들 수 있을까요?”

가첸은 옷만들기 기술을 회복시키기를 열망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옷을 디자인하는 것과 만드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나는 학생들이 만들기를 통해 디자인할 것을 장려합니다. 재료, 아이디어, 그리고 우리의 손과 몸에서 나오는 감각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를 조절하는 과정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생각을 확대하기 위해 가첸은 허드슨 벨리에 손으로 직접 짠 재킷을 생산하는 <빛의 친구들>(the Friends of Light)이라 불리는 직물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근처 농장의 양으로부터 자란 양모를 사용하기 때문에 모든 재료들이 그 지역의 것이고 생산 과정은 세심하고 통합적이다. 그만큼 공을 들이므로 각 재킷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160시간이다.

문제가 없지는 않다. 옷이 노동집약적이고 독창적일수록 더 비싸지기 마련이다. 이는 하이패션윤리나 상업 모델로 변질될 위험성이 있다. 친환경 패션은 ‘럭셔리’가 돼서는 안 된다. 비록 비용이 더 많이 들더라도, 혁신적인 생산 방법들을 시도하고 의류 디자인과 생산의 기술적 감각을 복원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을 저가, 저품질의 ‘패스트 패션’ 중독으로부터 떼어낼 가치가 있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사회를 생각하는 패션이 감당해야 할 진짜 과제는 초자본주의에 의해 추동되는 현재의 지배적인 시장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병행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것만이 글로벌 패션 기업들의 무자비한 포섭과 럭셔리의 무자비한 우상화를 피할 수 있는 대안적인 운영 논리와 윤리를 개발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한 계획들이―무엇이 되었든 처음에는 가장 기본적인 규모로―개발될 수 없다면 사회 혁신은 수제 의류와 같은 작은 시장에 갇히거나 럭셔리 시장에 국한될 것이다. 그리고 진짜 사회 혁신은 얄팍한 마케팅을 위해 징발되고 말 것이다.

대안 패션 활동가들이 그들의 비전, 생산 방법, 유통 장치, 재정, 그리고 마케팅을 충분한 규모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 나는 이러한 구조적 시스템 문제에 진지하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보고 싶다. 부분적인 혁신은 부분적인 효과만 낳을 것이다.

나는 강연에서 “패션을 커먼즈의 한 생태계”로 상상하려고 했다. 나는 커먼즈의 기본적인 생각을 소개하고 패션을 커먼즈의 연합체로서 다시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일반적인 전략들을 제안했다. 알트-패셔니스타들(Alt-fashionistas)은 그들의 협력, 공급망, 문화적 비전과 같은 공유된 부와 커머닝을 보호하기 위해 “경계를 표시하는” 새로운 방식을 발전시키면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들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실질적 실험을 바탕으로 그들 자신의 재정 시스템과 유통 및 마케팅 기반시설을 구축해야 한다. 그들은 낡은 어휘들을 버리고 커먼즈의 언어를 배우려고 해야 한다. 콜로키움 기조 강연의 비디오를 보려면 여기로 가면 된다. 나의 강연은 20:43부터 41:14까지 진행된다.




긱 경제에 저항하기: 협동형 음식배달 플랫폼의 출현



 

영국의 노동 가구 중에서 7백만 명의 사람들은 빈곤하며 실질 임금은 지난 10년 동안 10.4%가 하락했다(유럽의 다른 어떤 곳보다 더 하락했다). 그런데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1,000명의 사람들은 브렉시트 이후 수십억씩 돈을 더 벌었다.

플랫폼 기업들이 빈곤임금(poverty wage)을 지불함으로써 빈부 격차를 벌리는 데 일조하고 있고 부당하게 높은 자산 가격과 낮은 생산성으로 거품을 산출하고 있다. 영국에서 다섯 번째 부자인 알리셰르 우시마노프(Alisher Usmanov)는 처음에 철강과 철광석으로 돈을 벌었지만 지금은 <스포티파이>(Spotify,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와 <에어비앤비> 같은 회사에 투자함으로써 재산을 늘린다. <딜리버루>(Deliveroo, 영국의 온라인 음식배달 회사)는 자체 식당을 소유하지도 않고 배달원을 고용하지도 않지만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푸드 체인점인 <웨더스푼>(Wetherspoon) 이상의 가치가 있다.

2017년에 <딜리버루>의 회사 손실액은 300% 이상 증가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회사 창업주는 450만 파운드를 이사들에게 주식보너스로 지급하고 자신의 봉급도 넉넉하게 22.5% 인상했다. 이와 달리 <딜리버루>의 배달원들은 최저임금, 병가 및 공휴일 추가근무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주식 소유권에서 오는 이윤이 소수에게로 가고 임금은 정체되는 상황에서, 노동자와 자본 소유주들 간의 빈부 격차는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이제 소득의 공정한 몫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소유권의 공정한 분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때인데, 이 후자의 문제에서 주도적인 사례가 될 수 있는 것이 협동형 음식배달 플랫폼이다.

 

유럽의 배달원들

2016년에 일어난 영국 <딜리버루> 배달원들의 첫 번째 파업 이후 그 물결이 프랑스, 스페인과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와 네덜란드로 퍼졌으며, 바로 2주전(([옮긴이] 이 글의 게재 날짜가 2018년 3월 22일이므로 3월 초에 해당한다.))에는 볼로냐에서 파업이 일어났다. 독일에서 배달원들은 작년에 무정부주의적-생디칼리슴적인 <자유노동자연합>(Free Workers Union, FAU)과 함께 조직화를 시작했다.

FAU는 ‘배달연합’(Deliverunion) 캠페인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평적인 열린 공간으로서 기능했으며 직접행동에 100명이 넘는 배달원들을 모으고 킬로미터 당 보너스급여를 쟁취했다. 유급 간부나 조직자들이 없는 상태이므로 초등학교 교사들 및 간병인들 같은 다른 부문의 구성원들이 지원을 해 주었는데, 이는 노동조합이 자체적으로 행동하거나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그들의 이름과 그들의 자원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FAU는 그 나름의 온라인 플랫폼을 창출하기 위해 일단의 개발자들을 끌어 모았는데 배달원들은 이 플랫폼에 접속해서 그들의 단체협약에 포함시킬 내용을 토론하고 그와 관련된 투표를 할 수 있다. 플랫폼이라는 도구로 인해 배달원들은 노동조합 모임에 물리적으로 참석하지 않고도 요구 사항을 표현하고 결정을 내리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이 도구는 또한 인원을 모아서 파업에 관한 투표를 하고 노동자 전체에게 메시지를 재빨리 퍼뜨릴 수 있게 해준다. 디지털 플랫폼이 고객의 요구가 있을 때 즉시 고객을 배달원과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이 플랫폼들이 ‘파편화된’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촉진하는 데 훌륭하게 사용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협동형 디지털 플랫폼들의 잠재력

조직화된 배달원들 사이에 이러한 협력적인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그들 나름의 음식배달 플랫폼을 공동 개발할 수 있는 첫 걸음이다. 이것이 P2P재단에게서 사용 허가를 받고 앱 개발자들과 앱을 사용하고자 하는 모든 배달원이 협력하여 관리하는 오픈소스 음식배달 앱인 ‘coopcycle.org’에 깔려 있는 생각이다. 유럽 전역에서 모인 음식배달원들로 구성된 포럼에서는 프랑스와 독일에서 이 앱을 실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고 스페인의 배달원들은 바르셀로나에서 그들 나름의 협동형 버전의 <딜리버루> 앱을 만들어 내놓기 직전이다.

회사의 이익이 회사를 실제로 ‘이끌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게 하고 노동자들이 더 나은 근로조건, 안전한 계약, 병가 중 급여, 그리고 무엇보다 존중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공동으로 소유되는 이 배달 플랫폼들은 <푸도라>(Foodora), <딜리버루>, <우버 잇츠>(Uber Eats) 등에 대한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공동소유권은 이익을 나누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민주적인 거버넌스와 책무는 물론 노동자들의 데이터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의 투명성 및 배달원들의 일상 업무를 지시하는 알고리즘 기능의 투명성을 의미할 것이다.

협동형 사업은 또한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할 수 있다. <딜리버루>가 각 주문에 대해 터무니없이 높은 30% 수수료를 레스토랑에 청구하는 반면에 협동형 모형에서는 일단 핵심비용이 충당되면 이 요금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협동형 모형에서는 주문이 15파운드를 초과하기만 하면 배달원의 임금과 다른 지출을 부담할 정도가 되고 이는 그 액수를 넘어서는 주문들은 더 저렴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협동적으로 운영되는 이들 음식배달 플랫폼들은 실리콘밸리와는 다른 비전—소수의 부자들에게 단기간의 투기 이익을 내줄 벤처 자금을 끌어들이려는 집착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제시할 것이다. 플랫폼 경제가 곧 사라질 리는 없을 터이며 독점적인 디지털 플랫폼들은 노동자들의 몫을 더 한층 줄일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프랑스•독일에서 출현하는 사례들은 긱 사업체 고용주들에게 반격을 가하고 배달 플랫폼 활동의 미래에 희망의 빛을 제공하기 위해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의 힘이 어떻게 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블록체인 경제 : 초보자를 위한 제도적 크립토경제 안내


  • 저자  :  Chris Berg, Sinclair Davidson, Jason Potts(([정리자] 저자들은 블록체인 테크놀로지가 사회, 경제, 정치, 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세계 최초의 사회과학연구센터인 RMIT Blockchain Innovation Hub에 속해 있다.))
  • 원문 : “The Blockchain Economy: A beginner’s guide to institutional cryptoeconomics (2017.09.27)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블록체인의 중요성에 대한 대부분의 설명이 비트코인과 화폐의 역사에서 시작하는데 화폐는 블록체인의 최초의 사용사례일 뿐이며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될 가능성은 낮다. 블록체인은 무엇보다 탈중심화된, 분산된, 디지털 형태의 원장이다. 회계와 연관된 원장이 혁명적 테크놀로지로 서술되는 것은 희한한 일일 수 있지만, 블록체인이 중요한 것은 원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늘 원장이 중심이다

규칙들에 의해 구조화된 데이터로 단순하게 구성되는 원장은 회계거래 기록 이상의 일을 한다. 우리는 사실에 관한 합의가 필요할 때마다 원장을 사용한다. 원장이 근대 경제를 뒷받침하는 사실들을 기록한다.

원장은 소유권을 확인해준다. 쏘토(Hernando de Soto)((Hernandde Sotto, The Mystery of Capital: Why Capitalism Triumphs in the West and Fails Everywhere Else, Basic Books, 2007.))는 가난한 사람들이 원장에서 확인되지 않은 재산을 소유할 때 어떻게 고생하는지를 서술했다. 회사(firm)는 단일한 목적을 가진, 소유권·고용·생산관계의 네트워크로서 하나의 원장이다.

원장은 신분을 확인해준다. 사업체들은 정부 원장에 등록된 신분이 있어서 그 존재와 조세법 아래에서의 지위가 추적될 수 있다. 탄생·사망·결혼의 등록이 개인들의 삶의 주요한 순간들을 기록하며 이 정보를 신분을 확인하는 데 사용한다.

원장은 지위를 확인해준다. 시민권은 누가 국민으로서 권리를 가지고 있고 의무를 지는지를 기록하는 원장이다. 선거인명부도 투표권을 부여하는 (혹은 의무화하는) 원장이다. 고용도 고용된 사람들에게이 노동의 보수에 대한 청구권을 부여하는 원장이다.

원장은 권위를 확인해준다. 원장은 누가 국회의원석에 앉을 수 있고 누가 은행계좌에 접근할 수 있으며 누가 아이들과 함께 일할 수 있고 누가 제한구역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확인해준다.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원장들은 경제적·사회적 관계들을 맵핑한다.

사실에 관한 합의, 즉 무엇이 원장에 있는지에 대한 합의와 원장이 정확하다는 믿음은 시장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토대들 가운데 하나이다.

소유, 점유, 원장

결정적이지만 놓치기 쉬운 것이 소유(ownership)와 점유(possession)의 구분이다. 점유는 소유를 함축하지만 소유 자체는 아니다. 여권의 예를 들면, 디지털 이전의 세계에서 여행자가 소지한(점유한) 여권은 그의 여행할 권리의 소유가 원장에 등록되어 있음을 가리킨다. 요즘의 여권은 당국이 소유를 직접 확인하도록 해준다. 관련 당국이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서 어떤 여행객이 여행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비트코인이 보여주었듯이 화폐도 원장이다.

은행권이라는 토큰의 점유는 곧 소유를 의미한다. 19세기에 은행권의 소지자는 그 은행권이 나타내는 가치를 인출할 권리가 있었다. 은행권들은 그것을 발행한 은행에게 직접적 채무였으며 은행 원장에 기록되어 있었다. 점유가 곧 소유를 가리키는 체제는 은행권들이 절도되거나 위조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 시대의 법정 통화는 중앙은행에서 금으로 교환받을 수 없다. 그러나 그 관계는 남아있어서, 지폐의 가치는 통화의 안정성과 그것을 발행한 정부의 안정성에 대한 합의에 의존한다. 은행권들은 부가 아니다. 지폐는 원장에 있는 관계에 대한 요구이며 그 관계가 붕괴하면 지폐의 가치도 붕괴한다. 짐바브웨, 유고슬라비아,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례를 보라.

원장의 진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원장 테크놀로지는 지금까지 별로 변화를 겪지 않았다. 원장은 문자 소통의 여명기에 등장한다. 원장과 글쓰기는 고대 근동(近東)에서 생산·교역·부채를 기록하기 위해서 동시에 발전했다. 설형문자를 넣어 구운 진흙판이 식량, 세금, 노동자들 등의 단위를 세세히 기록했다. 분산된 원장처럼 기능하는 동맹들의 구조화된 네트워크를 통해 최초의 국제적 공동체가 마련되었다.

14세기에 복식부기(double entry bookkeeping)의 발명과 함께 원장에 최초의 주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복식부기는 차변과 대변을 모두 기록함으로써 다수의 (분산된) 원장들을 가로질러 데이터를 보존했고 원장들 사이의 정보의 조정을 허용했다.

원장 테크놀로지의 다음 단계는 19세기 대기업들과 거대 관료제의 발생과 함께 이루어졌다. 이 중앙집중화된 원장들이 조직의 규모와 범위의 극적인 증가를 가능하게 했으나 중앙집중화된 기관들에 대한 신뢰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20세기 후반에 원장은 아날로그 형태에서 디지털 형태로 이동했다. 호주의 여권은 1970년대에 디지털화되었으며 중앙집중화되었다. 전산 가능하며 검색 가능한 데이터베이스가 더 복잡한 분산, 계산, 분석 및 추적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데이터베이스 역시 여전히 신뢰에 의존한다. 디지털화된 원장은 그것을 유지하는 조직의 신뢰 가능성만큼만 신뢰 가능하다. 블록체인이 해결한 것을 바로 이 문제이다. 블록체인은 원장을 유지하고 확증하는 신뢰받는 권위 있는 중앙에 의존하지 않는 분산된 원장이다.

블록체인과 자본주의의 경제적 기관들

근대 자본주의의 경제적 구조는 원장들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발전했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윌리엄슨(Oliver Williamson)은, 사람들이 시장, 회사 혹은 정부들에서 해당 조직의 상대적 거래비용에 의거하여 생산하고 교환한다고 주장했다. 윌리엄슨의 거래비용 접근법은 어떤 기관이 원장을 관리하고 왜 그러는지를 이해하는 데 열쇠를 제공한다.

정부들은 권위·특권·책임·접근의 원장들을 유지한다. 정부들은 시민권, 여행의 자유, 납세의무, 사회안전권, 재산소유의 데이터베이스를 유지하는 신뢰받는 주체이다. 원장이 시행되기 위해서 강압이 요구되는 경우 정부가 필요하다.

회사들 또한 원장들을 유지한다. 고용과 책임, 물리적 자본과 인간 자본의 소유와 배치, 공급자들과 고객들, 지적 재산과 기업 특권을 기록하는 사유화된 원장들이다. 회사는 종종 ‘계약들의 연계’라고 불린다. 그러나 회사의 가치는 그 연계가 질서와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나온다. 회사는 사실상 계약과 자본의 원장이다.

회사 및 정부들은 자신들의 업무를 더 효율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데 블록체인을 사용할 수 있다. 다국적 회사들 그리고 회사들의 네트워크들은 거래를 전지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으며 블록체인이 이를 거의 즉각적으로 가능하게 한다. 정부들은 블록체인의 변경 불가능성을 사용해서 재산권이나 신분기록의 정확성과 조작 불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다. 블록체인 응용프로그램들을 바탕으로 잘 설계된 허가 규칙들은 시민들과 소비자들에게 자신들의 데이터에 대한 더 많은 통제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블록체인은 또한 회사들 및 정부들과 경쟁하는 위치에 있는 제도 차원의 테크놀로지이다. 그래서 블록체인은 회사들을 대체할 수도 있다. 계약과 자본의 원장은 이전에 없던 방식으로 탈중심화되고 분산될 수 있다. 신분, 허가, 특권, 권리의 원장들이 정부의 지원 없이 시행될 수 있는 것이다.

제도적 크립토경제학

제도적 크립토경제학(institutional cryptoeconomics)은 암호기술에 의해 안전해지고 신뢰와 무관해진 원장들이 제도의 차원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한다. 고전주의 및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의 목적이 희소한 자원의 생산과 분배를 연구하고 그 생산과 분배를 받쳐주는 요인들을 연구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제도적 경제학은 경제를 규칙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규칙들(법, 언어, 재산권, 규제, 사회적 규범, 이데올로기)이 흩어져 있는 기회주의적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활동을 서로 연계하도록 해준다. 규칙들이 교환을 (경제적 교환만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교환/교류도) 촉진한다.

크립토경제학이라 불리게 된 것은 블록체인을 받쳐주는 경제적 원칙들과 이론 그리고 대안적인 블록체인 실행에 초점을 둔다. 블록체인 메커니즘 설계의 경우에는 게임이론과 인센티브 설계를 고려한다.

이와 달리 제도적 크립토경제학은 블록체인과 크립토경제가 결합하여 가져올 제도적 경제학에 초점을 둔다. 그 사촌격인 제도적 경제학에서처럼 경제는 교환을 연계하는 시스템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제도적 크립토경제학은 규칙을 보기보다는 규칙들에 의해 구조화된 데이터인 원장을 본다.

제도적 크립토경제학은 원장들을 지배하는 규칙들, 그 원장들을 서비스하기 위해서 발전한 사회·정치·경제적 제도들, 그리고 블록체인의 발명이 어떻게 전 사회에 걸쳐서 원장들의 패턴을 변화시킬지에 관심이 있다.

블록체인의 경제적 귀결

제도적 크립토경제학은 블록체인 혁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도구를 우리에게 갖춰준다.

블록체인은 실험적 테크놀로지이다. 블록체인이 어디에 사용될 수 있는가는 기업가의 관점에서의 질문이다. 일부 원장들이 블록체인 위로 이동할 것이다. 일부 기업가들은 원장들을 블록체인 위로 이동하려고 시도하지만 실패할 것이다. 모든 것이 블록체인의 사용 사례가 되지는 못한다. 블록체인의 킬러 앱은 아직 없다. 원장들, 암호기술, P2P네트워킹의 결합이 미래에 어떤 것을 낳을지 예측할 수 없다.

이런 과정은 극히 파열적이 될 것이다. 추측컨대 전지구적 경제는 블록체인을 받쳐주는 사실들의 재구조화·해체·재조직과 관련된 긴 불확실성의 시기를 맞게 될 것이다.

블록체인의 최선의 사용이 ‘발견’되어 이미 원장에 대한 서비스를 하는 기관들이 깊이 자리를 잡고 있는 현실 세계의 정치적·경제적 체계에서 실행되어야 한다. 이 둘째 부분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원장들은 파급력이 크고 블록체인의 가능한 응용프로그램들도 매우 포괄적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를 제어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칙들의 일부가 손에 잡힐 듯이 드러날 것이다.

제도의 창조적 파괴

우리는 이전에 이런 혁명들을 겪어 보았다. 보통 비트코인의 발명과 블록체인을 인터넷과 비교한다. 블록체인을 인터넷 2.0이라고 부르거나 인터넷4.0이라고 부른다. 인터넷은 우리가 상호작용하고 사업을 행하는 방식을 혁신한 강력한 도구이다. 그러나 이 비교는 블록체인을 덜 쳐준 편이다. 인터넷은 우리로 하여금 더 잘,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소통하고 교환하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블록체인은 전과 다르게 교환하도록 해준다. 블록체인에 합당한 더 좋은 은유는 기계적 시간의 발명이다.

기계적 시간 이전에 인간의 활동은 자연의 시간―아침에 들리는 닭의 울음과 저녁에 천천히 땅거미가 지는 것―에 의해 규제되었다. 경제사가 앨런(Douglas W. Allen)이 주장하듯이 문제는 가변성이었다. “시간의 측정에 너무나도 많은 가변성이 존재해서 많은 일상적인 활동들이 유용한 의미를 가지기 힘들었다.” “시간 측정의 가변성의 감소가 가져다주는 효과는 모든 곳에서 감지되었다”라고 앨런은 쓴다. 기계적 시간은 그 이전에는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상상조차 못했던 경제적 조직화의 전적으로 새로운 범주들을 열어젖혔다. 교역과 교환이 먼 거리를 가로질러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루를 구조화할 수 있게 되었고 노동한 시간의 양에 따라 보수가 주어질 수 있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공정하게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용주나 피고용인이나 어떤 계약이 수행되는 것을 확증하는 독립적 도구인 표준을 볼 수 있었다.

완결된 스마트 계약과 미완결된 스마트 계약

윌슨과 (그와 마찬가지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코스(Ronald Coase)는 계약을 경제적 조직화의 핵심적 위치에 놓는다. 계약이 제도적 크립토경제학의 중심부에 놓여있다. 바로 여기서 블록체인은 가장 혁명적인 함축을 가진다. 블록체인 위에서 이루어지는 스마트 계약은 계약에 의한 합의가 자동적·자율적으로 그리고 안전하게 실행되도록 한다. 스마트 계약은 계약의 실행을 유지하고 시행하고 확인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전체―회계사들, 감사들, 법률가들, 그리고 많은 법 제도들―를 제거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스마트 계약은 알고리즘의 세부에 의해서 제한된다. 경제학자들은 완결된(complete) 계약과 미완결(incomplete) 계약 사이의 구분에 초점을 두어왔다. 완결된 계약은 모든 가능한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적시한다. 미완결 계약은 뜻밖의 일이 일어나는 경우 계약조건의 재협상을 허용한다. 완결된 계약들은 실행하기가 불가능하며 미완결 계약들은 돈이 많이 든다. 블록체인은 스마트 계약을 통해서 많은 미완결 계약과 연관된 정보비용과 거래비용을 낮춤으로써 경제활동의 규모와 범위를 확대시킨다.

이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의 정확한 세부는 기업가들이 풀어야 할 문제이다. 현재 오라클들―정보를 스마트 계약이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로 변환해주는 신뢰할만한 주체들―이 블록체인의 알고리즘 세계와 현실 세계를 연결해준다. 블록체인 혁명에서 실질적으로 얻을 이득은, 미완결 계약들을 블록체인 위에서 실행되기에 충분히 완결된 계약으로 전환시킬 더 낫고 더 강력한 오라클들을 발전시키는 데 있다고 본다. 중세의 상인혁명은 상인 법정들[국제상관습법Lex mercatoria, merchant law을 집행한다―정리자]의 발전에 의해 가능해졌다. 실질적으로 신뢰를 받는 오라클들에 해당하는 이 법정들이 교역자들로 하여금 사적으로 계약을 실행할 수 있게 했다. 블록체인의 경우에 이런 혁명은 아직 오지 않은 듯하다.

정부는 어디로?

블록체인 경제는 세금, 규제, 서비스 제공 등 많은 면에서 정부의 통치과정에 압박을 가한다. 대중과 상호작용하는 금융기관들의 경우 그 안전성과 건전성을 보장하기 위해 건전성 통제(prudential control)가 발전했다. 보통 이 통제(예를 들어 유동성과 자본 요건들)는 예금주들과 출자자들이 은행의 원장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의해 정당화된다. 예금주들과 출자자들은 회사의 관리에 기율을 부과할 수 없는 것이다. 블록체인의 쓰임새 가운데 하나는 예금주들과 출자자들이 은행의 지불준비금과 대출을 계속 모니터하여 자신들과 은행 경영진 사이의 정보비대칭을 실질적으로 제거하게 해주는 것이다.

블록체인의 변경 불가능성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근거 없는 뱅크런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장한다. 규제자의 역할은 블록체인이 정확하고 안전하게 구축되어 있다는 것을 공인하는 데 국한된다.

블록체인의 더 나아간 쓰임새는 크립토뱅크―빌리는 사람과 빌려주는 사람을 직접 연결함으로써 단기로 빌리고 장기로 빌려주는 자율적인 블록체인 응용프로그램―이다. 스마트 계약 알고리즘으로 구축된 크립토뱅크는 공적 블록체인 원장을 가진 은행만큼이나 투명한 속성을 가지면서도 규제자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크립토뱅크는 스스로 청산할 수 있다. 크립토뱅크가 지급불능이 되면 그 바탕에 있는 자산이 자동적으로 출자자들과 예금주들에게 지급된다.

카우언(Tyler Cowen)가 타바록(Alex Tabarrok)은 많은 정부 규제가 정보비대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보가 어디에나 두루 퍼져있는 세계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문제이다. 블록체인 응용프로그램들은 이 정보의 편재(遍在) 경향을 주목할 만하게 증가시키며 그 정보를 더 투명하고 영속적이며 접근 가능하게 만든다.

블록체인은 ’렉텍‘(regtech)이라고 불리는 것에서 효용을 가지고 있다. 이는 감사, 준법감시, 시장 감시라는 전통적인 규제 기능들에 테크놀로지를 적용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블록체인 세계에서 새로운 소비자 보호나 시장 통제를 요구하는 새로운 경제적 문제들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 같은 기본적인 경제적 형태들의 재구조화와 재창출은 규제의 시행 방식만이 아니라 규제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도 압박을 가할 것이다.

대기업들은 어디로?

블록체인 경제가 대기업에 미칠 영향도 마찬가지로 크다. 기업의 사이즈는 종종 기업 위계의 비용을 감당할 필요에 의해 추동된다. 이 비용은 미완결 계약과 대규모 투자의 기술적 필요에 기인한다. 이런 모델은 출자자 자본주의가 기업 조직의 지배적인 형태임을 의미한다. 블록체인 위에서 더 복잡한 계약을 할 능력은 기업가들과 혁신가들이 자신들의 인간 자본 및 이윤에 대한 소유권과 통제를 동시에 유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성공적인 사업을 하는 것과 금융자본에의 접근 사이의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약해졌는데, 이제는 단절될 수도 있다. 인간 자본주의의 시대가 동터오고 있다.

기업가들은 가치 있는 앱을 만들 수 있고 그것을 그 기능을 필요로 하는 누구라도 쓸 수 있게 개방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가는 이에 대한 대가로 지갑에 마이크로페이먼트가 축적되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설계자는 설계한 것을 개방하고 최종 소비자들이 3D 프린터에 그 설계를 다운받아서 거의 즉각적으로 생산물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사업모델을 채택하면 현재보다 더 (많은) 지역화된 제조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이 생산자들이나 설계자들과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는 능력이 중개인이 경제에서 하던 역할을 제한할 것이다. 물류회사들은 계속 번성할 것이지만, 운전자 없는 수송의 출현이 이 산업에도 파열을 가져올 것이다.

사업이 파열되면 회사의 조세 기반 또한 파열된다. 정부가 사업체에게 세금을 물리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판매(소비)세에 그리고 심지어는 인두세[한국의 경우에는 주민세가 이에 해당된다―정리자]에 큰 압박이 가해질 수도 있다.

결론

블록체인 및 그와 연관된 테크놀로지 변화는 현재의 경제적 조건을 대대적으로 파열시킬 것이다. 산업혁명은 사업모델이 위계와 금융 자본주의에 기반을 두는 세계를 도입했다. 블록체인 혁명은 인간 자본주의 및 개인의 더 큰 자율성에 의해 지배되는 경제를 보게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현재로서는 불확실하다. 기업가들과 혁신가들이 언제나 그랬듯이 시행착오를 통해 불확실성을 해소할 것이다. 우리가 기여하는 바는 파열이 일어날 때 그것을 분명하게 하는 데 활용될 수 있는 모델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

[정리자의 덧글]

이 글의 저자들은 예를 들어 ’인간 자본주의‘라는 어휘를 사용하는 데서 볼 수 있듯이 블록체인의 혁명성을 제도 차원에서 보면서도 그 관점이 확연히 탈자본주의적이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어떤 글이든 중요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면 어휘나 관점을 문제로 삼을 필요는 없다. 이 글의 저자들이 블록체인을 ’국제상관습법‘의 새로운 버전으로 본 부분은 네그리와 하트가 『다중』(2004)과 『공통체』(2009)에서 ’국제상관습법‘(lex mercatoria)을 언급한 대목을 참조하면서 읽으면 유익할 듯하다. 『공통체』의 해당 대목은 이렇다.

아무도 가게를 돌보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전지구적 자본이 정치적·법적·제도적 규제와 지원 없이 기능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전지구적인 자본주의적 권력구조는 실제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시스템의 서로 다른 층위들을 가로질러 기워 연결된 잠정적이고 임시변통적인 성격의 것이다. 다른 곳에서 우리는 전지구적 경제의 관리와 규제의 지형에서 발전되고 있는 특수한 메커니즘들의 일부—예를 들어 일국적 법체계가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계약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옛 국제상관습법lex mercatoria을 재해석한 새로운 법적 관례—를 탐구한 바 있다. (382-383)

그리고 『다중』에서 네그리와 하트는 자신들이 포착해낸 이 “옛 국제상관습법을 재해석한 새로운 법적 관례”를 “자본의 자기지배”라고 부른 바 있다. 그런데 네그리와 하트는 블록체인의 존재조차 알 수 없었던 이 시점에서 (최초의 블록체인이 구상된 것은 2008년도이다) 다른 요인들을 고려한 것만으로 이미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새로운 ‘국제상관습법’ 안에서 발전된 이 ‘계약을 통한 법률’의 일반성과 기업화된 법률회사들의 관리 역량이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 사실상 자본의 자기지배(self-rule)라는 꿈은 매우 제한적이다. (『다중』, 233)

이제 위 게시글의 저자들에 따르면 블록체인 혁명은 국가를 불필요하게 만듦으로써 “자본의 자기지배(self-rule)라는 꿈”을 한편으로는 돕고 다른 한편으로는 회사들을 대체함으로써 이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 잠재력을 가진 어떤 것이다. 이 상반되는 두 경향의 공존이 어떤 귀결을 낳을 것인가에 대해서 위 게시글의 저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현재로서는 불확실하”며 “기업가들과 혁신가들이 언제나 그랬듯이 시행착오를 통해 불확실성을 해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나라면 여기에 걸려있는 매우 중요한 싸움의 결과는 다중/커머너들의 투쟁에 달려있다고 말할 것이다. 블록체인의 등장은 자본과 국가의 홈그라운드였던 법, 관례, 규제, 계약의 영역이 계급투쟁의 지형으로 편입되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계급투쟁이란 이익의 분배(이윤 대 임금/복지의 비율의 결정)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싸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상이한 두 삶형태― 사적인 것(자본)과 공적인 것(국가)을 중심으로 구축되는 삶와 공통적인 것(커먼즈)과 특이성(자율적이고 자유로운 다중)을 중심으로 구축되는 삶,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노동력으로서의 삶과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삶―사이의 싸움을 가리킨다. 이 싸움은 앞으로 인류 전체의 운명을 결정할 중요한 싸움이며 그 싸움의 의미에 걸맞은 자기인식이 긴요한 싸움이다. 따라서 돈을 더 많이 번다든가 생활수준이 더 높아진다든가 복지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데 국한될 수 없는 싸움이다. 위 게시글의 저자들이 말한 “기업가들과 혁신가들”을 다중 혹은 커머너에서 배제하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들의 행동은 만일 그것이 자본과 국가를 대체하고 자율과 협동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면 당연히 다중 혹은 커머너로서의 행동으로 간주될 것이다. 다중 혹은 커머너는 일단의 개인들(개별자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포괄하는 보편자가 아니라 개인들의 집단적 행동의 특정 성격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사실 네그리와 하트는 『집회』(Assembly, 2017)에서 생산의 지형에서 계급투쟁을 전개할 주체들로 ‘다중의 기업가’를 제시해놓고 있고(http://commonstrans.net/?p=982) 커먼즈 활동가 바우엔스 등도 이윤의 축적이 아니라 커먼즈의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가치창출의 새로운 생태계를 제시하고 있다(http://commonstrans.net/?p=732).

 




페미니즘과 혁명: 과거를 되돌아보고, 앞날을 내다보며


  • 저자  :  Julie Matthaei(([옮긴이] 줄리 매사이(Julie Matthaei) : 웰즐리 대학(Wellesley College) 경제학 교수. 페미니즘 경제학과 젠더•인종•계급에 관련된 정치경제학을 가르친다. 그녀는 <미국연대경제네트워크>(U.S. Solidarity Economy Network)의 공동 설립자이자 이사이며, 근간 도서 『불평등에서 연대로: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경제를 공동으로 창출하기』(From Inequality to Solidarity: Co-Creating a New Economics for the Twenty-First Century)의 저자이다.))
  • 원문 : “Feminism and Revolution: Looking Back, Looking Ahead (2018.06) / CC BY-NC_ND 4.0
  • 분류 : 번역
  • 옮긴이 : 민서

 

반세기 전에 ‘제2물결’ 페미니즘이 퍼지고 난 후 페미니즘 운동은 점차 더 포괄적이고 조직적으로 되었다. 초기에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진정한 여성해방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것이 필요하며 따라서 한때 페미니스트와 반계급주의자의 입장에서 정치는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곧 그들 역시 인종•민족성•성적 지향성 및 여타 정체성과 사회적 위치의 원천들에서 발생하는 억압을 인정하는 이론과 실천을 확장하라는 도전에 직면했다. 이 도전에 응하는 것이,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에 뿌리를 두고 있고 페미니즘 운동 내부에서 그리고 여타 운동들과의 관계에서 발현되는 연대정치를 낳았다. 중요하게도 이 새로운 정치는 연대경제에서 새로운 실천과 사회제도를 창출함으로써 개인들이 급진적인 사회변화에 참여하는 방식을 제공한다. 확고하고 포괄적인 페미니즘은 모든 종류의 억압을 없애는 ‘거대한 이행’에 필요한 더 큰 연대정치와 연대경제를 구축하는데 여전히 필수적이다.

 

1. 서론

누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싸움을 이끌 것인가? <거대한 이행 기획>(The Great Transition Initiative, GTI)은 세상을 공정하고 지속가능하게 바꿀 수 있는 “전지구적 시민운동”의 출현을 10년이 넘도록 확인했다. 이 운동이 하나의 온전한 운동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인데, 과거 50년에 걸친 페미니즘의 진화가 귀중한 교훈을 제공한다.

미국 맑스주의-페미니스트이자, 반인종차별주의자 및 생태경제학자로서 나는 이론과 실천 측면에서 이 진화의 일부분이었다. 1970년대 초 제2물결 페미니즘에 꼭 필요한 부분으로서 우리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억압적인 시스템과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할 것을, 다시 말해 이 두 가지를 극복하지 않고는 해방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단지 여성다움이라는 정체성에 기반을 둔 정치나 노동계급 혁명을 중심으로 하는 맑스주의적 계급정치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었다.

곧 우리와 여타 페미니스트들은 우리의 렌즈를 더 확장해야 할 필요성에 맞닥뜨렸다. 젠더•계급•인종•섹슈얼리티•민족성 등등의 정체성들은 상호간에 결정하고 있다는 통찰력이 새로운 개념인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낳았다. 일부 사람들은 정체성과 억압의 형태들이 상호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분열을 초래하는 것으로 판명되리라고 우려했지만 분열에서 시작한 것이 새로운 형태의 정치 즉 연대정치를 낳았다. 연대정치는 운동들을 가로질러 그리고 운동들 내부에서 사람들을 결속시킬 수 있고 어떤 성공적인 전지구적 시민운동에라도 기본적인 틀을 제공한다. 사실 이 동학은 현장의 다양한 사회 운동들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고 연대경제에 기반을 둔 새로운 실천과 제도의 발전에 영감을 주고 있다.

 

2. 페미니즘, 맑스주의와 만나다

1970년대 초에 제2물결 페미니즘(참정권 획득에 초점을 맞춘 제1물결과 대조해서 이름 붙여진 것)이 미국과 그외 지역에서 폭발적으로 일었다. 의식을 고양하는 집단에서 만난 여성들은 풀뿌리 조직들을 형성하여 사무직 조직화에서부터 미디어 개혁에 이르는 광범위한 페미니즘 투쟁에 참여했다. 주류 페미니즘 조직들은 재생산권을 보장하는 데, 그리고 유급노동자로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 및 기회를 획득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제2물결 페미니즘 운동에는 또한 활동적인 좌파인 맑스주의/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포함되었으며 그들은 자본주의와 혁명에 대한 맑스주의 이론을 발판으로 삼으면서도 이를 비판했다. 맑스주의/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맑스주의의 이론적 틀이 자본가들이 여성을 노동자로서 억압하는 것을 분석하지만 가정과 일터에서 남성들이 여성을 억압하는 문제를 간과하고 있는 것에 주목했다. 이상적으로는 노동계급 운동을 혁명적으로 표현하는 노동조합이 여성들의 평등과 관련하여 복잡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19세기에 노동조합들은 여성을 고임금직에서 배제하고 가정에 묶어두는 것을 옹호했다. 전통적인 남성들처럼 전통적인 맑스주의자들은 페미니스트들이 맑스주의와 연결될 때에는—전통적인 아내들처럼—그들의 정체성을 잃는다고 생각했다.((원주1. 미국에서 나온 두 주목할 만한 선집들로는 Zillah Eisenstein, Capitalist Patriarchy and the Case for Socialist Feminism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79)와 Lydia Sargent, Women and Revolution: A Discussion of the Unhappy Marriage of Marxism and Feminism (Boston: South End Press, 1981) 참조. 영국에서는 Annette Kuhn and AnnMarie Wolpe, Feminism and Materialism: Women and Modes of Production (London: Routledge, 1978)가 유사한 주제들을 탐구했다.))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또한 맑스주의의 혁명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맑스주의 이론은 노동자들을 혁명적인 사회 변화의 주체로 보고, 계급투쟁을 그 발동기로 보았으며, 사회주의 계획 경제를 목표로 여겼다. 이 변화의 비전이 너무 강력해서 소련에서 민주주의의 개탄스러운 부재가 분명해진 이후에도 초기의 맑스주의/사회주의-페미니스트들은 억압에 저항하는 여성들과 함께 조직화하는 것을 계급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자 주도의 혁명을 쟁취한 이후로 연기하라는 말을 들었다. 남성 좌파들에 따르면 페미니스트들의 조직화는 노동계급을 갈라놓을 것이고 그로 인해 자본주의를 영속시킬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혁명 이후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으며 맑스주의나 더 나은 사회주의 미래와 연결되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는 페미니즘이 고조되자 근본적인 변화를 느꼈고 사회주의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로 작정했다. 우리는 두 가지 진실을 보았다. 다시 말해 여성해방은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우리의 해방을 위한 싸움을 사회주의 혁명 이후로 미룰 수도 없었다. 가정주부들은 유급노동자로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결혼에서 겪던 젠더 억압에서 풀려나와 고용주에 의한 계급 및 젠더 억압을 겪게 되었다. 젠더 불평등과 지배구조가 페미니즘 운동으로 어떻게든 없어지더라도 여성들은 계속해서 노동자로서 억압받게 될 것이다.

동시에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적어도 지금까지 실행된 바의 사회주의 혁명으로는 여성의 억압이 없어지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소련과 유고슬라비아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여성들의 경험에 기초해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겪은 경험은 미국의 좌파남성들도 마찬가지로 성차별주의자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사회주의-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페미니즘적·반(反)계급주의적 조직화에 몰두했고 탈자본주의적, 사회주의-페미니즘적 체제라는 한층 폭넓은 비전 쪽으로 나아가는 데 몰두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버클리•시카고•뉴헤이븐에서의 사회주의-페미니즘적 여성들의 연합을 창출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가했는데 학자들과 활동가들은 자본주의를 페미니즘적•반계급주의적 입장에서 체계적으로 변형시키는 것을 지지하기 위해 그곳에 한데 모였다.((원주2.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여성을 다룬 것으로는 Hilda Scott, Does Socialism Liberate Women?: Experiences from Eastern Europe (Boston: Beacon Press, 1974) 참조. 사회주의-페미니즘 조합의 발생에 대해서는 “The Berkeley-Oakland Women’s Union Statement,” in Capitalist Patriarchy and the Case for Socialist Feminism , ed. Zillah Eisenstein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79) 참조.))

우리는 맑스주의 이론을 좀 고쳐서 여성의 경제적 위치를 분석하고 해명하는 데 더 잘 사용될 수 있도록 했다. ‘가사노동 논쟁’에서 우리는 집안일이 생산적 노동이 되어 자본가를 위해 잉여가치를 만들어내는지 아닌지를 검토했다(논쟁에 대한 명확한 결론은 내리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맑스의 유물론 분석—‘생산과 재생산의 양식’을 구체화하는 분석—을 사용하여 가정관리와 육아라는 여성의 무급 노동을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의 일부로서, 따라서 혁명적인 조직화에 핵심이 되는 것으로서 분석했다. 이 논의들은 ‘가사노동에 임금’을 요구하는 운동을 활성화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 논쟁이 하나의 이론적 틀을 중심으로 한 합의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을지라도 여성의 무급 돌봄 노동을 경제적·사회적 삶의 핵심적인, 그러나 저평가된 측면으로서 부각시키고 확증했다.((원주3. Julie Matthaei, “Marxist-Feminist Contributions to Radical Economics,” in Radical Economics , eds. Susan Feiner and Bruce Roberts (Norwell, MA: Kluwer-Nijhoff, 1992), 117–144. 이 생각들은 가령 Nancy Folbre, The Invisible Heart: Economics and Family Values (New York: New Press, 2001)에서 더 발전된다.))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사회 전반적인 계급 억압 및 젠더 억압이 현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떤 때는 두 가지가 일제히 작동하고 다른 때에는 자본주의 발전이 결혼한 여성들을 유급노동자로 끌어들일 때처럼 그 둘이 서로를 침식한다.((원주4. Heidi Hartmann, “The Unhappy Marriage of Marxism and Feminism: Towards a More Progressive Union,” in Women and Revolution , 1–42와 Ann Ferguson and Nancy Folbre, “The Unhappy Marriage of Patriarchy and Capitalism,” Women and Revolution , 313–338 참조.)) 두 억압 모두 맑스주의와 페미니즘이라는 두 갈래 운동에 의해 분석되고 극복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남성지배에 저항하는 여성을 조직화하고 계급지배에 저항하는 노동자를 조직화함으로써 서로 엮여있는 두 가지 경제 시스템인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대항하는 이중의 투쟁을 주장했다. 이런 유형의 분석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둘 다를 공존하면서 서로 얽혀있고 억압적인 시스템으로 인정하는 분석—이 ‘이중체계이론’(dual systems theory)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중체계이론을 채택하면서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혁명이나 체계 변화에 대한 맑스의 기본적인 분석을 받아들여 확장했다. 우리는 경제적 변형을 억압받는 집단에 의한 투쟁으로 추동되는 혁명 과정으로 바라보는 맑스의 견해에 찬성했다.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이 혁명의 주체인 노동자를 여성으로 대체했지만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계급투쟁을 혁명의 핵심적 측면으로 받아들였고 여성을 두 번째 피억압 집단으로 노동자에 포함시켰다. 우리는 여성들이 해방되기 위해 급진적인 변형을 필요로 하는 두 개의 억압 시스템—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을 개념화했다.

 

3. 상호교차성과 정체성에 기반을 둔 혁명적 정치의 붕괴

이중체계이론이 맑스주의와 페미니즘 사이의 ‘하이픈을 녹여버리는’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그리고 모든 페미니스트들)은 곧 유색인 반(反)인종주의 여성들의 분명한 도전에 직면했다. 유색인 페미니스트들은 ‘자매애’ 내지 여성에 기반을 둔 정체성 정치라는 백인 페미니스트들의 개념들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들은 페미니즘 운동 내에서의 인종주의를, 특히 백인 여성들이 지도자 지위를 독점하는 것과 백인 여성들의 관점에서 ‘여성의 문제들’을 정의하는 것을 지적했다.((원주5. 선구적인 책들에는 Cherie Moraga and Gloria Anzaldua, This Bridge Called My Back (London: Persephone Press, 1981)과 bel hooks, Feminist Theory: From Margin to Center (Cambridge, MA: South End Press, 1984)가 포함된다.))

설상가상으로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도 페미니즘 운동에서 동성애 공포증에 항의하고 있었다. 두 집단은 백인과 이성애 페미니스트들에게 인종차별주의와 동성애 혐오에 반대한다고 솔직하게 자기입장을 밝힐 것과 그들의 실천, 강령 및 이론에 이러한 입장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여성의 억압을 자연에 대한 지배와 연결시키는 에코페미니즘은 맑스주의-페미니즘적 담론에 또 다른 차원의 복잡성을 추가했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여성되기의 확장으로서 생태운동에 참가할 것을 여성들에게 호소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요청에 따랐다. 풍부한 내용의 좌파 에코페미니즘적 분석이 발전했다. 캐롤린 머천트(Carolyn Merchant)는 『자연의 죽음』(The Death of Nature)에서 자연의 지배는 서구 과학이 출현할 때 여성의 대상화 및 여성에 대한 지배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7 뛰어난 저서인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에서 마리아 미스(Maria Mies)와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는 기본적인 생활필수품들을 공급하는 것을 중심으로 운동들의 연합을 제안하면서 계급, 젠더, 남/북, 흑인/백인 그리고 인간/자연 사이에 일어나는 지배와 폭력을 상호연결된 현 세계체제의 부분들로서 종합적으로 분석해냈다.((원주7. Maria Mies and Vandana Shiva, Ecofeminism (London: Zed Books, 1993).))

지구상의 선진지역(Global North)과 지구상의 후진지역(Global South) 사이의 분할 또한 대두되었다. 유엔이 정한 ‘여성을 위한 10년’(United Nations Decade for Women, 1975–1985) 동안 전 세계 페미니스트들이 세 번의 전 세계 회의에서 함께 모였다. 우선사항에서의 엄청난 차이들이, 특히 노동력과 재생산권에서의 평등권에 중점을 두는 선진지역 여성들과 신식민주의와 가난을 우려하는 후진지역 여성들 사이의 차이가 표면화되었다. 이런 차이들로 인해 페미니스트들은 초국적 페미니즘 네트워크를 구축하려고 노력할 때 여성 문제에 관한 그들의 관점을 확장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계급지배(남북 문제)를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다.((원주8. Valentine Moghadem, Globalizing Women: Transnational Feminist Networks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05).))

관점을 넓히는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중요한 페미니즘 개념인 상호교차성이, 즉 인종•젠더•계급•민족 및 우리의 ‘자연’관조차 상호적으로 결정된다는 생각이 생겨났던 것이다. 페미니즘 및 반인종주의 활동가이자 법학자인 킴벌리 크렌쇼(Kimberlee Crenshaw)가 이 용어와 가장 관련이 있지만, 이 개념의 배후에 있는 사고는 인종•계급•민족•섹슈얼리티 등의 차이를 가로질러 함께 페미니즘을 조직하고자 하는 다양한 여성 집단들의 경험에서 나왔다. 그들은 여성다움에 대한 공통의 경험― 가시적으로 명백하거나 조직화의 중심 원리가 될 수 있거나 요구 창출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그러한 공통적 경험―이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다시 말해 여성이 된다는 것의 의미가 인종•계급•섹슈얼리티•국가 등을 가로지르면서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흑인이나 노동계급이 겪는 경험에 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각 경험은 독특한 차원의 억압에서 나오지만 다른 차원들과 별개로 이해될 수 없다. 엘리자베스 스펠먼(Elizabeth Spelman)이 언급하듯이 젠더•인종•계급은 정체성이라는 목걸이의 ‘팝비즈’(([옮긴이] pop beads : 각기 다른 모양을 한 장난감용의 구슬들로서 자유롭게 꿰었다 분리했다 할 수 있다.))가 아니다.((원주9. Elizabeth Spelman, Inessential Woman: Problems of Exclusion in Feminist Thought (Boston: Beacon Press, 1988).))

상호교차성의 인식은 맑스주의-페미니즘과 페미니즘적 조직화 일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주류 페미니즘 및 맑스주의-페미니즘의 기반이었던 정체성 정치—여성은 남성에 의해 그리고 남성과 비교해서 억압받고 있다는 사고—는 여성의 경험을 분할하고 계층화하는 다른 형태의 억압들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했었다. 하지만 이 기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억압 체계들을 간과하는 것은, 백인이며 이성애자이고 선진지역에 사는 중산층의 전문직 여성의 경험과 욕구에 특권을 부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페미니즘 운동이 계급, 인종-민족, 남-북 및 여타 형태의 불평등을 어떻게 재생산하고 있었는지를 보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젠더뿐만 아니라 인종•민족•계급•성정체성이 그리고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사고방식이 여성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페미니스트로서 함께 만날 때에 이 차이들이 드러나고 여성들을 계층화하고 분열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들에게 재계에서 성공하는 법을 조언하는 페이스북 최고 경영자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의 책 『린 인』(Lean In)에 관한 페미니즘 논쟁을 생각해 보라. 이 책은 많은 교육을 받고 경제적 지위가 향상된 여성들에게 두려움을 떨쳐내고 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유리 천장을 깨는’ 법에 대해 알려주지만 이 성공 공식은 피부색과 무관하게 노동계급과 가난한 여성들에게는 애초에 가능성이 없는 공식이다. 한 좌파 페미니스트 블로거가 말했듯이, 페미니즘적 노력에서 우선해야 할 것은 유리 천장(([옮긴이] 유리 천장(琉璃 天障, glass ceiling)은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직장 내 성 차별이나 인종 차별등의 이유로 고위직을 맡지 못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경제학 용어이다. [한국어 위키피디아]))을 깨는 것이 아니라 ‘집의 지하실이 물에 잠기고 있는’ 가난한 여성들을 옹호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원주10. Laurie Penny, “Don’t Worry about the Glass Ceiling—the Basement is Flooding,” New Statesman , July 27, 2011, https://www.newstatesman.com/blogs/laurie-penny/2011/07/women-business-finance-power.))

상호교차성을 인식하는 것으로 단순한 정체성 정치에 종지부를 찍었다. 여성다움에 대한 보편적인 경험이 없다면 (이는 분명히 사실이다) 여성들은 조직화를 통해 가부장제를 전복시킬 수 있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동질적 계급을 구성할 수 없다. 노동자들이 조직화를 통해 자본주의를 전복시킬 수 있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젠더와 인종을 가로지르는) 동질적 계급을 구성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으로, 젠더 억압의 경험은 변화를 위한 투쟁에서 다른 차이의 선들을 가로질러 여성들을 한데 모으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여성들은 다른 불평등들이 존재하는 정반대되는 양극단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정체성 정치는 다양하게 억압받고 있는 여성들을 정체성에 기반을 둔 별개의 집단으로 분열시킨다. 이 집단들 각각의 내부에서 갈등이 더 일면서 더 심화된 분열을 조장한다. 페미니즘의 갈래들 사이에서 일어난 이와 같은 정체성에 기반을 둔 분열이 바로 페미니즘의 새로운 ‘제3물결’을 정의하는 특징이 되었다. 백인남성 좌파들의 악몽—페미니즘이 사회주의 운동을 갈라놓고 파괴할 것이라는 생각—이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다.

사회운동과 혁명적인 체계 변화에 대한 비전의 토대인 정체성 정치가 와해된 것은 사회주의 혁명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다른 역사적 변화들과 동시에 일어났다. 마가렛 새처(Margaret Thatcher)와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은 1979년과 1980년에 각각 반혁명을 시작했다. 노동계급과 환경을 파괴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새처가 보인 반응은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였다. 레이건이 대통령으로서 한 첫 행동은, 오늘날에도 미국 노동역사에서 그 파문들이 계속되는 악명 높은 사건인 항공 교통 관제사 조합의 파업을 중지시킨 것이었다. 1990년대가 되면 찰스 코크(Charles Koch)와 다른 우파 기부자들—이들은 케인스 학설과 정부규제를 거부했고 ‘자유시장’을 수용했다—이 자금 지원을 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힘을 얻어 자본이 의기양양하게 지배하게 되었다.((원주11. Nancy MacLean, Democracy in Chains: The Deep History of the Radical Right’s Stealth Plan for America (New York: Viking, 2017).))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혁명의 불꽃은 사그라들었다. 노조조직률은 조립라인의 해외 이전과 하향경쟁에 굴복하여 급속하게 하락했다. 소련의 민주주의 실패 및 해체 그리고 가차 없는 정치적 공격에 직면한 노동운동의 쇠퇴와 함께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널리 인용되는 자신의 책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 1992)에서 공산주의와 맑스주의가 죽었다고 선언했다. 맑스주의, 사회주의 및 맑스주의(사회주의)-페미니즘이 모두 구식이 된 것이었다.

 

4. 연대정치의 부상

제3물결을 특징짓는 페미니즘의 분열로 많은 사람들은 페미니즘이 죽어가고 있거나 죽었다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정체성에 기반을 둔 다른 사회 운동과의 연계를 통해 좀 더 복잡한 새로운 형태의 정치, 즉 정체성 정치를 기반으로 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연대정치’가 부상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페미니스트들, 특히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에게 상호교차성이 제기하는 과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페미니즘의 실천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페미니스트들인 우리는, 우리의 운동 내부와 사회에서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다른 형태의 억압들 또한 인정하지 않거나 뿌리 뽑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여성들을 한데 모아 여성해방을 위해 싸우는 데 나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페미니즘을 남성들의 억압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투쟁으로 바라보는 정치를 넘어서, 우리의 운동들로부터 그리고 우리의 경제와 사회로부터 모든 억압의 형태들—가부장제, 인종주의, 계급 차별주의, 동성애 혐오증, 장애자차별, 신식민주의, 종(種)차별주의 등—을 끝내고자 하는 연대정치를 향할 필요가 있다. 이 부상하는 연대정치는 모든 불평등의 형태를 해체하고자 하는 공유된 목적을 갖고 모든 불평등을 가로질러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연대정치는 페미니즘 운동만이 아니라 일차원적 견해의 부적절성에 부딪혀 상호교차성의 문제와 씨름하는 다른 사회운동들 안에서도 발전해왔다.

페미니즘 내부에서의 이 핵심적 전환은 또 다른 형태의 연대정치가 각 사회운동 내부가 아니라 사회운동들 사이에 유대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바로 그 때에 발생했다. 전 세계 사회운동과 NGO 단체들은 노동자•여성•환경 그리고 지구상의 후진지역을 사정없이 파괴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싸우기 위해 ‘운동들의 운동’(movement of movements)에서 한데 모이기 시작했다. 이 ‘운동들의 운동’은 1999년 세계무역기구(WTO)에 반대하는 ‘시애틀 전투’에서 전지구적으로 이목을 모았고 세계무역기구,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의 다른 회의들에 대한 항의로 계속 이어졌다. 2001년에 여성운동, 노동자운동, 환경운동, LGBTQ 운동, 평화운동, 농민운동, 토착민운동 및 여타 사회운동들이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모토 아래 제1차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에서 모여서,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전지구적이고 지역적인 조직화의 물결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세계사회포럼 운동의 핵심 원리는 모든 형태의 착취와 억압을 거부하는 것, 다시 말해 연대정치였다.((원주12. “World Social Forum Charter of Principles” 2002, http://www.universidadepopular.org/site/media/documentos/WSF_-_charter_of_Principles.pdf의 제10 원칙 참조.))

이런 식으로 연대정치는 페미니즘 (그리고 다른 사회 운동) 내부에서 그리고 이 운동들을 한데 모으는 ‘운동들의 운동’ 내부에서 발전해오고 있다. 개인과 조직들이 계속해서 구체적인 초점—특정 억압 유형(젠더, 인종, 계급 등) 내지 특정 쟁점(식량, 의료서비스, 재생산의 자유, 기후변화)—을 가지면서도 점점 더 이 초점을 모든 억압형태에 저항하는 공통의 투쟁 양상들 가운데 하나로 이해한다. 따라서 맑스가 사회주의의 건설자로서 마음에 그렸던 동질적인 산업 노동계급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포괄적인 혁명의 주체, 즉 서로 연결되고 상호적으로 결정하는 일단의 사회 운동들이 등장했다. 이 변혁 주체는 어떤 쟁점을—그저 특권계급에 속하는 소집단이 아니라—억압받는 모든 사람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그 쟁점을 현재의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를 특징짓는 다수의, 상호의존적인 불평등 및 억압형태들을 해체하고 변형하는 과제에 부합시킨다.

여기서 연대정치의 세 가지 양상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연대정치는 여성 운동 같은 정체성 정치에 기반을 둔 운동들로 하여금 그 리더십과 정책형성에서 억압받는 하위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손을 뻗쳐 그들을 끌어들이도록 만든다. 이것이 체면치레처럼 보일지라도 성심으로 실천한다면 그것은 다양한 형태의 억압을 받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들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지배적인 소집단(예를 들어, 이성애자인 전문직 백인 여성들) 사이에서 그리고 조직의 이론들 및 강령에서 특권 때문에 발생하는 편견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

둘째, 목표대상이 지배집단—즉 “남성들(혹은 1% 혹은 백인들)은 적이다”—에서 특정한 구조적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영속시키는 사회적 개념들, 관행들 및 제도들로 바뀐다. 이것은 정체성 정치 집단들이 상호교차성과 씨름할 때 이 집단들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예를 들어, 동성애 혐오증과 인종차별주의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페미니스트 집단에서 레즈비언들은 동성애 혐오증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이성애적 여성들을 보게 되고 유색인 여성들은 인종차별주의를 반대하는 백인여성들을 목격한다. 미국에서 경찰의 만행에 대응하여 등장했고 인종의 정체성 정치에 기초를 두고 있는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운동(([옮긴이] BLM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향한 폭력과 제도적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이다. BLM은 경찰에 의한 흑인의 죽음, 인종 프로파일링, 경찰의 가혹행위, 미국의 형사 사법제도 안의 인종간 불평등 같은 광범위한 사안들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항의집회를 연다. [위키피디아] ))은 구성원들의 상당 부분이 백인 ‘동지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과정의 훌륭한 예에 해당한다.

셋째, 연대정치는 서로 다른 운동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한 운동 내부의 서로 다른 갈래들 사이에서도 연합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억압들의 상호교차성은 불가피하게 정체성 정치 집단, 예를 들어 ‘여성들’ 내부에서 불평등한 관계를 되풀이한다. 억압받는 소집단들이 내부에서 세계와 자신들에 관한 해방적인 인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들, 위원회들 및 조직들을 스스로 창출하고, 그 다음에 여타의 섞여 있지만 대부분 백인/중산층/이성애적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집단과 함께 연합하여 공유된 페미니즘적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은 정상적이고 건강한 일이다.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에는, 그 문제가 풀리려면 전체론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다양한 층의 시민들에 의해 접근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구조적인 뿌리가 있다는 것을 주요 사회운동들이 점차 알게 되면서 이 사회운동들 사이에서의 연합 또한 발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취임한 다음 날 열린 <여성 행진>(The Women’s March)은 정체성 정치와 연대정치 사이의 이런 관계를 보여주는 완벽한 예였다. ‘여성들의’ 행진으로서 그것은 명백히 정체성 정치에 뿌리를 두고 있었지만 또한 연대정치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여성 행진’의 조직화를 시작한 것은 백인여성들이지만 그들은 ‘전국 공동 의장들’(National Co-Chairs) 및 ‘조직가들’(Organizers)로 이루어진 다양한 집단을 구성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사이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우리 모두를 지키는 것임을 알기에 우리는 함께 서 있다”라고 주장한 ‘여성 행진’의 선언문에서 상호교차성에 기반을 둔 페미니즘이 가장 주목 받는 위치를 차지했다. 그 통합원리는 “젠더정의는 인종정의이자 경제정의이다”였고, 이민자의 권리, 시민권, LGBTQ의 권리, 장애자 및 노동자들의 권리뿐만 아니라 여성의 권리와 환경정의에의 헌신이 전면에 부각되었다. 시민권, 노동, 기후행동 조직들을 포함하여 300명이 넘는 ‘여성 행진’의 후원자들은 페미니즘을 서로 연결되고 상호간에 힘을 주는 ‘운동들의 운동’의 일부로서, 즉 연대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그러한 종류의 운동으로서 자리매김했다.((원주13. “Women’s March 2017,” accessed August 30, 2017, https://www.womensmarch.com.))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딛은 <여성 행진>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영감을 고취하며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전 대륙에 있는 60개국에서 이루어진 600개가 넘는 후속 여성 행진들에서 행진한 여성들의 수는 총 500만 명으로 추산되었다.((원주14.Together We Rise: The Women’s March: Behind the Scenes at the Protest Heard Around the World (New York: Dey Street Books, 2018), 215 –216.))

 

5. 연대정치에서 연대경제로

상호교차성과 씨름함으로써 페미니즘과 여타 진보적인 사회 운동들은 사회 전반에 걸친 모든 불평등과 억압에 저항하는 정치에 이르게 되었다. 연대정치가 경제적•사회적 변형을 위한 강력한 도구인 것은 모든 사회적 실천과 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모든 유형의 불평등을 인지•거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적 시선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상호교차성의 관점에 기반을 두고 특정 사회문제를 중심으로 모일 수 있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은 페미니즘 연대정치의 훌륭한 한 예로, 세 명의 흑인여성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흑인들에게 가해지는 국가 폭력을 끝내려는 데 집중하면서도 우머니즘적,(([옮긴이] ‘우머니즘’(womanism)은 제2물결 페미니즘 운동이 흑인여성들 및 여타 주변화된 집단의 여성들의 역사와 경험에 관해서 보여준 한계의 발견에 기반을 둔 사회이론이다. 앨리스 워커(Alice Walker)가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In Search of our Mother’s Gardens: Womanist Prose)에서 ‘womanist’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 퀴어/트랜스적 관점 또한 긍정했다.((원주15. www.Blacklivesmatter.com/about/ 참조.))

연대정치는 자연스럽게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억압이 한 사람의 경험에서 또는 어떤 특정한 사회적 관행 내지 제도에서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에 대한 인식은, 억압적인 관습과 제도가 경제적•사회적 총체 내부에서 결합하고 상호작용하는 체계적인 방식에 대한 이해로 진화한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의 경우, 경찰의 만행에 대한 비판적 저항이 학교 시스템과 감옥산업복합체(the prison industrial complex)에 대한 비판으로 진화했다.

페미니즘(과 여타) 연대정치의 발전에서 다음 단계로 취해야 할 중요한 행동은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비전과 그곳에 도달하는 방식을 중심으로 단결하는 것이다. 그런 비전에는 연대정치를 실천하는 페미니스트들 및 여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지금 여기서 구체적으로 사회구조의 변화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포괄적인 사회체계 변형의 비전이 없던 미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지배적인 시스템 내부에서 동등한 기회요구― 가령 남성들이 독점한 경제적 위계의 상부에 여성들이 진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 그로 인해 페미니즘은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적인 규칙을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는 운동으로 축소되고, 노동력에서의 차별과 재생산권의 결여로만 여성의 억압을 규정한다. 최악의 경우에 이 접근법은 페미니즘을 ‘유리 천장을 깨는 것’, 즉 소수의 여성들이 남성들이 하는 대로 일을 함으로써, 거의 항상 이런 방식으로 최고의 자리에 접근하는 것으로 축소시킨다. 여성의 상호교차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성차별에 인종 및 계급차별을 추가해서, 가령 유색인 여성이 높은 급여를 받는 기술직에 진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때조차 우리는 아직도 경제의 기본적인 구조를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구조는 여성과 그 가족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긴 하지만 ① 경제 위계의 밑바닥에서 여성이 받는 부족한 임금 ② 가족을 돌보는 무보수 노동의 착취와 예속 ③ 소수의 소유자들의 이익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인 생산 시스템 조직화 ④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생태계 파괴라는 여러 중요한 면에서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회의 균등’을 비판하고 뛰어넘으며 체계 차원의 경제적 변형을 추구하는 페미니즘적 변형의 다른 비전, 즉 연대경제 운동이 출현했으며 현재 탄력을 받고 있다. 성장세를 타고 있는 이 운동은 1990년대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출현했고 특히 ‘새로운 경제’(New Economy) 운동, ‘쑤막 까우쎄이’/‘부엔 비비르’(Sumak Kawsay/Buen Vivir)(([옮긴이] ‘쑤막 까우세이’(Sumak Kawsay)는 스페인어 ‘buen vivir’에 해당하는 케추아어이다. 영어로는 ‘good living’, ‘well living’의 의미이다.)) 및 ‘공동체 경제’ (Community Economy) 운동과 겹쳐지는 세계사회포럼 운동을 통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원주16. 연대경제에 대한 개관들로는 Allard, Jenna, Carl Davidson, and Julie Matthaei, Solidarity Economy: Building Alternatives for People and Planet (Chicago: Changemaker, 2008), Emily Kawano, Thomas Neal Masterson, and Jonathan Teller-Elsberg, Solidarity Economy I: Building Alternatives for People and Planet (Amherst, MA: Center for Popular Economics, 2010) 그리고 Peter Utting’s edited collection, 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Beyond the Fringe (London: Zed Books/UNRISD, 2015) 참조. <사회적 연대경제 증진을 위한 대륙간 네트워크>(the Transcontinental Network for the Promotion of the Social Solidarity Economy, RIPESS, www.ripess.org)와 <미국 연대경제 네트워크>(the US Solidarity Economy Network, www.ussen.org)도 훌륭한 참조처이다.))

연대경제의 틀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시장경제 내부에 이미 현존하는 해방적인 경제활동과 제도들을 포착하고 그것을 통합적인 신흥 ‘연대경제’의 일부분으로 간주한다. 연대경제에서 기본적인 통합 기준은 경제적 실천이나 제도에 의해 구체화된 가치들이다. 연대적 가치의 목록에는 협력, 모든 차원에서의 공평, 정치적•경제적 참여 민주주의, 지속 가능성 및 다양성/다원주의가 포함된다. 이 틀은 어떤 특정한 관습이나 제도가 모든 가치 혹은 어떤 특정한 가치에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을 것임을 인정한다. 연대경제에 기반을 둔 이 차원들 각각은 스펙트럼 상의 특정한 위치에 놓여 있다. 체계변형을 위한 투쟁에는 우리의 경제활동과 제도들이 이 스펙트럼 위에서 불평등에서 연대의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포함된다.

모든 부류의 협동조합들(노동자•소비자•생산자 협동조합)이 연대경제의 핵심적 구성요소를 포괄하듯이,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소비패턴을 촉진하도록 노력한다면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목표 쪽으로 투자가 이동할 것이며 기업도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방향으로 재설계될 것이다. 공동체 텃밭에서부터 버려진 공장이나 땅의 인수 및 공동체 통화 창출에 이르기까지 많은 대표적 실천들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적인 경제제도의 실패에 대응하여 한데 모이면서 생긴 것이다. 본질적으로 연대경제는 경제에서의 연대정치를 표현한다.

전통적인 맑스주의의 혁명관과는 대조적으로 연대경제의 틀은 자본주의의 혁명적인 전복을 기다리기보다 지금 당장에 사회 전반에 걸친 경제적 변형에 참여하도록 사람들을 북돋운다. 연대경제는 자본주의적인 제도와 나란히 시장 내부에서 심지어 그 제도 내부에서도 번성하고 있다. 긍정적인 체계적 변화에 참여하여 그런 변화를 만들어내는 방식들은 넘치도록 많다. 이런 유형의 변화에 적절한 용어가 혁명/진화(r/evolution)인데, 체계 수준에서 작동한다는 면에서 혁명적이지만 점진적으로 일어날 필요가 있다는 의미에서 진화적이다. 이 변화가 다차원적이고, 다부문적이며 다층적(미시적이고 거시적)이기 때문이다.

 

6. 페미니즘과 연대경제

연대경제의 틀은 심층적으로 페미니즘적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백인 남성이 지배하는 영역으로 구축되어 있으며 전통적으로 남성적인 특성을 가지는 경쟁―이기기 위한, 다시 말해 다른 남자들을 ‘능가하’거나 지배하기 위한 투쟁―에 의해 규정된다. 남성은 기업가•농부•노동자로서 돈을 추구하는 경제에서 서로 경쟁함으로써 가족을 부양했다.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는 (백인) 남성의 이상형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부와 권력을 가진 꼭대기의 경제적 계층이 되는 데 성공한 사람이었다. 기업은 노동자, 소비자 및 생태계의 요구를 냉담하게 무시하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생산의 형태로 이 편협한 물질주의적인 이기심이라는 에토스/정신을 구현했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여성의 무급노동과 평가 절하된 노동으로, 또는 여성들이 주를 이루는 저임금 서비스 일로 한정되었다.

연대경제는 남성이 지배하는 경제의 핵심구조에 전통적으로 다른 사람을 돌보는 여성의 일을 투입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자본주의적 시스템에서 경제활동은 자본가의 부를 증가시키도록 구조화된다. 기업의 소유주와 경영자들은 그들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에 사실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해고되어 생계를 빼앗기고, 소비자들은 조종당하고 잘못된 정보에 휘둘리게 되며 환경은 파괴된다. 이 모두가 사업의 정상적인 일부분인 것처럼 이루어진다. 많은 페미니즘 경제학자들이 공언한 것처럼 경제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또한 경제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사람과 비인간 생물 사이에서 상호간에 배려하는 유익한 관계를 촉진해야 한다. 연대라는 용어를 부각시키는 연대경제의 틀은 연대정치가 향하고 있는 새로운 시스템의 이런 핵심적인 측면을 긍정한다.

이와 연관하여 경제의 주체가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검토하는 것이 연대경제를 페미니즘 프로젝트로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본주의는 중상류층 백인들 가운데 남편/가장으로서 남성 경제인과 아내/어머니/주부로서 여성 경제인으로 경제의 주체를 양극화한 것에 기반을 두었다. 전형적인 남성 경제인의 노동은 생계비를 버는 일이었다. 즉 적어도 가족 임금을 벌고 경제적 지위가 높아지며 경쟁력 있는 소비에 지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장’에서의 유급노동이었다. 전형적인 여성 경제인의 노동은 육아를 포함해서 가정에서 무급 노동을 직접 하거나 감독함으로써 남편과 가족을 돌보고 그들에게 봉사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연대경제의 주체에게는 남성 주체와 여성 주체의 최고의 측면들이 혼합되어 있다. 일과 사업활동은 생계 수단, 자기표현 및 자기 개발(초개인주의와 경쟁으로 구성되는 자본주의적인 남성성을 뛰어넘는 긍정적인 형태의 남성성)의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사회 및 세상에 봉사하고 도움이 되는(자기 예속을 수반하지 않는 긍정적인 형태의 여성성) 길이 된다.

결과적으로 돌봄 노동 자체의 관행을 변형시키는 것은 연대경제와 ‘거대한 이행’을 깨닫는 데 필수적이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전통적으로 권위적인 자녀양육을 통해 지배와 종속의 두 역할이 산출되며 이는 다시 전통적인 학교 교육을 통해서, 그 다음에는 자본주의적이고 권위적인 회사에서 재생산된다. 불평등한 지배와 복종 관계는 아내 위에 남편 그리고 아이들 위에 부모로 이루어진 가족에서 시작된다. 아이들은 교사가 지도하고 평가하는 학교에 다니고 그 후에는 상관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직장에 다닌다. 우리가 경제를 상호적으로 유익하고 평등한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으로 바꾸려면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남을 지배하라거나 종속되라고 가르치기보다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긍정하는 법, 자립하는 법 및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돌보는 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부모들은 위세를 부리는 존재(전통적인 아버지)이거나 굴종적인 존재(전통적인 어머니)이기보다 그들 자신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긍정적인 상호관계를 모형화함으로써 가르칠 필요가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의 전통적인 돌봄 노동과 저임금의 돌봄 일에 재정적 지원을 해 줄 것을 주장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보살피기•양육•돌봄을 사회를 변형시키는 페미니즘의 렌즈 밑에 둘 필요가 있으며 체계 차원의 변화를 꾀하는 우리 일의 일부로서 우리 모두가 그 일을 더 잘하도록 도와줄 혁신적인 방식을 찾을 필요가 있다.

 

7. 결론

진정한 페미니즘—모든 여성을 해방하고자 하는 페미니즘—은 연대정치, 연대경제 및 혁명/진화로, <거대한 이행 기획>에서 설명된 것처럼 전지구적 시민운동으로 거침없이 이어진다. 여성과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계속해서 이것을 긍정하고 연대정치를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페미니즘이 온전히 페미니즘적이고자 한다면 혁명적/진화적이어야 한다. 더군다나 모든 진보적인 운동은 반드시 눈을 크게 뜨고 상호교차성의 문제와 씨름해야 하며 조직 내부에서 그리고 조직화과정에서 마주치는 모든 형태의 불평등—남성 지배 및 젠더 억압을 포함해서—을 뿌리 뽑는데 전념해야 한다.

‘운동들의 운동’은 새로운 세계 극장에서 주연배우이지만 아직 대다수 사람들은 이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저항에서 구성으로, 우리가 반대하고 있는 것에서 우리가 찬성하는 것으로 렌즈를 계속해서 바꾸어야 하며 전 세계 많은 연대경제의 사례들로 우리 스스로를 격려해야 한다. 역사상 이 시기의 페미니스트들과 모든 진보주의자들에게 중요한 임무는, 진보적인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시너지 효과를 가진 연계된 대열에 동참하도록 고무하기 위해서 혁명적/진화적인 전진방식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