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 : 변형의 씨앗들



 

2018년 6월 말에 나는 <도시랩>(Laboratorio Para La Ciudad, City Lab)을 통해 미래연구와 관련된 여러 가지 과제로 시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멕시코시티(CDMX)에서 1주일을 보냈다.

가브리엘라 고메즈-몬트(Gabriella Gómez-Mont)가 설립해 지금도 운영하고 있는 <도시랩>은 시장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멕시코시티 정부의 실험적인 부서/창조적인 싱크탱크이다. <도시랩>은 도시개발을 위한 기술과 전략 면에서 매우 혁신적이다.

<도시랩>은 도시의 모든 것에 대해 성찰하고 서반구에 위치한 가장 큰 메갈로폴리스에 어울리는 사회적 대본(social scripts) 및 도시로서의 미래를 연구하는 곳으로 도시의 창조성, 이동성, 거버넌스, 씨빅 테크(civic tech, 시민을 위한 기술), 공적 공간 등과 같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서 연구하고 있다. 또한 <도시랩>은 다학제간 협동을 수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고 있으며, 이 실험을 실행할 때 정치적•공적인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시민사회와 정부 간의 연결고리를 창출하려고 하고 있다.(([옮긴이] http://directorsfellows.media.mit.edu/fellow-profiles/gabriella-gomez-mont/))

나는 1주일 동안 <도시랩>의 <오픈시티> 팀인 란다(Gabriela Rios Landa), 델가도(Valentina Delgado), 무뇨스까노(Bernardo Rivera Muñozcano) 그리고 메이(Nicole Mey)와 함께 작업했다. 그들이 하는 일, 헌신 및 창조성에 굉장히 감동을 받고 돌아왔다. 내가 요청받은 일은 매우 다양했으며 내가 전문으로 하는 다음과 같은 일과 관련되어 있었다.

1. ‘열린 도시로서의 멕시코시티’라는 비전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소 사람들 및 주요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비전만들기 워크숍을 운영하기. 이것은 포괄적이고 참여적인 방식으로 도시개발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2. ‘설계를 민주화하기’에 관하여 강연하기. 이 강연에서 나는 P2P 재단의 관점으로 설계와 코스모지역화(cosmo-localization)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혁명들’을 논의했다.

3. 멕시코시티의 인공지능에 적용하기 위한 예측 거버넌스 전략을 개발하는 설계 세션을 운영하기

4. 또한 나는 커먼즈로서 도시와 공동-거버넌스, 비전 매핑 및 예측실험/브리지 방법에 관하여 <오픈 시티> 팀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대단한 한 주였다!

 

비전만들기

비전만들기 워크숍과 관련해서, 우리는 ‘비전 사이클’(vision cycles)이라 불리는 기술을 사용해서 워크숍을 시작했다. 이 기술은 발전의 토대가 된 이전의 비전들(‘사용된 미래들’로 간주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현재의 비전과 그 효과들 그리고 새로 출현하고 있는, 미래를 위한 모든 아이디어들을 발견하는 방식으로 어떤 쟁점의 역사를 맵핑한다. 비전 사이클을 사용한 이후에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미래도시를 그려보는 데 도움이 되는 짧은 시각화 과정을 진행했다. 다음으로 우리는 소헤일 인나야툴라(Sohail Inayatullah)가 처음 개발한 통합적인 비전만들기 방법을 사용하여 선호되는 미래와 버려진 미래를 보고나서 그 다음에 통합된 미래를 개발했다.

세션에서 도출된 한 가지 통찰은 도시에는 많은 자아들이 있다는 것이며 무엇이 도시의 지배적인 자아들이고 어떤 자아들이 버림받았는지를 따져 물어 볼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자아가 버림을 받고 표현할 길이 없을 때 자아의 행위는 침식적이고 파열적이며 선동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도시의 지배적인 자아와 버림받은 자아 사이의 모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갈등이 뒤따를 수 있다. 통합적인 비전 제시 방법은 도시의 지배적인 자아와 버려진 자아의 통합이 어떻게 더 전체론적이거나 더 현명한 개발을 낳을 수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예측 거버넌스

인공지능 같은 쟁점의 경우,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잠재적인 영향은 크게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이 경계가 확연한 여러 영역들(기계 학습•신경망•알고리즘•로봇•자동화 등)을 가로지르기 때문에 정의상의 모호성이 존재하며, 쟁점의 속도도 가속화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랩>은 이 다면적인 쟁점이 관리되고 통제되는 방법에 대한 일단의 정책들을 개발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와 관련해서 그들은 나에게 인나야툴라의 다층적 요인 분석(Causal Layered Analysis, CLA) 방법을 적용하고 나서 그 다음으로 (인공지능에 적합한 예측 거버넌스 틀을 만들 수 있는 구성요소를 제공하기 위해 내가 개발한) 예측 거버넌스 설계 틀(Anticipatory Governance Design Framework)을 사용해달라고 요청했다. 워크숍은 말할 필요도 없이 풍성했는데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끌어 가는 몇몇 핵심 전제, 세계관 및 태도, 그리고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힘을 부여하는 길을 제공하는 새로운 신화 및 비유를 탐구했다.

 

발표들

이것 말고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주제에 대해 발표했다.

커먼즈로서의 도시와 공동-거버넌스. 이것은 발표라기보다 대화였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내가 훨씬 더 많이 배웠다. 이 대화는 내가 가장 크게 배운 사례들 가운데 하나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도시 커먼즈에 관한 크리스티안 이아이오네(Christian Iaione)와 셰일라 포스터(Sheila Foster) 등의 연구를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특히 그들은 도시 커먼즈 관점을 인정하긴 하지만, 그 관점이 볼로냐/바르셀로나/헨트(유럽에서 정치적으로 힘을 가지고 있는 인구가 사는 중소도시들)의 맥락에서 멕시코시티(부자들/권한을 가진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소외된 사람들로 계층이 크게 나뉜 2천4백만 명의 사람들)의 맥락으로 옮겨질 가능성에는 의문을 가졌다. 그들은 또한 단일한/획일적인 도시 비전을 갖기보다는 오히려 멕시코시티의 정신이 획일적인 방안을 거부한다고 느꼈고 헤테로토피아적 미래들(heterotopic futures), 즉 도시 내부에 있는 복수(複數)의 미래들을 위하여 어떤 기회들이 어디에 존재할지를 궁금해 했다. 무수히 많은 집단들, 콜로니아 지역들(colonias),(([옮긴이] 콜로니아(colonia)는 멕시코-미국 국경 지역을 따라 위치해 있는, 미국에도 멕시코에도 속하지 않은 저소득 주택지역이다. [위키피디아])) 공간들로 이루어진 도시로서 멕시코시티는 공간적 다양성과 함께 시간적 다양성도 나타내는데, 이곳에서 콜롬비아 이전 문명은 콜롬비아 이후의 것 그리고 전지구적/신자유주의적인 것과 중첩되고 맞물려 있다. 그래서 멕시코시티는 선형의 시간에 기반을 둔 단일 문화를 거부한다. 미래는 근대주의적인 용어들로 틀지어질 수 없으며 여러 비전들의 생태계를 필요로 한다.

이 비전들의 생태계와 긴밀히 연결되는 것은 다소 유행에 따르는 스마트/디지털 도시 전략의 개시에 대한 우려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 전략이 도시를 개방적•참여적으로 만들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멕시코시티 같은 장소에서 이미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더해주는 역효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했다. 진정으로 ‘열린 도시’는 핵심적인 불평등이 다루어지는 도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대화에서 분명해졌다. 생존경쟁을 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생활임금보다 적은 돈을 벌기 위해 힘들게 일해야 하는 한 도시를 결코 ‘열린’ 것으로 경험하지 못할 것이며 도시에서 교외는 교외 분리 정책에 의거하여 부유층의 주거지로서 거의 제도화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멕시코시티가 그 정치적 구성에 대한 역사적인 크라우드소싱(CDMX’s historic crowdsourcing of their constitution)을 한 것은 중요한 선례가 되었고 거기서 보편적인 기본소득이 제기되었다(하지만 아무래도 입법과정을 통과할 수는 없을 듯하다).

내재된 커먼즈-거버넌스의 핵심 원리 ―이를 미셸 바우엔스(Michel Bauwens)와 함께 한 논문에서 최근에 발전시킨 바 있다―도 발표했는데 나는 삶의 모든 측면의 민주화에 대해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영향이 이 원리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출판 전의 것은 여기서 볼 수 있다).

‘공통 관심사’라는 이 생각은 커먼즈와 커머너의 범위를 확대하는 데 기여한다. 지구의 생명유지 체계의 경우, 커먼즈로서 이 체계가 가지고 있는 가치는 맥락 전환에 의해 활성화되어야 비로소 이 체계가 공동체에 가치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 함축되어 있다. 기후변화 같은 기본적인 쟁점과 관련해서 개인들이 각성하는 바는, 우리 모두가 관심사의 커먼즈(commons of concern)로서 70억의 다른 인간들(및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들)과 대기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에 일어난 일을 통해 우리 각자는 21세기의 이 공유된 관심사에 관여하게 되었다. 지구의 대기는 함축된 커먼즈에서 명시적인 커먼즈로 바뀌었다. 우리의 대기가 모두에게 생존문제가 되었고 갑자기 사람들은, 행동에 뒤따르는 책임감을 갖고서 자신들이 어떻게 이 공유된 관심사에 얽혀있는지를 보는 만큼은 커머너들이 되었다. 이것은 지구 거버넌스의 근본적인 민주화를 암시한다.

내재된 커먼즈-거버넌스의 이런 원리가 그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우리는 이것을 멕시코시티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장시간 토론했다.

비전 매핑과 예측 실험/브리지 방법. 나는 또한 비전 매핑—오픈스트리트맵(OSM)과 지도 인터페이스에 기반을 두고 있는 온라인상에서 편집 가능한 매핑과 비전만들기 과정을 결합시킨 것—에 관한 나의 연구도 발표했다. 연구소의 어떤 팀은 오픈스트리트맵을 이미 어떤 프로젝트에 사용하고 있었으며, 도시 지리와 상상계를 맵핑하기 위해 참여에 기반을 둔 방법을 활용하는 경우와 상당히 겹쳤다. 또한 나는 예측 실험/브리지 방법에 대해 발표했는데, 이 방법은 연구소에서 이루어지는 전반적인 접근법과 매우 일치했다. 이것은 명시적으로 이 연구소가 멕시코시티의 도시 미래를 위하여 새로운 길을 계획하는 과업을 맡은 시 정부 소속의 실험적인 부서이기 때문이다.

 

코스모지역화

나는 코워킹스페이스(coworking space, 개방형 사무실)인 ‘위워크’(wework)에서 코스모지역화에 대해 발표했다. <펩시티 멕시코시티>(FabCity CDMX)와 <미래학>(Futurologi)이 행사를 주관했으며 나는 이 행사에서 벨라스께스(Oscar Velasquez)와 또바르(Inga Tovar)를 만나게 되었다. 대략 50~60명의 사람들과 어울려 형편없는 내 스페인어와 완벽한 스페인식 영어를 자랑할 기회를 가졌다. 내가 P2P 재단에서 동료들과 함께 발전시켜 오고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코스모지역화를 “지역화된 생산을 할 수 있는 하이텍 및 로우텍 능력을 공히 갖추고 있는, 전지구적으로 분산되어 있는 ‘지식 및 설계’ 커먼즈들을 한데 모으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코스모지역화는 세계시민주의에서 끌어 낸 윤리적 전제–좀 더 효율적으로 생계를 창출하고 지역 환경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인간 지혜의 유산이 사람들과 공동체에 의해 보편적으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지역 생산 및 혁신이 서로 지구 커먼즈의 웰빙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에 기초합니다.

나는 인류세(anthropocene) 맥락에서 심층적인 상호화라는 주제에 대해 말했다. 슬라이드는 여기 참조. 오디오는 여기 참조.

그 주 후반에 나는 또바르와 팟캐스트를 했는데 여기서 우리는 <쎈뜨로 유니>(Centro Uni)와 <미래학> 간의 협업인 코스모지역화 즉 ‘설계는 전지구적으로, 제조는 지역에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해당 주제에 관하여 한층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는 식의 팟캐스트였으며 오로지 스페인식 영어로만 진행했다(나는 청중들을 위해 스페인어로 말하려고 했으나 자꾸 영어로 되돌아가서 또바르에게 통역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오디오는 여기 참조.

 

인상과 회상

전반적으로 말해서 나는 멕시코시티 전체에 매우 깊은 감명을 받고 돌아왔다. 멕시코시티는 많은 사회적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정치적 구성을 크라우드소싱하는 것에서부터 (이런 종류로는 아마 지금까지 최대 규모의 실험일 것이다) LGBT 친화적인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지역이 된 것, 보편적인 기본소득 창출을 시도하는 것, 그리고 물론 <도시랩>의 연구에 이르기까지 지성과 진보적 정치의 오아시스이다. 나는 이 도시가 부활과 잠재적인 변형으로 나아가는 변곡점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생존을 위해 매일매일 투쟁하는 대부분 사람들, 즉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내가 희망하는 것이기도 하다.

멕시코시티의 경우, 커먼즈 거버넌스와 코스모지역화의 전망은 멕시코시티의 가난한 사람들이 여러 수준에서 주변화되지 않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이 사실상 그 관건이다. 공동-거버넌스와 도시 커먼즈의 측면에서 보면, 멕시코시티의 개발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자신들이 사는 도시에 대해 결정을 내릴 능력과 도구를 부여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은 원칙에 해당한다. 코스모지역화의 측면에서 원칙은 사업을 하는 모든 공동체가 자신들의 웰빙과 생계를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을 생산할 수 있도록 그 잠재력을 해방시켜주는 것이다.

내가 멕시코시티와의 작업에 관심을 가진 것은 가족사에서 연원한다. 어머니는 콜로니아 지역인 로마(Roma)에서 태어나서 외할머니와 이모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첫 12년 동안을 그곳에서 보냈다.

나는 멕시코시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다. 모두가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어머니와 그녀의 가족에게 삶은 힘겨웠고 그들은 아주 아주 가난했으며 생존을 위해 밤낮 없이 싸워야 했다. 이것은 내 정체성에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멕시코시티를 위해 외국에서 자문하러 온 미래학자라는 상대적인 특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극심한 빈민층 출신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것을, 그래서 다른 면에서 보면 내가 ‘하층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머니와 그녀의 가족에게 ‘출세’란 멕시코시티 중심부에서 부자들을 위해 하녀로 일하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가 불평등과 가난의 흔적으로부터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도시의 전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어떤 것을 다루어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모두가 번성할 도시의 미래에는 버려진 사람들도 통합되어야 한다.

 




몸바사의 빈민가와 디지털 통화



 

케냐에서 두 번째 큰 도시 몸바사(Mombasa)에는 방글라데시(Bangladesh)라는 빈민가가 있다. 여기 살던 아시아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 아시아인은 기반시설의 대부분을 가지고 떠난 상태라고 한다.) 쓰레기로 가득한 시궁창들이 주름진 쇠로 만든 오두막들 사이를 뱀처럼 구불거리며 지나가는 것이 지금 이 빈민가의 모습이다.

이곳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와의 연관을 뽐낼 곳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이 빈민가는 뜻밖에도 현대 화폐와 관련된 거대한 실험장이 되었다. 현재 일주일 동안 방글라데시의 주민들은 모두가 염소, 토마토, 석탄, 숯을 블록체인 기반의 극히 지역화된 디지털 통화들을 사용해서 교역하고 있다. 기획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운이 좀 좋으면 이 디지털 마이크로경제가 이 공동체와 근처의 다른 공동체들을 가난으로부터 빼내줄 것이라고 말한다.

‘방글라-페사’라고 이름 붙은 디지털 토큰은, 케냐에 기반을 두고 이더리움 기반의 뱅코르 프로토콜(Bancor Protocol)을 사용하는 비영리단체인 그래스루츠 이코노믹스(Grassroots Economics)에 의해 8월 7일에 첫 단계로 도입되었다. 이 플랫폼은 암호통화들의 판매자들과 구매자들을 뱅코르 스마트 토큰(Bancor Smart Token)을 통해 연결시켜 주민들이 현금에 재빨리 접근하는 것을 돕는다.

방글라-페사는 2013년 이래 공동체의 신용체계를 살리기 위한 의도로 사용되어온 종이토큰을 보완한다. 뱅코르의 이사이며 그래스루츠 이코노믹스의 창립자인 러딕(Will Ruddick)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의 지역시장은 매주 붕괴하곤 했으며 주민들은 식탁에 올릴 음식을 거의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러딕에 따르면 문제는 케냐 실링의 유통이 수요와 공급을 반영하지 못한 데 있다. 실제로 공급에 의해서 충족되는 지역의 욕구를 반영하지 못했던 것이다. 케냐 실링이 광범한 경제의 흐름에 종속되어 있어서 방글라데시에 유통될 재화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살 현금이 없었던 것이다. 토큰의 판매 이전에는 “상황을 타개할 화폐가 없었”다고 공동체에 방글라-페사의 사용법을 가르치는 방글라데시 주민 오냥고(Emma Onyango)는 말한다.

그래서 그래스루츠 이코노믹스가 공동체와 접촉해서 각 주민마다 200개의 토큰을 만들어 주었다. 이 토큰들은 이자를 발생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유지하려면 지역의 재화를 사는 데 계속적으로 지출되어야 한다. 이것이 시장의 밀물과 썰물에 맞추어진 마이크로경제를 창출한다. 그리하여 내부 교역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속도로 계속된다. 이것이 케냐 실링에 가해지던 압박을 풀어준다. 주민들은 케냐 실링을 이제 다른 곳에, 심지어는 하찮은 것에 지출한다. ”사람들은 지금 회전목마를 타고 있어요’라고 오냥고는 말한다. 안정된 교환수단이 풍부하니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더 안전하게 느낀다. 오냥고는 이렇게 말한다. “죄를 짓는 소년들이 있었어요. 아침에 물에 빠진 새 시체를 발견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밤에 바깥에 나갈 수 있어요. 공동체 안에서 안전하다고 느낍니다. 이것은 하늘이 주신 선물입니다.”

이제 토큰체계는 디지털화되었다. 뱅코르 프로토콜은 토큰의 공급과 가치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알고리즘들을 수용한다. 그런 다음 각 거래를 이더리움 블록체인 위에 안전하게 각인시킨다. 뱅코르 프로토콜은 방글라-페사 소지자들이 그들의 토큰을 다른 통화와 교환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이웃 공동체들과의 교역을 촉진시키고 더 많은 외부의 재화들에의 접근이 가능하게 해준다. 이 프로토콜은 방글라-페사의 가치가 수요 및 공급과 일치하도록 자동으로 조정하는 일종의 부표이다.

뱅코르의 소통 이사인 하인드먼(Nate Hindman)은 이 복잡한 상호교환의 체계는 프로토콜 없이는 계산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래스루츠 이코노믹스는 이 과정을 디지털화함으로써 건강한 지역경제의 시동을 걸고 그것이 확대될 수 있게 한다.

러딕에 따르면 시범 단계가 잘 진행되고 있다. 일단의 점포주들, 생선을 파는 여성들, 학교 교사들이 지금까지 각각 500개의 디지털 토큰을 받았다. 이 토큰들은 이미 종이 바우처 체계를 사용하는 250개의 지역 사업체들에서 재화와 교환될 수 있다. 러딕은 단기 목표는 토큰 소지자들의 수를 1천 명의 스마트폰 소유자들 이상으로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마트폰은 가난한 케냐인들 사이에 놀랍도록 흔하다. 이들은 엠-페사(m-Pesa)라는 인기 있는 모바일뱅킹 앱을 사용한다.)

토큰으로 지불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행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파는 사람에게 특정의 재화나 서비스를 요구하고 적절한 수의 토큰을 뱅코르 앱을 사용하여 전송한다. 그런 다음 거래가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비용이 지출되지 않는) 사이드체인에 각인된다.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은 전자 토큰을 토마토, 차파티[밀가루를 발효시키지 않고 반죽해서 철판에 굽는 빵―정리자], 학자금, 이발, 숯, 쓰레기수거 등과 교환했다.

머지않아 뱅코르는 문자메시지 서비스를 개시하여 스마트폰이 없는 사용자들도 거래를 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그런데 그 서비스 없이도 현재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는 듯하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테크놀로지를 가지고 시스템의 요구에 잘 적응하고 있다.

극적인 사건들도 있었다. 러딕은 2013년에 일단의 공동체 지도자들과 투옥된 바 있다. 종이 바우처를 배급하는 것이 분리주의적 반란에 해당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6개월 동안의 법정 싸움 끝에 러딕 등은 마침내 석방되었다. “어떤 법도 어긴 바 없어요”라고 러딕은 말한다.

그래스루츠 이코노믹스는 신나게 나아가고 있다. 더 멀리 콩고,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에서 공동체에 의해 추동되는 통화들이 속출하면서 곧 우리 모두 블록체인 토마토들을 먹게 될지 모른다.

* 토마토(농산물) 유통에의 블록체인 활용에 대해서는 https://www.eurofresh-distribution.com/news/carrefour-deploys-blockchain-technology-tomato-channel를 참조. 

 




사회를 변형시키는 도시의 힘


  • 저자  :  쏠 트룸보(Sol Trumbo), 닉 벅스턴(Nick Buxton)
  • 원문 : “The power of a transformative city” (2018.5.23)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
  • 분류 : 번역
  • 옮긴이 : 민서
  • 설명 : 트룸보는 경제 전문가이자 2012년 10월부터 <TNI>에서 일하고 있는 정치 활동가로 EU의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에 반대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범유럽 사회운동 구축에 중점을 두고 있다. 2011년 스페인 봉기 이후로 그는 같은 목적과 가치를 공유하는 다른 시민사회 단체와 함께 일하면서 인디그나도스와 오큐파이 운동에도 참여했다. 벅스턴은 의사소통 컨설턴트•작가•활동가이며 암스테르담에 기반을 둔 진보적인 씽크탱크인 <이행연구소>(Transnational Institute, TNI)에서 일한다.

 

사회를 변형시키는 도시의 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2017년 6월에 미국은 파리협정을 탈퇴할 것이라고 발표했을 때 의회가 아니라 도시와 주정부에서 가장 실질적인 반대가 나온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6천 8백만 명이 넘는 미국인을 대표하는 379명의 시장들은 현실을 외면하는 대통령의 태도에 상관없이 자신들은 협정을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파리협정의 내용적 한계를 고려해서 40개가 넘는 도시가 그보다 더 나아가 2050년 이전에 100% 재생 가능 에너지 달성을 목표로 했다는 것이다.

 

이 실천적인 도전은 지구화된 세계에서 도시가 어떻게, 우리가 사는 세계의 다양한 위기에 저항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장소로서 출현하고 있는지를 부각시킨다.

 

도시는 특권적 장소이다.

도시는 사회변형의 요람으로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848년 부다페스트, 스톡홀름 등의 유럽도시에서 일어난 도시반란이었든 1980년대 후반 브라질 노동당의 시의회선거에서의 승리 및 시민참여예산 실험이었든 아니면 보다 최근에 스페인 및 기타 지역에서 부상하고 있는 자치도시운동이든 말이다. 도시는 함께 살아가고 일하는 새로운 방식을 상상하고 집단적으로 조직하는 특권적 장소이다. 신체와 정신이 교류하는 공간이자 아이디어가 급속히 퍼지고 유례없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다.

 

도시를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생각하려는 것이 아니다. 도시는 인간이 만든 여타의 구축물처럼 집중된 권력, 불평등 및 배제 구조를 그 나름으로 가지고 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우리가 오늘날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생각을 틀지었지만 그 사회는 노예제와 가부장제에 기초하고 있었다. 중세 도시국가들은 근대 자유민주주의와 세금에 바탕을 둔 복지체계의 실험실이었지만, 또한 자본주의, 식민주의, 국제금융 및 불공정 교역관계가 등장한 곳이었다. 도시는 도시의 경계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부를 추출하면서 도시 거주자들에게 특권을 제공하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최근 많은 사회적 투쟁들 ―카이로에 있는 타흐리르 광장에서의 ‘아랍의 봄’에서 홍콩의 ‘우산 혁명’까지―의 중요한 무대로 부각되었다. 이것은 도시가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인구의 54%가 넘는 사람들에게 거처를 제공하는 때에 일어났다(2050년쯤에는 67%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 운동과 관련해서 도시는 경제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조직하는 전략적인 장소이다. 20년 이상 지속된 신자유주의는 기업권력이 국가 기관과 국제기구들 및 국제법 틀 안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세력을 물리쳐야 하고 힘을 빼앗긴 유권자들에게 호소해야 하는 민중운동이 이루어지기가 더 어려워졌다. 이와 달리 도시는 민중의 힘이 아직도 기업권력에 도전하여 그 권력을 물리치고 그럼으로써 집단적인 정치적 행동이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좀 더 공평한 경쟁의 장을 제공한다.

 

참여와 힘

정치 이론가인 고(故) 벤저민 바버(Benjamin Barber)는 도시는 “지역적인 참여와 중심적인 정치적 힘”을 다시 연결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족국가가 한때 그 역할을 했지만, 민족국가들이 이제는 너무 커져서 (또한 ‘기업 자본에 너무 포획되어’라고 덧붙여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에 가장 중요한 “상향식 시민권, 시민사회, 그리고 자발적인 공동체”를 뒷받침할 수 없다고 그는 주장했다.

 

전 세계에서 사회운동은 노동의 존엄성을 위해서든 지속가능한 식량 체계를 위해서든, 그린에너지나 인종정의를 위해서든 중요한 사회적 요구들을 제기하는 도시의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대체로 기업의 성격을 띤 주류 매체가 권력들의 회랑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지속적으로 주의를 집중하므로 이 잠재력이 이루어내는 변형의 많은 부분은 레이더에 잡히지 않고 일어난다.

 

2015년에 우리가 속한 TNI에서 물 서비스를 공적 통제 아래로 되돌린 도시의 수를 살펴보기로 결정하고 물을 다시 시유화(市有化)하고 있는 도시 및 공동체들의 사례가 37개국에서 235개임을 발견했을 때 우리도 깜짝 놀랐다. 수에즈(Suez)와 베올리아(Veolia) 같은 다국적 물기업의 권력을 생각하면, 그리고 사유화(私有化)라는 이데올로기가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물 정책을 장악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조용한 혁명이나 다름없었다. 37개국에서 235개의 도시 및 공동체들이 물을 다시 시의 통제 아래로 되찾아오고 있다니···조용한 혁명이 아니고 무엇인가.

 

초점을 넓혀서 에너지와 주택을 포함시킨 2017년 올해 초 후속 보고서는 공공서비스의 재시유화의 사례들 835개를 공개했는데, 여기에는 45개국 1600개 이상의 도시들이 포함된다. TNI 연구원인 사토코 키시모토(Satoko Kishimoto)는 “이 사례들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사례들이 신자유주의에 ‘대안은 없다’는 신화를 결정적으로 끝장낸다는 것입니다. 이 사례들이 보여주는 것은, 사유화에 확실한 대안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향상하고 사회와 환경을 개선할 잠재력이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

많은 경우 기업 자본에 저항하고 물이나 주택에의 접근권 같은 권리를 옹호하는 경험은 그 자체로 변형을 가져오는 힘이었다. 이 경험은 활동가들이 신자유주의에 의해 소외된 사람들을 다시 연결하는 것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노동/일, 서비스 및 사회적 욕구를 조직하는 새로운 방식을 생각하도록 사람들의 상상력을 넓혔다. 여기서 방출되는 생생한 에너지와 역동성은 <드망>(‘내일’)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에 포착된 바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토트네스(Totnes)에서 녹색사업을 시작하려는 경험들은 결국 국제적인 프로젝트인 <리코노미>(Reconomy)로 이어졌는데, 이 프로젝트는 무조건적 경제성장과 결부되기보다는 오히려 지속가능하고 공정하며 웰빙에 단단히 기반을 두는 지역 경제를 구축하고자 애쓴다. 진단 및 간단한 치료를 하는 수백 개의 소규모 무료 건강 진료소를 설립하는 뉴델리 정부 주도의 기획은 전 세계 보건 활동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주택압류에 반대하는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몇몇 활동가들이, 텅 빈 주택에 투기하는 은행들에게 벌금을 부과하고 새로운 시 에너지 기업을 만들며 난민들에게 보호구역을 제공하는 것을 포함하는 참여적 정책플랫폼을 기반으로 시 선거에서 싸워 이겼다.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시 의회는 참여, 개방 및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정의라는 원칙을 마찬가지로 고수하는 <대담한 도시들>(Fearless Cities) 운동을 촉진하는 것을 돕고 있다. 2017년 6월 바르셀로나에서 주최한 첫 회의에서 그들은 전 세계 100개가 넘는 자치도시 플랫폼을 대표하는 참가자들을 600명이상 유치했다.

 

정치의 여성화

자치시의 직접행동주의는 또한 페미니즘과 정치의 여성화를 선두에 세울 기회를 제공한다. 라우라 로스(Laura Roth)와 케이트 셰이 베어드(Kate Shea Baird)가 주장한 것처럼 “정치의 여성화는 의사결정 공간에 여성들의 참석이 증가하고 젠더평등을 증진하는 공공정책을 시행하고자 하는 관심을 넘어서 정치가 이루어지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것은 가부장적인 사회 패턴들―예를 들어 경쟁, 지배적인 리더십, 수직 조직, 이기주의 및 일반적으로 정치에서 여성들을 배제시켰던 구조―을 배제함을 뜻한다. 자치도시 운동을 하는 상당수의 신임 지도자들이 여성들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통화정책이나 군사동맹의 경우와는 달리, 물과 주택에의 접근성을 얻으려는 싸움과 같은 도시 수준에서의 정치적 갈등의 경우에는 그 근접성, 범위 및 성격으로 인해서 비가부장적인 양태의 정치행동들이 한층 더 적합한 장(場)을 제공하는 것 같다.

 

변형적인 도시 기획―특별참가상

공공 서비스의 시유화 및 부상하고 있는 자치도시 운동을 중심으로 한 이 성공적인 경험들에 힘입어 TNI는 <사회를 변형하는 도시 기획>(Transformative Cities Initiative)을 시작할 마음을 먹었다. 우리의 목표는 실제 유토피아들의 지도를 만드는 것이고 이 경험들을 퍼뜨리는 것이며 이 실험들을 행해서 얻는 배움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번 달(([옮긴이] 이 글이 Open Democracy에 게재된 날짜가 2017년 9월 30일이므로 맥락상 2017년 9월이다.))부터 우리는 사회를 변형시키는 경험들을 표창하기 위해서 특별참가상을 수여할 예정이다. 이 기획은 첫 해에는 물, 에너지, 주택에 중점을 둘 것이며 앞으로 이주, 연대, 지역 농산물 거버넌스(territorial food governance)(([옮긴이] 지역농산물 거버넌스는 전지구적 시장을 통한 농산물공급에 반대하여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네트워크 방식으로 식량과 지역을 연결하는 대안 생산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와 마약 피해 감소 같은 영역으로 확대될 것이다.

 

우리는 이 기회에 여러분의 이야기를 공유하도록 사회운동과 도시들을 격려하고 있다. 우리는 여타 지역이나 장소에서의 사회변형 과정을 격려하고 촉진하기 위하여 참여자들이 다함께 이 경험들을 배우고 체계화하도록 설득할 계획이다. 우리는 전지구적 논쟁에서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거나 공유되지 않고 있는 경험들을 가지고 있는 지구상의 후진지역(Global South)에서의 경험에 특별히 주목하고 있다.

 

우리의 현 정치적인 틀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권위적 일국주의 사이에서, 전지구적 쇼핑몰과 국경 장벽 사이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때에, 사회운동에서 유래하는 실질적인 대안들을 풍부하게 만들고 강화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계속 축소되는 시민 공간을 방어하면서 갈수록 더 권위적인 국가 정부들에게 저항하려고 애만 쓰는 전략은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이자 열패감을 낳는 일이다. 현실화될 가망이 없는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대안들을 만들어내는 전략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힘을 갉아먹는다.

 

도시는 절망의 이분법과 관계를 끊을 기회를 제공한다. 다시 말해 도시는 지역 수준에서 변형적인 변화를 테스트해보고 그렇게 해서 아주 절실하게 필요한 전지구적 변형을 위한 구성요소를 제공할 기회를 우리에게 준다. <대담한 도시들> 회의에서 제기된 것처럼 “지역은 민주주의가 태어난 곳이었다. 지역은 이제 우리가 민주주의를 되찾을 곳이다.”




블록체인 테크놀로지와 이동성공유


  • 저자  :  보이드 코헨(Boyd Cohen)
  • 원문 : “How to power shared mobility startups with blockchain technology (2018.04.21)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
  • 분류 : 번역
  • 옮긴이 : 민서
  • 설명 : 이글에 ‘mobility’라는 단어가 사용되는데, 우리말로 쉽게 말하자면 교통 혹은 교통수단을 가리킨다. 그러나 ‘IoM’이라는 프로토콜의 존재를 감안하여 주로 ‘이동성’이라고 옮기고 맥락에 따라 간혹 ‘이동수단’ 등으로 다소 변경하여 옮겼다. ‘이동성’이라고 옮기는 것이 한국인들에게는 어색할지도 모르겠지만, 영어에서는 ‘mobility’ 같은 추상명사가 언제라도 구체명사로 쓰일 수 있어서 간혹 이렇게 옮기는 것이 불가피하거나 간편할 수 있다.

 

보이드 코헨(Boyd Cohen)이 쓴 이 사설은, 어떻게 이동성을 위한 새로운 블록체인의 레이어가 이동수단을 공유하는 스타트업기업들로 하여금 신속히 서비스에 착수해서 네트워크 효과에 즉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하는지를 탐구한다. 코헨은 이동성을 탈중심화하기 위해 오픈소스와 블록체인 테크놀로지를 결합하는 <아이오몹>(IoMob)의 공동설립자이며 바르셀로나의 EADA 경영대학원의 연구부원장이다. [P2P블로그 편집자]

 

 

<셰어러블> 독자들은 번성하는 공유경제와 어번 커먼즈 및 공유도시들을 지원할 필요 사이에 이해관계가 서로 중첩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우리 도시 거주자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다양한 공유경제 프로젝트들이 점점 더 많이 등장하여 적어도 몇몇 경우에는 우리가 자원 소비를 줄이고 순환적이며 공유된 접근모델로 전환하는 것을 돕고 있다. 어쩌면 도시 풍경을 이루는 부분들 가운데 공유경제 기업가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부분이 이동성일 것이다. 그리고 타당한 이유가 있다. 도시는 차 한대에 한 명이 타고 통근하는 차량들이 70%에 달하여 너무 혼잡하고 오염되었다. 우리는 도시의 물리적 기반시설과 투자자산을 개인용 이동수단들의 이동, 주차, 주유(대부분 화석 연료)에 쓰느라고 그 귀중한 자산을 더 나은 다른 쓰임에 할당하지는 못했다.

이동성공유와 관련된 공간은 아주 광범위하다. 우리는 최근 몇 년 동안 매우 다양한 유형의 이동성공유 사업모델들을 목격했는데, 예를 들어 (시 범위 혹은 P2P 형태의) 자전거공유, 자동차공유, 자동차 함께 타기, 주차공간공유, 전기자동차 충전소에의 공유된 접근 및 기타 여러 가지가 있다. 실제로 <Sharemrkt>에 따르면 바르셀로나에만 그와 같은 이동성공유를 시 규모로 운영하는 사람들이 50명이 넘는다.

하지만 <IoMob>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은, 어떻게 점차 더 많아지는 이동수단을 공유하는 스타트업기업들이, <우버>나 <캐비파이>(Cabify) 같은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대규모 다국적 이동성 기업들 및 <집카>(Zipcar)와 같은 훨씬 더 친절하며 한층 규모가 큰 상대와 경쟁하거나 시 범위에서 자전거공유 계획들을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현재 이동성공유 시장은, 브랜드와 사용자 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해 이미 얼마 안 되는 자산을 지출하고 있는 각 스타트업기업들에게 지불방식, 사용자 등록, 평판관리 등등을 처리하는 스타트업기업 자체의 기본적인 기술 또한 개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확실히 힘든 싸움이다.

블록체인 테크놀로지는 스타트업기업들을 위한 일련의 오픈소스 과학기술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연결시킴으로써 위의 시나리오에 대한 강력한 대안을 제공한다. 대기업과 대중교통 운영자들—아니, 사실상 이동성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운영자들— 이 일단 지역법을 따르는 것으로 확증되면 그들은 프로토콜에 연결되는 앱을 사용하고 있는 모든 사용자에게 접근 가능하게 된다. <이동성 인터넷>(Internet of Mobility, IoM)은 각 이동성제공자(사업자)에게 그들의 자체 앱을 출시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기반시설과 사용자 베이스에의 접근을 공유하는 운영자들의 열린 생태계를 가능하게 한다.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 수 있다. 왜 대규모 기업이 자신들의 사용자들을 스타트업기업과 기꺼이 공유하려고 하겠는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1. 고객 요구의 충족이 보장되기 때문에 고객유지에 도움을 준다.

2. 공급자들 간에 이전에 설정해 놓은 계약—혹은 그때그때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계약—에 따라 자신의 사용자에게 다른 공급자의 접근을 허용하는 공급자는 그 계약 내용을 기반으로 일정한 몫을 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공유된 각 고객에 대해 얼마의 커미션을 내야 하는지가 확정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이동성 제공자들이 개방적이고 투명한 생태계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초기에는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공공 이동성 서비스와 사설 이동성 서비스가 한 도시에서 사용자들을 공유하는 네트워크 효과를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을 향한 한 걸음은 이미 내디뎌졌고 ‘서비스로서의 이동성’(Mobility as a Service, MaaS)이라고 부른다. MaaS 모델은 정해진 한 달 동안 일정 양의 혹은 무제한의 서비스에 따른 월 사용료를 지불할 수 있는 거주자들을 위하여 일련의 공공 혹은 사설 이동성 서비스를 일괄적으로 통합한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우리는 IoM 프로토콜에 쉽게 연결될 수 있는 MaaS 모델을 기존 모델에 비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본다. 그런데도 블록체인과 IoM은 한층 더 나은 모델을 가능하게 한다. 이동성을 공유하는 스타트업기업과 기존의 이동성 제공자들은 오픈프로토콜과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받아들임으로써 비독점적인 방식으로 사용자들과 기반기술에의 접근을 공유할 수 있다. 사유(私有)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도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동성 서비스와 제휴하는 사설 기업들이 MaaS 모델을 운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동성 혁신을 이루거나 스타트업기업들이 지역의 이동성 시장에 접근할 여지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MaaS와 오픈 IoM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즉 법적으로 허가를 받은 모든 이동성 운영자가 각 사용자의 개인 통행패턴을 근거로 해서 월 가격 패키지를 개발하는 오픈 허브 제공 웹싸이트와 함께 작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모델에서 신규 사용자가 관련 웹싸이트로 가서 자신의 통행패턴을 설명하거나 시스템이 일정기간 동안 자신을 추적하도록 하면, 그런 다음에는 크건 작건 간에 모든 이동성 서비스를 찾을 수 있다. 드롭다운 메뉴는 사용자들에게 어떤 서비스든 고르고 월별 패키지에 그 서비스를 포함시키는 데 드는 비용이 얼마가 될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것을 ‘개인맞춤 이동성 서비스’(Personalized Mobility as a Service, PMaaS)라고 하자.

블록체인 테크놀로지는 우리 경제를 탈중심화하고 민주화할 잠재력을 산출한다. <이동성의 인터넷>은 이동성을 공유하는 스타트업기업들이 보다 빠르게 혁신적인 서비스를 시작하고 도시의 사용자들에게 민주화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 사용자들의 경험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대담 : 정치의 새로운 중심으로서의 도시



발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유럽 전역의 도시들에서 시민들이 (플랫폼들, 운동들, 국제적 네트워크들을 통해) 정치에 직접 참여하여 영향을 미치는 경로들을 창출하고 있다. 바르셀로나의 자치도시 플랫폼인 바르셀로나 엔 꼬무(Barcelona en Comú)의 창립자인 쑤비라츠(Joan Subirats)는 도시들이 어떻게 불확실성을 다루고 새로운 유형의 보호를 제공하며 첨단 거대기업들이 우리의 모든 데이터를 소유하는 추세를 역전시키고 심지어는 난민 같은 문제에 대하여 국민국가들에 도전할 수 있는지를 논의한다.

이 글은 ‘어번 커먼즈’에 대한 일련의 글들 가운데 하나로서 『그린유러피안저널』(Green European Journal) 16호 「장안의 화제 : 유럽 도시 탐구」(“Talk of the Town: Exploring the City in Europe”)가 그 출처이다. 이 글에서 DIEM25의 마르씰리(Lorenzo Marsili)가 바르셀로나 자율대학의 통치 및 공공정책 연구원의 창립자이자 원장인 쑤비라츠를 인터뷰한다.

— 트론코소(Stacco Troncoso)

마르씰리: 유령이 유럽에 출몰하는 것 같습니다. 도시라는 유령이지요. 당신은 당신이 바르셀로나에서 하는 일이 왜 그토록 상징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쑤비라츠: 분명 다양한 요인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하나의 요인은 플랫폼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독점적인 디지털 자본주의로의 변형인데요, 국가는 여기에 대응할 능력을 잃었습니다. 빅 플레이어들(big players)이 투자펀드들, 구글,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부채와 긴축정책의 논리에 갇혀 있습니다. 동시에 인구는 점증하는 어려움에 처하며, 불확실성, 공포를 느끼는데, 이는 미래에 무슨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데서 온 감정입니다. 나의 생활수준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내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여러 해 전에 철학자 폴라니(Karl Polanyi)는 상품화를 향한 운동과 그에 맞서는 보호의 운동에 대해 말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 보호를 받으려면 어디에 호소해야 할까요?

마르씰리: 많은 사람들이 국가에 호소합니다.

쑤비라츠: 네, 국가가 보호를 요청할 고전적인 장소입니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며 외국인혐오적인 논리를 따르는 국가가 여전히 보호를 요청할 공간이며, 국가는 많은 경우 국경을 폐쇄하고 사회를 폐쇄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하지만 도시는 본래 다릅니다. 도시는 개방될 목적으로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속담에도 있듯이, ‘우리는 도시의 공기에서 자유로움을 느낍니다.’(([원주] ‘도시의 공기가 당신을 자유롭게 한다’(Stadtluft macht frei)는 ‘일 년 하고도 하루’ 이상 도시 주거지에서 산 정착자들에게 자유와 땅을 제공한다는 법의 원리를 설명하는 독일 중세 속담이다.)) 도시는 기회와 가능성들이 모이는 공간이죠. 도시 당국이 국민국가보다 정책권한과 권력을 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도시 당국과 정치적 당사자들 사이의 근접성으로 인해 시민들에게 훨씬 더 밀착되고 구체적인 종류의 보호가 제공됩니다. 몇몇 일들—모든 일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이 달라지고 호전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도시라는 말입니다.

마르씰리: 폴라니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철학 교수 프레이저(Nancy Fraser)는 두 번째 운동인 보호 운동은 주로 여성, 소수자, 지구상의 후진 지역에 반해서 서구의 남성, 백인 생계가장들을 역사적으로 보호했던 운동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세 번째 운동, 즉 자율과 해방의 운동의 필요성을 도입합니다. 도시의 ‘보호’는 전통적인 국가의 보호와 어느 정도까지 다를 수 있을까요?

쑤비라츠: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그 질문이 아다 꼴라우(Ada Colau) 요인, 바르셀로나 요인, PHA[주택담보 대출에 영향을 받을 사람들의 플랫폼] 요인 및 반(反)퇴거 운동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PHA와 관련하여 특별한 유형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변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PHA로 가서 자신들에게 문제가 있어서 주택담보 대출금을 갚을 수 없으며 그래서 쫓겨날 것이라고 말할 때 그들은 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는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거예요, 활동가가 되셔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이것은 당신이 PAH의 고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상황을 함께 바꿀 수 있기 위하여 당신이 PAH의 활동가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리고 이것은 서비스 제공의 과정이 아니라 해방의 과정입니다. PHA는 노동조합이나 정당의 아웃소싱 논리—“와서 당신의 쟁점을 우리에게 위임하라, 그러면 우리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의 생각을 옹호해줄 것이다”—를 따르지 않습니다. 이런 위임하는 접근법은 PAH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PAH는 사람들을 보다 활동적으로 만듭니다.

마르씰리: 어떻게 이것이 제도화됩니까? 이런 정치화 과정들, 활성화 과정들—이 과정은 공동 소유권 및 공동 관리와 더불어 결국 커먼즈 담론의 바탕을 이루죠—은 어느 정도까지 시의 정책들이 됩니까?

쑤비라츠: 이것[PHA]은 2015년 5월에 시작한 중요한 기획입니다. 선거 당시 <바르셀로나 엔 꼬무> 성명서에는 4가지 기본 사항들이 있었습니다.(([옮긴이] <바르셀로나 엔 꼬무>에 대해서는 <커먼즈로서의 도시>, <괴물 시대의 커먼즈(2)>, <커먼즈 이행과 P2P(5)>, <장벽에 맞선 도시들> 등을 참조할 수 있다.)) 그리고 스페인의 다른 곳에서 다른 유사한 플랫폼들이 이 사항들을 채택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사회제도의 지배권을 시민들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제도는 포획되어서 우리의 이익에 복무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사람들이 경제적•사회적으로 점차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평등이 증가 추세이고 기본적인 사회적 보호메커니즘들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보호제공 능력을 회복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대응을 요구하는 사회적 긴급사태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우리는 위임하지 않는, 보다 참여적인 민주주의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쉽지는 않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더 많이 참여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바로 그런 식으로 정책의 공동생산, 결정의 공동창조 등등이 논의되기 시작합니다. 네 번째 사항은 우리가 정치부패와 정실인사를 끝내야 한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이를 특권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급여는 삭감될 필요가 있고, 업무는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권한은 제한되어야 합니다. 요컨대 정치가 한층 더 윤리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마르씰리: 그러면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쑤비라츠: 첫째로 가장 중요한 발전은 두 번째 사항과 관련하여 확실히 이루어졌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사회적 긴급사태에 응답하기 위한 보다 면밀한 정책들을 만드는 것이죠. 어떤 점에서 이것은 첫 번째 사항—다른 유형의 정치에 필요한 사회제도를 회복하는 것—과 관련한 정당성을 복원해 주었습니다. 둘째로는, ‘혁신의 도시들’ 어느 곳에서도 부패 스캔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여전히 어려운 점은 사회제도를 보다 참여적으로 만들고 정책의 공동생산을 발전시키는 일입니다. 이것은 기존 제도들의 전통, 일상 업무, 작업방식들이 우리의 접근법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매우 19세기적이고 20세기적인 접근법이 기존 제도에 존재합니다. 그 제도는 디지털 방식 이전의 것인데, 여기서 집단지성을 포함하는 방법이 관여되는 ‘공동생산’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르씰리: 실리콘 밸리의 거인들이 모든 데이터와 모든 사회적 상호작용을 화폐화하는 시스템 뿐만 아니라 그 너머의 기술 주권을 거론하는 국제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논쟁이 있습니다. 당신은 디지털 커먼즈와 관련하여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쑤비라츠: 우리는 자치도시 의회가 사용하는 사유화된 소프트웨어 기반을 바꾸는 일과 그 의회와 소프트웨어 공급자들 간에 이루어진 계약을 통해 이런 서비스에 사용된 데이터가 기업에 이전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또한 <스마트 시티>(Smart Cities)와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obile World Congress)의 중심지인 도시에서 기술혁신이 도시의 접근법을 반드시 바꾸도록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이 포럼에 못 미치는 사고방식을 바꾸면서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혁신과 기술주권을 담당하는 위원을 임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기차•버스•지하철 모두에 사용될 수 있는 교통카드에 대한 새로운 계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카드는 공급자가 제조할 것입니다. 계약서에는 공공 당국이 바르셀로나 전 주민들의 지역 대중교통 데이터를 관리할 것이라고 명시됩니다. 여기서 주권은 국가주권 같은 것이 아니라 에너지•물•식량•디지털 주권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논의해야 할 공적인 우선사항들이자 필요한 것들입니다.

마르씰리: 주권이 너무 자주 국가주권과 동일시되어서 저는 ‘근접성의 주권’(sovereignty of proximity) 내지 ‘주권(체)들’(sovereignties)이라는 개념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헌법처럼 많은 헌법들이 “주권은 국민에게 속한다”라고 공표하고 있습니다. 국민국가가 아니라 말이죠! 그런데 헌법에서도 도시의 역할은 여전히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도시의 실제적 법적 권한은 그 범위가 좁습니다. 새로워진 거버넌스의 중심에 도시를 두고자 하는 시도라면 권한의 배분을 바꾸기 위한, 일국 수준의 정치적 싸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까?

쑤비라츠: 저는 자치도시들의 ‘책임 수준’의 문제에 관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치도시들은 시민들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폭넓은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책임 수준이 높습니다. 하지만 자치도시들의 ‘권한의 수준’—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훨씬 더 낮습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이 지역 내에서 해결될 수는 없다는 것이죠. 바로 이 이유로 <바르셀로나 엔 꼬무>가 카탈로니아를 가로지르는 운동을 조직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카탈로니아 엔 꼬무>라고 부르는데 <카탈로니아 엔 꼬무>는 뽀데모스와의 연합이라는 논리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카탈로니아 수준—여기서 교육과 의료 정책들이 결정됩니다—에서나 국가 수준에서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면 행동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역 수준에서는 우리의 권한이 나타내는 것 이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우리의 정치적 동원력이 우리의 권한보다 한층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대립은 법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카탈로니아에서 주택과 관련하여 권한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바르셀로나에서 이런 권한은 자율적인 카탈로니아 자치주 정부(Generalitat) 내지 국가의 수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정치적 동원을 통해 주택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고 그곳에서 베를린•암스테르담•뉴욕과 함께 <에어비앤비>에 반대하는 동맹을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정치적 동학 때문에 <에어비앤비>는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비록 스페인•미국•네덜란드 국가는 그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을지라도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법적인 권한이 없다는 생각에 구속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르씰리: 도시와 국가의 대립이 흥미롭군요. 아시겠지만 우리는 유럽 전역의 많은 도시들—바르셀로나는 그중 한 도시죠—이 난민들을 맞아들이기를 바라지만 그 도시가 속한 국가들은 종종 이것을 방해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스페인 정부도 예외가 아닙니다. 도시가 단독으로 일정수의 난민을 받아들이는 그런 불복종 행동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흥미롭게도, 당신은 국가정부에 불복종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역설적이게도 당신은 ‘난민재배치에 관한 유럽 시책’을 따르고 있고 정작 국가정부가 그것을 따르지 않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쑤비라츠네, 좋은 실례군요. 저도 그 일은 실행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이 난민이라는 큰 문제는 풀지 못하겠지만, 확실히 실질적인 영향력보다 정치적인 영향력은 더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도시 수준에서 그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고 사람들이 그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 일이 말 뿐인 것은 아닐 것이라는 매우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다른 경우에도 유사한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민간투자기금이 건물을 구입하는 능력에 대해 조치가 취해진 바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자치시의회는 합법적으로 법을 어길 수 없지만 여러 방식으로 투자 펀드가 이런 거래를 하는 것을 한층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몇몇 경우에 자치시의회는 건물이 투기대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건물 자체를 구입함으로써 이러한 매입을 좌절시키기도 했습니다.

마르씰리: 독일 정치가 슈반(Gesine Schwan)은 본질적으로 국민국가를 우회함으로써 유럽수준의 난민 재배치와 자치도시들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한 가지 제안을 내 놓고 있습니다. 지금 유럽연합을 지배하는 여러 수준의 기관들은 ‘국민국가에서 유럽연합으로’ 구조에 따라서 대부분 조직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이와 달리 ‘자치도시에서 유럽연합으로’라는 구조를 생각하면서 이 기관들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쑤비라츠: 네, 저는 이 영역에서 우리의 경험들을 연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시들 사이에서 서로 벤치마킹하고 서로 배우려고 만든 <유로시티>(EuroCities) 같은 조직들이 있습니다. 이동성/유동성, 사회정책 등등을 다루는 워킹그룹들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는 지역수준에서 조직화하는 이런 접근법을 더 추진해야 하며, 국가를 제치고 유럽연합과 직접 대화할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국민국가들이 유럽의 의사결정 구조를 장악했기 때문에 그 일은 전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도시들이 유럽연합에서 동맹을 맺더라도 그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루어질 수는 있습니다. 저는 유럽연합이 그런 조치를 취하기를 꺼려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하나의 방법은 지역 당국들이 모여서 유럽 포럼을 창출하여 힘을 키우고 이 영역에서 도약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르씰리: 당신은 국민국가들에게나 유럽연합에게나 약간은 대항권력으로 작용하는, 혁신 도시들의 유럽 네트워크를 상상할 수 있으십니까?

쑤비라츠: 저는 그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바르셀로나 자치도시 당국이 이미 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바르셀로나는 사라예보를 11번째 행정지구로 삼았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Gaza Strip)에서 일하는 자치도시의 기술 담당자들과의 매우 밀접한 관계를 포함해서 바르셀로나와 가자지구 사이에 강한 협동관계도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자치도시의 국제협력 전통이 자리를 확실히 잡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기반으로 한 작업은 새로운 것이 아닐 것입니다.

마르씰리: 유럽에는 특성이 있는 같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우연히 거주하는 공간들을 지배하는 초국가적인 정치구조가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 이론가인 바버(Benjamin Barber)는 시장(市長)들로 구성된 전지구적 의회를 제안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전지구적 수준에서 매우 흥미로운 지적인 제안입니다. 전지구적 정부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유럽에는 적어도 유럽 정부의 시뮬라크럼인 유럽의회가 있습니다. 당신은 도시들이 모여서 유럽의회 같이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공간을 창출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쑤비라츠: 그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구성적이고 강력한 힘을 갖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애초에 기존의 기관들, 관료들, 조직들에 의해 형성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공간은 오히려 아래에서의 마주침(상호작용)을 기반으로 그리고 (나폴리,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지에서) 영향을 끼쳤던 시장들의 합법성을 바탕으로 해서 작동해야 합니다. 그 공간은 위로부터 정치적 자산을 빨리 만들려는 어떠한 욕망도 없이 밑바닥에서부터 위로 작용하는 과정으로서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훨씬 더 복원력이 있을 것이고 결국 강력해질 것입니다.

마르씰리: 유럽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도시들이 할 역할을 구축하는 것은 매우 품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제가 다니면서 도시행정과 관련한 이런 아이디어의 옹호자 역할을 할 때 종종 제가 깨닫는 것은 자치도시에 보다 정치적이거나 외교적인 이런 사안을 다룰 직원과 사무실이 부족한 경우가 매우 잦다는 것입니다. 도시들이 전지구적으로 그리고 유럽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는다면 도시들은 관련 업무를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기구에 투자할 필요가 있습니다.

쑤비라츠: 분명히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메트로폴리스 접근법을 더 강화한다면, 당신이 단점으로 언급한 것들을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자치도시라는 용어가 항상 같은 것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마드리드는 넓이가 600제곱킬로미터이고, 바르셀로나는 100제곱킬로입니다. 파리는 파리 시(the City of Paris)와 교외를 포함한 파리(Greater Paris)로 나뉩니다. 우리가 바르셀로나시보다 ‘교외를 포함한 바르셀로나’라는 개념을 구축하고자 한다면 이것은 150만 명의 거주자에서 350만 명의 거주자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메트로폴리스권을 형성하는 25개 타운위원회는 국제적 과정을 육성하는 데 자원을 투자하기로 틀림없이 동의할 것입니다. 파리는 이미 이 일을 시작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요, 파리에는 메트로폴리스적 차원이 있어서 그것을 더 강화할 수 있거든요. 직원과 선례가 부족한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도시가 국제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항상 국가를 거쳐야 한다고 기계적으로 생각합니다. 이 상황은 메트로폴리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르씰리: 본격적으로 전지구적인 차원을 거론하며 마무리를 해보겠습니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 지역에 살고 있으며, 상위 100대 도시들이 전 세계 GDP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양을 생산합니다. 2017년 6월에 바르셀로나는, 국가지도자는 점점 더 다룰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전지구적 과제들을 다룰 공동기획을 수립하기 위해 전 세계 시장들을 한데 모아 전지구적 정상회담인 <대담한 도시들>(Fearless Cities)을 주최했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요? 어떤 구체적인 조치들이 취해질 수 있을까요?

쑤비라츠: 제 생각에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구체적인 어젠다를 가지고 작업하는 것이고, 도시들을 아주 쉽게 끌어들여 연결시킬 수 있는 이슈들을 찾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재분배 문제, (런던•시애틀•뉴욕에서 논쟁을 촉발시켰던) 최저임금 문제 및 주택•초등교육•에너지•물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 문제들은 분명히 경계들을 가로질러 세계 어디에서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우리는 이런 이슈들로 시작할 수 있으며 유럽 전역에서 과제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정치권과 기관들에게 자극을 줄 것이고 우리는 좀 더 빨리 도약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정책 분야의 결점들을 보지만, 이것은 정치체의 결점들을 부각시킬 것입니다.

 




장벽에 맞선 도시들



 

장벽에 맞선 도시들

 

스페인의 도시자치주의 운동이 통치권한을 부여 받은지 2년이 지났다. 이 운동은 지금 전지구적 자본의 강압들에 맞서 어떻게 싸우고 있는가?

이제 좌파 진영에서는 잘 알려진 이야기가 되었다. 2년 전 소수의 시민 플랫폼들이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사라고사, 카디스, 산티아고 등을 비롯한 스페인 주요 도시들의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지역 사회운동 출신의 저명한 인물들을 필두로 해서, 그들은 포데모스를 비롯한 다양한 좌파 조직들을 결합하여 민주주의적 혁명과 진배없는 것을 약속하는 선거운동을 벌였다. 참혹한 경제 붕괴와 부패 스캔들의 여파 속에서, 그들은 스페인에 악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정당성의 위기에 급진적인 도시자치주의(municipalism) 프로그램으로 대응했다. 그것은 2011년에 그 심장과 머리를 획득한 인디그나도스(indignados, 분노한 사람들) 운동의 상향식(bottom-up) 정치가 흐를 수 있는 수로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처음으로 부여받은 통치기한의 중간지점에 다다른 지금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기에 알맞은 때인 것 같다. 거리에서 제도로의 도약이, 이들이 선거에 참여하는 일의 정당성의 뿌리인 사회운동들의 요구를 진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는가? 그랬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이 시기에 해방적인 체제변화의 가능성들이 성장하고 증식했는가, 아니면 신자유주의적 획일성이 그것에 반대하는 이들의 한 세대 전체를 전향시켜서 자신의 구조 속으로 흡수해버렸는가? 복잡한 질문들이다. 답을 시작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현 단계에서 이 도시들이 직면한 어려움들의 크기를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먼저 정치인이 된 많은 활동가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인장(印章)과도 같은 이슈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것은 어엿한 주거에 대한 권리다.

 

거대한 화폐의 장벽

바르셀로나에서 산츠(Sants)나 그와 유사한 노동계급 거주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아파트 구입을 제안하는 광고 전단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어떤 것은 손으로 쓴 것이고, 또 어떤 것은 프린트된 것이다. 이 전단들은 이름과 전화번호 외에는 담고 있는 정보가 거의 없다. 어떤 것은 아예 익명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처럼 전단지들의 외양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동일한 전화번호들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독립주간지 <La Directa>가 발간한 탐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 전단지들의 출처는, 많은 경우 세입자들이 여전히 거주하고 있는 주거지역들을 통째로 사들이고 있는 소수의 기업들이다. 이 기업들은 세입자들로 하여금 집을 떠나도록 설득하고는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더 높은 가격에 팔거나 임대한다. 기업들이 세입자들을 설득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현금을 제공하기도 하고, 집세를 엄청나게 올리기도 하며, 단순히 임대차계약 갱신을 거부하기도 한다. 세입자들이 저항하면, <Desokupa(“점거해산”)> 같은 회사들을 고용해서 강제로 추방해버린다. 파시스트 덩치들에게 돈벌이가 되는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종종 법을 어기기도 한다. 이런 관행은 미디어에서 소수의 부도덕한 기업이 이익을 내기 위해 법망의 구멍과 모호한 부분을 이용하는 지역적인 문제로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문제는 바르셀로나를 훨씬 넘어선다. 위와 같은 기업들은 모든 스페인 대도시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엄청난 임대료 거품의 특공대들이다. 스페인의 유력 부동산 사이트인 <Idealista>에 따르면 스페인 전역에 걸쳐 2016년 한해에만 임대료가 15.9% 상승했으며, 2017년의 첫 3분기 동안 바르셀로나, 산 세바스티안, 카나리아 및 발레아레스 제도 등지에서는 전년 대비 상승률이 20%에 육박하고 있다. 소규모 지구 단위에서의 상승률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바르셀로나 산트 마르티(Sant Martí) 지구와 산트 안드레우(Sant Andreu) 지구에서는 임대료가 전년 동월 대비 30% 넘게 상승했다.

이러한 가파른 임대료 상승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과적으로 장기 거주민들이 자신들의 동네로부터 쫓겨나고 있는데, 이는 부동산 서비스 회사인 <Cushman & Wakefield>가 “거대한 화폐의 장벽”이라 이름붙인 것, 즉 대략 4,350억 달러에 달하는 전지구적 부동산 투기 자본에 의한 것이다. 전(前) UN 주거권 특별보고관 Raquel Rolnik이 묘사한 바대로, ‘거대한 화폐의 장벽’은 식민화를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물질화되기 위해 이곳저곳을 떠도는 금융자본의 구름이다. 그녀는 <바르셀로나 현대문화센터(the Center for Contemporary Culture of Barcelona)>에서 한 최근의 강연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일부러 ‘식민화’라는 용어를 씁니다. 그것이 영토 점령과 문화적 지배를 수반하기 때문이지요. 이 식민화는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갖습니다. 금융자본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새로운 미개척지를 열어젖힘으로써 임대료를 추출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식민화의 비유가 노예제와 대량학살의 폭력을 삭제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해외투자에 목마른 정부들이 이 자본을 자신들의 나라에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자본은 주민들의 삶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데도 말이다. 스페인은 최근 리츠(REITs), 즉 부동산투자신탁(real estate investment trusts)의 신흥시장으로 떠오름으로써 ‘화폐의 장벽’을 끌어들였다. 리츠는 수입을 발생시키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들인데, 이때 부동산은 주거용일 수도 있고 상업용일 수도 있다. 그렇게 발생하는 수입의 대부분은 임대료에서 발생하며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으로 지불된다.

스페인에서 리츠는 2009년 사회주의 정권 하에서 합법적 형식으로 도입되었다. 처음에 리츠는 19%의 법인세율 때문에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2012년에 마리아노 라호이(Mariano Rajoy)가 이끄는 우파 정부가 리츠에게 이 세금을 면제시켜주었다. 나라 전체에 걸쳐 임대료가 상승한 것은 바로 이러한 조치가 이루어진 이후였다. 에어비앤비(Airbnb) 같이 임대료를 추출해내는 플랫폼들의 부상 ― 이것은 주거용 부동산과 상업용 부동산 사이의 구분, 혹은 공식적 경제와 비공식적 경제 사이의 구분을 흐린다 ― 을 비롯한 여러 발전들과 더불어, 중앙정부의 조치는 무엇보다 스페인 경제위기를 불러일으킨 바로 그 부문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어주었다. 그것의 끔찍한 결과들을 관리하는 일은 지방 정부들에게 남겨지게 되었다.

 

국가와 시장에 의해 궁지에 몰리다

스페인에서 영토와 임대료를 찾아다니는 ‘거대한 화폐의 장벽’인 금융자본과 시(市)정부 간의 갈등이 가장 심한 곳은 바르셀로나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닌데, 스페인의 주거운동과 도시자치주의의 물결이 태어난 곳이 바로 바르셀로나이기 때문이다. 또한 바르셀로나는 사회운동과 선거 플랫폼 간의 연결이 가장 튼튼하고, 활동가들과 시의원들 사이의 구분이 가장 흐릿한 곳이기도 하다. 바르셀로나 지역에서 이것은 화젯거리도 되지 않는 흔한 이야기다. 그러나 외부의 관찰자들에게는 평상시에 이것이 어떤 모습을 띨 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바르셀로나 엔 꼬무(Barcelona En Comú)> 소속 시의원인 갈라 핀(Gala Pin)은 정책의제를 다루는 카탈루니아 지방의 아침방송 <Els matins>에 나가서 <La Directa>의 조사보고서가 확인한 부동산 불량배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MK Premium>의 공동 설립자를 상대했다. 열띤 토론의 와중에 그녀는 <MK Premium>이 하는 일을 violencia inmobiliaria, 즉 ‘부동산 폭력’으로 규정했다. 그녀의 단어 선택은, 그녀가 시의원이 되기 전에 참여했던 주거 플랫폼인 <주택담보대출 피해자 플랫폼(Plataforma de Afectados por la Hipoteca)>(PAH)의 화법과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러한 단어 선택으로 인해 그녀는 우파 야당으로부터 선동가라는 비난을 받았고 <MK Premium>에 의해 명예훼손으로 고소되었다.

주거운동을 향한 핀의 우호적인 태도는 단순한 표현의 문제를 넘어선다. 그녀는 종종 강제퇴거를 가시화하고 그것을 막기 위한 노력을 북돋기 위해 그녀의 많은 소셜미디어 팔로워들을 활용한다. 전형적인 게시글은 이런 식이다. “내일 5건의 강제퇴거가 있습니다. 우리는 노력하고 있지만, 저지하기 위해서는 협력이 필요합니다. 오전 9:30, Arc del Teatre가(街)입니다.”

이러한 게시글들은 선동적이라는 이유로, 혹은 다름 아닌 <바르셀로나 엔 꼬무>의 감시 하에 이루어지는 강제퇴거들에 대한 비난을 선제적으로 모면하려 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일부 급진좌파 서클들로부터 비판받아왔다. 핀을 비롯한 이러한 접근법을 사용하는 다른 시의원들은 단지 제도적 힘의 한계에 대해 솔직하고, 그 한계가 부당할 때 그것을 넘어서도록 사람들에게 요청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접근법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많은 강제퇴거를 저지했고, 세입자와 건물주를 중재하기 위해 시정부가 혁신한 주택사무소들의 네트워크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퇴거들을 중단시켰다.

“Occupy and Resist.” A squat in Barcelona. Photo by Oriol Salvador.

이것은 사회운동, 지방의회, 공공행정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이, 상위 국가기관과 경제세력들의 강압에 맞선 저항을 강화하기 위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그리고 지방정부가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더 많이 열려있게 된 도시로 바르셀로나가 유일한 것도 아니다. 가령 마누엘라 카르메나(Manuela Carmena)가 이끄는 <아오라 마드리드(Ahora Madrid)>는 도시의 참여제도를 시민발의 제안들에 개방했으며,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시의 재원 중 일부를 참여예산에 할당했다. 진보적 녹색연합인 <Compromís>가 <발렌시아 엔 꼬무>와 <스페인 사회당>의 지원을 받아 시를 운영하고 있는 발렌시아는 보행자와 자전거를 중심으로 하는 지속가능한 도시 이동성 모델로의 대규모 이행을 시작하는 중이다. 사라고사에서는 현재 전력망을 통해 공급되는 전기의 100%가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되며, 전력소비량은 15% 가까이 감소되었다.

이 도시들은 사회복지지출을 늘리고 공공주택을 확대하면서도 균형예산을 유지하고 일부의 경우에는 심지어 적자를 감소시킴으로써, 긴축에 대해 “대안이 없다”는 EU의 도그마가 틀렸음을 입증했다. 또한 이들은 더 많은 난민을 받아들이도록 중앙정부를 압박하는 중이며, 일부는 서류상 지위와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라호이의 인종주의적인 ‘2012 의료개혁’에 저항하고 있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의 시정부들은 인권침해를 지적하고 그에 맞선 상징적·법률적 조치들을 취함으로써 이민자구금시설을 폐쇄하고자 하는 의사를 반복적으로 표현해왔다.

물론 이것은 혁명적인 조치들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고려할 때 이 조치들은 녹색 도시계획 및 참여적 거버넌스와 결합된 사회민주주의 프로그램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테크노크러시와 초민족주의적(ultra-nationalist) 극우로 양극화된 유럽의 현재 정치 상황에서 이것은 결코 가볍게 볼만한 것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이루어진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진보들에 대한 이러한 방어를 더욱 눈여겨보도록 하는 것은, 그것이 매우 파편화되어 있는 정치체제에서 소수파 지방정부들에 의해 수행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은 국가권력과 시장의 변덕 앞에 취약하다. 좌파 정부가 있는 도시들에 내핍을 강제하는 데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크게 감소시키기 위해 2013년에 통과시킨 법안을 시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재무부 장관 크리스토발 몬토로(Cristóbal Montoro)는 이미 그렇게 하고자 하는 의도를 매우 분명히 나타냈다. 한편, 임대료 거품은 계속해서 팽창하여 주민들을 집으로부터, 나아가 도시 중심으로부터 밀어내고 있다. 이러한 위협들에 의해 궁지에 몰린 도시들은 요새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제한할 여유가 없다. 그들은 또한 경계를 넓히기도 해야 한다.

 

갈등과 협력의 역학

2017년 6월초, 몇몇 구역의 시위대들이 바르셀로나 중심에 있는 대학광장(Plaça Universitat)에서 합류했다. 3,000명의 시위대는 거기서 출발하여 “거대한 화폐의 장벽”의 표적이 된 지역들인 산트 안토니(Sant Antoni), 포블레 세크(Poble Sec), 라발 지구(Raval)를 느릿느릿 행진했다. 몇몇 지점에서 시위대는 특정한 주택블록 앞에 멈춰 섰는데, 그곳들은 세입자들이 그들을 쫓아내려 하는 투기꾼들에게 저항하고 있는 곳이었다. 행진의 끝에서 시위대는 8년 동안 버려져 있었던 아파트를 열고 들어가서 점거해버렸다.

시위행진은 새로운 부동산 거품에 맞서 점점 성장하고 있는 투쟁 서클에서 가장 최근에 등장한 행동 방식이었다. 이 투쟁 서클은 <“바르셀로나는 판매용이 아니다”(Barcelona No Està en Venda)>라는 플랫폼이 조직했는데, 불법적인 관광객용 아파트와 상승하는 임대료로 인한 추방과 싸우기 위해 지난 2년 사이에 출현한 여러 지역의 모임들을 결합한 것이다. 그것은 아나코-생디칼리즘적인 <노동총동맹(CGT)>, <바르셀로나 주민협의회 연합(Barcelona Federation of Neighborhood Associations)>, <지속가능한 관광을 위한 주민회의(Neighborhood Assemblies for Sustainable Tourism)>, <주택담보대출 피해자 플랫폼(PAH)> 뿐만 아니라 2017년 초에 만들어진 <지역 임차인 연합(Sindicat de Llogaters)>까지 포함했다.

이러한 행동들은 공적 토론의 의제를 설정하여 정부와 정당들로 하여금 그 의제 가운데 우선적인 것들을 실행하도록 압박했다. 이들은 기성 언론으로부터 발언권을 빼앗아 왔는데, 언론들은 바르셀로나시와 에어비엔비 그리고 관광업 로비세력 사이에서 최근에 벌어진 갈등에 “관광공포증(touristophobia)” ― 스페인 신문 <El País>가 도입한 용어 ― 이라는 프레임을 덮어씌우려 했다. 사회운동들은 반(反)관광이라는 프레임 ― 이 프레임은 인종주의, 계급차별주의, 외국인혐오의 함의를 갖고 있다 ― 에 말려들지 않고, 갈등의 초점을 부동산 거품과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춰 왔다. <바르셀로나 엔 꼬무>도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프레임을 채택해 왔다. 투기꾼들을 어떻게 겨냥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운동의 일부 부문들과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운동과 좌파 정당들 사이의 이러한 갈등과 협력의 역학은 바르셀로나에서 특히 뚜렷하게 관찰된다. 도시의 오랜 상향식 조직화의 역사가 두터운 사회 구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 엔 꼬무>에게 길을 열어준 제도적 전회(institutional turn)에 있어서 가장 큰 위험요소는 저명한 활동가들이 거리에서 제도로 이동함으로써 “두뇌유출”과 같은 현상이 발생하여 사회운동이 약화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도적 전회 이후 일어난 사회적 갈등들을 살펴보면 그러한 우려와는 다소 다른 시나리오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르셀로나 엔 꼬무>는 그것의 구성원들이 속했던 사회운동의 요구들을 공공정책제안으로 번역하는 데 상대적으로 효과적이었다. 노점상이나 공공운수 노동자들의 운동과 같이 그들이 이전에 거의 경험하지 못했던 운동의 요구들을 다루는 데는 그보다 덜 효과적이었다. 그 결과 이러한 운동들이 현재 바르셀로나의 사회적 적대 구조에서 주도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들이 생산해내는 긴장이 어떻게 해소될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로 남아있다.

반면 마드리드의 사회운동과 지방자치 플랫폼 사이에서는 협력이 훨씬 덜하고 대립은 훨씬 더하다. <아오라 마드리드>의 예비선거 제도가 <바르셀로나 엔 꼬무>보다 더 개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오라 마드리드>를 낳았던 조직들의 연합은 <바르셀로나 엔 꼬무>의 경우보다 훨씬 더 분열되어 있다. 게다가 그들이 합의추대한 후보인 현(現)시장이자 전(前)판사 마누엘라 카르메나는 다른 도시의 지방자치 플랫폼을 이끄는 이들보다 한층 더 제도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카르메나는 여러 경우들에서 당의 프로그램에 반대해왔다. 그러는 가운데 그녀는 <가네모스(Ganemos)>나 <포데모스(Podemos)>의 반자본주의 분파와 같은 <아오라 마드리드> 내(內) 급진 조직들이 제기하는 비판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개인적인 열성지지자들과 스페인 지방자치 거버넌스의 “대통령중심제적” 모델을 활용했다. 이러한 분열의 가장 충격적인 징후는, <아오라 마드리드>가 잉태된 점거건물이었던 <El Patio Maravillas>가 관광객용 아파트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경우 운동과 제도의 분열은 “화폐의 장벽”을 위해 길을 닦아준 셈이다.

 

목적이 있는 도시자치주의

스페인의 도시자치주의 플랫폼들에게 있어서 문제는 도시자치주의가 그 자체만으로는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거버넌스의 한 형식이다. 그것의 내용은 자본주의적일 수도 있고 코뮤니즘적일 수도 있다. 전체주의적일 수도 있고 자유주의적일 수도 있다. 민족주의적일 수도 있고 국제주의적일 수도 있다. 개방된 채로 남겨지면 그것은 단순히 자본으로 가득 찬 하나의 브랜드이거나 다른 행정적 권력에게 비난을 전가하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더욱이, 도시자치주의에 대한 과도하게 단순한 이해는 상이한 유형의 지방자치체들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과, 수십 년간의 도시화와 지구화가 만들어낸 권력 불균형들을 무시해버릴 위험을 품고 있다. 도시의 추출주의(extractivism)의 결과로 전지구적 북(Global North)에서 출현한 심대한 문화적·정치적 균열 ― 이것은 진보적인 성장하는 도시들을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원주민중심적인 촌락들과 대립시킨다 ― 을 고려할 때 특히 더 그렇다.

신자유주의적인 현상황의 협소한 한계 및 유독한 관계들과 결별하고 단순히 행정적·영토적 자기이익의 재생산을 위한 수단이 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 해방적 도시자치주의는 앞을 보고 걸어갈 수 있게 해줄 전망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다름 아닌 사회운동들이 이것을 제공한다. 온갖 부정의들에 대한 사회운동의 비판에, 세계가 되어야 할 모습과 현(現)사회질서가 억압하는 가치와 실천들이 있다. 좌파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이것들은 상호부조와 연대에 다름 아니다.

가치들을 실천들로 물질화하는 것은 기술적인 과제라기보다는 문화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과제이다. 반대로 거버넌스의 논리는 대개 기술적이다. 거버넌스 자체는 통제와 예측가능성을 중심으로 한다. 저 통제와 예측가능성의 논리에 포섭되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대표자들이 자신에게 권력을 가져다 준 운동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도시자치주의 대표자들은 자신들이 인계받은 제도적 구조의 틈들에서 성장하는 모든 운동들을 양성해야 한다. “화폐의 장벽”이 콘크리트로 메우려 하는 것이 바로 이 틈들이기 때문이다.

2년 전 스페인 도시자치주의 플랫폼들의 선거 승리에서 아름다운 점은, 바로 그 승리가 거버넌스의 기술적 논리에 의해 예측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지방자치제도의 문지기들이 저 승리를 민주주의의 오류로 여기는 것은 그 때문이다. 도시자치주의 플랫폼들은 현재 저 구조를 해체하여, 지금까지 억압되거나 지워지거나 착취되거나 무시되어 왔던 사람들, 운동들, 기억들에게 그것을 개방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 장차 그들의 과제는 투기꾼들에게는 더 큰 불확실성을 만들어내고, 도시에 거주할 것을 희망하는 이들에게는 더 작은 불확실성을 만들어내는 일이 될 것이다. ♣




플린트 시: 물 커먼즈의 종획


  • 저자  :  케빈 카슨(Kevin Carson)((케빈 카슨(Kevin Carson)은 <국가 없는 사회 센터>(The Center for a Stateless Society. c4ss.org)의 선임연구원으로, 이 센터의 사회이론 분야 칼 헤스(Karl Hess) 석좌교수다. 그는 상호주의자이고 개인주의적 무정부주의자로서, 『상호주의적 정치경제학 연구』(Studies in Mutualist Political Economy 2007), 『조직이론: 자유방임주의 관점』(Organization Theory: A Libertarian Perspective 2008), 『수제 산업혁명:저비용 선언』(The Homebrew Industrial Revolution: A Low-Overhead Manifesto 2010)을 집필했다.))
  • 원문 : “Flint: Enclosure of the Water Commons” (2017.6.20)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
  • 옮긴이 : 꼬꼬

 

플린트 시: 물 커먼즈의 종획

 

플린트(Flint) 시의 물 위기가 다시 국가적 뉴스가 되고 있다. 8천명 이상의 플린트 주민은 지금 5월 19일 이후 미지불 물 청구서 때문에 자신의 집에 유치권이 설정될 상황에 처했는데, 체납액 총액을 지불하지 않으면 그들은 집을 잃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것은 청구액을 미지불한 주민들에게 지난달 물 공급을 대대적으로 중단한 이후 나온 조치이다. 이 모든 것은 그 물이 납에 오염되어 있고, 필터를 사용하지 않고는 마실 수 없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일이다.

뉴스 속의 유치권 설정에 관한 이야기에서, 적용대상은 사업체들이 아니라 “주민들”과 “가정들”이다. 이것이 낯익다면 그럴 법하다. 디트로이트 시의 “비상 관리자”가 이와 유사한 대대적인 물 공급중단을 실행한 지난 2014년에, 홈리치(Homrich) – 공급중단을 처리하기 위해 고용된 측근 회사 – 는 체납된 주민의 예금계좌만 추적했다. 부채 총액의 거의 절반을 기업들이 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들 중 몇몇은 갚아야 할 돈이 수십만달러였지만) 물 중단 정책은 사업체들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공동체에 있는 일로서, 기업들에게는 주민들에게보다 갤런당 더 싼 요금율이 부과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플린트 시가 처음에 주민들과 상업적/산업적 물사용자들에게 같은 요율을 부과했더라면, 그리고 만기가 지난 청구액을 걷을 때 모두에게 같은 정책을 적용했더라면, 체납된 주민은 훨씬 더 적었을 것이며 오늘날 집을 잃을 상황에도 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또 다른 유사점이 있는데, 캘리포니아 주지사 제리 브라운(Jerry Brown)은 소위 “물 배급제” 행정 명령을 주민에게만 적용하고, 관개용수의 막대한 양을 사용하는 거대 영농기업체들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역시 명심해야 할 것은 미시간 주와 캘리포니아 주가 네슬레 같은 벌처(vulture) 기업이 거의 무료로 수백만 갤런의 지하수를 퍼내서 병에 담아 판매하도록 허가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함께 놓고 볼 때, 당신은 무엇을 알게 되는가? 물은 지하수든, 자연수든, 기타 저장수든 모두 커먼즈(공통의 것)이다. 가정과 기업으로 이 물을 운송하는 주요 사회기반시설은 요금납부자와 납세자의 비용으로 건설된 것이기에 역시 커먼즈이다. 과거의 수많은 커먼즈처럼, 물 커먼즈도 국가의 보조금으로 건설된 사회기반시설을 자본주의적 기업체에 제공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정부에 의해 종획되어 왔다. 몇몇 경우에는, 이 사회기반시설이 나중에 그런 자본주의적 기업들에 팔리거나 대여되고, 이들은 소비자를 희생시키고 이 시설을 운영한다.

물 커먼즈가 자본의 이익을 위해 종획되고 운영될 때, 혹은 자본 자체에 의해 실질적으로 운영될 때, 가격 속임수와 기업의 이익이 우선됨은 당연한 일이다. 이 과정의 모든 단계는 공모와 자기거래를 특징으로 한다. 보조금을 투입하고, 비용과 위험을 사회화하고, 이윤의 사유화를 도모하는 것이 자본주의 국가의 본성이다.

17세기 영국에서, 자신들을 디거즈(Diggers)라고 부르는 땅없는 소작농의 한 무리가, 세인트 조오지 힐(St. George’s Hill)의 울타리를 허물고, 그 땅에 작은 집을 짓고, 공동으로 경작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도 최종적인 유일한 해결책은 같다. 커먼즈를 되찾는 것이다. 물 공공시설 및 기타 커먼즈는 (사적이나 국가적인 재산이 아니라) 사회적인 재산으로서 사용자 자신들이 직접 관리하면서 공동으로 사용해야 한다. ♣




괴물 시대의 커먼즈 (2) / 完



 

괴물 시대의 커먼즈―P2P 정치가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이전 게시글에 이어짐>

어번 커먼즈의 발생

 

2014년 봄, 유럽 의회에서 뽀데모스가 거둔 성공에 자극을 받은 한 활동가 집단이 마드리드에서 가장 유명한 점거된 사회 센터들 가운데 하나인 엘 빠띠오 마라빌라스(el Patio Maravillas)에서 만났다. ‘우리는 이 도시를 쟁취하려고 합니다’라고 그들은 선언했다. 그들은 전례 없는 수준의 시민 참여를 조직하고 현실화하기 시작했으며 이전에는 무관하게 흩어져 있던 정치적 행위자들을 위한 공통의 공간을 마련하는 일을 촉진하기 시작했다. 기본 원칙들에 동의하고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완전히 참여에 열린 선거 목록에 자신을 후보자로서 제시할 수 있었다.

한 달 정도 전에 바르셀로나의 활동가들은 다음의 네 가지 근본적인 목표를 중심으로 모일 것을 기존의 사회운동들과 정치조직들에 권유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1. 모두에게 시민의 기본권과 어엿한 삶을 보장하기,
2. 사회 정의와 환경 정의를 우선으로 하는 경제를 양성하기,
3. 제도들을 참여민주주의 방향으로 바꾸기,
4. 시민들에 대한 윤리 서약을 지키기.

합류 요청은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으며, 반(反)철거 및 주거권 운동가인 아다 꼴라우(Ada Colau)가 공적으로 대표하는 구아녬 바르셀로나(Guanyem Barcelona(([옮긴이] Guanyem Barcelona : 이는 카탈로니아 말로 ‘바르셀로나를 쟁취하자’(Let’s win back Barcelona)라는 의미라고 한다.)))가 바르셀로나 엔 꼬무(Barcelona en Comú)로 일정한 시간에 걸쳐 변이하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바르셀로나 엔 꼬무는 사회운동에서부터 비주류 정당들에 이르기까지 도시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을 포함하는, “도구로서의” 선거연합이다.(([옮긴이] 스페인에는 네 개의 선거가 있다. ① 첫째는 총선(Elecciones generales)이다. 이는 일국 수준의 의회의 의원들을 뽑는 선거이다. 한국의 총선과 같다. 다만 스페인에는 하원과 상원이 모두 있다. ② 둘째는 자치지방의 입법선거(Elecciones autonómicas)이다. 스페인의 13개 자치공동체들―Aragon, Asturias, Balearic Islands, Canary Islands, Cantabria, Castile and León, Castile–La Mancha, Extremadura, La Rioja, Madrid, Murcia, Navarre and Valencia―의 의회의 구성원들을 뽑는 선거이다. 이것을 현 텍스트에서는 ‘the regional (election)’이라고 부른다. ③ 셋째는 지방자치체 선거(Elecciones municipale)이다. 이것을 현 텍스트에서는 ‘the city (election)’라고 부른다. ④ 넷째는 유럽의회 선거(Elecciones al Parlamento Europeo)이다. 스페인의 ‘지방자치체’(municipality)는 ‘자치지방’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자치도시’로 옮기기로 한다. ‘municipalism’은 도시들의 연대로 국가를 넘어서는 뚜렷한 목적과 문제의식을 지닌 운동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이는 ‘자치도시주의’로 옮기기로 한다. 자치도시(지방자치체) 선거에 후보를 내는 바르셀로나 엔 꼬무와 같은 ‘municipalist coalitions’는 ‘자치도시 연합’으로 옮기기로 한다.))

주류 미디어에 의해서는 무시되거나 비난을 받은 이 연합은 15-M이나 오큐파이 운동처럼 구체적인 장소들에서 연대를 형성하고 공유된 가치 및 믿음을 중심으로 모여서 스스로를 복제했다. 그 과정은 부잡스럽고 열띠고 분주했다. 이전에 그 누구도 이 일을 시도해 본적이 없으며 교범도 없었다. 실상 교범은 운동과 함께 작성할 수 있을 뿐이었다. 모든 선거 예측, 적대적인 미디어, 확고한 기성 정치세력과 맞서는 불리한 상황에서 이 연합은 스페인의 주요 도시들에서―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만이 아니라 발렌시아, 아꼬루냐(A Coruña), 사라고사, 카디스에서도―승리를 거두었다. 뽀데모스는 이 많은 연합들 가운데 다수에 참여했지만 자치지방 입법선거(the regional)는 (지방자치체선거에서와 달리) 단독으로 후보를 내는 것을 선택했다. 그 결과는? 연합이 승리한 모든 곳에서 하나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동일한 유권자 집단이 지방자치체(아오라 마드리드Ahora Madrid가 후보를 낸 곳)와 자치지방 입법선거(뽀데모스가 후보를 낸 곳)에서 모두 투표를 할 수 있는 마드리드 시의 선거에서 뽀데모스는 아오라 마드리드가 얻은 표의 겨우 반만큼을 얻었다.

스페인의 자치도시연합은 문화, 사고방식, 권력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변화를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여러 운동들의 결과였다.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15-M이며 뽀데모스가 아니라 연합이 그 진정한 정치적 부산물로 간주될 수 있다. 2014-15년 이전의 선거들에서 15-M은 주거, 공중보건, 교육,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운동들을 횡단적으로 연결하는 관계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라스 마레아스’(las mareas) 혹은 ‘시민들의 파도’(citizen’s tides)라고 알려진 이 운동들은 노동조합과 정당들과 같은 전통적인 조직들을 포함하면서 진정으로 다수적 구성의 성격을 띠는(truly multi-constituent in nature) 자기조직된 항의들과 능력구축을 특징으로 했다. 예를 들어 공중보건 마레아는 공중보건 서비스의 지지자들만이 아니라 건강관리 전문가들, 환자들, 보건개혁가들, 병원 직원들, 특수한 질병에 초점을 맞춘 연대조직들, 협조 기관들 등을 포함하고자 했다. 15-M 자체도 기존의 경향들―디지털 행동주의, 자유문화(free culture) 운동, 탈성장, 커먼즈, 기타 많은 운동들―의 산물이었다.

오늘날 자치도시 플랫폼들은 서로 연계하여 자원과 최선의 실행들을 공유하면서 초지역적 친화 네트워크들로서 기능하고 있다. 연합들[=플랫폼들]은 비록 선거구에서의 현실적 해결책들을 제공하는 데 주로 초점을 두지만 여러 두드러진 특징들을 공유한다. 가장 신선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정치적 담론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더욱더 여성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제도권 정치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보수적이고 남성적인 태도와 대조된다.

자치도시연합이 많은 거리집회들을 통해 연마된 참여/급진 민주주의에 초점을 두는 것은 공유된 ‘윤리 코드’(“código ético”)로 더욱 정련되었다. 이 코드가 제도들 내에서의 플랫폼들의 행위에 형태를 부여한다. 이 코드는 참여자들을 한데 모으는 아교이자 끌개 역할을 하는데, 당원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참여를 원하는 모두에게 적용된다. 주된 항목은 다음과 같다.

· 회전문 인사 금지 (민영 기업과 공직 사이를 오가는 인사 금지)
· 봉급 삭감
· 시민의 참여에 열린 프로그램
· 오픈 프라이머리―당 쿼터가 없이 모두에게 열려 있음
· 자발적/시민 자기금융과 제도 혹은 은행을 통한 금융 거부

모든 자치도시 플랫폼들은 지역 관심사들과 초지역적 연대를 넘어서 초국적 차원에 시선을 두고 있다. “반란 도시들‘(Rebel Cities)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P2P 생산공동체들의 실천이 지역에 뿌리를 두지만 전지구적으로 네트워크화되어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 덧붙이자면, 시민의 파도 운동에 들어있는 다수적 구성 접근법이 연합들 내에 반영되어 있는데, 이는 비록 기존의 정당들을 포용하지만 특정 정당의 노선을 위주로 하지믐 않는다. 시민사회의 광범한 범위의 행위자들의 이익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들은 그 이후에 행복하게 살았는가? 물론 아니다. 활동가가 된 정치 대표자들은 변함없이 적대적인 미디어 환경과 대면하는데, 미디어는 이들의 성과는 묻어버리면서 이들의 실수는 과장한다(혹은 필요하다면 없는 실수를 만들어낸다). 이들은 4년 동안의 불안정성 및 치열한 활동 이후에 1주일에 60시간 이상의 작업조건을 맞는 한편 사회노동당과의 연대라는 틀 내에서 소수 의석을 유지하며 수평주의적 관료주의(horizontalist bureaucracy)(([옮긴이] 보통 관료주의는 수직적 위계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수평주의’는 이와 달리 구성원들의 평등한 관계를 가리킨다.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아 ‘수평주의적 관료제’는 구성원들의 평등한 관계는 인정되지만 과제의 실제적인 해결로는 나아가지 못함으로써 관료주의에서 보는 것과 같은 무능에 빠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듯하다.))의 굳어진 현실과 충돌하게 된다. 시민 연합들의 다원주의적 성격은 당연하게도 비일관성과 과실을 낳았으며 가장 나쁜 것은 직접 행동 전술과 대항권력 구축 노력의 폐기가 두드러진 점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버텨나가고 있으며, 초국적기업들과의 공공 계약의 취소, 시민참여 예산책정, 젠더의 균형을 더 잘 맞춘 문헌 및 재현, 공공지출의 증가, 반(反)젠트리피케이션 전략, 기본소득 파일럿 프로젝트, 직접민주주의 메커니즘들 등 많은 이익과 전진을 가져왔음은 모두가 보기에 명백하다.

진짜 좋은 소식 가운데 최고는 자치도시연합이 스페인에서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 세계의 진보적인 도시들이 커머닝을 가능하게 하고 커머닝에 힘을 부여하고 있다. ‘반란 도시들’(Rebel Cities)―혹은 앞으로 있을 행사에서 부르는 바로는 ‘대담한 도시들’(Fearless Cities)―은 시민들이 자신과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시 정부가 지도하기보다는 커머너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며 보통 사람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자신들에게 관련되는 일을 직접 관리하는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벨기에의 헨트(Ghent), 이탈리아의 볼로냐,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영국의 프롬(Frome), 브라질의 벨로오리존테(Belo Horizonte), 이탈리아의 나폴리, 캐나다의 몬트리올, 미국의 잭슨, 프랑스의 릴, 영국의 브리스틀, 칠레의 발빠라이소(Valparaiso)가 그 사례들이다. 이 도시들의 시민들은, 각 지역 맥락에서 적절한 많은 행동들 외에도, 투명성을 높이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예산책정을 가능하게 하며 공터를 공동체 정원으로 바꾸고 기술과 도구를 공유하는 프로그램들을 공동창출하며 사회적 돌봄 협동조합들의 창출을 촉진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새롭게 상상된 관점을 통해 시장과 국가로부터 스스롤 해방시키려는 커먼즈 운동에 필요한 상호 인식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면서 도시 수준을 넘어서 커머닝의 실천을 제도화하려는 범유럽적 노력 또한 존재한다. 2016년 11월에 유럽 전역에서 온 150명의 커머너들이 함께하는 강한 운동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브뤼셀에 모였으며 유럽커먼즈의회(the European Commons Assembly, ECA)가 탄생했다. 정책을 제안하는 여러 주 동안의 집단적 작업을 바탕으로 ECA는 유럽의회 안에 자리를 잡고 ECA를 플랫폼으로 삼고 커먼즈를 정책입안의 강력한 패러다임으로 삼는 방안을 탐구하게 되었다.

 

커먼즈 이행 : 아래로부터의 사회적 거버넌스의 정치적 어휘를 구축하기

 

이 자치도시연합, ‘반란 도시들’, 초국적 의회들이 형성되고 고유한 거버넌스를 표현하게 된 과정에는 커머닝의 어휘와 실천이 명백하게 들어있다. 이 연합들, 도시들, 의회들은 투명성과 시민 참여에 초점을 두고 오픈소스 P2P 테크놀로지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더 나은 미래의 정치의 여러 측면들을 예시한다. 앞에 놓인 과제는 스페인에서 그토록 성공적이었던 네트워크 논리를 오큐파이와 15-M의 잠재력을 되찾아 복원력 있고 더 여성적이며 윤리적으로 일관된 초국적 정치운동을 구축하는 데 적용하는 것이다.

예시적 전략들이 사회적·환경적 우선사항들을―시장이나 국가가 이 ‘외부성들’을 다루기를 기다리지 않고―그 비공식적 재도들에 통합시키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자치도시연합의 윤리적 코드도 커먼즈 지향적 연합의 원리들로 온전히 전환되어 현재의 정치에 새로운 책임성(accountability)(([옮긴이] ‘accountability’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설명(account)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에서 이 ‘accountability’의 가장 저급한 수준을 경험한 바 있다.))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일단의 정치적 지침들의 핵을 형성할 수 있다.

잠재적 성공을 위해서는 중요한 것을 현실적이고 이야기 가능한 것으로 유지하는 것 또한 관건이다. 구좌파는 전통적으로 추상태들로 소통을 했는데, 이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만들어내는 경향을 가진다. 시리자, 뽀데모스, 볼리비아 사회당의 포퓰리즘적 ‘신’좌파도 시민참여적이고 실행 가능한 행동들을 제안하는 대신에 거창한 온정주의적 약속들을 제시하는 데, 그리고 비난 던지기에 호소하는 데 만족하는 듯이 보인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친연 집단(affinity groups)을 스스로 조직하고 비공식적인 참여 공동체들이 출현하여 부패하는 복지국가의 단점들을 문제 삼는 문화에서는 사람들이 세상을 운영하는 데 자신도 발언권을 가지고 싶어 함을 당당히 밝힌다. 사람들은 자신이 버는 것보다 엄청나게 많은 보수를 받고 자신들을 대신해서 발언을 해주는 누군가의 존재를 원하지 않는다. 커먼즈 정치가 과연 자기조직화로 향하는 이러한 전환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가?

새롭게 출현하는 커먼즈 및 P2P 정치 운동을 국지적 장소의 현실적인 동학의 특징들을 보존하면서도 높은 복잡성의 수준―지역적(regional)(([옮긴이] ‘지역’(region)이란 국가보다 작고 구체적인 국지적 장소보다는 넓은 규모에 쓰이기도 하지만 ‘동아시아’처럼 몇 개의 국가들이 모여서 이루는 규모를 가리키는 데 쓰이기도 하므로 유의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는 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일국적, 초국적 수준―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다. 커먼즈 기반의 실천들은 정치적 과정에 의해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공동체들의 창조성과 참여에 관여함으로써 효과적인 정치 행동에 쓰일 수 있는 일체감을 양성할 수 있다. 커먼즈의 통합적 내러티브는 시장국가와 시장경제의 협소한 관료주의 외부에서 시민들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권유한다.

근본적으로 다시 개편되고 민주적으로 책임성 있는 구조를 상상해보자. 복지국가의 바람직한 특징들―사회적 복지 및 공중보건, 거대한 기반시설의 관리와 유지―을 보존하면서도 그것들을 근본적으로 민주화한 구조를. 이 구조는 국가의 시장과의 아늑한 공생을 제거하는 한편, 화폐의 창출과 교환, 재산과 법적 권리에 대한 국가의 해로운 독점을 해제할 것이다. 그 다음의 일련의 조치들은 불평등의 구조적 발생을 금지시키고 해방적 대안들에 대한 종종 폭력적인 억압을 금지시킬 것이다. 이 구조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경제에서 재단들이 기능하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기능할 것이다. 협동 및 커먼즈의 창출과 유지를 위한 기반시설을 제공하면서도 사회적 가치의 창출과 분배의 과정을 위에서 이끌지는 않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커머닝의 실천을 가능하게 하고 보호할 것이다.

이렇게 커머닝을 가능하게 하는 메타구조(metastructure)―이는 종종 ‘파트너 국가’(The Partner State)라고 불린다―는 이미 존재하는 P2P/커먼즈 실천에서 도출되는 새로운 기능들을 취할 것이다. 이 가운데에는 욕구 지향적인 실질적인 기업가활동/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의 증진이 속하는데, 이 활동/정신은 개방형 협동조합들, 무선 네트워크망, 혹은 공적 영역과 커먼즈의 파트너관계를 통해 개발되는 공동체 재생에너지원과 같은 상향식 생산 기반시설의 뒷받침에 의해 강화된다. 이는 커머너들로 하여금 사용되지 않고 있거나 덜 사용되고 있는 공공건물들을 사회적 목적으로 재활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한편, 카피레프트에 의해 영감을 받은 재산법 개혁에 의해서든 커머닝을 점진적으로 제도화하는 더 긴 과정을 통해서든 커머닝 활동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그 풀뿌리 민주주의적 에토스는 새로운 금융 메커니즘들과 부채로부터 자유로운 공적 화폐를 창출할 것이다. 이 화폐는 사회적 통화들과 나란히 존재하면서 환경을 재생성하는 일이나 새로운 분산된 오픈소스 기반시설을 만드는 데 기금을 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위에 서술된 유형의 노동을 선호하는 세제 계획에 의해 뒷받침되는 한편, 투기와 기생적 지대와 사회 및 환경에 부정적인 외부성들을 처벌할 것이다.

널리 확산된 참여정치 문화―이는 병행되는 교육에 의해 현실적으로 가능해진다―를 통해서 정치적·입법적 이슈들과 예산책정을 숙의하고 실시간으로 의논하는 데 새롭게 권리를 얻은 시민들을 포함시키도록 전체 체제를 통제해야 한다. 권력의 문제에서 파트너 국가는 유체적인 촉진자로 전환하여 국가를 통제하는 상향식 대항권력을 돕고 해방시킨다.

이 이야기가 유토피아적인가? 오큐파이와 15-M의 제안들을 ‘그들의 요구는 무엇인가···?’ 식으로 제시한 것에 불과한 것인가? 실상 위에서 말한 파트너 국가 실천들이 ‘대담한 도시들’에 의해서 이미 많이 실행되고 있다. 유토피아주의라는 비난은 상상력의 커먼즈를 종획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불가피한 갈등과 자기이익 말고도 인간의 본성에 있는 더 좋은 것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격려)가 필요하다. 역사는 관찰될 수 있는 패턴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정론적이지 않다. 그 무엇도 정밀한 개념들에서 갑자기 온전히 형성된 실재로 현실화되지 않는다. 15세기 플로렌스에서 일단의 현명한 사람들의 집단이 둘러앉아서 “···우리는 자본주의를 창출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서 전진할 것이다! 우리는 고빈도 알고리즘 트레이딩(high frequency algorithmic trading)을 할 것이다!” 등과 같은 허튼 소리를 선언한 일은 없다. 그렇지만 잘 보면 상인계급의 발생, 인쇄기, 복식부기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테크놀로지적 트렌드들을 포착해낼 수 있다. 이 트렌드들은 모두 18세기부터 우리가 ‘자본주의’라고 인식하는 것을 형성하게 될 것이었다.

현재 우리가 처한 카오스 상태에서는, 정치의 영역에 커먼즈 이행을 적용하는 것은 세 구별되는 진보적 경향들의 최선의 실천들을 활용하는 새롭고 포괄적인 내러티브를 창출하는 것을 수반한다. 개방성(해적당들), 공정성(신좌파), 지속 가능성(녹색당들)이 그 셋이다. 우리 시대의 과제에 부합하는 새로운 정치적 비전을 구축하는 최적의 플랜은 이 세 경향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을 포함한다. 바로 자치도시주의자들이 성취했고 정치적·입법적 힘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새로운 정치를 위한 이 비전은 인종, 젠더, 재생산과 관련된 정의(正義) 같은 뒷전으로 밀린 관심사들 그리고 균형에 대한 증가된 관심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크게 다양화하는 정치적 대의 또한 증진해야 한다. 대표적인 상이 항상 그리고 유일하게 ‘백인 이성애 남자들’인 것은 아니라는 (특히 지도자 역할의 경우에)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여성들이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에서 승리한 자치도시연합 후보들로서 선봉에 섰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P2P 동학이 실행 가능한 해결책들을 도입할 수 있고 토대가 있고 바이오지역에 기반을 둔 정치 참여를 도입할 수 있는 시골 및 탈산업화된 지역들에 더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커먼즈는 본성상 포용적이기 때문에 정치에 적용되었을 때 해당 개인들과 공동체들에 의한 풀뿌리 수준의 정치참여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내러티브는, 기존의 제도들만이 아니라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시민사회 조직들이 접근할 수 있는, 이미 존재하는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최고의 실천들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

요컨대 자치도시주의(municipalism)가 권력구조를 성공적으로 점거한 데서 우리는, 커먼즈 논리가 P2P에 의해서 가능하게 되는 민주적·참여적 관계들과 결합되면 오늘날의 정치 장(場)에서 새로운 목적의식을 되살리고 불어넣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커먼즈 정치를 포함하는 커먼즈 지향적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면, 이 더 나은 미래를 현실로 가져오는 데 가진 모든 힘을 다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윤리적 책무가 된다. 괴물 시대의 이 싸움. 다윗과 골리앗의 이 싸움에서 다윗이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원주] 이 아이디어는 원래 수압균열법 반대 활동가인 쌘드러 스타인그레이버(Sandra Steingraber)가 제시한 것이다. [옮긴이] 수압균열법에 대해서는 http://minamjah.tistory.com/search/fracturing#footnote_101_15 참조. 쌘드러 스타인그레이버에 대해서는 http://www.truth-out.org/news/item/16033-sandra-steingrabers-war-on-toxic-trespassers 참조.)) 다윗은 결국 이겼으며, 자치도시운동의 승리 경험을 볼 때 우리 또한 이길 수 있지 않을까. ♣




괴물 시대의 커먼즈 (1)



 

괴물 시대의 커먼즈―P2P 정치가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커먼즈가 정치적으로 성숙해지고 있다. 그 방법과 원칙들이 더 가시화되고 있으며 참여자들이 유럽의 여러 도시들의 선거에서 승리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으며,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우선 현재의 정치적 맥락을 보고 그 다음으로 커먼즈 정치의 이 새로운 물결의 탄생과 궤적에 대해 평해보기로 하자.

현재 우리가 처한 정치 풍경이 얼마나 나쁜지 점검해보자. ‘차악주의’(lesser-evilism)의 번성? 맞다. 대안 우파(Alt-right)의 전 세계적 확산? 맞다. 한때 찬란했던 (시리자Syriza나 뽀데모스Podemos 같은) 좌파 정당들이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무능력 등으로 인해 이제는 녹슬었다? 맞다. 전체적으로 보아 매우 나쁜 상황이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무도한 행태들이 그 지적 신뢰성의 남아있는 흔적마저 싹 부식시켰는지도 모른다. 이 무도함은 그것이 아무리 끔찍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한 것이 되어서, 안전에 대한 그리고 예측할 수 있는 행동의 여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제공한다. 장기화된 긴축정치와 복지국가에 대한 약탈이 많은 사람들을 좌절시키고 절망에 빠뜨리고 분노시켰으며 발흥한 우파 포퓰리즘 운동이 이것을 이용하여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눈에 띄는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정치 참여는 의미 없는 선택에 국한된 듯이 보일 수 있다. 흘러내리는 바위들 위를 기어서 익숙하지만 변하고 있는 지구화된 자본주의라는 땅을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21세기의 오만(즉 브렉시트, 트럼프주의, 대안 우파 혹은 극우)을 가득 싣고 곤두박이로 달리고 있는 화차에 편승할 것인가? 대의 민주주의의 실험을 버릴 때인가? 더 인간적이고 참여적인 정치를 위한 적극적인 모델들이 존재하는가?

이러한 정치적 맥락은 많은 책들과 글들에서 개괄되었으나 슬프게도 불가피한 파멸을 저지할 실행 가능한 대안들은 거의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 글은 롤러코스터 같은 시장과 관료제로부터 해방된 정치체제를 다시 상상하는 시도를 서술한다. 여러 장소에서 선거에서 승리한 현존하는 효과적인 정치운동에 기반을 둔 이 글은 거버넌스, 생산, 돌봄 노동, 문화적·자연적 유산의 파수에서 이루어진 발본적인 혁신에 대한 서술이며 아래로부터의 체계 구축을 위한 반석을 놓는 정치에 대한 서술이다. 이는 커먼즈와 P2P의 정치로서, 공통자원의 공유된 창조와 관리를 확장한 것이고 자치도시 선거에서의 최근의 성공적 분출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괴물 시대의 커먼즈

그람시가 말했듯이 (아니면 말하지 않았듯이(([원주] 그람시가 실제로 그 말을 했는가? 사실 여부가 뜨겁게 논란이 되는 이 발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세계정세를 포착해준다.))) “낡은 세계는 죽어가고 있고, 새로운 세계가 태어나려는 몸부림을 치고 있다. 지금은 괴물들의 시대이다.” 신자유주의화와 사회적 해체가 점진적으로 진행된 지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 정치는 자신의 증오정치를 국가권력 장치에 연결시키는 데 골몰하는, 여성 혐오적이고 외국인 혐오적이며 금융 면에서 특권을 쥔 ‘뉴 라이트’에 의해 매우 공공연하게 뒤엎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내부로부터의 변화가 국가주의 정치와 선거 무대가 부과하는 구조적 제한에 의해 효과적으로 봉쇄된다면, 행동의 여지는 어디에 있는가? 민중이 동의하든 안 하든 국가권력을 먼저 쟁취한 다음 공정하고 지속적인 사회변화를 추구한다는 레닌주의적 사고는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다음 체제는 그저 레버를 당기기만 하면 생기는 것이 아닐 것이다.

점점 더 황량해지는 이러한 정치 풍경 안에서도, P2P 동학을 사용하여 커먼즈를 구축하는 친화성 기반의 네트워크들과 공동체들이 행동을 취해왔다. 많은 분야에서 이루어진 소규모 혁신들이 참되고 지속 가능한 자원관리와 토대를 가진 사회적 결속으로 나아가는 길을 닦고 있다. 공동체에 의해 가능해진 이러한 전개과정들은 거버넌스, 작물 재배, 서비스 공급, 과학, 연구 및 개발, 교육, 심지어는 금융과 통화(通貨)에서 어떻게 우리의 삶이 다르게 조직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장소에 기반을 둔 이러한 노력들 다수가 문서로 기록되고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복제되고 있다. 끌어다 쓸 지식 커먼즈의 씨앗을 다시 뿌리는 과정인 것이다. 이는 커먼즈를 가능하게 하는, 일명 P2P(peer-to-peer, person-to-person, people-to-people) 테크놀로지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 테크놀로지는 건설적 변화의 추동력이 되고 있다. 이 테크놀로지는 소규모에서 이루어지는 동학이 더 높은 수준의 복잡성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게 하며, 힘을 되찾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 힘으로 사람들은 생산, 공개 회계, 자연적·문화적 공통재의 파수에서 혁신을 창출할 수 있으며, 또한 거버넌스에서도 그럴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다 합해지면 진정으로 아래로부터 구축되는 체계의 기초적 요소가 된다. 이 모든 것이 정말로 합쳐져서 ‘탈자본주의’라고 불릴 수 있는 것으로 전환될 수 있는가? 이는 스스로를 커머너라고 의식하는 사람들이 이 체계들을 알아보고 증진하고 발전시키며 그 문화적인 영향력과 중요하게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증가시킬 때에만 가능하다. 물론 커머너들은 유사한 수단을 사용하여 매우 다른 목적을 추구하는 다른 세력들이 이미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시적인(prefigurative) 접근법들이 합리적인 대안들을 구축하는 핵심적 요소들 가운데 일부이다. 그러나 이 접근법들이 단독으로 발전되지는 않는다. 이 접근법들은 기존의 체계들의 제한 내에서 구축된다.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가 부과하는 종획(([원주] 1776년에서 1825년까지 영국 의회는 주로 정치적으로 연결된 토지소유자들을 위해서 커머너들로부터 공유지를 사유화하는 데 필요한 4000개 이상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레이먼드 윌리엄즈(Raymond Williams)에 의하면 공유지(커먼즈)의 이러한 종획은 영국에서 모든 경작지의 약 25%에 대해 행해졌으며 그 소유권을 소수의 인구에 집중시켰다. 이러한 ‘합법적’ 종획은 또한 수백만 명의 민중을 땅에서 축출했고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말살했으며 산업화, 직업의 전문화, 대규모 생산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경제를 강제적으로 도입했다. 오늘날 우리는 ‘종획’이라는 말을 지적 재산의 사유화, 아프리카 등지에서 일어나는 대대적인 토지강탈, 디지털 콘텐츠를 관리하는 디지털 권리의 부과, 씨앗과 인간 유전자의 특허내기와 같은 끔찍한 행동들을 비판하는 데 사용한다. 종획, 인간관계들을 서비스로 전환시키기, 커먼즈를 상품으로 전환시키기와 같은 근대의 경향은 커먼즈 학자 데이빗 볼리어에 의해서 “우리 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비극”이라고 지칭된 바 있다.))을 통해서든 권위적이고 배타적인 증오 정치를 통해서든 사람들이 기대하거나 바라는 ‘정상적인’ 조건은 틀림없이 위축될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영향을 미칠 것인데, 일자리 보장, 연금, 실업, 합리적인 노동시간과 조건, 공정성이 여기에 속한다. 그 결과로 저 생산적인 공동체들의 작동에 필수적인 ‘바꿀 수 있는 여지’가 불가피하게 줄어들 것이다.

서구의 맥락 바깥에서 보자면, 이 바꿀 수 있는 여지는 ‘특권’으로 간주될 수 있다. 시장을 최대화하는 브뤼셀(유럽연합)의 명령 아래에서 그러한 특권은 사라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2008년에 커튼 뒤의 조종자가 드러났으며, 갑자기 타오른 대항적 정치활동이 2011년에 세인의 주목을 최고로 받는 정점에 도달했다. 2017년에 물음은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실용적인 것이 되었다. ‘낡은 세계의 껍데기 안에서, 이 껍데기가 압착되어 닫히기 전에, 어떻게 새로운 세계를 구축할 것인가?’

2011년 이후의 항의운동은 우파로부터 일어 오르는 증오의 파도에 충분히 잘, 혹은 빨리 맞서는 일을 정치적으로 잘 해내지 못했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대한 포퓰리즘적 반발이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로의 회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현재 유럽의 정치 풍경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외국인 혐오적 행태들은 능숙한 인터넷 기술 및 소셜 미디어 기술만이 아니라 P2P 전술도 사용하여 그 사회적 기반을 구축했다. 대체로 P2P 전술과 도구들은 더 포용적이고 정당한 세계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 장려되었지 배제하고 ‘타자화’하는 세력에 의해 장려되지는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상처에 소금을 뿌린 셈이다.

우리는, 금융세력이 항상 그들의 이익을 지켜줄 극우 혹은 파시스트 노선을 선호하리라는 점을, 그리고 재분배를 추구하는 그 어떤 정치 노선도 인정사정없이 공개적으로 조롱당하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심한 취급을 받으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30년대의 해로운 정신이 되돌아오면서 지체할 틈이 사라졌다. 지금 인내는 치명적인 전략이 될 것이다. 이제는 설득력 있고 실질적인 정치적 대안들로 집단적인 문화적 상상력을 채우고 신자유주의의 정상화가 죽은 선전임을 폭로할 때이다. 우리를 아연케 하는 광경(브렉시트, 트럼프 등)이 또 하나의 약물중독임을 폭로할 때이다.

바로 그래서 지금은 커먼즈 운동이 더 공개적으로 정치적인 활동성을 띨 때이다. 자기조직된 생산, 돌봄 노동, 생태 파수를 넘어서, 심지어는 윤리적인 생성적(generative) 시장을 넘어서, 더 효과적인 정치적 참여가 들어설 때이다. 복지국가 모델의 정수를 보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 창출과 공동체에 의해 조직되는 실천들을 촉진하는, 발본적으로 다시 상상된 정치로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커먼즈 지향적 정치 참여의 모델들이 스페인의 자치도시 운동(municipal movements)에 들어있다. 지금부터는 이 운동을 개략할 것이다. 분명히 해둘 것은, ‘정치적’이라는 말이 대의정치만이 아니라 정치적 결정에 의해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의 실행 가능한 권리 또한 포함한다는 점이다. 즉 공론장(public sphere, 공공영역)을 포함한다. 지금 새로운 대안들을 구축하려는 노선과 기존의 정치적 채널들을 해킹함으로써 변화를 가능하게 하려는 노선을 분리시키는 이분법은 잘못된 것이다. 두 접근법―예시적 접근법과 제도적 접근법―이 모두 동시에 작동할 수 있다.

전위주의 ―21세기에 우리를 조심시키는 교훈적 이야기

이제 유달리 주목을 받은 한 당의 기원을 되돌아볼 때이다. 이 당은 포용적이고 커먼즈 지향적인 정치적 과정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해주었으나 그 기대에 부응하는 데 결국 실패했다. 그래도 그 초기의 공개집회들에는 커먼즈 정신이 존재했다. 이는 나중에 이루어진 자치도시 당들의 발생을 고찰하면서 유념해야할 요소이다.

2014년 1월 마드리드 자율대학의 일단의 정치학 교수들이 스페인의 국영 방송에서 꽤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들은 새로운 정당의 형성을 선언했는데, 이는 “거리로 돌아가는 정치, 겪을 것을 다 겪은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말하는 정치”를 요구하는 당이었다.

대표자들의 더 큰 관대함, 더 큰 수평성과 투명성, 공적 미덕과 사회정의라는 공화주의적 미덕들의 부활, 다민족적이고 다문화적인 현실의 인식에 대한 우리의 요구는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우리 자신이 결정을 하고 우리의 문제에 우리가 응답하고자 하는 욕망이 절절해진 지 수십 년이 되었다. (모베르 피차 선언(([옮긴이] 이 선언은 뽀데모스 당의 것이다. ‘모베르 피차’(Mover ficha)는 말 그대로는 장기판의 말을 움직인다는 의미이다.)))

몇 달 후의 유럽 의회 선거에서 이 새 당은 120만 표 이상을 얻어 유럽 의회에서 5개의 의석을 차지한다.

우리는 지금 뽀데모스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당의 궤적은 커먼즈 지향의 정당이 할 수 있는 것―더 정밀하게 말하자면,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알려준다. 이 당의 초기의 활동은 긴급한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실행 가능한 것을 알려주며 민중의 욕구와 욕망을 표현하면서 민중의 희망에 호소하는 데 쓸 수 있는 힘을 보여준다. 뽀데모스의 초기의 성공은 그들의 작업이 구별되면서도 연관되는 두 수준―대중매체와 네트워크 미디어―에서 공히 이루어진 데 기인한다.

TV토론에서 첫 경험을 쌓은 뽀데모스의 가장 유명한 인물들은 (주로 남성들이다) 그들이 ‘라 카스타’(영어로 ‘the cast’라는 말로서 특권계급이라는 조롱을 담고 있다)라고 칭한 해묵은 정치 계급의 주장을 두들겨 팸으로써 사람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다.

모든 것이 쇼 비즈니스는 아니었다. 뽀데모스는 15-M 운동의 네크워크화되고 수평적인 정치를 포착할 만큼 충분히 영민했다. 지리적 위치와 관심별로 형성된 어마어마한 수의 모임들(‘시르쿨로스’circulos(([옮긴이] 영어로는 ‘circles’라는 의미이다.))라고 불렀다)이 레디트(Reddit), 루미오(Loomio) 같은 온라인 도구들을 통해 현실화되고 강화되었다.

뽀데모스는 수많은 전술을 통해 많은 유형의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는 토템이 되었다. 그 한 유형은 한때 정치적으로 무관심했던 사람들로서, 이들은 뽀데모스의 대표인 빠블로 이글레시아스(Pablo Iglesias)에게서 중산층에 대한 자신들의 경멸을 모아 ‘라 카스타’를 파괴하는 반역의 아바타를 본다. 그 다음 유형은 신자유주의와 긴축정치에 헌신하는 사회노동당(PSOE)(([옮긴이] 텍스트에는 ‘Social Democrat’라고 되어 있으나 원어로는 ‘Partido Socialista Obrero Españo’이고 우리말로 옮기면 ‘스페인사회주의노동자당’이다. 여기서는 조금 줄여서 ‘사회노동당’으로 옮긴다.))에 환멸을 느낀 오래된 좌파들이다. 이와 유사하게, 스페인 공산당의 부산물인 더 좌파적인 정당을 지지했다가 환멸을 느낀 사람들도 있다. 마지막으로 빤하지만 언급할 만한 유형은 15-M과/이나 그 이전의 대안지구화 운동 동안 광장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재)발견한 활동가들이다.

물론 뽀데모스의 이야기가 이 글의 핵심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시간이 가면 어두워지고 칙칙해진다. 한때 선거에서 높은 인기와 리더십을 맛보았던 뽀데모스의 중앙위원회는 뒤에 쳐진 사람들을 위해 권력을 잡는 전위주의적 ‘선거기계’가 되는 쪽으로 기울었다. 뽀데모스는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선거에서 이겨서 침묵하는 대중에게 해방을 가져다주고자 하는 듯이 보였다. 대중이 이렇게 위에서 부과되는 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관계없이 말이다.

3년 후 그 결과는 명백했다. 사회노동당과 이유가 무엇이든 늘 제1당인 국민당(프랑코의 옹호자들과 브뤼셀에 아첨하는 자들의 소굴)에 뒤쳐진 뽀데모스는 한때 자신들의 주장대로 “두려움으로 하여금 편을 바꾸게” 만드는 데 실패했다.

그러는 사이에 지중해 건너편에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전해져왔다. “‘아니오’라고 말한 작은 나라”의 당인 시리자이다. 이제는 자신들을 권력의 자리에 올려놓은 사회운동들로부터 분리된 이 작은 나라의 정치적 대표자들은 ‘아니오’라고 말한 후에 새로운 게임을 구축하기보다 조작된 게임을 계속하고 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마지막 유형의 주도 아래 2014년과 2015년 사이에 새로운 정치 환경이 형성되었다. 15-M을 거친 활동가들이 한층 성장하여 정치로 진입한 것이다. 이들은 대의정치의 수용자들이 아니라 창조자들이 되고 싶었으며 다른 많은 목소리들을 포용하는 촉진자들로서 행동하고 싶었다. 스페인의 자치도시연합(municipalist coalitions)의 발생이 바로 이 새로운 이야기로서, 피부로 느끼는 변화를 창출하는 성공적인 커먼즈 기반의 정치 전략에 열쇠가 되는 점들이 여기서 이야기된다.

운동의 죽음, 과장되게 선언되다

이 다른 이야기의 기원은 15-M의 표면상의 쇠퇴에 있다. “표면상의”라는 말이 여기서 핵심이다. 가시성에 관해서 말하는 한 우리는 오큐파이 운동을 이 사라지는 과정의 일부로서 인정해야 한다.

2011년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은 도널드 트럼프가 아니라 시위자였다. 이는 뒤로 물러서지 않고 그 자리에서 야영을 하며 미디어의 주의를 끌고자 하는 네트워크화된 운동의 정점을 찍었다. 이는 주류 미디어에 걸맞은 배경을 바탕으로 하나의 응집된 인간 형상군을 제시했다. 여기서 우리는 15-M과 오큐파이 운동이 어떻게 해산했는가와 어떻게 해산되었는가를 구분해야 한다.

스페인에서 활동가들은 『손자병법』의 한 대목을 취하여 대규모 점거들을 동네 집회들로 탈중심화하는 식으로 자발적으로 분산시켰다. 미국에서 FBI는 국토안전부, 통합 테러리즘 태스크포스, 민간부문 기관들(특히 은행들), 해당 지역 법집행기관, 몇몇 저명한 시들의 시장들과 연계하여 우선 점거자들 사이로 침투하고 그 다음에 격렬하게 점거를 분쇄했다. 만일 우리가 오큐파이 운동의 의의를 미디어의 높은 주목을 받은 이 광장에서의 몇 달에 국한시킨다면 우리는 이 운동이 “사망한” 것이라기보다는 암살당했음을 알 수 있다.

스페인과 미국 모두에서 미디어는 (마치 지리적 가까움이 네트워크들의 친화적 관계를 유지시키는 유일한 것인 양) 이 운동 및 그와 비슷한 모든 전 세계의 운동들이 사망했다고 서둘러 선언했다. ‘2011년의 올해의 인물에 대해서는 이제 그만!’ 이는 자연사가 아니라 큰 운동을 실종처리 하려는 잔인한 시도였다. 그러나 마크 트웨인의 말을 좀 바꾸어 쓰자면, ‘운동의 죽음에 대한 선언은 크게 과장되었다.’(([옮긴이] 마크 트웨인은 사촌이 아픈 것이 와전되어 자신이 죽은 것으로 보도된 것을 놓고 과장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the report of my death was an exaggeration”))) 그런데 만일 이 운동들이 아직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의 공모와 동의로 이 운동들이 ‘실패’로 낙인찍혔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각설탕을 생각해보자. 각설탕을 손에 들면, 실팍하고 알아볼 수 있는 모양과 짜임새를 하고 있어서 측정하고 서술하기 쉽다. 이것을 커피 잔에 넣어 저으면 마법이 일어난다. 각설탕은 사라지지만 커피를 한 입 마시면 설탕 맛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는가!

이 비유가 15-M/오큐파이/신타그마타(Syntagma) 및 기타 다양한 지역 운동들이 살아서 잘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을 간결하게 표현한다. 비록 분산되어 있고 직접적으로 표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말이다. 보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 운동들의 효과가 쉽게 포착될 것이다. 점거활동들 이후 6년이 채 지나지 않았음을 기억하라. 이는 히피가 여피가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구속력 있는 계약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운동에 관한 이야기이다.

미국에서는 오큐파이가 어떻게 버니 쌘더스의 선거운동(이 또한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는 기성의 세력에 의해 침식되었다)에 활력을 불어넣었는지를 인식할 수 있으며, 최근에는 <여성의 행진>(Women’s March)에서, 파업들에서 그리고 반(反)트럼프 운동의 일부들에서 그 영향력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절절한 기억과 몸으로 겪은 산 경험을 가진 활동가들이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것을 택했으며, 실제로 승리했다. 여러 지역에서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을.
<계속>

 




커먼즈로서의 도시에 대한 새로운 작업의 물결



 

커먼즈로서의 도시에 대한 새로운 작업의 물결

최근에 커먼즈로서의 도시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물결이 일었다. 새로운 책들이 출판되고 공개행사들과 현장 활동들이 있었다. 각각의 노력은 다소 상이하지만, 모두가 도시 거버넌스의 우선권과 논리를 커머닝의 원리를 향하는 방향으로 다시 정의하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통한다.

나는 특히 『예일 법과 정책 평론』(Yale Law and Policy Review)에 실린 새 학술논문 「커먼즈로서의 도시」(“The City as a Commons”)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포드햄 로스쿨(Fordham Law School) 교수 포스터(Sheila R. Foster)와 이탈리아의 법학자 이아이오네(Christian Iaione)가 공동으로 쓴 이 논문은 탐구와 행동주의라는 새로 출현하는 분야에서 획기적인 종합을 이룬 글이다. 68쪽에 해당하는 이 논문은 도시를 커먼즈로서 개념화하는 데서 맞닥뜨리는 주된 철학적·정치적 과제들을 배열하고 271개의 각주에서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포스터와 이아이오네는 “커먼즈가 더 포괄적이고 공정한 형태의 ‘도시 만들기’의 가능성을 여는 프레임이자 일단의 도구들로서의 역할을 할 잠재성”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도시들이 시민들이 공통재로서 요구할 수 있는 자원을 사유화하거나 독점적 공적 규제로써 통제하지 않으면서 그 자원을 다스리거나 관리하는 문제를 부각시킬 잠재력을 커먼즈는 가지고 있다.”

저자들은 도시에 있는 커먼즈 자원의 역사와 현재 상태를, 그리고 공원보존위원회(park conservancies)(([옮긴이] 공원의 보존을 담당하는 공적 기구이다.)), 공동체 토지 신탁(community land trusts), 지분제한형 조합주택(limited equity cooperative housing)과 같은 거버넌스의 대안적 양태들의 부상을 탐구하는 데로 나아간다. 포스터와 이아이오네는 “도시 커먼즈의 비극”에 대해서 (더 정확하게는 커먼즈를 자원으로만 보는 데서 발생하는 유한한 자원의 과도한 착취에 대해서) 쓰면서도, 도시 환경에서의 “커먼즈의 산출”에 대해 말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장을 연다. 이들은 핵심 문제가 단지 재산의 소유만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적극적 협동과 관계를 양성하는 것임을 이해하고 있다.

“집단적으로 생산되는 자원의 가치는 인간의 활동의 결과이며 사람들이 자원에 접근하고 그 자원을 사용하는 능력에 달려있다”고 이들은 쓴다. “많을수록 즐겁다”는 원리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이해된 커먼즈는 도시를 위한 가치의 풍요로운 발생처로 간주될 수 있다. 만일 사람들이 이 사실을 인식하기고 적절한 정책과 지원책을 만들어내기만 한다면 말이다.

최근에 출판된 또 하나의 중요한 저작은 라모스(Jose Ramos)가 편집한 선집 『커먼즈로서의 도시: 정책모음집』(The City as Commons: A Policy Reader)이다. pdf 파일로 무상으로 다운받을 수 있는 이 책은 도시를 커먼즈로서 창출하기 위한 정책 옵션들과 전략들에 초점을 맞춘 34개의 기고문들을 담고 있다. 다루는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 도시계획, 공공도서관, 공동체 통화, 시간은행, 플랫폼 협동조합, “코즈모-로컬리즘”(cosmo-localism)(([옮긴이]전지구적으로 분산된 지식 및 디자인 커먼즈들과 지역화된 가치생산의 결합이 가진 잠재력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http://actionforesight.net/cosmo-localism-and-the-futures-of-material-production 참조)), “시민조합토지”(civic union land), 오픈 데이터, 도시 커먼즈 보호 갱생을 위한 볼로냐 조례, 커머닝, ‘조세체납 사유재산'(([옮긴이] 재산을 소유한 시민이 세금을 내지 못한 경우 그 부채를 이윤을 노리는 민간투기업자에게 조세선취특권(tax lien)의 형태로 팔지 않고 시의 관리 아래 두어 공공재로서 사용하는 등 도시 커먼즈를 보호하는 것과 연관되는 주제이다)) 등이다.

바로 지난주에 커먼즈에 대한 책이 또 한 권 나왔다. 브리턴(Tessy Britton)이 쓰고 앤더슨(Amber Anderson)이 삽화를 넣은 『그림이 있는 참여도시 가이드』(The Illustrated Guide to Participatory City)이다. 접근하기 쉽고 재미있는 이 책은 ‘참여 문화’가 어떻게 도시를 되살리고 더 탄력 있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 책은 소규모 참여 기획들의 가치를 부각시키며, 이 기획들이 다 합쳐지면 많은 더 크고 서로 얽힌 사회 문제들을 다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낸 영국의 프로젝트인 <참여 도시>(Participatory City)는, 실질적인 참여의 규모를 (연구가 가리키는 대로) 변형에 유익함을 가져오는 데 필요한 수준으로 확대하기 위해서 현재 큰 “시범 지구”(demonstration neighborhood)를 개발하는 중이라고 설명한다. <참여 도시>는 현재 5년 동안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20만 내지 30만의 시민들로 이루어진 도시를 찾고 있다.

최근에는 나 자신도 커먼즈로서의 도시 전선에서 활동해왔다. 9월 1일에는 암스테르담의 문화시민센터인 빠크회스 데 즈베이헤르(Pakhuis de Zwijger)에서 이 주제로 강연을 했다. 강연 이후에 이 분야의 전문가들 네 명―랩겁(LabGov)의 이아이오네(Chris Iaione), 커먼즈 네트워크의 해머스틴(David Hammerstein), 바흐 쏘사이어티(Waag Society)의 스티커(Marleen Stikker), HvA의 마요어(Stan Majoor) ―으로 이루어진 토론단이 활발한 토론을 했다. 2시간 15분짜리 비디오를 여기서 볼 수 있다.

도시를 다르게 보는 방법론적 도구들을 제공하는 <도시 르네상스 연습>이라고 불리는 프로젝트는 커먼즈로서의 도시를 다음과 같이 멋지게 정의한다.

도시는 공통체(commonwealth)(([옮긴이] ‘commonwealth’는 ‘common’과 ‘wealth’가 조합된 단어로서, 말 그대로 직역하면 ‘같이 잘 살고 있음’의 의미인데, 실제로는 ‘공공복지’(public welfare)라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국가’(state)라는 의미로도 사용되며 ‘공동체’(community)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이 이외에도 여러 의미가 있으나 현재의 맥락에서는 논외로 해도 무방하다.) 옥스퍼드영어사전의 다음 예문에서 로크는 자신이 ‘commonwealth’를 ‘공동체 일반’이라는 의미로 사용함을 말하고 있다.

1690 J. Locke Two Treat. Govt. ii. x. §133 By Commonwealth, I..mean, not a Democracy, or any Form of Government, but any independent Community which the Latins signified by the word Civitas.

다음 예문에서는 더 구체화된 의미의 공동체, 즉 민주적 원리에 의해 구성된 공동체라는 의미가 제시된다.

1583 Sir T. Smith’s De Republica Anglorum i. x. 10 A common wealth is called a society..of a multitude of free men collected together and vnited by common accord & couenauntes among themselues. (* ‘u’와 ‘v’를 바꾸어 읽으면 된다.)

네그리와 하트의 저서 Commonwealth 에서 ‘commonwealth’는 그저 일반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공통적인 것’(the common)에 확연하게 기반을 둔 공동체로서 ‘커먼즈’(commons)와 거의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공통적인 것’은 ‘사적인 것’(the private)과는 당연히 다르고 ‘공적인 것’(the public)과도 다르다. 그래서 이 Commonwealth의 한국어 역자들은 이 점을 감안하여 ‘공통체’라는 번역어를 사용했다. 여기서도 이 번역어를 사용했다.)) 이며 공유된 자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지식과 집단적 실천에 기반을 둔 협동적 환경이다. ‘커머닝’은 도시 조직화의 구성적 과정으로서, 공동체들을 수립하고 재생산하며 경계들·프로토콜들·분배원칙들을 확정한다. 도시 커먼즈는 소진되고 노후화되고 강탈될 수 있는 물질자원과 관계자원(relational resources)을 공히 관리하는 잡종제도(hybrid institutions)이다. 커먼즈는 언제나 보호되고 되찾아지고 갱생되어야 한다.

나는 이 주제가 다음번에는 어떻게 달라질지 정말로 보고 싶다. 나는 11월 17일에 내가 기조연설을 하는 바르셀로나의 ‘스마트 시티 엑스포’(Smart City Expo)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기를 희망한다.

[정리자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