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P 커먼즈는 급진과학 역사에서 ‘세 번째 운동’인가?

 



 

P2P 커먼즈는 급진과학 역사에서 ‘세 번째 운동’인가?

 

4년 전 처음 게리 워스키(Gary Werskey)의 ‘세 운동’(three movements)을 다룬 2007년 논문을 읽었을 때 나는 회의적이었다. 게리는 1930-40년대와 1970-80년대에 과학을 둘러싸고 일어난 두 개의 영국 급진주의자들의 운동을 다루었고 환경적인 파급력을 가질 수 있을 세 번째 운동의 가능성을 예측했다.

나는 그것이 다른 두 운동과 마찬가지로 맑스주의적 운동일 가능성에 대해 별로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2018년인 지금 나는 진정 P2P 커먼즈 운동이 실로 세 번째 운동의 자리에 서있다고 본다. 적어도 그러리라고 전제하고 나아가는 건 가치 있을 것이다. 활동가들에게는 부차적이더라도 과학기술연구(STS)((STS :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분야에선 중대한 함의를 가지니 말이다. 나는 P2P 커먼즈가 내 활동가 삶에서 봐온 가장 중요한 것임을, 그리고 지식과 기술의 정치를 지향하는 자유의지론적 사회주의자로서 내가 지난 50년 간 공들여온 걸 가동시키는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루시 가오(Lucy Gao)와 나는 막 STS 학문연구분야의 연차 모임인 <4S 시드니 2018>((4S : Society for Social Studies of Science))에서 이루어질 발표를 연구하고 짜는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학회세션의 주제 ‘일련의 실패한 정치적 실험으로서의 STS 안에서의 삶’은 게리가 했던 언급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었고 루시와 나는 그가 말하는 ‘세 운동’을 두 ‘STS 안에서의 삶’ -그녀의 10년의 삶과 나의 45년의 삶- 에서 이루어진 실험과 실패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를 진술하기 위한 틀로 삼았다. 학회발표는 유튜브에 게시되고 (훅튜브(hooktube)에는 사본이 게시된다) 급진과학 및 급진적 전문직주의(professionalism)와 관련된 일단의 자료가 이제 웹사이트 ‘STS 안에서의 삶’(Lives in STS)의 ‘4 역사’(4 History) 범주에 게시되어있다. 이 자료에는 두 가지 이야기에 관한 한 쪽짜리 요강과 몇 시간짜리 인터뷰 녹취가 포함되어 있다. 길이를 맞추기 위해 그 발표의 일부가 생략돼야 했다. 생략된 건 포디즘/포스트포디즘이라는 분석틀, 차세대 생산양식으로서의 P2P, STS 학계와 급진과학 액티비즘, 전문관리계층(PMC)((PMC : Professional-Managerial Class)) 안에 있는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유기적 지식인’ 액티비즘이었다. 나는 학회 이후에 ‘감독판’을 만드는 걸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다른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현재의 이 블로그 게시물을 부재하는 긴 영상의 개요로 생각해 달라.

내게는 세 가지가 이 ‘STS 안에서의 삶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그리고 내가 루시와 함께 그 작업을 하면서 도달한 장소와 관련하여 중요하다. 루시는 중국 과학원의 STS 부교수이다. 그녀는 나보다 40년 후에 태어났고 1980년대 후반 중국문화계에서 만개한 학문분야에서 일하는데, 거기에는 분명히 정치적인 (두 운동의) 역사가 서구주의, 관리주의, 전문직화의 번쩍번쩍한 표면 아래 묻혀 부글거리고 있었다.

첫 번째 것은 내 생각엔 1970년대의 ‘급진과학’에서는 본질적으로 과학이 핵심이 아니었으며 내가 급진과학으로 도달한 것도 본질적으로 ‘과학’을 핵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급진적 전문연구가들의 넓고 깊은 여러 세대에 걸친 운동 속에서 여러 문화적 형성물을 보았으며 지금도 본다. 이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한때 (40년 전에!) ‘후기 자본주의’라 불린 틀 안에서 PMC의 역사로 이론화되었다. 지난 세대에 심오하고 역사적으로 새로운 정치가, 지식을 거대하며 전지구적으로 분산된 규모로 생산하고 동원하는 체제가 출현했는데, 나는 이를 자본과 자본에 대항하는 힘이 포스트포디즘적으로 재편성되는 과정의 한 측면이라고 말하고 싶다. 1950년대에는 ‘거대과학’이, ‘군산복합체’를 뒷받침하는 일이 핵심 이슈였다. 1960년대에는 ‘과학정책’ 및 연구생산물의 공적 성격 혹은 사유화 가능성에 관한 논의들이 우세했다. 컴퓨터화가 진행된 1980년대에는 ‘지식경제’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으며 1990년대에는 ‘지식집약사업서비스’, ‘혁신서비스’ 가 ’국가혁신시스템‘ 안에서의 연구주제였다. 1990년대에는 STS 연구자인 나도 그 일부였다. (적절한 시기에 더 많은 게시글을 올리겠다.)

하지만 내 생각엔 그러는 내내 저류를 이루었던 건 ‘유기적 지식인’적 생산(1920년대와 1930년대 이탈리아 맑스주의자 그람시의 용어이다), 그리고 지식생산을 대규모로, 계급규모로 조직할 수 있는 점점 더 분명한 가능성과 그래야할 필요였는데, 이는 매우 상이한 생산양식, 삶형태 그리고 전문연구가들과 일반인들 사이의 관계를 촉진하기 위함이었다. ‘유기적 지식인’적 실천에 관한 이러한 지속되는 이야기는 여기 FopRop의 ‘4 역사’ 범주의 관심사이다. 그것은 또한 ‘2 커머닝’(2 Commoning) 범주의 패턴언어를 위한 분석틀이 왜 ‘앎의 춤’의 안무를 핵심으로 하는지 또 왜 역사적으로 변화된 노동력의 생산에 관한 문제를 핵심으로 하는지를 말해준다. FopRop에서 나는 이를 P2P 커먼즈 생산양식과 일상적 삶의 역사적 진화에 관한 그리고 그 생산양식과 삶의 계속적인 활동가적 생산에 관한 문화유물론적 ‘접근법’을 구성할 수 있는 리터러시(literacy)의 세 영역 중 하나로서 제안하고 있다. (여기를 보라)

내가 주목하는 두 번째 것문화유물론 안에서 나 자신이 40년간 탐구를 해왔다고 내가 생각함에도 다른 어떤 종류의 공인된 맑스주의보다 더 커먼즈 운동이 의미심장하게도 ‘문화적’이며 심오하게 ‘유물론적’이라는 점인데, 이는 내가 FoP RoP에서 특히 ‘2 커머닝’ 범주에서 또렷이 말하려 하는 종류의 (탈맑스적인 아닌) 신맑스적인, 세심하게 혼종화된 틀에 의해 촉진될 수 있고 명확히 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러하다. P2P 커먼즈 운동의 유물론적 성격은 명백하게도 앱의 개방형 구조, 프리코드의 P2P 생산, 분산된 웹 인프라, 공개 데이터, 링크드 데이터/데이터 소유권/문서 소유권, 라이선싱 그리고 분산된 행위의 장을 조정하는 인프라 기술들에 주된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에 존재하는데, 이 분산된 행위의 장에는 암호화폐, 신용회계 메커니즘, 해시체인, 공개가치 공급체인 회계시스템, 공개원장 알고리즘과 구조가 포함된다. 

문화적 역사적 지향성은 조금 덜 눈에 띈다. 하지만 그 지향성은 예컨대 미셸 바우엔스로 하여금 커먼즈의 역사-진화적, 탈/반(反)자본주의적 중요성을 알아보게끔 하고 P2P 재단을 발족시키는 데로 이끈 인간학적 관점 안에 명백히 존재한다. 또한 그 지향성은 바우엔스 및 그의 파트너들(데이빗 볼리어, 질케 헬프리히)로 구성된 커먼즈전략그룹의, 과거와 현재의 커머닝에 대한 문화적·역사적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한 학술적·활동가적 연구와 개발 활동의 저변을 이루는데, 이 이야기들은 그들의 에세이 모음집 『커먼즈의 부』와 『커머닝의 패턴들』에 제시되어 있고, 현재 진행 중인 『커머닝의 패턴언어』에서 분석되고 있다. 이 분석과 여기 FoPRoP에서의 나의 패턴언어 작업 사이의 관계에 대한 주석은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내가 인식한 세 번째 것은 내 생각에 P2P 커먼즈 운동이 1970년대의 ‘두 번째 급진과학 운동’ 안에서 분명해지기 시작한 ‘유기적 지식인’적 동력을 추진시키고 확장시키는 방식이다. 이 둘째 운동의 주체는 베이비부머들이었다. 이들이 여전히 현장에 있기는 해도 지금은 다른 세대가 ‘유기적 지식인’적 양태를 다르게 발견하고 실행하고 있다. 나는 기껏해야 18개월 전에 그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유기적 지식인’적, ‘자유의지론적 사회주의’적 액티비즘의 지속적 실천을 이론화하면서 나는 베이비부머와 20대 활동가들이 (그리고 그 중간의 사람들이) 세대를 가로지르는 ‘유산’에 관한 대화에 참여할 수 있을 어떤 종류의 ‘대학’을 창조한다는 생각을 다듬어오고 있었다. 나는 『겸손한 기원들 3 – 활동가들과 집으로 가는 행진』(Humble Origins 3– Activists and the long march home)에서 그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대학’을 위한 공간을 구성하는) 일종의 온라인 플랫폼을 요구하는 기획을 하기로 결심했고 이를 신중히 검토하기 위해 루미오 플랫폼(www.loomio.org)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내 귀가 쫑긋했던 건 여기서 루미오가 나라와 문화를 가로지르는 폭넓고 확장적인 자발적 부문을 활용하는 잘 짜인 소프트웨어였다는 점 때문만이 아니라 또한 내가 그 설계의 기저에 놓인 그룹 프로세스의 촉진(facilitation)이 강조된다는 점을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1970년대에 내 세대가 가진 공동체지향적인 액티비즘이 발견한 것들과 그 헌신성으로 거슬러가는 분명한 역사적 선이 존재했다. (4 역사’ 범주의 ‘급진적 문화적 연구개발’과 『로케이션』(Location)의 서언과 서문을 보라.)

플랫폼 앱 루미오로부터 개발자들로 이루어진 노동자협동조합 루미오를 거쳐 나는 오큐파이 운동 이후 활동가이자 해커인 개발자들과 협동조합 기업가들의 연합(가족?)인 엔스피럴(Enspiral)에 도달했는데, 이 개발자들과 기업가들에게는 촉진은 활동가 문화의 당연한 측면이었다. 그 이후 나는 쎈소리카(Sensorica)(([옮긴이] 쎈소리카는 IT 장비들 및 특수한 거버넌스를 사용하여 그들의 작업들을 함께 조정하고 운영하는 프리랜서들의 개방형 네트워크이다.))에 그리고 팽창하는 아나키즘적-해커적 정치 세계에, 스커틀벗(Scuttlebutt)(([옮긴이] 탈중심화된 소셜 플랫폼인 스커틀벗은 유저들이 그들의 데이터들을 통제하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이다.)) 인프라에, 코드 페디버스(fediverse)(([옮긴이] 페디버스는 소셜 네트워킹, 블로깅, 웹사이트 같은 웹 출판 및 파일 호스팅에 사용되는 서버들의 집합이다.))에 (그리고 P2P 방식으로 코드와 프로토콜을 만들어내는 생산자들에) 도달했다. 또 나는 오큐파이 이후의 반(反)과두적·직접민주주의적 연구와 개발, ‘오픈 밸류’ 가치연쇄 회계, ‘신속한’ 포스트포디즘적 문화형태들로 이루어진 더 폭넓은 형성체에 도달했다. 이는 (일본과 이탈리아의 유연생산시스템이라는 포스트포디즘적 발견을 도둑질하는 것이 자본주의 공급체인 개혁에서 내 동료들의 양식이었던) 1990년대의 나의 경영대학원 경험과 그 모든 종류의 기묘하고 모순적인 공명을 이루었다. 분명 역사들은 너무도 뒤섞이고 혼합되고 파문을 일으키고 파두(波頭)들이 서로 간섭하고 있었다. 분명 기업가 정신과 공동체 사이, 연대와 효율 사이, 액티비즘과 테크놀로지 사이, 정치와 돌봄 사이에 동일한 종류의 선을 긋지 않은 소수의 젊은 급진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는 더 기업적이기도 하고 전문성이 더 뚜렷이 구획되어 있기도 하며 경력을 중시하고 해결책을 ‘해킹’하기보다는 ‘설계’하는 데 더 경도돼 있는 환경에서 자란 이전 세대에게는 문제적이었을 수 있다. 그 당시에는 ‘처음 할 때 제대로’라는 기업적·경쟁적인 문화가 우세했고, 지금은 ‘일찍 실패하고 계속 고치고 계속 갈라지고 모인다’라는 문화가 우세하다.

P2P 커먼즈는 ‘급진과학’보다 훨씬 더 크다. (포스트포디즘이 급진과학보다 훨씬 더 나아가 있다.) 가장 직접적으로 P2P 커먼즈는 에너지 독립형의 아나키즘적인 도시-장인의 삶에 전념하는 대안에너지 공동체로부터 ‘인간중심적’·참여적 노동운동을 지향하는 기업적·산업적 환경에서의 디자인운동까지 이르는 저 모든 운동의 급진적 테크놀로지 무기의 계승자이다. 다른 것들―‘4 역사’ 범주의 ‘급진과학’사, ‘3 플랫포밍’(3 Platforming) 범주의 ‘플랫폼 협동주의적’ 액티비즘 세계에서의 조직화―에 관한 작업이 내가 ‘2 커머닝’ 범주에서 커머닝의 패턴언어를 파악하는 데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1970년대 『급진과학저널』(Radical Science Journal)에서의 신맑스적 노동과정 이론화가 1970년대 급진적 전문직주의와 밀접히 연관됐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론화하는 모험이 (동일한 문화유물론적 기초 위에서) 오늘날의 P2P 커먼즈 운동과 밀접히 관련된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치 않는다. 다만 이제는 활동의 장이 더 크고 걸려있는 것이 더 커졌으며 다양한 문화적 도전이 더 분명하고 결정적으로 드러나 있다. 1970년대 말에 베이비부머들이 대면했던 ‘단편들을 넘어서’라는 과제가 많은 새로운 형태들을 출현시켰다. 상황은 변하고 있다. ‘세 번째 운동’이 중국에서 어떨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국에서 나의 STS 동료인 루시 가오는 40년 후에야 ‘두 번째 운동’ 없이 체제화된 무익한 첫째 운동만이 존재하며 1980년대 후반의 ‘위대한 계몽’의 여파로 모든 포디즘의 파도들이 역사와 경제의 쓰나미로 붕괴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태를 맞이하고 있다.

여하튼 그렇다, 게리. 맑스주의를 계승하는 세 번째 급진과학 운동이 있다! 그건 더 나은 것일 수밖에 없다.




팹아카데미


  • 저자  :  Neil Gershenfeld, Alan Gershenfeld, and Joel Cutcher-Gershenfeld
  • 원문 :  Designing Reality : How to Survive and Thrive in the Third Digital Revolution (2017)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위 책의 1장의 일부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책의 서설의 내용은 이 블로그의 게시글 http://commonstrans.net/?p=1233와 http://commonstrans.net/?p=1246에 정리되어 있다. 이번 정리글의 핵심은 팹랩의 확산과 연계되어 발전된 ‘팹아카데미’라는 이름의 학습모델이다. 한국에서의 일만은 아니겠지만 정리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제도권 교육모델(대학 포함)이 형편없이 망가지고 시대에 뒤쳐졌음이 확실하며, 제도권이 스스로 이것을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와는 전혀 다른 학습모델의 탐색이 절실하게 필요한데, 정리자 자신은 개인블로그의 글 「‘십오 소년 표류기’ 7」에서 리눅스 같은 프로그램을 함께 만드는 공동체들에서 파생된 학습모델인 ‘넷아카데미’를 간략히 소개한 바 있다. 이번 글에서 소개할 ‘팹아카데미’는 이 ‘넷아카데미’의 새로운 형태라고 보면 될 듯하다. 다만 대학과 무관한 ‘넷아카데미’와 달리 ‘팹아카데미’는 대학과 대학 외부(지구 전역)에 걸쳐서, 양자를 가로질러 존재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한국의 대학들―물론 정신을 차린 대학들―이 본받을 만한 사례일 듯하다.

[팹랩이란?]

팹랩(Fab lab)은 제작(fabrication)을 위한 실험실로서 MIT의 <비트와 원자 센터>(Center for Bits and Atoms, CBA)의 지역사회봉사 프로젝트로 시작되었다. CBA는 컴퓨터과학(‘Bits’)과 물리과학(‘Atoms’) 사이의 경계를 연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CBA에는 낮게는 천 달러에서 높게는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여러 가지 도구들이 있다. 팹랩은 만일 CBA의 도구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것들이 외부로 널리 쓰일 수 있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보려고 했다. 2002년 칼박(S. S. Kalbag)이 학교에서 낙오한 아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를 일부러 인도의 작은 마을 파발(Pabal)에 세웠다. CBA는 비싼 특수목적 랩 장비에 투자하기보다 농업테스트 같은 목적을 위한 랩 기구들을 이 학교에 만들어 주는 협동을 시작했다. 이것을 팹랩 제0호라고 부를 수 있다. 여기서 영감을 얻어서 보스턴의 공동체 활동가 킹(Mel KIng)의 <사우스엔드 테크놀로지 센터>(South End Technology Center, SETC)에 설치되어 2005년 온전한 공동체 팹랩으로 성장한 것이 제1호이다. 제2호는 보스턴의 가나인 공동체가 킹의 랩을 본 후 협동하여 가나의 해안에 있는 쎄스코디-타코라디(Sekondi-Takoradi)에 세운 팹랩이다. 새 팹랩을 열 때마다 또 필요한 누군가가 생겼으며, 이렇게 해서 팹랩은 10년 동안 매해 2.5배씩 늘어났다.

 

팹랩의 수가 두 배씩 몇 번에 걸쳐 증가한 2005년에 닐 거션펠드는 『랩』이라는 책을 썼다. 도어티(Dale Dougherty)는 ‘maker’(제작자)라는 용어를 만들어서 새로이 출현하는, 팹랩에 있는 종류의 도구들을 사용하여 컴퓨팅을 제작과 연결시키는 덕후들의 공동체를 지칭했다. 그는 2006년에 ‘메이커 페어’(Maker Faire)라고 불리는 모임들을 후원하기 시작했는데, 이 가운데 가장 큰 것인 2015년의 것에는 145,000명이 방문했다.

 

2006년에는 뉴턴(Jim Newton)이 대부분의 개인들이 구할 수 없는 디지털 제작 도구들에의 접근을 제공하는 텍샵(TechShop)을 창립했다. 텍샵들은 회원제로 운영되었으며 2016년 현재 10개가 있다. 좀 덜 본격적인 것으로서 메이커스페이스들(maker space)이나 해커스페이스들(hacker spaces)이 확대되기 시작하여 동호인들에게 장소를 제공했다. 이 공간들은 제공하는 것은 공간마다 매우 다르지만 현재 수천 개가 있다.

 

2007에는 버닝맨 모임으로 가져간 이동형 팹랩이 처음 선을 보였다. (버닝맨 모임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의 글 「커먼즈로서의 버닝맨」 참조.) 이동형 랩은 나중에 시골 지역들을 이리저리 다니며 네트워크 내에 네트워크를 심는 팹랩들이 되었다.

 

이 모든 팹랩들은 3차 디지털 혁명의 초기 발현형태들이다. 이러한 성장기의 생태계에서 팹랩들은 두 가지 변별적 특징을 가진다. ① 팹랩들은 각기 다르다기보다는 모두가 진화하는 일단의 핵심 능력들을 공유하여 팹랩들 사이에서 사람들과 기획들이 공유될 수 있게 해준다. 멧 칼프의 법칙(Metcalfe’s Law):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의 가치는 그 네트워크에 있는 컴퓨터들의 제곱에 비례한다.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하면 다른 사람들이 같이 운동한다고 해서 큰 차이가 없지만, 인터넷에 접속하면, 혹은 팹랩에서 작업하면, 다른 컴퓨터들이 접속할 때, 혹은 다른 사람들이 팹랩에서 같이 작업할 때 가치가 증가한다. 팹랩 네트워크에서는 사람도 기획도 모두 이동적이며, 개별적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을 집단적으로 성취할 수 있도록 한다.

 

② 다른 변별적 특징은 그 콘텐츠의 연계된 진화이다. 공동사용하는 기계들, 재료들, 부품들, 프로그램들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팹랩들에 의해서 그리고 팹랩들을 위해서 개발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위한 오픈 디자인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팹랩이 또 하나의 팹랩을 만들 수 있는 지점을 목표로 잡아서 가고 있다. 팹랩에서 사용하는 각 유형의 기계의 비용은 그동안 저렴해져왔지만, 팹랩에서 만들 수 있는 것에 대한 포부 또한 그에 비례해서 올라가서 전체적인 비용은 거의 비슷하게 공동체의 자원의 규모 정도에 머물러있다.

 

이 두 특징들로 인해서 팹랩들의 모음은 네트워크로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각 사이트는 개별적으로는 별 것이 없지만, 이 사이트들을 모아놓으면 중요한 덩치가 된다. 아무도 팹랩을 시작하라고 밀어붙이지 않는데, 사이트들이 계속해서 네트워크에 합류한다. 더 큰 것의 일부가 됨으로써 혜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놀라움은 팹랩의 사용방식이 세계 전역에서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멜 킹이 이 점을 포착했다. 는 북극에 몇 시간 있더라도 거기서 도시의 랩에서 발견하는 것과 같은 희망과 두려움을 인식하리라는 것이었다.

 

팹랩들에 공통적인 것은 노소가 혼합되어 있고 응용분야가 교육, 오락, 사업에 걸쳐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다양한 가운데 팹랩들은 도서관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00년 무렵 카네기가 투자하여 공동체 도서관들을 세웠는데, 사업이 완료되었을 때 전국에 걸쳐 약 2500개가 세워졌다. 도서관의 전반적인 사명은 리터러시, 즉 지식에의 접근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도서관들은 이 사명의 달성에서 여러 목적들(사설보육소, 학교 수업, 연구, 시정市政)을 위해 사용되었다. 도서관들은 처음에는 새로운 것이었으나 이제는 문명화된 공동체의 당연한 구성요소가 되었다. 팹랩들 또한 그와 같은 궤적을 그릴 것이다. 다만 이제 팹랩들은 비트에서 원자로의 이동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리터러시를 목적으로 한다.

 

 

[팹아카데미]

 

CBA가 디지털 제작 연구시설을 일단 갖추고 나자 생긴 문제가, 이 도구들이 여러 분야에 걸쳐있고 또 그 작동 규모로 인해서 학생들이 그 사용법을 모두 배우기 위해서는 평생 MIT 수업을 들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2001년에 편법으로서 ‘(거의) 모든 것을 만드는 법’(How to Make (almost) Anything)이라는 제목의 새로운 강의를 개설했다. 디지털제작을 연구하는 소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 강의에 뜻밖에 매해 수백 명의 학생들이 들으러 왔다. 그저 어떻게 물건을 만드는지 배우고 싶다는 이유로 말이다.

 

학생들은 개별적인 기술을 마스터함과 아울러 이 기술들을 통합하는 프로젝트들을 했다. 첫 해의 스타 가운데 하나는 켈리 돕슨(Kelly Dobson, 나중에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의 Digital+Media학과의 학과장이 된다)인데 그녀는 비명(screams)을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내보내는 착용장치를 만들었다. 윤미진(Meejin Yoon, 나중에 MIT 건축학과장이 된다)은 센서들과 등뼈 모양의 구조물들로 가득하여 개인 공간을 방어할 수 있는 드레스를 만들었다. 이런 종류의 기획들이 계속 이어졌다. 저자는 여기서 자신이 묻지 않았던 질문, 즉 디지털 제작이 어디에 쓸모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학생들이 답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제작 방법을 묻고 있었지 이유를 묻고 있지는 않았는데, 학생들이 디지털 컴퓨팅의 킬러앱은 퍼스털 컴퓨팅이듯이, 디지털 제작의 킬러앱은 퍼스널 제작임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핵심은 상점에서 살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 수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이었다.

 

CBA의 연구도구 사용법 수업이 필요했듯이 팹랩들의 확산도 전지구적으로 사용법을 훈련시키는 문제를 낳았다. 똑똑한 아이들은 지역 교육이 주는 기회를 훨씬 앞서는 기술을 팹랩들에서 배우고는 그 다음에 급격히 능력이 하강하곤 했다.

 

브루볼트(Hans-Kristian Bruvold)는 노르웨이 북쪽의 한 지역학군에서 일종의 문제아였다. 이미 선생들이 가르치는 모든 것을 마스터해서 주의집중을 잘 안하는 학생이었다. 그는 한 팹랩에 나가기 시작했고 거기서 저자를 만났으며 저자는 그에게 ‘(거의) 모든 것을 만드는 법’의 몇 가지 데모 프로젝트를 보여주었다. 다시 만났을 때 저자는 그가 장난감 로봇 트럭에 여러 기술을 통합해 넣은 것을 보고 놀랐다. 몸체를 디자인했을 뿐만 아니라 모터와 제어장치를 통합해 넣고 방풍유리 디스플레이를 추가했다.

 

남아프리카에서도 인종차별시기의 한 흑인거주구인 쏘샹구베(Soshanguve)에 팹랩을 열었을 때 유사한 일이 일어났다. 한 지역 소녀인 모나헹(Tshepiso Monaheng)이 놀랍게도 랩을 이용하여 원격으로 MIT 수업 내용을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통상적인 관점에서라면 브루볼트나 모나헹 같은 똑똑한 아이들은 멀리 떠나서 더 나아간 곳에서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동은 유용한 사람들을 그들이 가장 필요로 되는 곳에서 떠나보낸다. 우리는 처음에 세계 전역의 지역 학교들과 짝이 되어 이 진공을 채우려고 했는데, 기술적 숙련보다 훨씬 더 큰 한계는 학교의 엄밀히 통제되는 교육 접근법이 창조성을 질식시킬 수 있다는 것을 늘 발견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팹아카데미(Fab Academy)라고 불리는 것을 시작했다.

 

팹아카데미는 원래 팹랩들이 원격으로 MIT의 ‘(거의) 모든 것을 만드는 법’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마련한 비디오 링크에서 자라나왔다. 직접 듣는 학생들보다 팹랩들이 더 많아지면, 원격 세션을 별도의 프로그램으로 분리했다. 원래 원격 학생들이었던 지역 멘토들의 존재가 필수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새 학생들은 지역 팹랩에 있는 작업그룹에 합류해서 멘토들, 동료들, 기계들과 함께 작업했다. 그 다음에 우리는 비디오를 사용한 대화식 강의와 협동적 내용공유를 통해 모두를 전지구적으로 연결했다.

 

MIT를 컴퓨터 메인프레임으로 보면 된다. 잘 작동하지만 소수에게만 유용하다. 대형공개온라인 강의(massive open online classes, MOOCs)는 사용자들이 중앙메인프레임에 연결된 터미널 앞에 앉아 있는 시분할 시스템(time-sharing, 각 사용자들에게 컴퓨터 자원을 시간적으로 분할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시스템으로서 출력이 사용자에게 표시되고 입력을 키보드에서 읽어 들이는 대화식 인터페이스를 제공할 수 있다) 시기에 상응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팹아카데미 모델은 학습네트워크상의 노드들을 연결하는 인터넷에 더 가까우며, 이 노드들은 중앙이 아니라 가장자리에서 확대된다.

 

처음에는 저자가 직접 모든 학생들을 지도했다. 그러다가 팹아카데미 모델이 성장하면서 저자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멘토들을 지도했다. 모델이 더 성장하면서 저자는 지역 랩들을 지도하기 위해 출현한 상위노드들(supernodes)을 지도했다. 이런 식으로 이 모델은 인터넷과 유사해졌다. 나무처럼 줄기, 가지, 잎으로 정보가 전달되었다. 인터넷처럼 모든 노드는 다른 모든 노드와 대화할 수 있었다. 팹아카데미의 일주일 생활의 중심은 거대한 화상회의였다. 여기서 누구나 다른 모든 사람을 보고 다른 모든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다. 이 회의에는 이전 주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포함되고 다음 주의 새로운 일감에 대한 대화식 소개가 포함된다. 이 모든 협동과정은 중앙사무실보다는 아씨나리(Luciana Asinari)가 이끄는 분산된 작업그룹에 의해서 뒷받침된다.

 

이 구조에서는 품질 통제를 위해 관계들의 망에서 직접 추적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edu’ 도메인을 얻어내는 것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포트폴리오를 만들게 했다. 우리는 미래의 입학, 취업, 투자를 위해서는 미지의 단체로부터의 증명서보다는 포트폴리오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콘텐츠를 만들고 평가를 하는 하나의 주기가 도는 데 약 8개월 걸리지만, 학생들의 진전은 수업을 들은 시간보다는 기술의 숙달에 의해 결정된다. 어떤 학생들은 모든 것을 완료하는 데 몇 년 걸렸다. 학생들의 수준은 홈스쿨링한 천재들, 대학생들, 대학에 가는 대신 이것을 배우는 사람들, 중견 전문가들, 말년에 재훈련하는 사람들, 퇴직 후 취미로 하는 사람들 등 다양하다. 지역 학습 워크그룹들의 전지구적 연결은 팹랩들의 분산된 성격과 멘토링의 필요 사이의 균형을 맞추어 준다.

 

좋은 멘토링이 부재하면 형편없는 생각들이 번성한다. ‘maker’라는 이름은 ‘열정적’이라는 긍정적 의미와 ‘잘 모른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모두 가진다. 메이커운동의 기본 요소는 아두이노(20달러짜리 작은 컴퓨터 보드로서 센서 해독, 출력장치 통제, 네트워크와의 소통이 가능하다)이다. 팹아카데미는 아두이노를 소개한 다음에, 팹랩에서 몇 달러로 부품들을 조립하여 그런 보드를 만드는 법을 보여준다. 그 다음에 학생들은 쌀알만 한 크기에서 데스크탑을 돌릴 수 있는 사이즈의 다른 컴퓨터 칩들을 사용하는 법을 배운다. 제작자운동의 또 다른 기본요소는 3D프린터이다. 팹랩은 학생들에게 3D프린터 사용법을 보여준 다음에 더 빨리 작동하고 더 크고 강한 것들 혹은 더 정밀한 것들을 만드는 모든 다른 디지털 제작도구들을 사용하는 법을 보여준다. 그런 다음 학생들은 3D프린터를 만드는 법을 배운다. 이런 사례들 각각이 쉬운 기술을 배우는 데서 어려운 기술을 마스터하는 데로 나아가는 경로를 제공한다.

 

‘스스로 하기’(Do-it-yourself)는 앞서 간 사람들의 어깨 위에 서기보다 자신의 발끝으로 서게 하는 방법이다. ‘같이 하기(do-it-together) 혹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기‘(do-it-with-others)는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뜻밖에도 팹아카데미가 선순환의 심장부에 있음을 발견했다. 각 주기는 최고의 수행 사례들을 팹랩 네트워크 전체에 전파하면서 지역 멘토들로 이루어진 핵심 협동 공동체를 구축하고 나중에 새로운 랩들과 프로그램들을 돕게 될 훈련된 학생 무대를 제공했던 것이다.

 

팹아카데미는 디지털 제작을 가르치기 위해 개발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조합한 것의 많은 부분은 거기에만 맞추어진 것이 아니었다. 기반시설은 원거리학습(distance learning)이 아니라 어떤 종류든 분산된 학습을 위해서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처음에는 놓쳤지만 소통, 컴퓨팅, 제작, 학습 사이의 깊은 관계를 알게 되었다. 디지털 소통이 전지구적으로 상호작용하게 해주고 디지털 컴퓨팅이 지식을 공유하게 해주는 한편 여기에 추가되는 디지털 제작은 아이디어들만이 아니라 사물들을 교환할 수 있게 해준다. 팹랩의 핵심적 도구들이 있으면, 필요한 다른 모든 것을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해서 캠퍼스를 효과적으로 학생들에게 가져가게 되는 것이다.

 

세계의 유력한 유전학자 가운데 하나인 조지 처치(George Church)는 하버드 너머의 학생들과 만나는 데 관심을 가져서 ‘(거의) 모든 것을 키우는 법’(How to Grow (almost) Anything)이라는 이름의 분산된 학급을 팹랩 네트워크에 추가했다. 디지털 제작과 생물학적 제작을 결합시킨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바이오랩에서 필요한 도구들을 만드는 데 팹랩을 사용할 수 있다. (생물학 장치들은 종종 가격이 센 편인 동시에 거추장스럽다.) 팹랩에서 기계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기술이 DNA 증폭을 위한 열순환기나 액체를 다루는 로봇 같은 것들을 만드는 데 사용되어왔다. 더 깊은 수준에서는 생물학 자체가 제작에 사용될 수 있다. 생물학적 과정들은 근본적으로 디지털 방식이며 우리는 팹랩들과 바이오랩들이 합류하면서 이 과정들을 프로그램하는 법을 점점 더 배우고 있다.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은 세계의 주요 예술가들 가운데 하나이다. 처치처럼 그도 그의 영향력을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직접 가르칠 수 있는 학생들 너머로 확대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의 관심은 ‘어떻게’ 물건을 만드는가에 있지 않고 ‘왜’ 만드는가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만드는 과정에 미치는 영향력과 그 과정이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기 위해서 ‘왜 (거의) 모든 것을 만드는가’라는 이름의 다른 분산된 학급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저자의 학생 피크(Nadya Peek)가 이 점증하는 프로그램들을 ‘(거의) 모든 것의 아카데미’(the Academy of (almost) Anything)라고 불렀고 이 이름 혹은 그것을 줄인 ‘아카뎀애니’(Academany)라는 이름이 고정되었다. 현재 이 아카데미는 그레노블 팹랩(the Grenoble fab lab)을 시작한 몰레나르(Jean-Michel Molenaar)가 관리하고 있다. 제공하는 학습 각각은 지역 워크그룹의 모델을 따르고 멘토들은 대화식 강의를 위해 전지구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내용을 협동적으로 공유한다.

 

팹랩들이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는 동안 저자는 MIT에 새 건물이 짓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이 일은 시작에서 끝까지 10년 걸렸고 1억 달러가 들었으며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시설이 제공된다. 지난 10년에 걸쳐 출현한 수 천 개의 팹랩들 각각은 약 100명의 사용자들로 구성된 공동체를 가지고 있다. 이 숫자는 명백한 문제를 제기한다. 1억 달러 투자 대 10만 달러 투자의 차이를 정당화는 활동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인가? 기존의 MIT 조직은 희소성의 전제에 기반을 둔다. ① MIT는 랩에 있는 도구, 도서관의 책, 교수들의 시간에 대한 접근을 관리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지원자들을 거절하고 캠브리지의 한 구석에 틀어박혀 있다. 다들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다툰다. ② 온라인 학습플랫폼에 연결된 컴퓨터 앞에 학생이 홀로이 앉아있는 것을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이분법이다. ③ 팹아카데미에서 지속적으로 발견하는 것은, 학생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학습공동체들 속에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진정한 대안은 원격교육이 아니라 팹랩 아카데미가 보여주는 분산된 교육이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물음은, MIT 같은 곳에서 행해지는 활동의 어느 만큼이 이런 식으로 분산될 수 있으며 어느 정도의 욕구가 중앙집중화될 수 있느냐이다.

 

저자는 ‘반’이라고 말한다. 팹랩을 열 때마다 MIT에서 같이 작업을 하는 사람들과 동일한 종류의, 놀라운 창의성을 가진 사람들을 발견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으며 동료들, 멘토들, 도구들을 다른 데서는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팹랩에 그렇게 꾸준하게 나온다. 그래서 MIT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의 반 정도는 팹랩 환경에서 행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반은 더 많은 비싼 도구들(가령 분자 규모의 분자어셈블러를 개발하는 데 사용하는 나노과학 도구들)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 비싼 도구들을 사용하는 기술과 지식은 너무나도 전문화되어 있어서 모두 한 곳에서 집중적으로 활동이 이루어는 것이 타당하다. 이 두 유형의 공간은 대립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만 달러 제작 공간, 십만 달러 팹랩, 백만 달러 수퍼 팹랩, 천만 달러 연구랩들을 가진 하나의 나무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나무를 위로 키우기보다 바깥으로 키워야 지구 전체의 브레인파워를 가져다 쓸 정도로 규모를 키울 수 있다.

 

페이퍼트(Seymour Papert)는 컴퓨터와 교육의 아버지이다. 그는 스위스에서 선구적 아동심리학자 삐아제(Jean Piaget)와 함께 연구했는데, 삐아제는 어린아이들이 과학자처럼, 즉 실험을 하고 이론을 테스트하면서 배운다고 주장했다. 그후 페이퍼트는 MIT에 와서 초기의 리얼타임 디지털 컴퓨터들에 접근하여 어린아이들에게 가능한 실험의 범위를 확대하고 싶었다. 이는 그 당시에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 컴퓨터들이 너무 비싸고 너무 컸던 것이다. 그 대신에 페이퍼트는 컴퓨터에 연결된 로봇 거북이와 어린아이들이 그 거북이들에게 명령할 수 있게 하는 언어(로고, Logo) 개발했다.

 

페이퍼트와 함께 연구하게 된 사람들 가운데 하나는 케이(Alan Kay)인데, 케이는 GUI와 랩탑의 컴퓨팅 패러다임들을 개발했다. 이 디자인 원칙들은 원래 사업가들로 하여금 스프레트시트를 작성하게 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 아니었고 어린아이들로 하여금 발견하게 하려고 의도된 것이었다. 페이퍼트와 함께 연구한 또 한 사람은 레스닉(Mitch Resnick)인데, 레스닉은 레고 마인드스톰(Lego Mindstorms, 로봇을 만들고 프로그래밍까지 할 수 있는 레고 모델)을 개발했다. 레스닉은 또한 아이들이 프로그램할 수 있는 인기 있는 소프트웨어 스크래치(Scratch, 아이들에게 그래픽 환경을 통해 컴퓨터 코딩에 관한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된 교육용 프로그래밍 언어 및 환경)의 창출을 이끌었다.

 

팹랩이 두 배씩 증가하기 시작하고 팹아카데미도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페이퍼트는 저자를 찾아와서 팹랩에 대해 대화했다. 저자는 팹랩 전체를 역사상의 우연한 사건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페이퍼트는 자신의 옆구리를 찌르는 제스처를 했다. 그는 아이들이 거북이의 움직임을 프로그램할 수는 있으나 막상 거북이 자체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 그에게 늘 골칫거리였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거북이를 만드는 것이 늘 그의 목표였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팹랩에서의 학습은 그가 수십 년 전에 시작한 작업과 직선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중앙컴퓨터를 가지고 놀러 MIT에 가는 것에서 컴퓨터를 탑재한 장난감을 상점에서 사서 노는 것으로, 거기서 다시 팹랩에 가서 컴퓨터를 만들며 노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진행과정이다.

 

[참고] 팹랩 및 팹아카데미 관련 동영상

fablab
https://youtu.be/aPKH60sW_CM




수렵채취인들은 어떻게 평등주의 문화를 유지했는가


  • 저자  :  Peter Gray PhD ((Peter Gray, Ph.D. : 보스턴 컬리지의 연구교수이며 『자유롭게 배우기』(Freed to Learn, Basic Books, 2013)와 『심리학』(Psychology, Worth Publishers)의 저자이다.))
  • 원문 : How Hunter-Gatherers Maintained Their Egalitarian Ways (2011. 5. 19)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그레이 박사는 이 글에서 수렵채취인들이 평등주의적 문화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세 가지 이론을 소개한다. 그는 이 셋 모두가 모두 옳다고 한다. 서로 경쟁하는 이론들이 아니라 보완적인 이론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는 유전자가 핵심이 아니고 문화가 핵심이라고 한다.

[수렵채취사회의 특징들]

그레이 박사는 세 이론을 소개하기 전에 ‘수렵채취인들이 평화적인 평등주의자들이었는가?’하고 묻고는 ‘그렇다’라고 간결하게 답하고 그 근거를 설명한다.

20세기에 인류학자들이 근대의 영향이 거의 미치지 않은, 멀리 떨어진 여러 지역에서 수렵채취사회들을 연구했는데, 이 사회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 혹은 다른 어디든, 정글에서든 사막에서든 여러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20~50명(아이들 포함)의 작은 무리를 지어 살았고 상대적으로 제한된 지역에서 사냥감과 식용 식물을 쫓아 이 캠프에서 저 캠프로 이동했다. 이웃 무리들에는 친구들과 친척들이 있었고 무리들 사이에 평화로운 관계가 유지되었다. 이들 사회의 대부분은 전쟁을 몰랐으며, 전쟁이 있는 경우 이는 수렵채취인들이 아닌 다른 호전적인 집단들과의 상호작용의 결과였다. 이들의 사회의 주된 문화는, 개인의 자율, 비지시적(non-directive) 육아법, 비폭력, 공유, 협동,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을 강조하는 문화였다. 그 핵심 가치는 개인들의 평등이었다.

근대인들의 평등관은 수렵채취인들의 평등관에 미치지 못한다. 수렵채취인들에게 평등은 각 개인이 식량을 발견하거나 포획하는 능력과 무관하게 식량에 대한 권리를 동등하게 가지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래서 식량이 공유되었다. 모든 물질적 재화가 공유되었기에 개인들이 가진 부의 차이가 있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무얼 할지를 말할 권리가 없었고 각자 자신의 결정을 했다. 이에 따라 부모도 아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할 권리가 없었다. 그래서 비지시적으로 아이를 키운다. 집단의 결정도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상사, 윗사람, 우두머리가 없었다.

이러한 특징은 정치적 색깔이 서로 다른 많은 인류학자들에 의해 보고된 것이다. 물론 문화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다. 모든 문화가 똑같이 평화적이고 똑같이 평등주의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일반적 측면들은 같다. 만일 당신이 ‘호전적인 원시부족들’에 대해서 읽거나 노예를 둔 토착민들에 대해서 읽거나 남녀 사이의 조악한 불평등이 존재하는 부족 문화에 대해서 읽게 된다면, 이는 수렵채취인들의 무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원시농경 사회와 수렵채취 사회를 혼동하여 수렵채취인들이 폭력적이고 호전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샤농(Napoleon Chagnon)이 『사나운 사람들』이라는 부제를 가진 자신의 책에서 농경사회 이전의 선조들을 대표하는 것으로 제시하려고 해서 유명해지는 바람에 이런 잘못된 식으로 자주 거론되는 남아메리카의 야노마미(Yanomami) 족은 당시 수렵채취인들이 아니었고 또 그 이전 수 세기 동안 아니었다. (그레이 박사는 샤농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야노마미 족은 수렵과 채취를 좀 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들이 심고 경작하고 수확하는 바나나와 플랜턴(plantain, 열대의 파초 속 식물)에서 칼로리를 섭취한다. 더욱이 이들은 근대 문명과 접촉이 없기는커녕 정말로 사악한 스페인들, 네덜란드인들,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계속적으로 침략당하고 학살당해서((Salamone, F. A. (1997). The Yanomami and their interpreters: Fierce people or fierce interpreters? Lanham, Maryland: University Press of America.))  좀 ‘사나워’ 진 것이 놀랄 일이 아니다.

수렵채취인들의 삶의 방식은 그 뒤를 이은 농경사회의 삶의 방식과 달리 강렬한 협동과 공유에 의존했으며 강한 평등주의적 정신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따라서 수렵채취인들은 어디서나 강한 평등주의적 정신을 유지했다.

그럼 수렵채취인들은 어떻게 이런 삶의 방식을 유지했을까?

[첫째 이론]

이론 1: 수렵채취인들은 권력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방지하는 ‘거꾸로 된 지배’(reverse dominance) 제도를 실행했다.

인류학자들은 수렵채취인들이 수동적으로 평등주의적인 것인 아니라 능동적으로 평등주의적이었음을 분명히 한다. 인류학자 리처드 리(Richard Lee)에 따르면 그들은 맹렬하게 평등주의적이었다.((Lee, R. B. (1988). “Reflections on primitive communism”. In T. Ingold, D. Riches, & J. Woodburn (Eds), Hunters and gatherers 1, 252-268 Oxford: Berg. )) 그들은 누가 허풍을 떨거나 잘난 체 하거나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을 참지 않으려 했다. 그들의 첫 방어선은 조롱이었다. 누가 (특히 젊은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행동을 하려고 시도하거나 일상생활에서 적절한 겸손을 보이지 못하면, 집단의 나머지 사람들(특히 어른들)이 그 사람을 적절한 겸손을 보일 때까지 조롱했다.

리가 연구한, 수렵채취인 집단의 규칙적인 관행은 ‘사냥한 고기 모욕하기’이다. 사냥꾼은 자신이 잡아온 고기를 공유하면서, 살도 없고 변변치 않다고 말함으로써 적절한 겸손을 표현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대신 그렇게 말한 다음 사냥한 사람을 조롱한다. 리가 집단의 연장자 가운데 한 사람에게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젊은이가 사냥감을 많이 잡으면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나머지 사람들을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랑을 하는 사람을 거부합니다. 언젠가 그의 오만이 그로 하여금 누군가를 죽이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의 고기가 변변치 않다고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그의 심장을 식히고 그를 부드럽게 만듭니다.”

크리스토퍼 보엄(Christopher Boehm)은 이런 관찰에 기반을 두고 수렵채취인들이 그가 ‘거꾸로 된 지배’라고 부른 관행을 통해 평등을 유지한다는 명제를 제시했다. 유인원의 모든 친척들에게서 보이는 표준적인 지배 위계에서는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지만, ‘거꾸로 된 지배’에서는 다수가 힘을 합하여 그들을 지배하려는 자의 에고를 수축시킨다.

보엄에 따르면 수렵채취인들은 평등주의적 정신을 어기는 행위들을 부단히 경계한다. 자랑을 하거나 공유하지 않거나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남보다 낫다고 여기는 사람은 공격적 행동을 멈출 때까지 성가심을 당하며, 성가심이 효과가 없으면 그 다음 단계로 따돌림을 당한다. 무리는 마치 평등 정신을 어긴 자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는 대부분 효과가 있다. 다른 사람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평등 정신을 어긴 자는 정상 상태로 돌아오거나 다른 무리를 찾아야 한다. 그는 새로 찾은 무리에서 정신을 차릴 수도 있고, 같은 일을 반복할 수도 있다. 보엄은 자신의 1999년 책 『숲 위계질서』(Hierarchy in the Forest)에서 이 ‘거꾸로 된 지배’ 이론에 대한 매우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한다.

[둘째 이론]

이론 2: 수렵채취인들은 인간 본성에서 놀이를 좋아하는 측면을 양성함으로써 평등을 유지했으며, 놀이가 평등을 증진한다.

이는 이 글의 저자인 그레이 박사의 이론이다. 2년 전에 그가 American Journal of Play에 게재한 논문(( Gray, P. (2009). “Play as a foundation for hunter-gatherer social existence”. American Journal of Play, 1, 476-522.))에서 이 이론을 처음 소개했다고 한다.

사회적 놀이(두 명 이상이 참여하는 놀이)는 반드시 평등주의적이다. 공격과 지배의 정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한 참여자가 다른 참여자보다 더 잘 한다는 것을 인식할 수는 있지만, 이 인식으로 인해 더 나은 사람이 상대방 위에 군림하게 되지는 않는다.

사람들만이 아니라 동물들의 경우에도 그렇다. 두 원숭이가 장난으로 싸움을 하는 경우에 강한 쪽이 일부러 접어주고 싸우며 상대를 다치게 할 공격을 피한다. 진짜 싸움과는다르다. 만일 강한 쪽이 이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약한 쪽은 도망갈 것이고 놀이는 끝난다. 따라서 놀이의 충동은 지배하려는 충동의 억제를 필요로 한다.

수렵채취인들은 그 사회적 활동의 모두에서 놀이의 태도를 일부러 양성함으로써 지배하려는 경향을 억제하고 평등주의적 공유와 협동을 촉진했다. 포유류 조상으로부터 인간이 물려받은 놀이 능력이 역시 포유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지배하는 능력을 가장 잘 상쇄하는 자연스러운 능력으로 진화한 것이다.

그레이 박사의 놀이 이론은 대체로 인류학 문헌들의 분석에서 거둔, 놀이가 수렵채취인들의 사회적 삶에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에 대체로 기반을 둔다. 그들의 사냥과 채취는 놀이로서의 성격을 띠었으며 종교적 믿음과 관행들도 그랬고 무리 내부에서나 외부에서 고기를 나누고 재화를 공유하는 관행도 그랬다. 심지어는 집단 내에서 규칙을 어긴 자들을 해학과 조롱을 통해 처벌하는 가장 공통적인 방법에서도 그랬다.

[셋째 이론]

이론 3: 수렵채취인들은 새로운 세대에 신뢰와 수용의 감정을 생성하는 육아 관행을 통해 평등 정신을 유지했다.

수렵채취인들은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놔두는 육아 스타일을 택했다. 그들은 유아들/아동들의 본능을 신뢰했으며 그래서 언제 돌봐줘야 하는지를 아이들 스스로 결정하게 했고 스스로 놀고 탐구하면서 학습하도록 허용했다. 아이들에게 체벌을 가하지 않았으며 꾸짖는 경우도 드물었다. 수렵채취인들의 도덕적 성격이 이 육아법에서 온다고 제안한 연구자는 엘리자베스 마샬 토머스(Elizabeth Marshall Thomas)이다. 그녀는 자신이 관찰한 육아법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친절하게 다루어진 아이들은 응석받이가 된다는 말을 때때로 듣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그런 방법이 얼마나 성공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다. 좌절이나 염려로부터 자유롭고, 즐겁고 협동적인 아이들은 모든 부모들의 꿈이다. 그 어떤 문화도 이보다 더 나은, 더 똑똑하고 더 호감이 가며 더 자신 있는 아이들을 키운 적이 없다.”((Thomas, E. M. (2006). The old way. New York: Farrar, Straus & Giroux. p 198-199))

이 육아 이론을 경험적 증거를 가지고 입증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이론은 직관적으로 말이 된다. 처음부터 부모들이 신뢰하고 잘 대해준 유아들과 아동들이 자라서 남을 신뢰하고 잘 대해줄 것이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할 필요가 하나도 혹은 거의 없으리라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이다.

육아 이론은 나의 놀이 이론과 겹친다. 수렵채취인들은 아이들이 하루 종일 놀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라서 삶이 놀이라고 믿게 되고 어른으로서 맡게 되는 과제들 모두를 놀이의 분위기에서 수행하게 된다. 이 분위기가 지배하려는 충동을 상쇄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제시하는 그레이 박사의 주장의 핵심은 유전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에 있다. 인류는 분명 한편으로는 평화롭고 평등주의적이 될 유전자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호전적이고 전제적이 될 유전자적 잠재력도 가지고 있다. (혹은 그 사이의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 만일 위 세 이론이 옳다면 그리고 우리가 평등과 평화의 가치를 진정으로 믿는다면, 이 세 이론이 제시하는 바를 실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레이 박사의 생각이다. 즉 ① 에고의 바람을 빼는 방법을 찾을 것. ② 삶의 방식을 놀이에 더 가깝게 만들 것. ③ 아이들을 신뢰하는 방식으로 키울 것.




3차 디지털 혁명에서의 생존과 번영-2

  • 저자  : Neil Gershenfeld, Alan Gershenfeld, Joel Cutcher-Gershenfeld

  • 원문 : Designing Reality: How to Survive and Thrive in the Third Digital Revolution(2018)의 서설(Introduction) 
  • 분류 : 일부 내용정리
  • 정리자 : 민서

3차 디지털 혁명에서의 생존과 번영- 2

 

디지털 제작의 힘과 전망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것은 3차 디지털 혁명에 동력을 공급하는 테크놀로지를 이해하는 것과 테크놀로지와 함께 진화해야 하는 사회체계를 향상시키는 것이다.

 

저자들 가운데 테크놀로지를 이해하도록 해주는 길잡이는 닐 거션펠드이다. 닐은 20년 동안 디지털 제작의 선구자로 일해오고 있으며 코앞에 와있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미래를 들여다보는 일에서 업적을 가지고 있다. 그는 『생각하는 사물』(When Things Start to Think, 1999)에서 사물인터넷으로 알려지게 된 것을 미리 내다보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 기여했으며 『팹』(Fab, 2005)에서는 팹랩들과 메이커 운동들(maker movements)의 출현을 설명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디지털 제작의 힘과 전망을 소개했다.

 

『현실을 설계하기』에서 닐은 이 추세가 어떻게 3차 디지털 혁명으로 이어졌는지를, 이 추세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를, 그리고 진화하는 연구 로드맵의 미래에서 이 추세가 어떻게 보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사물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소재의 짜임새를 디지털화한다면, 『스타트렉』식의 복제기(물질재조합장치) 같은 것도 가능함을 보여준다.

 

닐은 팹랩 운동의 우연한 기원 이야기로 1장을 시작한다. 그런 다음 그는 공동체 팹랩들이 전 지구적 네트워크 전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방식을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오늘날의 디지털 제작 과정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미 힘을 부여하고 있는지를 부각시킨다. 노르웨이 북쪽 끝에서 아프리카 남쪽 끝까지, 시골 마을에서 불규칙하게 확대되는 도시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에 기반을 둔 팹랩들은 혁신을 분출시켰고 디지털 제작의 힘과 잠재력의 초기 징후들을 제시했다.

 

3장에서 닐은 3차 디지털 혁명의 핵심을 이루는 과학적 토대의 역사를 현재의 시점에서 탐구한다. 그는 이 토대가 어떻게 생명이 분자 제작을 위한 기계를 발전시킨 40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지를 설명하고, 그 바탕에 있는 신뢰성, 모듈방식, 지역성 및 가역성이라는 원칙이 어떻게 디지털 통신기술, 컴퓨팅 및 제작을 통합하는 핵심적인 아이디어로 기여하는지를 설명한다. 그는 테크놀로지가 그 최종 형태에 도달하기 훨씬 전에 그것이 함축하는 바를 포착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강조한다.

 

닐은 이 3장에서 라스의 법칙(Lass’ Law)을 소개하는 데 이것은 디지털 제작에 적용되는 무어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칙의 이름은 셰리 라시터(Sherry Lassiter, 일명 ‘Lass’)에게서 온 것이다. 선도적인 <팹 재단>(팹랩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과 함께 라시터는 <비트와 원자를 위한 센터>의 지역사회봉사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팹랩 요청서들의 더미가 커져가는 속도를 보고 팹랩의 수가 1년 반마다 대략 두 배가 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팹』을 쓸 때 닐은 이런 급격한 성장을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 당시 <비트와 원자를 위한 센터>는 몇 개 안되는 최초의 팹랩들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 닐에게 2003년은 팹랩의 시작점이고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 팹랩들의 수는 두 배가 되었다. 이제 라스의 법칙을 적용하면 향후 10년 정도에 걸쳐 100만 개의 팹랩에 해당하는 능력이, 그리고 그 다음 10년에 걸쳐 10억 개의 팹랩에 해당하는 능력이 생성됨을 의미한다. 공간을 채우는 10억 개의 시설이 들어선다는 말이 아니다. 테크놀로지의 융합, 접근성 및 범위에서의 진전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규모가 커지면서 중요해진 것은 오늘날 존재하는 바와 같은 팹랩이 아니라 물리적 형태를 제작하고 그 기능을 프로그램하는 능력이다.

 

닐은 팹랩에서 현재 사용하는 도구들의 목록과 그 도구들에 대한 설명으로 5장을 시작한다. 그런 다음 그는 다음과 같이 뚜렷이 구분되는 4단계를 개관한다. ① 공동체 제작(기계를 통제하는 컴퓨터가 추동함) ② 개인 제작(기계를 만들 수 있는 기계에 바탕을 둠) ③ 보편적 제작(디지털 재료로의 이행을 표시함) ④ 유비쿼터스 제작(재료가 프로그램 가능함).

 

그런데 3차 디지털 혁명의 핵심요소들이 랩에서 등장해서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우리는 이 영향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회 시스템이 3차 디지털 혁명을 가속화하는 기술과 함께 효과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도록 안내하는 길잡이는 조엘과 앨런이다. 조엘과 앨런은 첫 번째 랩을 시작한 이후 팹랩 운동에서 닐과 함께하고 있다. 조엘은 일리노이 주 섐페인 어배너에서 팹랩을 시작하는 것을 도왔고 팹 네트워크를 가로질러 새로운 이해관계자 연대 방법을 적용하는 것을 주도했다. 앨런은 팹랩에 맞는 지속가능한 모형을 연구했고 그가 설립한 <이라인 미디어>는 <팹재단> 및 <비트와 원자를 위한 센터>와 협력해서 미국의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의 자금지원을 받아 디지털 제작의 미래를 탐구하는 비디오 게임을 작업했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할 때 조엘과 앨런은 전 세계 팹랩들을 방문했고 수십 명의 팹 선구자들을 인터뷰했으며 수백 명의 이해관계자들을 조사했다.

 

닐은 테크놀로지 로드맵을 연구하고 테크놀로지를 활용할 만한 도구와 기술들을 제안한다. 조엘과 앨런은 사회적 로드맵을 연구하고 사회 시스템과 기술 시스템이 함께 진화할 수 있게 하는 방법과 사고방식을 제안한다. 2장에서 조엘과 앨런도 현재 구축된 전 지구적인 팹랩의 네트워크를 관찰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그러나 닐과 다르게 그들은 힘을 북돋고 즐거움을 주는 측면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팹랩 네트워크에 스며드는 긴장과 문제들도 부각시킨다. 개별 제작의 전망과 자신이 소비하는 것을 제작하는 개인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제작이 대부분 사람들에게 현실이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팹에의 접근, 팹 리터러시 및 진정으로 민주화된 기술을 보장하는 생태계의 양성을 중심으로 하는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 팹 생태계 도처에 있는 분리현상들을 관찰하는 것은 그 바탕에 함입되어 있는 전제를 그리고 상충하는 가치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을 제공한다. 현재의 작업흐름을 완전히 익히는 데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오늘날 팹랩의 혜택들은 결과보다는 제작과정에서 나온다. 앞으로 디지털 제작이 우리가 소비하는 것을 만드는 데로 나아가려면 결과에 비중을 더 두는 방향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4장에서 앨런과 조엘은 어떻게 무어의 법칙이 기술적 구축물 못지않게 사회적 구축물인지를 강조한다. 무어의 법칙은 결코 물리학 법칙이 아니며 관찰의 기록인데, 이것이 회사를 위한 핵심 사업전략이 되고 산업의 벤치마크가 되며 마지막으로 더 좋고 더 빠르고 더 값싼 디지털 기술을 활성화하는 틀이 된 것이다. 4장은 사회적인 변화와 기술적인 변화의 상호교직이 새롭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런데 사회과학은 테크놀로지에 대한 반응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지배적인 관행은 테크놀로지의 공동창출보다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찰이다. 보다 진취적인 입장 취하기는 개인들·조직들·제도들이 변화의 속도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긍정적인 사회변화를 위해서는 속도 제한장치와 속도 가속장치가 핵심적인 역할들을 할 것이며, 기술적 체계와 사회적 체계를 효과적으로 함께 진화시키기 위해 디지털 플랫폼과 새로 출현하는 생태계가 가진 힘을 이용하는 데 있어서는 1, 2차 디지털 혁명에서 배운 교훈들을 상기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조엘과 앨런은 6장에서 디지털 제작의 미래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작업을 구체적으로 안내한다. 그들은 다섯 대륙의 팹 선구자들과 공동으로 만들어낸 야심적인 여덟 개의 시나리오를 설명한다. 이 시나리오에서 사회적 체계와 기술적 체계는 함께 진화한다. 미래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미래를 위한 심상지도(mental maps, 인지지도)만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심상지도가 필요하다. 이 더 나은 미래를 현실로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기 위해 조엘과 앨런은, 모든 사람이 3차 디지털 혁명에서 의미•목적•존엄성을 찾을 수 있도록 새로운 사고방식을 촉진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적용하는 틀을 제안하고 있다.

 

『현실을 설계하기』의 세 저자들은 3차 디지털 혁명에 과학•테크놀로지•사회과학•인문과학의 관점을 적용한다. 각 저자는 책에 상이한 렌즈를 갖다 댄다. 각 저자의 렌즈를 통해 어떤 것은 명확해지고 다른 어떤 것은 불분명해진다. 이 책을 쓰기 위해 함께 모였을 때 일치한 의견들보다 일치하지 않은 의견들이 훨씬 더 중요했다. 서로 다른 분야들이나 영역들이 집단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복잡하고 급속히 바뀌는 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을 때면 언제나 그렇다.

 

지금 우리는 가능성 높은 궤적들을 예견할 수 있으며, 아직 시기가 일러서 우리가 후회할 방식으로 테크놀로지가 우리를 형성하기 전에 우리가 테크놀로지의 형성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독특한 역사적 순간에 서있다. 3차 디지털 혁명의 임팩트는 1, 2차 디지털 혁명의 임팩트보다 크지는 않더라도 그 만큼은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방식의 심장부로 파고드는 수많은 새로운 기회 및 도전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애리조나 주립 대학의 리터러시 학자 제임스 폴 기(James Paul Gee)는 자신의 논문 「리터러시: 글쓰기에서 패빙으로」(“Literacy: From Writing to Fabbing”)에서 이 기회와 도전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팹은 우리가 현재 겪는 것보다 한층 더 심한 불평등의 세계, 다시 말해 몇 명만이 아이디어를 비트로 바꾸고 다시 비트를 원자로 바꾸거나 그 반대로 원자에서 비트를 거쳐 아이디어로 나아가는 과정을 행하는 연금술에 참여하는 세계를 창출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질료—물건들, 세포들, 재료들—를 단지 몇 명이 소유하고 사용하는 세계에 살게 될 것이다. 팹은 새로운 리터러시이고 우리는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되어 갈지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특별하고 어떤 의미에서 결정적인 것이다.

 

우리 중 몇 명이 호모 파베르가 될 것인가? 인간은 항상 최고의 도구 제작자였다. 곧 모든 사람이 세계를 만드는 도구를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도구의 가격은 저렴해 질 것이다. 우리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고자 한다면 말이다. 우리 중 몇 명 혹은 대부분 혹은 모두가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신과 같은 창조자가 될 때, 우리는 하나의 종으로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더 나쁜 세상을 만들 것인가? 팹과 리터러시의 관계는 불과 인간발전의 관계와 같다. 다시 말해 불은 길을 밝힐 수도 있고 태워 버릴 수 있는 도구이다.

 

불이 길을 밝히는 쪽으로 이용되도록 영향을 미칠 힘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디지털 제작이 민주화되면서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비트를 지렛대로 삼아 원자를 능란하게 다루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비유적으로나 말 그대로나 현실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3차 디지털 혁명에서의 생존과 번영-1

  • 저자  : Neil Gershenfeld((닐 거션펠드(Neil Gershenfeld) : MIT의 <비트와 원자를 위한 센터>(Center for Bits and Atoms, CBA)의 책임자)), Alan Gershenfeld((앨런 거션펠드(Alan Gershenfeld) : <이라인 미디어>(E-Line Media)의 대표이자 공동 설립자)), and Joel Cutcher-Gershenfeld((조엘 거션펠드(Joel Cutcher-Gershenfeld) : 브랜다이스 대학(Brandeis University)의 사회정책과 경영을 위한 헬러 대학원(Heller School for Social Policy and Management) 교수이며 <노동과 고용 관계 협회>(Labor and Employment Relations Association)의 회장을 역임))

  • 원문 : Designing Reality: How to Survive and Thrive in the Third Digital Revolution(2018)의 서설(Introduction) 
  • 분류 : 일부 내용정리
  • 정리자 : 민서

3차 디지털혁명에서의 생존과 번영

 

지난 반세기에 걸쳐 두 개의 디지털 혁명이 일어났다. 1차 디지털 혁명은 통신 분야에서 일어났으며 아날로그 전화에서 인터넷으로의 이행을 가져왔다. 2차 디지털 혁명은 컴퓨팅 분야에서 일어났으며 우리에게 개인용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가져다주었다. 현재 무어의 법칙(Moore’s Law)으로 알려진 무어의 예측―컴퓨팅 성능이 앞으로 10년 동안 계속해서 두 배로 증가한다―은 그가 처음 예상했던 10년 동안만 지속된 것이 아니라 50년 동안 유지되었다. 그리고 컴퓨터는 이제 1965년의 컴퓨터보다 10억 배 가량 강력하고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으며 팔목에 찰 수도 있다.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는 기하급수적인 속도를 따라 잡으려는 노력은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크게 뒤쳐져 있다. 고든 무어의 글이 출판된 지 반세기를 넘긴 오늘날에도 지구의 절반이 넘는 지역에서 아직도 인터넷 접속이 전혀 불가능하며 이에 더하여 수십억의 사람들이 제한되거나 신뢰할 수 없는 접속을 한다. 전 세계 많은 곳에서 (디지털 공명실과 ‘항상 대기중’인 소셜미디어에 추동된) 심화되는 소득•부의 불평등, 기술발전으로 인한 비고용, 그리고 사회적 양극화가 결합되어 사회의 짜임새 자체를 찢어발기고 있다.

 

1, 2차 디지털 혁명의 부정적인 측면은 단순히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이끈 것도 아니었다. 초기에 내려진 (혹은 내려지지 않은) 결정과 정해진 (혹은 정해지지 않은) 우선하는 것들이 테크놀로지가 개발되고 그 테크놀로지가 시장에 도입되면서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새로운 지평을 여는 디지털 통신 능력을 구축했지만 시민담론을 강화할 수 있는 문화적 규범, 피드백 루프 및 알고리즘을 그 안에 구축해 놓지는 못했다. 우리는 엄청나게 효율적인 새로운 전자상거래 모형은 창출했지만 사생활과 안전에 새로운 위협을 도입하기도 했다. 테크놀로지 때문에 사라진 일자리의 충격과 싸우면서도 우리는 디지털 자동화로 가능해진 진전을 중시한다.

 

1, 2차 디지털 혁명의 모든 부정적인 결과를 예견하고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물론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개인들, 조직들, 제도들이 테크놀로지와의 동반 진화를 촉진하는 것을 중요시하게 됨으로써 우리가 적극적으로 가치를 창출하고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면서 생겨나는 피해를 완화시킬 커다란 기회들을 놓쳐 버렸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온다. 이 기회는 3차 디지털 혁명, 즉 제작 영역에서 생긴다.

 

3차 디지털 혁명은 비트를 기반으로 하는 가상세계의 프로그램화 가능성을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세계로 가져옴으로써 1, 2차 혁명을 완성한다. 이 물질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 엄연히 있으므로 3차 디지털 혁명이 미치는 영향은 이전 혁명들보다 훨씬 더 클지도 모른다. 이 혁명은 여전히 근본적으로 디지털 과학 위에 구축된다. 다만 이제 그것은 비트와 원자 모두가 급격한 속도로 처리될 수 있게 해준다. 통신기술과 컴퓨팅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옮겨가고 그 결과 개인용 컴퓨터, 모바일폰 및 인터넷이 생겨나면서, 제작의 디지털화는 수요가 생길 때마다 즉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마다 언제 어디서나 개인과 공동체가 제품을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개별 제작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초기 메인프레임 컴퓨터와 매우 유사하게, 오늘날 대부분의 본격적인 디지털 제작은 선진적인 연구기관과 대기업에서 일하는 고도로 훈련된 조작자들이 가동하는 엄청나게 큰 기계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곧 엄청나게 큰 이 기계 속에 있는 힘에 누구나 접근 가능해질 것이다. 주머니에 넣어 들고 다니는 컴퓨터가 과거의 메인프레임 컴퓨터가 가졌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누구든지 데이터를 사물로, 그리고 사물을 데이터로 바꿀 수 있고 비트와 원자로 이루어진 인터넷을 가로지르며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미래가 코앞에 와 있는 것을 이미 볼 수 있다.

 

이 비전은 이론적으로 가능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미 이것이 급격하게 현실이 되어가는 경로 위에 있다. 팹랩(Fablab)은 개인들이 디지털 제작에 필요한 강력한 도구에 접근할 수 있는 공동체에 기반을 둔 제작실로, 2003년에 첫 제작실이 설립된 이후 1년 반마다 그 수가 두 배로 늘고 있다. 그러나 1, 2차 디지털 혁명의 초기처럼 3차 디지털 혁명의 급격한 진행속도는 평범한 관찰자에게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발명가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자신의 책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에서 “기하급수적인 성장은 기만적이다”라고 지적한다. “이 성장은 감지 못하는 사이에 시작하고 그런 다음 불시에 맹렬하게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다시 말해 이 성장은 그 궤적을 조심해서 따라가지 않는다면 뜻밖일 수밖에 없다.”

 

『현실을 설계하기』(Designing Reality)의 핵심은 디지털 제작이 진행되는 궤적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 책의 목표는 사람들이 3차 디지털 혁명에 대비하는 동시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이 책의 지식을 이용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 혁명에 작거나 크게 기여할 행동능력이 있다. 우리는 앞으로 여러 분야의 지도자들이 팹에의 접근 및 팹 리터러시(Fab literacy)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반세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아직은 3차 디지털 혁명이 초기 단계에 있다. 연구 우선사항들이 정식화되고 있고 핵심기술들이 개발되고 있으며 팹에의 접근 및 팹 리터러시를 보편화하는 데 필수적인 조직과 제도들이 출현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서 우리는 사실상 한계비용을 추가로 들이지 않고 음악•비디오•블로그•뉴스•이메일•문자메시지 및 다른 디지털 자료를 복제•변경•공유하는 우리 능력이 긍정적이면서 부정적으로 경제와 사회에 미친 영향을 보아왔다. 이 능력은 테크놀로지의 성격 그 자체에 내재해 있다.

 

디지털 제작은 디지털 통신기술과 컴퓨팅에 속하는 속성의 일부를 공유한다. 1, 2차 디지털 혁명에서 비트는 원자를 간접적으로 즉 새로운 능력과 행동을 창출함으로써 바꾸었다. 3차 디지털 혁명에서 비트는 사람들이 원자를 직접 바꾸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는 아직 원자 수준에서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 실현에 필요한 것은 물질세계를 변경하기 위하여 디지털 설계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능력이다. 1, 2차 디지털 혁명으로 야기된 엄청난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 물질세계—도로•주택•기기들•교통기관•음식—는 현저하게 예전 그대로이지만, 3차 디지털 혁명에서는 물질세계가 구성되는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다. 전 지구적으로 디자인(설계)을 공급받지만 제작은 지역에서 하는 방식으로 개인과 공동체가 옷•가구•장난감•컴퓨터와 심지어 주택과 자동차도 제작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혁신의 지속적인 흐름이 팹랩의 전지구적 네트워크를 가로질러 이미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3차 디지털 혁명은 인간 깊은 곳에 간직되어 있는 제작 욕망을 끌어내어 활용한다. 지하실 작업장이 있는 집에서 사는 기계 수리공이든 인도의 시골에 위치한 팹랩에서 일하는 농부든 <메이커 페어>(Maker Faire) DIY 모임에서 활동하는 12살 아이든, 제작은 취미생활자들•예술가들•발명가들•엔지니어들 및 광팬들(덕후들)을 깊이 만족시키고 그들에게 영감을 준다.

 

이 책 곳곳에서 우리는 디트로이트의 <인사이트 포커스>(Incite Focus) 팹랩에 소속된 블레어 에반스(Blair Evans)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블레어는 디트로이트의 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30에이커의 땅을 개발했고, 모든 사람이 “적게 일하고 적게 소비하며, 더 많이 창조하고 더 많이 접속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경제적 모형들을 연구하고 있다. 개인과 공동체의 자급자족을 구축하는 것이 새로운 생각은 아니지만, 블레어와 그의 동료들은 디지털 제작 플랫폼들이 식품에서 가구에 이르기까지 실용적인 재화를 협력해서 생산하기 위해 사용될 때 이 플랫폼들이 어떻게 자급자족을 가속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1, 2차 디지털 혁명에서 등장한 큰 문제가 있다. 일자리들이 테크놀로지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로봇공학 및 빠르게 가속화하는 다른 테크놀로지 분야의 진전 때문에 일자리의 무려 절반이 머지않아 자동화될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공장일이나 트럭운전 같은 블루칼라 일자리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 보조원의 일에서 방사선학과 심지어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이르는 화이트칼라 일자리들도 사라진다. 물론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연관된 새로운 일자리가 사라진 일자리를 대신할 것이라는 다른 예측도 있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더라도 (이는 결코 확실하지는 않다) 옛날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과 널리 접근 가능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는 것 사이에는 격차가 있을 것이다. 기술적인 진보로 인한 비고용, 소득과 부의 불평등, 그리고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추동하는 끊임없는 변화의 유독한 조합은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고 화나게 했으며 세계 도처에서 민족주의 운동을 추동했다. 그러나 증가하는 제작 과정의 민주화는 개인과 공동체의 자급자족이 전 지구적 독립과 지식공유—이는 두려움보다 능력에 기반을 둔다—와 결합하는 더 매력적인 미래를 낳을 수 있다. 이것은 지구화와 지역의 자급자족 사이의 잘못된 이분법을 허물어뜨리고 정치적 분열을 넘어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보다 지속가능하고 풍요로운 미래를 위한 토대가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도시와 시골 규모에서도 생겨나고 있다. 우리가 만나게 될 또 한 명의 팹 선구자인 토마스 디에스(Tomas Diez)도 바르셀로나 팹랩 소속으로 세계적인 ‘팹시티’(Fab City) 운동을 이끌고 있다. 토마스는 ‘팹시티’ 운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도시가 추출적이기보다는 생성적이며, 파괴적이기보다는 복원력이 있고 소외시키기보다는 힘을 부여할 수 있기 위하여 생산을 다시 지역화함으로써 우리는 도시를 그리고 도시의 사람 및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발명할 필요가 있다.”

 

알래스카에서 아마존에 이르기까지 토착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팹선구자들도 있다. 이들은 지역의 자급자족과 공동체 건설에 적합한 고대의 관행들을 살아있는 채로 보존하기 위하여 진보된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지역 문제를 협력해서 해결하기 위하여 지역의 재료들을 사용하는 보다 효과적인 도구를 제공하는 것은, 전통적인 동시에 현대적인 사회에 살면서 주변의 자연과 물질세계에 한층 더 연결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깊은 욕망을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녀들을 ‘테크놀로지로부터 벗어난’ 학교에 보내는 실리콘 밸리 임원들에게서, 그리고 디지털로부터 자유로운 휴일이나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날’과 같은 기획들에서 가상 세계로 빨려들어 가는 위험에 관한 불안을 본다. 3차 디지털 혁명은 비트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계와 원자로 이루어진 ‘현실’ 세계 사이에서 우리가 보다 건강하게 균형 잡힌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방향으로 우리를 추동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개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고무하며 필요한 조직을 창출하고 물려받은 제도를 바꾸려는 우리의 열렬한 노력을 통해서만 이 야심에 찬 비전들은 실현될 것이다. 우리가 실로 3차 디지털 혁명으로 넘어가는 변곡점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궤적을 이해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현실을 설계하기』는 3차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지를, 이 혁명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를, 그리고 (결정적인 것으로는) 일어나고 있는 이 혁명에 대비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 당신이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지를 제시할 것이다.

 

대중매체에 의해 강화되는 두 개의 극단적인 비전이 테크놀로지와 관련해서 존재한다. 하나는 테크놀로지가 미쳐 날뛰고 로봇이 우리의 일자리를 훔쳐도 인간은 무기력하기만 한 디스토피아적인 비전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는 뒤로 물러나 앉아 있을 뿐이고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유토피아적인 비전이다. 우리가 1, 2차 디지털 혁명에서 보았듯이 현실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결들로 이루어진다. 급속히 발전하는 테크놀로지가 가지고 있는 혜택과 위험은 매우 실질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지만, 우리에게는 이제 개인적·집단적으로 이 영향력을 좋은 방향으로 유도할 힘이 있다.

 

우리는 한층 자급자족적이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창출하기 위해 3차 디지털 혁명의 궤도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행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대체될 수 없는 노동과 관련해서는 지속적인 고용이 이루어질 것이고, 이와 병행하여 디지털 제작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새로운 일자리들도 생길 것이다. 새로 출현하는 모형들에서는 개인과 공동체들이 자신들이 소비하는 것을 직접 제작하게 될 것이고, 이는 우리의 일(노동) 개념에 도전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의 활동들 사이의 균형을 잡는 데 필요한 새로운 선택지들을 제공할 것이다. 이런 혼합된 사회적 배치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수십 년에 걸쳐 디지털 제작 테크놀로지의 능력 및 범위가 10억 배로 증가한다면, 우리는 더 많이 창출하고 더 많이 연결하면서 더 적게 일하고 더 적게 지출하는 비전을 실현할 수 있다. 우리는 “추출적이기보다는 생성적이며 파괴적이기보다는 복원력이 있고 소외시키기보다는 힘을 부여하는” 사회에 대한 ‘팹시티’ 비전을 디딤돌로 삼을 수 있다.




P2P 시대의 개방형 협동주의


  • 저자  :  Michel Bauwens
  • 원문 : “Open Cooperativism for the P2P Age (2014.06.16) / Attribution-ShareAlike 3.0 Unported
  • 분류 : 번역
  • 옮긴이 : 정백수
  • 설명 : 4년 전의 글이라서 더 정밀해졌을 현재의 바우엔스에는 못 미칠 수 있지만 협동조합이 나아갈 기본적 방향을 P2P 관점에서 잘 제시하고 있다고 판단되어 옮겨서 소개한다.

 

오래 버텨온 협동조합 기업들 가운데 일부가 실패하는 중인데도 협동조합 운동과 협동조합 기업들은 부활을 맞고 있는 중이다. 이 부활은 협동조합의 흥망성쇠의 한 국면인데, 이 흥망성쇠는 주류 자본주의 경제의 흥망성쇠와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 2008년도의 금융위기 같은 체제 차원의 위기 이후에 많은 사람들은 대안들을 찾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옛 모형들을 찾아서 부활시키는 식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시대의 새로운 가능성들과 요건들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디지털 네트워크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어포던스들(affordance)((어포던스란 주체가 특정의 행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객체가 ‘제공’하는 관계를 가리킨다― 옮긴이))을 고려해야 한다.

‘P2P’ 관점에서 몇 가지 생각을 제시해본다. P2P재단의 맥락에서 발전시켜온 것들이다.

첫째, 옛 협동조합 모형들의 비판에서 시작해보자.

협동조합들이 임금에 의존하고 내적인 위계에 기반을 두는 자본주의 기업들보다 더 민주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에서 움직이는 협동조합들은 경쟁적 태도를 점점 더 가지게 되며 그렇지 않더라도 공동선이 아니라 회원들만을 위해서 움직인다.

둘째, 협동조합들은 일반적으로 커먼즈(공통재)를 창출하거나 보호하지 않는다. 영리 기업들처럼 특허와 저작권을 따가지고 커먼즈를 종획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기 일쑤다.

셋째, 협동조합들은 회원 자격을 지역 혹은 일국에 국한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전지구적 무대는 영리를 추구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지배하도록 열어놓는다.

이러한 특징들은 바뀌어야 하고 또 오늘날 바뀔 수 있다.

 

우리의 제안은 다음과 같다.

1. 영리 기업들과 달리 새로운 협동조합들은 공동선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이는 협동조합들의 정관과 거버넌스 문서에 포함되어야 하는 요건이다. 이는 협동조합들이 영리를 추구할 수는 없음을, 사회적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 함을 의미하며, 이것이 그 정관에 기입되어야 한다. 북부 이탈리아나 퀘벡 같은 지역들에서 사회적 돌봄과 관련하여 이미 활동 중인 연대 협동조합들(solidarity cooperatives)은 올바른 방향으로 내딛는 중요한 발걸음에 해당한다. 현재의 자본주의 시장 모형에서 사회적·환경적 외부성(externalities)((여기서 ‘외부성’은 기업이 기업 외부 즉 사회와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가리킨다―옮긴이))은 무시되고 외부에 있는 국가가 가하는 규제에 맡겨진다. 새로운 협동조합 시장 모델에서는 외부성이 정관에 통합되며 법적 의무가 된다.

2. 단일한 계층의 이해관계자들에서 회원을 끌어오는 협동조합들과 달리 새로운 협동조합들은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운영에 포함시켜야 한다. 협동조합들은 다중 이해관계자들(multi-stakeholders)의 거버넌스에 맡겨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현재의 회원제가 다른 유형의 회원제를 포함하도록 확대되어야 하거나 현재의 회원제 모형에 대한 대안― 가령 새로 제안된 페어셰어즈(FairShares) 모형―을 찾아야 함을 의미한다.

3. 사실 우리 시대의 결정적 혁신은, 협동조합이 커먼즈를 (공동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이 커먼즈는 두 유형이 있다.

a. 첫째 유형은 비물질적 커먼즈이다. 열려있고 공유 가능한 라이선스를 사용하여 전지구적 인류 공동체가 협동적 혁신을 구축하고 다시 그것을 풍요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P2P재단에서는 커먼즈 기반 상호성 라이선스(Commons-Based Reciprocity Licenses) 개념을 도입했다. 이 라이선스는 윤리적 기업 및 협동조합 기업이 공동으로 산출하는 커먼즈를 중심으로 윤리적 기업 및 협동조합 기업의 연합을 창출하도록 설계되어있다. 이런 라이선스의 핵심 규칙은 이렇다 : ① 커먼즈를 비상업적 사용에 열어놓는다 ② 커먼즈를 공동선을 추구하는 단체들에 열어놓는다 ③ 커먼즈를 커먼즈에 기여하는 영리 기업들에 열어놓는다. 여기서 예외 조항은, 커먼즈에 기여하지 않는 영리 회사들은 라이선스의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 주된 목적이 소득을 생성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시장 경제에 상호성 개념을 도입하기 위한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윤리적 경제, 비자본주의적 시장 동학을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다.

b. 둘째 유형은 물질적 커먼즈의 창출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예를 들어 장비를 제조하는 데 기금을 댈 커먼즈의 창출이다. 클라이너(Dmytri Kleiner)의 제안을 따라서, 협동조합들이 증권을 발행하고 여기에 모든 조합원들(체계 내에 있는 모든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기여하여 제조를 위한 커먼즈 기금을 창출할 수 있다. 기금을 구하는 협동조합은 조건 없이 기계를 얻을 수 있지만, 협동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소유자가 될 것이며, 이런 식으로 기금에 의해 생성된 소득으로 점차적으로 기본 소득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4. 마지막으로 우리는 전지구적인 사회·경제적 힘의 문제와 씨름해야 한다. 초국적인 인도전자 협동조합(Sociedad Cooperativa de las Indias Electrónicas)의 선도적 사례를 따라서 우리는 전지구적 부족(풀레, phyle)의 창출을 제안한다. 부족이란 커먼즈와 기여자들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전지구적 사업 생태계를 말한다. 부족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움직인다. 개방형 농업기계들(혹은 다른 생산물이나 서비스)을 설계하는 전지구적인 오픈디자인 공동체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 기계들은 욕구가 있는 곳 가까이 존재하는, 일련의 개방되어있고 분산된 미시공장들(microfactories)에서 효율적으로 제조되고 생산된다. 그런데 이 모든 미시적 협동조합들이 고립된 방식으로 존재하면서 ‘비물질적 생산에 초점을 두는’ 전지구적인 오픈디자인 공동체를 통해서만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은 미시공장들을 통합하는 전지구적 협동조합을 통해서도 서로 연결될 것이다. 그런 전지구적 부족들의 결합이 새로운 형태의 전지구적인 사회·정치적 힘― 전지구적인 윤리적 경제를 대표하는 힘―의 씨앗이 될 것이다. 윤리적 기업가 연합과 부족들은 개방형 회계와 열린 공급망 제도를 향해 나아감으로써 자본주의적 시장 이후의 시장(post-market)에서 물리적 생산의 조정에 관여할 수 있다.

요약하면, 전통적인 협동조합들이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진보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그 형태는 네트워크 시대에 맞추어 P2P와 커먼즈 생산의 측면을 도입함으로써 업데이트되어야 한다.

 

새 시대의 개방형 협동주의에 대해 우리가 권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 협동조합들은 정관의 차원에서 (내적으로) 공동선을 지향해야 한다.

2. 협동조합들은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포함하는 거버넌스 모형을 가져야 한다.

3. 협동조합들은 비물질적·물질적 커먼즈를 공동으로 산출해야 한다.

4. 협동조합들은 비록 지역에서 생산활동을 하더라도 그 사회적·정치적 조직화는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협동조합과 커먼즈



 

[게시자 설명]

P2P재단은 오큐파이 운동에 대한 그의 보고에서 시작해서 2014년 에콰도르에서 진행한 우리의 FLOK 프로젝트(일국의 국가기관의 초청으로 착수한 최초의 커먼즈 이행 프로젝트)에 그가 방문한 것에 이르기까지 네이선 슈나이더의 작업을 여러 해 동안 뒤쫓았다. [FLOK은 “Free/Libre Open Knowledge”의 약자이다― 정리자] 그 다음 네이선은 트레버 숄츠(Trebor Scholz)와 함께 플랫폼 협동조합 운동을 시작하고 컨퍼런스들을 여는 데서 주된 역할을 했다. 그는 지금 콜로라도의 보울더(Boulder)에서 교사를 하고 있으며 또한 협동조합 운동에 대한 그의 보고를 계속 진행하고 있고 종교 분야에서 진보적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최근 책 『모든 것이 모두를 위해서』(Everything for Everyone)의 한 장은 에콰도르에서의 경험을 서술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아래는 협동조합 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와 이 운동이 커먼즈의 부활과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다룬 이 흥미로운 책에 관한 인터뷰이다.

 

미셸 바우엔스

이게 당신의 첫 책은 아닙니다. 당신이 책을 써온 행로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간단하게 개괄해주실 수 있나요? 책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협동조합 전통의 미래에 대한 새 책을 낳게 된 통찰과 동기에는 어떻게 도달하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네이선 슈나이더

좀 뜻밖의 행로였던 것 같습니다. 먼저, 신에 대한 주장들에 관한 책을 썼고, 그 다음에는 ‘월 가를 점령하라’에 대해 상세하게 썼으며, 지금은 협동조합에 대한 책이군요.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제 머릿속에서는 어떻든 말이 됩니다. 저에게 최우선의 과제는 항상 사람들이 그 최고의 포부를 현실화하는 모습을 포착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모험적 상상력과 함께 그것을 실천하는 대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끌립니다.

이번 책은 ‘오큐파이’를 다룬 책인 『고마워, 아나키』(Thank You, Anarchy)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되었습니다. 2012년과 2013년에 투쟁이 잦아든 이후 제가 관심을 가진 활동가들 가운데 일부가 협동조합 일에 관여하는 모습이 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월 가를 점령하라’ 싸움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게 된 첫 사업은 노동자 협동조합인쇄점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허리케인 샌디가 강타한 뉴욕 지역들에서 협동조합을 창출하는 것을 돕고 있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에게 협동조합을 한다는 생각은 행복감을 주었습니다. 민주적 가치들을 보유하면서 생계를 버는 한 방식인 것이었죠. 저도 이 행복감을 좀 경험했는데, 이는 제가 이 협동조합의 전통이 얼마가 길고 깊은지를 깨달으면서 더 진지한 매료로 전환되었습니다.

 

바우엔스

플랫폼 협동조합에 관여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 말해주시겠어요?

 

슈나이더

이런 활동을 하던 꽤 초기에, 저는 테크놀로지 영역에서 협동조합 활동을 할 기회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프리소프트웨어와 오픈소스에 좀 관여해왔습니다. 그래서 테크놀로지를 일종의 커먼즈로서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실리콘밸리의 이른바 ‘공유경제’― 그 당시 주류였죠―가 실제로는 공유와 그다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던 2014년경에 중대한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파리에 있는 위셰어(OuiShare) 네트워크, 셰어러블(Shareable)의 고렌플로(Neal Gorenflo), 그리고 물론 P2P재단의 인도 아래 저는 몇몇 기업가이자 활동가인 사람들이 진정한 공유경제, 공유가 회사 자체에 내장된 경제를 그려보려고 한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놓치고 있던 해킹이었습니다. 오픈소스 사람들은 지적 재산권 관련법을 해킹했지만 투자자에 의해 통제되는 추출적 기업은 건드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제 자본주의적 회사의 논리를 다시 생각할 때이며, 오랜 협동조합 전통이 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 같았습니다.

2014년 말에 저는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숄츠와 팀을 이루었고 그 다음 해에 뉴욕의 뉴스쿨(New School)에서 최초의 플랫폼 협동조합 컨퍼런스를 조직했습니다. 반응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운동의 씨앗을 품고 있었던 것이지요. 플랫폼 협동조합을 만들려는 새 스타트업들이 저에게 접근하면 할수록 저는 증거 같은 것에 입각하여 조언을 할 수 있기 위해서 역사에 눈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배우고 가져올 것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우엔스

협동조합주의와 커먼즈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보시나요? 양자가 융합될 수 있을까요?

 

슈나이더

저는 협동조합을 일종의 커먼즈로산업 시기의 국가와 시장에게 명료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 커머닝의 한 방식으로 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커먼즈 활동가들의 비전과 비교해 볼 때 협동조합 전통은 꽤 보수적입니다. 나는 이 보수주의를 좋아합니다. 그것이, 마찬가지로 재발명의 필요가 있는 ‘바퀴 개수 줄이기’에 기여합니다. 이야기꾼으로서 저는 더 첨단의 커머너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짊어질 과제가 너무 어렵고 새로워서 이념이 투철하지 못한 사람은 오랫동안 붙어있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협동조합은 사람들을 커먼즈의 급진적인 비전에 입문시키는 한 방식입니다. 여기에는 비자, AP통신 그리고 동네에 있는 신용조합 같은 귀에 익은 것들도 포함되지요. 그런데 저는 협동조합들로 충분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으렵니다. 협동조합은 더 다양하고 광범한 커머닝으로 나아가는 출발점, 관문이지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협동조합들은 모두 구식 재산 및 소유권과 연관됩니다. 저는 ‘재산은 절도다’와 같은 식의 아나키즘에 마음이 갑니다만, 또한 커머너들이 영주들이 소유권을 포기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공유경제의 정신에 따라 소유권을 포기하는 것은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봉건제입니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리눅스 코드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했으며 현재 그것이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기업감시도구인 안드로이드 OS를 가능하게 합니다. 삐께띠가 보여주듯이 자본 소유권이 (임금소득보다 더) 경제적 불평등의 추동력입니다. 협동조합 전통은 소유권을 더 균등하게 분배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재산이 덜 중요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기에 더 좋은 위치에 놓이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커먼즈를 통해서 우리의 욕구를 더 많이 충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커머너들은 강한 힘을 가진 상태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우엔스

당신의 책의 한 장에서 당신은 당신과 대담을 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의 경험과 에콰도르의 ‘FLOK 사회’ 프로젝트를 평하고 있습니다. 그 경험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어떤지요?

 

슈나이더

한 나라 규모의 커먼즈 이행을 만들어보려는 노력이었던 FLOK의 경험은 저에게 매우 유익했습니다. 그것은 커머닝이 단순히 일련의 고립된 실천들로서 제시되기보다 포괄적인 사회적 비전으로서 제시되는 것을 볼 기회였습니다. 협동조합들은 당연히 그 모든 일에서 중대한 요소였습니다. 물론 에콰도르 정부의 후속조치는 매우 제한되었습니다만 그 과정은 커먼즈 이행을 위한 자원을 산출했고 이것이 그 모든 일의 핵심을 포괄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 더없이 소중했습니다. 저에게 그것은 굉장한 교육이었습니다. 모두가 그런 경험을, 세계의 미래를 위한 계획을 짜는 데 참여하는 경험을 때때로 가져야 합니다.

 

바우엔스

당신의 활동은 당신의 신앙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이 시대에 진보적 기독교인이 될 수 있나요? 당신은 기독교 전통의 특정 요소들과 연결되어 있나요?

 

슈나이더

협동적 전통을 더 많이 알수록 그것이 종교적 전통들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더욱더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특히 저의 가톨릭 전통에서 봅니다. 이 전통은 북미 협동조합은행들과 몬드라곤 노동자 협동조합들과 같은 사례를 산출했습니다.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다른 많은 신앙들에서도 발견될 수 있습니다. 협동이 종교로 환원된다거나 종교에 의존한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우리 세계의 다른 많은 주된 세력들의 경우처럼 종교도 삶에 활력을 부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작업을 통해 몇몇 새로운 성인들을 후원자들로서 발견하게 되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중세 프란치스코회의 공동 설립자인 아시시의 클라라(Clare of Assisi)는 수녀들이 자치할 권리를 가져야한다는 것을 강조했으며 모든 목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라이언(John A. Ryan)은 협동조합 일을 통해 이루어지는 덕성 교육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신부인 맥나이트(Albert J. McKnight)는 범아프리카주의적 비전을 남부협동조합연맹(Federation of Southern Cooperatives)의 발전에 적용했습니다. 영어에 갇혀있는 우리에게는 몬드라곤 협동조합들을 창시한 신부인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따(José María Arizmendiarrieta)의 저작을 더 많이 번역할 필요가 절실합니다. 이 분들은 신이 우리에게 우리의 공동체를 같이 다스릴 수 있고 또 그럴 자격이 있는 존엄을 부여했다는 뿌리 깊은 믿음에서 협동적 경제에 몰두했던 것입니다.

 

바우엔스

새로운 세계로의 ‘상전이’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으로 보시나요? 인류가 이 과정을 완수하리라고 어느 정도 낙관하시나요?

 

슈나이더

제 책의 부제[‘다음 경제를 형성하는 급진적 전통’―정리자]가 암시하는 바와 달리 전 예측을 잘 못해요. 그러나 제가 아는 것은, 만일 우리가 현재보다 더 풍요로운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실행하고자 마음먹는다면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를 보면 이것이 분명해집니다. 언제가 미래에 우리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방대한 불평등과 독재적 기업들, 때때로 이루어지는 투표 등으로 구성되는 현재의 현실을 떠올리며 웃는 일이 분명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우리가 더 탁월한 민주주의 형태들을 선택해 나갈 가능성만큼이나 민주주의를 완전히 포기할 가능성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나는 30년 동안 나도 모르게 커먼즈 연구를 해왔는가? (1/2)



 

어떻게 나는 30년 동안 나도 모르게 커먼즈 연구를 해왔는가? 

 

무엇이 커먼즈를 보지 못하게 내 눈을 가로막았는가

 

나는 학문공동체(이 자체가 최근에 비로소 형성된 것이다)의 일원으로서 커먼즈에 대해 글을 쓰면서 몇 가지 문제들에 부딪혔다.

 

첫째, 커먼즈라는 복잡한 문제가 처음 우리의 주의를 끌기까지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다. 왜 50년 전에 우리의 주의를 끌지 않았을까? 사회적 현상을 커먼즈 현상으로 인식하고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데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가지고 있고 이미 공유 패러다임 내에서 글을 쓰고 있었지만, 커먼즈 용어를 사용하여 물음을 묻는 능력은 아직 없었다.

 

둘째, 커먼즈에 대한 논의를 개시하는 것은 일종의 도미노 효과를 촉발한다는 사실이다. 커먼즈를 거론함으로써 첫 번째 도미노가 쓰러지자마자 근대 서양문명이 토대를 두고 있는 많은 개념들이 균형을 잃으며 토대가 잘 잡혀있다고 생각되었던 구조물 전체가 무너져 내린다. 국가, 법, 시장, 민족, 노동, 계약, 부채, 증여, 법인, 사유재산, 친족제도, 결혼관계법, 상속법 등이 갑자기 문제로 삼아지게 된다. 우리는 종종 이 개념들이 보편적으로 타당하다고 믿지만, 상이한 문화를 비교해보면 이 개념들은 근대 서양의 법 전통에 깊은 영향을 미친 관습이요 민속일 뿐임이 드러난다. (그래서 이 법 전통은 하나의 민속법인 것으로 판명된다.)

 

셋째, 프랑스에서 라발(Pierre Laval)과 다르도(Christian Dardot)가 그들의 책 Commun에서 최근에 표현했듯이, 현재의 커먼즈 논의가 고도로 정치적이며 심지어는 논쟁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점이다. 이 책의 부제도 ‘21세기의 혁명에 관한 시론’이다. 라발과 다르도는 맑스가 19세기 중반에 자본의 의미와 역할에 대하여 성찰하면서 제기했던 중요한 문제들을 학술적 논쟁으로 다시 끌어들였다.

 

오늘날 커먼즈에 보내지는 관심은 이 문제들에 하나씩하나씩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 우선 ‘커먼즈의 문제’를 이해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이고 그 다음으로는 커먼즈와 현재의 법과의 관계를 검토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한 가지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커먼즈는 이론적으로는 시장과 국가에 대한 대안이지만, 이것을 실현하기에는 아직 요원하다는 점이다. 오스트롬에 따르면, 21세기의 사회적 난제는(([저자주] 다르도와 라발(2014)처럼 사회적 문제들보다는 혁명적 문제들에 대해서 말하는 저자들이 보기에는 커먼즈가 새로운 사회모형에 기여하는 바가 주변적이거나 보완적인 것이 아니라 중심적이다.)) 어떻게 커먼즈와 사적 소유가 공존하고 서로 보완할 수 있는지에 집중된다.

 

나는 1964년 인류학과 공법 분야에서 학위를 받고 대학을 졸업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석사과정에 해당하는 논문을 준비하던 중 아프리카에서 온 젊은 교수 앨리옷(Michel Alliot)을 발견했고 법 인류학 분야 및 아프리카(특히 세네갈)의 토지 문제를 발견했다. 이 세 가지로 인해 나의 삶은 바뀌게 된다.

 

앨리옷을 지도교수로 선택하여 박사학위 논문을 썼는데, 이 논문은 프랑스에서 법인류학 분야의 최초의 논문 가운데 하나로서(Le Roy 1970) 세네갈의 토지개혁과 <64-46호 법>을 다루었다. 나는 이 개혁의 기원과 뿌리에 대해서 언급할 뿐만 아니라 그 개혁이 실제로 포괄하고 규제하려고 했던 것― 즉 관습법(consuetudinary law) 혹은 비공식적 유형의 법― 을 설명하고자 하는 포부를 가졌었다.(([저자주] 프랑스에서 이런 유형의 탈식민적 연구는 식민지 시기의 끝에 시작되었다. 발랑디에(Georges Balandier) 같은 인류학자들은 이미 1950년대에 그런 연구를 행하고 있었다.)) 나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사회에서 토지 점유의 역사를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파고들어 커먼즈 들판을 발견했으나 그것에 해당하는 개념, 용어를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나중에 이것이 ① 식민주의의 민족중심적 이데올로기와 ② 근대의 사고방식과 그 당시의 개발 관념의 토대를 이루는 것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른바 관습법은 미확인과학물체(an Unidentified Scientific Object, USO)였다. 소수의 학자들만이 그 깊은 특징들을 실제로 이해하려고 시도했었다. 학문공동체(학자 집단)는 아프리카의 법 현상을 그것이 마치 지난 수세기에 걸쳐 발전해온 서구의 법적 개념들의 대립물인 듯이 취급했다. 원시주의(([저자주] 19세기 식민화가 개발이 항상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며 서양 사회들이 이 진보과정의 선두에 선다는 관념에 기반을 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인으로서 민속학의 창립자들 가운데 하나인 모건(Lewis H. Morgan)이 이런 생각을 가진 전형적 인물이다. 이런 사고는 그의 책 Ancient Society; Or, Researches in the Lines of Human Progress from Savagery through Barbarism to Civilization (1877)에 잘 드러나 있다.))와 과학적 오만은 결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관습법이 미확인과학물체가 된 것은 그 규칙들이 근대 법의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표준들 혹은 비인격적 기준들에 따라 정식화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었다. 그 규칙들은 그 자체가 지속되는 행동패턴들로서, 특정의 안정적인 형태의 행동에 기꺼이 참여하려는 사람들의 태도로서 발현되었다. 이 규칙들은 특수한 모형들을 사용해서만 포착되고 연구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관습을 법적 행동으로 제시하는 매트릭스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성문법적 의미에서의 법적 행동이 아니라 (여러 공동체들에서 발견될 수 있는) 행동 규칙들로 표현되는 패턴들이라는 의미에서의 법적 행동이다.

 

이런 식으로 법 다원주의(legal pluralism)(([정리자] 한국어 위키피디아에서는 ‘일국수법’이라는 번역어를 사용하는데, 이 번역어 자체가 모든 것을 ‘국(가)’과 연관짓는 사고방식에서 나온 듯하다. ‘legal pluralism’은 하나의 인구 혹은 지역에 여러 개의 법체계가 공존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인구’ 혹은 ‘지역’은 당연히 ‘국(國)’이 아닐 수도 있다. 여기서는 일단 ‘법 다원주의’로 옮기기로 한다.))를 통해 나는 막 발견된, 기존의 연구 결과들에 도전하는 현상에 대응하는 데 성공했다. 매트릭스 분석의 원칙에 따라 나의 연구를 조직함으로써 내가 이미 커먼즈 서술의 기본적 요소들― 모두가 지위를 가지고 있는 공동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그 가치가 인정되는 활동, 관여된 모든 이들의 의도와 성향이 서로 연결되도록 (상징적으로) 허용하는 자원―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견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요컨대 ‘법’에 버금가는 제재 가능한 체계였다.

 

나는 토지에 대한 인간의 관계의 인류학적 모델들을 발전시켰던 초기 저작들(Le Roy 2011)과 1970년대의 저작들에서 공동체의 문제에 초점을 두었다. 나는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으로 공동체에 기반을 둔 생각들을 식별해낼 수 있었다. 나의 논의는 또한 공통재(common goods)라는 민법적 개념을 포함했다. 그런데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놀라울지 모르지만, 커먼즈라는 용어가 나의 저작에서 나온 적은 없다. 비록 서아프리카의 ‘볼로프’(Wolof)의 ‘음복’(mbock) 사고방식은 이미 나의 분석에 표시를 남겼지만 말이다.

 

‘음복’은 볼로프 언어로 친족관계를 의미하며, 그 핵심에서는 공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때로는 공동의 선조들을 가리키고 또 때로는 특정의 들판(특정의 경계를 가진 특정의 지역), 가축 떼, 숲 지역 등을 가리킨다. 공유가 교환보다 선호된다는 발견이 인류학이 확실하다고 느꼈던 저 모든 통찰들—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의 이론, 마르셀 모스(Marcel Mauss)의 선물(膳物) 개념, 모리스 고델리에(Maurice Godelier)의 재산 개념 등—에 갑자기 도전장을 내밀었다. 커먼즈에서는 공유가 우세한 조직원칙이다. 그런데 나는 1980년과 1990년 사이에 과일 경작을 위한 토지 및 지역 관리를 위한 새 모형을 다듬어내면서 비로소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다.(Le Roy 1996). 그 모형에서 나는 아프리카인들이 (그리고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재산의 다양한 법적 형태와 복잡하게 실행되는 자원이용을 (우리가 결정적이라고 생각하는 문화적 경계들을 넘어서)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근대 학문은 그러한 결합들이란 대체로 양립 불가능하거나 심지어는 어긋날 것이 뻔하다고 생각한다.

 

예상치 않은 결과를 낳은 개혁

 

나는 이 모든 지적 모험들을 세네갈의 토지정책에 대한 나의 종합적 논문에서 이론적 관점에서 서술했다(Le Roy 2011). 달리 말하자면, 나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두 범주를 각각 혹은 둘을 합해서 외적인 것, 내적인 것과 관련지었다. 커먼즈 개념은 이러한 관계를 다음의 논리에 따라 정렬하는 데 유용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 공적인public = 누구에게나 속하는

· 외적인 = n개의 집단에 속하는

· 연대(alliance) = 둘 이상의 집단에 속하는

· 내적인 = 하나의 집단에 속하는

· 사적인 = 법인, 자연인, 그외 법 주체(legal entity)(([정리자] ‘legal entity’는 다른 맥락에서는 ‘법인’으로 옮겨질 수도 있는데, 여기서는 ‘juridical individual’이라는 말이 이미 나와서 차별을 두어 옮겼다. ‘person’이 아닌’legal entity’도 있기 때문이다.))에 속하는

 

물론 이 모든 집단적 조직화의 가능성들은 오늘날의 커먼즈 이론(Bollier 2014; Dardot & Laval 2014)이 ‘커먼즈’로 간주하는 것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1996년 이래 줄곧 적어도 이런 커먼즈 개념이 토지정책에 대한 나의 분석의 중심부에 놓여있었다. 30년이라는 시간의 지연!

 

이런 잘못된 출발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류학의 패러다임 자체에 있다. 인류학은 ‘법’에 관심을 가진다. 내 경우에는 세네갈의 토지사용과 관련된 법이다. 따라서 관습법의 영역에서 생각된 바 없고 또 생각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개념적·방법론적 도구들은 법률가의 범주들로만, 즉 규범들과 법조항들로만 표현될 수 있다. 반면에 인류학자들의 관점에서 “법은 텍스트로 된 조항이 말하는 바라기보다는 행동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행하는 바이다”(Le Roy 1999). 텍스트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해석되고 적용되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프랑스 속담을 들자면, ‘컵과 입 사이의 거리는 멀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토착적·구비적 맥락에서는 해석될 텍스트가 없으며 법적 논평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명시적인 규범들이 없다. 실제로 실행되는 것을 볼 수 있을 뿐이다! 행동하는 사람들의 위치와 역할, 그들의 지위, 그들의 행동, 그들의 상호관계에 주목함으로써 인류학자들은 서양 법체계들을 근본적으로 구조짓는 (그러나 볼로프나 인류학자들이 연구하는 다른 사회들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추상들을 피할 수 있다.

 

커먼즈 개념은 무엇보다 경제학 분야에 의해서 유통된 추상물이다. 개럿 하딘(Garrett Hardin)의 유명한 ‘공유지의 비극’ 우화가 1968년에 발표된 이후 널리 유통된 것도 경제학에서이다. 양치기들이 방목지를 함께 이용할 수 없다는 이 거짓된 생각이 적어도 한 세대 동안 집단적 자원관리에 대한 연구를 침식했고 주변화했다. 말이 나온 김에 고백하자면, 나는 이 우스운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다가 198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이 사이비 이론이 가져오는 피해와 그 엉성한 일반화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커먼즈에 대한 논의가 잘못 출발된 둘째 이유는 그 당시 ‘저개발’ 국가들에 적용된 ‘개발’ 이론들과 연관된다. 세네갈은 영토관련법(the Law Concerning the Territory of the Country)을 통과시킴으로써 시장 및 사유재산과 근본적으로 연관된 개발모델로부터 최종적으로 해방되었다. 이는 시인 대통령 쎙고르(Léopold Senghor)의 ‘네그리뛰드’(Négritude)— 아프리카의 뿌리의 시적 발견—에도 열려있고 자본주의와의 단절에도 열려있는 아프리카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일어났다.(([편집자주] 쎙고르(Léopold Sédar Senghor, 1906-2001)는 세네갈의 시인이며 첫 대통령으로서 1960년부터 1980년까지 재임했다.)) 그러나 핵심은 자본주의와의 단절이 아니라 식민지 시기의 유산인 사적 소유 규범들의 노골적인 지배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64-46호 법>은 사적 소유를 폐지하려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토지등록과정에서 해결을 기다리고 있는 사적 권리들에 관한 중지된 모든 절차들을 완결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후 이것 이상의 적용(사적인 부동산을 토지대장에 등록하는 것)은 그 이후에 행정부의 통제를 받게 될 것이었다. 이 입법은 쎙고르 대통령이 1964년 연설에서 “이기적”이라고 부른 사적 소유가 사회적 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하도록 의도되었다.

 

이 개혁에 따르면, 지역의 토착적 소유권을 국가소유로 바꾸는 것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시장 거래를 활성화하고(13조) 그 다음에 국가가 권리를 사적 개인들에게 이전시키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다. 이 접근법은 세네갈의 공적 기관들이 자유주의 국가의 모든 기관들처럼 중립적이며 공정하다는 전제에 기반을 둔다. 이 전제는 불행하게도 나중에 사실에 의해서 틀린 것으로 판명된다. 우리는 이러한 국유화가 어떻게 사회주의를 농락하는지를 볼 것이다. 그러기 위해 먼저 법의 문구들을 검토하고 그 다음에 실제적 적용을 검토할 것이다.

 

법의 문구로부터···

 

공식적으로는 세네갈 영토의 96%가 국가에 속한다. 나머지는 공적으로 관리되는 땅들이거나 개인들이 소유한 토지등기소에 이미 등록된 땅들이다. 이 ‘국가에 속하는 영토’는 법 인격이 없으며 법 주체가 아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세네갈 국가에 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속한다”의 해석이 법적·정치적 의미에서 중요하다. 2조는 그것을 관습법(common-law) 맥락에 대한 신뢰의 의미에서 해석한다.

 

달리 말하자면, <64-46호 법>은 세네갈의 미래를 지향하는 것으로 판명되는 방식으로 땅의 소유에 관한 규정을 바꾼다. 식민법이 이 땅들을 국가의 사유재산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이 땅들은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행정부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주인 없는’ 땅으로 간주되었다. 이와 달리 오늘날에는 이 땅들이 특수한 지역 관리자들에게 맡겨지고 서로 다른 규정이 적용되는 4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① 도시 토지 ② 개발지대(zones classées) ③ 농촌지대(zones de terroirs) ④ 개척지.

 

겨우 17조로 된 이 간략한 법의 실질적 부분은 농촌 공동체들(communautés rurales)이 관리하는 농촌지대들과 관련된다. 이곳이 바로 커먼즈적 성격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이다. 법은 “농촌지대의 토지는 지역자치체들의 구성원들에 의해 사용되며, 이 지자체들은 그 관리를 보장하고 국가의 통제 아래에서 그것을 실행한다(···)”(8조)라고 정하고 있고 토지의 특수한 사용이나(9조) 사용에서의 면제(15조)와 관련된 의사결정력은 해당 농촌공동체 지자체의 유효한 평의회들에 있다고 정하고 있다. 이 조항들로 인해서 실제로 사람들 사이의 자기조직화가 커먼즈 문화를 창출하고 형성하도록 승인되었을 것이다. 정당정치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바로 이런 데서 현실이 끼어들어 작동한다.

 

실제 현실로···

 

나는 1969년의 첫 현지조사에 기반을 두고 농촌개발장관인 씨세(Ben Mady Cissé)와의 접촉을 활용하면서, <64-46호 법>의 실험적 실행이 제기한 토지정책 문제들의 밑바닥까지 들어가 보고 싶었다. 1970년에 박사학위논문 심사를 받은 이후 실제로 나는 연구에서 발견한 것을 쎙고르 대통령에게 보냈으며 그는 불행히도 그것을 내무장관 콜린(Jean Colin)에게 맡겼다. 식민지의 관료였던 콜린은 결혼을 해서 세네갈인이 된 사람이다. 그는 나의 연구를 자신의 계획― 농촌공동체들을 정부의 감독 아래 두고 지역 풀뿌리 집단들(collectivités territoriales de base)로서 관리하려는 계획―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보았다. 자기조직화의 원칙에서 중앙행정부 네트워크에의 통합으로의 이행은 1972년 정부권력의 탈중심화에도 불구하고 농촌공동체들의 역할을 바꾸었다.

 

커먼즈 이론은 보통 커먼즈의 시장과 국가로부터의 독립을 강조한다. 세네갈에서 시장은 커먼즈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지만, 국가는 국지적 수준에서 농촌 공동체들의 자율성을 삭감시키면서 토지사용에 깊이 관여한다. 커먼즈가 법적 개념으로서 존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커먼즈에 관한 그 어떤 의견 불일치도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해결되었다.

 

그런데 현장의 세네갈 사람들은 계속적으로 원래의 개혁적 사고를 취했다. 충분한 행정적 절차의 부족과 담당 부처에 의한 지나치게 세밀한 개입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자원을 관리할 책임을 졌으며 사유재산권의 확대를 억제하는 윤리 뒤에 모였다. 심지어는 강력한 이슬람교도들도 협력했다. 국내와 해외의 투자자들은 제외된다. 그들은 <64-46호 법>의 폐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많은 논란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2014년에 50주년을 맞았다. 놀랍게도 정치적·경제적·절차적 애매성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때로는 세네갈의 최상류층에서 보이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커먼즈의 논리가 실제로 승리했다. 유일무이하게 승리한 경우였나?

 

기관 논리가 아니라 기능 논리

 

2012년에 나는 파리8 대학에서 열린, 「커먼즈의 부활—환상과 필요 사이」라는 주제의 컨퍼런스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서의 논의들은 나중에 출판되었다.(Parance and Saint Victor 2014) 이 컨퍼런스는 처음 초대받을 당시에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커먼즈 상을 그렸다. 나는 내 발표에서 세 가지 논점을 제시했다.

 

· 우리의 근대 사회는 커먼즈와 커머닝에 대한 경험을 상실했다.

· 커먼즈의 재발견은 공유의 패러다임이 교환의 패러다임보다 더 매력적임을 시사한다.

· 커먼즈의 부상은 필연적으로 법 다원주의와 관련하여 물음을 던진다.

 

나는 이에 대한 증거를 제공하고자 두 상이한 경험들을 참조했다. ① 아프리카와 인도양 섬국가들에서의 토지개혁 ② 프랑스 도시 및 농촌 지역 사회에 대한 관찰들.

<계속>

남은 부분 소제목들

– 토지개혁과 사유재산의 한계

– 커먼즈, 프랑스에서도 다시 출현하다

– 커먼즈와 법

– 법에서 통제로 — 새로운 법적 질서를 탐구하기 위해 익혀야 하는 것

– 결론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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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즈 운동과 삶정치


  • 저자  :  정남영
  • 분류 : 발표문
  • 설명 : 아래는 2018년 5월 2일 경의선공유지에서 열렸던 <2018 커먼즈네트워크 워크숍>의 기조발제문에 조금 더 손을 댄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출처 표시가 잘못된 주석 하나를 바로잡았고 본문과 주석에 몇 대목을 추가적으로 삽입했다. 추가된 부분은 전체 글의 흐름과 다소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일종의 방주로 간주되면 된다.

    말이 기조발제지 사실은 그 자리에 손님으로 가면서 맡은 것이라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초점을 맞추어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특정의 커먼즈를 구축하는 일을 직접 실행하는 주체들이 초청한 것이라서 커먼즈 운동에 관해서 기초적인 사항은 알고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글을 작성했으나 상당히 오판인 것으로 드러났다. 커먼즈 운동이 무언지 잘 모르는 청중이 당연히 있었고 이 분들은 기조발제를 듣고 ‘뭔 구름 잡는 소리인가’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글의 내용을 전부 다 소화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해서 많은 내용을 주석으로 내려서 나중에 텍스트로 접할 수 있도록 하고 본문도 다 소화 못할까봐 읽을 부분과 생략할 부분을 미리 생각해서 갔는데 그나마 그렇게 준비한 부분도 다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좀더 늘리더라도 여기에 올리면 누구라도 이 발제문을 찬찬히 생각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커먼즈 운동을 잘 모르는 분들은 우선 이 블로그에 최근에 올려진 커먼즈 활동가 바우엔스의 가장 최근의 대담을 참조하고 이에 덧붙여 이 블로그의 글 http://commonstrans.net/?p=1049을 참조하기 바란다.)

    ‘대안근대로의 이행’— 바로 이것이 커먼즈 운동을 포함한 여러 운동들을 통해 구현되기를 바라는 것인데—이란 ‘역근세수’와 ‘환골탈태’의 과정이 몸과 정신에서 공히 일어나지 않으면 이루어지기 힘들다. 우리의 몸과 정신의 저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 온갖 근대적 물신들(굳어진 사고·감정·행동의 습관들)을 씻어내야 하고 근본적으로 다시 구축해야 한다. 이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비록 조그만 것일지라도 습관을 고치는 것이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자기에게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는 그런 유형의 습관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대안근대로의 이행에 대해서, 자본과 국가를 넘어선 삶에 대해서 고민하는 일이 쉬운 말로 쉽게 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사람은 가장 익숙한 것을 가장 쉽다고 생각하는데, 현재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바로 근대적 물신들이기 때문이다. 이 물신들을 싹 씻어낸 후에 그 자리에서 우리는 들뢰즈·가따리가 『천 개의 고원』 11장에서 말한 대로 ‘어린 아이 되기’의 소박함으로, 혹은 “풀과 순수한 물 조금”의 단순함으로 서로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 한글파일에서 html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표 안의 주석 두 개가 누락되었다. 한글파일을 그대로 전환한 pdf 파일을 아래 첨부한다.

    Download (커먼즈-운동과-삶정치-발제문수정확대판.pdf, PDF)


 

커먼즈 운동과 삶정치

 

이 자리에서 저에게 맡겨진 일은 커먼즈 운동의 의미와 과제에 대해서 제 생각을 말해보는 것입니다. 얼마 전부터 커먼즈 운동을 조금 소개해왔을 뿐 이 운동의 핵심에 있다고 할 수는 없는 저로서는 커먼즈 운동의 과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조금 주제넘을 듯하지만, 의미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 ’의미’를 이 자리에서 말하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네그리·하트가 제시한 ‘삶정치’(biopolitics)의 이론에 비추어 보는 것일 듯합니다. 제가 삶정치론을 나름대로 공부하며 다듬다가 커먼즈 운동을 알게 되었고((네그리·하트의 저작에서 피터 라인보(Peter Linebaugh)를 알게 되었고 그의 저작을 번역하게 되었으며, 둘째 번역서인 『마그나카르타 선언』을 번역하면서 오스트롬(Elinor Ostrom)을 알게 되었고 이어서 데이빗 볼리어(David Bolier)를, 그리고 미셸 바우엔스(Michel Bauwens)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 하던 공부와의 연관성 때문에 커먼즈 운동을 소개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오신 분들은 커먼즈 운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커먼즈 운동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삶정치론은 탈근대(여기서는 시기를 가리키며 서구의 경우에는 대략 1968년 혁명 이후, 혹은 정보화 혁명이 일어난 이후를 말합니다)의 양면성에 대한 인식 즉 한편으로는 소외의 극단적 심화를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항의 일반화 가능성을 낳고 있다는 인식에 기반을 둡니다. 소외의 극단적 심화란 삶권력(biopower)의 등장—가령 자본이 개별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포섭하는 데서 더 나아가서 사회적 삶 전체를 포섭하고 거기서 또 더 나아가 지구의 삶 전체를 포섭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 저항의 일반화란 이렇게 대립구도가 ‘권력 대 권력’의 구도((이는 전형적인 근대적 구도로서 홉스 이후 거의 모든 정치학은 이 구도에 입각해 있습니다. 또한 지금 거의 모든 선진국들의 공식 정치제도는 기본적으로 이 구도에 입각해 있습니다.))가 아니라 ‘삶 대 삶권력’이 된 상황에서는 삶이 있는 모든 곳에 저항의 가능성이 생겼음을 말합니다.

소외의 문제를 가장 먼저 명시적으로 제기한 것은 맑스였습니다. 그러나 맑스주의자들이 근대주의자들(국가자본주의자들)로 전환되면서((‘소외’를 제시할 때의 맑스를 초기의 맑스, 즉 아직 미숙한 맑스로 보는 태도가 맑스주의 학자들 사이에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마도 미숙하지 않다고 평가받을 여러 맑스주의 경제이론가들이 한 일 가운데에는 자본의 논리와 관점을 더욱 널리 퍼뜨린 것도 속합니다. 가령 해리 클리버(Harry Cleaver)는 레닌과 스위지(Paul Sweezy)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자본주의 발전론은 노동자들의 투쟁과는 무관하게 자본가들 사이의 내적 동학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국내와 국외에서의 노동자들의 불가피한 봉기로서 예측하는 것은 그저 이 동학의 설명되지 않은 부산물로서만 나타난다.” Harry Cleaver, Rupturing the Dialectic: The Struggle against Work, Money, and Financialization (AK Press, 2017), p.191. 이 저작에는 이런 취지의 대목들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이 문제는 묻혀 버립니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른바 자유주의 진영의 국가들과 근대화 경쟁을 하는 구도(‘냉전’)는 바로 이러한 전환에 의해서 가능해집니다. 실제로 성숙기의 맑스가 소외의 문제를 잊었다고 보면 안 됩니다.((『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는 ‘소외’라는 제목이 딸린 짧은 단상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대목도 내용상으로는 소외에 관한 것입니다. “생산의 원래적 조건들은 (혹은 같은 말이지만 이성들 사이의 자연적 과정을 통한 인간의 수의 점증하는 수의 재생산은― 이 재생산은 일면으로는 주체에 의한 객체의 전유로 나타나지만 다른 면에서는 형성으로서, 객체들의 주체적 목적에의 종속으로 나타난다. 주체적 활동의 결과들과 저장고들로 변형되는 것이다) 원래 그 자체가 생산물이 될 수는 없다. 즉 생산의 결과물이 될 수는 없다. 설명이 필요한 것 혹은 역사적 과정의 결과인 것은, 살아있는 활동적인 인간이 자연과의 신진대사의 자연적·비유기적 조건들 사이의 통일이 아니라, 따라서 자연의 전유가 아니라, 이 인간실존의 비유기적 조건들과 이 활동적 실존 사이의 분리이다. 이 분리는 임금노동과 자본의 관계에서만 완전히 정립되는 바의 것이다.” Karl Marx, Grundrisse: Foundations of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Rough Draught), trans. Martin Nicolaus, Harmondsworth: Penguin Books, 1993, p.489. 이 외에 『자본론』 3권의 이곳저곳에서도 소외에 대한 언급이 등장합니다.)) 오히려 소외에 대한 인식이 더 성숙해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성숙기의 맑스는 자본주의적 삶의 정점—이는 곧 소외의 정점입니다—에서 자본주의를 즉 소외를 넘어서는 조건이 생성된다고 보았습니다.((『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 자본의 한계를 말하는 여러 대목이 있는데 한 대목만 들어봅니다. “어느 지점을 넘으면 생산력의 발전은 자본에 장벽이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관계가 노동의 생산력의 발전에 장벽이 된다. 자본은, 즉 임금노동은 이 지점에 도달하면 사회적 부와 생산력의 발전에 대하여 길드제도, 농노제, 노예제가 과거에 그랬던 것과 동일한 관계에 들어서게 되며, 필연적으로 족쇄가 되어 벗겨내어진다. 인간의 활동이 취하는 마지막 형태의 노예상태―한편으로는 임금노동,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는 따라서 이렇게 피부처럼 벗겨지며 이러한 탈피는 자본에 상응하는 생산양식의 결과이다.” Grundrisse, p. 749.))

맑스의 진의가 완전히 묻혀버린 것은 아닙니다. 전통적인 맑스주의자들이 ‘소외’의 문제를 파묻어버린 것과는 달리, 20세기 중반부터 소외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문제를 ‘삶’의 관점에서 새롭게 풀어온 일련의 노력들이 있습니다. 푸꼬의 삶권력/삶정치론((푸꼬는 무엇보다도 권력을 실제 혹은 본질로 보는 사고방식, 달리 말하자면 권력을 사물화시키는 사고방식을 파훼했습니다. “권력은 본질이 없다. 단지 작동할 뿐이다. 권력은 속성이 아니라 관계이다.” Gilles Deleuze, Foucault, trans. Sean Hand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8), p.27.)), 들뢰즈·가따리의 삶의 철학((들뢰즈·가따리의 철학은 일반적으로 ‘삶의 철학’이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생의 철학’이라고 불리는 것은 따로 있으니 혼동하시면 안 됩니다.) 제가 발제의 편의상 이렇게 부른 것입니다. 들뢰즈·가따리가 ‘삶’(vie, life)라는 말을 자주 쓰지는 않지만 일단 쓰는 경우에는 그들의 철학의 핵심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핵심적인 개념인 ‘공재의 평면’(a plane of consistency)은 ‘삶의 평면’(a plane of life)과 동의어입니다. 이와 연관되는 대목은 그들의 가장 대표적 저작인 『천 개의 고원』에도 몇 군데 나오지만짧지만 들뢰즈가 자신의 철학의 핵심을 몇 페이지로 압축한 글 「내재성 : 하나의 삶」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네그리·하트의 삶정치론으로 이어지는 계보입니다.((이 계보가 푸꼬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의 앞에는 스피노자, 맑스, 니체가 있습니다. ‘삶권력’, ‘삶정치’라는 말은 푸꼬가 만든 말인데, 푸꼬는 양자를 동의어로 사용했습니다. 이와 달리 네그리·하트에게서 ‘삶정치’는 ‘삶권력’에 대립되는 ‘삶의 정치’라는 의미로 긍정적으로 사용됩니다. 이 발제문에서 ‘삶정치’는 기본적으로 네그리·하트의 사용에 따릅니다.)) 이 계보는 자본주의를 ‘삶권력’—삶을 장악한 권력—으로서 정의함으로써 소외의 문제를 분명히 함과 아울러 삶의 힘(삶의 활력)을 저항의 힘으로서 새로이 부각시킵니다. 전통적인 좌파의 경우 합법의 경로를 택하든 비합법의 경로를 택하든 권력(자본가가 권력)에 권력(노동자 권력)을 맞세우는 것이 추구되었는데, 이제 삶정치에서는 ‘삶 대 권력’이 기본적인 적대관계를 구성합니다.((“그러나 이런 식으로 권력이 삶을 목표나 대상으로 삼을 때, 그때 권력에의 저항은 이미 삶의 편에 서며 삶을 권력에 대립시킨다. ‘정치적 대상으로서의 삶이 어떤 의미에서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지며 그것을 통제하는 데 몰두하는 체제에 대립시켜지게 된다. / (···) 외부로부터 오는 힘은 푸꼬의 사유의 정점을 이루는, 삶에 대한 어떤 생각, 어떤 활력주의(vitalism)가 아니던가? 삶은 권력에 대항하는 이 능력이 아니던가? ��병원의 탄생��부터 줄곧 푸꼬는, 삶을 죽음에 대항하는 기능들의 집합으로서 정의하는 새로운 활력주의를 창안한 비샤(Bichat)를 좋아했다. 그리고 니체에게만이 아니라 푸꼬에게도 인간의 죽음에 대항하는 힘들과 기능들의 집합을 찾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인간에게서이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신체가 일단 인간적 훈육으로부터 해방되면 무엇을 성취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푸꼬는 인간이 ‘살아있는 존재로서’, 저항하는 힘들의 집합으로서 무엇을 성취할지 알 수 없다고 대답하는 것이다.”Gilles Deleuze, Foucault, p.92. (인용자의 강조)))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삶’이란 무엇인가요? 이 자리에서는 당연히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우선 삶은 ‘생명’과는 다른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놓겠습니다.((영어로든 대부분의 유럽어로든 양자는 같은 단어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네그리는 양자를 ‘bios’(삶)와 ‘zoe’(생명)라는 희랍어로 구분합니다.)) 삶은 존재론적 원리이자 힘(활력)입니다.((이기묘합(理氣妙合)입니다.)) 생명은 에고로서의 개체가 활력을 받아서 자신의 생물학적 실존을 유지하는 힘으로 전환시킨 것입니다. 삶의 힘은 개체들을 가로질러 연결되어 주체성을 구성하고 그로써 하나의 온전하고 뚜렷한 삶의 형태를 개화시키는 힘입니다. 개체의 관점에서는 생명은 출발점이고 삶은 개화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가령 D. H. 로렌스가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여성이 아이를 낳는 것은 여성에게 부여되는 의의가 아니다. 여성이 자신을 낳는 것―이것이 최고의,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는 운명이다. 즉 미지의 것의 가장자리로 가서 그 가장자리를 넘어서는 것이.((Lawrence. D. H. Phoenix: The Posthumous Papers of D. H. Lawrence (London: William Heinenmann Ltd., 1936) p.441. 들뢰즈·가따리는 생명의 차원에서의 개체화인 ‘개별 주체로의 개체화’와 ‘삶의 개체화’를 맞세운 바 있습니다. “··· 삶의 개체화는 주체(이는 삶의 개체화를 이끌거나 지탱해준다)의 개체화와 동일하지 않다. 동일한 ‘평면’이 아니다. 전자의 경우 공재의 평면 혹은 각개성(haecceities)들이 모여서 이루는 평면이다. 이는 오직 속도와 정동만을 안다. 후자의 경우는 형식들, 질료들, 주체들로 구성되는 전혀 다른 평면이다.” Gilles Deleuze and Félix Guattari, A Thousand Plateaus: Capitalism and Schizophrenia. Trans. Brian Massumi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7), p.261.))

“여성이 아이를 낳는 것”은 생명의 차원에서의 일이며 “여성이 자신을 낳는 것”은 삶의 차원에서의 일입니다. 생명은 유한하지만, 삶은 스피노자적 의미의 ‘영원’의 차원에 속합니다. 스피노자의 용어를 사용하여 더 설명하자면, 생명은 ‘코나투스’(conatus)에 해당하며, 삶은 ‘코나투스’에서 출발하여 ‘욕구’(appetitus), ‘욕망’(cupiditas)을 거쳐 ‘사랑’(amore, 외적 원인에 대한 생각을 수반하는 기쁨((코나투스(conatus)는 사물이 자신의 존재를 지속하려는 노력이고, ‘욕구’(appetitus)는 코나투스를 정신과 몸 양자와 연관시킨 것이며 ‘욕망’(cupiditas)은 스스로를 의식하는 ‘욕구’입니다. ‘사랑’(amore)은 외적 원인에 대한 생각을 수반하는 기쁨입니다. 무엇이 자신에게 기쁨을 주었는지를 알면서 기뻐한다는 말입니다. 기쁨은 사유능력(행동능력)의 증가가 가져오는 정동입니다. (그 반대의 경우는 ‘슬픔’입니다.))))으로 나아가 새로운 존재를 구성하는 활동에 해당합니다. ‘코나투스’가 출발점이지만 아직 ‘사랑’은 아니듯이, 생명은 출발점이지만 아직 삶은 아닙니다.((사실 자본주의 체제란 이 출발점의 확보(생계수단의 획득)를 위해서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체제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전 생애 동안 노동력을 팔아도 출발점에서 떠나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곳이 또한 자본주의 체제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말하게 될 것입니다.)))

생명은 자기유지 말고는 다른 목적을 생각하기 힘듭니다. 이에 반해 삶은 개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삶형태의 개화—가 목적입니다. 이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집니다. ① 기존의 삶형태에서 벗어나야 하고 ② 새로운 삶형태를 만개((저는 ‘만개’의 한자어 ‘滿開’에 ‘萬開’를 중첩시키고 싶습니다. ‘만물이 만 가지 형태로 만개하다’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시켜야 합니다. 삶정치론은 이 두 가지를 해내는 힘, 이 삶의 힘을 ‘활력’이라고 부르며 권력에 대립시킵니다. 영어를 제외하고 활력과 권력을 따로 부르는 단어들이 여러 언어에 있습니다.

 

권력

활력

라틴어

potestas

potentia

불어

pouvoir

puissance

독일어

Macht

Vermögen

스페인어

poder

potencia

이탈리아어

potere

potenza

영어

power

power

활력에 대한 가장 기본적 이해는 스스로 달라지는(차이를 발생시키는) 힘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 힘은 존재론적으로 본원적인 힘입니다. 권력은 그 다음에 옵니다. 권력은 이 달라지는 힘이 발휘되지 않도록, 즉 달라지지 못하도록 막는 힘입니다.(( “권력은 자유로운 주체들에게만, 그리고 그들이 자유로운 한에서만 행사된다”라는 푸꼬의 말을 이런 관점에서 읽을 수도 있습니다. Michel Foucault, “The Subject and Power,” Critical Inquiry, Vol. 8, NO. 4 (Summer, 1982), P.790.)) 그런데 어떻게 막는 것일까요? 죽임으로써? 죽이는 권력이 존재했고 또 여전히 존재합니다.((단순히 죽이는 것만으로는 권력의 존재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동물들의 세계에는 일반적으로 권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에 가까운 영장류의 경우에는 혹시 모르기에 “일반적으로”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들뢰즈는 『스피노자— 실천철학』이라는 책에서 생명을 잃는 ‘외적 죽음’과는 다른 ‘내적 죽음’을 말하는데, 이는 권력에 의해 노예화된 삶을 가리킵니다.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삶, 이것이 바로 ‘내적 죽음’입니다. 현대의 삶권력은 바로 이 ‘내적 죽음’을 세련된 방식으로 양산합니다.)) 그러나 ‘죽임’은 삶권력의 발휘 양태가 아닙니다.((죽이는 것은 개체(에고)의 생명을 취함으로써 그 개체가 하나의 삶형태를 만개할 가능성을 아예 자르는 것인데, 해당 개체에게는 엄청난 사건이지만 그 너머에 있는 본원적인 삶의 활력 자체를 소진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실재를 두 차원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삶의 활력이 본원적으로 존재하는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이 활력이 현실화(육화)되는 차원입니다. 이 두 차원을 각각 ‘삶의 장’과 ‘현실화의 장’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삶의 장은 오직 변화와 흐름만이 존재하는 무형질의 차원입니다. ‘현실화의 장’은 활력이 형태를 부여받아 육화되는 형질의 차원입니다. ‘현실화의 장’에서 ‘지층화’라고 부르는 것이 일어납니다. 지층화한 위계(수직적), 인과(수평적), 틀(3차원적)을 이루는 관계들이 사라지지 않고 고정적으로 존속하면서 활력이 새로운 형태를 띠지 못하고 이미 존재하는 형태로 반복되게 하는 것입니다.((A Thousand Plateaus, p.335.)) 이 지층화의 고도화된 형태가 바로 삶권력입니다.

삶권력으로서의 자본은 삶의 활력이 산출하는 차이소(Δ, ‘삶의 잉여가치’ 혹은 ‘초과’((‘삶의 잉여가치’는 들뢰즈·가따리의 용어이고 ‘초과’는 네그리의 용어입니다.)))를 수량화하여 ‘가격’(교환가치)의 형태로 ‘경제’ 체계로 끌어들입니다. 수량화는 척도에의 종속을 전제하며 척도에의 종속은 지층화의 한 양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질적 차이를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자본의 수량화가 필연적으로 (사용가치)의 동질화를 동반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동질화를 동반하는 수량화는 활력의 늘 달라지는 힘을 덮고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늘 달라지는 힘은 현실성의 층에서는 질적인 차이로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포획이 계속되는 사이에 자본주의적 관계가 공고하게 되고 자본주의적 주체성(자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는 주체성)이 번성하게 됩니다(([추가] 실질적 포섭의 단계에서 자본주의는 그 욕망과 사고방식이 자본이 지향하는 방향에 부합하는 주체성 이른바 ‘자본주의적 주체성’을 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생산·재생산합니다.(증식/축적) 여기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의 규칙—예컨대 가게에 들어가면 특정 액수의 돈을 물건과 바꾸는 것—을 지키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자본주의의 규칙이 서서히 몸에 배고 정신에 뱁니다. 대부분이 사람들이 자본주의적 주체성으로 환원됩니다. 자본주의는 그것이 동반하는 가치의 수량화(가격화)와 함께 개인들을 사적 소유자이자 교환자(노동자+소비자)로 정착시킵니다. 이는 개인들에 잠재하는 특이한 활력들을 (하이데거의 용어를 끌어다 쓰자면) ‘망각’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자본주의적 주체성으로 환원된 개인들은 협동과 공감의 능력을 점차 상실하고 경쟁과 배제의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게 됩니다. 이는 의외로 악영향이 큽니다. 자본을 타도하는 것이 목적인 많은 좌파조직들이 서로 협동하기보다 (자신들의 이론과 방향이 더 옳다면서) 경쟁해온 것을 보세요. 자본주의적 주체성에서는 이렇듯 ‘배제적 이접’(들뢰즈·가따리)의 논리가 지배하게 됩니다. 활력들을 가둔 울타리들은 서로 중첩될 수 없으니까요.[/추가])). 이로써 삶권력으로서 자본이 삶을 포섭하는 작업이 일정하게 완료되는 것입니다.((『천 개의 고원』의 영역자로 유명한 마쑤미(Brian Massumi)도 최근에 나온 『가치의 재가치화에 대한 99개의 테제』(99 Theses on the Revaluation of Value)에서 권력으로서의 자본이 하는 일이 이 Δ를 측정 가능한 이윤/가격의 형태로 포획하는 것으로 봅니다. https://manifold.umn.edu/read/a9a025ba-dd4f-46ac-a149-f6bdd7b07399/section/5a143d0f-7f69-4b07-8a20-44e5eac69f0f#toc))

삶정치론의 목표는 삶권력으로부터 삶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일단 ‘삶권력으로부터’라는 점에서 삶정치론은 커먼즈 운동과 명시적으로 상통합니다. 커먼즈 운동 또한 (오스트롬의 전통적인 공유지 연구에서부터) ‘국가와 시장(자본) 외부 혹은 너머’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전통적인 공유지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와 시장은 역사적으로 철천지원수입니다.)) 그런데 삶의 해방의 차원에서도 양자가 상통하는지는 삶정치론이 어떤 구체적 기획을 가지는지를 더 알아보고 커먼즈 운동의 구체적 기획과 비교해야 판단할 수 있을 듯합니다. ‘삶의 해방’이란 말이 아직은 추상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삶정치론은 이론이기에 자신이 말하는 모든 것을 행동하지는 못하며 반대로 커먼즈 운동은 실천적 운동이기에 그 운동이 함축하는 모든 것을 말하지는 못한다는 점도 충분히 감안해야 할 듯합니다.)

삶정치론의 기획에서 삶이 만개에 이르는 과정은 둘로 나뉩니다. ① 우선 삶권력의 포획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삶권력이 워낙 삶 깊숙이 삼투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탈근대에 일어난 자본의 변형은 생산하는 다중을 점점 더 자율적으로 만드는 경향을 가지기 때문에 상황은 유리해집니다. 그러나 삶권력의 포획에서 자유롭다고 해서 일이 다 된 것이 아닙니다. ② 삶권력이 장악했던 그 자리(현실화의 장)에 새로운 삶형태를 구현하는 일이 남아있습니다.

이 두 단계 혹은 측면에 상응하여 네그리는 활력을 ‘가난’의 힘과 ‘사랑’의 힘으로 나눕니다. 가난은 권력을 텅 비운 상태(제로 지층화), 아무 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상태, 그러나 앞으로 전개될 활력의

씨알이 잠재된 상태입니다. 사랑은 이 씨알이 활력으로 전개되어 새로운 존재, 새로운 삶형태를 창출하는 힘입니다.

이것이 삶정치론의 기본 구도입니다. 물론 아직도 추상적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누가 무엇을 어떻게’의 형태로 더 구체화한 것이 ‘특이성들의 다중’, ‘공통적인 것’(the common) 그리고 ‘민주주의’ 3자의 관계입니다.

삶정치론의 주체는 ‘다중’입니다.((사실 주체라는 말보다 주체성 혹은 주체화라는 말을 쓰는 것이 푸꼬에서 네그리에 이르는 삶정치론자들의 취지에 더 부합합니다. 여기서는 편의상 양자를 기본적으로 같은 의미로 사용하겠습니다.)) 이는 자본의 생산방식에 일어난 변형(비물질노동의 헤게모니 혹은 삶정치적 생산)에 상응하는 새로운 주체입니다.((네그리는 그 이전에는 ‘전문 노동자’, ‘대중노동자’, ‘사회적 노동자’의 순서로 이러한 주체 형상의 변화를 계속 추적해왔습니다.)) 다중 이전의 대표적 변혁주체인 노동자계급이 자본과의 관계에서의 위치의 동일함을 중심으로 한 집단이라면, 다중은 자본에 고용되든 아니든 사회적 생산에 참여하는 모두에게 열려있으며 서로 차이나는 특이성들의 네트워크로서 이루어집니다. 다중은 경계가 확정된 어떤 고정된 집단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만들어야 할 주체성입니다. 그래서 ‘다중 만들기’입니다. 그리고 크기나 숫자와 무관합니다. 누구라도, 몇 명이라도 다중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한번 만들고 나면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부단하게 다시 만들어야 할 주체성입니다.((우리가 경험한 것으로 다중 만들기의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촛불’다중의 형성인데, 누구나 알다시피 ‘촛불’다중은 한번 이루어졌다고 해서 고정된 형태로 남는 식의 집단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개인들이 모여서 이루는 다중이라고 하지 않고 ‘특이성들의 다중’ 즉 특이성들이 모여서 이루는 다중이라고 할까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정하게 자리를 잡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따르면 개인이 바로 자유의 장소입니다. 그런데 사실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도, ‘개인’도 근대의 산물—커먼즈를 파괴한 그 근대의 산물—입니다. 커먼즈를 상실한 개별 인간들이 바로 ‘개인’들입니다. 자본의 시초 축적 단계에서 민중이 생산수단 및 생활수단으로부터 분리되면서 산산이 흩어져 이른바 ‘원자화된 개인’이 된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전의 역사에 비해 발전한 측면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개인’은 “권력의 최초의 효과들 중 하나”입니다.((Michel Foucault, “Society Must Be Defended”: Lectures at the. College de France, 1975-1976, Translated by David Macey (New York: Picador, 2003) pp.29-30. 이 앞에서 푸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 생각에 권력은 유통되는 어떤 것으로, 더 정확하게는 연쇄의 일부로서만 기능하는 어떤 것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권력은 이곳저곳에 장소를 잡지 않으며 소수의 수중에 있는 것도 아니고 부나 상품이 전유되듯이 전유되지도 않는다. 권력은 기능한다. 권력은 네트워크들을 통해 행사되며 이 네트워크들에서 개인들이 유통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들은 권력에의 굴복과 권력의 행사를 동시에 행한다. 개인들은 결코 타성적이거나 동의하는 권력의 표적들이 아니다. 개인들이 권력의 중개점들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권력은 개인들을 통과한다. 권력이 개인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책, p.29.)) 이 근대적 ‘개인’은 울타리쳐진(종획된) 정신과 몸의 구현물이며((이런 의미에서 소외의 한 양태입니다.)) 사적 소유의 주체입니다. 이제 ‘개인’은 ‘일자’가 되며 ‘정체성’에 정착합니다.((이렇게 개인을 이해하는 사고방식은 집단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정체성에 기반을 둔 집단관입니다. ‘자연의 정복자로서의 인간’을 상정하는 것도 동일한 사고방식입니다. 인간과 자연 사이에 울타리를 쳐서 인간/자연으로 나눈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나누면 반드시 양자 사이에 권력관계가 형성됩니다. 남/녀, 어른/아이, 중심/주변 등등의 나눔 짝들을 보세요.))

삶정치론은 여러 특이한 힘들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공재하며 서로 자유롭게 상호작용하는 자리로서의 개인을 지향합니다. 이러한 개인은, 특이한 힘이란 스스로 달라지는(차이를 발생시키는) 힘이기 때문에, 그때그때 다 다릅니다.((이 그때그때 다른 것을 각개성(haecceity)이라고 합니다.)) 한 개인의 활력의 크기는 이 공재하는 힘들이 얼마나 협동적이냐에 따릅니다. 각 힘들의 Δ들은 사실 서로 상쇄될 수도 있는데 협동의 방식으로 네트워킹되는 경우에는 활력의 상호증가를 낳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 사람에게 공재하는 특이한 힘들은 각각 외부의 다른 힘들과 별도의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여러 형태의 다중 만들기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이는 어떤 커머너가 여러 커먼즈에서 동시에 활동할 수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렇듯 핵심은 개인보다는 특이한 힘들 그것들의 협동적 관계입니다. 즉 누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특이한 힘이 그를 거쳐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특이성들의 다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개인들의 다중’을 말하면 근대적 개인관에 젖어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중을 특정 개인들이 모여서 이룬 고정된 집단처럼 이해하게 될 것이며, 그러면 다중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특이성, 특이한 활력에 대한 강조는 우리의 시선의 일부가 늘 예의 ‘삶의 장’에 두어져 있고 거기서 활력을 받아오도록 권유하는 것입니다.((다른 운동의 경우에도 그렇지만 커먼즈 운동의 경우에도 일시적인 필요상 한 커먼즈 내의 커머너들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이어야 합니다. 특이성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삶의 장’에 접속하지 못하고 특정 집단의 이익(이것이 무엇이든)에 그치는 운동이 되기 쉽습니다. 다행히도 커먼즈 운동과 연관된 이론가나 학자들 가운데 이 문제를 궁구하는 이가 없지 않습니다. 데이빗 볼리어의 Think Like a Commoner(한국어판 배수현 옮김『공유인으로 사고하라』갈무리 2015) 10장 「전과는 다르게 보고 다르게 존재하는 방식으로서의 커먼즈」에 소개되는 베버(Andreas Weber)의 연구 —이는 ‘Enlivenment’ 같은 개념을 중심으로 합니다— 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방면의 연구가 앞으로 더 이루어져야합니다. 그리고 이와 병행하여 커머너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몸과 정신으로 ‘삶의 장’에 접속하는 훈련을 하는 것, 즉 사물을 포함한 주위세계와의 동지의식을 양성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추가] 특이성(singularity)은 스피노자에게서 와서 푸꼬((푸꼬의 경우에는 가령 ‘다양체론’(‘모든 사물은 다양체이다’)이 특이성에 대한 인식에 속합니다. 믈론 더 파고 들어가면 이뿐만이 아니지만요.)), 들뢰즈·가따리를 통해 발전되었으며 네그리·하트에게 이어집니다.((개념은 그것을 표현하는 단어와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개념으로서의 특이성도 그것을 표현하는 단어인 ‘singularitas’, ‘singularity’, ‘singularité’, ‘특이성’ 등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이는, 이런 어휘들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특이성 개념을 표현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오늘 이 발제문에 거론한 철학자들 이전에 영문학 전통에서 ‘특이성’에 대해서 처음 배웠습니다. 들뢰즈 사유의 한 원천인 (소설가) 로렌스가 말하는 ‘individuality’는 그 내용은 특이성에 해당합니다. 낭만주의 시인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identity’와 ‘selfhood’— 저는 각각 ‘열린 자아’, ‘닫힌 자아’라고 옮깁니다—가운데 전자는 특이성들에 열린 자아이고 후자는 하나로 단일하게 종획되어 닫힌 자아입니다. 이 이외에 다른 문화전통에도 특이성에 대한 인식은 당연히 존재할 것입니다.)) 특이성과 반대되는 개념은 ‘정체성’이며 이는 인간의 경우 ‘인격’으로 구현됩니다. 개체를 특이성들의 ‘공재’인 다양체로 보지 않고 단일하게 통일된 상태로 보는 것이 ‘정체성’, ‘인격’입니다. 이렇게 통일하는 것은 당연히 어떤 관념입니다. 실제 현실에서는 모든 것이 다양체이니까요.((‘인격’에 대한 로렌스의 비판을 보려면 http://minamjah.tistory.com/181?category=572143를 참조하세요. 『99개의 테제』에서 마쑤미는 ‘인격화’(personalization)을 개인의 활력이 자본주의에 포섭되는 양상의 하나로 봅니다.)) [/추가]

그런데 특이성들이 아무리 네트워크를 이루어 모여 있더라도 무언가를 같이 하지 않고서는 의미 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무엇’에 해당하는 것이 공통적인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중은 공통적인 것을 조건으로 해서 공통적인 활동을 통해서 공통적인 것을 생산합니다. 그리고 그 생산된 것이 다시 갱신된 다중의 새로운 활동 조건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공통적인 것이 갱신되고 이와 함께 다중도 갱신됩니다.((네그리·하트가 공통적인 것을 설명할 때 그 대표적인 예로 드는 것이 언어입니다. “예를 들어 언어는 정동이나 제스처처럼 대부분 공통적이며, 만일 사적이거나 공적인 것이 된다면—즉 단어·어구·품사의 많은 부분이 사적 소유나 공적 권위에 종속된다면—표현·창조·소통의 힘을 잃게 될 것이다.” 네그리·하트 지음, 정남영·윤영광 옮김,『공통체』(사월의책 2014) 17-18면.))

공통적인 것을 실행하는 방식이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삶정치론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네그리·하트가 보기에 대의민주주의는 귀족제입니다. 선출된 소수의 ‘대표자들’이 통치하는 체제이기 때문입니다.))처럼 통치의 한 방식이 아닙니다.((만일 그것이 통치라면 ‘자기통치’입니다. ‘모두에 의한 모두의 통치’입니다.)) 대의민주주의가 ‘일반의지’(루소)에 기반을 둔 것이라면 다중의 민주주의는 ‘공통의 의지’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다중의 민주주의는 스피노자의 용어를 빌려 ‘절대 민주주의’라고도 부릅니다.)

과연 다중을 구성하는 모두가 자치의 주체로서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네그리와 하트는 “러시아 민중은 작업장에서 종속과 감독 그리고 관리자들을 필요로 하도록 훈련받았으며, 직장에 상사가 있기에 정치에서도 상사를 필요로 한다”는 레닌의 견해((『공통체』 256면.))를 소개한 후에 ① 자본주의의 기술적 변형에 따른 새로운 생산의 방식— 삶정치적 생산—이 다중을 지도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로 만들고 있으며 ② 혹시 아직 훈련이 덜 되었더라도 민주주의의 훈련은 민주주의를 통해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실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지도자가 없는 곳이며 민주주의 훈련이 이루어지는 곳으로서 커먼즈만한 곳이 없을 것입니다. 삶정치론의 민주주의론은 그 복잡한 디테일을 덜고 나면 커먼즈의 민주주의와 바로 통하는 것입니다.((물론 사회 전체에는 아직 ‘지도층’이 건재합니다. 따라서 삶정치론이 비록 지도자의 부재를 지향할지라도 실제 현실에 지도자가 부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도자의 부재를 향한 경향을 현실에도 존재하는데 『집회』에서 네그리와 하트는 이 경향을 ‘전략과 전술의 전도’에서 읽어냅니다. 과거에는 지도부가 전략을 담당하고 대중이 전술을 담당했는데, 이제는 다중이 전략을 담당하고 지도부가 전술을 담당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도 지난 촛불에서 일정한 만큼 목격했던 바입니다. 전체적인 방향 즉 전략을 결정한 것은 촛불다중이지 지도부들이 아닙니다.))

삶정치론과 커먼즈 운동의 강한 친화성은 무엇보다 ‘공통적인 것’(the common)과 커먼즈(commons)의 어휘상의 유사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표면상의 유사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커머닝 없이 커먼즈 없다”고 말한다.(( [옮긴이] 이는 커먼즈 역사가인 피터 라인보(Peter Linebaugh)의 말이다.)) 커먼즈는 자원도 아니고 자원을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도 아니며 자원을 파수하기 위한 프로토콜도 아니다. 커먼즈는 이 모든 요소들 사이의 역동적 상호작용이다.((“Commons Transition and P2P : a Primer”, p.5.))

여기서 “이 모든 요소들 사이의 역동적 상호작용”이란 삶정치론의 용어로 말하자면 다중이 민주주의의 방식으로 부단히 공통적인 것을 산출하는 활동에 다름 아닙니다. 여기서 “공동체”는 원칙적으로 국가와 시장의 외부에 있다는 점에서 다중과 통하고, “프로토콜”은 참여자 모두에 의한 거버넌스의 규칙이라는 점에서 다중의 민주주의와 통하며, “자원”은 사유재산이 아니라 모두가 공유하는 부이기 때문입니다. 커먼즈나 공통적인 것이나 사유재산이 아닌 부,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모두의 것인 공통재(common goods)를 포함하면서도 거기에 국한되지는 않고 주체적 활동의 측면도 포함합니다. 이렇게 보면 ‘커머너’(commoner)는 다중에 속한 한 개인을 지칭하는 말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네그리·하트도 『선언』(Declaration, 2012)에서 ‘커머너’와 ‘커머닝’을 온전히 자신들의 삶정치론에 들어와있는 용어처럼 설명합니다. 커머너의 커머닝이 “공통적인 것을 만드는” 활동으로서 제시되는 것입니다.((Michael Hardt and Antonio Negri, Declaration (New York: Argo Navis Author Services, 2012). Declaration, p. 105. 이 대목은 조금 길지만 읽을 가치가 있기에 뒤에 부록으로 첨부합니다. 여기에는 네그리·하트가 커먼즈 운동에 바라는 바가 담겨있다고 보아도 됩니다.)) 이는 초기의 태도에서 진전된 것입니다. 2004년에 네그리·하트는 ‘커먼즈’(the commons)라는 용어를 피하고 ‘공통적인 것’을 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커먼즈라고 부르기를 꺼리는데, 커먼즈가 사유재산의 출현으로 파괴된 전자본주의적인 공유된 공간들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비록 더 어색하기는 하지만, ‘공통적인 것’이 그 철학적 내용을 더 부각시키며 이것이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새로운 발전임을 강조한다.)((Michael Hardt and Antonio Negri, Multitude: War and Democracy in the Age of Empire (New York: Penguin Press, 2004) p.xv.))

오스트롬(Elinor Ostrom)이 노벨상을 받은 것이 2009년이고 P2P재단은 2005년에 창립되었으며 데이빗 볼리어(David Bollier)의 블로그는 2008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2004년의 네그리·하트로서는 커먼즈를 전자본주의적인 공유지 이외의 것으로 이해하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사실 커먼즈가 전통적인 공유지의 협소함—이것을 이유로 오스트롬의 커먼즈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는 일이 많았습니다—에서 시원하게 벗어난 것은 디지털 커먼즈의 등장을 계기로 해서입니다. 이로써 커먼즈 운동에 전지구적 차원이 부여되고, 이는 DG-ML(Design globally, manufacture locally)이라는 새로운 생산양식(P2P 생산양식의 더 구체화인 형태)을 다듬어내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 점도 삶정치론과 묘하게 통합니다. 네그리·하트가 다듬어낸 새로운 주체성인 다중은 앞에서 말했다시피 ‘비물질노동의 헤게모니’(나중에는 ‘삶정치적 생산’이라는 말이 더 자주 사용됩니다)로 특징지어지는 자본의 기술적 변형에 상응하는 것인데, 이 변형을 가리키는 다른 말이 바로 디지털 혁명이기 때문입니다. 즉 커먼즈 운동이 운동으로 확대되는 계기는 다중이라는 정치적 주체성이 개념으로서 다듬어지는 계기와 동일합니다.

흥미롭게도 네그리·하트는 가장 최근의 책 『집회』(Assembly, 2017)에서 ‘공유지의 비극’론과 함께 그것을 반박하는 오스트롬을 명확하게 거론합니다.

우리는 공통적인 것이 민주적 참여의 제도들을 통해 관리되어야 한다는 오스트롬의 주장에 진심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우리는, 접근과 의사결정을 공유하는 공동체는 작아야 하고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명확한 경계에 의해 제한되어야 한다는 그녀의 주장과는 생각을 달리한다. 우리는 더 큰 포부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이들에게 열린 더 확장적인 민주적 경험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Michael Hardt and Antonio Negri, Assembly (New York : Oxford University Press 2017) p 96. 이 앞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형태의 것이든 공통적인 것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것은 부의 사용과 부에의 접근이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통적인 것의 현대적 적합성을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데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저작을 쓴 엘리너 오스트롬은 올바르게도 거버넌스와 제도의 필요에 초점을 둔다. 오스트롬은 모든 부는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황폐해지지 않게 보존되려면 공적 재산이 되거나 사유재산이 되어야 한다는 ‘공유지의 비극’류의 주장들 모두의 허위성을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그녀는 ‘공유재’(common-pool resources)는 관리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국가와 자본주의적 기업이 관리의 유일한 수단이라는 데에는 반대한다. 집단적인 형태의 자주관리가 존재할 수 있고 실제로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참여자들 자신에 의해서 규칙이 고안되고 수정되며, 또한 그들에 의해서 감시되고 시행되는, 자치적으로 운영되는 공통의 재산 배치.’”))

둘째 문장의 경우 그 취지에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대로 디지털 커먼즈의 등장 이후 커먼즈 운동이 규모의 한계를 부수고 발전하고 있는 지금 그 초석을 놓았을 뿐인 오스트롬(과 그녀의 연구의 대상인 전통적인 형태의 커먼즈)을 놓고 저렇게 비판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큰 의미가 없을 듯합니다. 지금 커먼즈는 다중처럼 언제라도 만들 수 있습니다. 볼리어가 말했듯이 “커먼즈는 일군의 사람들이 어떤 자원을 집단적인 방식으로, 공정한 접근, 이용, 장기적 돌봄을 특별히 염두에 두면서 관리하기로 결정할 때 발생할 수 있”습니다.((David Bollier, Think Like a Commoner: A Short Introduction to the Life of the Commons (New Society Publishers 2014), p. 128.)) 그리고 그 규모는 지역 너머, 일국 너머, 대륙 너머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바우엔스 등의 커먼즈 활동가들 또한 네그리·하트처럼 “더 큰 포부”를 가지고 있다는 점 또한 인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커먼즈 활동가들의 포부가 네그리·하트의 포부와 어느 정도 유사한지는 『집회』에서 ‘세 얼굴의 디오니소스’를 말하는 대목((Assembly, 15장 2절))과 「커먼즈 이행과 P2P 입문」 (“Commons Transition and P2P : a Primer”((나중에 더 확장되어 http://commonstransition.org/commons-transition-p2p-primer/에 올려져 있습니다.)), 2017년 3월)이라는 제목의 팸플릿에서 커먼즈의 (정치적) 확대를 말하는 대목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세 얼굴의 디오니소스’는 새로운 거버넌스로 향하는 움직임을 말한 것이므로 일단 정치적인 영역의 것입니다. 표에는 여기에 경제 영역의 유사성도 추가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표로 만들어보았습니다.)

 

삶정치

커먼즈 운동

예시적 정치(prefigurative politics)

작은 규모로 민주적인 사회적 관계를 수립하는 운동단체들, 엑서더스

커먼즈의 생산공동체 자체

국가와의 관계

적대적 개혁주의 : 기존의 제도를 그 내부로부터 변형, (가령, 민중의 ‘하인’이 될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기)

파트너 국가론 : 생산공동체를 국가의 법의 틀에서 합법화하는 비영리 지원단체들의 확장1)주석누락

(참고) 자본과의 관계

다중의 기업가

커먼즈 지향적 기업가 연합들

헤게모니 전략

권력과는 다른 방식으로2)주석누락 사회 전체에 대한 통제력을 획득하여 새로운 사회의 제도들을 창출하는 것.  전체를 직접 변형시키는 것.

경제의 영역에서는 ‘커먼즈 회의소’(Chambers of the Commons)가, 정치의 영역에서는 ‘커먼즈 의회’(Assembly of the Commons)가 구상되고 있다. 이것은 다시 일국 사회의 범위 너머로 확대될 수 있다.

이 표를 보면 양자 사이에 차이가 없지 않지만, 친화성이 그 차이를 압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삶정치론과 커먼즈 운동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면 저 표에서 ‘예시적 정치’라는 항목과 관련해서일 것입니다. 표에서 보듯이 네그리·하트는 운동단체들이 자체 내에서 수립하는 민주주의에 ‘예시적 정치’라는 이름을 붙입니다.((한국에서는 특히 전통적인 운동단체들의 경우에는 자체 내에서 민주주의를 수립하는 경우가 드문 것 같습니다. 촛불 다중의 수평성은 다중 자체가 이룬 것입니다. 2008년 촛불 다중이 막 형성되던 초기에 특정 운동단체가 지도하려 했지만 거부당한 사례가 있습니다. 해외의 경우 1999년 씨애틀 이후에는 특히 소문자 ‘a’의 아나키스트들(anarchists)이 절차를 민주화하는 데 기여한 바가 큽니다. 이에 대해서는 https://newleftreview.org/II/13/david-graeber-the-new-anarchists 참조.)) 이런 의미에서 ‘예시적 정치’는 필요하지만 예의 ‘세 얼굴’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런데 커먼즈 운동이 커먼즈의 정치를 ‘예시적’이라고 부를 때 이는 단지 필요한 여럿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미래의 예시적 현존, 따라서 확대되어야 할 씨알로 보는 것입니다.

커먼즈가 그리고 새로운 가치 체제의 예시적 형태들이 이미 존재한다. 커머너들이 이미 이곳에 존재하며 이미 커머닝을 행하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커먼즈 이행이 시작된 것이다.((Michel Bauwens, Vasilis Kostakis, Stacco Troncoso, Ann Marie Utratel, “Commons Transition and P2P: a Primer,” https://www.tni.org/files/publication-downloads/commons_transition_and_p2p_primer_v9.pdf, p.47.))

우리는 네그리·하트의 삶정치론과 커먼즈 운동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해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고정된 조직화 형태를 모델로서 말하지 않고 미지의 상태로 두는 삶정치론이 새로운 조직이나 제도의 발명에 더 강조점을 둔다면, 커먼즈 운동은 인류의 역사상 가장 오래 존재했던 조직 혹은 공동체 형태에 기반을 두고 그것을 새로운 현실에 맞추어 새롭게 발전시키는 데 더 초점을 둔다고 말입니다.

[추가]

커먼즈 운동은 원리상으로 자본 너머를 지향하지만, 현재 자본에 ‘연루’된 현실을 무시하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마쑤미가 「99개의 테제」에서 ‘창조적 이중성’(creative duplicity)이라고 부른 것이 중요해집니다. 우리가 ‘자본 너머’의 원리를 깨우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원리를 깨우친다고 해서 바로 자본 너머로 나가는 것은 아니며 아마도 상당한 시간 동안 자본주의에 몸을 둔 채로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굳이 회피하지 않으면서 자본 너머로 나아가는 욕망과 활력을 잃지 않고 오히려 조금씩 더 상승시키는 것이 바로 ‘창조적 이중성’입니다.((마쑤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연루를 한탄하지 말고 즐기라. 교리상의 용감함으로 남을 비판하며 지배하지 말라. 창조적으로 유희의 장에 내려가 몸을 더럽히라.”(테제60, 주석c))) (깨우침과 그 이후의 실천을 합해서 ‘돈오점수’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점수’를 자본주의와의 타협이라고 생각하고 ‘돈오’의 비타협성을 고수하다가 활력을 탕진하고 좌절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깨우침이고 뭐고 없이 자본주의에 완전히 포섭되고 맙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자본을 넘어설 만큼의 활력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모이고 협동하여 오랫동안 양성해야 합니다. 따라서 ‘점수’의 과정을 전략적으로 슬기롭게 운용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커먼즈 운동에서는 이러한 ‘점수’에 해당하는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생성적 자본’ 혹은 ‘친구로서의 자본’은 시장 혹은 자본주의와의 관계에 해당합니다. 돈을 벌지만, 그 돈을 커먼즈의 축적을 위해 쓰도록 하는 것입니다. ‘파트너국가’론은 국가와의 관계에 해당합니다. 국가를 가능하다면 커먼즈 운동을 돕는 곳이 되도록 만들자는 것입니다. 스페인에서 선보인 도시자치주의는 정당정치와의 창조적 관계를 실행합니다. 정당정치를 정당을 넘어선 연합의 정치에 종속시키는 것입니다. 이 이외에도 수많은 ‘점수’의 아이디어들이 있을 것이고 또 계속 창출될 것입니다.((스페인의 도시 커먼즈 운동에 대해서는 가장 최근의 대담으로 http://minamjah.tistory.com/233 참조.))

[/추가]

그런데 한 가지 물음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커먼즈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면 낡아도 한참 낡은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대안근대의 근본적으로 새로운 삶형태로의 이행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커먼즈 운동가들이 이에 대해 여러 가지 대답을 가지고 있겠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맑스가 이미 한 말이 있습니다. 맑스는 1868년 엥겔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가장 오래된 것에서 가장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일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동네인 훈스뤼크 지역(the Hunsrück)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게르만 유형의 커먼즈가 잔존했다고 말합니다.((Marx To Engels In Manchester, MECW Volume 42, p. 557.)) “가장 오래된 것에서 가장 새로운 것” 혹은 “오래된 유형의 사회가 더 우월한 형태로 부활한 것”(([출처 수정함] Letter to Vera Zasulich, The ‘First’ Draft, 1881, https://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81/zasulich/draft-1.htm.))—이것이 맑스가 보는 커먼즈입니다. 사실 맑스는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자본은 그 발전의 정점에서 자본을 넘어서는 사회의 토대를 마련하고 시들 것이라고 추론해냄으로써 네그리에게 큰 영감을 준 바 있습니다.((네그리는 한때 감옥에서 엄청난 좌절에 빠졌는데, 이때 그를 구해준 것이 맑스와 스피노자의 저작들입니다. 네그리는 양자 모두 근대 속의 탈근대(나중에는 ‘대안근대’)로 꼽습니다.)) 이렇게 볼 때 맑스가—그에게 두 측면이 공존함으로 인해서—삶정치론과 커먼즈 운동 사이에 다리를 놓아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측면은 네그리·하트가 자본의 탈근대적 변형에 상응하여 다중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성을 다듬어낸 것과 연관되며, 다른 한 측면은 커먼즈 운동의 새로운 부활과 연관됩니다.)

지금은 맑스를 제대로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어서 매우 안타까운데요, 사실 (삶권력이라는 말은 20세기 후반에 와서야 생긴 것이지만) 맑스가 가장 먼저 자본과 국가를 삶권력으로서 포착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맑스를 잘 읽으면, 자본주의는 (아무리 그것이 일정한 역사적 사명((맑스는 자본의 이러한 역사적 사명을 인정합니다. [추가] 맑스에 따르면 “자본의 역사적 사명은 ··· 사물이 스스로 하도록 할 수 있는 것을 인간이 노동을 통해서 하는 것이 종식된 단계에 이르게 되자마자 완수”됩니다. Grundrisse, p.325.[/추가]))을 가진다고 할지라도) 삶을 삶이 아닌 것으로, 소외된 삶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따라서 극복되어야 할 체제라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맑스의 자본 연구는 바로 이 ‘극복’을 위한 준비에 다름 아닙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삶은 만개라는 자기목적 이외에는 없습니다. 자유로운 조건이라면 각 개인이나 집단이 이 출발조건에서 만개를 향해 나아가는 만큼이 그 성취입니다. 자유로운 조건에서라도 모두가 만개에 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아무리 억압적인 조건에서도 삶을 만개시키는 데 모두가 실패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족한 소수나 특출한 소수의 관점에서 사회를 구성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모두에게 자유로운 조건을 주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 사회 구성의 원칙입니다. 민주주의가 바로 그 조건입니다. 자본주의는 봉건사회의 협소함에서 벗어나서 민주주의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출발조건을 저 뒤로 밀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대의민주주의와 언론으로 스스로를 민주주의인 양 위장했습니다. 문명을 가장한 야만이었던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출발조건은 끊임없이 돌아가는 워킹머신과 같습니다. 열심히 걷고 뛰어야 그 위에 간신히 서 있으며 가만히 있으면 뒤로 쳐지고 맙니다. 출발조건을 이미 획득한 사람들의 행태도 출발조건에 갇혀 있습니다. 만개를 향해 나아가기보다 내일의 출발조건, 내년의 출발조건, 후손의 출발조건을 확보하려 합니다. 심지어는 내생의 출발조건을 미리 확보하려는 듯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류가 이런 식으로 어리석어본 적이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출발조건이 삶의 감옥이 된 상태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로 상황이 유리합니다. 한편으로는 희소성의 원칙에 갇히지 않는 부를 생산하는 기술도 발전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설적입니다만) 이 상태에서 탈출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는 환경의 실제적 경고도 존재합니다. 커먼즈 운동은 자급운동(출발점의 확보)을 넘어서 바로 이러한 삶의 만개를 향한 운동, 진정한 삶의 가치를 향한 운동으로 나아가야 하고, 또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삶정치론은 좋은 동지요 길벗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록1] 네그리·하트가 말하는 ‘커머너’와 ‘커머닝’

중세 잉글랜드에서 커머너(commoner)는 사회 질서를 구성하는 세 신분―싸우는 계층(귀족), 기도하는 계층(성직자), 일하는 계층(커머너)―의 하나였다. 영국 등지에서 근대 영어의 용법에 보존된 ‘커머너’라는 용어의 의미[우리말로 ‘평민’]는 작위(爵位) 등의 사회적인 지위가 없는 사람, 즉 보통사람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택하는 ‘커머너’라는 용어는 중세 잉글랜드로 소급되는 생산적 성격을 보존하면서도 그것보다 더 나아가야 한다. 커머너들은 그저 그들이 일하기 때문에 ‘커먼’한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공통적인 것에 입각하여 일하기 때문에 ‘커먼’하다. 바꾸어 말하자면 우리는 빵 굽는 사람, 옷감 짜는 사람, 방아 돌리는 사람 같이 직업을 가리키는 말을 이해하듯이 ‘커머너’라는 용어를 이해해야 한다. 빵 굽는 사람이 빵을 굽고, 옷감 짜는 사람이 옷감을 짜고, 방아 돌리는 사람이 방아를 돌리듯이, 커머너는 커머닝을 한다.  다시 말하자면, 공통적인 것을 만든다.

따라서 커머너는 비범한 과제―사유 재산을 모든 이의 접근과 향유가 가능하도록 개방하는 일, 국가의 권위에 의하여 통제되는 공적 재산을 공통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일, 그리고 모든 경우마다 공통의 부를 민주적 참여를 통하여 관리하고, 발전시키고 지속시키는 메커니즘들을 발견하는 일―를 성취하는 보통사람이다. 그렇다면 커머너의 과제는 빈자들이 자급할 수 있도록 들판과 강에 대한 접근을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아이디어, 이미지, 코드, 음악, 정보의 자유로운 교환을 위한 수단을 창출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이 과제를 성취할 선결 조건들의 일부를 살펴보았다. 사회적 유대를 창출할 능력, 특이성들이 차이를 통해 소통할 능력, 공포가 없는 상태가 가져다는 주는 진정한 안전, 그리고 민주적인 정치 행동을 할 능력이 그것이다. 커머너는 구성적 참여자이다. 즉 공통적인 것의 개방적 공유에 기반을 둔 민주적 사회를 구성하는 데 토대가 되고 필요한 주체성이다.

‘커머닝’의 행동은 공유된 부에의 접근과 자기관리만을 향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조직화의 형태들을 구축하는 것을 향하기도 해야 한다. 커머너는 투쟁하는 광범하고 다양한 사회적 집단들―학생들, 노동자들, 고용되지 않는 사람들, 빈민, 젠더 및 인종과 관련된 종속과 싸우는 사람들 등―사이의 ‘연합’(alliances)를 창출할 수단을 발견해야 한다. 이렇게 열거를 할 때 사람들은 때때로 정치적 현실화의 실천으로서 형성되는 ‘연대’(coalition)를 염두에 둔다. 그러나 ‘연대’라는 단어는 우리가 보기에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것 같다. ‘연대’는 다양한 집단들이 전략·전술상 함께하면서도 그 뚜렷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심지어 분리된 조직구조를 유지하는 것을 함축한다. 공통적인 것의 ‘연합’은 전적으로 이와 다르다. 물론 커머닝은 정체성들((여기서는 ‘서로 다른 정체성들’이라고 읽으면 됩니다.))이 부정되어 모두가 자신들이 밑바탕에서는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함축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 공통적인 것은 동일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투쟁과정에서는 상이한 사회적 집단들이 특이성들로서 상호작용하며 상호교류에 의하여 계몽되고 고취되고 변형된다. 그들은 투쟁의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종종 듣거나 이해할 수 없는 저주파로 서로 말한다.

Michael Hardt and Antonio Negri, Declaration, pp. 105-107 (밑줄은 인용자의 것)

[부록2]

근대

대안근대

경쟁, 분업

협동, 커머닝

추출적(extractive)

생성적(generative)

대의(代議)

참여

선형(linear) →‘물질대사의 단절’(맑스)

순환형(circular)

사적인 것 + 공적인 것

커먼즈/공통적인 것(the common)

주인으로서의 자본

친구로서의 자본

관료제로서의 국가, 혹은 시장 국가

파트너로서의 국가

중앙집중적

탈중심적, 분산적

종획(사유화)

공통화(commonification)

재분배(redistribution)—복지국가

선(先)분배(pre-distribution)—커먼즈

닫음

자본의 축적

커먼즈의 축적

계몽주의적 이성/기능적 합리성

삶정치적 이성/공통적 감각

노동시간

삶의 시간

측정/척도

탈측정/척도 너머

이윤으로서의 잉여가치(경제적 잉여가치)

삻의 잉여가치

자본주의적 주체성

자유로운 주체성: 커머너, 다중

삶의 시간은 생계수단을 버는 시간

삶의 시간은 새로운 삶형태를 창출하는 시간

인격, 합리적 개인

특이성

추출 대상으로서의 자연

동지로서의 자연

* 알림 : 몇 사람이 모여서 커먼즈 운동 및 삶정치론에 대한 글들을 우리말로 옮겨서 소개하는 블로그를 만들고 있습니다. 제 개인 블로그(minamjah.tistory.com/)의 커먼즈 운동 및 삶정치 섹션의 글들을 가져오고 그 뒤를 계속 이어갈 생각입니다. (현재 제 블로그에도 저 말고도 다른 역자들이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는 아직 구축 중입니다. 시간을 많이 못 내서(아니면 게을러서?) 아직 글들을 다 가져오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정식으로 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듯합니다. URL은 http://commonstrans.net/입니다.

 




대담 : 정치의 새로운 중심으로서의 도시



발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유럽 전역의 도시들에서 시민들이 (플랫폼들, 운동들, 국제적 네트워크들을 통해) 정치에 직접 참여하여 영향을 미치는 경로들을 창출하고 있다. 바르셀로나의 자치도시 플랫폼인 바르셀로나 엔 꼬무(Barcelona en Comú)의 창립자인 쑤비라츠(Joan Subirats)는 도시들이 어떻게 불확실성을 다루고 새로운 유형의 보호를 제공하며 첨단 거대기업들이 우리의 모든 데이터를 소유하는 추세를 역전시키고 심지어는 난민 같은 문제에 대하여 국민국가들에 도전할 수 있는지를 논의한다.

이 글은 ‘어번 커먼즈’에 대한 일련의 글들 가운데 하나로서 『그린유러피안저널』(Green European Journal) 16호 「장안의 화제 : 유럽 도시 탐구」(“Talk of the Town: Exploring the City in Europe”)가 그 출처이다. 이 글에서 DIEM25의 마르씰리(Lorenzo Marsili)가 바르셀로나 자율대학의 통치 및 공공정책 연구원의 창립자이자 원장인 쑤비라츠를 인터뷰한다.

— 트론코소(Stacco Troncoso)

마르씰리: 유령이 유럽에 출몰하는 것 같습니다. 도시라는 유령이지요. 당신은 당신이 바르셀로나에서 하는 일이 왜 그토록 상징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쑤비라츠: 분명 다양한 요인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하나의 요인은 플랫폼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독점적인 디지털 자본주의로의 변형인데요, 국가는 여기에 대응할 능력을 잃었습니다. 빅 플레이어들(big players)이 투자펀드들, 구글,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부채와 긴축정책의 논리에 갇혀 있습니다. 동시에 인구는 점증하는 어려움에 처하며, 불확실성, 공포를 느끼는데, 이는 미래에 무슨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데서 온 감정입니다. 나의 생활수준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내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여러 해 전에 철학자 폴라니(Karl Polanyi)는 상품화를 향한 운동과 그에 맞서는 보호의 운동에 대해 말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 보호를 받으려면 어디에 호소해야 할까요?

마르씰리: 많은 사람들이 국가에 호소합니다.

쑤비라츠: 네, 국가가 보호를 요청할 고전적인 장소입니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며 외국인혐오적인 논리를 따르는 국가가 여전히 보호를 요청할 공간이며, 국가는 많은 경우 국경을 폐쇄하고 사회를 폐쇄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하지만 도시는 본래 다릅니다. 도시는 개방될 목적으로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속담에도 있듯이, ‘우리는 도시의 공기에서 자유로움을 느낍니다.’(([원주] ‘도시의 공기가 당신을 자유롭게 한다’(Stadtluft macht frei)는 ‘일 년 하고도 하루’ 이상 도시 주거지에서 산 정착자들에게 자유와 땅을 제공한다는 법의 원리를 설명하는 독일 중세 속담이다.)) 도시는 기회와 가능성들이 모이는 공간이죠. 도시 당국이 국민국가보다 정책권한과 권력을 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도시 당국과 정치적 당사자들 사이의 근접성으로 인해 시민들에게 훨씬 더 밀착되고 구체적인 종류의 보호가 제공됩니다. 몇몇 일들—모든 일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이 달라지고 호전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도시라는 말입니다.

마르씰리: 폴라니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철학 교수 프레이저(Nancy Fraser)는 두 번째 운동인 보호 운동은 주로 여성, 소수자, 지구상의 후진 지역에 반해서 서구의 남성, 백인 생계가장들을 역사적으로 보호했던 운동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세 번째 운동, 즉 자율과 해방의 운동의 필요성을 도입합니다. 도시의 ‘보호’는 전통적인 국가의 보호와 어느 정도까지 다를 수 있을까요?

쑤비라츠: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그 질문이 아다 꼴라우(Ada Colau) 요인, 바르셀로나 요인, PHA[주택담보 대출에 영향을 받을 사람들의 플랫폼] 요인 및 반(反)퇴거 운동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PHA와 관련하여 특별한 유형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변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PHA로 가서 자신들에게 문제가 있어서 주택담보 대출금을 갚을 수 없으며 그래서 쫓겨날 것이라고 말할 때 그들은 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는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거예요, 활동가가 되셔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이것은 당신이 PAH의 고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상황을 함께 바꿀 수 있기 위하여 당신이 PAH의 활동가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리고 이것은 서비스 제공의 과정이 아니라 해방의 과정입니다. PHA는 노동조합이나 정당의 아웃소싱 논리—“와서 당신의 쟁점을 우리에게 위임하라, 그러면 우리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의 생각을 옹호해줄 것이다”—를 따르지 않습니다. 이런 위임하는 접근법은 PAH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PAH는 사람들을 보다 활동적으로 만듭니다.

마르씰리: 어떻게 이것이 제도화됩니까? 이런 정치화 과정들, 활성화 과정들—이 과정은 공동 소유권 및 공동 관리와 더불어 결국 커먼즈 담론의 바탕을 이루죠—은 어느 정도까지 시의 정책들이 됩니까?

쑤비라츠: 이것[PHA]은 2015년 5월에 시작한 중요한 기획입니다. 선거 당시 <바르셀로나 엔 꼬무> 성명서에는 4가지 기본 사항들이 있었습니다.(([옮긴이] <바르셀로나 엔 꼬무>에 대해서는 <커먼즈로서의 도시>, <괴물 시대의 커먼즈(2)>, <커먼즈 이행과 P2P(5)>, <장벽에 맞선 도시들> 등을 참조할 수 있다.)) 그리고 스페인의 다른 곳에서 다른 유사한 플랫폼들이 이 사항들을 채택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사회제도의 지배권을 시민들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제도는 포획되어서 우리의 이익에 복무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사람들이 경제적•사회적으로 점차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평등이 증가 추세이고 기본적인 사회적 보호메커니즘들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보호제공 능력을 회복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대응을 요구하는 사회적 긴급사태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우리는 위임하지 않는, 보다 참여적인 민주주의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쉽지는 않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더 많이 참여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바로 그런 식으로 정책의 공동생산, 결정의 공동창조 등등이 논의되기 시작합니다. 네 번째 사항은 우리가 정치부패와 정실인사를 끝내야 한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이를 특권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급여는 삭감될 필요가 있고, 업무는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권한은 제한되어야 합니다. 요컨대 정치가 한층 더 윤리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마르씰리: 그러면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쑤비라츠: 첫째로 가장 중요한 발전은 두 번째 사항과 관련하여 확실히 이루어졌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사회적 긴급사태에 응답하기 위한 보다 면밀한 정책들을 만드는 것이죠. 어떤 점에서 이것은 첫 번째 사항—다른 유형의 정치에 필요한 사회제도를 회복하는 것—과 관련한 정당성을 복원해 주었습니다. 둘째로는, ‘혁신의 도시들’ 어느 곳에서도 부패 스캔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여전히 어려운 점은 사회제도를 보다 참여적으로 만들고 정책의 공동생산을 발전시키는 일입니다. 이것은 기존 제도들의 전통, 일상 업무, 작업방식들이 우리의 접근법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매우 19세기적이고 20세기적인 접근법이 기존 제도에 존재합니다. 그 제도는 디지털 방식 이전의 것인데, 여기서 집단지성을 포함하는 방법이 관여되는 ‘공동생산’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르씰리: 실리콘 밸리의 거인들이 모든 데이터와 모든 사회적 상호작용을 화폐화하는 시스템 뿐만 아니라 그 너머의 기술 주권을 거론하는 국제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논쟁이 있습니다. 당신은 디지털 커먼즈와 관련하여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쑤비라츠: 우리는 자치도시 의회가 사용하는 사유화된 소프트웨어 기반을 바꾸는 일과 그 의회와 소프트웨어 공급자들 간에 이루어진 계약을 통해 이런 서비스에 사용된 데이터가 기업에 이전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또한 <스마트 시티>(Smart Cities)와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obile World Congress)의 중심지인 도시에서 기술혁신이 도시의 접근법을 반드시 바꾸도록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이 포럼에 못 미치는 사고방식을 바꾸면서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혁신과 기술주권을 담당하는 위원을 임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기차•버스•지하철 모두에 사용될 수 있는 교통카드에 대한 새로운 계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카드는 공급자가 제조할 것입니다. 계약서에는 공공 당국이 바르셀로나 전 주민들의 지역 대중교통 데이터를 관리할 것이라고 명시됩니다. 여기서 주권은 국가주권 같은 것이 아니라 에너지•물•식량•디지털 주권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논의해야 할 공적인 우선사항들이자 필요한 것들입니다.

마르씰리: 주권이 너무 자주 국가주권과 동일시되어서 저는 ‘근접성의 주권’(sovereignty of proximity) 내지 ‘주권(체)들’(sovereignties)이라는 개념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헌법처럼 많은 헌법들이 “주권은 국민에게 속한다”라고 공표하고 있습니다. 국민국가가 아니라 말이죠! 그런데 헌법에서도 도시의 역할은 여전히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도시의 실제적 법적 권한은 그 범위가 좁습니다. 새로워진 거버넌스의 중심에 도시를 두고자 하는 시도라면 권한의 배분을 바꾸기 위한, 일국 수준의 정치적 싸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까?

쑤비라츠: 저는 자치도시들의 ‘책임 수준’의 문제에 관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치도시들은 시민들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폭넓은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책임 수준이 높습니다. 하지만 자치도시들의 ‘권한의 수준’—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훨씬 더 낮습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이 지역 내에서 해결될 수는 없다는 것이죠. 바로 이 이유로 <바르셀로나 엔 꼬무>가 카탈로니아를 가로지르는 운동을 조직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카탈로니아 엔 꼬무>라고 부르는데 <카탈로니아 엔 꼬무>는 뽀데모스와의 연합이라는 논리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카탈로니아 수준—여기서 교육과 의료 정책들이 결정됩니다—에서나 국가 수준에서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면 행동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역 수준에서는 우리의 권한이 나타내는 것 이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우리의 정치적 동원력이 우리의 권한보다 한층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대립은 법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카탈로니아에서 주택과 관련하여 권한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바르셀로나에서 이런 권한은 자율적인 카탈로니아 자치주 정부(Generalitat) 내지 국가의 수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정치적 동원을 통해 주택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고 그곳에서 베를린•암스테르담•뉴욕과 함께 <에어비앤비>에 반대하는 동맹을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정치적 동학 때문에 <에어비앤비>는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비록 스페인•미국•네덜란드 국가는 그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을지라도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법적인 권한이 없다는 생각에 구속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르씰리: 도시와 국가의 대립이 흥미롭군요. 아시겠지만 우리는 유럽 전역의 많은 도시들—바르셀로나는 그중 한 도시죠—이 난민들을 맞아들이기를 바라지만 그 도시가 속한 국가들은 종종 이것을 방해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스페인 정부도 예외가 아닙니다. 도시가 단독으로 일정수의 난민을 받아들이는 그런 불복종 행동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흥미롭게도, 당신은 국가정부에 불복종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역설적이게도 당신은 ‘난민재배치에 관한 유럽 시책’을 따르고 있고 정작 국가정부가 그것을 따르지 않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쑤비라츠네, 좋은 실례군요. 저도 그 일은 실행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이 난민이라는 큰 문제는 풀지 못하겠지만, 확실히 실질적인 영향력보다 정치적인 영향력은 더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도시 수준에서 그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고 사람들이 그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 일이 말 뿐인 것은 아닐 것이라는 매우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다른 경우에도 유사한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민간투자기금이 건물을 구입하는 능력에 대해 조치가 취해진 바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자치시의회는 합법적으로 법을 어길 수 없지만 여러 방식으로 투자 펀드가 이런 거래를 하는 것을 한층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몇몇 경우에 자치시의회는 건물이 투기대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건물 자체를 구입함으로써 이러한 매입을 좌절시키기도 했습니다.

마르씰리: 독일 정치가 슈반(Gesine Schwan)은 본질적으로 국민국가를 우회함으로써 유럽수준의 난민 재배치와 자치도시들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한 가지 제안을 내 놓고 있습니다. 지금 유럽연합을 지배하는 여러 수준의 기관들은 ‘국민국가에서 유럽연합으로’ 구조에 따라서 대부분 조직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이와 달리 ‘자치도시에서 유럽연합으로’라는 구조를 생각하면서 이 기관들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쑤비라츠: 네, 저는 이 영역에서 우리의 경험들을 연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시들 사이에서 서로 벤치마킹하고 서로 배우려고 만든 <유로시티>(EuroCities) 같은 조직들이 있습니다. 이동성/유동성, 사회정책 등등을 다루는 워킹그룹들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는 지역수준에서 조직화하는 이런 접근법을 더 추진해야 하며, 국가를 제치고 유럽연합과 직접 대화할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국민국가들이 유럽의 의사결정 구조를 장악했기 때문에 그 일은 전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도시들이 유럽연합에서 동맹을 맺더라도 그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루어질 수는 있습니다. 저는 유럽연합이 그런 조치를 취하기를 꺼려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하나의 방법은 지역 당국들이 모여서 유럽 포럼을 창출하여 힘을 키우고 이 영역에서 도약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르씰리: 당신은 국민국가들에게나 유럽연합에게나 약간은 대항권력으로 작용하는, 혁신 도시들의 유럽 네트워크를 상상할 수 있으십니까?

쑤비라츠: 저는 그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바르셀로나 자치도시 당국이 이미 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바르셀로나는 사라예보를 11번째 행정지구로 삼았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Gaza Strip)에서 일하는 자치도시의 기술 담당자들과의 매우 밀접한 관계를 포함해서 바르셀로나와 가자지구 사이에 강한 협동관계도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자치도시의 국제협력 전통이 자리를 확실히 잡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기반으로 한 작업은 새로운 것이 아닐 것입니다.

마르씰리: 유럽에는 특성이 있는 같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우연히 거주하는 공간들을 지배하는 초국가적인 정치구조가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 이론가인 바버(Benjamin Barber)는 시장(市長)들로 구성된 전지구적 의회를 제안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전지구적 수준에서 매우 흥미로운 지적인 제안입니다. 전지구적 정부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유럽에는 적어도 유럽 정부의 시뮬라크럼인 유럽의회가 있습니다. 당신은 도시들이 모여서 유럽의회 같이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공간을 창출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쑤비라츠: 그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구성적이고 강력한 힘을 갖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애초에 기존의 기관들, 관료들, 조직들에 의해 형성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공간은 오히려 아래에서의 마주침(상호작용)을 기반으로 그리고 (나폴리,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지에서) 영향을 끼쳤던 시장들의 합법성을 바탕으로 해서 작동해야 합니다. 그 공간은 위로부터 정치적 자산을 빨리 만들려는 어떠한 욕망도 없이 밑바닥에서부터 위로 작용하는 과정으로서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훨씬 더 복원력이 있을 것이고 결국 강력해질 것입니다.

마르씰리: 유럽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도시들이 할 역할을 구축하는 것은 매우 품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제가 다니면서 도시행정과 관련한 이런 아이디어의 옹호자 역할을 할 때 종종 제가 깨닫는 것은 자치도시에 보다 정치적이거나 외교적인 이런 사안을 다룰 직원과 사무실이 부족한 경우가 매우 잦다는 것입니다. 도시들이 전지구적으로 그리고 유럽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는다면 도시들은 관련 업무를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기구에 투자할 필요가 있습니다.

쑤비라츠: 분명히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메트로폴리스 접근법을 더 강화한다면, 당신이 단점으로 언급한 것들을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자치도시라는 용어가 항상 같은 것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마드리드는 넓이가 600제곱킬로미터이고, 바르셀로나는 100제곱킬로입니다. 파리는 파리 시(the City of Paris)와 교외를 포함한 파리(Greater Paris)로 나뉩니다. 우리가 바르셀로나시보다 ‘교외를 포함한 바르셀로나’라는 개념을 구축하고자 한다면 이것은 150만 명의 거주자에서 350만 명의 거주자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메트로폴리스권을 형성하는 25개 타운위원회는 국제적 과정을 육성하는 데 자원을 투자하기로 틀림없이 동의할 것입니다. 파리는 이미 이 일을 시작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요, 파리에는 메트로폴리스적 차원이 있어서 그것을 더 강화할 수 있거든요. 직원과 선례가 부족한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도시가 국제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항상 국가를 거쳐야 한다고 기계적으로 생각합니다. 이 상황은 메트로폴리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르씰리: 본격적으로 전지구적인 차원을 거론하며 마무리를 해보겠습니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 지역에 살고 있으며, 상위 100대 도시들이 전 세계 GDP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양을 생산합니다. 2017년 6월에 바르셀로나는, 국가지도자는 점점 더 다룰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전지구적 과제들을 다룰 공동기획을 수립하기 위해 전 세계 시장들을 한데 모아 전지구적 정상회담인 <대담한 도시들>(Fearless Cities)을 주최했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요? 어떤 구체적인 조치들이 취해질 수 있을까요?

쑤비라츠: 제 생각에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구체적인 어젠다를 가지고 작업하는 것이고, 도시들을 아주 쉽게 끌어들여 연결시킬 수 있는 이슈들을 찾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재분배 문제, (런던•시애틀•뉴욕에서 논쟁을 촉발시켰던) 최저임금 문제 및 주택•초등교육•에너지•물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 문제들은 분명히 경계들을 가로질러 세계 어디에서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우리는 이런 이슈들로 시작할 수 있으며 유럽 전역에서 과제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정치권과 기관들에게 자극을 줄 것이고 우리는 좀 더 빨리 도약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정책 분야의 결점들을 보지만, 이것은 정치체의 결점들을 부각시킬 것입니다.